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380화 (380/491)

380화 – 빙산의 일각 (2)

로그게임즈 본사.

이경복의 방송을 모니터링하던 개발팀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벌렸다.

“…아니, 저 빙하가 왜 부서지는 거야?”

빙하를 피해 나아가는 플레이 구간의 마지막, 빙벽 사이로 통과하는 지점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그는 팀원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원래 이렇게 설계된 게 아니잖아요? 천천히 통과하면서 섬 전체를 보면서 감탄해야 하는 건데?”

좁아진 시야 속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빙하들, 횃불을 아껴가며 마침내 다다른 빙벽.

바짝 조여진 긴장이 풀리며 서서히 빙벽을 통과해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섬의 모습을 감상하며 성취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것이 개발자의 의도였다.

“아니, 이게 원래 부서지면 안 되는 건데…”

“포격으로 부술 수 있으면 애초에 피하기가 의미가 없어지잖습니까.”

“저희 중 누구도 설정값을 건드린 적은 없습니다.”

팀원들 역시 그에 동조했다.

포격으로 빙하를 부술 수 있다면 앞서 피하는 구간이 무의미해진다. 시야가 좁아도 전방에 포격을 가하며 나아가면 그뿐이지 않나.

“아니, 그럼 대체 왜…”

“그게 아무래도 완전히 무적으로 설정된 건 아니니까요.”

“예, 플레이어가 충돌 시 같이 파손되는 오브젝트니까요. 범선과 충돌했는데 완전히 멀쩡하면 또 위화감이 들 테니…”

팀장은 그에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퍼플 씨가 빙하의 취약점을 보고 알아차렸다? 그리고 거기에 정확히 일점포격을 가했고?”

“그, 믿기 힘들지만 가능성은 아무래도 그것뿐입니다.”

“그래도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요? 이번에도 퍼플 씨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팀원들은 놀랍기는 해도 큰 문제는 아니라 생각했다. 이전 크라켄 2페이즈 공략법과 같이 다른 사람들은 따라할 수 없을 방식이 아닌가.

그러나 팀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굴렸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건 바로 패치 진행해야 합니다.”

“에?”

“팀장님?”

그의 말에 팀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빙벽 오브젝트만 쉽게 무너지도록 설정을 바꾸죠. 다행히 무점검 패치로 충분할 겁니다.”

“무점검으로요?”

“아니, 그렇게 급한 사안도 아닌데…”

그것도 서버 점검 없이 진행되는 패치, 소위 ‘잠수함 패치’라고 불리는 방식이었다.

팀장은 놀란 팀원들을 보며 설명했다.

“지금 저 빙하를 쉽게 부술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나 퍼플 씨를 보고 따라 하려는 플레이어분들은 아무것도 모를 겁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그게 왜…”

“여러분,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세요. 앞서 고생 끝에 구간을 돌파했는데 마지막 빙벽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퍼플 씨를 따라한다면?”

“따라 해도 퍼플 씨가 아니니까 빙하를 못 부수… 아!”

팀원들은 그리 말하다가 입을 크게 벌렸다.

“당연히 부서질 줄 알고 지나가려 하겠네요.”

“하지만 멀쩡하니까 그대로 충돌할 거고…!”

“으아아, 그러면 좌초되어버린다고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버리게 됩니다!”

“아아, 상상해버렸다. 골인지점 앞에서 재도전이면 엄청 화나겠는데요.”

팀원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들 이해하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그 화가 어디로 돌아오겠습니까? 바로 우리 쪽입니다. 우리가 방송을 보고 안 부서지도록 패치를 했을 거라 오해하실 수도 있어요.”

“에? 그건 정말 억울한데요.”

“그것보다는 차라리 빙벽을 부술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패치하는 게 낫겠다는 말씀이시군요.”

팀장은 그제야 말이 통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 반응을 보니 즐거워하는 시청자들도 많아요. 짜증났던 장애물을 직접 부수니까 속이 시원하다는 느낌입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설계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네, 오히려 잘 된 걸지도 모르겠네요.”

