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화 - 세컨드 미싱링크 (11)
한때는 귀족이었던 해적.
카밀라의 배경이 드러나자 이경복과 시청자들은 상황을 이해했다.
“아틀란티스를 찾았던 게 우연이 아니었네요.”
-일종의 가업이었던 거구연?
-ㅇㅇ 세눈나도 그렇고 다 부모님이랑 연관이씀
-대대로 해적가문인 건 좀 이상하긴 해 ㅋㅋㅋㅋ
-ㄹㅇㅋㅋ 갓피스처럼 해적이 꿈인 세계관이면 몰라도 ㅋㅋ
반면 컷신 속 주인공은 여전히 의아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왜 해적이 되어야 했던 거지? 해군에 들어올 기회도 있었을 것 같은데?”
“육지인들은 역시나 이해 못 할 거라 생각했어. 더구나 나으리처럼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은 생각도 못 하겠지.”
카밀라는 코웃음을 치며 벽에 몸을 기댔다. 이어 그녀도 창밖을 내다보며 말을 이었다.
“원래 여기는 섬이 아니었어. 육지와 이어져 있었지.”
“여기가?”
“그래.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육지와 단절됐거든.”
-요거는 대장이 얘기한 그거네
-아 원래는 영지였는데 섬이 된 거?
-아예 수몰된 것보다는 그나마 상황이 낫지
-ㄹㅇㅋㅋ 여기는 살기라도 하네
시청자들은 알폰소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카밀라가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선대 가주들도 나으리처럼 순진했지. 영지가 물에 잠기니까 주민들을 데리고 육지로 가려고 했거든.”
“…육지에서는 받아주지 않았겠군.”
“꼭 그런 건 아니야. 주민은 놔두고 귀족들은 들어갈 수 있었거든. 하지만 선대 가주께서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지.”
그 말에 주인공의 눈동자가 커졌다.
“영지민들을 버리시지 않은 건가.”
“그래, 멍청하게도 말이야. 그런데 더 멍청한 게 뭔지 알아? 가주는 여전히 육지인들을 위해 일을 했다는 거야.”
카밀라는 비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여전히 육지인들을 믿은 거지. 아틀란티스만 찾게 되면 그 공로로 모두를 받아줄 거라고 말이지. 그렇게 가주는 미련하게 다시 탐험을 떠났어.”
“…그리고 돌아오지 못한 건가.”
“현실이 해일처럼 덮쳐왔어. 그제야 남은 사람들도 정신을 차렸지. 섬은 점점 좁아지고 육지는 멀어졌지. 해적들이 난립했으니 우리도 살아남기 위해서 대책을 찾아야 했고.”
“그렇게 해적이 되었다.”
-여기도 갓버지였네 ㅠㅠ
-진짜 귀족이었던 거시고요?
-해적 에붕이들 명분 낭낭한 거시고요?
-이런 배경이면 해적 고를만 하지 ㅋㅋㅋ
시청자들이 카밀라에게 공감을 표했다. 그 사이 주인공은 씁쓸히 중얼거리다가 이내 물었다.
“듣기로는 당신이 해적단을 차지한 게 반란을 통해서라고 들었는데, 그럼 그것도 꾸며낸 이야기였나?”
“아니, 그건 진짜야.”
“하지만 이야기대로라면 반란이 일어날 이유가 없지 않나?”
카밀라는 그에 어두워진 표정으로 잠시 뜸을 들였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뭐, 이제 와서 숨길 것도 없지. 가주의 소식이 끊긴 뒤로 영지는 두 부류로 갈라졌어.”
“내부에서 분열이?”
“그래. 가주의 뜻대로 아틀란티스를 찾자는 사람들과 살기 위해서는 진짜 해적이 되어야 한다는 사람들로.”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누어졌던 거로군. 상황으로 미루어보면 당신은 온건파를 승리로 이끌었고.”
“그래, 그 뒤는 나으리도 아는 대로야. 해적들 털어먹으면서 연명하고 한편으론 아틀란티스를 찾아 다녔지.”
카밀라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틀린 걸지도 모르지. 그쪽에 붙었으면 혹시 알아? 바솔로뮤가 아니라 내가 해적연합장으로 떵떵거렸을지도?”
“아니, 그러지는 못했을 거다.”
주인공의 즉답에 카밀라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는 창밖에서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카밀라, 내 앞에서는 악당 행세를 하지 않아도 좋아.”
“무슨…”
“나는 연합회의에서 당신이 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화면에 카밀라가 배신자로 붙잡혔던 장면이 끼어들었다.
