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호는 먼저 모든 튜토리얼을 마치고 무역소에서 대기 중이었다.
‘직접 말할 걸 정리해보니 쉬운 일은 아니네.’
이경복은 편하게 하면 된다고 했지만 박주호의 성격과 ‘편하다’는 용어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아니, 제대로 준비를 해야 ‘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복잡하지 않고 간결하게, 방송의 재미는 녀석한테 맡기고…’
무역과 관련된 항목들은 그가 소개를 맡았다. 박주호는 다시금 방송에 나갈 멘트와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틈틈이 시간을 확인했다.
‘경복이 실력 정도면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게임에 접속 중에는 방송을 체크할 수가 없었다. 박주호가 시간을 헤아리는 와중이었다.
‘음…?’
뭔가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말소리는 구체적인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듯 발소리가 시끄러웠다.
‘누가 봐도 경복이네.’
이내 박주호는 헛웃음을 흘렸다. 마치 동화 속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이경복을 중심으로 많은 플레이어들이 뭉쳐서 다가오는 게 보였다.
“형님! 파이팅입니다!”
“퍼플 님, 자원 필요하신 거 없으세요!?”
신규와 기존 유저를 막론하고 그를 보기 위해 몰려온 모양이었다.
<아씨! 미니어쳐라서 개 답답하네>
<캡슐 버전 설치 왜케 오래 걸림?>
<다운로드 서버 트래픽 엄청 날 듯 ㅋㅋㅋㅋㅋ>
<혀엉! 나 금방 들어가! 기다려줘!>
직접 말을 하는 사람들은 소수였고 모바일 접속자들이 대부분이었는지 말풍선이 둥둥 떠다녔다.
이내 이경복은 박주호를 발견했는지 빠르게 다가왔다.
“오? 매니저님이신가 보다!”
“매니저 님 팬이에요!”
“아니, 매니저 님도 왜 핏이 좋아요?!”
“이게 그 유유상종인가.”
덩달아 팬들도 박주호를 둘러싸며 말을 쏟아냈다.
<엌ㅋㅋㅋ 퍼니졐ㅋㅋㅋ>
<퍼플 매니저라서 퍼니져신거?>
<매니저님 칼질 솜씨면 퍼니셔가 맞지 않나요?>
<매니저님 닉변 1회 무료로 가능해요!>
무수한 ‘ㅋㅋㅋㅋ’ 말풍선에 시야가 대부분 가려질 정도였다. 이경복은 난처한 미소로 양손을 들었다.
“자! 여러분 찾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몰려 계시면 이동부터가 힘들어요!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팬들이 우왕좌왕하자 박주호가 이경복의 어깨를 두드렸다.
“야야, 그렇게 안 해도 돼.”
“어? 그럼?”
“옵션에 보면 플레이어간 물리적용 항목 있다. 그거 해제해. 그럼 이렇게 된다.”
박주호가 시범을 보이듯 가까운 플레이어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양쪽 모두 몸이 반투명해지더니 투과가 되는 게 아닌가?
“오? 뭐야? 그런 기능도 있었어?”
이경복은 바로 그 조언을 따랐다. 덕분에 이동의 불편함이 사라졌다.
-즉시 커신모드 ㅋㅋㅋㅋ
-매니저님 바로 유능해버리기
-갓플의 반말, 이건 아주 귀하네요
-찐친행동 너무 좋은 거시고요?
-우리도! 우리한테도 반말해줘!
혹시라도 방문한 팬들 때문에 방송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내심 불편해하던 시청자들도 상황이 해결되자 흡족해했다.
“야, 일단 함대 초대부터.”
“아, 맞다. 여러분 다른 게임에서 파티 맺는 거 아시죠? 그런 기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함대를 만들면 친구들과도 같이 항해를 즐길 수 있으니 꼭 해보세요.”
이경복은 설명과 함께 박주호와 함대를 꾸렸다.
-숙제 멘트는 중대사항이짘ㅋㅋㅋ
-게임 설치 완료, 캐릭터 생성 완료, 이제 친구만 있으면 되겠다 ㅎㅎ
-???: 친구는 인터넷 친구가 있어요!
