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화 - 빙산의 일각 (5)
로그게임즈 사옥.
방송을 모니터링 하던 개발팀 모두가 탄사를 뱉었다.
“에? 에에?! 이거 진짜입니까?”
“레비아탄 솔로 공략이라니…!”
“아니아니, 크라켄 먹물 주머니를 이렇게 쓴다고요?”
“정말 퍼플 씨는 엄청나네요! 랄까, 퍼펙트 상식이라는 밈이 왜 붙었는지 실감이 됩니다.”
레비아탄이 익사하는 장면에서는 너나 할 거 없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날 정도였다.
팀원들의 경악에 가까운 감탄에 팀장은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내 아차 싶은 표정으로 눈을 돌렸다.
“이거, 레비아탄이 여기서 사망하면 이후에 뭔가 꼬이는 건 없습니까?”
그는 스스로도 기억을 더듬으며 물었다. 애당초 레비아탄은 공략을 염두에 두지 않은 캐릭터였다.
“제 기억에는 없는데 크로스체크가 필요한 사안이니까 다들 생각해보세요.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진짜 큰일입니다!”
“아, 옛!”
팀원들 역시 긴장했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굴렸다. 하지만 그들 모두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에또, 제가 기억하기로는 없습니다만…”
“아, 저도 딱히 문제 될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레비아탄은 이 구간에서만 등장하는 캐릭터니까요.”
“향후 월드 보스로 업데이트 계획은 있는데, 현재로서는 연계 사항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속속 돌아오는 팀워들의 대답에 팀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테츠야 씨? 직접 확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팀장은 확실히 하기 위해 막내 팀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막내 팀원은 그에 아쉬운 표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보았지만 이내 자리를 떠났다.
그 사이 다른 팀원이 슬쩍 눈치를 보며 물었다.
“저기, 팀장님. 이것도 혹시 수정 사안이 있을까요?”
“수정이요? 으음…”
팀장은 그에 잠시 고민했지만 곧 손을 흔들었다.
“아니, 이건 그대로 놔두어도 문제는 없을 겁니다. 크라켄 먹물 주머니를 여기서 쓸 사람은 퍼플 씨 밖에 없을 테니까요.”
“아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영구 성능 향상 아이템을 이렇게 쓴다니, 이건 정말 상식 밖이니까요.”
“저도 정말 놀랐습니다. 따로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순수하게 재미를 위해, 공략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써버리신 거니까요.”
“뭐어, 그러니까 재미에 미친 사람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요? 퍼플 씨는 ‘진짜’니까요.”
팀원들이 안도하며 말을 쏟아내자 팀장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습니다. 뭐랄까, 레비아탄 챌린지라고 할까요? 이걸 따라하는 플레이어분들이 있다면 저희로서는 오히려 좋은 일입니다.”
“좋은 일이요?”
“그럼요. 애초에 저희가 크라켄 먹물 주머니 배급량을 조절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건… 파워 인플레이션을 조절해야 하니까요.”
바로 나온 대답에 팀장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겁니다. 그런데 지금 퍼플 씨처럼 아이템을 ‘소모’해버리면? 저희는 인플레이션 부담이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아, 그러네요!”
“이거이거, 이 챌린지는 플레이어 분들이 적극 참여해줬으면 좋겠는데요.”
팀원들도 상황을 이해하고 미소지었다. 이어 그들은 안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오늘도 야근인가 싶었는데 다행입니다.”
“아아, 참아주세요. 연일 야근은 무리라고요.”
“이상하게 다른 광고 방송이랑 다르게 퍼플 씨 방송이 길게 느껴지는 이유인 것 같아요.”
아무리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해도 잔업과 야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늘은 모니터링만 하고 퇴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오늘이 4일 차라고 했었죠?”
“새삼 생각하니까 정말 놀랍네요. 이제 4일이라니?”
“4일 만에 퍼플 씨가 저희에게 준 일감이 대체 얼마인지…”
“설마 4일 차에 아틀란티스까지 도착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팀원들의 잡담에 팀장은 눈을 굴렸다.
“원래 평균적으로 어느 정도 걸렸었죠?”
“아, 스토리만 진행해도 보통 사람들은 1달은 걸립니다. 소속 변경하는 플레이어들도 최소 2주는 기본일 거예요.”
