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화 - 세컨드 미싱링크 (10)
이경복은 박주호와 함께 목적지에 도착했다.
“흠, 이쯤인데.”
“아, 저기 해적선 하나 있네.”
수평선 위에 레드바이퍼의 해적기를 단 범선 하나가 떠 있었다. 그쪽으로 접근하니 컷신이 시작됐다.
“카밀라가 나온 건 아니로군.”
무역상으로 위장한 주인공이 망원경으로 해적선을 살피고 있었다.
렌즈 안에 비친 해적선에는 카밀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역시 다른 해적들이 사칭한 거?
-다른 부하들이 카누님 몰래 벌인 짓이라니깐!
-세눈나도 안보이는 것인디요?
-제발 햅삐하게 갑시다!
시청자들이 저마다 자신의 가설을 내세우는 사이 범선은 해적선과 가까워졌다.
갑판 위 해적들은 곧바로 갈고리 밧줄을 던져 두 범선을 고정시켰다.
“흠, 해군을 부른 건 아닌 것 같군.”
거구의 해적이 수평선을 훑으며 말했다. 주인공은 슬쩍 눈을 굴리더니 그에게 물었다.
“세라자드 님은 어디 계십니까?”
”…허튼 짓 말고 따라오쇼.”
해적은 그리 말하고는 손짓했다. 이에 다른 해적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뭐예요!? 세눈나 어딨어요!?
-여기서 인질교환하는 게 아닌가?
-혹시라도 해군 데려올까봐 머리 쓴 듯?
-하지만 왔죠?
-HOXY 물자만 날름하려는 거 아님?
-킹리적갓심 들기 시작하쥬?
시청자들이 상황을 파악하는 사이 갑판장이 주인공에게 다가왔다.
“선장님, 함정일까요?”
“그럴지도. 하지만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다. 일단 세라자드의 안위부터 확인해야 해.”
“예, 알겠습니다.”
그들 역시 불안함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경복의 판단은 달랐다.
‘이상하네. 악역은 아닌데?’
저 해적들로부터 악역 특유의 불쾌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윽고 화면이 전환되며 장소가 뒤바뀌었다.
바다 너머로 한적한 섬과 작은 마을이 보였다. 뭔가 싶은데 앞서가던 해적선에서 깃발이 내려가는 게 아닌가.
-오잉?
-옼ㅋㅋㅋ 평소에는 어선같은 걸로 위장하는 갑네
-해적질 안 할 때는 굳이 해적티 낼 필요 없지 ㅋㅋㅋㅋ
-생각해보니 그르네?
-해군이랑 다이다이할 급 아니면 숨어지내는 게 맞긴 해 ㅋㅋ
-맞네 ㅋㅋ 저번에 카누님이 다른 해적들 악명 돚거했다고 했잖슴ㅋㅋ
카밀라 해적단의 악명은 과장되어 있다는 건 이전 스토리에서 밝혀진 바 있었다. 사실상 주인공이 알고 있던 규모와는 차이가 있을 터였다.
범선이 부두에 가까워지자 주인공이 눈을 굴렸다. 그 옆으로 갑판장이 다가왔다.
“선장님, 아무래도 이곳이 레드바이퍼의 본거지가 아닌지…”
“내 생각도 그렇네. 아마 세라자드는 저기에 잡혀 있겠지.”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지시를 내렸다.
“일단은 해적들의 요구를 들어주도록. 본거지 위치를 알게 됐으니 물자를 내주어도 상관없어. 세라자드의 구출이 최우선 목표다.”
-이게 맞지 ㅋㅋ 해적단 토벌은 나중에 해도 됨
-그럼 카통수 확정인 거?
-아모른직다!
-뭔가, 뭔가 다른 사연이 있을 거임!
-납치하고 몸값요구했으면 이미 끝난 거 아님?
이내 배가 완전히 정박하자 해적들이 갑판으로 올라왔다.
“약속한 물자는?”
“세라자드 님의 안전이 먼저입니다.”
“그쪽이 선장인가 보군. 따라와라.”
해적의 말에 주인공은 눈을 굴렸다. 이어 그는 박주호 캐릭터를 가리켰다.
“이 친구도 같이 가겠습니다.”
“뭐, 그러든가. 하나나 둘이나 상관없어. 어차피 맨손으로 내려야 하니까.”
