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화 - 배운 대로만 (1)
트라이 북미 중계 채널.
채팅창은 놀란 얼굴 이모티콘과 웃는 털보 이모티콘으로 가득했다.
-WTF!? 이건 진짜 엄청나잖아!
-말 그대로 피부 위에 소름이 돋았어! 팬들이 이렇게 협동심이 강할 줄이야!
-Damn! 단체복을 맞춘 이유가 바로 이거지!
-lol,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북한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는데?
-Nah, 북한은 옷을 살 돈도 부족하다고
관중석에서 펼쳐진 동시 환복 퍼포먼스에 대한 감탄이었다.
-링컨의 말을 적절하게 바꿨잖아! XD
-응원문구를 GENOME? 저 사람이 만들었다고?
-Yup! 정말 재치 있네! ‘Purple’과 ‘People’로 운율까지 살렸잖아?
-Yeah, 진짜 좋은 펀치라인이었어!
더욱이 관중의 응원 문구도 북미 시청자들에게는 친숙했기에 퍼포먼스는 큰 호감을 샀다.
-처음에는 스타디움 접속 불가라고 해서 차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달라졌지!
-딜레이는 어느 게임에서나 큰 문제지
-그렇지! 해외 접속까지 허용했다면 이벤트를 망쳤을 거야!
-Well, 그것도 그렇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저 관중석에 섞여있었다면 끔찍했을 걸!
-What the… 상상만 해도 정말 어색하겠는데
-차라리 스크린 너머로 보는 게 편하지 =)
그렇게 퍼포먼스가 끝이라 생각한 순간이었다.
<팬들이 준비한 응원이 있습니다. 그것이 시작됩니다.>
지놈이 말함과 동시에 통역 담당자가 의미를 전달하자 채팅창에는 물음표가 번졌다.
여기서 뭘 더 한다는 걸까?
-Wow, 이건 엄청 인상적인데!?
-이렇게 많은 게임에 팬들이 있다고?
-WTF? 퍼플은 미믹크리만 창조한 게 아니었던 거야!?
-Holy Shit! 완벽의 기사가 이 사람이었어!? 리딧에서는 Purple이었는데?!
팬들이 제 소속감을 드러내는 소품을 드러내자 해외 격겜러들은 놀라움을 표했다.
그에 이미 이경복의 팬이었던 이들이 웃으며 채팅을 쳤다.
-lol, 한국식 줄임말에 익숙지 않으면 헷갈릴 수 있지.
-Right, 리딧에서도 ‘Perfectplay’와 ‘Purple’을 섞어서 쓰더라고
-Guys, 그는 바이오 크라이시스 히든 엔딩을 본 사람이기도 해!
-그게 다가 아니야! 퍼플은 RDR 스피드런 비공식 세계 1위라고!
-DMC에서 DLC로 판매 중인 보이스팩이 그의 것이라는 건 알고 있는 거야?
솟구치는 제보에 격겜러들도 웃음을 흘렸다.
-믿을 수가 없네! 대단한 줄은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I knew it! 어깨가 아무나 인정할 리가 없지!
-그는 ‘Perfectplay’라는 이름을 당당히 쓸 자격이 있어
그에 흡족해하던 와중 분위기가 일변했다.
<매우 놀랍습니다. 그는 방송을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났습니다?! 곧 4개월이 됩니다! 1년도 아니고 1분기입니다! 인기가 정말 대단합니다!>
이번에는 정소윤의 말 때문이었다. 담담히 통역하던 담당자도 놀랐는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What? What?! 3개월?!
-지금 통역에 문제가 생긴 거야?
-lol! 그럴 리가! ‘Year’와 ‘Quarter’의 발음은 전혀 다르잖아!
-제대로 통역한 게 맞아. 퍼플은 스트리머 업계에서는 신입이라고 봐도 좋지!
-Yup! 그게 바로 ‘Perfect-Newbie’라는 거지!
그에 채팅창의 분위기는 더욱 떠들썩해졌다.
-방송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매 순간이 놀라움의 연속이야
저마다 자신의 감상을 표하기에 바빴지만 공통적으로 느낀 바가 있었다.
