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화 – 무과금 맞지? (5)
흔히들 맑은 바다를 에메랄드 바다라고 부르곤 한다. 이경복은 그 표현이 왜 나왔는지 실감했다.
“와, 진짜 아름답네요.”
높다란 해안절벽 아래 말 그대로 보석 같은 바다가 펼쳐졌다. 에메랄드를 액체로 만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범선 개조와 정비를 마치고 도착한 목적지, ‘크림슨 코스트’의 풍경이었다.
-때깔 미쳤네 진짜 ㅋㅋㅋㅋ
-와씨 ㅋㅋ 저기 절벽에서 다이빙하면 개쩔 듯
-백사장 조금만 만들어주면 휴양지로 딱인데
-확실히 해양이 주무대라 구현이 남다르긴 하네 ㅋㅋㅋ
-파도도 거의 없어서 수영하기 좋을덧 ㅋㅋㅋ
시청자들도 호평을 쏟아냈다. 하지만 한 사람만은 반응이 달랐다.
“이상하게 조용하다. 해도를 봐도 매복할 곳이 없어. 스토리 이벤트만 일어나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박주호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그 말에 채팅창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워커홀릭 퍼니져 ㅎㄷㄷ
-블랙에 절여져서 쉴 수가 없다 이마리야 ㅋㅋㅋㅋ
-퍼파고라서 분석 계속 해야 된다고 ㅋㅋㅋ
-혀엉?! 대체 얼마나 부려먹은 거야?! 좀 쉬게 해달라구웃!
-팩트) 방송에 나오는 것도 일이다
-ㄹㅇㅋㅋ 지금도 일하는 거라구욧!
이경복은 채팅을 보고 실소를 흘렸다.
“살펴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감지되는 위협은 아직 없었다. 박주호의 예상대로 스토리 진행을 위한 곳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범선이 해안선을 따라 더 나아가기를 잠시.
“아, 컷신이네요.”
갑판 위로 화면이 전환되며 통제권이 사라졌다.
“금역이니 뭐니 으름장을 놓더만 별거 없는데?”
“내 말이. 갑판장님은 ‘용기 있는 뱃사람만이 영광을 거머쥘 것이다!’라고 소리친 거 후회하실 것 같은데?”
화면 속에는 선원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두런두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괴물들이 나타난다는 건 헛소문 아냐? 해적 놈들이 일부러 소문을 만들어 낸 거지.”
“해적들이?”
“그래. 어쩌면 보물을 숨겨둔 거 아닐까? 괴물들이 나온다고 하면 다른 해적들도 쉽게 오지 못할 테니까.”
“오… 이 자식, 이거 똑똑한데?”
“그렇게 똑똑한 놈이면 안 보는 데서 농땡이를 피우지 않을까?”
불쑥 끼어든 제3의 목소리에 두 선원이 흠칫했다. 이내 돌아보자 갑판장이 그들에게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그대로 얼어버린 두 사람에게 갑판장이 낮게 그르렁거렸다.
“배 위에서 선장님 명령은 절대적이다. 명령이 뭐였지?”
“겨,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거기다가 선장님께서 친히 이유까지 설명해주시지 않았나?”
“절벽에 시야가 가려지니 기습을 조심하라고…”
“오, 똑똑하긴 하네.”
갑판장이 미소를 짓자 선원들도 어색하게나마 웃음을 흘렸다.
“그걸 아는 새끼들이 그래!?”
하지만 이내 기다렸다는 듯 호통이 돌아왔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안 그러면 네놈들을 괴물 미끼로 던져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선원들의 기강을 잡은 갑판장은 콧김을 뿜고는 선수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주인공이 있었다.
“선장님.”
조금 전과 다르게 갑판장은 공손한 태도로 주인공을 불렀다.
“소란스럽던데 무슨 일인가?”
“선원들 긴장이 풀어져서 교육을 좀 했습니다. 그런데…”
갑판장은 짧게 헛기침을 하며 더욱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희는 여기서 무엇을 해야 됩니까? 본부에서 토벌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만…”
주인공이 그에 다시 바다로 눈을 돌렸다.
“무엇이든 수상한 걸 찾으면 보고하도록.”
“수상하다고 하시면…”
갑판장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이었다.
“해, 해적! 우측에 해적선 발견!”
다급한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돛대 위에서 경계를 서던 선원의 보고였다.
-오? 해적이랑 싸우는 건가?
-???: 해적적님! 한 판 해요!
