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화 – 로스트 테크놀로지 (9)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출항 준비를 서둘러!”
“놈들도 아직 멀리 못 갔을 거야!”
동료가 납치됐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그 가운데 굳은 얼굴로 눈을 돌렸다.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상황입니까?”
지시를 내리던 주민 대표는 주인공을 보며 잠시 어물쩍거렸다. 그 모습에 주인공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사정에 따라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건…! 알겠습니다. 상황이 급하니 간단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주민 대표는 그리 말하면서도 다른 주민들에게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원 아이드 잭은 인근 해역을 장악하고 있는 해적단의 두목입니다. 영역을 확장하면서 다른 해적들을 영입하거나 제거해왔죠.”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희 역시 놈이 노리는 목표였습니다. 해적단에 합류하거나 죽거나,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죠.”
주민 대표는 이내 세라자드 상회 깃발을 응시했다.
“하지만 저희는 처음부터 해적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저 새로 정착할 땅을 찾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해적기를 단 것도 다른 해적들의 목표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아 일종의 위장이었던 거네
-확실히 그냥 민간인 배로 보였으면 바로 목표 됐을 덧 ㅋㅋㅋ
-ㄹㅇㅋㅋ 오히려 어그로 제대로 끄는 거지
-그냥 털어먹어도 좋다는 인증이잖슴!
시청자들은 그 사정을 바로 이해했다. 그러나 주인공은 간단히 넘어가지 않았다.
“해적질은 하지 않았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상황이 악화됐다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죠. 그냥 그대로 죽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래도 다행히 세라자드 상회에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정착했다는 거로군요?”
“예. 정말 한때는 어떻게 되나 싶었는데… 비록 작은 섬이지만 발 디딜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주인공은 그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윽고 시간이 멈추며 색채가 사라졌다.
“언뜻 듣기에는 세라자드 상회의 선행으로 보이지만, 의도는 따로 있는 것 같군.”
주인공의 나레이션과 함께 화면이 클로즈업됐다.
“단순히 정착 지원이었다면 포탄과 무기까지 지원해줄 이유가 없지. 세라자드는 이들을 사설병력으로 활용하려던 게 분명해.”
나레이션에 맞추어 보급품 중 무기에 색이 돌아오며 강조됐다. 이내 다시 화면이 돌아가며 주민들의 해적선으로 돌아갔다.
“순수한 의도였다면 계속 해적으로 남겨둘 필요가 없겠지. 세라자드는 이들을 이용해 원 아이드 잭의 확장을 견제하려고 한 걸 거야. 놈들을 놔두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상회 쪽일 테니까.”
이내 화면이 줌아웃 되며 해적선에 무기를 싣는 주민들을 비추었다.
“이들이 원 아이드 잭에게 포섭되지 않는다고 해도 도움이 없었다면 해적이 됐을 테지. 해적단의 확장도 막고 잠재적인 위협도 제거한다. 상회로서는 일석이조로군. 세라자드가 비용을 감수할 만 하겠어.”
일련의 추론에 시청자들도 동감했다.
-이것이 사관학교 수석?
-옼ㅋㅋ 세라자드가 EEJ 한 거였네
-알고 보니 계산기 다 두드린 거였고?
-어쩐지 ㅋㅋ 자원봉사할 캐릭이 아닌데 ㅋㅋㅋ
-세눈나 알수록 무서운 사람이었네!
-이거는 착하다고 해야 되나 아니라고 해야 되나;;
이내 화면의 색이 돌아오며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주민 대표는 그리 말하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말씀을 드리니 오히려 더 생각이 정리되네요. 이미 상회로부터는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상회에 피해가 돌아가게 만들 수는 없죠. 이번 일은 스스로 해결하겠습니다.”
“흠…”
주인공의 침음과 함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1. ‘세라자드가 맡긴 일은 보급품 전달뿐이다. 내가 나설 필요는 없어.’]
[2. ‘만약 이들이 패배한다면 해적들이 더 날뛰겠지. 해군으로서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야.’]
선택지의 등장과 함께 시간이 정지됐다.
“아, 분기도 있네요?”