“목숨이 걸린 와중에도 너는 아틀란티스의 정보를 넘기지 않았지.”
“그게 뭐?”
“하지만 내게는 정보를 건네지 않았나.”
연합회의 장면 옆에 무저갱에서 주인공과 만났던 장면이 추가됐다.
“어느 쪽이나 네게는 목숨이 걸린 상황이었다. 그저 살고 싶어서 그랬다면 바솔로뮤에게 말해도 상관없겠지. 아니, 오히려 그 전에 바솔로뮤에게 배신자가 아니라 발견자 행세를 하면 될 일이었다.”
-오 그러네? 왜 쥔공한테만 알려줌?
-그동안 숨긴 게 아니라 이제 찾았다고 하면 환영받을 일이었구연?
-여기서 또 수석 논리가?
-퍼펙트 보이스 버프가 아니야?
-ㄹㅇㅋㅋ 갓플 목소리면 다 믿지
시청자들이 그에 수긍하는 사이 카밀라가 실소를 흘렸다.
“그거야 경황이 없었으니까 그러지. 그리고 바솔로뮤는 믿을 놈이 못 돼. 약속을 지킨다는 보장이 없잖아?”
“그렇지. 그 차이가 내가 말하고 싶은 거다.”
“뭐?”
“카밀라, 너는 해적보다 해군인 나를 믿고 있었다. 해적연합의 손에 유적이 넘어가느니 해군에게 넘기는 쪽이 낫다고 판단한 거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주인공은 확신 어린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해적행세를 하고 있다지만 사실 너는 탐험가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아틀란티스 문명을 발견하고, 그 발견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고 있는 거지.”
탐험가의 발견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발견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
“허, 나으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자유지.”
카밀라는 그의 눈을 피할 뿐, 부정하지 않았다. 시청자들은 그 모습에 웃었다.
-오 ㅋㅋ 그래서 돼지들한테 안넘겨준다고 했던거였고?
-수석답게 또 파악해버렸다 이마리야
-카누님 알고 보니 센 척하는 거였냐고 ㅋㅋㅋㅋ
-의외의 커여운 일면ㅋㅋㅋ
주인공은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이내 그는 선장실 문을 열며 턱짓했다.
“돌아가라.”
“…뭐?”
카밀라는 그 행동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진짜로 날 풀어주겠다고?”
“해적이라면 체포하겠지만 해적인 척 하는 탐험가를 체포할 수는 없지.”
이어 주인공은 옅은 미소와 함께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선장실 문이 열리니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이곳으로 쏠려 있었다.
“그리고 지금 너를 체포하면 저들은 진짜 해적이 될 거다. 해군으로서 해적의 숫자를 줄이는 일도 중요하지만, 늘리지 않는 일 역시 해야겠지.”
“그렇지만…”
“물론 이곳의 위치도 보고하지 않을 거다. 처음 교환 장소에서 모든 일이 끝난 걸로 하지.”
주인공의 확언에 카밀라는 쭈뼛거리다가 선장실을 나섰다.
“…약속은 지키는 편이 좋을 거야.”
“물론이다.”
주인공의 옆을 지나치며 그녀가 속삭이자 그는 즉답했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향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동안 고생했다.”
“뭐?”
“누군가는 해줘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카밀라는 주인공을 보며 어처구니없어 했지만 이내 웃었다.
“정말 나으리는 종잡을 수가 없네. 헛소리 그만하고 돌아가기나 해.”
그와 함께 화면이 암전되자 시청자들의 만족이 쏟아졌다.
-요거요거 쥔공도 아주 요물인데?
-ㄹㅇㅋㅋ 카누님이 혼자 악명 다 뒤집어쓰고 있는 거 알고 칭찬해준 거자너
-사람 들었돠 놨다하는게 방장이랑 똑같네 똑같아!
-카누님 툴툴대면서 입꼬리 올라가는 거 나만 흐뭇함?
-5252, 커엽노선으로 가는 거냐구웃!
이경복 역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손뼉을 쳤다.
“아, 좋네요. 이렇게 라이벌 관계가 협력체계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이제 세라자드랑 본부로 돌아가면 되겠네요!”
“항로는 설정해뒀다.”
박주호의 빠릿한 준비와 함께 범선은 본부로 향했다.
* * *
해군 본부가 보일 즈음 컷신이 이어졌다.
“이제 곧 본부네요.”