“그런데 퍼플 씨는 스토리만 진행한 것도 아니잖아요? 월드 보스까지 잡으셨는데.”
“헤에, 그것도 그냥 클리어가 아니죠. 기여도 1위로 공략하셨잖아요? 그러려면 최소 반년은 잡고 스펙을 올려야 할걸요?”
“그거도 어느 정도 과금 했을 때 기준 아닙니까?”
바로바로 돌아오는 대답과 함께 팀원들 모두 재차 탄사를 흘렸다.
“와, 무과금 4일 차로 이런 진행은 정말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진짜 말도 안 되네요. 아니아니, 정말 이모티콘처럼 이게 말이 되나 싶어요.”
“아, 제가 말하려고 했는데! 카니우마콘!”
팀장은 그에 너털웃음을 흘렸다.
“정말 방송에서 하는 말이 틀린 게 없습니다. 퍼펙트 숏컷은 진짜네요.”
그에 다들 동감하며 다시 스크린으로 눈을 돌렸다.
“이런 속도면 엔딩도 금방일 겁니다.”
* * *
열차가 안으로 들어서자 컷신으로 넘어갔다.
플랫폼에 해저열차가 정차하자 문이 닫히며 해수가 배출됐다. 그 후에야 입구가 열리고 두 사람이 내릴 수 있었다.
“겨우 도착했군.”
“이번에는 진짜 죽는가 싶었습니다.”
두 사람의 말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정작 죽은 건 레비아탄이었고?
-이건 레비아탄 살아있는 기준 컷신일 듯 ㅋㅋㅋ
-아 ㅋㅋ 갓플이 솔플 해버렸다고 ㅋㅋㅋ
-캐릭터들도 퍼펙트 상식 탑재하게 만들어야 된다니깐!
그리 웃는 와중 불쑥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틀란티스 도착 환영.>
넵튠의 목소리에 분위기가 일변했다.
“넵튠…?!” “선장님…!”
-무친;;; 여기도 있는 거?
-아 아틀란티스에도 시스템이 있는 게 당연하네 ㅋㅋㅋㅋ
-5252, 안심할 틈이 없는 거냐구웃!
-바로 싸우나?
주인공은 물론 시청자들도 같이 긴장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넵튠의 말은 예상 밖이었다.
<발전소 연결 두절. 문제 원인, 설명 요청.>
이상하게도 넵튠은 적대적이지 않았다. 주인공은 그에 어리둥절했다.
“선장님, 이게 무슨 뜻일까요?”
“안심시키려는 건가? 아니, 그럴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주인공은 총구를 돌렸다.
그에 따라 화면이 돌아가며 플랫폼 곳곳에 돌아다니는 거미 기계들을 비추었다.
“만약 우리를 공격하려고 했다면 말을 걸 필요가 없었을 테지.”
“그렇다면 대체…?”
“어쩌면 이 넵튠과 발전소에 있던 넵튠은 각각 다른 인물인 것 같네. 어쩌면 이름이 아니라 관리자 직책을 넵튠이라고 부르는 걸 수도…”
주인공이 그리 추론하는 사이 이경복과 시청자들은 상황을 파악했다.
“넵튠은 동기화가 안 되는 것 같네요?”
-무친 ㅋㅋ 백업을 안 하는 거냐구웃!
-동기화 설정 꺼놓으면 피 보는데 ㅋㅋㅋ
-와 주인공은 우리처럼 아는 것도 아닌데 꽤 비슷하게 추리했네
-수석행동 해버렸다 이마리야 ㅋㅋ
그 사이 주인공은 결정을 내렸다.
“일단은 아무렇지 않은 척 하게.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니까.”
“예, 알겠습니다.”
박주호 캐릭터와 속삭이던 그는 허공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원인은 모릅니다. 그보다 지상으로 나가고 싶은데 방법을 알고 있습니까?”
<대피 경로 검색 중…>
넵튠의 답은 금방 돌아왔다.
<긴급 피난용 포드 잔존. 최적 경로 안내 시작>
그와 함께 허공에 홀로그램 지도가 투사됐다. 주인공은 그에 안도하면서 지도를 살폈다.
하지만 이내 그는 눈을 살짝 찡그렸다.
