324화 – 우리가 누구? (1)
5일, 대진표 추첨이 끝난 뒤 연습을 위해 주어진 기간.
그간 메탈 펀치 메타를 비롯해서 격투 게임 관련 커뮤니티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분위기였다.
[갓플 진짜 밴픽 카드 안 쓸 생각임?]
[세브루스 10선만 찾는 거 보면 찐인 듯?]
[아니 ㅋㅋㅋ 딱 봐도 블러핑이구만]
[ㄹㅇㅋㅋ 방종 겁나 빨리하고 뒤에서 부캐 대비하는 거자너]
그간 이어진 이경복의 방송에서 데시벨은 세렝게티 여성부 대장, 엄마퀸의 주 캐릭터를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엄마퀸도 지금 겁나 헷갈리는 듯 ㅋㅋㅋ]
[ㄹㅇㅋㅋ 주캐랑 부캐랑 번갈아서 방송 하잖슴]
[그래도 엄마퀸은 재규어 대비만 하면 되자너 ㅋㅋㅋㅋ]
[남성부 경기에서 그럼 누구 밴픽함?]
[당연히 어깨 레이지 밴해야지 ㅋㅋ]
그 내막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갖가지 추론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함께 인정하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찬스 카드 하나로 지금 얼마나 뒤흔드는 거냐고!]
[진짜 ㅋㅋ 일단 카드 쥐고 있는 것부터 심리전에서 먹고 들어감]
[갓직히 뭐든 이기는 게 최고긴 해 ㅋㅋㅋ]
[격겜판에서는 오직 승리만이 의미가 이따 이마리야]
찬스 카드를 얻었다는 사실 만으로 트라이는 연습 기간에도 심리적 우위를 점했다는 사실이었다.
한편, 퍼지데이 팬카페의 분위기는 여느 커뮤니티와는 달랐다.
[무료 응원소품 아바타 코드 공유요!]
[외국어로 큐글링하는 게 더 나은 듯?]
[브스타 때 쓴 가면 코드 있는 사람?]
[응원 막대 만들어 봤는데 어떰?]
[가서 부부젤라 불어도 됨?]
[부부젤라 ㅅㅂ 되겠냐고 ㅋㅋ]
트라이 시청자 중에서도 팬심으로 공고히 뭉쳐있는 이들인 바, 그들은 응원전 때 쓸 소품 아바타를 찾아 공유했다.
[응원 소품이 다 거기서 거기네]
[퀄 차이만 있고 종류는 그닥 많지 않음 ㅋㅋㅋ]
[획기적인 퍼펙트-소품은 없는 거신가!]
[퍼청자들 뭐하냐구! 얼른 아이디어 내달라구!]
하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흔치 않은 직관기회니 만큼 보다 특별한 응원이 하고 싶었다.
그리 팬들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하는 와중이었다.
[(중요!)퍼플데이 응원 지침 하달]
새로이 올라온 글이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내 그 게시글에는 빠르게 댓글이 달렸다.
[-캬 ㅋㅋㅋ 오늘 만큼은 지놈이다!]
[-유전자 레벨로 응원을 잘하는 남자 ㅎㄷㄷ]
[-와 ㅋㅋ 용의주도하게 퍼플 게시판만 쏙 빼놨네]
[-옼ㅋㅋㅋ 그러네 ㅋㅋㅋ 지놈이랑 이클립스 게시판만 올렸네]
[-이 형도 진짜 싱크탱크임ㅋㅋ]
게시자는 바로 지놈이었다.
그 내용을 확인한 시청자들은 즐겁게 동참을 표했다.
[-우리가 갓플을 놀라게 할 수 있다 이마린가?]
[-놀란 갓플을 어케 참음?ㅋㅋㅋ]
[-이거 잘 되면 진짜 개쩔 듯ㅋㅋ]
이번에는 시청자들이 그를 놀라게 만들 차례였다.
* * *
대회 당일 늦은 오전, 이경복의 스튜디오.
팀 퍼펙트는 오프라인 회의 대신 온라인 미팅을 시작했다.
“자, 오늘 스튜디오에서 보기로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경복이 밝게 웃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오늘은 업무가 없거든요. 마음 편히 이벤트 직관해주시면 됩니다.”
그에 가장 먼저 표정이 바뀐 건 조대한과 매드맨이었다. 두 사람이 활짝 웃다가 이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저, 사장님. 오늘이 가장 바쁜 날이지 않나요…?”
두 사람은 팬이었지만 충실한 직원이기도 했다.
큰 이벤트니 업무량 역시 상당하지 않을까. 팬심과 애사심 모두 상당한 터라 걱정이 뒤따랐다.
“괜찮습니다. 이번 방송은 트라이 북미 본사랑 일본 지사 채널에서도 동시 송출이 되니까요. 세렝게티랑 합의를 본 모양입니다.”
