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화 - 세컨드 미싱링크 (8)
유럽 채널을 거점으로 삼은 현지 유저들, ‘길티플레져’의 연합원들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뭐, 뭐가 이렇게 많아?”
<왜 채널 포화상태인가 했더니…>
<와, 전부 여기 몰려있었네>
바다를 메우고 있는 수많은 범선들의 모습은 그들로서는 생소할 따름이었다.
물론 월드 보스 공략 때에 이정도 인원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적어도 이 채널에서 그런 일은 없었다.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거 한국 국기지?”
<뭐야? 이 사람들 전부 다 한국인들이야?>
<한국 채널은 따로 있는데 대체 왜…?>
<게다가 같은 길드도 아닌 것 같은데요?>
플레이어의 출신 국가가 겹칠 수는 있었다. 본래 월드 보스는 개인별로 참가하기보다 연합이나 군단, 상회와 같은 길드 혹은 함대 단위로 참가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니까.
그러나 단일국가인데 길드 단위가 아닌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길드 소속도 아닌데 대체 이 사람들이 모인 이유가 뭐란 말인가?
하지만 그마저도 그들을 놀라게 한 요인은 아니었다.
“잠깐, 지금 저 사람들… 크라켄 촉수를 찢고 있는 거야?”
<오, 맙소사.>
<한국인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
<와우, 역시 영화 ‘올드맨’의 나라답네요. 낙지도 산채로 먹더니 크라켄도 찢어버리네.>
저들의 공략방법은 그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연합장은 물론 연합원들은 그들이 목격한 사실을 미접속자들에게 채팅으로 전달했다.
[수백 명의 한국인이 접속 중이라고? 유럽 채널에?]
[한국인들이 크라켄을 찢고 있다고? 대체 무슨 소리야?]
[접속하게 만들려고 꾸며낸 거짓말치고는 너무 성의가 없는데…]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돌아온 반응은 의심이었다.
연합장은 그에 억울했지만 이내 헛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직접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할 광경이 아닌가.
“허, 더 놀라운 건 아직 얘기도 안 했는데 말이지.”
<그러니까! 저 방법이 대체 왜 효과가 있는 건데!?>
<소식 듣고 우리가 바로 출발했는데 벌써 크라켄 체력이 저만큼이나 줄었으면…>
<사실상 지금까지 나온 공략법 중에 제일 좋은 거라는 거죠.>
연합장은 그에 잠시 고민했다.
“한국에서 무슨 이벤트 같은 걸 하는 걸지도 모르겠군. 우리가 끼어도 되나 싶은데…”
공략은 순조로워보였다.
여기에 한 몫 거들어도 되겠지만 방해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이미 기여도 순위권을 챙기기에는 늦은 시점이기도 했다.
<이제 슬슬 2페이즈 준비해야 되는 거 아니야?>
<왜 안 멈추는 거지?>
<혹시… 2페이즈 공략법을 모르는 걸까요?>
하지만 이내 공략이 계속 이어지자 그들은 걱정을 내비쳤다.
“이런, 진짜 모르는 것 같은데? 가서 알려줘야겠어!”
연합장은 이에 결론을 내리고 항로를 설정했다.
준비 없이 2페이즈에 들어가면 피해가 막심할 터였다.
* * *
이경복은 줄어드는 크라켄의 체력을 보며 흡족해했다.
“좋습니다. 다들 잘 해주시고 있어요!”
또 하나의 촉수가 끊어졌다.
그의 함대만이 아니라 다른 함대도 능숙해졌는지 점차 속도가 빨라졌다.
-캬 ㅋㅋ 찢었다(진짜임)
-월드 보스 공략이 원래 이렇게 빠름?
-아아, 모르는가? 갓플은 월드 보스도 스피드런을 해버린다만?
-스피드런 전문 스머 수듄ㅋㅋㅋ
-대체 누가 이렇게 공략을 하냐구욬ㅋㅋㅋㅋ
시청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흡족해했다. 이경복이 이어 다른 촉수를 노리려 항로를 확인하는 와중이었다.
‘아, 다른 플레이어들인가?’
신기를 통해 접근하는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월드 보스를 노리고 온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느낌이 꽤 괜찮은데?’