“넵튠, 더 빠른 길이 있는데 왜 돌아가게 하는 겁니까?”
넵튠이 알려준 경로는 최단 경로가 아니었다. 지도상으로는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
-넵튠쉑ㅋㅋㅋ 함정 파려다가 들켰쥬?
-와씨 ㅋㅋ 난 그런갑다 하고 있었는데
-5252, 긴장 늦추지 말라구웃!
-으디 감히 수석의 눈을 속이려 하냐 이마리야
시청자들은 그에 유쾌하게 웃었지만 넵튠의 답에 더 웃을 수 없었다.
<해당 경로 보수 진행 중. 현재 878년 경과.>
“…뭐라고?”
“878년?”
이게 무슨 말인가? 무려 878년 넘게 고치고 있다니? 모두가 당황하는 사이 홀로그램 영상이 투사됐다.
“이건… 아틀란티스 인들?”
“세상에! 정말 사람이 살았었군요!?”
영상 속에는 아틀란티스의 일상이 담겨있었다. 평소 잠수복을 입고 있는 것만 제외하면 현대의 삶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익히 아는 그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대 생물 접근 중! 거대 생물 접근 중!>
넵튠의 목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경보가 울렸다. 아틀란티스인들도 처음 겪는 상황인지 다들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굉음과 함께 도시의 유리 외벽이 박살났다.
-헐? 레비아탄 아님?
-???: 형이 거기서 왜 나와?
-벽이 무슨 지점토인줄 ㅎㄷㄷ
-갓플은 저걸 혼자 잡은 거?
-???: 레비아탄 씨 알고보니 무서운 괴수였네!
-아니 ㅋㅋㅋ 그냥 봐도 알잖슴ㅋㅋㅋㅋ
레비아탄의 습격에 모두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도시가 붕괴한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와… 순식간이네요.”
이경복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무너진 외벽을 통해 바닷물이 순식간에 들이닥쳤다.
건물은 그나마 버텨냈지만 그 외의 모든 것들이 휩쓸렸다. 다행히 격리조치가 끝나자 침수가 멈추고 음파를 버티지 못한 레비아탄이 도시를 떠났다.
-이때부터 음파가 안 통했는갑다
-ㅁㅊ 전부 다 죽은 거?
-헬맷 쓰기도 전에 휩쓸려버린 듯
-완전 디스토피아였네 ㅎㄷㄷ
부유하는 잔해들과 사람들을 보여주던 화면은 이내 팟하고 사라졌다.
“맙소사… 선장님, 이건…”
“역시 바다 밑에서 사람이 사는 건 무리라는 증거지.”
주인공은 굳은 표정으로 말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대장님께 이 사실도 같이 전해드리는 게 좋겠네. 이만 가도록 하지.”
두 사람은 넵튠이 알려준 방향의 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막 플랫폼을 벗어나려는 찰나였다.
<재방문 요망.>
다시 돌아오라는 넵튠의 말에 주인공은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내 그는 몸을 돌려야 했다.
<도시 수리 완료 및 발전소 정상화 약속.>
“발전소 정상화…? 그게 무슨 뜻입니까?”
<크리스탈 발전소 우선순위 높음. 현재 보조 발전 가동 중. 에너지 고갈 전 발전소 가동 필수.>
그 물음에 넵튠은 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경복과 시청자들은 상황을 바로 알아차렸다.
“아, 이러면 그냥 탈출은 못 하겠네요.”
-발전소만 멈추는 게 끝이 아니었네 ㅋㅋㅋ
-어쩐지 발전소는 좀 쉽게 넘어간다 했다 ㅋㅋㅋ
-쉬운 건 갓플과 퍼파고 조합 때문 아니냐구웃!
-쉬웠음! 아무튼 쉬웠음!
-에붕이들이었으면 길막당해서 붕쯔붕쯔 하다가 리트했음 ㅋㅋ
-이거 넵튠을 정지해야 끝나는 거네 ㅋㅋㅋ
-ㄹㅇㅋㅋ 발전소 수리하면 말짱도르마묵이자너 ㅋㅋ
-도르마묵은 또 뭔데 ㅅㅂㅋㅋㅋ
-???: 도르마묵! 거래를 하러 왔다!
