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화 - 세컨드 미싱링크 (4)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보통 날지 못하는 것은 추락할 일도 없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지금 추락하는 두 사람, 이경복과 박주호에게는 날개가 없었다.
그런데 추락을 대하는 두 사람의 자세가 서로 달랐다.
-아니 ㅋㅋㅋ 저기서 또 속도를 높이려곸ㅋㅋㅋ
-수직낙하 무냐구웃!
-퍼파고는 어떻게든 천천히 가려고 몸 펼쳤는데 ㅋㅋㅋㅋ
이경복은 거너그라운드를 할 때처럼 속도를 높이기 위해 수직으로 강하했지만, 박주호는 정석적인 스카이 다이빙 자세를 취했다.
-이거 사실 갓플이 퍼파고를 낙하산처럼 쓰려는 거 아님?
-인간낙하산 뭔데 ㅋㅋㅋㅋㅋ
-이게 그 낙하산 인사인가 그거냐?
-찐친 회사에 데려온 거니까 낙하산이 맞긴해 ㅋㅋㅋㅋ
-여러분 블랙기업에서 일하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그 상반된 모습에 시청자들이 웃는 와중이었다. 펑하며 공기 터지는 속도에 분위기가 일변했다.
-ㅅㅂ 뭐야!?
-무친? 그냥 뚫려있는 게 아니었네?
-방금 전에 어디 부딪칠뻔함 ㅎㄷㄷ
-장애물도 있다고?
-어떻게 피한 건데 ㅋㅋㅋㅋㅋ
-반응속도 ㅁㅊㄷㅁㅊㅇ
-어두운데 저게 보이나?
늦은 밤에다가 깊이까지 까마득했다. 그 가운데 유일한 광원은 추진 장치에 붙어있는 크리스탈 뿐이었다.
이에 시야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건만, 장애물과 충돌 직전 이경복이 추진 장치를 가동시켜 순식간에 방향을 틀었다.
그 상황에 긴장한 건 시청자들만이 아니었다.
“달콤한 그 맛도, 쓴맛이 있으니까 좋은 거야, bittersweet love…!”
이경복의 회피기동에 따라 같이 묶인 박주호도 휘청거렸다. 바로 옆을 지나치는 장애물에 그의 노랫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WA! 공중노래방!
-뭔ㅋㅋㅋ 코인노래방이냐곸ㅋㅋ
-퍼파고의 공중 콘서트는 못참짘ㅋㅋㅋㅋ
-무친ㅋㅋㅋ 지금 흔들리는 게 춤추는 거임?
-(로봇콘)(로봇콘)(로봇콘)
-사랑해요! 퍼니져! 입력출력! 퍼파고!
-(형광콘)(형광콘)(형광콘)
-아닠ㅋㅋ 도랐냐곸ㅋㅋㅋㅋ
시청자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누구보다 놀리기에 진심인 그들이 아닌가.
순식간에 채팅창이 형광봉을 들고 열광하는 이모티콘과 번쩍이는 로봇 이모티콘으로 가득해졌다.
방송을 진행하면서 놀라는 건 시청자들만이 아니었다.
‘아니, 이런 생각은 정말 어떻게 하지?’
물론 나쁜 의미는 아니었다. 이경복은 반짝거리는 채팅창을 보며 웃음 지었다.
이걸 콘서트라고 생각 할 수 있는 사고구조가 궁금할 뿐이었다.
‘귀여우셔들.’
기대에 부응하는 게 스트리머의 의무가 아니겠나. 이경복은 환하게 웃으며 소리를 높였다.
“그냥 떨어지면 재미없죠?!”
이경복은 가볍게 추진 장치를 조작했다. 옆으로 추진력이 붙자 회전이 시작됐다.
“현실은 달콤하지만은 않아아아!”
당연하게도 줄로 연결된 박주호 역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무친ㅋㅋㅋ 공중 퍼포먼슼ㅋㅋ
-여기서 이정도의 나선력을?
-그 와중에 가사 맞춘 거냐곸ㅋㅋㅋㅋ
-퍼파고 방송각 보는 능력 무엇?
-5252, 빅데이터 알고리즘 모르냐구웃!
-공중에서도 콘서트를 한다, 그게 프로잖아?