“역시 퍼플 씨는 재미에 관해서는 스페셜리스트랄까, 다시 또 배우게 됩니다.”

“그럼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팀원들도 그에 수긍하며 바로 작업을 위해 흩어졌다.

팀장은 그에 실소를 흘렸다.

‘개발자 설계대로 따르지 않는 플레이는 보통 문제를 낳기 마련인데…’

이경복의 플레이는 설계에 어긋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쁜 쪽은 아니었다.

‘과연 재미에 미친 사람인가.’

그는 오히려 더 즐거운 방향으로 게임을 이끌었다.

* * *

이경복과 박주호는 눈 덮인 언덕을 넘어섰다.

“야, 저거 같은데?”

“어디?”

이경복의 말에 박주호는 무릎까지 쌓인 눈을 파내며 고개를 돌렸다.

바위와 얼음 사이로 부자연스럽게 불쑥 솟은 눈기둥이 보였다.

-누가 봐도 수상 ㅋㅋㅋㅋㅋ

-유적 입구에 눈 쌓인 거네 ㅋㅋ

-너무 헤매면 또 빡친다니깐!

-게임 하러 온 거지 조난 체험 하러 온 게 아니라구웃!

-ㄹㅇㅋㅋ 숨겨놨으면 바로 빡종할 듯

시청자들 역시 웃으며 이경복의 의견에 동감했다. 두 사람은 바로 눈기둥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내 눈기둥 인근에 도착하니 채팅창의 웃음이 사라졌다.

“이 눈덩이들도… 자연스럽지는 않네요.”

“아무래도 사람인 것 같은데.”

눈기둥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 눈덩이가 여럿 보였다. 그런데 그 형태가 쓰러진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다가가니 컷신이 진행됐다.

“…탐험가들인가.”

주인공이 눈덩이를 털어내자 그 아래 얼어붙은 시신이 드러났다.

-Aㅏ

-카누님 갓버지랑 갓아버지 다 돌아가셨네 ㅠ

-추위를 못 버틴 건가 ㅎㄷㄷ

-근데 배로 돌아가면 되는 거 아님?

-그르네? 뭐지?

시청자들은 탄식과 더불어 의문을 표했다. 언덕을 여럿 넘긴 했지만 돌아가기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었다. 동사하느니 배로 돌아가는 편이 낫지 않겠나.

“선장님! 미싱링크입니다!”

그 사이 박주호 캐릭터가 눈기둥을 털어내 입구를 보여주었다. 주인공이 이에 심각한 표정으로 입구와 시신을 번갈아 보았다.

“이상하군. 왜 이들은 ‘밖’에서 죽은 거지?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있었나?”

이내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엎어진 시신을 조심스럽게 돌렸다. 그리고는 이내 헛숨을 들이켰다.

“어쩐지… 쓰러진 방향도 그렇고, 그냥 얼어 죽은 게 아니었군.”

시신의 가슴에는 관통상과 더불어 고인 피가 얼어붙어 있었다. 명백한 타살의 흔적이었다.

-???????

-헐? 뭐임? 누구한테 당한 거?

-여기는 뭐 살기 힘들다고 하지 않았음?

-커신 ㅎㄷㄷ

-뭔 커신이야 ㅋㅋㅋㅋㅋㅋ

-내분 일어난 거 아님?

-와씨;; 시체 머리가 왜 아래쪽인가 했더니 뒤에서 당한 거네

시청자들이 그에 각자 가설을 쏟아내는 사이 주인공이 박주호 캐릭터를 불렀다.

“왜 그러십… 아니, 이건?”

“상처가 너무 깔끔하네. 일반적인 총기로는 불가능한 일이지. 아틀란티스제 장비를 이용한 것 같아.”

“그, 그럼… 씨 위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십니까?”