대답은 박주호가 대신했다.
전 직원의 업무 스케쥴을 꿰고 있는 그가 설명하는 편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공식 채널 송출이니 채팅창 관리도 트라이에서 맡은 상황이었죠. 그런데 이번에 해외 송출이 결정되면서, 실시간 통역과 자막이 제공되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그 번역 스크립트를 따로 전달받기로 했고요.”
“아, 그럼 저는 진짜 할 일이 없군요.”
조대한이 그에 수긍했다. 그러나 편집 팀의 입장은 달랐다.
“일단 나는 논외야. 영상편집 할 게 있거든.”
최병훈의 말에 매드맨이 흠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그러면 나도 도와줄게.”
그 모습에 이경복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이 자식이 눈치가 없는 건 아닐 텐데?’
최병훈이 일한다고 말을 해버리면 다른 사람들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매드맨은 같은 편집팀이니 저렇게 눈치를 보지 않나.
“하루 정도는 쉬어도 되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차피 영상은 트라이에서 제공받은 소스로 편집할 거잖아? 대회 끝나고 시작해야 할 텐데.”
박주호도 그에 동조했다.
두 친구의 말에 최병훈은 미소를 지었다.
“그거야 당연히 그렇지. 하지만 당연한 것만 생각하면 프로라고 할 수 없지. 내가 다 계획이 또 있어요.”
그의 대답에 다른 사람들이 눈을 껌뻑였다. 계획이라니? 영상 소스가 없는데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최병훈은 그 의문을 이미 짐작한 듯 매드맨과 조대한을 돌아봤다.
“두 사람 모두 이벤트 스타디움에 가줘야겠어.”
“네?”
“아니, 영상 편집해야 된다며?”
“어, 그러니까 소스를 뽑아야지.”
최병훈은 놀란 두 사람에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직캠’이거든.”
직캠이라는 키워드에 박주호가 눈을 빛냈다.
“과연…! 아주 좋은 아이디어다.”
그는 바로 최병훈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어차피 오늘 대회 영상은 트라이 코리아 큐튜브에 올라가겠지. 퍼튜브에 올라오는 건 그 이후가 될 수밖에 없을 거다.”
“아, 그렇지. 편집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래. 물론 우리 쪽 편집본을 기다리거나 또 볼 시청자들이 있겠지만, 같은 걸 두 번 보면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
“아, 그런데 직캠이면…!”
이경복도 이내 최병훈의 의도를 파악했다.
“공식 영상에서 느낄 수 없는 현장감이 담기겠네!”
“그렇지. 관중 시점에서 보는 영상은 공식 영상과 확실히 차별화된다. 먼저 영상을 보고 왔어도 직캠은 또 봐도 재미있을 테고.”
정갈하고 깔끔하게 편집된 영상과 달리 직캠은 훨씬 날것에 가깝다. 하지만 그만큼 현장의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그만한 것이 없었다.
“이야! 역시 편집팀장님이십니다!”
“와씨, 난 왜 이걸 생각 못했지? 너도 짬이 남다르긴 하다.”
조대한과 매드맨도 이해와 동시에 감탄을 표했다. 최병훈은 다른 이들의 반응에 너털웃음을 흘렸다.
“크으! 이제야 좀 알겠냐? 퍼사장이 방송만 생각하면 나는 영상만 생각한다고!”
그의 자화자찬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이경복은 이내 상황을 정리했다.
“아, 그럼 제가 했던 말은 취소할게요. 아쉽지만 번복을 해야겠습니다. 오늘도 열심히 일 해주셔야겠어요.”
그의 말에 다른 이들의 눈길이 돌아왔다.
이경복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들 축제를 즐겨주셔야겠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업무였다.
* * *
이른 저녁, 이벤트 스타디움.
정소윤과 해설진이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역대급 플랫폼 대전! ‘세트로 붙자’의 진행을 맡은 정소윤입니다!”
“유전자 레벨로 편파적인 남자! 지놈입니다!”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세렝게티에서 해설을 맡은 될까입니다!”
활기찬 인사에 채팅창이 즉각 반응했다.
-정캐! 정캐! 정캐! 정캐!
-유전자 레벨 편파는 뭔데 ㅅㅂㅋㅋㅋㅋ
-드디어! 마참내!
-5일 동안 응어리진 재미를 보여줫!
정소윤이 웃으며 진행을 이어갔다.
“자, 정말 많은 분들이 기다리셨던 대회의 막이 올랐습니다. 5일이 정말 5년처럼 느껴질 정도였어요.”
“그렇습니다. 하루하루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가 계속 부풀었거든요?”
“이게 진짜인 게, 커뮤니티에서 저희 세트로 붙자 얘기를 안 하는 곳이 없더라고요.”