이경복의 말에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왔다.
-이건 무적권 닥후지 ㅋㅋㅋ
-2222222222
-아마 큰 분기는 아닐 것 같고 1번은 재정비해서 오는 거 아님?
-ㄹㅇㅋㅋ 그러니까 2번이지
-아 ㅋㅋ 5성 범선이 둘이나 있는데 뺄 이유가 없잖슴!
-이길 수 있는데 왜 런각을 잡겠냐고 ㅋㅋㅋ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2번 선택지를 연호했다. 이경복도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 물러날 이유가 없거든요? 2번 바로 가보겠습니다.”
선택을 마치자 주인공이 결심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러분이 해적이 되거나 목숨을 잃게 된다면 상회로서도 지원한 의미가 없습니다. 같이 문제를 해결해보죠.”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희로서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주민 대표는 그 결정에 감복한 듯 거듭 허리를 숙였다. 주인공은 이내 선원들을 돌아봤다.
“전원! 출항 준비!”
그의 외침과 함께 화면이 전환되며 장소가 뒤바뀌었다. 그 어떤 것도 없이 수평선이 펼쳐진 망망대해였다.
“저놈들이군.”
이내 주인공의 목소리와 함께 망원경 렌즈로 화면이 전환됐다. 멀리 해적선들이 보였고, 안대를 찬 해골이 그려진 깃발이 클로즈업 됐다.
-WA! 궁예해적단!
-왠지 모르게 슈퍼 해적들을 소집할 것만 같은데?
-???: 어머니…
-아닠ㅋ 안대만 차면 그 두 사람이냐곸ㅋㅋ
‘원 아이드’라는 별명에 걸맞은 표식이었다. 이내 망원경을 내린 주인공에게 갑판장이 다가왔다.
“선장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말인가?”
“그것이… 인질을 구출이 우선이라고 하셨습니다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갑판장은 눈치를 보면서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
“무사히 구출하려면 대포를 쓸 수 없습니다. 백병전만으로 해적들을 처리해야 할 텐데, 그러면 우리 선원들 피해도 상당할 겁니다.”
그 말에 시청자들도 상황을 파악했다.
-아 맞네! 이거 그냥 싸우는 게 아니지?
-생각해보니 인질들이 죽으면 의미가 없잖슴?
-반대로 저짝에서는 마음대로 포격할 수 있는 거 아님?
-무친ㅋㅋㅋ 생각해보니 핸디캡이 있는 전투였고?
-선택지가 있는 이유가 있었네;;
단순히 해적들을 궤멸시키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그들이 잡아간 주민들을 구출해내야 했다.
“너무 걱정은 말게. 상대는 원 아이드 잭이 아니라 그 오른팔 격인 ‘투 아이드 번스’라는 놈이라더군.”
“…투 아이드요? 두 눈이 멀쩡하다는 겁니까? 그건 그냥 정상이잖아요?”
갑판장이 어리둥절해하자 주인공도 헛웃음을 흘렸다.
“그만큼 내세울 게 없는 놈이라는 거겠지.”
-ㅁㅊ 투 아이드는 뭔데 ㅋㅋㅋ
-별명 지을게 없었던 거냐고 ㅋㅋㅋㅋ
-핸디캡 달린 대신에 평범한 해적선장으로 밸런스 맞췄나 봄 ㅋㅋㅋ
-차라리 그냥 번스라고하지 ㅅㅂㅋㅋㅋ
그 사이 컷신이 끝나고 통제권이 돌아왔다. 전투 돌입과 동시에 이경복은 상황을 파악했다.
“저랑 매니저 배가 한 척씩, 그리고 NPC 범선은 셋이네요. 상대도 다섯인 걸 보니까 5:5 승부인 것 같습니다.”
-이러면 그냥 이겼네 ㅋㅋㅋ
-저짝은 다 3성임 ㅋㅋㅋ
-카누님 때처럼 따로 강화되는 조건 없는 듯?