박주호 캐릭터는 그에 총을 잡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새하얀 눈과 얼음 외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

“아직은 모르는 일이야. 이런 혹한에서는 그 괴물들이라도 무사하지 못할 테니. 하지만 일단 주의할 필요는 있네.”

“예, 알겠습니다.”

주인공은 그에게 경계를 맡기고 유적 입구 앞에 섰다.

“이건…”

이전 유적과 달리 문에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주인공은 바로 해독표를 꺼내 문자를 대조해보았다.

그러자 플레이어 배려를 위함인지 아틀란티스 문자가 알파벳으로 치환되었다.

“아, 이건 편의성이 좋네요.”

이경복의 짧은 감탄과 더불어 알파벳 변환이 끝났다.

[WARN?N?]

해독표에 없는 문자는 물음표로 표기되었다.

“오, 이거는 영어 잘 모르는 저도 알겠는데요? 위험한 지역인가 봅니다.”

-ㄹㅇㅋㅋ 누가 봐도 WARNING 이잖슴!

-경고지역이면 찐 중요한 장소인갑네

-탐험가들도 뭔가 이것 때문에 죽은 너낌

-킹치만 갓플한테는 환영문구로 보이고?

-아 ㅋㅋ 위험한 거 못 참지!

이경복과 시청자들과 달리 주인공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선장님?”

“아무래도 위험지역이라는 뜻 같지만…”

그는 이내 크리스탈을 꺼냈다.

“이제 와서 돌아갈 곳은 없네. 위험은 감수해야지.”

그가 크리스탈을 끼우자 구조물에 빛이 차올랐다. 그와 함께 바닥이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입구는 열리지 않았다.

‘적인가?’

이경복은 땅 밑에서 느껴지는 위협을 감지해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좀 애매했다.

“서, 선장님!”

“이건 또 무슨…!?”

그사이 눈 덮인 바닥이 열리며 거미 같은 형태의 기계들이 튀어나왔다.

그 몸체 위에는 씨 위치가 쓰던 고압수 소총이 부착되어 있었다.

-ㅁㅊ 경비장치도 있는 거?

-탐험가들이 요놈들한테 죽었네

-아틀란티스 테크 수듄 ㅎㄷㄷ

-아니 이거 이길 수 있음?

-ㅅㅂ 엄폐물이 거의 없는디

-거미쉑들 숫자 넘모 많은 거시고요?

-게다가 갓플이랑 퍼플은 자동화기도 아니라스;;

-아무튼 갓플이 해낸다구웃!

시청자들은 불안해하며 전투를 예상했다. 그런데 컷신이 끝나지도 않았고 거미 기계들도 조준만 할 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에 다들 뭔가 싶은 와중 거미 기계에서 푸른빛이 나오더니 탐지 장치처럼 두 사람의 몸을 스캔했다.

“뭐지?”

“모, 모르겠습니다.”

스캔이 끝나고 기다란 경고음이 울렸다. 그리고 그제야 컷신이 끝났다.

‘이거 싸워야 하나? 처리는 하겠는데 뭔가 좀…’

이경복은 거미 기계들에 대처할 방안을 떠올렸다. 처리 못 할 건 아니지만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왜 내가 먼저 공격해야 반격하는 거지?’

이 전투의 시작은 플레이어 쪽에 달려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에 잠시 고민하는 사이.

“이거, 싸울 필요 없을 것 같다.”

“응?”

박주호가 답을 꺼냈다.

이경복은 물론 채팅창에도 물음표가 떠올랐다.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HOXY 퍼펙트 해킹을 하려는 거신가?

-아닠ㅋㅋㅋ 무슨 퀵핵이냐고

-???: 기초적인 임플란트다

-진짜 사이보그 취급 뭔데 ㅋㅋ

그 사이 재차 스캔과 더불어 경고음이 울렸다. 다만 그 경고음의 길이가 더 짧아졌다.

“보다시피 보안 시스템이 우리가 누군지 파악하려는 거다. 그리고 이 상황은 전투로 이기라는 구간도 아니고.”