해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턱짓했다. 이에 다른 해적들이 주인공을 에워쌌다.
갑판장과 다른 선원들이 흠칫하며 눈치를 살폈지만 주인공이 먼저 무기를 내려놓았다.
-무장 해제하고 구출 작전이라고?
-근데 저 해적 말이 맞음ㅋㅋㅋ
-아 ㅋㅋ 다른 의미로 상관없긴 해
-갓플은 맨손이라도 넘모 강하다 이마리야
-거기에 퍼파고까지 끼면 말 다했쥬?
이어 박주호 캐릭터도 그 뒤를 따르자 해적이 재차 턱짓하며 말했다.
“이쪽이다.”
두 사람은 해적을 따라 배에서 내렸다. 해안가를 따라 얼마간 걷자니 주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해적을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불안한 눈빛으로 주인공을 살폈다.
“해적단이 강제로 점거하고 있다거나 그런 느낌은 아니네요.”
-다 같은 해적 아님? 그냥 위장 중인 거고?
-그렇다고 보기에는 생긴 게 너무 순한 것인디요?
-외모로 판단하면 트수들은 흉악범이냐?
-헉!
-네가 더 나빠…
해적은 이내 한 건물 앞에서 멈추었다.
“여기다. 어려운 길도 아니니 돌아갈 때 안내는 필요 없겠지.”
그는 그리 말하고는 훌쩍 자리를 떴다.
“감시를 하지 않는 건가?”
“저희가 비무장이라 그런 게 아닐까요?”
주인공은 그에 의아해했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곱하기는 묶음인 거예요. 물고기를 4마리씩 3묶음이면 모두 몇 마리죠?”
“어…”
“손가락이 모자라요…”
함께 들려오는 앳된 목소리에 주인공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내 복도를 지나 방으로 들어서니 세라자드가 보였다.
그녀는 어린아이들을 앞에 두고 그림을 그리며 셈을 가르치고 있었다.
-????
-세눈나의 수학교실 뭔데 ㅋㅋㅋ
-아 ㅋㅋ 세눈나가 수학샘이면 나도 이과에서 탑먹었짘ㅋ
-수학 못 하는 거는 맞는 덧? 분수를 모르시네
-퍼청자 말로 패는 수듄 ㅋㅋㅋ
-문이과 통합 어택 ㅎㄷㄷ
시청자들이 그에 놀라는 와중 세라자드도 두 사람의 등장을 눈치챘다.
“아, 편지가 무사히 도착…”
반색하던 그녀의 표정은 이내 경악으로 변했다. 흔들리는 눈동자와 함께 목소리도 같이 떨렸다.
“퍼, 퍼플 님?”
“다친 곳은… 없어 보이는군요.”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주인공도 시청자들도 그녀의 반응에서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제가 오길 바라신 것 같지도 않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 얘들아, 잠깐만 그림 그리고 있으렴!”
세라자드는 그리 말하고는 다급히 두 사람과 함께 복도로 나왔다.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상회로부터 납치를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오, 맙소사. 내가 해군을 보내지 말라고 분명히…!”
세라자드는 제 입을 틀어막더니 눈을 재빨리 굴렸다. 일련의 상황에 채팅창에는 물음표가 번졌다.
-세눈나 왜 이러는 거?
-구해주러 온 게 문제가 된 거임?
-이게 그 스톡홀름 증후군인가 그거냐?
-해적들한테 정든 거냐고 ㅋㅋㅋ
시청자들이 혼란해하는 와중 주인공은 상황을 파악했다.
“…납치된 게 아니군요?”
“역시 눈치가 빠르시네요. 전 납치당한 게 아니라 구조된 거였어요.”
“구조?”
“네, 탐사 도중에 자라탄의 습격을 받았어요. 거대한 바다거북 말이에요.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죠.”
그녀는 당시를 떠올린 듯 진저리를 쳤다.
“해군 호위정이 침몰되고 제 범선도 완전히 박살이 났어요. 겨우 목숨은 구했지만 판자에 매달려 표류했죠. 죽는가 싶었는데… 레드바이퍼 해적단에게 발견된 거예요.”
“그럼 보내라는 물자는 몸값이 아니라 보답이었던 겁니까?”
“네. 물론 제 안전을 확보하려는 의도도 있었으니 몸값이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요.”
-WA! 카누님 확정!