그들로부터 느껴지는 기운이 생각보다 강했다. 이에 그는 바로 출발하지 않고 그들의 도착을 기다렸다.
-어? 누가 온다!
-유럽 에붕이 등장!
-헐? 해적인 거신디요?
-월드 보스전은 전부 중립이라 괜차늠ㅋㅋㅋ
-이미 늦었쥬? 남은 몫 거의 없쥬?
-5252, 블랙함대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구웃!
-현지인들 킹리둥절할듯ㅋㅋㅋㅋ
시청자들도 그들의 접근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내 채팅방에는 물음표가 떴다.
[STOP!]
[NO! NONONO!]
[Don’t Attack Kraken!]
그들의 범선 위로 떠오른 말풍선 때문이었다. 이경복은 물론 시청자들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지금 멈추라는 거죠?”
-뭐임? 왜 저럼?
-남은 몫 호로록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님?
-영어로 얘기해야 되는 거시고요?
-혀엉! 퍼파고 소환하자!
-기계번역이냐고 ㅋㅋㅋㅋㅋ
-통역병 없음?!
이경복이 어쩔까 고민하는 와중 함대원이 목소리를 냈다.
<보니까 프랑스인들 같은데요. 제가 프랑스어 좀 할 줄 아는데 통역해드릴까요?>
“오? 그러신가요?! 그럼 갑판으로 불러드릴게요.”
저들의 국기는 프랑스 국기였다.
이경복이 그를 부르자 시청자들이 웃음을 흘렸다.
-통역병 바로 나와버리고 ㅋㅋㅋ
-크으! 역시 퍼청자 수듄ㅋㅋㅋ
-갓플 옆에 서는 거 넘모 부러운 거시고요?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된다니깐!
통역병을 자처한 함대원은 바로 이경복의 말을 통역해 말풍선으로 띄웠다.
[왜 멈추라는 거죠?]
[오! 프랑스어를 할 줄 아시네요?]
[2페이즈 돌입 전에 준비를 해야 해요!]
[체력이 20%일 때 크라켄 본체가 나와요!]
내용을 전달받은 이경복과 시청자들은 눈이 크게 뜨였다.
“아, 2페이즈도 있구나. 뭔가 따로 준비를 해야 되나 봅니다.”
그러나 이경복은 별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뭔가 문제가 될 것 같았다면 직감적으로 알아차렸을 터였다.
-오 ㅋㅋ 다른 함대들도 빼네
-퍼청자들 눈치 좋은 거 보소 ㅋㅋㅋㅋ
-방송 다 보고 있다니깐!
-옼ㅋㅋ 아슬아슬해따 ㅋㅋㅋㅋ
따로 지시를 내릴 필요는 없었다. 방송을 모니터링하던 다른 함대들은 공격을 중단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WORLD BOSS]
[크라켄 – 20%]
쾅하는 포격음과 함께 체력이 20%에 도달하며 화면이 뒤바뀌었다.
다들 어떻게 된 건가 싶은데 박주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명령을 취소하기에는 너무 늦었었다.>
모바일 유저들이 미처 입력해둔 명령을 취소하지 못한 것이었다. 포격의 피해는 미미했지만 남은 체력이 워낙 적었던 터라 2페이즈 발동 기준을 충족했다.
화면은 조감도처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구도였다. 넘실거리는 거대한 촉수에 둘러싸인 바다, 그 아래에서 서서히 검은 그림자가 번지기 시작했다.
“와… 큰 거 왔네요.”
이경복은 전신을 찌르는 감각에 작게 탄사를 흘렸다. 그림자는 순식간에 불어나더니 이내 작은 섬만 한 크기로 변했다.
이어 말 그대로 섬이 솟아오르듯 거대한 형체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문어와 오징어가 뒤섞인 듯한 대괴수였다. 샛노란 눈동자 4개가 그 머리에 박혀 있었고, 세로로 벌어진 입은 웬만한 동굴보다 더 컸다.
-ㅁㅊ 월드 보스 맞네;;;
-촉수는 이제 보니 너무 귀여웠고요?
-???: 다시 보니 선녀같다!
-대포로 저걸 잡아야 된다고?
