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화 – 무과금 맞지? (2)
포격 튜토리얼이 끝나자 다시 컷신이 시작됐다.
“모처럼의 수료식이 엉망이 되어버렸군요.”
교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주인공이 팔을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도 퍼플 생도가 먼저 나서준 덕분에 빠른 대처가 가능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해군 사관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주인공의 담담한 대답에 교장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러나 그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다들 그런 마음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군요.”
교장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와 같이 돌아간 시선 끝에는 질겁한 다른 생도들의 모습이 보였다.
“바다에는 저런 괴수들이 더 있는 건가…?”
“책에서 보던 거랑 완전 다르잖아! 저런, 저런 걸 어떻게 상대하라고…”
“나는, 나는 잘 모르겠어. 대포도 제대로 못 쐈다고!”
전날 느껴졌던 흥분과 기대는 사라졌다. 시 서펀트의 등장에 생도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쫄보들 보소 ㅋㅋㅋㅋ
-근데 직접 보면 나도 저럴 것 같긴 함 ㅋㅋㅋ
-ㄹㅇㅋㅋ 바로 PTSD 생기지
-괴수 없는 현실에도 심해 공포증이 있는데 여긴? ㅋㅋㅋㅋㅋ
-정보) 인간은 원래 육지생물이다
몇몇 시청자들은 그 모습을 힐난했지만 대다수는 공감한다는 투였다.
그 사이 교장이 주인공 쪽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원한다면 더 머물러도 좋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예정대로 출항하겠습니다.”
주인공의 대답에 교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조선소로 가보세요. 거기서 원하는 함선을 주문하면 내어줄 겁니다. 비용은 학교 쪽에서 부담하기로 해뒀어요.”
“그냥 배를 주신다는 겁니까?”
주인공이 놀라자 교장이 깊이 숨을 들이켰다.
“보다시피 많은 생도들이 출항을 보류했습니다. 저희가 준비해둔 기금을 그대로 썩히는 것보다는 용기 있는 해군에게 투자하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주인공은 잠시 주저하다가 감사와 더불어 경례를 했다. 교장이 경례를 받자 화면이 서서히 암전됐다.
-군 관련 기금이 올바로 쓰인다고?
-군대에 비리가… 없어?
-힘들다고 생도들은 배려해?
-한국 개발이 아닌 건 확실한 거시고요?
-헉
-어허 그마내!
-이거 보니까 판타지 배경 맞네 ㅋㅋㅋ
-아닠ㅋㅋ 이거 숙제방송이라구욧!
다행히(?) 화면은 금방 전환됐다. 한편에 쌓인 목재와 작업 중인 용골, 그리고 일꾼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곳이었다.
“아, 조선소로 바로 넘어왔나 보네요.”
이경복의 예상대로였다.
주인공이 들어서자 조선소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장이 그를 반겼다.
“아, 교장선생이 얘기한 그 친구로구먼. 원하는 배로 하나 골라보게나.”
“감사합니다.”
간단히 대화를 마치자 눈앞에 목록이 나타났다.
[범선 등급 - ★ ~ ★★★]
[샤크테일]
[터틀락]
[돌핀웨이브]
선택 가능한 종류는 3가지였다.
그중에서도 1성만 활성화 된 듯 2성 이상 항목은 회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이경복은 빠르게 설명을 훑고는 요약했다.
“샤크테일 시리즈는 항해속도가 빨라서 백병전에 유리하네요. 터틀락은 방향회전이 빨라서 함포전에 좋을 것 같고, 돌핀웨이브는 화물칸이 많다는 걸 보니 무역선으로 보입니다.”
-돌핀은 일단 아웃!
-원래 샥테는 해적들이 쓰는 거긴 한데 갓플은 괜찮을 듯?
-ㄹㅇㅋㅋ 갓플이면 백병전도 무쌍 쌉가능이지!
-그래도 해상전하면 함포전임!
-진짜 ㅋㅋㅋ 터틀락 갑시다!
-혀엉! 어차피 1성이라서 큰 차이 없어! 암거나 골라도 됨!
시청자들은 곧바로 채팅창에 의견을 쏟아냈다. 이경복은 그 반응을 살피면서 눈을 굴렸다.
셋 중 하나를 고민하는 건 아니었다.
‘이상하네. 왜 2성에서 느낌이 오지?’
주어진 선택지는 최저등급인 1성급 범선뿐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선택 불가인 2성급 범선에서 기운이 느껴졌다.
확인해봐서 나쁠 게 없었다. 그가 2성 범선을 선택하자.
