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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354화 (354/491)

354화 – 로스트 테크놀로지 (4)

인류멸종.

짧은 말이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상당했다. 이에 주인공은 물론 시청자들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휴머니티 언급 무엇?

-갑자기 스케일 커지는 거 보소 ㅋㅋㅋㅋ

-이쪽 세계관은 대체 어떻게 된 거냐구웃!

알폰소는 이내 주인공의 표정을 보고는 머리를 흔들었다.

“이런, 내가 너무 흥분했네. 후우… 이거 설명하려 하니 어디서 해야 할지 막막하구먼.”

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듯 하얀 턱수염을 매만졌다.

“아는 것부터 짚어보는 게 이해가 쉽겠지. 지금 바다에는 해적들이 들끓고 바다괴물들이 불어나고 있다는 건 알고 있겠지?”

“예, 물론입니다. 그 때문에 저희, 해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닙니까.”

주인공의 대답에 알폰소는 깊이 숨을 내쉬었다.

“그래,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상에 불과하네.”

“현상이라는 말씀은…”

“해적과 바다괴물은 무력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 하지만 보다 중요한 건, 이 현상의 원인일세.”

알폰소는 그리 말하며 벽에 걸린 거대한 해도로 눈을 돌렸다. 주인공의 시선 역시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갔다.

“바로 인간들이 발 디딜, 이 육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 말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인공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알폰소는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네. 해수면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어. 인구는 계속 증가하는데 살 수 있는 땅이 줄어드는 게지. 우리가 수확할 수 있는 자원들 역시 마찬가지고.”

알폰소는 해도에 있는 작은 점 하나를 짚었다.

“이게 무엇인지 아는가?”

“암초지대가 아닙니까?”

“그래, 지금은 그렇지. 하지만 자네가 아마 막 걸어 다닐 즈음일 거야. 그때는 이곳에 작은 어촌이 있었네.”

“어촌이요?”

주인공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해도와 알폰소를 번갈아보았다. 그러나 알폰소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불어난 바닷물에 어부들은 갈 곳을 잃었네. 이와 같은 곳이 한둘이 아니야. 그나마 내륙에 사는 이들은 상관없지만 변방에 있는 작은 마을들은 침몰되어 버렸지.”

“그럴 수가…”

“문제는 그다음이라네. 마을을 잃은 사람들은 난민 신세가 됐지. 하지만 내륙인들은 그들을 받아들일 여력이 없었어.”

알폰소는 회한을 숨기듯 눈을 감았다.

“터전을 잃은 이들은 흙 대신 배 위에 발을 올렸네. 그들이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나?”

“대장님, 설마…”

“바로 그 설마일세. 해적이 되는 거지.”

주인공의 표정은 물론 채팅창에도 충격이 퍼졌다.

-생계형 해적이었다 이마린가?

-그냥 어부 계속 하면 안 됨?

-원래 해적들도 있는데 되겠음?

-그르네 ㄷㄷ 해적들끼리도 싸우니까

알폰소는 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곧 엄중한 얼굴로 말했다.

“이런 상황이지만 해군은 해적의 당위성을 인정할 수 없네. 착한 해적과 나쁜 해적을 하나하나 구분할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 때문에 해군에게 해적은 오로지 ‘악’일 뿐이야.”

-요건 해군이 잘한 거지 ㅋㅋ

-원래부터 약탈하던 놈들은 어케 구분하냐구웃!

-ㄹㅇㅋㅋ 괜히 오히려 통수나 맞게 됨

-이거 해적하는 에붕이들도 있어서 나온 설정 삘

-하긴 ㅋㅋㅋ 해적이라고 다 나쁜 놈 취급하면 해적 플레이어들은 뭐가 되냐고 ㅋㅋㅋ

시청자들이 그의 설명에 동조하는 와중 알폰소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우리 인류에게는 아틀란티스의 기술이 절실한 것이지. 이 기술을 이용하면 인류는 해저까지 정복이 가능할 걸세.”

“해저를 정복한다…?”

“육지를 고집할 이유가 없어지면 해적이 늘어날 이유도 없네. 또한 바다괴물도 수월히 소탕할 수 있을 것이고!”

알폰소는 그리 설명하다 시계를 보고는 짧게 숨을 뱉었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그는 서랍을 열어 서류 하나를 꺼내더니 빠르게 펜을 놀렸다. 이어 그 위에 인장을 찍고는 주인공에게 내밀었다.