“왜 못 이겨?”

“…모든 사람들이 너는 아니니까 전투 구간이 아닌 거다.”

태연히 되묻는 이경복에게 박주호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어갔다.

“보안의 목적은 침입자 대응이지. 그러니까 우리가 침입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면 된다.”

“침입자가 아니다?”

이경복이 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가볍게 탄사를 뱉었다.

“아, 알겠다! 역시 분석은 퍼파고네.”

-아 ㅋㅋ 나도 알았다(모름)

-뭐야 ㅋㅋ 이 쉬운 걸 이제 눈치챔?(눈치없음)

-그냥 ㄹㅇㅋㅋ만 치라고

-ㄹㅇㅋㅋ

-역시 퀵핵뿐인가?

-왜 자꾸 다른 세계관 기술 가져오는 거냐고 ㅋㅋㅋㅋ

이경복은 물음표로 가득해진 채팅창을 보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설명 대신 바로 답을 보여주었다.

“지금 다들 모른 척 해주시는데. 기억하시는 분들 있을 거예요. 컷신에서 아틀란티스인 복장이 나왔거든요?”

그가 선택한 아이템은 바로 잠수복이었다. 이윽고 3번째 스캔과 더불어 변화가 일어났다.

‘주호가 제대로 맞췄네.’

거미 기계들로부터 느껴지던 위협이 사라졌다. 그것들은 스캔이 끝나자 곧바로 열린 바닥에 다시 들어가 사라졌다.

이윽고 둔중한 울림과 함께 유적 입구가 좌우로 열리기 시작했다.

-ㅁㅊ 잠수복이 신분증 같은 거였?

-아 ㅋㅋ 모른 척 하느라 혼났네

-ㄹㅇㅋㅋ 금수훈지라서 말 못한 거임

-아무튼 안 알려준 거임! 몰랐던 거 아님!

-으헤헤! 트수 바보 아이다!

-보통 공략 보고 오거나 죽고 리트하는디 ㅋㅋㅋㅋ

-근데 이 형은 싹 다 부수고 답 찾았을 듯 ㅋㅋㅋ

-이번에는 퍼파고가 숏컷을 만들어줬쥬?

시청자들의 감탄에 이경복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뇨, 싸웠으면 전부 박살나서 오히려 못 들어갔을 겁니다. 스캔을 할 기계를 남겨둬야 열리지 않겠어요? 이건 퍼파고가 잘한 겁니다.”

“싸웠으면 너는 살아도 나는 아마 죽었지 싶은데.”

박주호가 그에 질색하자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엌ㅋㅋㅋ 알고 보니 생존본능이었고?

-퍼파고 두뇌 풀가동 이유였쥬?

-???: 살려면 이 기믹을 풀어야 한다!

-???: 역시 기계는 맞아야 잘 돌아간다니깐!

-블랙기업특) 각자도생임

-아 ㅋㅋ 알아서 잘 살아야된다고

이경복은 그에 웃으며 손뼉을 쳤다.

“좋습니다. 입구도 열렸으니 본격적으로 탐사를 시작해보죠!”

두 사람은 입구로 발을 들였다.

* * *

사람의 발길이 끊긴 곳이기 때문일까. 유적 내부는 마치 새것처럼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확실히 상태가 좋네 ㅋㅋㅋ

-아주 미래지향적인 인테리어인 거시고요?

-보안도 철저해서 유지가 잘 된 덧

-근데 여긴 대체 뭐하는 곳임?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이경복과 박주호도 의문을 내비쳤다.

“뭔가 용도는 알 수 없지만 기계 장치들이 많네요.”

“음, 실험 같은 건가? 비커나 플라스크 같은 것도 보이는데.”

“어? 이건 크리스탈 같습니다. 그런데 빛은 안 나오네요.”