-킹직히 개발진도 이 시점에 5성 갖고 올 줄 몰랐을 듯 ㅋㅋㅋ
-NPC도 3성이라서 호로록하것넼ㅋㅋㅋ
-ㄹㅇㅋㅋ 백병전 핸디캡 있어도 이기는 건 확정임
-갓플 컨트롤이면 무적권이짘ㅋ
시청자들도 이내 상황을 보고 안도했다. 수적으로 밀리지도 않고 범선 성능은 아군 쪽이 더 뛰어났다.
이경복은 그에 웃으며 보이스 채널을 열었다.
“야, 성급 차이는 충분하니까 백병전만 해도 되겠어. NPC들이 버티는 동안이면 시간도 충분할 거고.”
<백병전으로만 승부, 수신완료.>
“나는 번스를 바로 노리러 갈 테니까 적당히 하나 잡아줘.”
<알겠다. 가까운 해적선을 처리하지.>
두 사람의 대화에 시청자들은 절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갓플은 이게 맞지 ㅋㅋㅋ
-머리부터 쳐내면 쉽다 이마리야
-아 ㅋㅋ 어디 토네이도 없냐
-야앀ㅋㅋ 무슨 토네이도가 속도 부스트냐고 ㅋㅋ
그리 웃던 시청자들은 이내 물음표를 쳤다.
이경복이 직접 키를 돌리지 않고 모바일 인터페이스로 항로를 설정하지 않나?
이경복은 그에 입을 열었다.
“인질이 있으니 이번에는 좀 다르게 접근을 해볼게요.”
핸디캡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도 달라져야 했다.
* * *
해적단의 기함.
지휘를 맡은 번스는 추격해오는 함대를 보고 비웃음을 흘렸다.
“대포도 못 쏘는 것들이 무슨 해적이라고!”
인질을 데리고 있으니 저들은 포격을 가하지 못했다. 반면 자신의 부하들은 마음 놓고 포문을 열었다.
“캡틴, 역시 세라자드 상회가 뒤를 봐주고 있었습니다.”
“그래, 너무 심하게 하지 마라!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포로로 붙잡아 버리자고! 상회 놈들의 몸값도 상당할 테지!”
구태여 침몰시킬 필요는 없었다. 견제사격으로 거리를 유지하며 본거지 근처까지만 끌고 가면 역으로 상대를 나포할 기회가 생길 터였다.
“아이아이, 캡틴!”
“도착하면 이번에 잡은 놈들은 제대로 교육 시켜야겠습니다!”
해적들의 우렁찬 답과 갑판장이 낄낄거리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에 번스의 입가에는 더욱 짙은 미소가 걸렸다.
너무나도 유리한 상황이었기에 해적들은 안심하고 견제에만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그 상황은 이내 일변했다.
“캐, 캡틴! 하나가 이쪽으로 돌진해옵니다!”
다른 범선과 비교해 커다란 범선 하나가 기함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남다른 속도에 해적들이 당황해 보고했다.
“상회 놈이잖아?”
“배 크기만 믿고 까부는 건가!? 바닷물 맛 좀 보여줘라!”
번스는 바로 명령을 내렸다. 포문이 일제히 돌아가며 집중 포격을 감행했다.
굉음과 함께 쏟아지는 포탄에 번스는 코웃음을 쳤다. 이대로 범선이 치즈처럼 구멍이 뚫리리라.
그러나 상황은 기대와 달랐다.
“캡틴!? 포, 포탄이 튕겨나갔습니다!”
보고가 없어도 알 수 있었다.
제 별명답게 번스는 두 눈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충각을 파쇄하고 선수에 포도송이처럼 포탄이 차곡차곡 박혀야 옳았지만.
“아니, 어떻게…!?”
놀랍게도 저 범선의 충각은 모든 포탄을 튕겨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충각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는 듯 보였다.
해적들은 저 충각이 시 서펀트의 비늘로 만들어졌으리라 생각지도 못했다.
“충돌! 충돌에 대비해라!”
범선의 속도는 줄지 않았다. 번스는 와락 얼굴을 구기며 소리를 높였다.
“백병전이다! 미리 인질을 데려… 와아아아악!”