-카통수라고 한 놈들은 알아서 채금해라 ㅋㅋㅋㅋ
-다행히 햅삐한 전개로 이어지고?
-라이벌은 악역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닙니다!(엄근진)
세라자드의 설명에 내막이 밝혀졌다. 시청자들은 안도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한 눈치였다.
박주호 캐릭터는 그런 그녀에게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눈가를 찌푸렸다.
“단순히 보답이라면 왜 해군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신 겁니까?”
“그건…”
“세라자드 상회는 본부와 계약을 맺었어.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해적과 물건이 오고 간 게 알려져서 좋을 게 없지.”
주인공이 머뭇거리는 그녀 대신에 답을 꺼냈다. 이에 세라자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부 다 파악하셨네요. 맞아요. 원래는 좋게좋게 끝날 일이었어요. 저는 보답을 하고 배를 타고 떠나면 될 일이었는데…”
“하지만 생각보다 상회 사람들이 당신을 더 소중히 여겼고, 본부에 도움을 청했죠.”
주인공은 이내 검지를 입에 올렸다.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저희 정체만 안 들키면 당신 계획대로 될 거예요. 챙길 것이 있다면 서두르십시오.”
해적들은 아직 주인공을 상회에서 보낸 사람들로 알고 있다. 여전히 세라자드의 계획은 유효한 상황이었다.
“아, 그러네요! 잠시만요!”
그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반색하며 황급히 짐을 챙겼다.
* * *
이경복과 박주호는 왔던 길을 세라자드와 거슬러 돌아갔다. 중간중간 주민들의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돌아왔지만 다행히 들키지는 않았다.
-오 ㅋㅋㅋ 세이프!?
-다른 의미로 잠입을 해야 되는 미션ㅋㅋㅋㅋ
-나가는 거니까 잠입이 아니라 잠출아니냐ㅋㅋㅋ
-뭔가 싱거운 미션인 거신디요?
부두로 돌아오니 재차 컷신으로 넘어갔다. 주인공과 세라자드가 배에 오르려는 와중이었다.
그 앞을 해적들이 막아섰다.
“어허, 작별인사도 안 하고 가면 쓰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주인공이 그대로 멈추어 섰다. 그의 어깨 너머로 붉은 머리의 해적, 카밀라가 이죽이고 있었다.
“아, 카밀라 님. 신세 많이 졌습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세라자드가 재빨리 표정을 관리하며 감사를 전했다. 그러나 카밀라의 시선은 그녀가 아니라 주인공을 향했다.
“아, 물론이지. 은혜는 잊지 말아야지. 나도 그렇거든.”
카밀라가 손짓하자 해적들이 무기를 꺼냈다. 세라자드가 당황해하는 사이 그녀가 말을 이었다.
“원수였다가 생명의 은인이 된 사람이면 더 잊을 수가 없지 않겠어?”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군.”
주인공이 돌아서자 카밀라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 차림도 꽤 어울리네, 나으리. 그런데 내가 말하지 않았나? 웬만하면 다시 보지 말자고 했던 것 같은데.”
“자, 잠시만요! 카밀라 님! 누구도 다칠 필요가 없어요!”
세라자드가 바로 중재에 나서려 했지만 카밀라는 고개를 내저었다.
“세라자드, 당신은 괜찮아. 우리랑 거래했다는 걸 어디서도 밝힐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 나으리는 경우가 다르지.”
“본거지를 알게 됐으니까 보내줄 수 없다. 그런 뜻인가.”
“우리 나으리께서도 잘 알고 있네! 뭐, 그래도 세라자드 말이 틀린 건 아니야. 순순히 항복하면 다칠 사람은 없어.”
일련의 상황에 시청자들은 탄식했다. 하지만 아직 또 다른 변수가 있었다.
“선장님!”
외침과 함께 갑판 위에서 무언가 날아왔다. 해적들이 그에 눈이 돌아간 와중 주인공이 그것을 낚아챘다.
-오 ㅋㅋㅋ 갑판장 나이스!
-수석 부하 행동 ㅋㅋㅋㅋ
-빠른 판단 조았고?
-갓플한테 검을 줬다? 이제 끝났쥬?
주인공이 배에 놔두고 왔던 무기를 갑판장이 전달한 것이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 다른 선원들도 총기를 꺼내 엄폐했다.
“이 자식들이!”