-lol, 방송 보길 잘했네!
-이번 달에 최고의 선택이야!
바로 이 방송을 보기로 한 게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점이었다.
한편, 일본 중계 채널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에에-! 나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 너무 멋진 퍼포먼스잖아!
-한국 팬들! 최고잖아 이거!
-퍼플 씨의 웃음, 감동이 느껴져서 나도 즐거워진www
-뭐랄까. 퍼플 씨의 활동을 보답 받은 느낌? 나라면 참지 못하고 울어버렸을지도?
-어이어이, 트라이 재팬! 너무하잖아 이거! 왜 우리는 저기에 낄 수 없는 건데!
이경복은 북미 시청자들에 비해 일본 시청자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았다.
트위티를 통해 이슈가 된 건 물론이고 트리플과 얏타맨의 방송으로 친숙해진 덕분이었다. 이에 다들 이경복의 업적 또한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일본 중계 채널의 채팅창이 격동한 건 다른 이유였다.
-어이어이, 진짜냐고 이거!
-우아앗, 갑자기 시작해버렸다!
-만화냐? 애니메이션이냐! 이런 움직임 절대 무리잖아www
-에엣-? 스킬? 아니아니, 스킬이 아니잖아? 직접 이렇게 움직인다고? 에에에에-!?
그것은 바로 이경복과 어깨가 즉흥적으로 제안한 겨루기였다. 두 사람의 격돌에 채팅창은 충격에 빠졌다.
-스게! 너무 대단해서 눈이 뻑뻑해져버렸다www
-이자식들www 안구건조증을 유발하는www
-아아, 하지만 이거 도저히 눈을 감을 수가 없다고? 놓치면 절대로 후회할 수밖에 없잖아!
-에또, 트리플 씨… 질 수밖에 없었던 거네…
-한국에서는 초인 양성 감마선이라도 나오는 거냐고www
두 사람이 선보인 기량에 채팅창은 감탄 일색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겨루기가 끝나자 채팅창 분위기가 달라졌다.
-??????
-어째서? 어째서 여기서 멈추는 거냐아아앗!
-에? 진짜? 진짜 티저였다?
-우왓, 이거 심하잖아! 너무 심하다고! 완전 고문이잔하!
-뭐어, 다음 주까지 기다려야 하는 아니메보다는 낫다랄까요? 단련된 저로서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웃음)
-아아, ‘헌터X헌트리스’의 휴재도 버텨낸 나님이라고? 마지막까지 기다려주겠어!
-너희들www 만화랑 아니메로 기다리는 게 단련된 거냐고www
-역시 닌자가 괜히 일본에서 나온 게 아닌www
채팅창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들은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뭐어, 그래도 북미 채널 보다는 괜찮지 않아? 거기는 시차 때문에 더 기다리기 힘들 텐데?
-으아! 한국에 가까워서 다행이구만!
그나마 한국과 시간이 같으니 방송을 보기에는 일본 시청자들이 더 편했다.
* * *
정소윤과 해설진은 본 경기 진행을 준비했다. 그 시작에 앞서 정소윤이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첫 순서! 여성부 경기를 시작할 시간인데요. 그 전에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녀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의 끝에는 될까가 있었다.
“원래는 어깨 님이 해설까지 맡아주시고 될까 님은 부해설로 진행할 예정이셨거든요? 그런데 어깨 님이 아니라 될까 님이 계십니다?”
“아, 네. 이번에는 어깨 님이 제게 해설 전담을 맡기셨습니다.”
될까의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지놈이 끼어들었다.
“아, 그럴 만도 하죠. 어깨 님이 즉석에서 퍼플 님과 겨뤄보지 않았습니까? 해설까지 하면서 상대하기 만만치 않다고 느끼신 겁니다!”
“그것보다는 지놈 님 말씀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프레임 단위의 자세한 해석보다는 제가 하는, 보다 쉬운 해설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신 게 아니겠습니까.”
될까가 즉시 받아쳤다. 하지만 지놈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아, 지금 될까 님 말씀은 이런 건가요? 어깨 님은 제 말을 마음에 담아두시는, 하남자 같은 면이 있으시다?”