-이거는 뭐 ㅋㅋ 섬 하나를 해치우라는 거잖슴ㅋㅋㅋㅋ
시청자들이 그에 아찔함을 표하는 사이 유럽 플레이어들은 암담해 했다.
[이런! 너무 늦었어!]
[아… 이러면 1페이즈 보다 더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원래는 석유를 먼저 뿌려두는 게 공략법이에요!]
그들의 채팅에 이경복은 눈을 껌뻑였다.
“석유요?”
공략에 갑자기 석유가 웬 말인가. 하지만 의외로 시청자 중에도 동의하는 채팅이 올라왔다.
-ㅇㅇ 무역품 중에 석유 사서 갖고 와야 됨
-혀엉! 그거 무기로도 쓸 수 있어!
-원래는 2페이즈 가기 전에 중앙에 석유 뿌리고 나오면 불 질러야 됨 ㅋㅋㅋ
-도트 뎀으로 잡는 게 정석이긴 해 ㅋㅋㅋ
-난 또 석유 뿌려두면 미군이 오는 건줄 ㅎㅎ
-???: 팍씨! 민주주의 맛 좀 볼래?
-미군 ㅅㅂ ㅋㅋㅋ
이미 그 공략법을 아는 유경험자들이었다. 그에 다른 시청자들이 물음표를 쳤다.
-아니 그걸 왜 이제 알려줌?
-금수훈지라서 이게 맞긴 하지 ㅋㅋㅋ
-그것도 그렇고 이것도 과금러 방식이자너 ㅋㅋㅋ
-킹직히 저 정도 크기 불태울라면 석유가 얼마나 필요하겠냐고욬ㅋㅋㅋ
이경복은 그에 상황을 이해했다.
그 사이 2페이지 돌입 컷신이 끝나고 크라켄이 반격을 개시했다.
“일단 다들 물러나요!”
이경복은 신속히 지시를 내렸다. 그와 동시에 크라켄의 촉수가 움직였다.
-무친? 파도높이 무엇?
-속도도 개 빠른 거신디요?
-어어! 넘어간다!
-???: 피해욧! 구석으로!
-광역기만 나오면 등장하는 킹방제과좌의 명언ㅋㅋㅋㅋ
높고 빠른 파도, 격랑이 범선을 덮쳐왔다. 이것이 크라켄의 첫 번째 공격패턴이었다.
“넉백에다가 크기가 작은 배들은 그냥 침몰하겠네요.”
이경복은 빠르게 상황을 분석했다.
미처 피하지 못한 다른 함대는 그대로 뒤집어져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나마 성급이 높은 배들은 아슬아슬하게 버텨낼 수 있었다.
-아니 ㅅㅂ 이러면 포격 사정거리가 안 되잖슴!
-즉.시.과.금
-과금까진 아니고 파도 피해서 다른 곳 노려야 되는 덧?
-광역기 피하면서 로테이션 도는 거네 ㅋㅋㅋㅋ
-뭔가 부글부글 거리는데?
-어어! 뭐 또 온다!
크라켄의 공격패턴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겨우 격랑을 버텨낸 범선 위로 검은 먹물이 쏟아졌다.
<상태 이상이야! 당한 분들이 항해를 못 하신다!>
박주호가 놀라 소리쳤다.
먹물에 뒤덮여 검게 변해버린 범선들 주변에 촉수가 솟아나더니 여러 범선을 동시에 휘감아 들어올렸다.
이어 크라켄은 마치 간식을 먹듯 그 범선들을 제 입으로 털어 넣었다.
“와, 격랑은 무난한데 이건 좀 주의해야겠네요. 광역 즉사기인 것 같습니다.”
-아니 ㅋㅋ 왜 감탄하는데!
-이 형ㅋㅋ 또 어렵다고 좋아하넼ㅋㅋㅋ
-???: 호오? 이것 봐라?
-???: 함대 하나를 해치웠어?
-이게 퍼자감이지 ㅋㅋㅋㅋㅋ
-어려움 전문 스머 행동ㅋㅋㅋㅋ
이경복이 오히려 흥미를 보이자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렇게 되면 인원수는 무의미합니다.]
[등급이 높은 범선과 아틀란티스제 장비로 무장한 공격대가 필요해요!]