“대장님, 이건?”

“유적 탐사 허가증이라네. 우리 해군이 확보해둔 아틀란티스 유적이지. 내부에서는 ‘미싱 링크’라고 부른다네.”

“미싱 링크…”

“내 설명보다 그곳에 가서 직접 보는 게 더 이해가 빠를 테지.”

알폰소는 그리 말하며 책상 위에 놔둔 호레이쇼의 기록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 기록 뭉치도 주인공에게 같이 건넸다.

“호레이쇼가 남긴 이 지도도 어쩌면, 그 유적에서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네.”

그 말에 주인공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정중히 서류를 갈무리하고 알폰소에게 경례했다.

“임무, 속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알폰소의 대답과 함께 화면이 서서히 암전됐다.

이어 컷신이 끝나자 이경복과 박주호는 본부 건물 앞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 이렇게 스토리가 전개가 되네요.”

“다음 목적지는 유적지로군.”

“그렇지. 자, 그럼 기다릴 이유가 없죠?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이거 생각보다 컨텐츠가 많네 ㅋㅋㅋ

-ㄹㅇㅋㅋ 항해만 생각해서 지루할 줄 알았는디

-갓버지 찾으러 가즈아!

-???: 머뭇거릴 틈이 없다!

이경복의 속행 선언에 시청자들도 바로 호응했다.

* * *

이경복과 박주호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 여긴 일반 항구가 아니네?”

“NPC들 차림새를 보아하니 해군기지로 보이는군.”

그곳은 해군이 통제하는 해안기지였다. 배를 정박시키고 부두에 내리자 제복을 입은 남성이 다가왔다.

“실례하겠습니다. 허가증 없이는 더 안으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이게 말이 됨?”

퍼무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휘관을 노려보았다.

“아, 놀래라. 퍼무새는 잠시 놔두고 갈게요.”

-거기서 게말콘이?

-퍼무새 난입 타이밍 개 웃기넼ㅋㅋㅋㅋ

-컷신으로 진행 안 해서 그런듯ㅋㅋ

-씬스틸러 수준 ㅋㅋㅋㅋ

시청자들 반응에 이경복은 헛웃음을 흘리며 퍼무새를 소환 해제했다.

“크흠, 여기 있습니다.”

이경복은 인벤토리에서 받아둔 허가증을 건넸다. 남자는 빠르게 눈을 굴리더니 이내 경례했다.

“퍼플 님, 협조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곳 기지 지휘관입니다. 유적까지 안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지휘관은 이내 앞장서서 걸으며 두 사람에게 설명했다.

“아시겠지만 이곳은 극비지역입니다. 일반 선원들은 기지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유적에는 선장님들만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플레이어들만으로 공략해야 하는 컨텐츠인 모양이다.”

박주호의 말에 이경복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유적지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조 장치랑 비슷한 디자인이네요.”

은은한 푸른 빛을 내뿜는 금속 구조물이었다. 오래 방치된 것처럼 흙과 넝쿨로 뒤덮여 있었지만 입구는 미리 정리를 해둔 모양이었다.

그 입구 양 옆에는 무장한 해군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유적으로 진입하시려면 아틀란티스 크리스탈이 필요합니다.”

그 사이 지휘관이 푸른 수정을 건넸다.

-WA! 공짜 크리스탈!

-크리스탈 유료로 사는 거 아님?

-5252, 이렇게 퍼줘도 되는 거냐구웃!

-너네들 대머리 좋아하면 공짜된다!

-무슨 미친 소리얔ㅋㅋㅋㅋ

시청자들은 그 상황에 환호하는 사이 지휘관이 설명을 이었다.

“유적은 깊은 지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입구를 통과하시면 승강기가 있는데, 그걸 작동하시려면 이 크리스탈을 사용하셔야 합니다. 허가증을 가져오신 분들에게만 크리스탈을 배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크리스탈을 이경복에게 쥐여 주고 열중쉬어 자세로 말을 이었다.

“그러나 해군이 보유한 크리스탈도 한계가 있어 무한정 지급은 불가능합니다. 혹 다시 들어가고 싶으시다면 개별적으로 크리스탈을 지참해주셔야 합니다.”