해적들도 곧바로 대응했다. 그들은 범선을 겨누며 대치했다.
양쪽 모두 팽팽하게 긴장한 상황, 누군가 방아쇠를 당기면 즉시 사상자가 발생할 터였다.
“그만!”
그 가운데 주인공이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섣불리 나서지 마라! 누구도 다칠 필요 없다!”
그 말에 카밀라의 미소가 사라졌다.
“미안하지만 그건 힘들겠는데.”
“카밀라, 내 말을 믿어라.”
“나으리 말을 믿으니까 그런 거야.”
그녀의 대답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번졌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나으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랬잖아? 해군은 해적의 협박에 굴하지 않는다고.”
카밀라는 싸늘한 표정으로 손짓했다.
“생포해라. 저항하면 죽여도 좋다.”
그 말과 함께 컷신이 끝나고 전투에 돌입했다. 이에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왔다.
-아니;;; 이건 넘모 억까잖슴!
-싸울 필요가 없는데 왜 싸우게 하냐곸ㅋㅋㅋㅋ
-아무도 바라지 않는 전투씬이구요?
-뭐임? 타이머는 왜 나옴?
[00:05:00]
이경복은 시야에 나타난 시간을 보고 상황을 파악했다.
“아무래도 생존 미션인 것 같네요.”
“5분이면 어렵지는 않겠군.”
박주호도 동의하는 와중 이경복은 커틀러스를 다시 칼집에 넣었다.
“상황이 어떻게 반영될지 모르니까 죽이지는 말자. 맨손으로 되지?”
그의 말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
-아니;;; 왜 맨손으로 싸워요!?
-킹부러! 또 어렵게 클리어할라고!
-갑판장 : 선장님? 선장님? 선장님?
-애써 무기 돌려줬는데 억울잼ㅋㅋㅋ
-아니 ㅋㅋㅋ 형이야 그렇다쳐도 퍼파고님은 어쩌라곸ㅋㅋㅋ
그러나 시청자들의 예상과 달리 박주호는 바로 무기를 집어넣었다.
“알겠지만 난 1:1이 한계다. 나머지는 네가 다 맡아라.”
“그거야 뭐 어렵지 않지.”
그리 두 사람 모두 맨손 상태로 해적들과 대치했다. 기회를 노리던 해적들은 곧바로 덤벼들었다.
예리한 칼날이 떨어졌지만 이경복은 가볍게 스텝을 밟아 옆으로 돌았다.
“평화롭게 해적들도 무장해제시킬게요.”
그는 여유롭게 멘트까지 던지며 해적의 손목을 잡아챘다. 이어 힘을 주어 비틀자 해적이 앓는 소리를 냈다.
“끄아아악!”
“이 자식이!”
다른 해적이 곧바로 덤벼들었지만 이경복은 가뿐히 해적의 뒷덜미를 잡으며 몸을 돌렸다.
해적도 그에 붙잡혀 돌아서자 캉하는 쇳소리와 함께 해적의 칼이 서로 부딪쳤다.
“위험하니까 놓으시고!”
이경복은 붙잡고 있던 해적의 손목을 움직였다. 그러자 마치 자석처럼 맞붙은 해적의 칼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뭐, 뭐야!?”
“손을, 손을 못 쓰겠어…”
대번에 맨손이 된 해적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시청자들은 그에 감탄을 표했다.
-손 쓸 도리가 없다(진짜임)
-혀엉!? 맨손으로 싸운다며!
-아 ㅋㅋㅋ 내 칼이 아니라 해적거 썼다고
-이게 블랙해군 검술이지 ㅋㅋㅋ
-사관학교에서 대체 뭘 가르친 거냐구웃!
-블랙기업식 평화협정 ㅎㄷㄷ
그러나 시청자들을 더 놀라게 한 건 박주호의 대응이었다. 그는 덤벼드는 해적을 침착하게 관찰하다가 찌르는 칼날을 피하며 팔을 휘감았다.
이어 체중을 실어 허리를 틀자 해적의 몸이 돌아가며 바닥에 떨어졌다.
“꺽!”
숨이 막힌 듯 외마디 신음을 뱉은 해적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업어치기 깔끔한 거 무엇?
-이건 초보 솜씨가 아닌 거신디요?
-퍼파고님 유도하셨나?