-앗…!
-함대 컨텐츠 난이도 너무 높은데요? 얼른 패치해주세요!
-친구 만들기 튜토리얼 언제 나옴?
채팅창이 떠들썩한 와중 이경복은 모인 팬들을 돌아봤다.
“여러분, 찾아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몰려다니면 방송 진행도 어렵고 다른 유저 분들에게 폐가 될 것 같아요. 그러니 저희들은 채널을 옮길 겁니다!”
에이지 오브 오션스는 통합 서버가 아니라 채널별로 접속이 구분되어 있었다. 만약 통합 서버로 운영하게 되면 수면 위에 바다보다 배가 더 많이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채널명 가리는 거 잊지 말고.”
“그거야 당연하지. 그럼 다들 반가웠습니다!”
이경복이 손을 흔들자 팬들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 조금만 더 있다 가지!”
“그래도 형 목소리 직접 들었으니까 됐다!
<퍼바 ㅠㅠㅠㅠㅠ>
<아! 이제 캡슐 설치 중인데!>
<흑흑 즐거웠다 오늘 만남은…>
채널 변경이 마치자 노이즈가 생기듯 시야가 흐릿해지더니 팬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로 깔끔해져버리기 ㅋㅋㅋ
-이건 갓플이 판단 잘 한 거 ㅋㅋㅋ
-킹직히 다른 퍼청자들도 배타고 오고 있었을 듯
-현명추
이경복은 채팅 반응을 확인하고 박주호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자, 그럼 다시 플레이를 이어나가 볼게요. 오늘은 특별히 매니저와 함께 진행을 하는데요. 이 친구가 진짜 머리가 좋습니다. 공부도 엄청 잘해요.”
“아니, 야. 그렇게까지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정도면 잘 하는 거지. 제가 특정될 수도 있어서 이름은 못 밝히는데 대학도 진짜 좋은 데 나왔어요.”
이경복의 소개에 박주호는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그 반응에 시청자들은 더욱 흥겨워했다.
-공부 잘하는 사람특) 자기 공부 못한다고 함
-ㄹㅇㅋㅋ 반응 보니까 찐우등생이셨네
-매니저님 아찔해하는 거 보소 ㅋㅋㅋㅋ
-이거 옥토퍼스 게임에서 본 장면 같은데?
-???: 퍼튜브의 자랑 명문대 퍼니져 아냐?
-???: 하 ㅅㅂ 퍼플이 형!
-찐친이라 형이 아니라 그냥 이새끼야 라고 할 듯
-엌ㅋㅋㅋㅋ 매니저님 흑화 플래그냐고 ㅋㅋㅋㅋ
박주호는 차마 채팅을 볼 수 없었다. 그에 이경복은 시청자 반응에 방긋 웃으며 다시 엄지를 세웠다.
“시청자분들이 너 칭찬해주신다.”
“거짓말 하지 마라.”
“진짠데.”
“내가 챗창 관리했던 거 까먹은 거 아니지?”
“아.”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에 채팅창은 더욱 웃음으로 가득해졌다.
-역시 퍼튜브의 자랑 ㅎㄷㄷ
-즉시 돌림 감지 ㅋㅋㅋㅋ
-다들 키보드에서 손 떼!
-퍼니져 클라스 ㅋㅋㅋㅋㅋ
-아 ㅋㅋ 이미 빅데이터 쌓여 있다곸ㅋㅋㅋ
-이정도면 퍼파고 아니냐?
-찐친무브 개웃기네 ㅋㅋㅋㅋㅋ
박주호는 이내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그는 이경복의 의도를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조금 전 대화는 비단 방송의 재미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
‘덕분에 긴장은 좀 풀렸네.’
직접 방송에 나온 만큼 알게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마음이 편해졌다.
“됐고, 일단 들어봐. 해적이든 해군이든 무역이 왜 필요한지 알려줄 테니까.”
“3줄 요약 되나?”
“출항 비용 충당.”
“오! 한 줄로 압축해버리네?”