“예?”
될까가 황당해하자 채팅창에 웃음이 번졌다.
-아닠ㅋㅋ 이간질 소재가 마르질 않넼ㅋㅋㅋ
-이런 발상 자체가 추놈의 내면을 보여준다 이마리야
-ㄹㅇㅋㅋ 추놈 눈에는 추한 것만 보이는 거짘ㅋㅋㅋ
-진짜 속이 얼마나 꼬인 거냐구웃!
-유전자 레벨로 돌리는 남자 ㄷㄷ
이에 정소윤이 헛기침으로 주의를 끌며 중재했다.
“자자,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면 안 됩니다. 중요한 건 될까 님께서 좋은 해설을 해주신다는 거죠! 그러려면 선수들을 더 기다리게 할 수 없습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또 승부에 영향이 있을 수 있어요!”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전광판에 화면이 바뀌었다.
[선봉 - <규라니> VS <막타순이]
그에 모두 주의를 돌리자 정소윤이 활기차게 목소리를 높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양대 플랫폼 대표 매치! ‘세트로 붙자’의 첫 경기가 시작을 앞두고 있는데요. 바로 이 두 분, 규라니 님과 막타순이 님의 대결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어 화면이 양분되며 양 팀의 대기실을 비추었다. 각 대기실에는 선수들만이 아니라 대표, 어깨와 이경복까지 각기 자리하고 있었다.
“아, 어깨 님이 왜 해설을 안 맡으셨는지 이유가 나왔네요! 어깨 님과 퍼플 님 모두 본 경기에 앞서 팀원들 코칭을 준비하셨어요!”
“아, 이런 그림은 또 메탈펀치 대회에서는 흔치 않거든요?”
“그렇죠. 이전 대회에서는 참가자가 모두 어깨 님의 경쟁 상대였으니까요.”
지놈과 될까는 그에 동의했지만 이내 다시 편파 해설에 돌입했다.
“그런데 과연 어깨 님이 코칭을 잘하실지는 의문입니다. 눈높이 코칭이라는 게 꽤 어렵거든요?”
그 순서는 역시나 지놈이 먼저였다.
“물론 저희 퍼플 님은 이미 입증을 하셨으니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번 대회의 신예, 데시벨 님이 산 증인이자 증거거든요!”
될까는 그 말에 흠칫하며 눈을 굴렸다.
“지놈 님이 지금 눈높이 코칭이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눈높이 격차도 중요한 부분이 아니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그는 반격에 나섰다.
“저희 세렝게티 선수들은 기반 실력이 탄탄하거든요? 아는 게 많을수록 이해 역시 쉬운 법이거든요. 지금 지놈 님이 눈높이 코칭이 잘 됐다고 자랑하시는 건 그만큼 트라이 팀의 기반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두 해설의 격돌에 채팅창 역시 즉각 반응했다.
-왘ㅋㅋㅋ 될까가 이런 말을?
-쥐놈이랑 어울리다보니 점점 독해져버리깈ㅋㅋㅋㅋ
-너무 강하게 키우는 거 아니냐곸ㅋㅋㅋㅋ
-추놈이 될까를 타락시킨다앗!
-???: 마셔라 될스크림…!
-이래서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마리야
-덕분에 편파해설 맛이 진해져버리고?
-진짜 ㅋㅋ 눈치보던 될까 어디갔냐곸ㅋㅋㅋ
정소윤도 시청자들과 비슷한 심정이었다. 그녀는 커다래진 눈으로 될까를 보다가 이내 다급히 중심을 잡았다.
“자아, 코칭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요소죠! 중요한 건 바로 선수들, 선수들의 기량입니다! 이제 준비 시간이 모두 끝났거든요? 양 선수 캐릭터 선택의 시간입니다!”
그와 함께 전광판에 캐릭터 목록이 나타났다. 그런데 일반적인 선택창과 달리 양 팀의 캐릭터 슬롯은 ‘?’로 표기되어 있었다.
“자, 서로 어떤 캐릭터를 선택했는지는 전혀 모릅니다. 두 선수 모두 선택이 끝나면 동시 공개가 될 텐데요. 저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따로 있죠?”