유적 곳곳에 남겨진 흔적들을 살펴본 결과 두 사람과 시청자들은 비슷한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연구소 같은 느낌이죠?”

“보아하니 아틀란티스 인들도 처음부터 크리스탈을 쓸 수 있던 건 아닌 것 같다.”

크리스탈 활용에 대해 연구가 진행된 게 분명했다. 그리 탐사를 이어가던 이경복은 익숙한 장치를 발견했다.

“오, 이건 제조장치네요.”

잠수복을 제작할 때 썼던 제조장치와 같은 것이었다. 이경복은 그 옆에 붙어 있는 레시피와 작은 얇은 유리판으로 눈을 돌렸다.

“이것도 알파벳으로 번역이 되긴 했는데 물음표가 너무 많아서 읽지는 못하겠네요.”

“그래도 그림이 있어 다행이군.”

“그러니까. 아무래도 이번 스토리 동안 쓸 수 있는 무기 같네요.”

이경복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레시피는 해독할 수 없지만 거기 그려진 완성본 또한 익히 아는 물건이었다.

-WA! 아틀란티스 소총!

-갓플한테 멀쩡한 총을 쥐어준다?

-이거는 뭐 ㅋㅋㅋ 끝났쥬?

-ㄹㅇㅋㅋ 이 형은 괴랄한 총도 겁나 잘 쏘자너

그 레시피로 씨 위치와 거미 기계에 부착된 고압수 소총을 만들 수 있을 터였다. 이경복은 바로 재료를 입력하고 기다렸다.

“이 유리판은 뭐지?”

“생김새는 태블릿 같은 종류처럼 보이는데.”

이경복이 유리판을 들어 가볍게 훑자 푸른 빛이 새어나와 그를 스캔했다.

이윽고 유리 위로 홀로그램 영상이 재생되었다.

“아, 이거 영상 설명서 같은 건가 보네요.”

영상 속에는 아틀란티스 인들이 고압수로 물건을 자르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아니 ㅋㅋ 이거 진짜로 공업용이었네?

-공업용이 살발하긴 해

-공업용 도구를 무기로 쓰는 건 국룰이지ㅋㅋㅋ

-리빙포인트) 빠루는 무기가 아니다

-뭔솔? 그거 대외계인 병기 아니었음?

잠시 영상을 살피는 동안 총의 제조가 끝났다. 이경복과 박주호는 장비를 바꾼 후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문제가 생겨도 쉽게 당하지는 않겠네요.”

“아마 괜히 있는 건 아니겠지. 쓸 일이 있을 것 같다.”

시청자들도 그에 수긍했다. 무기를 준다는 건 적어도 한 번은 싸울 일이 생긴다는 의미가 아니겠나.

이경복은 이어 탐사를 이어갔다. 이전 유적과 달리 일방향 진행이 아니라 열린 공간이 많았지만 문제는 없었다.

신기를 통해 느껴지는 긍정적인 기운을 따르면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아, 여기도 영상 장치가 있네요?”

두 사람은 곳곳을 탐색하며 유리판처럼 생긴 영상 장치를 확보했다. 그 모두 한 아틀란티스인이 기록한 듯 카메라를 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음,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그 내용을 알 수는 없었다.

-문자가 아니라서 번역이 안되는가 봉가

-그래도 인벤 보관 되는 거 보면 나중에 어떻게든 쓸 듯?

-일단 챙겨두라 이마리야

-통역되면 뭔가 떡밥 설명해줄덧 ㅋㅋㅋ

영상장치들은 다른 물건들과 달리 인벤토리에 들어갔다. 이경복은 이내 재차 신기를 가늠해보고 방향을 잡았다.

“승강기다.”

“오, 그러네.”

그곳에는 커다란 승강기가 있었다. 그 문에도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P?W?R P?AN?]

이번에도 파편화된 번역이었다.

“다행히 경고는 아니군.”

“음, 단어 2개를 합친 건가?”

이경복은 이에 어깨를 으쓱였다.