곧바로 나온 대답에 이경복이 눈을 크게 떴다. 시청자들 역시 감탄을 표했다.
-1타 강사 포스 ㅎㄷㄷ
-바로 귀에 쏙쏙 들어와버리기 ㅋㅋㅋ
-상사의 요구 그 이상을 해낸다, 그게 퍼펙트 직원이잖아?
-3줄이 아니라 3단어 요약 ㅋㅋㅋㅋㅋㅋ
-대답속도 뭔데 ㅋㅋㅋㅋㅋ
-입력하자마자 출력을 한다, 그게 퍼파고잖아?
그 사이 두 사람은 무역소 안으로 들어섰다. 풍채가 좋은 무역소 주인이 너털웃음과 함께 두 사람을 맞이했다.
“오오, 어서들 오시구려! 무엇을 찾고 계시오?”
그의 환영인사와 함께 눈앞에 무역품 목록이 나타났다. 이경복은 빠르게 목록을 훑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어우, 뭐가 많네.”
무역품마다 가격과 재고 수량, 그리고 그 옆에는 화살표로 표기된 최근 시세 변동 상황 등 여러 정보가 표기되어 있었다.
“너한테 맡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ㅋㅋ 무슨 주식차트 보는 줄
-아 ㅋㅋ 이거 쉽네(잘 모름)
-싸게 사서 비싸게 팔면 되는 거잖슴!
-???: 바닥인줄 알고 들어갔다가 지하실 구경하게 될 겁니다
-이미 현실에서 구경중입니다만?
-선단공포증이 이 화살표 말하는 거 맞지?
시청자들이 그에 공감하는 사이 박주호가 간단히 설명을 시작했다.
“무역의 핵심은 결국 차익이다. 그리고 가장 쉬운 방법은 각 항구의 ‘특산품’을 매입해서 다른 항구에 파는 거지.”
“특산품? 아, 이건가? 별표 붙은 군용무기?”
무역품 중에는 별 표시가 붙어있는 상품들이 있었다.
-오? 그런 듯?
-사관학교가 있는 항구라서 그런갑다
-특산품을 먼저 산다… 메모…
박주호도 동의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군용무기’를 선택한 후 나타난 막대를 옆으로 밀었다.
“그렇지. 거기에 대량으로 구매하면 할인이 붙는다. 이게 기본이고 더 싸게 사려면 흥정을 해야 되지.”
“오? 따로 흥정도 있어?”
“모바일 인터페이스로는 캐릭터의 ‘화술’ 레벨에 따라서 확률이 정해진다. 캡슐용 플레이에서는 간단한 미니게임으로 진행이 되고.”
“미니게임?”
“이건 직접 보는 게 더 낫겠지.”
박주호의 말에 이경복은 ‘흥정’ 버튼을 선택했다. 그러자 시야가 2분할되며 사고자 했던 ‘군용무기’의 일러스트가 양쪽에 나타났다.
“아, 이거?”
이경복은 물론 시청자들도 미니게임의 정체를 바로 유추해낼 수 있었다.
-엌ㅋㅋㅋㅋ 틀린 그림 찾기네
-이게 흥정이랑 무슨 상관?
-그거네 ㅋㅋㅋ 광고랑 실제 제품이랑 비교하는 거
-아 ㅋㅋ 과대광고는 못 참지!
-무역소쉑 ㅋㅋ 부적 안 붙였네
-???: 위 사진은 연출된 이미지로 실물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진짜 그거 개빡치는데 ㅅㅂ
틀린 그림 찾기.
룰은 간단하지만 의외로 완벽히 클리어 하기는 어려운 게임이었다.
그러나 시청자들 중 누구도 걱정하는 이가 없었다.
플레이어가 다른 누구도 아닌 이경복이라면.
-눈 쓰는 게임이쥬? 딱 걸렸쥬?
-퍼펙트 아이 ON!
-할인 풀로 땡겨버리기~
-갓플 정도면 없던 흠도 찾아내서 깎아버릴 듯
-싹빠라다스!
-아! 블랙기업식 흥정! 너무 무섭다!
무역소로서는 최저가로 팔 수밖에 없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