-무근본 드립추 ㅋㅋㅋ
관리 시스템 자체를 멈추지 않으면 결국 해수면 상승이 계속될 터였다.
주인공 역시 비슷한 판단을 내렸다.
“…넵튠, 당신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중앙 통제 관리소 안내.>
새로운 경로가 지도에 표기됐다. 주인공은 그를 살펴보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넵튠, 시민 불편 접수 상시 환영.>
닫히는 문 뒤로 넵튠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 * *
컷신이 끝나고 이경복과 박주호는 통로를 따라 움직였다. 나름 긴 통로였지만 심심하지는 않았다.
“와, 야야. 저거 봐!”
“음, 우리가 봤던 레비아탄 습격이 처음이고 그 뒤에도 몇 번 더 당한 모양이군.”
통로 밖으로 무너진 도시의 풍경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열차를 타고 왔을 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반대쪽이었다.
-개같이 멸망(진짜임)
-코이츠www전설의 도시가 아니라 전설의 폐허가 되어버린www
-아니 ㅋㅋ 이 형은 무슨 관광 첨하는 사람처럼 신났네 ㅋㅋㅋ
-ㄹㅇㅋㅋ 나였으면 유리 깨질까봐 가까이 가지도 못할 듯
-그와중에 혼자 또 분석하는 퍼파고 ㅋㅋㅋㅋ
-무슨 직업병이냐고 ㅋㅋㅋㅋ
그리 두 사람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며 나아가기를 잠깐. 다음 통로에 들어선 두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딥원?!”
“씨 위치도 있다.”
-전투각?
-으아니! 여기 왜 괴물이 돌아다니냐구웃!
-침수됐으니까 자리 잡은 듯?
-넵튠쉑 왜케 무능함?
-ㄹㅇㅋㅋ 괴물들 버젓이 돌아가게 왜 놔두는데 ㅋㅋ
둘은 바로 문 뒤로 엄폐했다. 이어 박주호가 적을 조준했지만 이경복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잠깐, 뭔가 좀 이상한데…”
“왜?”
이경복은 그에 미간을 찌푸렸다. 일단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구경하느라 잠깐 정신이 팔렸다고는 해도 알아차리는 게 정상인데.’
이 괴물들의 존재를 미리 알 수 없었던 원인이 있었다.
‘역시 이놈들한테서는 위협이 전혀 느껴지질 않아.’
그의 신기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종류는 ‘위협’이었다. 그런데 이 괴물들은 불길한 느낌이 하나도 없었다.
“왜 아무런 반응이 없지?”
“…그러고 보니 이상하군. 놈들도 우릴 봤을 텐데?”
이경복의 말에 박주호는 물론 시청자들도 의문을 품었다.
-오? 그러네?
-달려들어야 되는 게 정상 아님?
-씨 위치도 멀뚱멀뚱히 서 있고?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5252, 또 패기가 발동해버린 거냐구웃!
-HOXY 버그?
이경복은 잠시 고민하다가 앞으로 나왔다.
“하나 실험해 볼게.”
“뭐? 야…!”
박주호가 그에 눈을 크게 떴지만 이경복은 손을 들어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시청자들도 그에 물음표로 채팅창을 채웠지만 이내 다른 의미로 물음표를 또 쳐야 했다.
-아니? 대놓고 서 있는데 왜 공격 안함?
-이 악물고 못본 척하는 거 아님? ㅋㅋㅋ
-???: 알아보는 순간 죽는다!
-갓플한테 덤비면 죽는 거 아는 거였냐고 ㅋㅋㅋㅋ
-알고보니 생존본능이었던 거시고요?
-진지빨고 이거 버그 아님?
-버그무새 쳐내!
-용서되는 무새는 퍼무새 뿐이다앗!
이경복이 더 가까이 가니 통제권이 사라졌다. 준비된 컷신이 있었다.
“선장님…?”
“괜찮네, 이리로 오게.”
주인공의 부름에 박주호 캐릭터는 갈등하다가 결국 옆으로 왔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자세히는 모르겠네.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사냥감으로 보이는 것 같지는 않아.”
두 사람은 눈을 뒤룩뒤룩 굴리는 딥원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안전한 것 같아. 하지만 경계는 늦추지 말게.”