“그렇죠. 장안의 화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화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녀가 설명하는 사이 카메라가 돌아가며 스타디움의 전경을 비춰주었다. 그런데 관중석이 텅텅 비어있었다.
“그만큼 많은 분들이 이곳, 스타디움을 찾아주셨는데요. 보다 원활한 접속을 위해 현재 주최측에서 대기열을 정리하고 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순차적 접속을 위해 시청자들의 입장을 제한해둔 상황이었다. 정소윤의 설명에 지놈과 될까도 바로 동조했다.
“이게 지금 그냥 문을 열어버리면 트래픽이 장난이 아니거든요? 격겜 특성상 밀리세컨드 단위의 지연도 진짜 치명적입니다!”
“그렇죠! 그만큼 이번 대회 규모가 실감이 됩니다. 제가 메탈펀치 대회 해설을 나름 많이 했는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에요! 역시나 양대 플랫폼의 협업은 스케일이 다릅니다!”
-고것도 맞긴 해 ㅋㅋㅋ
-이런 중요한 대회에 렉이 생긴다?
-그러면 양 플랫폼 다 나락이지 ㅋㅋㅋ
-채팅방은 열려 있어서 다행이다 이마리야
-5일 버텼는데 이것도 못 버티겠냐고 ㅋㅋ
-기다리기 싫으면 좀 빠져!
시청자들 역시 그에 수긍했다. 정소윤은 채팅창 반응에 안도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저희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지만 시청자분들이 가장 뵙고 싶은 분들은 또 따로 있죠? 접속을 기다리는 동안 양 팀의 대표! 어깨와 퍼플 님에게 간단히 인터뷰를 청해보겠습니다!”
그녀의 말과 동시에 어깨와 이경복이 빛무리와 함께 나타났다. 두 사람은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자, 이렇게 두 분 모셨는데요. 제3자인 저도 엄청 떨렸는데 과연 팀을 책임지는 두 분은 어떨까요? 지난 5일간 어떤 심정이셨는지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먼저 마이크를 건네받은 건 어깨였다. 그는 멋쩍은 미소와 함께 이경복을 돌아봤다.
“이야, 정말 여러모로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고요. 제가 퍼플 님 방송을 매일 체크를 했는데 진짜 너무 일관적이셨어요.”
“아, 그렇죠! 퍼플 님은 계속 코칭 방송을 하셨더라고요?”
“아마 제 생각에는 뭔가 따로 준비를 하신 게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엇일지 정말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깨가 그리 말을 맺고는 이경복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이렇게 신경 쓰셨다는 것만으로도 성과를 거둔 게 아닌가 싶네요.”
“아, 이것도 심리전이었다는 뜻일까요?”
“네, 승부는 이미 시작됐으니까요. 저희가 어떤 걸 준비했는지는 곧 알게 되실 겁니다.”
이경복은 웃으며 어깨를 돌아봤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도 경쟁자로서 만나게 될 어깨 님 모습이 정말 기대가 됩니다.”
-아 ㅋㅋ 어려움 전문 스머답쥬?
-팀도 팀이지만 빨리 싸우고 싶다 이마리야 ㅋㅋㅋ
-어깨나 갓플이나 언능 붙어보자 이거잖슴ㅋㅋㅋ
-어퍼대전은 무적권 전설임! 아무튼 전설임!
-진짜 개꿀잼일듯ㅋㅋㅋㅋ
시청자들 역시 기대감을 표출했다. 그 사이 정소윤이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습니다. 오랜 기다림만큼 멋진 모습! 기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대기열 정리가 끝났다고 하는데요. 지금부터 입장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녀의 말과 함께 관중석에 빛무리가 번지기 시작했다. 어깨와 이경복 모두 눈을 돌렸다.
“하나 더 안 내드리면,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관중석 소리를 차단해두었습니다. 입장이 모두 완료되면 관중석의 차음막이 해제될 예정이니 참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소윤은 그리 설명을 마치고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그런데 예상보다 보라색이 많지가 않네요? 세렝게티 시청자분들부터 입장하시는 걸까요?”
관중석은 빠르게 채워지고 있었지만 보라색 옷을 입은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보라색 옷을 입은 사람에게 다른 관중들이 무어라 말하더니 옷을 바꾸기까지 했다.
다들 어리둥절한 가운데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그건 아닙니다.”
그리 발언한 사람은 바로 지놈이었다. 이에 정소윤은 더욱 호기심을 보였다.
‘뭘 준비하신 거지?’
사전에 주최측, 그중에서도 트라이 직원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던 터였다. 지놈이 준비한 게 있으니 당황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크흠! 자, 그럼…”
이내 지놈이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이내 숨을 들이쉬더니.
“리멤버 퍼플데이이이이이!”