선장실에서 주인공과 세라자드가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제 계획과는 좀 달랐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저를 구출해주시러 온 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해군으로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주인공의 겸허한 대답에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슬쩍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카밀라의 비밀을 지키신다면, 제 비밀도 지켜주시겠다는 말씀이시죠?”
채팅창에 물음표가 떠올랐지만 주인공은 바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론입니다. 제가 카밀라를 해적으로 취급하지 않았으니, 세라자드 님께서도 해적과 거래를 하신 게 아니지요.”
그제야 시청자들도 이해했다.
-아 ㅋㅋ 난 또 뭐라고
-상회 평판이 중요하긴 하지
-이제 라이벌 셋이 다 한 배를 탔다니깐!
-???: 오늘부터 우리는 베프인 부분인 각이다!
세라자드는 그에 안도했지만 이내 팔짱을 꼈다.
“다행이네요. 하지만 말 뿐인 약속보다는 더 나은 게 있거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아, 퍼플 님을 못 믿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하지만 제 확신과 보답의 의미로 선물을 드리고 싶어요.”
선물이라는 말에 주인공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 반응이 만족스러운지 세라자드는 미소를 지었다.
“쇄빙선이 필요하시다고 하셨죠? 재료는 물론 개조 비용까지 제가 전담하도록 하죠.”
“그걸 전부 말입니까?”
“예, 적어도 제 목숨에는 그 정도 가치가 있다고 여기거든요.”
-돈찍누 뭔데 ㅋㅋㅋㅋㅋㅋ
-돈찍누가 돈으로 찍어주는 누나 맞죠?
-ㅔ
-세눈나! 세눈나! 세눈나! 세눈나!
-밥 사주는 누나가 아니라 배 사주는 누나였고?
-같은 ㅂ인데 차이 뭐냐고 ㅋㅋㅋ
시청자들이 그에 기뻐하듯 주인공도 웃음지었다.
“그게 마음이 편하시다면 호의는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하나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어찌 됐든 저는 대장님께 경위를 보고해야 합니다. 세라자드 님은 물론 카밀라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죠.”
“아, 그렇죠. 이야기를 맞출 필요가 있겠네요.”
“네, 그래서 저로서도 정황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자라탄에게 당한 장병들의 시신을 수습해서 가족들에게 돌려주고 싶습니다.”
세라자드의 대답에 주인공은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괴로우실 수도 있겠지만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으음, 워낙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서요. 그리고… 시신 수습은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라탄이 그 정도입니까?”
“아뇨, 자라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장소가 문제죠. 아마 퍼플 님도 아실 겁니다. 크림슨 코스트는 괴물 서식지로 유명하니까요.”
“크림슨 코스트?”
주인공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 놀란 표정을 세라자드는 다른 의미로 이해했다.
“네, 저도 놀랐어요. 괴물들이 자주 출몰한다고는 했지만 자라탄 같은 대괴수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없었으니까요.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을 때 돌아갔어야 하는 건데…”
“이상한 소리? 울음소리 말입니까?”
“아뇨, 뭔가 살아있는 게 내는 소리는 아니었어요.”
그녀의 대답에 이경복과 시청자들 모두 한 가지를 떠올렸다.
“이거는 누가 봐도 유적에서 난 그 소리죠?”
-요거는 무적권이지 ㅋㅋㅋ
-친절하게 생물이 낸 소리가 아니라고 설명까지 해주자너 ㅋㅋ
-ㄹㅇㅋㅋ 이 정도면 강조해주는 거지
-근데 크림슨 코스트에서 왜 그런 소리가 남?
그 사이 컷신은 회색으로 변하며 주인공의 사색으로 돌아갔다.
“크림슨 코스트에서 난 기괴한 소리가 유적에서 들었던 것과 같이 괴물을 불러오는 거라면…?”
나레이션과 함께 잘라낸 사진처럼 장면들이 떠올랐다.
“제조 장치가 발견된 동굴에서는 크리스탈도 같이 있었다. 어쩌면 유적에서 흘러나온 걸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는 속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괴물과 해적 때문에 해군에서 정기적으로 순찰하는 곳이기도 하다. 만약 근방에 유적이 있었다면 본부에서 모를 리가 없어.”
모순되어 보이지만 일어난 일을 부정할 수는 없다. 주인공은 그에 다른 단서를 떠올렸다.
“유적은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아. 해적연합의 무저갱처럼 입구가 무너졌거나 아예 유적 자체가 수몰되었을 가능성이 있지.”
침수된 첫 번째 유적과 승강기가 무너진 두 번째 유적의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오? 그럼 크림슨 코스트 유적은 바다 밑에 있는 듯?