-다음 단서 가진 해적일 듯?
-이미 3성 해적까지 잡았습니다만?
-ㄹㅇㅋㅋ 개조까지 했는데 순삭이지
시청자들은 전투 대상을 예측하며 웃었다. 하지만 이내 분위기가 묘해졌다.
“난파선인가…?”
주인공이 망원경을 들자 시야가 바뀌었다. 동그란 렌즈 안에 담긴 배는 분명 해적선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선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뭐임? 왜 배만 덩그라니 있음?
-난파선이라기엔 배가 너무 멀쩡한 거신디요;;
-HOXY 유령선?
-여기 커신도 나옴?
-???: 유령령님! 한 판 해요!
-유령이라도 싸우는 거냐고 ㅋㅋ
-자고로 예부터 퇴마는 화력으로 했다 이마리야
-정보) 실제로 화포로 귀신들린 곳을 날려버리자는 기록이 성종실록에 실려 있다.
-무친ㅋㅋㅋ 진짜 쏨?
-왕이 ㄴㄴ 함ㅋㅋㅋㅋㅋㅋ
그 와중 상황이 일변했다.
망원경이 살짝 돌아가더니 배 뒤편에서 나온 작은 보트가 화면에 잡혔다.
“해적들이다. 전원 경계하도록.”
“예, 경계! 경계하라!”
주인공의 명령에 갑판장이 소리를 높였다. 그에 선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사이 끼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망원경 배율을 조정한 듯 보트가 클로즈업 됐다.
“…뭐지?”
해적들의 모습이 보이게 되자 상황은 더욱 묘해졌다. 그들은 구조를 요청하듯 손을 흔들고 있었다.
-쟤네들 왜 저럼?
-뭐임? 대체 뭐임?
-왜 저렇게 파닥거리는 곀ㅋㅋ
-산지직송이라 그런 거 아님?
-활어회냐고 ㅋㅋㅋㅋ
-실적이 알아서 들어왔다니깐?!
-블랙 해군 알아보고 항복하는 거네 ㅋㅋㅋㅋ
-아니면 거짓 항복하고 통수 치려는 건?
이경복의 판단은 달랐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보아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래도 상대는 해적이 아닌 것 같네.’
보트가 가까워짐에 따라 위협이 감지됐다. 그러나 그것은 해적들이 아니라 그 아래, 바닷속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살려…!”
목소리가 들릴 거리가 되자 해적이 소리를 높였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보트 주변에 물기둥이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해적들이 바다 밑으로 떨어졌다.
채팅창에 물음표가 올라오기도 잠시, 시청자들은 곧 왜 이 지역이 ‘크림슨 코스트’로 불리는지 알게 됐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해적들이 바닷속으로 끌려갔어…!”
“괴, 괴물이다…! 괴물이 나타난 거야!”
보트 아래에서부터 검붉게 번지는 핏물. 그와 함께 선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공은 곧바로 망원경을 내리고 몸을 돌렸다.
“전원 전투 준비!”
그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선원들은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다들 해적들의 보트 아래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딥원이다! 딥원들이 사냥에 나섰다!”
주인공은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그와 동시에 보트 주변에 흉측한 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피라냐와 사람은 합친 것 같았다.
“서, 선장님! 해적선에도 있습니다아아아!”
돛대 위 선원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그에 화면이 해적선으로 돌아갔다.
선실이 열리며 피투성이 괴인, 딥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와씨;;; 해적들이 없는 게 아니었네
-나올 새도 없이 습격당한 듯?
-ㅇㅇ 딥원들한테 기습당한 거 같음
-이미 다 먹혀버린 거였고?
-그래도 이정도면 킹만하네 ㅋㅋ
-ㄹㅇㅋㅋ 갓플은 올라오기 전에 처리하면 끝임
시청자들은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해적들과 달리 불의의 습격을 당한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러나 이경복은 달랐다.
‘큰 게 온다.’
딥원들과는 다른 수준의 위협이 감지됐다. 이윽고 그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해적선 주위로 검은 그림자가 넓어졌다.
이윽고 굉음과 함께 솟구친 물보라가 해적선을 박살냈다.
“저, 저게 뭐야!?”
“고래, 고래다! 심해고래다!”
쏟아지는 파편과 바닷물 사이로 그림자의 정체가 나타났다. 거대한 고래, 그러나 그 겉에는 짙은 녹색 이끼와 따개비가 뒤덮여 있었다.