-퍼파고 언제 프로 아이돌이 된거냐곸ㅋㅋㅋ
-이게 그 AI 버튜버 맞죠?
-ㅔ
회전하는 도중에도 장애물 회피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렇게 화려한(?) 강하가 이어지길 잠시.
‘벌써 거의 다 왔네.’
이경복은 슬슬 착지를 준비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신기를 통해 전달된 정보로 바닥과 거리를 가늠할 수 있었다.
“자, 슬슬 내릴 준비할게요!”
그는 추진장치를 수직으로 세워 감속을 시작했다. 그에 채팅창의 분위기가 다시 바뀌었다.
-알고 보니 게릴라콘서트였고?
-넘모 빨리 끝난 거시고요?
-벌써 그립읍니다ㅜㅜㅜ
-어? 어어어어!
-부딪칠 거 같은데?!
-뒤에 퍼파고! 퍼파고!
추진력의 영향을 받는 건 이경복뿐이었다. 감속한다고 해서 박주호의 속도도 늦춰지는 건 아니었다. 이에 둘 사이의 간격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시청자들이 충돌을 예감하고 기겁했지만.
“잠깐 참아!”
이경복에게 그런 실수는 없었다.
그는 섬세하게 추진 방향을 조절해 회전하며 박주호의 뒤로 이동했다. 그리고 우악스럽게 그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그에 박주호가 헛숨을 들이키며 덜컥거렸지만 속도는 착실히 줄었다.
-아닠ㅋㅋㅋ 무슨 짐짝이냐곸ㅋ
-블랙기업특) 직원을 사람 취급 안함
-알고 보니 고증이었쥬?
-아 ㅋㅋ 이게 멱살캐리지(아님)
-뒷덜미 캐리 뭔데 ㅋㅋㅋ
시청자들이 그에 웃는 사이 두 사람은 무사히 착지했다. 이경복은 웃으며 손을 가볍게 털었다.
“아, 정말 재미있었네요. 안 그러… 괜찮냐?”
박주호는 스카이 다이빙 자세 그대로 바닥에 붙어있었다. 이경복의 물음에 그는 천천히 일어서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음, 별거 아니네. 너무 짧아서 아쉬울 정도로군.”
그 대답에 채팅창에 다시 웃음이 번졌다.
-???: 아무 일도… 없었다!
-공중 콘서트까지 열었으면섴ㅋ
-다음에는 싱글 말고 앨범 콘서트 해주는 거 맞지?
-앵콜! 앵콜! 앵콜!
이경복은 그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방송도 진행해야 했으니 손뼉을 쳐서 주의를 돌렸다.
“아, 좋습니다. 콘서트는 다음 기회에 또 하기로 하고요. 확실히 처형대로 썼다는 느낌이 드네요.”
그는 크리스탈로 주변을 비춰주었다.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공간이 드러나며 그 아래 박살난 백골들이 보였다.
-ㅁㅊ 처형당한 해적들임?
-와씨;;; 흩어져 있어서 오히려 소름 돋네
-그나마 중간에 장애물에 박아서 고통은 없었을 듯
-갓플이라 살았다 이마리야
덕분에 채팅창 분위기가 잡혔다.
“확실히 카밀라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닌 모양이다.”
“응?”
“바닥을 봐라.”
이어지는 박주호의 말에 이경복은 아래쪽으로 빛을 비추었다. 쌓여있는 먼지를 발로 쓸어내자 금속체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거 유적에서 봤던 건데?”
“크기랑 이 구조를 보면 아무래도 승강기였던 것 같은데.”
그 말에 시청자들도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오ㅋㅋㅋ 이거 승강기가 무너져서 처형대가 된 거네
-와 맞네 ㅋㅋㅋ 그래서 이렇게 깊은 거였고?
-누가 여기로 내려올 생각을 하겠냐고 ㅋㅋㅋ
-???: 했는데요?
-해적쉑들 ㅋㅋ 발밑에 있는데 전혀 몰랐쥬?
-원래 등잔 밑이 어둡다 이마리야 ㅋㅋㅋ
이경복은 이내 주변을 크리스탈로 훑고는 손을 뻗었다.
“저기 안에 통로가 있네요. 바로 가보겠습니다.”
안쪽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었다. 두 사람은 바로 탐사를 진행했다.
“약간 구조가 다르네요?”