목청껏 목소리를 높였다.
차음막은 관중석의 소리만 차단했기에 그 음성은 스타디움에 울려 퍼졌다.
갑작스런 고함에 다들 당황했지만 이내 모두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와…!”
불규칙하게 서 있던 관중들이 자리를 잡더니 일제히 뭔가를 기다리듯 주의를 집중했다.
이어 차음막이 사라진 순간 지놈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포 더 퍼플!”
퍼플을 위한.
“바이 더 퍼플!”
퍼청자들의 이벤트.
그의 호령에 맞추듯 관중석에서 우렁찬 답이 돌아왔다. 그와 더불어 관중석이 일제히 보라색으로 물결쳤다.
지놈의 신호에 맞추어 다 같이 환복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건! 트라이 팀! 시작부터 엄청난 퍼포먼스에요오오!”
정소윤이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응원전을 제대로 준비해왔습니다! 지놈 님이 응원단장이셨네요!”
자세히 살펴보면 타이밍을 못 잡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나.
관중석이 완전히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단합력 지렸다 진짜 ㅋㅋㅋ
-입구컷 돌겠네!
-나도! 나도 들여보내줘요!
-10만이 어떻게 바로 차는 건데에에에에에!
스타디움 정원은 총 10만 명.
정원 초과로 접속하지 못한 시청자들은 부러움을 내비쳤다.
“아니…”
이경복은 팬들의 퍼포먼스에 말을 잇지 못했다. 다들 하나같이 굿즈를 입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나를 응원해주려고.’
절로 웃음이 번졌다. 이런 상황에서 미소가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직 자신을 위해 준비해주었다.
이 모두가 스트리머 퍼플을 응원하기 위해 합심했다. 이렇게 놀라운 경험을 언제 해보겠는가?
특히나 이경복의 감상은 남달랐다.
‘완전히 잠긴 것 같아.’
신기를 통해 감지되는 긍정적인 기운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적어도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라 확신이 들 정도였다.
‘이게 말이 돼?’
완전히 입장이 바뀌었다.
지금 게말콘을 써야 할 사람이 있다면 바로 자신이었다.
지놈은 그런 이경복의 표정을 살피고는 만족했다.
‘자식, 찐으로 놀랐네.’
팬들을 동원한 보람이 있었다.
이렇게 기뻐하는 게 보이니 퍼포먼스를 구상하길 잘했다는 확신이 생겼다.
지놈은 다시금 힘껏 소리쳤다.
“우리가 누구우우우우우!?”
이 퍼포먼스의 클라이막스였다.
그가 던진 물음에 스타디움이 떨릴 정도의 대답이 돌아왔다.
“위! 아! 퍼프으으으으으을!”
서프라이즈를 위한 만큼 준비기간도 짧았다. 그렇기에 이해가 쉽고 함축적인 의미를 전달해야 했다.
그리 압도적인 기세에 될까와 어깨는 물론 세렝게티 시청자들 역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정말 감…”
이경복이 그에 감격해 고마움을 표하려는 순간이었다.
“자! 제가 준비한 퍼포먼스는 여기까지!”
지놈이 생긋 웃으며 손을 튕겼다. 그가 구상한 퍼포먼스는 끝이었다.
“지금부터는!”
이내 관중들이 준비한 응원소품을 꺼내기 시작했다.
“팬들이 직접 준비해주신 응원입니다!”
응원전은 이제 시작.
팬들이 준비한 퍼포먼스는 또 따로 있었다.
325 - 우리가 누구? (2)
퍼지데이 팬카페는 그 편의성 덕분에 이경복의 팬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러나 팬카페는 크루 결성 이후에 만들어진 집결지. 기존 팬들은 본래 자신들이 활동하는 커뮤니티가 따로 있었다.
팬들도 제각기 즐겨하는 게임이 있었고, 이경복이 그 게임을 플레이하는 걸 본 뒤에 팬이 됐기 때문이었다.
[뭔가! 뭔가 참신한 게 필요함]
[ㄹㅇㅋㅋ 다른 커뮤에서도 다 준비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갓플한테 보여줄 우리만의 뭔가가 필요하다 이마리야]
때문에 각 게임 커뮤니티에서도 응원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리고 팬카페와 커뮤니티 둘 다 하는 팬들은 제 커뮤니티에 지놈의 응원 계획을 들고 왔다.
[엌ㅋㅋ 이거 직접 보면 개쩔 듯]
[쉽고 짧고 임팩트 좋고 ㅋㅋ]
[지놈이 머리가 좋긴 하네 ㅋㅋ]
[아 근데 이건 커뮤 특성이 안살잖슴!]