“늦추라고 하셔도 그 명령은 거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전이 담보된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은 바짝 긴장한 채로 통로를 지나갔다.
총기로 무장한 씨 위치도 이리저리 머리를 흔들기만 할 뿐 총구를 겨누지는 않았다.
“아마도… 아틀란티스 인의 연구가 성공을 거둔 게 아닌가 싶네.”
“연구요?”
“괴물들을 연구하던 거 기억하나?”
이내 컷신 사이로 장면 하나가 끼어들었다. 괴물이 캡슐 안에 들어가 있는 영상이었다.
-아 맞네 ㅋㅋ 괴물들 연구 했었지?
-연구로 뭔가 해버린 건가?
-여기 있는 애들은 공격성을 없앴다든지?
-아니면 훈련법을 발견한 걸지도?
시청자들도 그에 기억을 되새겼다. 주인공은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어쩌면 이 잠수복을 입고 있으면 안전한 걸지도 모르네. 계속 보는 걸 보면 동족 같은 걸로 인식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동족이요? 하지만… 그랜드본스에서 놈들은 저희를 쫓아오지 않았습니까?”
이어지는 반론에 다시 장면 하나가 끼어들었다. 잠수복을 갈아입은 뒤 좁은 수로를 통해 탈출하던 주인공의 모습이었다.
그에 시청자들도 헷갈리려는 순간이었다.
“…내 아버지께서는 많은 걸 알려주셨지. 그중에는 물고기 떼의 습성도 있었어.”
“물고기 떼요?”
“그래. 물고기 떼가 방향을 어떻게 정하는지 아나?”
뜬금없는 주인공의 말에 박주호 캐릭터는 물론 시청자들도 의아해했다.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바로 선두를 쫓는 거야. 뭔가 문제가 생기면 파악할 새도 없이 앞에 있는 물고기만 보고 헤엄치는 거지.”
“그건 갑자기 왜…”
“당시 상황을 떠올려 보게. 그 기이한 소리에 크라켄이 올라오고 있지 않았나? 그런데 실제로 그 소리는 괴물들을 부르는 게 아니라 쫓아내는 소리였지.”
“예, 하지만 소용이 없었죠.”
“그래.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거대 해양 생물, 대괴수 용이었어. 딥원이나 씨 위치 같이 작은 괴물들이 영향을 받는지는 알 수 없네.”
주인공은 그리 말하며 서서히 총구를 내렸다.
“어쩌면, 그때 그 괴물들은 소리에 이끌린 게 아니라 크라켄을 피해 도망쳐 온 걸지도 몰라.”
이어 또 하나의 장면 하나가 끼어들었다. 좁은 수로를 통해 도망치는 주인공의 뒤로 끼어버린 괴물들의 모습이었다.
“나를 동족으로, 무리의 선두로 생각하고 쫓아온 거야.”
그 말과 함께 두 사람은 무사히 통로 끝에 도착했다.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오? 그럼 잠수복 입고 있으면 안 맞는 거?
-선공만 안 하면 괜찮은 덧 ㅋㅋ
-이거 싸울 필요가 없는 거였네 ㅋㅋ
-괜히 지레 겁먹고 공격했으면 쓸데 없이 싸울 뻔 ㅋㅋ
-와 ㅋㅋ공략 본 것도 아닌데 이걸 그냥 알아차리네 ㅋㅋㅋ
-무친 ㅋㅋㅋ 이게 어떻게 첫트?
-또 퍼펙트 숏컷 해버렸다 이마리야 ㅋㅋ
시청자들이 흡족해하는 사이 통로를 나서며 자연스럽게 통제권이 돌아왔다.
“싸우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거로군.”
“그러게. 와, 여기는 또 뭐지?”
이경복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창고처럼 거대한 선반이 나열된 공간이었다. 이내 선반 안쪽을 확인한 그는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여기는 캡슐밖에 없네?”
“이쪽도 마찬가지다. 그것도 전부 깨져 있고.”
반대편에 있던 박주호도 선반을 확인하며 말했다.
-이 정도 숫자면 그거 아님?
-ㅇㅇ 냉동캡슐인 듯
-로테이션 돌면서 냉동수면하는 곳이었고?