“스토리 전용인 것 같은데? 첫 번째 미싱링크는 일일 던전 개념도 있었으니까.”
“아, 그렇긴 하네. 여긴 난이도 선택 같은 것도 없고.”
통로는 일자였고 다른 방도 없었다. 그렇게 걷기를 잠깐.
“오? 이건 또 완전 다르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시작인 거겠지.”
중앙에 거대한 문이 있었다.
문 가운데에는 크리스탈을 끼우는 홈이 있었지만 그 홈 역시 크기가 컸다.
“아, 이건 안 되네요. 아무래도 카밀라랑 다시 만나야 진행이 되나 봅니다.”
이경복은 추진 장치에 끼워진 크리스탈로 시도해봤지만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아마 다시 오게 되겠지.”
“그럴 것 같다. 일단 합류 지점부터 찾아볼게요.”
이내 그들은 마저 이어진 통로 쪽으로 나아갔다.
* * *
이경복은 통로 끝에 도달했다.
“흠, 통로가 무너져있네요.”
엄밀히 말하면 통로의 끝이 아니라 통로가 무너져 내려 앉아 있었다. 그에 시청자들은 당황했다.
-헐? 이러면 어케 되는 거?
-유적도 못 들어가는데?
-정식루트로 안 들어와서 막힌 듯?
-무친ㅋㅋㅋㅋ 설마 처형대로 다시 올라가야 됨?
-아니 ㅋㅋㅋ 이건 재접해야짘ㅋㅋㅋ
-퍼파고님의 암벽등반 콘서트 ㄱㄱ
-야앀ㅋㅋ 하겠냐고 ㅋㅋㅋ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경복은 태연했다.
“길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그의 확신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컷신에서 카밀라가 그랬잖아요? 안전한 입구가 따로 있다고. 다른 통로가 없으니까 여기가 맞을 겁니다.”
“음, 좀 더 가까이서 봐야겠군.”
두 사람은 무너진 통로 쪽에 다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내 박주호가 손짓했다.
“야, 여기 물이 차 있다. 들어갈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잠수해서 지나가야 되겠네.”
무너진 틈새 사이로 물이 고인 곳이 있었다. 다행히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충분한 넓이였다.
‘거리가 좀 되긴 하네.’
이경복은 신기를 통해 머릿속에 그려진 경로로 거리를 가늠했다. 단순히 헤엄으로 넘어갈 정도는 아니었다.
“이거 추진장치로 통과하는 곳 같은데.”
“아, 확실히 그걸 쓰면 빨리 나가겠군.”
“이번에는 혼자 갈게. 컷신 진입은 나만 가도 되니까. 어차피 아까 그 문으로 돌아올 것 같고.”
이경복은 박주호를 보며 비켜보라 손짓했다.
“잠깐 쉬고 있어라.”
“그러지.”
-수중 콘서트는 안 해주는 거?
-물속에서 어떻게 해 ㅅㅂ ㅋㅋㅋ
-퍼파고 쿨링 할 시간이다 이마리야
-들어가면 수냉되는 거 아님?
-킹직히 갓플 따라오느라 쉬긴 해야 됨 ㅋㅋㅋ
이경복은 채팅에 미소 짓다가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이어 잠수와 동시에 추진 장치가 가동했다.
-수영컨 무엇?
-아니 ㅋㅋ 모터 달고 왜 저렇게 잘 빠져나가는데!
-그렇게 넓지도 않은데 한 번을 안 부딪치네 ㅋㅋㅋ
-공중이든 수중이든 아무런 제약이 없쥬?
수중 통로를 빠져나오는 건 금방이었다. 가볍게 숨을 내쉬며 물 밖으로 나오니 통로 너머에 빛이 보였다.
“아, 출구인가 봅니다.”
그는 젖은 머리를 넘기며 물을 털어냈다. 이어 출구로 다가가니 화면이 전환됐다.
-엌ㅋㅋㅋ 퍼파고 순간이동ㅋㅋ
-강제소환 당해버리기!
-컷신은 킹쩔수 없지 ㅋㅋㅋ
-이거 아예 플레이랑 다르네?
-처형대에서 뛰어내릴줄 몰랐다니깐!
-???: 추진장치도 하나인데 왜 뛰어요!?