지놈이 세운 계획에 동참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커뮤니티 유저들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더 드러내고 싶었고, 이경복이 그 게임을 즐겨준 것에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갓플 코인 탔으면 보답을 해야지]
[덕분에 유입도 많아졌다 이마리야]
[진짜 갓플이 하면 개같이부활ㅋㅋㅋ]
게임에 애정이 있는 이들로서는 게임 평판이 곧 자신의 평판과 마찬가지였다.
[그냥 우리가 갓플 따라하는 건 어떰?]
그리 궁리한 끝에 누군가 아이디어를 냈다.
[당연히 뱁새 되자는 건 아님
뱁새쉑들은 지능이슈고 ㅋㅋㅋ
지놈 계획 보면 마지막이 ‘We Are Purple’로 끝나잖슴?
우리 겜 대표하는 소품으로 준비해서 갓플한테 보여주는 거 어떰?
그렇다고 완전 코스프레는 ㄴㄴ
퍼펙트 후드티로 맞춰야 통일성 있으니까 무기나 악세사리 같은 걸로다가 맞춰보면 어떰?]
대단한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너 천재냐?]
[-오 ㅋㅋㅋ 이거 괜찮을 듯]
[-아 ㅋㅋ 원래 패션은 포인트가 생명이긴 해]
[-패션? 열정을 말하는 것인가?]
[-그러면 어떰은 Awesome이냐?]
[-오올ㅋ 본토발음]
[-본토발음 ㅇㅈㄹ ㅋㅋㅋㅋ]
그 아이디어는 꽤 좋은 반응을 얻었고 각 커뮤니티에 수출까지 됐다.
* * *
다시 현재, 스타디움.
정소윤은 관중석을 보며 숨을 들이켰다.
“아, 이건 또 놀랍네요! 준비한 소품이 또 구역마다 나누어져 있어요!?”
그녀의 말에 카메라가 관중석을 클로즈업했다. 전광판에 자신들의 모습이 비치자 팬들은 일제히 차렷 자세를 취했다.
“하나, 둘!”
그들은 경찰모를 쓰고 구령을 붙였다. 그리고 다 같이 경례 자세를 취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바통령께 경례!”
준비한 소품과 그 외침만으로도 모두가 그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바붕이들 단결력 무엇?
-캬 ㅋㅋ 근본 수듄 어디 안 가쥬?
-아닠ㅋㅋ 왜 절도있는데욬ㅋㅋ
-바크리트는 킹정이지 ㅋㅋㅋㅋ
-갓플 데뷔 때부터 팬이었다 이마리야
이경복의 데뷔 무대라고 할 수 있는 게임, 바이오 크라이시스의 팬들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팬들 중에서도 올드비에 속하는 진성 팬들이었다.
이내 카메라가 옆으로 움직였다.
“와! 퍼지데이!”
“퍼지데이! 퍼지데이!”
다음 구역의 팬들은 전광판에 자신들이 비치자 곧바로 퍼지데이를 연호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프라이팬과 헬멧을 쓰고 있었다.
“아, 누가 봐도 거너 그라운드 팬들이시네요! 퍼플 님이 또 거너 그라운드를 잘 하시죠!”
“이거는 제가 좀 자부심이 있거든요? 퍼플 님이 거그를 즐기시게 된 것도 다 제 덕분 아니겠습니까!”
지놈이 슬쩍 나서서 멘트를 쳤다. 채팅창에 바로 웃음이 번졌다.
-아닠ㅋㅋ 님은 그냥 버스 승객이었잖슴!
-생놈이 또 추색을!
-킹부러! 어떻게든 자기 자랑할라고!
-그래도 퍼지데이 이름 만든 건 착착 감기긴 해 ㅋㅋㅋㅋ
그리 한차례 멘트가 끝나자 다음 구역의 팬들이 비춰졌다.
그들은 작은 인형과 검을 들고 있었는데 잘 보이지가 않아 카메라가 더욱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그 인형은 바로.
“유일검! 유일검!”
“엘든 소울은 무협이다아아!”
엘든 소울의 마녀, 알리샤의 미니 버전이었다. 팬들의 외침에 채팅이 빠르게 올라왔다.
-엘붕이들ㅋㅋㅋ 무협을 여기섴ㅋㅋㅋ
-미니 눈나 그립읍니다ㅠㅠ
-???: 부서진 자여, 들리시나요?
-알리샤: 왜 다시 안와요ㅠㅠ
-진짜 유일검은 전설이다…
-완벽의 기사 볼 때마다 갓플 생각남ㅋㅋㅋ
-에이든 보스전이 개쩔긴 했음ㅋㅋㅋ
시청자들이 당시를 추억하는 사이 카메라가 돌아갔다. 이번에는 두 종류의 팬들이 섞여 있었다.
한 쪽은 모니터 헤드를, 다른 한 쪽은 보라색 코트에 은색의 가발을 쓰고 있었다.