명령과 더불어 충돌과 함께 선체가 휘청거렸다. 일부 해적들이 바다로 튕겨나갔지만 그들은 곧장 백병전을 준비했다.
“사격 개시!”
하지만 해적들보다 선원들이 더 빨랐다. 갑판장의 지시에 선원들이 아래로 총을 겨누었다.
5성 범선의 크기가 더 큰 만큼 선원들이 고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해적들은 급히 엄폐하는 사이 갈고리 밧줄이 던져지며 두 배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러나 선원들은 쉽사리 해적선에 오를 수 없었다.
“이 빌어먹을 놈들아! 올라올 테면 올라와 봐! 올라오는 머릿수만큼 이 자식들도 죽을 거다!”
번스가 고래고래 목청을 높였다. 그 옆에는 해적 하나가 인질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었다.
“죽어도 다 같이 죽는 거다!”
갑판장이 그에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사격 중지! 대기해라! 선장님께서 인질 구출이 우선이라 명하셨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번스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좋아! 그대로 총을 이쪽으로 던…”
승기를 잡았다는 생각에 다시 목소리를 높이려는 순간이었다.
탕하는 총성과 함께 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번스는 눈이 휘둥그레져 고개를 돌렸다.
“읍! 읍읍!”
인질이 놀라 뒷걸음쳤다. 그 아래에는 조금 전까지 인질을 붙잡고 있던 부하가 쓰러져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싶은 순간이었다.
“우아아아아아아!”
위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함께 해적 하나가 갑판 위에 떨어졌다. 돛대에서 정찰을 맡은 해적이었다.
이에 모든 해적들과 번스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이게 무슨…!?”
길게 늘어진 밧줄을 타고 누군가 추락하듯 강하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이경복이었다.
이경복은 환하게 미소 지으며 소리를 높였다.
“인질은 무사하다! 배에 올라라!”
“사격 개시!”
갑판장이 기다렸다는 듯 전투를 재개했다.
-무친ㅋㅋㅋ 이게 진짜 되네
-와씨 ㅋㅋ 갑자기 돛대로 왜 올라가나 했더니 ㅋㅋㅋㅋ
-터치로 조종한 게 이거 때문이었쥬?
-공중 침투 무냐구웃!
-무슨 태양의 서커스 보는 줄 ㅋㅋㅋ
이경복은 함선의 크기 차이를 고려해 미리 돛대에 올라가 있었다. 모바일 인터페이스로 항로를 설정하고 백병전이 벌어진 순간 상대 돛대로 넘어갔다.
번스는 황망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밧줄을 타고 선원들이 넘어왔고 난투가 벌어졌다.
“인질의 목숨을…”
그는 재차 인질을 잡아 전황을 뒤집으려 했지만 캉하는 쇳소리와 함께 그가 뻗은 칼날이 튕겨나갔다.
번스와 인질 사이에 이경복이 정확히 착지한 덕분이었다.
“햐, 진짜 특징 없게 생기긴 했네요.”
-바로 멘탈 공격 뭔데 ㅋㅋㅋㅋ
-근데 진짜 지나가는 행인1 같긴 함ㅋㅋㅋㅋ
-킹직히 이름이 붙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아닐까?
-하다못해 흉터라도 좀 긋지 그랬어ㅋㅋㅋ
이경복의 한 마디에 시청자들도 웃음을 흘렸다. 번스가 격분한 듯 무어라 목소리를 내려는 순간 검광이 번뜩였다.
“대사도 뻔하겠죠?”
말 그대로 단칼이었다.
“생략할게요.”
번스가 유언 하나 남기지 못하고 죽자 해적들의 사기는 급락했다.
이어지는 선원들의 지원사격에 해적들은 금방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그리 상황이 정리된 와중이었다.
<교전 시작한다.>
보이스 채널로 박주호의 보고가 들어왔다.
-속도 차이 무엇?
-넘모 스겜이었던 거시고요?
-퍼니져님은 터치로 싸우는 거라 이해해줘야지 ㅋㅋㅋㅋ
-킹직히 고공 침투 아니었으면 시간 좀 더 걸리긴 했을 듯 ㅋㅋ
-갓플이 또 숏컷을 찾아버렸다 이마리야
-킹반인들이 하면 그냥 떨어져서 실패할 듯 ㅋㅋㅋ
-???: 아무튼 빨랐죠?