-ㄹㅇㅋㅋ 이건 바로 한 판나온다
-맨손으로도 강한 듀오 ㅋㅋㅋ
그러나 남은 해적은 여전히 많았다. 계속 달려드는 해적을 보며 이경복은 자세를 바꾸었다.
“배운 건 써먹어야죠?”
그 뒤로 펼쳐지는 이경복의 격투는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
-저 회축 강너울 거 아님?
-아닠ㅋㅋ 받아넘기기 뭔뎈ㅋㅋ
-여기서 타게임 스킬을 쓴다고?
-미믹크리 등판잼ㅋㅋㅋㅋㅋ
-???: 저희 격투게임 아닌데요!?
-광고주는 혼란에 빠졌다!
이경복은 메탈 펀치 캐릭터들의 다양한 동작을 선보였다. 물론 게임 엔진이 다르니 공중에 뜨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해적들을 제압하기에는 충분했다.
-어우 개 아프겠다;;
-혀엉? 이거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거 맞지?
-아 ㅋㅋ 아무튼 피는 안 본다고
-이거 완전 박쥐남식 불살주의 아니냐?
-???: 살인은 하지 않는다!(불구로 만드며)
시청자들은 오히려 당하는 해적들에게 연민을 느꼈다. 이윽고 타이머가 0에 도달하자 컷신으로 넘어갔다.
탕하는 총성과 함께 대치하던 사람들 모두가 멈칫했다.
“나으리, 이제 그만 포기하시지?”
카밀라가 굳은 얼굴로 주인공을 겨누며 말했다.
“피를 보고 싶지 않으면 이 이상 허튼짓 하지 말고 순순히 항복해.”
하지만 이내 그 총구는 뒤에 있는 세라자드에게 향했다. 그녀는 총구를 보며 몸을 떨었다.
-아니;;; 왜 이러는 거냐구욧!
-이런 거 보려고 5분 버틴 줄 알아?
-스토리작가 이거 안 되겠구만!
-이걸 광고로 내보낸다고?
-설마 진짜 쏘진 않겠지?
-아 쫌! 해피하게 가자고!
채팅창에는 불만과 긴장이 뒤섞였다. 그 가운데 주인공은 숨을 고르더니 담담히 대답했다.
“카밀라, 허세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뭐?”
“너도, 그리고 이 사람들도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카밀라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뭔 헛소리야?”
“애초에 죽이려고 했다면 간단한 방법이 있지. 전부 총을 들고 쏴버리면 될 일 아닌가?”
그에 화면에는 지친 해적들을 비추었다. 그들 역시 허리춤에 총을 차고 있었다.
“칼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부 어깨나 다리만 노릴 뿐, 급소는 노리지 않더군. 다들 살인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은데, 아닌가?”
-애초에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 뭐임? 진짜임?
-칼 쓰는 건 모르겠는디요 ㅋㅋㅋㅋ
-해적들이 뭐 하기도 전에 다 뚜까팼다곸ㅋㅋㅋ
주인공의 말에 채팅창 분위기가 달라졌다.
“허? 우리가 처리한 해군이 얼마나 되는지 몰라? 나으리니까 더 잘 알잖아?”
카밀라는 조소를 흘렸지만 주인공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너는 약탈한 해적단의 소행을 자기 것으로 했었지. 그 악명이 모두 거짓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다.”
해적들이 그에 눈치를 살폈다. 카밀라는 아득 이를 물면서 총구를 그쪽으로 돌렸다.
“나으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중요한 건 지금이다! 항복이나 하라고! 진짜 죽고 싶은 거야!?”
“항복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너다.”
주인공은 그녀 쪽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해적들은 물론 박주호 캐릭터와 선원들 모두 기겁했다.
-??????
-이 과감함 무엇?
-진짜 쏘면 어쩌려고!?
-주인공 버프가나요 ㅋㅋㅋ
시청자들 역시 놀랐지만 주인공은 멈추지 않고 다시 카밀라에게 다가갔다.
“내가 못 쏠 것 같아?!”
“카밀라, 방아쇠를 당기면 돌이킬 수 없다.”
방아쇠울에 손가락이 들어갔지만 주인공은 또 한 걸음 다가갔다.
“생각해봐라. 해군 본부는 세라자드를 구하러 나를 보냈다. 그런데 내가 복귀하지 않으면? 해군 본부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게 뭔…”
“네가 누구를 상대하는지 봐라.”