“퍼플 코인 안 타본 팬들 없제?!”
“퍼펙트 보이스! 최고다아아아!”
탈출 게임인 이스케이퍼스와 데몬 머스트 크라이의 팬들이었다. 다른 게임보다는 팬층의 규모가 작은 탓인지 같은 구역을 나누어 쓰고 있었다.
-아 ㅋㅋ 갓플 덕분에 제대로 떡상한 겜들이고?
-이스케이퍼스는 진짜 효과 제대로 뽑긴 했음 ㅋㅋㅋㅋ
-데머크도 완전 옛날 겜이었는데 바로 인기몰이 해버렸쥬?
-진짜 ㅋㅋㅋ 하꼬들이 콘솔판 꺼내는 거 개웃겼는뎈ㅋㅋ
이윽고 카메라는 관중석의 중심, 가장 많은 구역을 차지한 팬들의 모습을 비추었다.
검은 복면에 수리검, 왕관에 장창, 녹색빛 오라소드, 푸른 영혼검 등등. 다른 팬들과 달리 그들의 복장은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어떤 게임의 팬인지 더욱 명확했다.
“어우퍼! 어우퍼! 어우퍼!”
“어우퍼는 과학이다!”
바로 미스틱리그의 팬들, 그 소품 모두가 이경복이 플레이했던 챔피언들의 것이었다.
-아 진짜 내가 저기 있어야 하는데!
-킹직히 저 자리는 경쟁률 개빡세긴 했음ㅋㅋㅋ
-아 ㅋㅋ 접속하는 것도 심리전이 필요하다고욬ㅋㅋㅋ
-진짜 졸잼이겠다 ㅅㅂ
-와나 진심 개부럽다
채팅창에도 미스틱 리그의 팬들이 많았다. 게임의 대중성만큼이나 그 비중이 높았다.
이윽고 마지막 구역에 카메라가 도착했다. 미리 기다리고 있었는지 팬들은 제 소품을 번쩍 들었다.
그들은 탐정 배지에 이상하리만치 총신이 긴 권총을 들고 있었다.
“아버지이이이이!”
“농장일 너무 힘들어요!”
그들의 외침에 이경복은 실소를 흘렸다. 시청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닠ㅋㅋㅋ 갓플이 아니라 빌리였냐고
-???: 농장을 떠나신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다
-아들한테 다 맡겨 놨다 이마리야 ㅋㅋ
-저 개조권총은 진짜 시강이넼ㅋㅋㅋ
-무친 ㅋㅋㅋ 다들 양손으로 드는데 갓플은 어케 한 손으로 들었냐고
-갓플은 원핸드 샷건도 쌉가능이자너 ㅋㅋㅋㅋ
그렇게 관중석을 빠르게 훑은 카메라는 다시금 무대 쪽을 비추었다.
“아, 정말 인상적인 응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에 외쳐주신 ‘위 아 퍼플’에 걸맞은 퍼포먼스로 보이는데요. 아무래도 퍼플 님께서 종합 게임 스트리머였기에 나올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정소윤이 그에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제가 정말 놀라운 건, 퍼플 님의 경력이거든요? 방송 시작한 지 3개월, 이제 곧 4개월차에 접어드시는데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다니요? 1년, 아니 반년도 아니고 1분기예요! 1분기!”
“아, 이 정도는 되니까 트라이의 대표로 나설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지놈은 그에 자신이 더 뿌듯하다는 듯 웃으며 멘트를 받았다.
“지금 보셨듯이 응원전은 저희 트라이가 완전 압도적으로 보이거든요? 혹시 뭐, 세렝게티도 준비한 게 있을까요?”
그가 의기양양하게 묻자 될까와 어깨의 눈이 돌아갔다. 그러나 세렝게티 쪽 관중석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몇몇 이들은 초록색 옷을 입고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아닠ㅋㅋ 이건 너무하잖슴!
-???: 세렝게티는 트라이를 놀려도 좋아, 하지만 트라이는 그러면 안 돼. 그건 너무하잖아?
-무친ㅋㅋ 짤 바로 나오겠넼ㅋㅋ
-이건 지놈이 잘못했닼ㅋㅋㅋㅋ
-???: 네가 죽였어…
너무나 상반된 분위기에 시청자들은 장난스럽게 지놈을 힐난했다.
이경복은 그에 웃으며 감격에 젖었다.
‘이거는 말로 감사를 표현할 수가 없겠는데?’
호의에는 호의로.
이경복은 팬들이 보내준 응원에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었다. 그 방법을 고민하는 와중이었다.
“퍼플 님,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어깨가 옆으로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정소윤은 짧게 헛기침을 했다.
“자, 좋습니다. 스타디움 입장도 끝났으니 이제 본 일정을 진행…”
양 팀의 분위기가 너무나 상반됐다. 하지만 어느 한쪽의 분위기로 치우치게 놔두면 이벤트가 난항을 겪게 될 터였다.