“네, 그렇습니다! 바로 저희 팀이 확보한 밴픽 카드의 사용 유무죠.”
“지금 캐릭터 선택 창에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습니다. 밴픽 카드는 꺼내지 않은 것 같아요.”
두 해설의 말에 정소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윽고 캐릭터 선택이 종료되었다.
“아, 찬스 카드 없이 경기가 진행됩니다! 하지만 끝까지 카드가 안 나올지는 모를 일이거든요? 그럼 바로 두 선수의 선택을 확인해보겠습니다!”
“규라니 선수, 필립 파이어버드입니다! 아, 주캐릭터로 승부하네요!”
“막타순이 선수는 닥터 에이스!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캐릭터예요!”
양 쪽 모두 자신 있는 캐릭터를 선택했다. 해설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이 상황을 평가했다.
“이렇게 되면 다른 요소 개입은 없습니다. 순수한 실력 승부가 되는 거죠!”
“네, 맞습니다. 세트로 붙자의 역사적인 첫 경기거든요? 양 선수 모두 최고의 기량을 선보여주길 기대해보겠습니다!”
정소윤이 그에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대망의 첫 경기! 지금 시작됩니다!”
* * *
트라이 팀 대기실.
막타순이는 긴장을 풀려는 듯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언니, 원래 실력만 보여줘도 충분히 이기실 거예요!”
“평소대로 발라버려요. 한 몫 단단히 챙기셔야죠.”
데시벨과 하소연이 그녀에게 응원을 건넸다. 동생들의 말에 막타순이는 미소를 지었다.
“아유, 당연하지! 우리 신랑도 보고 있을 텐데 어떻게 질 수 있겠어?”
그녀는 장난스럽게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얘들아, 언니가 이것만 챙길 거 아니야. 중견 시합까지 확 따버릴 거거든? 언니가 먼저 결혼해서 좀 더 챙기는 거니까, 너무 원망하면 안 된다?”
이미 선봉 시합은 이겼다는 투에 다들 웃음을 흘렸다.
“막누 님이시면 충분히 잘 하시니까요.”
“아유, 퍼플 님까지 그렇게 말해주니까 마음이 아주 든든하네.”
이경복은 그에 웃다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음, 말씀을 드릴까 고민했던 건데. 여유가 되면 하나만 신경 써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하나요?”
그에 다들 눈이 돌아갔다. 이경복은 손을 들어 왼쪽을 가리켰다.
“시합 도중 횡이동으로 회피하실 때 왼쪽을 노려보세요. 이 정도는 막누 님 경험에도 상충되지 않을 겁니다.”
“어머? 원 포인트 레슨, 뭐 그런 거예요? 근데 왜 왼쪽이람?”
막타순이가 그에 놀라며 물었다. 이에 이경복이 답하려 입술을 달싹인 순간이었다.
눈앞이 번쩍이더니 풍경이 뒤바뀌었다.
“아이참, 타이밍이 이렇게 안 맞네.”
대기실에서 무대로 전송이 된 것이었다. 그녀의 모습은 어느새 닥터 에이스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맞은편에 있는 상대, 규라니를 보며 자세를 잡았다.
더불어 들려오는 친숙한 음성.
파이트 선언과 함께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스타디움을 메웠다.
양 선수 모두 즉시 거리를 좁혀왔다.
“시작됐습니다!”
“양 선수 가볍게 탐색전을 시작하네요!”
“아, 역시 황금단 선수들입니다! 짠손인데도 꽤 빨라요!”
동일한 등급인 만큼 실력도 엇비슷했다. 그렇게 서로의 틈을 노리기를 잠시.
“규라니 선수!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갑니다!”
“아, 하지만 안 되죠! 저희 막누 님 짬이 그렇게 적지 않거든요!?”
“가드 당했지만 좋은 시도예요! 이러면 이후로도 계속 의식할 수밖에 없거든요!?”
해설진 역시 팽팽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나 막타순이의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막는 건 쉽긴 하지만…’
안정적인 대응을 위해서라면 가드가 최선이었다. 그러나 흐름을 잡으려면 회피 후 반격을 이어가야 했다.