-다시 봐도 스케일 장난 아니네 ㅋㅋㅋ
-정보) 딥원은 심해고래를 타고 해수면으로 올라온다
-와씨 딥원한테는 범선 같은 거네
-ㅁㅊ 저거 잡을 수 있는 거임?
-엄마가 돈까스 먹으러 가자고 할 때 따라가면 잡을 수 있음
-아니 ㅋㅋ 미쳤냐곸ㅋㅋ
웃는 시청자들과 달리 컷신 속 선원들은 패닉에 내몰렸다.
“이런, 이런 괴물들이 있으리라고는!”
“도, 도망쳐야 돼! 어서 도망쳐야…!”
“어서 노를! 노를 저어!”
갑판 위 선원들은 우왕좌왕했다. 이에 갑판장이 당황해 주인공을 돌아본 순간이었다.
“선장님?!”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황망해진 갑판장이 눈을 돌리다가 달려가는 주인공을 발견했다.
그는 대포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둔중한 울림과 함께 포탄이 발사됐다. 날아간 포탄이 심해고래에 적중하자 긴 울음이 퍼졌다.
일련의 상황에 선원들의 이목은 주인공에게 집중됐다.
“괴물이라 하더라도 피와 살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불과 무기를 들어라!”
그는 솔선수범하듯 검과 횃불을 들어보였다. 이에 갑판장이 재빠르게 복창했다.
“불과 무기를 들어라!”
그에 하나둘씩 선원들의 눈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도 주인공의 명령을 따라 소리쳤다.
“불과 무기를 들어라!”
“불과 무기를 들어라!”
불과 무기.
그 두 단어가 모두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스토리 전투의 시작이었다.
* * *
이경복은 컷신이 끝나자마자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아, 매니저는 자기 배로 가버렸네요.”
박주호는 컷신 전까지는 같이 있었지만 전투에 돌입하면서 이동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경복은 함대원 보이스 채널을 열었다.
“들리지?”
<잘 들린다.>
돌아온 대답에 이경복은 신기가 전달해준 정보를 통해 전황을 분석했다.
“지금 보니까 해적들이랑 싸우는 거랑 좀 다르네. 딥원이란 놈들은 직접 헤엄쳐서 오고 있어.”
<이쪽에서도 보인다. 분대 단위로 행동하는 모양이야. 직접 배에 올라오려는 거겠지.>
딥원들은 해양에 서식하는 괴물답게 직접 수영을 해도 무리가 없었다. 이대로 놔두면 배로 올라와 백병전을 치러야 할 터였다.
“일단 너는 선회하면서 고래만 노려. 터치 컨트롤로는 덩치 큰 고래가 더 맞추기 쉬울 거야.”
박주호에게 세심한 조준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회피가 용이한 딥원 보다는 심해고래를 노리는 편이 좋았다.
<알았다. 바로 가지.>
돌아온 대답과 함께 굉음이 울렸다. 3성 범선답게 많은 포문에서 포탄이 산탄총처럼 쏟아졌다.
-캬 ㅋㅋㅋ 화력보소
-이게 함포전이지 ㅋㅋㅋ
-3성 성능 확실하구만!
시청자들은 그 모습에 감탄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아주 짧았다.
<이건 좀 당황스럽네.>
심해고래도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마치 동굴처럼 벌어진 입에서 쏘아진 물대포가 날아오는 포탄세례를 휩쓸었다.
수압에 밀려 속력을 잃은 포탄들은 대다수가 힘없이 떨어졌다. 가까스로 힘이 남은 포탄이 심해고래에 부딪쳤지만.
“이끼랑 따개비가 장식이 아니었네요.”
포탄은 이끼에 미끄러지거나 따개비를 깨뜨리는 데 그쳤다.
-???????
-아니;;; 이러면 어떻게 깸?
-노골적인 과금유도 ㅋㅋㅋㅋ
-킹부러! 과금하게 할라고!
-여기서 지면 바로 범선 강화 패키지 팝업 나올듯ㅋㅋㅋㅋ
-아니 설마 이제 초반부인데 과금하라고 하겠냐고 ㅋㅋㅋ
-ㄴㄴ 공략법 있음
-절대 금수훈지해!
-일단 갓플 하는 거 보라구욧!
그 광경에 채팅창이 혼란해졌다. 게임을 해본 시청자들과는 달리 대다수 시청자들은 개발사가 갑자기 난이도를 높여 과금을 유도한다고 생각했다.