이에 그녀는 조속히 경기를 진행해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
“아, 정소윤 캐스터 님!”
하지만 그 시도는 어깨의 제지로 보류해야 했다. 정소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돌아봤다.
“하나 즉흥적으로 제안을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제안이요?”
환호와 웅성거림이 뒤섞여있던 관중석이 점차 조용해졌다. 그에 관심이 모이자 어깨가 웃으며 말했다.
“먼저, 트라이의 응원 아주 잘 봤습니다. 정말 인상적이더라고요. 하지만 저희 세렝게티도 보여줄 게 있습니다.”
“아, 세렝게티도 준비한 게 있었나요…?”
정소윤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세렝게티 관중석 반응을 보면 따로 준비한 게 없다는 건 명백했다.
어깨는 그럼에도 당당했다.
“응원이라는 게 꼭 관중들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편견이죠!”
“네? 그럼…”
“이번에는 대표인 제가 여기까지 와주신 관중들께 응원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로써 세렝게티를 택한 게 옳았음을 보여주겠습니다!”
“아, 어깨 님이 관중분들을? 이건 또 새로운 접근입니다!?”
역으로 응원이라니?
정소윤은 물론 그 자리에 있는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단 한 사람, 어깨와 미리 이야기를 나눈 이경복을 제외하고 말이다.
“마침 저도 응원해준 분들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는데요. 그래서 어깨 님과 함께 이 분위기를 이어가 보려 합니다.”
“어? 퍼플 님도 함께하시는 건가요?”
이어지는 이경복의 말에 모두의 머릿속 물음표는 더욱 커졌다. 이 두 사람이 그사이에 또 뭘 준비한 것일까.
어깨와 이경복은 그 반응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를 지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려나…”
“이렇게 소개하면 어떨까요?”
이경복이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오늘 메인 이벤트의 ‘티저’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 *
정소윤과 해설진은 무대를 바라보며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자, 어깨와 퍼플 선수가 모두 준비를 마쳤습니다. 설마하니 이 모습을 벌써부터 볼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어깨와 이경복은 무대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이번에 보여드릴 건 단순한 겨루기가 아닙니다. 지금 보시면 어깨 님은 보호용 글러브를, 그리고 퍼플 님은 한 손에는 권총, 다른 손에는 수리검을 들고 있어요! 양쪽 모두 근본 무기를 잡았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순수 격겜러와 종겜스의 대결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메탈 펀치 캐릭터로서의 대결이 아니라 순수 피지컬! 양 선수의 컨디션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놈과 될까가 바로 말을 받았다.
컨디션 확인 겸 분위기 쇄신을 위한, 스킬에 의존하지 않고 플레이 해왔던 게임 경험에 기반한 대결.
어깨와 이경복이 논의한 게 바로 이것이었다.
“두 선수가 ‘티저’라고 말한 게 이해가 됩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게 전부는 아니지만 또 기량에 따라 메인이벤트, 어퍼대전이 어떻게 될지 보일 수도 있거든요!”
정소윤이 그에 멘트를 정리하고 숨을 골랐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녀의 말과 함께 파이트 선언이 울려 퍼졌다. 두 사람 모두 즉각 반응했다.
“엄청난 반응속도에요!”
“퍼플 선수 쐈습니다!”
“세상에! 간단히 막아버립니다!”
이경복은 달려가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울려 퍼졌지만 돌아오는 건 쇳소리였다.
어깨가 보호용 글러브로 탄환을 튕겨낸 덕이었다.
“순식간에 붙었어요!”
둘의 거리는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이경복은 재차 격발했지만 탄환은 적중하지 않았다.
어깨가 총신을 옆으로 밀어내 궤도를 틀고 오히려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이경복도 쉽게 당하지 않았다.
“속도가 엄청나요!”
“어깨 선수 반격!”
“수리검으로 빗겨냅니다!”
수리검과 글러브가 충돌하며 카각 하는 쇳소리가 울렸다. 이경복은 펀치를 빗겨내며 벌어진 틈으로 즉각 수리검을 찔렀다.
그러나 검극이 닿기 전, 덜컥 수리검이 멈추었다. 어깨가 이경복의 손목을 붙잡아 옆으로 비틀고 다리까지 걸어 넘어뜨리려 했다.
대번에 공수가 전환됐지만 이경복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힘에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바닥을 박차며 덤블링으로 자세를 회복했다.
착지와 함께 겨누어진 총구가 다시 불을 뿜었다.
“퍼플 선수 돕니다!
“쐈어요!”
“해설이 따라잡질 못할 속도에요!”
지근거리에서의 총격이었지만 이번에도 맞지 않았다. 어깨는 순간 머리를 돌려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덕분이었다.