‘일단은 신중하게 가자.’
첫 라운드부터 무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전략적으로도 섣부른 시도는 금물이었다.
‘가드에 익숙해지게 만들어야 해.’
그녀는 몇 차례 규라니의 붕권을 막아내며 상대에게 패턴을 인식시켰다.
‘이번에는 반격이다.’
막타순이는 슬쩍 스텝을 밟으며 거리를 벌렸다. 규라니 쪽에서 다시금 스킬을 쓰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피하고…!’
규라니가 다가오며 팔을 뒤로 뺐다. 막타순이는 가드를 올리는 척하면서 횡이동을 준비했다.
평소라면 습관적으로 오른쪽으로 피했을 터였다.
‘왼쪽을 노려보세요.’
순간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이경복의 조언, 왜 왼쪽이었을까?
규라니는 오른손잡이다.
막타순이 입장에서 주먹이 날아오는 쪽은 왼쪽이었다. 그러니 회피가 용이한 쪽은 열려있는 오른쪽이었다.
그녀는 순간 갈등했지만 바로 판단을 내렸다.
‘이유가 있으시겠지!’
웬만하면 하던 대로 오른쪽으로 피했을 터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를 비롯해 모든 선수들이 대기실에서 오프닝을 봤다.
응원이 끝나고 이경복이 어깨와 겨루며 보여준 그 무위를 보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횡이동!”
“피했어요!”
“아, 이거는…!”
규라니의 주먹이 말 그대로 눈앞을 지나쳤다. 아슬아슬하게 측면을 잡은 막타순이는 눈을 번뜩였다.
‘이거구나!’
스킬은 공격 동작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내지른 팔과 다리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복귀 동작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틈이 생겼어.’
만약 그녀가 오른쪽으로 피했다면 규라니는 왼손으로 그녀를 견제할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허공을 때린 규라니의 오른손은 다시 접히고 있었고, 그 사이에 막타순이의 공격을 막아낼 방법은 없었다.
그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실력이 있었다.
“아! 막타순이 선수우우우우!”
“슈트어퍼! 들어갔어요! 공중에 뜹니다아아아아!”
“이건 치명적이에요!”
철컥하는 기계음과 함께 슈트의 팔꿈치가 열리며 푸른 추진체가 발산됐다.
그 기세 그대로 올라간 주먹은 규라니를 공중에 띄웠다.
해설진에서 흥분한 목소리가 터졌다.
“이러면 바로 공중 콤보 들어가게 됩니다!?”
“자! 막누 님의 시그니쳐 나옵니다아아아!”
지놈은 흥겹게 목소리를 높였고 될까는 그냥 입을 다물기를 택했다.
“관중 여러분 다같이이이이!”
지놈의 목소리와 함께 막타순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커맨드를 입력했다.
슈트 등이 열리며 나온 기계 팔이 떠오른 규라니를 향해 쇄도했다.
그리고 스타디움 가득히.
“징어징어! 징어여자아아아아!”
관중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녀에게 ‘징어여자’라는 별명을 만들어준 시그니쳐 무브, 오징어 다리 같은 기계 팔 연타가 적중했다.
“완전히 클린 히트예요! 규라니 선수 체력이 급격히 감소합니다! 아, 이거 큽니다! 정말 커요!”
“아직 모릅니다! 끝난 건 아니거든요!?”
될까의 말에 지놈은 놀리듯 답했다.
“아모른직다아아?! 될까 님만 모르는 거 아닙니까? 저희는 다 알겠는데요!”
-진짜 ㅋㅋㅋ우리 편인데도 꿀밤마렵네 ㅋㅋ
-아닠ㅋㅋㅋㅋ 될까 흑화시키지 말라곸ㅋㅋㅋ
-아 ㅋㅋ 근데 맞말인 걸 어쩌라구욧!
-징어 여자 떼창 뭔데ㅋㅋㅋㅋㅋ
-즉시 명장면 나와버리기 ㅋㅋㅋ
누가 봐도 막타순이 쪽이 승기를 잡았다는 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