주인공과 카밀라의 거리가 몇 걸음 남지 않았다. 조준이 빗나갈리 없는 거리였다.
그럼에도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세라자드는 본부와 단독 계약을 체결한 상회의 주인이고 나는 해적연합을 와해시킨 공적을 세웠다. 그 둘을 죽인 해적단을 본부가 어떻게 상대할 것 같나?”
“그… 그건…”
카밀라의 동공이 떨렸다.
시청자들도 그에 주인공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차렸다.
-지금 쥔공 죽으면 대장님 눈돌아감ㅋㅋㅋㅋ
-충신인 갓버지 아들에 그 빈자리까지 채워주고 실적도 미쳤는데 그런 부하를 잃는다?
-ㄹㅇㅋㅋ 이러면 찐 버스터콜 나올수도 이따
-군수저가 여기서 또?
-쥔공이 팩트는 진짜 잘 꽂넼ㅋㅋㅋ
주인공은 그녀 바로 앞에 도달했다.
“해적에게 아무리 악명이 중요하다고 한들, 이 정도의 악명을 원하지는 않을 거다.”
나아가 그는 그녀의 총구가 자신의 심장을 겨누도록 했다.
“카밀라, 인정해라. 네가 내 정체를 알았을 때 주도권을 잡았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때 주도권을 잡은 건 내 쪽이었다.”
주인공은 담담히 그녀를 내려보며 총신을 부드럽게 잡았다.
“지금 네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시체의 숫자들 뿐이다.”
-캬 이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
-수석식 상황분석 날카롭고?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이마리야 ㅋㅋㅋ
-그냥 넘어갔어야지 ㅋㅋㅋ
-???: 언제부터 주도권이 네게 있다고 착각한 거지?
-무슨 경화수월인 줄ㅋㅋ
카밀라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이내 총에서 떨어졌다.
“다들 물러나.”
카밀라는 짧게 말하고는 쥐고 있던 총은 주인공에게 넘겼다. 해적들이 그에 놀랐지만 이내 주춤주춤 물러났다.
“나 하나 체포하는 걸로 끝낼 수는 없겠지?”
“해군은 해적과 협상하지 않는다.”
그는 그리 말하며 카밀라를 겨누었다. 해적들은 물론 시청자들도 그에 식겁했지만.
주인공은 가볍게 총을 돌려 카밀라에게 총을 돌려주었다.
“하지만 해적인 척 하는 허풍쟁이랑은 협상을 할 수도 있지.”
“뭐…?”
의외의 행동에 모두가 놀랐다. 주인공은 담담히 카밀라에게 말했다.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나. 누구도 다칠 필요가 없다고.”
주인공은 이어 그녀에게 등을 보이며 돌아섰다.
“이야기를 하지.”
그는 단호한 어조로 말을 맺었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제안이다.”
* * *
선장실.
카밀라와 주인공이 마주했다.
“…이야기라니 무슨 이야기?”
그녀는 못 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살려줄 거면 살려주는 거고 뒤통수치려면 치는 거지. 무슨 이야기가 필요한데?”
“그 기준을 정하기 위해서다.”
“기준?”
주인공은 그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경계하는 선원들 너머 해적들과 주민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이곳 주민은 해적이 아닌 것 같더군. 그런데 당신들을 무서워하지도 않아. 이곳을 강제로 점거하고 있다면 있을 수 없는 일, 대체 무슨 관계지?”
“그게 알고 싶다고?”
“질문을 하는 건 내 쪽이다.”
“…그래, 이렇게 된 마당에 숨길 게 뭐 있겠어.”
카밀라는 그에 짧게 혀를 차며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는 같은 영지에 살았었지. 이제는 서로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야.”
“영지라고?”
주인공은 물론 시청자들도 어리둥절했다.
-엥? 해적한테 영지가 어딨음?
-영지버섯 아님?
-그 영지가 왜 나왘ㅋㅋㅋ
-해적이 영지라는 말을 쓰나?
이내 주인공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원래 귀족가문이었다는 말인가?”
“나으리도 믿기지가 않지? 해적이 된 귀족이라니.”
카밀라가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근데 사실이야. 그것도 꽤 실력 있는 탐험가 가문이었지.”
“탐험가라면 설마…?”
“그 설마지.”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전설의 해저도시, 아틀란티스를 찾아다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