-진짴ㅋㅋㅋ 완전 다른 루트로 들어온 거넼ㅋㅋ
컷신 속 주인공은 박주호 캐릭터와 함께 보트를 타고 있었다. 해안 동굴에 가까이 다가가니 먼저 도착한 카밀라와 부하들이 보였다.
“생각보다 빨리 빠져나왔네? 더 늦었으면 그냥 갈려고 했는데.”
“언제든 탈출할 준비를 해뒀으니까.”
주인공의 대답에 이경복과 시청자들은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원래는 항구에서 탈출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네요.”
-뭔가 급박한 컷신이 있었을 것 같은 느낌 ㅋㅋㅋ
-ㄹㅇㅋㅋ 뒤늦게 해적들 쫓아오고 쥔공이 먼저 범선 출발시키고 막 갑판장이 던진 밧줄 잡고 올라가고 막 이래 ㅋㅋㅋㅋ
-막 이래 ㅇㅈㄹㅋㅋㅋㅋ 그냥 설명하라곸ㅋㅋㅋ
-킹치만 스킵해버렸쥬?
-???: 킹러분의 갓으로 남겨두겠습니다
-퍼펙트 숏컷 너무 빠르다아앗!
그 사이 카밀라는 코웃음을 쳤다.
“그렇다고 안심하긴 이르지. 해적연합에서도 추격선을 보냈을 테니까. 뭐, 범선을 두고 보트로 온 건 좋은 선택이었어.”
“신호탄을 쏘면 다시 올 거다. 그건 그렇고, 유적이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오히려 다행이지.”
“하긴, 놈들은 우리가 멀리 도망치고 있을 거라 생각할 테니.”
“그래도 이후가 문제야. 바솔로뮤의 별명이 뭔지는 알지? 해적들이 허풍이 세긴 하지만 놈은 진짜야.”
카밀라는 얼굴을 굳히며 주인공과 그 자신을 번갈아 가리켰다.
“나으리나 나나 바솔로뮤에게 킬 마크가 찍힌 거야. 이렇게 되면 어느 하나는 죽어야 끝이 나지. 지금까지는 언제나 바솔로뮤가 살아남았고.”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달라지겠군.”
그녀의 경고에도 주인공은 태연했다.
“허, 자신이 넘치시네?”
“해적이 무서웠다면 해군이 되지도 않았을 거다.”
“나으리도 허풍이 심하다고 말하고는 싶지만… 뭐, 여기까지 숨어들어온 걸 보면 허풍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카밀라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손을 내젓고는 부하에게 손을 뻗었다. 이내 그녀의 손 위에 커다란 크리스탈이 올려졌다.
“받아.”
“이건?”
“열쇠야.”
-오? 이정도면 그 문에 딱일 듯?
-역시 카누님이 주는 거였고?
-컷신 안 보면 못 들어가는 게 맞았네 ㅋㅋㅋㅋ
카밀라는 주인공에게 크리스탈을 건네고 턱을 슬쩍 치켜 올렸다.
“이렇게 큰 크리스탈은 많지 않으니까 고마운 줄 알라고.”
“목숨값으로 충분하지 않나? 감사까지 바랄 줄은 몰랐군.”
“…하여간 나으리들은 재수가 없다니까.”
카밀라는 주인공을 흘겨보고는 이내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부하들은 바로 보트를 띄울 준비를 했다.
“아무튼 약속은 지켰으니 이걸로 빚 진 건 없는 거야.”
“이제 어디로 갈 건가?”
“연합의 공적이 됐으니 당분간은 몸을 사려야지. 근데 그건 왜 물어? 나으리께서 해적들 걱정까지 해주시나?”
주인공은 그에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선술집에서 하나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
“허?”
“카밀라 해적단이 같은 해적들만 노렸다던데, 그게 사실인가?”
“그게 지금 뭐가 중요해?”
“내가 아는 것과 다르니까. 카밀라 해적단의 악명은 대부분 상선을 노렸다는 얘기들뿐이었다.”
카밀라는 그에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둘 다 맞는 얘기야. 해적들만 노리기도 했고 상선을 습격했지.”
“…그게 무슨 말이지?”
주인공은 물론 시청자들도 어리둥절했다. 해적만 습격했는데 어떻게 상단을 습격했다는 악명이 쌓인단 말인가.