-????????
-이게 나랑 같은 사람이라고?
-뭐지? 송출을 2배속으로 하는 거신가?
-무친;;; 이거 즉석에서 한 거 아님?
-ㄹㅇㅋㅋ 미리 짜둔 거 아니냐구웃!
-아니 ㅋㅋ 서로 합맞추고 해도 이렇게 하기 힘들겠다 ㅅㅂ
-님들 왜 진짜 괴물이에욧!
-ㅁㅊ 메탈 펀치 말고 그냥 이렇게 승부하면 안 되냨ㅋㅋㅋㅋㅋ
매 경합에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공수전환과 군더더기 없이 최적화된 동작, 그마저도 끊임이 없다.
관중석은 물론 채팅창에도 연신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리 숨 쉬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집중해서 보게 되는 공방은.
“둘 다 갑니다!”
“크로스 카운터어어어!”
“과여어어어어언!”
두 사람이 각기 주먹과 수리검을 내지르며 끝이 났다.
마치 음소거 버튼을 누른 것처럼 모두가 숨을 죽였다.
전광판에는 글러브와 수리검이 두 사람 얼굴 바로 앞에 멈춰 있는 게 비춰졌다.
그리고 양쪽 모두 즐거운 듯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컨디션은 문제가 없으신 것 같네요.”
먼저 입을 연 건 이경복이었다. 어깨의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나요. 완전히 베스트 컨디션입니다. 퍼플 님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요?”
“저는 퍼펙트 컨디션이죠. 진짜 승부가 기대 되네요.”
그 짧은 문답이 끝나고 두 사람은 무기를 거두었다. 그제야 여기저기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여기서, 여기서 이렇게 마무리를 지어버리네요! 말 그대로 숨 막히는 경합이었습니다!”
정소윤이 눈치껏 멘트로 상황을 정리했다. 지놈이 그에 과장스럽게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이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진짜 티저잖아요!?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정말!”
“아, 이건 동감할 수밖에 없네요. 이렇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마지막까지 기다려라? 이거 정말 악질이에요, 악질!”
관중석은 물론 채팅창에도 웃음이 번졌다.
-진짜 ㅋㅋㅋ 이거는 미쳤넼ㅋㅋ
-와씨 이걸 직관했어야 되는데
-어퍼대전은 티저만으로도 이미 전설이다…
-티저가 전설이면 본 경기는 신화가 될 듯 ㅋㅋㅋㅋㅋ
-어떻게든! 킹부러! 끝까지 보게 할라고!
-이걸 애드립으로 했다고 하면 누가 믿냐고 ㅋㅋㅋㅋ
-개꿀잼 이벤트는 티저도 재밌다, 그게 상식이잖아?
순식간에 달아오른 분위기에 어깨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 그는 이경복에게 속삭였다.
“덕분에 양쪽 모두 분위기가 사네요. 어울려줘서 감사합니다.”
“에이, 아닙니다. 저도 리액션을 고민하고 있었으니까요. 다들 만족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어깨는 세렝게티의 침체된 분위기를 바꾸었고 이경복은 팬들에게 만족을 선사했다.
말 그대로 ‘윈-윈’인 상황이었다.
이내 두 사람은 가볍게 악수를 나누었다.
그 모습에 관중석에서 거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자, 역시나 플랫폼을 대표할 자격이 있다! 두 분 모두가 증명한 자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이런 생각이 또 들어요.”
“아, 어떤 생각이시죠?”
“어깨와 퍼플 님 모두 플랫폼 대표로 나오시긴 했지만, 지금 보니까 당당히 한국 대표로 나서도 되지 않나 싶거든요.”
그녀 역시 두 사람의 의도를 읽어냈다. 지금은 플랫폼을 비교 할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텐션을 올릴 때였다.
그리고 의도대로 스타디움의 열기는 더욱 강해졌다.
-아 ㅋㅋ 역시 소윤이모라니깐!
-캐스터 짬 어디 안 가제 ㅋㅋㅋ
-정캐! 정캐! 정캐! 정캐!
-여기서 팩트를 때리시네 ㅋㅋㅋ
-진짜 어깨랑 갓플은 어딜 내놔도 안 꿀린다 이마리야
스크린 너머로 지켜보는 시청자들 중 동의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재미라는 개념은.
-이정도 퍼포먼스면 해외 송출 채널은 난리 났을 듯?
-킹직히 이거 보고 재미없으면 지구인이 아니지 ㅋㅋㅋㅋ
-이제는 국적이 아니라 행성 단위냐고 ㅋㅋㅋㅋ
-근데 맞말이긴 한 게 또 함정ㅋㅋㅋㅋ
-아 ㅋㅋ 궁금해서 보고온다
전 인류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요소였다.
sb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