‘오해하시면 곤란하지.’
이경복은 그를 확인하고 곧바로 키를 잡았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공략법을 보여주는 게 더 설득력이 있을 터였다.
그의 범선이 움직이자 시청자들의 주의도 바로 돌아왔다. 대체 뭘 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와앀ㅋㅋ 드리프틐ㅋㅋㅋ
-받아라! 물싸다구!
-딥원쉑들 정신이 확 들쥬?
-진짜 기분 개 더러울듯ㅋㅋㅋㅋ
이어지는 결과에 다들 상황을 파악했다. 이경복이 급선회를 하며 일으킨 파도로 딥원들을 밀어냈다.
하지만 그것도 일시적인 방책에 불과했다. 딥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추격해왔다.
그렇게 몇 차례 공방이 이어진 결과.
<이거 계속 쏘는 게 맞나?>
심해고래는 건재했다. 아니, 오히려 그쪽은 더 상황이 악화됐다.
포격하는 박주호에게 주의가 끌렸는지 심해고래는 그를 노리고 물대포를 뿜어냈다.
다행히 범선이 속도에 특화된 3성 샤크테일이었고 거리도 충분히 유지했기에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포탄이 떨어지면 도망칠 수밖에 없어.>
-역시 퍼파고답게 분석이 빠르네 ㅋㅋㅋ
-바로 견적이 나왔다 이마리야
-그러네;;; 무한정 싸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아무리 갓플이라도 저 고래는 직접 잡기는 좀;;;
문제는 자원이었다.
바닷물 자체를 무기로 삼는 괴물들과 달리 범선에 실린 포탄 개수는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넉넉히 준비해왔다고 해도 교착상태가 길어지면 불리한 건 이경복과 박주호 쪽이었다.
그리 걱정하는 시청자들과 박주호에게 이경복은 간단히 답했다.
“괜찮아. 공략법 찾았다.”
<찾았다고?>
“겉이 아니라 속을 노려야 해. 고래가 입을 벌릴 때 포격해봐.”
시청자들은 그 설명에 안심했다.
-오ㅋㅋㅋ 그러네 이거면 될 듯
-혼자면 좀 빡센데 둘이라서 무난할 듯?
-한 사람이 물대포 유도하고 다른 사람이 맞추는 거네 ㅋㅋㅋ
-ㅇㅇ 원래 함대 구성해서 공략하는 곳임
-시간 좀 걸리긴 하는데 이게 정석임 ㅋㅋ
-갓플은 더 빠를지도?
-매니저님이 터치 컨이라 스겜은 안 될 걸?
-퍼니져님이 어그로 끄는게 좋긴 한데 갓플 배는 화력이 좀 딸려스
-아무튼 깨겠지 ㅋㅋㅋㅋ
시간이야 좀 들더라도 안정적으로 공략할 수 있지 않겠나.
이내 이경복이 박주호에게 지시를 내렸다.
“내가 신호하면 포격해.”
<알았다.>
그 간결한 대화에 시청자들은 이경복이 미끼 역할을 자처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행동에 채팅창은 물음표가 솟구쳤다
-혀엉?! 너무 가까운 거 아니야!?
-어그로 제대로 끄네 ㅋㅋㅋ
-ㅁㅊ 어그로가 아닌 거 같은데?
이경복은 미소를 띠며 채팅에 답했다.
“일단 입을 열게 하면 되는 거잖아요?”
그의 접근에 심해고래가 입을 벌렸다. 물대포가 바로 발사됐지만 이경복은 가뿐하게 드리프트로 사선에서 벗어났다.
이제 박주호에게 신호를 주는가 싶었는데.
“기다려!”
발사 신호가 아니라 대기 신호였다. 그에 시청자들도 이경복의 의도를 눈치챘다.
-아니 ㅋㅋㅋ 설마 이걸ㅋㅋㅋ
-가즈아아아아아앗!
-가랏 터틀락! 몸통 박치기!
-???: 터틀!터틀!
-범선이 왜 우는데 ㅋㅋㅋㅋㅋㅋ
이경복은 그대로 뱃머리를 돌려 심해고래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지금!”
충각이 따개비를 분쇄하며 타격했다. 관통까지는 되지 않았지만 고통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심해고래가 긴 비명을 내지르며 입을 벌렸다.
<수신 양호.>
박주호의 담담한 목소리와 함께 폭음이 터졌다. 흩뿌려진 포탄이 심해고래를 뒤덮었다.