-갓버지가 찾은 제조장치가 거기서 흘러나온 거네
-아 근데 소리들렸으면 완전 괴물소굴 됐을 듯
-괴물 소환장치 대체 무냐구!
시청자들도 그 추리를 따라가는 와중이었다. 곧바로 색이 돌아오며 사색이 끝났다.
“선장님! 도착했습니다!”
갑판장이 노크와 함께 항구 도착을 알렸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 화면전환과 함께 장소가 바뀌었다.
본부 건물이었는데 시간이 경과했는지 세라자드의 복장이 달랐다.
“쇄빙선 개조가 끝났어요.”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말하고는 이내 옆에 놓인 상자에서 두툼한 의복을 꺼냈다.
“이건 덤이에요. 얼어붙은 바다의 추위를 조금이나마 막아주길 바랄게요.”
“방한복이라니 선원들이 정말 좋아하겠군요. 감사드립니다.”
주인공은 그에 웃으며 방한복을 입어 보았다. 시청자들은 그 모습에 감탄을 표했다.
-뭔가 바이킹 느낌 ㅋㅋㅋㅋ
-상남자 포스 ㅁㅊㄷㅁㅊㅇ
-근데 모피는 또 고급스러움
-세눈나가 아무거나 줬겠냐고 ㅋㅋㅋㅋ
알폰소 역시 그 옆에서 흡족한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이렇게 보니 정말 얼어붙은 바다로 간다는 게 실감이 나는군.”
그러나 이내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당부했다.
“퍼플,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돌아오게. 자연 앞에서 물러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전혀 아니니까.”
“예, 걱정 감사드립니다.”
“일말의 주저도 없구만. 그저 무사귀환을 바라겠네.”
주인공은 그에 웃으며 경례를 했다. 그것으로 컷신이 끝나고 이경복과 박주호는 부두로 돌아왔다.
“아, 다음에는 3번째 유적을 탐사하러 가면 되겠네요.”
이경복은 그리 말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평소 방송을 끝내던 때보다는 약간 이른 시점이었다.
‘좀 애매하네.’
그게 문제였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손뼉을 가볍게 쳤다.
“자,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 3번째 유적이 중요한 장소처럼 보이는데 중간에 끊기보다는 내일 한 번에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으아니 방장! 이게 무슨 일이요!
-예고 없는 퍼손실 이대로 괜찮은가?!
-아니! 해적연합 발라버리고 크라켄 시참에 라이벌 동맹 결성만 하면 다야?!
-그러니까 오뱅알이라는 거죠?
-보니까 많이 하긴 했넼ㅋㅋㅋㅋ
-퍼펙트 숏컷 덕분에 짧게 느껴졌다 이마리야
-지금 끊는 게 깔끔하긴 해ㅋㅋ
시청자들은 아쉬움을 표했지만 이내 이해했다.
“그럼 저희는 내일 다시 또 찾아뵙겠습니다! 즐거운 밤 되세요!”
“시청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인사와 함께 방송이 끝났다.
* * *
방송이 끝난 후, 일본 로그 게임즈.
늦은 밤이었지만 퇴근 대신 야간 회의가 시작됐다. 그 주체는 바로 개발팀이었다.
“퍼플 씨 방송은 시작부터 놀랍긴 했지만 오늘은 좀 경우가 다릅니다.”
팀장은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운을 뗐다.
“오늘 방송은 개발팀으로서 반성을 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습니까?”
야간 회의를 열게 된 이유는 바로 이경복의 플레이 때문이었다.
“갈고리 밧줄을 무기로 사용한다. 왜 우리는 이런 방안을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다행히 나쁜 의미는 아니었다. 팀장의 질문에 몇몇 팀원들이 눈치를 살피다가 손을 들었다.
“개발 의도와 다르게 플레이어 분들이 아이템을 사용하는 사례가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월드 보스 공략에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에또, 보통은 더 보상을 받기 위해 이미 정석으로 굳은 방법에 치중하니까요.”
팀장도 그에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 이 회의의 주제는 ‘변화’였다.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해요. 오늘 방송으로 많은 플레이어들이 크라켄 공략에서 갈고리 밧줄을 무기로 ‘인식’하게 됐습니다.”
“확실히… 1페이즈 공략 속도가 기존과는 완전히 차이가 나니까요.”
“게다가 같이 참여한 시청자들도 따라하는 걸 보여줬으니, 난이도도 어렵지 않다는 게 증명됐습니다.”