“허이구, 본인도 해적으로 위장했으면서 왜 모르실까? 해적이라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해적들 중에 무역상으로 위장한 놈들이 있다?”
주인공의 눈이 커졌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설명은 충분했다.
“그럼, 원래는 그 위장 해적들이 상선을 습격한 건데 카밀라 해적단이 그 악명을 얻었던 거로군.”
-엌ㅋㅋㅋ 맞넼ㅋㅋㅋ
-아니 ㅋㅋ 이걸 왜 생각 못했지?
-기습할라믄 해적기 다는 것보다 무역상으로 위장하는 게 쉽긴 할듯ㅋㅋㅋㅋ
-그럼 카누님은 무역상인 척 하는 해적들 털어먹은 거?
-근데 이러면 카밀라 해적단은 악명이 아니라 누명 쓴 거 아님?
-그르게?
시청자들 역시 상황을 파악했지만 이내 의문이 남았다. 왜 다른 해적의 악행까지 자신의 것으로 한 것일까.
주인공은 그 이유도 금방 알아차렸다.
“그걸로 연합에서 인정을 받은 건가. 악명이 높으니 다른 해적들이 쉽게 건드리지도 못할 테고.”
해적에게 악명은 나쁜 게 아니었다. 누명이라고 해도 카밀라가 해명을 할 이유가 없었다.
“캡틴! 준비 끝났습니다!”
“웬만하면 다시는 보지 말자고.”
부하의 목소리에 카밀라가 등을 돌렸다. 이내 주인공이 그녀를 붙잡았다.
“잠깐, 하나 부탁이 있다.”
“부탁?”
날카로워졌던 카밀라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틀란티스 제조 장치, 가지고 있지 않나? 그걸 쓰고 싶다.”
2번째 유적 발견만이 목표가 아니었다. 3번째 유적 지도를 확보해야 했다.
카밀라는 그 부탁에 실소를 흘렸다.
“그건 내가 들어줄 수가 없겠는데?”
“뭘 원하…”
“제조 장치는 내 배에 없어.”
그녀의 말에 이번에는 주인공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의 추론이 틀린 것일까.
“내가 쓴 건 휴대용이 아니거든.”
“휴대용?”
“그래, 유적에 장치가 있어. 꽤 큰 장치기도 하고 떼어낼 수도 없더라고. 애당초 나한테 제조 장치가 있었으면 크림슨 코스트에 왜 찾아갔겠어?”
“제조 장치의 종류가 따로 있었다? 과연, 그랬던 건가…”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시청자들도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제조 장치가 설치형이랑 휴대용이 따로 있는 듯?
-아 카누님 입장에서는 계속 들락날락하기 힘드니까 휴대용 찾은 거네
-하긴 잘못하면 다른 해적들한테 걸릴 수도 있으니까 ㅋㅋㅋ
-그럼 유적만 들어가면 다 해결되는 거시구요?
카밀라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보트에 올랐다. 부하들이 노질을 하기 전 그녀가 주인공에게 말했다.
“아, 뭘 하려는 건지 몰라도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무슨 뜻이지?”
“부하들 중에 뭔가 기이한 소리를 들었다는 녀석들이 많거든. 조심하라고.”
“의외로군. 걱정까지 해줄 줄 이야.”
카밀라는 그 말에 입꼬리를 올렸다.
“물론 걱정해야지. 나으리께서 살아있어야 바솔로뮤의 주의가 분산되지 않겠어?”
“그것참, 해적다운 배려로군.”
주인공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와 함께 화면이 암전되며 컷신이 끝났다.
“오, 바로 문 앞으로 돌아왔네요.”
“원래 잠수해서 지나갈 필요도 없었던 모양이다.”
장소는 통로 중앙의 거대한 문, 유적 입구로 바뀌었다.
-아 ㅋㅋㅋ 원래 길이 아니었던 거?
-어쩐지 길이 불편하게 좁다 했다 ㅋㅋㅋㅋㅋㅋ
-???: 거길 왜 가시는 거예요?
-광고주 킹리둥절행ㅋㅋㅋㅋㅋ
-없던 길도 만드는 스머가 이따?!
-뭐야? 평소의 갓플이잖아?