-와씨 ㅋㅋ 진짜 많긴 하네
-습격 때문에 깨진 건가?
-근데 통로랑 방 자체는 멀쩡한 것인디요?
시청자들은 아틀란티스 인들의 냉동캡슐이라 생각했다. 이경복도 그에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근데 이거, 괴물들 연구에 쓰였던 캡슐도 이렇게 생긴 거였거든요? 아까 잠깐 컷신에서 나온 거 기억하시죠?”
“괴물들이 날뛰지 않게 냉동수면 상태에서 연구를 했을 수도 있지.”
“음… 그런가?”
박주호가 그에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시청자들도 그에 동조하자 이경복은 일단 넘어갔다.
그보다 신경 쓰이는 게 하나 더 있었다.
“아, 영상기록이네요.”
신기에 감지된 물건이었다. 그는 바로 영상을 재생해보았다.
<의회의 결정은 결국 틀렸습니다.>
영상 속에 나온 건 이전에 봤던 연구소장이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는지 얼굴에 주름이 짙었다.
그때와 달리 통역이 된 상태였기에 바로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녹인 건 빙하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 잠들어있던 토착생물들이 깨어났어요. 그 괴물들이 아틀란티스를 붕괴시켰습니다…!>
이어지는 그의 말에 시청자들은 탄사를 흘렸다.
-????
-와씨 ㅋㅋㅋ 대괴수를 깨운 거?
-아 ㅋㅋ 하긴 대괴수 돌아다니면 해저도시 지을 생각을 안 했겠지
-바로 인과응보해버렸고?
-사전답사의 중요성.avi
연구소장은 깊이 한숨을 내쉬고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히 살아남은 시민들은 모두 피난했습니다. 지상에서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그건 그들이 걱정할 문제겠지요. 피난용 포드가 하나 남았지만… 저는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내 카메라를 살짝 들어 뒤쪽을 비추었다. 선반에 가득한 캡슐 안에는 사람들이 잠들어 있었다.
<아무도, 아무도 이들을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저는, 저는 이 많은 사람들을 버리고 도망칠 수 없었습니다. 그대로 놔두면 모두 죽을 테니까요!>
연구소장은 일어서서 이리저리 서성이며 머리를 헝클었다. 내적갈등이 심한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저도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또 괴수들이 나타나면 여기도 침수될 거예요. 100년의 기다림 끝에 깨어난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끔찍한 고통에 익사할 거라고요!>
그리 목소리를 높인 연구소장은 카메라 쪽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해동권한은 의원들에게만 있습니다! 제게, 제게 남은 방법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누군가 이 기록을 보신다면 부디 알아주십시오.>
그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했다.
<우리는 그저, 살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어 화면이 깜빡이며 새 기록이 재생됐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지 연구소장의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나 있었다.
<넵튠, 명심해. 시민들의 생존이 최우선이야. 만약 내가 살아남는다면, 모든 냉동캡슐에 동일한 조치를 시행해.>
<명령 입력 확인.>
넵튠의 대답에 그는 미소 짓더니 이내 스스로 빈 캡슐에 들어섰다. 이윽고 푸른 캡슐이 녹색 빛으로 변했다.
“어? 멈췄나?”
“영상을 좀 뒤로 넘겨야 할 것 같은데.”
마치 정지한 것처럼 보인 영상에 이경복은 빨리감기를 눌렀다. 영상이 빠르게 지나가다가 이내 저절로 정상 속도로 재생됐다.
“아…”
“뭐…?”
이경복과 박주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연구소장이 들어가 있던 유리창이 박살나더니 이내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촉수가 튀어나왔다.
<생존 확인. 명령 수행.>
이어지는 넵튠의 목소리와 함께 다른 캡슐 모두가 녹색 빛으로 변했다.
이에 모두가 상황을 파악했다.
아직 아틀란티스 인들은 존재했다.
-?????????????
-무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래 괴물이 아니었다고?
-유전자 조작 같은 건가 보네 ㅋㅋㅋ
-와씨 ㅋㅋ 이래서 유적 이름이 미싱링크였구낰ㅋㅋㅋ
-괴물들이 동족으로 인식하는 게 아니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애초에 아틀란티스 인들이었던 거시고요?
그들은 살아남았다.
인간과는 다른 형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