지휘관은 이내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허나 들어가 보시면 여러 번 들어가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한 번만 들어가도 진이 다 빠질 정도니 말입니다. 유적은 바다와도 연결이 되어 있어 괴물들도 나오기 때문입니다.”

“전투도 있다는 뜻이네요.”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유적 내에 남아있는 귀중한 자원 혹은 전사자의 장비를 회수하실 수도 있습니다. 유적 내에서 발견한 물건의 소유권은 모두 위험을 감수한 탐색자에게 보장합니다.”

그의 설명에 다들 유적의 정체를 가늠할 수 있었다.

“아, 뭔가 했더니 유적이 일일 던전 같은 거네요.”

-ㄹㅇㅋㅋ 듣자마자 그거 생각남

-추가 입장하려면 유료재화 써야 되는 거 보면 빼박이지 ㅋㅋㅋ

-자원 수급은 못 참지!

-와 ㅋㅋ 가챠처럼 이것도 스토리랑 연계되도록 설계해놨네

-원래 캡슐용 겜을 모바일 게임으로 전환해서 그런듯ㅋㅋㅋ

-이게 더 게임에 몰입하긴 좋네 ㅋㅋㅋ

모바일 게임에 흔히 등장하는 컨텐츠였기에 다들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그 사이 지휘관이 설명을 마무리 지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부디 준비를 단단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지휘관이 경례와 함께 기지 쪽으로 돌아갔다. 이경복은 가볍게 손뼉을 쳐서 시청자들의 주의를 모았다.

“자, 일단은 스토리 진행을 위해서 최소 한 번은 클리어 해야 하는 것 같네요.”

“플레이어들만 들어가는 것 같은데 장비를 사오는 게 좋지 않을까?”

박주호가 옆에서 묻자 이경복은 눈을 굴렸다. 그러나 고민은 매우 짧았다.

“아니, 뭐 그냥 들어가도 되지 않나? 다시 돌아갔다 오려면 시간 잡아먹을 텐데.”

대수롭지 않은 투의 대답에 시청자들이 웃음을 피웠다.

-즉시 퍼자감 ON!

-아 ㅋㅋ 기본 장비로도 충분하다곸ㅋㅋㅋ

-갓플은 장비빨 없긴 해 ㅋㅋㅋ

-이 형 커틀러스랑 머스킷만 있지 않나?

-그나마 퍼니져님은 방탄갑 있으니까 괜찮을 듯 ㅋㅋㅋ

박주호도 더 권하지 않았다.

“그래, 네가 자신있다면 상관없지.”

“좋습니다. 그럼 바로 진입해보도록 할게요!”

두 사람은 바로 입구로 들어섰다. 널따란 승강기에 크리스탈을 끼울 수 있는 홈이 보였다.

이경복이 크리스탈을 끼우자 눈앞에 선택지가 나타났다.

[고층(Easy)]

[저층(Normal)]

[심층(Hard)]

유적의 난이도가 깊이에 따라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경복은 일말의 주저 없이 ‘심층’을 선택했다.

“아니, 잠깐…”

-?

-???: 뭐가 지나갔냐?

-WA! 끔찍이 소다 아시는 구나!?

-퍼청자 나이대의 상태가?

-아닠ㅋㅋ 최소한 고민이라도 좀 해달라구욬ㅋㅋㅋㅋ

그에 박주호와 시청자들이 황당해했지만 이경복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난이도가 높아야 보상이 좋잖아? 게다가 한 번 밖에 못 들어오니까 챙길 때 다 챙겨야지.”

“그거야 그렇긴 한데… 그래, 너는 이게 맞다.”

박주호는 더 말하지 않았다.

쿠우웅하는 둔중한 울림과 함께 승강기가 내려가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퍼니져님 빠른 수긍ㅋㅋㅋㅋ

-아 ㅋㅋ 이래야 멘탈 유지된다구욧!

-이게 바로 블랙 직원의 삶?

-기본 장비로 최고난이도를 클리어한다, 그게 상식이잖아?

-퍼니져님 고생길 ON!

-과연 퍼파고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매니저님의 생존 컨텐츠가 되어버리고?

-갓플이 알아서 챙겨주겠지 ㅋㅋㅋㅋ

-나만 아니면 돼에에에에!

보고 있는 시청자들로서는 그저 재미있을 따름이었다.