[저희 연합이 도와드릴 테니 접속할 수 있도록 다른 분들은 로그아웃 해주실 수 있나요?]
유럽 플레이어들이 제안했다.
지금의 공격대, 무과금 세팅만으로는 2페이즈를 끝내기는 어렵다는 게 그들의 판단이었다.
-이건 확실히 과금러들 도움이 필요하긴 할 듯
-ㄹㅇㅋㅋ 본체는 갈고리로 못 찢자너
-애당초 접근 자체가 힘들다구욧!
-무과금으로 1페이즈 뚫었으면 잘 한거긴 해 ㅋㅋㅋ
-2페이즈는 맡겨도 기여도 순위는 이미 먹은 거 아님?
-킹직히 월드 보스를 완전 무과금으로 어케 깨냐고 ㅋㅋㅋ
시청자들은 그에 아쉬워하면서도 수긍했다. 1페이즈 공략만 해도 충분히 놀랍지 않았나.
이경복은 그에 웃으며 말했다.
“통역 좀 부탁드릴게요.”
“아, 네네.”
통역병이 채팅을 받아 쓸 준비를 하자 그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채팅창에 물음표가 번지고 통역병도 멈칫했지만, 이내 그의 답변을 받아 적었다.
“이분들은 저를 위해 찾아와주신 분들이라 내보낼 수 없습니다. 누구는 가고 누구는 남아달라고 하면 또 억울하기도 할 거고요.”
그 말에 시청자와 참가자들 모두 흡족해했다.
-5252, 공략보다 퍼청자가 우선인거냐구웃!
-청자만 아는 바보가 또…!
-아 ㅋㅋ 그만 홀리라고!
-아주 요물이야 요물!
[그저 빛…!]
[이 시참에 한 점 후회는 없도다!]
[퍼펙트 배려 너무 좋고?]
[그래도 그냥 들이박으면 방송이 좀 루즈해지지 않을까 걱정됨 ㅠ]
[제가 총대 메고 먼저 나가겠습니다!]
방송 채팅창과 함대 채팅창 모두 빠르게 올라왔다. 이경복은 그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뇨, 나가실 필요 없어요! 빨리 깰 수 있습니다.”
단순히 배려의 의미가 아니었다.
“대신 약간의 협조만 해주시면 됩니다.”
이경복은 방송을 지체할 생각도 없었다.
* * *
이경복은 공략 준비를 마쳤다.
“자, 그럼 가볼게요!”
자신 있는 목소리와 함께 전진하기 시작한 범선, 그러나 그 숫자는 단 둘뿐이었다.
그것도 그 뒤를 따르는 범선은 3성 등급의 제일 작은 범선이었다.
-이거 진짜로 되나?
-킹직히 설명 들으면서도 계속 물음표 핑 뜸ㅋㅋㅋㅋ
-작전대로라면 말이 안 됨 ㅋㅋ 그래서 됨ㅋㅋㅋ
-퍼펙트 상식대로라면 백퍼 성공이자너 ㅋㅋㅋㅋ
-이 형은 아무튼 한다니깐!
-아 ㅋㅋㅋ 일단 보시라고욬ㅋㅋ
시청자들은 의아해하면서도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이럴 경우 ‘이해’보다는 ‘목격’이 더 쉽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경복의 접근에 크라켄이 촉수를 휘둘렀다. 높이 솟아오른 격랑이 범선을 집어 삼킬 듯 덮쳐왔다.
“겁먹지 마시고 서핑하신다고 생각하세요!”
이경복은 들뜬 목소리로 키를 돌렸다. 범선이 방향을 틀며 파도를 타고 기울어졌다.
-으어어어어어!
-넘어갈까? 말까? 넘어갈까? 말까?
-파도와 밀당하는 남자 ㅎㄷㄷ
-파도밀당남ㅋㅋㅋㅋㅋ
-무친;;; 거의 수직아님?
-범선으로 서핑을 하는 선장이 이따!?
-이게 안 넘어가넼ㅋㅋㅋㅋ
격랑에도 끝이 있었다.
이경복은 무사히 우회를 마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크라켄은 기다렸다는 듯 먹물을 뿌렸다.
“패턴 뻔하죠?”