-여기 그런 방 맞습니다^^
시청자들이 그에 웃자 이경복도 따라 미소를 지었다.
“자, 좋습니다. 본격적으로 유적 탐사를 시작해보죠!”
그는 거대 크리스탈을 끼웠다. 둔중한 울림과 함께 문에 빛이 차오르더니 좌우로 열렸다.
* * *
유적 내부 구조는 처음 경험했던 유적과는 달랐다.
“통로랑 방이 있는 건 똑같은데 문이 다 열려 있네요.”
“안에 있는 건 가구가 아닌가 싶은데.”
방 내부는 대다수 무너져 있었지만 멀쩡한 물건들도 있었다. 침대나 책상과 같은 형태였다.
“아무래도 주거구역 같은 곳으로 보인다.”
“오, 아틀란티스인들이 살았던 아파트? 그런 느낌일지도.”
그렇게 살피면서 전진하자 어느덧 통로의 끝에 도달했다. 그 안에는 더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오? 여긴 뭐지?
-광장이나 로비? 그런 느낌인디
-통로가 꽤 많은 거시고요?
-구조는 다 비슷한 듯?
-아틀란티스 고시원 아님?
-아닠ㅋㅋㅋ 고시원이 왜 나오냐곸ㅋㅋㅋ
-여기도 방음 잘 안되고 냉장고 도둑 있나?
-헉!
원형 구조를 따라 뚫린 통로가 여럿 있었다. 두 사람이 안으로 더 들어가니 컷신이 진행됐다.
“이건 빛이 들어오는군.”
주인공은 여러 구조물들 중 아직 빛을 발하고 있는 기둥으로 다가갔다. 이내 살펴보던 그는 눈을 빛냈다.
“이거다! 이게 카밀라가 말한 제조 장치야!”
쓰인 글자는 읽을 수 없었지만 재료 비율을 결정하는 기호가 있었다.
“그런데 재료를 투입하는 곳이 없군. 자동으로 공급되는 건가…?”
휴대용 제조 장치와는 다르게 투입구가 없었다. 주인공은 일단 빠르게 장치를 조작했다.
잠시 후 3번째 유적 지도가 출력됐다.
“좋아, 다음은 잠수복이다.”
그는 세라자드에게 받은 잠수복 레시피를 꺼내 입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뭐임? 오류임?
-으아니챠! 뭐 때문에 이러능!
-블루스크린도 아니고 레드스크린은 무냐구웃!
-잠수복은 3번째 유적 찾아야 되는 건가?
-에헤이 텄다 텄어!
장치에서 발하던 빛이 붉어졌다.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어도 문제가 있음을 뜻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주인공도 이에 실망한 표정으로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이건, 지도인가?”
장치에서 투사된 홀로그램이 지도를 펼쳤다. 이내 그 위에 노란색 점이 찍히더니 아래쪽 지점이 확대됐다.
“이 기호는 재료? 재료 창고인가?”
확대된 지점 옆에 재료를 뜻하는 푸른 기호가 떠올랐다. 그 기호는 이윽고 다른 한 지점과 연결됐다.
시청자들은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아 ㅋㅋ 이거 재료 채워넣으라는 거네
-어쩐지 ㅋㅋㅋ 너무 쉽게 얻는다 해따!
-킹부러! 더 깊게 들어가게 만들려고!
-카누님이 경고한 게 다 떡밥이었다 이마리야
컷신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 그렇죠. 여기서 다 해결해버리면 좀 심심하다 싶었습니다. 카밀라가 경고한 기이한 소리의 정체도 확인을 해봐야겠죠?”
통제권을 되찾은 이경복은 밝게 웃었다.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얼른 출발해볼게요!”
그 활기찬 목소리에 시청자들도 덩달아 웃음을 흘렸다.
-카누님이 갓플 보면 어이상실할 듯 ㅋㅋㅋㅋ
-???: 뭔가 위험하다니깐?! 가지 말라니깐!? 기대하지 말라고!
-???: 위험? 재미있다는 뜻인가?
-어려움 전문 스머 수듄ㅋㅋㅋㅋ
-Danger의 뜻은 재미다, 그게 퍼펙트 영어 사전이잖아?
-하지마라면 하지마루요!
경고와 주의.
누군가에게는 걱정거리였지만 이경복에게는 재미를 뜻하는 단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