이경복이 제시한 새로운 공략법이 퍼져나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 효율과 난이도를 고려하면 기존 공략법을 대체하기에 충분했다.
“저기, 역시 임시적으로 크라켄 스펙을 올려두는 편이 좋을까요?”
“월드보스 공략이 빨라지면 갑자기 재화가 너무 많이 풀려서 게임 내 시세 영향이 불가피할 겁니다. 이를 막으려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몇몇 팀원들의 의견 제시에 팀장은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 다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에?”
“이거이거, 실망이군요. 그렇게 패치를 해버리면 오히려 화를 자초하게 될 겁니다.”
팀장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십시오. 오늘 방송을 본 사람들은 퍼플 씨와 같은 경험을 해보고 싶어 할 겁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스펙을 올려서 못하게 한다? 플레이어들이 얼마나 불쾌하겠습니까?”
“아, 실례했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빨리 결론을 내고 싶은 마음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경험을 선사하면서도 재화 수급을 막을 방안을 구상해야 합니다.”
팀장은 팀원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하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은 2페이즈 때 보여준 공략법은 아무도 따라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입니다.”
“아아, 확실히.”
“그건 정말 엄청났죠.”
“사실 저희 게임 엔진으로 그런 플레이가 가능하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죠.”
팀원들이 다들 탄사를 흘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그러니 사실 1페이즈는 빨리 넘어가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회의 전 마케팅 팀과 이야기를 또 한 게 있습니다만…”
팀장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마케팅 팀에서는 오히려 크라켄 등장 주간을 늘리려 합니다.”
“에?”
“그게 무슨 말입니까?”
팀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크라켄이 많이 등장하면 재화가 더 많이 풀리게 된다. 개발팀이 우려하는 상황을 오히려 만드는 결정이 아닌가.
“이 역시 오늘 방송 때문입니다. 크라켄 공략을 일종의 챌린지 형식으로 바꾸려는 거죠. 신규 유입 플레이어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니아니, 너무 속편한 얘기지 않습니까! 그렇게 마케팅 팀 생각나는 대로 하고 문제해결은 저희 쪽에서 전부 다 하라는 겁니까?”
“팀장님, 이건 아무래도 막는 게…!”
팀원들은 즉각 반발했다. 하지만 팀장은 당황하지 않았다.
“의외로 저는 이걸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에에?”
“팀장님?”
그는 팀원들의 반응을 이미 예상했고, 그에 대한 생각도 정리를 해둔 덕이었다.
“재화가 많이 풀리는 게 꼭 나쁜 건 아닙니다. 그만큼 재화를 쓸 수 있는 요소를 만들어주면 되니까요.”
“새로운 요소요?”
“지금까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팀장이 가볍게 손을 움직이자 회의실 중앙에 갈고리 밧줄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플레이어의 인식이 바뀌면 플레이 방식도 바뀝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방식에 걸맞게 방향을 잡으면 되는 겁니다.”
이어 그가 다른 아이템을 하나 더 띄웠다. 거무튀튀한 철광석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제 갈고리 밧줄은 무기입니다. 그렇다면 그 재료를 다변화할 수 있죠. 반드시 밧줄일 필요는 없죠. ‘갈고리 사슬’이라는 아이템을 만들면 어떨까요?”
“더 견인력이 강해지니 대미지가 높아지겠군요?”
“그렇죠. 그 외에 다른 재료로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갈고리 대신 시 서펀트의 발톱이라든지 말이죠.”
팀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같이 업무를 한 경력이 있었기에 일련의 대화로 그들은 팀장이 노리는 게 무엇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과연…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 재화를 소모시키면 되는 거네요!”
“플레이어들은 원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고, 나아가 더 나은 종류의 아이템을 얻으려고 제조를 돌릴 겁니다.”
“과금전사인 플레이어분들은 또 결제를 해주실 거고요.”
팀장은 그에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다들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하네요. 바로 그겁니다. 퍼플 씨는 저희에게 새로운 아이템 카테고리 하나를 만들어주신 겁니다!”
“크랩클로의 집게를 낮은 티어로 놓죠.”
“발톱류도 좋지만 이빨이 더 강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팀원들이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하자 팀장은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퍼플 씨는 다른 인플루언서들과는 달라.’
마케팅 팀장과도 같이 일치했던 결론이었다.
이경복이 인플루언서로 미치는 영향력을 비단 광고효과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그 영향은 광고만이 아니라 게임 자체까지 이어진다.’
그의 플레이가 게임을 바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