이경복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여유롭게 웃으며 범선을 틀었다.
“외곽으로 빠지시고!”
하늘을 뒤덮은 먹물 아래에 생기는 그림자로 그 범위를 유추할 수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범선이 그림자 바깥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이경복의 범선에만 해당하는 경우였다.
-끊어졌다!
-바로 촉수 나오는 거 보소 ㅋㅋ
-즉.시.섭.취
-???: 야무지게 먹어야지!
-크라켄쉑 식탐 쩌네 ㅋㅋㅋㅋ
뒤편에 있던 작은 범선은 그대로 멈추어버렸다. 이내 촉수에 휘감긴 범선이 그 거대한 입으로 향했다.
“순조롭네요!”
이경복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이 그가 원한 바였다.
범선이 다시 접근을 시도하자 크라켄은 다른 촉수로 격랑을 일으켰다.
‘여기서부터 중요하지.’
시야를 가득 메우는 파도를 보며 이경복은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느려진 시간 속 수집된 정보가 이경복의 머릿속에 정렬됐다.
솟구치는 파도와 기울어지는 배의 각도와 함께 위로 솟은 포신, 그리고 그 완벽한 타이밍까지.
‘바로 지금!’
굉음과 함께 대포가 불을 뿜었다. 고각으로 쏘아올린 포탄이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좋았어.’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경복은 우회를 마치고 곧바로 방향을 틀어 드리프트를 했다. 그와 함께 반대편 대포들이 크라켄 쪽으로 향했다.
“제가 된다고 했죠?”
미소와 함께 가볍게 던진 한마디. 그와 동시에 포탄세례가 크라켄에게 쏟아졌다.
-오? 오오오오오!
-맞나? 맞나? 맞나?
-야앀ㅋㅋ이걸 진짜 맞춘다고?
-가즈아아아아아!
시청자들은 흥분하며 시선을 고정했다. 먼저 하늘로 쏘아올린 포탄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포탄과 나아가는 포탄, 그 교차점에는 크라켄이 집어삼키려는 범선이 있었다.
[Quoi?]
[C'est dingue!]
[또 저질러버렸다ㅋㅋㅋ]
[진짜 믿기지가 않넼ㅋㅋ]
[이게 되네 ㅋㅋㅋㅋ]
[현지 에붕이들 놀라는 거 보소 ㅋㅋㅋ]
무수히 떠오른 말풍선 너머, 포탄들이 충돌했다.
이어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큰 소리와 함께 범선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붙잡고 있던 촉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충격 때문인지 크라켄의 몸이 축 늘어졌다.
“자! 지금입니다! 전 함대 포격!”
쭉 빠지는 체력에도 이경복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결과를 예상했던 만큼 즉시 지시를 내렸다.
대기하고 있던 범선들이 즉시 포문을 열었다.
-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말콘)(게말콘)(게말콘)
-현지 에붕이 채팅 번역 돌려보니까 ‘뭐?’랑 ‘말도 안돼!’네 ㅋㅋ
-알고 보니 불란서 게말콘이었고?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 거냐구욬ㅋㅋㅋㅋㅋ
-주주의 재산을 무기로 삼는다. 그게 블랙기업이니까(끄덕)
그 사이 채팅창은 환호로 가득해졌다. 이경복의 작전은 이전 해적섬 요새 공략 때와 유사했다.
바로 함대원들이 보유한 화약을 한 범선에 집중해 이동하는 화약고로 만든 것이었다.
-견인 기능을 이렇게 쓰는 건 진짜 처음 봄ㅋㅋㅋㅋ
-아니 ㅋㅋ 보통은 배를 폭탄으로 만들 생각 같은 건 안한다곸ㅋㅋㅋ
-이거 해적섬 습격 때보다 더 빡센 건데 ㅋㅋㅋㅋㅋ
-크라켄쉑 아무것도 모르고 냠냠하려고 했쥬?
-이게 그 퍼펙트 팝핑 캔디죠?
-팝핑캔디 ㅅㅂ ㅋㅋㅋ
-입에서 터지긴 했넼ㅋㅋㅋㅋ
해적섬 습격 때와 방식이 유사하지만 그 난이도는 더 어렵다. 화약고가 될 범선만 정확히 먹물에 당하도록 조절하고 격랑을 각도조절기로 삼아 시간차 포격까지 완성해야 했다.