“위쪽은 얼추 다 둘러본 것 같습니다. 다른 길은 없으니까 한 번 내려가 볼게요.”

두 사람은 바로 승강기를 작동시켰다. 웅하는 울림과 함께 승강기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점차 빨라지더니 이윽고 주변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뭔가 싶은데 승강기 벽면에 난 창 너머로 밖이 보였다.

“우와, 뭐야 이거?”

“심해로 내려가는 수중 엘리베이터였군.”

승강기에서 나오는 빛으로 확보된 시야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친;;; 아무것도 없는데 왜 더 무섭냐

-와씨 이거 승강기 박살나면 끝 아님?

-잠수복 있어서 괜찮지 않음?

-어우 ㅅㅂ 난 절대로 못들어갈 듯

-오! 아래에 뭐 있음!

어느 정도 승강기가 내려가자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래쪽에서 푸른 빛이 보였다.

이에 두 사람 모두 시선을 내리자 절로 감탄이 터졌다.

“왜 연구소가 여기 있나 했더니…”

“크리스탈 매장 지대였던 건가.”

바닥 전체가 아틀란티스 크리스탈로 뒤덮여 있었다. 승강기는 그 중앙에 세워진 건물로 향하고 있었다.

크리스탈 지대에는 거미 기계들이 달라붙어 고압수 총으로 크리스탈을 잘라내고 있었다.

-WA! 유료재화!

-ㅁㅊ 저게 다 얼마치임?

-저거 캘 수 있는 거?

-이게 그 P2E게임인가 그거냐?

-바다? 게임? HOXY?

-미쳤냐고 ㅋㅋㅋㅋ

-야씨 ㅋㅋ 이거 숙제야 숙제!

-그런 게임 아닙니다^^

그 사이 박주호가 가볍게 손뼉을 치며 고개를 들었다.

“아, 이제 알겠다.”

“뭘?”

“그 문자 뜻! 저 아래에 있는 건 발전소다 POWER PLANT말이야.”

“오? 크리스탈로 발전을 한다?”

두 사람의 말에 시청자들도 동감했다.

-오 ㅋㅋㅋ 딱이네 ㅋㅋ

-역시 명문대생 퍼파고 ㅎㄷㄷ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된다니깐!

-크리스탈 활용도 ㅁㅊㄷㅁㅊㅇ

-???: 크리스탈로 물을 끓여 터빈을 돌릴 것이다

-아닠ㅋㅋ 뭐만 하면 터빈 돌리기냐고 ㅋㅋㅋㅋ

그에 이경복도 웃으며 눈을 내렸다.

“야, 나도 하나 찾은 거 있다.”

“그래? 뭐 다른 게 있나?”

“저기 발전소 옆에 튀어나온 거 보임?”

“…으음.”

박주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크리스탈 빛이 강해 잘 보이지 않았다.

“잘 보면 거기 약간 컨테이너처럼 생긴 거 있거든?”

“일반인 눈으로 보려면 좀 더 기다려야겠는데.”

박주호의 말대로였다.

승강기가 조금 더 하강하고 나서야 그는 이경복이 지칭한 물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거… 혹시?”

“생김새가 딱 그거지?”

기다란 컨테이너 같은 형태와 그에 붙어 있는 추진 장치, 그리고 그 아래에 일자로 붙어 있는 굵은 쇠막대들.

그 모습에서 유추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오? 설마 저거 철로임?

-이거 해저열차네ㅋㅋㅋㅋㅋ

-여기가 노선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 아니었음?

-괜히 보존이 잘 된 곳으로 설정한 게 아니었고?

-어쩐지 범선을 보내버리더니 이거 때문이었네 ㅋㅋㅋ

그것은 아틀란티스 인들이 이용하던 해저열차가 분명했다.

그리고 그 종착지는 분명.

“아무래도 이번에 아틀란티스까지 가는 모양이네요.”

모두가 찾고 있던 전설의 도시, 아틀란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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