* * *

승강기가 내려가는 사이 유적 관련 가이드가 눈앞에 나타났다.

“음, 난이도 무관하게 방식은 통일이다. 통로에 총 10개의 문이 나타나는데 그중 5개까지 확인할 수 있고, 각각 이벤트가 발생한다네.”

박주호가 그에 간략히 요약해 주었다.

“5개까지?”

“어, 전부 다 열 필요는 없다. 도중에 멈추고 복귀하는 건 플레이어 자유지.”

“아, 그러면 매번 결과를 봐서 더 열지 말지 결정하면 되는 거네.”

시청자들 역시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파악이 끝났다.

-다시 들어오는 거 유료인데 뽕뽑고 가야지 ㅋㅋㅋ

-ㄹㅇㅋㅋ 무적권 5꽉해야됨!

-갓플의 운지컬이면 꿀빨기 쌉가능일 듯 ㅋㅋㅋ

-이것도 일종의 가챠다 이마리야

채팅창이 기대로 차오르는 와중 서서히 하강속도가 줄어들더니 승강기가 멈추었다.

이어 문이 열리며 어둑한 통로가 드러났다. 은은한 푸른빛이 광원이 되어주었지만 겨우 사물의 윤곽이 구분되는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이걸 라이트 삼아 가져가야 할 것 같은데.”

박주호는 차분히 승강기에 꽂혀있는 크리스탈을 가리켰다. 이경복은 그에 동의했다.

“어, 그건 네가 들고 다니면 되겠다.”

“앞장설 거면 네가 챙… 아, 괜찮겠네.”

박주호는 더 말하려다가 성큼 걸음을 내딛는 이경복을 바라보며 크리스탈을 챙겼다.

그 사이 이경복은 바로 첫 번째 문 앞에 섰다.

‘여긴 꽝이네.’

신기로 감지되는 느낌만으로 내부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작위 이벤트라지만 실시간으로 바뀌는 종류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경복은 바로 다음 문으로 이동하지 않았다. 그는 문에 바짝 몸을 붙이고 눈을 감았다.

박주호와 시청자들은 그가 뭘 하는 건가 싶었는데.

“안에 딥원들이 있는 것 같다.”

“…뭐?”

이어지는 그의 말에 물음표를 그릴 수밖에 없었다.

-뭐임? 어떻게 알아냄?

-문틈으로 보이나?

-아닠ㅋㅋㅋ 보이겠냐곸ㅋㅋㅋ

-퍼펙트 아이라면 킹능성 있을지도?

-어뜨케 된겨 어뜨케 된겨!

-뭔 힌트라도 있는 거?

시청자들의 재촉에 이경복이 설명을 덧붙였다.

“자세히 들어보시면 지느러미 움직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약간 집중해야 되는데 바닷물 냄새도 나고요.”

물론 그런다고 놀라움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시청자들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박주호가 덧붙였다.

“잠깐, 모바일 인터페이스로 보면 텍스트로 힌트가 나온다는데?”

“아, 힌트가 또 있어?”

이경복이 바로 모바일 인터페이스를 띄웠다.

[문 안 쪽에서 물 냄새가 난다. 어쩌면 바닷물이 새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시청자들도 같이 그 힌트를 확인하고는 웃음을 흘렸다.

-와씨 ㅋㅋ 찐 소름 돋음ㅋㅋㅋ

-아닠ㅋㅋㅋ 갓플 설명보다 허접하잖슴!

-시스템 위에 갓플이 있다, 그게 상식이잖아?

-아아, 이것은 바로 퍼펙트 센스라는 것이다

-시스템을 믿지마! 갓플을 믿어!

-소리까지 어떻게 들은 거냐고 ㅋㅋㅋㅋ

-오히려 어두워서 더 다른 감각이 살아난 듯ㅋㅋㅋㅋㅋ

박주호는 헛숨을 뱉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판단대로 해라. 나는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일단 이건 넘어가자.”

이경복은 재차 문을 확인하며 통로를 나아갔다. 그리고 이내 처음으로 문을 가리켰다.

“이건 열어봐도 좋을 것 같은데?”

박주호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의아해했다.

“잠깐, 여기 힌트는 아까 처음 방이랑 똑같은데?”

“어, 맞아. 딥원도 있어.”