시청자들의 감탄에 이경복은 웃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생각보다 재미있죠?”
폭탄으로 사용된 범선을 내어준 참가자, 통역병이 그곳에 있었다,
“으어… 퍼파고 님… 심정을 알 것 같아요…”
그는 갑판에 납작 엎드려 앓는 소리를 냈다. 이경복은 수리비를 내주려고 했지만 그는 대신 직접 배에 올라 직관하기를 바랐다.
그 덕분에 범선 서핑(?)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게 말이 됨…?”
기진맥진한 그 옆에 동병상련이라는 듯 퍼무새가 다가와 머리를 부볐다.
시청자들은 그 모습에 웃음과 부러움을 표했다.
-3성 범선 수리비로 갓플 공략 직관? 이거 못 참거등요?
-솔직히 이건 오히려 돈 내야 되는 거 아님?
-진짜 개부럽다 ㅠㅠㅠ
-나도! 나도 퍼무새 위로받고 싶어!
-극락각 ㅁㅊㄷㅁㅊㅇ
-통역병 오늘은 네가 승리자다!
-엄마! 나 공부 열심히 할게요! 엄마! 나 공부 열심히 할게요!
-시참하려고 공부 열심히 하는 거냐곸ㅋㅋㅋ
그에 이경복이 웃음을 흘리는 와중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WORLD BOSS CLEAR!]
[대괴수 ‘크라켄’이 함장님의 활약으로 심해로 돌아갑니다!]
[1. 퍼플 함대 (47.2%)]
[2. 퍼플은 갈고리전문가 함대 (3.4%)
[3. 퍼파고의 논리회로 함대 (2.9%)]
…
공략 성공과 동시에 기여도 순위가 나타났다.
-아니 뭔ㅋㅋㅋㅋ
-갓플 함대 혼자 절반 가까이 해먹어버리고?
-최약체 그룹인데 성과는 최상인 함대가 이따!?
-근데 저중에서도 절반 정도는 2페이즈 몫이라 갓플 혼자 해낸거 ㅋㅋㅋ
-혼자서 크라켄을 줘패는 선장이 이따?!
-퍼펙트 상식으로는 기본입니다만?
확연한 순위에 시청자들이 기쁨을 표했다. 그리 흥겨워하는 사이 유럽 플레이어들이 조심스럽게 채팅을 쳤다.
[와, 이건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진짜 이 게임 오래 해왔지만 이런 공략법은 처음입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뭘 하시는 분이신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기진맥진하던 통역병은 빠르게 내용을 전달했다. 그에 이경복이 멋쩍은 미소로 답했다.
“어, 길게 설명하긴 힘들죠? 그냥 한국에서 방송하는 스트리머라고 해주세요.”
-아닠ㅋㅋㅋ 너무 많은 게 생략됐잖슴!
-근데 설명하려면 또 너무 업적이 많은 게 또 함정ㅋㅋㅋㅋ
-ㄹㅇㅋㅋ 뭐 어디부터 얘길 해야 되는 거 ㅋㅋㅋ
-근본인 바크부터?
-???: 거기 앉아봐라. 지금부터 개 쩌는 이야기를 들려주마
-통역병! 4개월 차 스트리머라고 해줘!
오히려 시청자들이 요청사항을 채웠다. 통역병이 어쩌나 싶어 눈치를 보는 와중이었다.
<퍼튜브 채널 소개도 덧붙여주면 될 것 같습니다. 관심 있으면 찾아보겠죠.>
박주호의 목소리가 보이스 채널로 전달됐다. 그에 시청자들이 바로 동의했다.
-여윽시 효율의 퍼파고다!
-홍보 기회 못 참지 ㅋㅋㅋㅋ
-즉시 백문이 불여일견 해버리기 ㅋㅋㅋ
-한국인 제조기 ㅎㄷㄷ
-유럽인들 신대륙 발견은 해봤지만 신인류 발견은 처음이쥬?
-퍼튜브가 신대륙급이긴 해 ㅋㅋㅋㅋ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그냥 보면 알 수 있다.
시청자들은 이미 경험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