그리고 그중에 몇몇은 이경복의 범선쪽으로 떨어졌지만.
-히트 앤 런 미쳤고?
-ㅅㅂ 회피기동 예술이네 ㅋㅋㅋ
-와 ㅋㅋㅋ 시서비늘 제대로 써먹었네
-진짜 그냥 충각이었으면 오히려 갓플 배가 부서졌을 듯
-시 서펀트랑 심해고래랑 어케 비빔?
-ㄹㅇㅋㅋ 레이드 몹이랑 덩치만 큰 일반몹이 비교가 되겠냐고
놀라운 내구도를 자랑하는 시 서펀트의 비늘로 개조한 충각인 만큼 거뜬했다.
“어? 바로 컷신으로 넘어가네요? 어느 정도 피해만 주는 게 조건이었나 봅니다.”
회피를 마친 이경복은 통제권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이내 전환된 화면 속 주인공은 심해고래를 검으로 겨누며 소리를 높였다.
“놓치지 마라! 더 속력을 높여라!”
심해고래가 긴 울음을 내밀며 도주를 택했다. 주인공은 괴물들이 바닷속으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해안가 쪽으로 유도했다.
“선장님, 괴물들이 동굴로 들어갑니다!”
“계속 쫓아갑니까?!”
심해고래는 어둑한 해안 동굴로 사라졌다. 선원들을 대표해 갑판장이 물었다.
주인공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끝을 봐야지.”
“알겠습니다. 전진! 그대로 전진하라!”
갑판장은 바로 그 명령을 수행했다.
이어 화면이 깜빡이며 어둑한 동굴 속이 비춰졌다. 횃불을 세운 범선이 어둠을 밝혀가며 천천히 나아갔다. 언제 괴물이 나올지 모르니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선장님, 저기…!”
“음.”
도중 갑판장이 놀라 앞을 가리켰다. 주인공은 짧은 침음과 함께 고개를 주억거렸다.
횃불에 드러난 전방에는 심해고래가 붉게 물든 수면 위로 둥둥 떠 있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죽은 것 같습니다.”
“살아남은 딥원들이 있을지 모르니 주의하라 전하게. 그리고…”
주인공이 명령을 전하는 와중 눈을 찌푸렸다. 이내 그는 선수 쪽 횃불을 바다로 던졌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갑판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이내 그 역시 주인공과 같이 다른 쪽 횃불을 바다로 던졌다.
“선장님, 저건?”
“동굴 벽 뒤에 뭔가 있는 모양이로군.”
심해고래의 사체 너머, 벽 뒤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내려서 탐사할 선원들을 선발해보게.”
“알겠습니다.”
이어 주인공은 몇몇 선원들과 배에서 내려 빛이 나오는 쪽을 살폈다.
-오?
-뭐야 이거?
-유물 같은 건가?
푸른빛은 벽면 뒤에 숨겨진 금속 장치에서 나오고 있었다. 녹이 슨 것으로 보아 꽤 오래 방치된 모양이었다.
“뭔가 세계관이랑 이질적이긴 하네요. 아틀란티스랑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경복도 그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시청자들 역시 그에 동의했다.
-ㄹㅇㅋㅋ 누가 봐도 아틀란티스 물건임
-아틀란티스가 외계인 같은 건가?
-아 손가락이 근질근질하구만!
-어허! 스포 검지검지!
-누물보니까 스토리 언급 ㄴㄴ
-ㄹㅇㅋㅋ 알고싶으면 플랜트위키 갔지
그 사이 주인공은 선원들에게 경계를 명령하고 주변을 살폈다.
“이건… 지도인가?”
아직 작동이 되는 듯 빛을 내는 장치 주변에는 웬 지도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상하게도 서로 다른 지도가 아니라 한 가지 종류의 지도였다.
“처음 보는 지도인데…”
주인공은 지도 하나를 들어 이리저리 돌려보다 뒤를 살폈다. 이내 그의 눈이 큼직해졌다.
뒤편에는 휘갈겨 쓴 글이 있었다.
“…아버지?”
클로즈업 된 건 바로 인장, 호레이쇼의 인장 문양이었다.
-오????
-여기 있었던 거?
-그럼 살아있었을 가능성이 높네
-편지 페이크 아닐 듯?
이경복은 물론 시청자들도 더욱 집중해서 컷신에 몰입했다.