이경복은 그리 대답하며 시청자들을 위해 힌트를 띄워주었다. 박주호의 말대로 같은 내용이었다.

-?????

-5252, 결국 피에 굶주려 버린 거냐구웃!

-이것이 새로운 패왕?

-이유 없는 폭력이 딥원을 덮친다!

-인간이 미아내ㅠㅠㅠㅠ

시청자들이 어리둥절해하자 이경복이 실소를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

“그게 아니라요. 야, 잠깐 크리스탈 줘봐.”

“아, 여기.”

이경복은 크리스탈을 받고 그 표면을 엄지로 눌러 문질렀다. 피부와 마찰되며 뽀드득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제 손으로 문지른 거라 약간 소리가 다르긴 한데, 안에서 비슷한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게 무슨 뜻인지 대다수는 바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유경험자들은 달랐다.

-크리스탈 수급 방이라고?

-무친ㅋㅋㅋ 그게 구분이 됨?

-정보) 유적에서는 희귀하게 크리스탈을 얻을 수 있는 방이 나온다

-와앀ㅋㅋ 진짜 운지컬이네 ㅋㅋㅋㅋㅋ

-피지컬로 운을 챙긴다 이마리야

크리스탈은 여러 곳에 쓰이는 만큼 개발사는 과금러와 무과금러의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수급처를 마련해두었다.

유적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크리스탈을 획득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갓플 말이 맞으면 여기서 딥원 좀 많이 나올 텐데?

-킹직히 이 형은 걱정 없는데 퍼니져님이 위험할 듯 ㅋㅋㅋㅋ

-아 ㅋㅋ 갓플이 혼자서 다 처리한다구욧!

-퍼파고 : 빅데이터를 참고해 런각을 잡았습니다

-ㄹㅇㅋㅋ 빠지는 게 오히려 도움될 듯

시청자들의 채팅에 이경복은 웃으며 크리스탈을 박주호에게 돌려주고 무기를 빼들었다.

“간다?”

“오케이.”

두 사람의 대화는 아주 간결했다. 박주호의 대답과 동시에 이경복은 문 옆에 달린 개폐 스위치를 눌렀다.

슉하고 공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딥원들이 튀어나왔다.

그 숫자는 총 5마리.

“가까이서 보니 디테일이 더 사네요.”

그러나 이미 대비하고 있던 만큼 두 사람 모두 당황하지 않았다. 이경복은 즉시 머스킷으로 한 마리를 처치하고 바로 커틀러스로 덤벼드는 둘을 베어냈다.

-즉시 컷!

-무친 반사속도 보소 ㅎㄷㄷ

-바로 끔살 ㅋㅋㅋㅋ

-매니저님은?

-2:1아님?

-살았나?

시청자들은 그 솜씨에 마냥 기뻐하지 않았다. 박주호 혼자서 과연 둘을 상대할 수 있을까.

그리 걱정하는 채팅에 이경복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다들 왜 그렇게 걱정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그는 흔들리는 크리스탈 빛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제가 친구를 놀리긴 해도 위험하게 놔두지는 않습니다.”

시청자들은 의아해하다가 이내 그 말뜻을 이해했다.

푸른 빛 가운데 그림자 하나가 쓰러졌다. 그 앞에 커틀러스를 들고 있는 박주호가 있었다.

-오?

-뭐야?

-퍼니져님 왜 잘 싸움?

-생각보다 재빠른 거시고요?

-이게 바로 블랙 기업 직원의 소양?

이경복만큼 빠르거나 정확한 솜씨는 아니었다. 그러나 박주호는 덤벼드는 딥원 앞에서도 차분히 공격을 막아내며 반격을 가했다.

“공부 좀 잘 한다고 몸이 둔하다는 거? 그거 다 편견입니다.”

이에 이경복은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는 듯 팔짱을 끼며 말했다.

-와 ㅋㅋㅋ 퍼니져님 운동도 좀 했나보네

-헐ㅋㅋ 어쩐지 핏이 좀 좋더라니!

-갓플이랑 친구 되려면 이 정도는 해야 되는 거신가!

-이게 바로 퍼펙트 프렌드?

-친구의 기준 너무 높다아아아앗!

박주호는 공부‘만’ 잘하는 친구가 아니었다.

“쟤도 한 때는 잘 놀았어요.”

공부‘도’ 잘하는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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