“어허, 그 배는 넘겨줄 수 없어.”
조선소 주인이 바로 손을 내저으며 반응했다.
“배를 만드는 데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는 줄 아나? 아무 선장에게나 배를 팔 수는 없지. 그에 걸맞은 선장이 되는 게 먼저라네. 조금 더 명성이 쌓은 뒤에 오게나.”
그 설명에 이경복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맞아요. 명성이라고 다른 게임에서는 레벨 제한 같은 개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ㅇㅇ 찐뉴비는 1성만 쓸 수 있음
-여기서 더 귀찮게 하면 시리즈 전통 명대사 들을 수 있음!
-???: 주제도 모르는 녀석은 썩 꺼져!
-아 ㅋㅋ 그 짤이 이 게임에서 나온 거임?
올라오는 채팅에 이경복은 웃음을 흘렸다.
“명대사가 있으면 또 안 들어볼 수가 없죠.”
느껴졌던 기운은 이것 때문이 아닐까. 그리 생각하고 다시 또 2성 ‘터틀락’을 택했을 때였다.
“음! 좋네. 자네 정도라면 이 배를 가질 자격이 있겠어.”
예상과 달리 조선소 주인이 흔쾌히 수락하자 이경복은 물론 시청자 머리 위에도 물음표가 떴다.
-????????
-뭐임? 버그임?
-아닠ㅋㅋ 진짜 해금 됐네?
-어뜨케 된 겨 어뜨케 된 겨!
-갓겜인증서 바로 나오고?
-엌ㅋㅋㅋ 숙제인데 버그발생ㅋㅋㅋ
대다수가 문제라 생각하는 와중 이경복은 이유를 유추했다.
“아, 이거 혹시 방어전 컨텐츠 보상에 명성도 포함되어 있나요?”
그 물음에 채팅 방향이 역행했다.
-오? 그건가?
-킹리적 갓심ㅋㅋㅋㅋ
-템 보상 지급 됐으니까 명성도 같이 오른 거 맞는 거 같은데?
-???: 대부분의 버그는 갓플입니다
-갓플이라 생긴 퍼펙트 버그였쥬?
-뭐예요? 왜 진짜 갓겜이에요!?
일반 시청자들은 방송사고가 아니었음에 안도했지만 게임을 해본 플레이어들은 부러움을 표했다.
-시서비늘에 이어서 2성 터틀락까지 공짜로 먹는다고!?
-야잌ㅋㅋㅋ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곸ㅋㅋ
-와씨 ㅋㅋ 2성까지 가려면 보통 3시간은 해야 돈 모이는데 ㅋㅋㅋ
-스노우볼이 여기까지 굴러오넼ㅋㅋㅋ
-퍼펙트 무과금 수듄ㅋㅋㅋㅋ
해금과 무관하게 튜토리얼은 진행 중이었다. 함선 구매 비용은 여전히 무료였다.
그것은 등급이 올라도 마찬가지였다.
“이야, 시작부터 2성 범선을 바로 지급해주는 혜자 게임이네요. 새로 시작하실 분들은 제 영상 보고 따라해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이경복이 웃으며 멘트를 치자 시청자들도 따라 웃었다.
-아닠ㅋ 맞말인긴 한뎈ㅋㅋㅋ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 튜토에서 1인 레이드 성공하면 되는데?
-혀엉? 지급 조건이 너무 빡센 거 아니야?!
-아 ㅋㅋ 내가 고걸 몰라서 1성으로 시작했네!
-여러분! 뱁새가 되는 것보다 커피 한 잔 안 먹고 과금하는 게 낫습니다!
-퍼이츠www 무과금 플레이인데 과금욕을 부추기는www
이경복은 시청자들 대답에 웃으며 구매 확정을 눌렀다.
“일단 함포전이 백미라고 하니까 2성 터틀락으로 시작해볼게요.”
구매를 마치자 조선소 주인이 흡족한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안목이 좋군 그래. 이제 선원과 물자만 준비해두면 언제든 출항할 수 있다네. 행운을 빌도록 하지.”
조선소 주인의 말이 끝나자 통제권이 돌아왔다. 이경복은 직접 이동이 가능한 걸 확인했다.
“아, 이걸로 기본 튜토리얼은 마무리 된 모양이네요. 그 외 다른 컨텐츠는 따로 가이드가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리 설명하며 이경복은 눈을 돌렸다. 시야 한 쪽에 위치한 미니맵을 터치해 확대시키자 항구 지도가 펼쳐졌다.
“일단 저희 매니저와 합류해서 진행을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그를 기다리고 있을 친구를 찾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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