-성공이든 실패든 숏컷이긴 하넼ㅋㅋㅋㅋ
이경복은 그에 웃음을 흘리며 박주호에게 회신했다.
“어, 여기 정리하고 합류할게.”
* * *
전투는 완승이었다.
인질이라는 우위조건이 사라지자 전황은 급격히 기울었다.
“선장님, 놈들이 도망칩니다!”
해적선 3척이 제압되자 화면은 컷신으로 전환됐다. 갑판장의 외침에 주인공은 잠시 고민했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은 인질의 무사 귀환이 우선이다.”
이윽고 주민들의 범선이 옆에 도착하자 인질들이 빠르게 넘어갔다.
“무사했구나!”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다시 못 볼 줄 알았어…!”
다시 상봉한 주민들은 안도하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이내 주민 대표가 갑판에 올라 주인공에게 다가왔다.
“세라자드 상회에 또 한 번 큰 빚을 졌습니다. 평생을 거쳐 이 은혜에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주인공은 그에 답하려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세라자드에게 빚을 남겨두는 것도 나쁠 게 없겠지. 그녀에게 들어야 할 것도 있고.”
컷신이 끝나며 나온 나레이션에 시청자들도 동의했다.
-ㅇㅇ 여기서 굳이 해군인 걸 밝힐 필요는 없긴 해
-여기 사람들 잡아갈 것도 아닌데 ㅋㅋㅋ
-ㄹㅇㅋㅋ 그냥 갑분싸 되고 말 듯
-근데 뭘 들어야 되는 거?
-아직 쥔공한테 왜 이 일을 맡겼는지 모르잖슴 ㅋㅋㅋ
-약점 잡는가 싶었는데 들어보면 그것도 아닌 듯?
-돌아가면 알게 되겄제 ㅋㅋㅋ
세라자드가 주인공에게 이 일을 맡긴 의도를 아직 알 수 없었다. 그에 시청자들이 채팅을 치는 사이 이경복은 눈을 굴렸다.
“왜 그래?”
박주호는 상회로 돌아가는 항로를 설정하다가 물었다.
“꼭 바로 돌아가야 되나 싶어서.”
“그럼?”
이경복의 말에 박주호는 물론 시청자들도 주의를 돌렸다. 마저 스토리를 진행하려면 돌아갈 길 외에 없지 않나?
이경복은 고개를 돌렸다. 수평선 위에 작게나마 도망가는 해적 잔당들이 눈에 보였다.
“지금 쫓아가면 해적 본거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바로 본거지로 쳐들어가자?”
“어차피 처리해야 할 놈 같은데, 굳이 왔다 갔다 할 필요 없잖아?”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복귀 쪽보다는 추격 쪽이 더 강했다. 이에 세라자드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더라도 해적들을 처리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흠, 그럴 수도 있긴 하겠군.”
“그럼 일단 따라가 보자.”
이경복이 웃으며 키를 돌렸다.
시청자들은 그 결정에 놀라면서도 웃음 지었다.
-둘이서 해적단 전체를 쓸어버리겠다?
-킹부러! 또 어렵게 할라고!
-여기서 다 처리하고 가면 세라자드가 더 빚지는 거 아님?
-오 ㅋㅋㅋㅋ 그런 식으로도 반영이 되려나?
-시스템 유지 되는 거 보면 킹능성 있을지도?
-토벌기록 남으니까 될 것 같기도 함 ㅋㅋㅋㅋ
-사실 전리품 호로록하려는 거 아니냐곸ㅋ
-맞네 ㅋㅋㅋ 세라자드랑 안 나눠 먹을라고 ㅋㅋㅋㅋ
-즉.시.독.식
-늦든 빠르든 블랙해군을 건드린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니깐!
불필요한 건 덜어내고 재미있는 부분을 보여준다.
군더더기가 없는 점도 시청자들이 그의 방송을 좋아하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