주인공은 빠르게 지도를 들쳐봤다. 뒤편에는 서로 다른 글들이 적혀 있었다.
[어디서 정보가 새어 나간 거지? 아틀란티스의 단서를 찾았다는 소문에 바보 같이 속아버렸다. 부끄럽게도 나 혼자 살아남았다.]
그는 눈을 돌리며 순서를 맞춰보기 시작했다.
[임무를 속행하라는 계시인가? 추격을 피해 숨은 동굴에서 신비로운 장치를 찾았다. 이런 장치가 있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다. 분명 아틀란티스 인의 흔적일 것이다.]
“이게… 아틀란티스의?”
주인공은 황망한 눈으로 다음 장을 찾았다.
[놀라운 기술이다. 아니, 어쩌면 마법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이 장치가 아틀란티스의 실존을 증명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갇혀 있는 신세다. 그래도 본부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내가 죽은 뒤에 누군가 이걸 발견할지 모르니 기록을 남겨둔다.]
“아, 이걸 먼저 쓰고 앞부분을 따로 쓴 모양이네요.”
이경복은 가볍게 멘트를 치고 다시 집중했다.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보기로 했다. 바다로 병 편지를 띄워 보냈다. 해적들이 발견할지 모르니 구체적인 내용은 쓸 수 없었다. 부디 신께서 굽어 살피기를.]
[장치를 실험해보았다. 신비롭게도, 재료를 넣으면 물건을 만들어준다. 무작위로 만들어주는 건가 싶었지만 일종의 레시피가 있는 것 같다. 옷을 찢어서 넣으니 똑같은 지도가 계속 나왔다. 어쩌면 아틀란티스 위치일지도 모른다.]
[식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더 늦어지면 선택권이 사라진다. 탈출로를 찾아보자.]
순서를 정리하던 주인공의 손이 멈칫했다. 이내 떨리는 손과 함께 종이가 클로즈업 됐다.
[아직 포기할 수 없다. 아들의 수료식에는 참석해야 한다. 임무 때문에 같이 있어 주지 못한 시간이 많다.]
[아니, 그것은 핑계겠지. 내 아들이니까, 나처럼 강하니까 괜찮을 거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야 알 수 있다.]
[결국에 나도 유약한 인간에 불과하다. 죽음을 앞두니 후회할 일이 이리 많던가.]
[살아야 한다. 살아서, 아들을 다시 보자. 수료식에 몰래 찾아가면 기뻐하지 않을까.]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다. 그것은… 직접 만나서 전하도록 하자.]
마지막 기록 위로 툭하고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것이 눈물인지 동굴에 맺힌 물방울인지 알 수 없었다.
“아…”
-갓버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
-수료식이면 처음 그거?
-갑자기 훅 들어와버리네…
-이게 어떻게 모바일 겜 스토리?
-아무튼 살아계심! 그래야 됨!
이경복은 물론 시청자들도 탄식했다. 그 사이 주인공은 말없이 그 지도를 모두 차곡차곡 정리했다.
“갑판장.”
“옛!”
“이 장치를… 배로 옮겨주게.”
“알겠습니다!”
갑판장의 손짓에 선원들이 장치로 다가오며 화면이 전환됐다.
새로운 장소는 선장실이었다.
“아, 컷신은 거기서 끝이네요.”
“음…”
어느새 박주호도 도착해있었다. 그는 짧게 침음을 흘렸다.
이경복이 그를 바라보자 박주호는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아무래도 이 장치가 가챠를 담당하는 모양이다.”
“아, 그러네. 재료를 넣으면 물건이 나온다고 했지? 스토리 단서라고만 생각했네.”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가챠를 끼워 넣은 셈이지.”
스토리 진행에 따라 가챠, 뽑기 기능이 해금된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의 대화에 조금 전 컷신으로 침체됐던 분위기가 일변했다.
-옼ㅋㅋㅋ 가챠는 못 참지!
-우리형이 또 뽑기에는 일가견이 있다 이마리야
-드디어 만해의 갓플이 나설 때인가!
-???: 아~ 아 이런 데서 뽑을 생각 따위 없었는데 말이지!
-???: 잘 봐둬라! 그리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 너 말고 다른 놈들도 나한테 가챠를 부탁할 거 아니냐
-그 자세가 보인다 보여!
-아씨 ㅋㅋㅋ 잇가쿠 웃음벨ㅋㅋㅋ
모바일 게임에서 뽑기가 빠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