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384화 (384/491)

384화 - 노스탤지어 (1)

바다괴물은 원래 사람이었다.

짧지만 충격적인 진실을 담은 영상이 종료되자 컷신으로 넘어갔다.

“사람을 괴물로 만들다니…? 아틀란티스 인들은 도대체…”

“저는 지금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주인공과 박주호 캐릭터는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돌렸다. 새삼 통로에 서성이는 괴물들이 다르게 보이는지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렇다고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네. 새삼 느끼지만… 기술이라는 게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로군.”

주인공은 씁쓸히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살아남기 위해서라지만 이걸 사는 거라고 할 수 있는가.”

심정이 복잡해진 듯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이건 좀 그렇긴 하네요. 게다가 냉동수면하던 사람들은 무슨 죄에요? 죽더라도 사람으로 죽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텐데.”

그 틈을 타 이경복은 간단히 멘트를 쳤다.

“그 연구소장이 멋대로 유일한 선택이라고 했던 건 좀 별로인 것 같습니다.”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만이 아니라 감상을 공유하는 일도 시청자들이 바라는 컨텐츠였다.

-ㄹㅇㅋㅋ 연구소장이나 의회나 그나물에 그밥임

-지맴대로 결정해놓고 킹쩔수 없었다 ㅇㅈㄹ 하는 거ㅋㅋㅋ

-현실에서도 꽤 보이쥬?

-알고보니 생활밀착형 빌런이었네 ㅋㅋㅋ

-혀엉! 호방하게 욕 한 번 지르자!

-아닠ㅋㅋ 숙제인데 뭔 욕을 박어ㅋㅋㅋ

-업계에서는 포상입니다만?

잠시 후, 박주호 캐릭터가 조심스럽게 정적을 깼다.

“저, 선장님… 그럼 이제 어떡합니까?”

“뭘 말인가?”

“이 괴물들도 원래 사람이었다니 처리하기가 좀…”

“…이해하네. 진실을 알고 나니 꺼려지는 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나 주인공은 이내 기준을 바로 잡았다.

“허나 그건 아주 오래전에 일이지. 지금 돌아다니는 이 괴물들은 그 후손들일 테니 사람이라고 보기는 힘드네.”

“아… 하긴, 몇백 년이 지났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렇지. 게다가 씨 위치는 그나마 도구를 사용할 지능이 있긴 하지만 딥원이나 크랩클로는 본능만을 따르지. 아마 괴물로 변하면서 지성을 잃게 된 걸 거야.”

죄책감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주인공의 정리에 박주호 캐릭터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 통로 끝에 도착했다.

“웃…!”

“어우, 무슨 냄새가…!”

문을 열자마자 두 사람은 얼굴을 찡그리며 입과 코를 막았다. 안에서 풍겨오는 악취 때문이었다.

“다행히 아주 심한 냄새는 아니에요. 약간 시큼한 정도인데 바로 사라지네요.”

이경복이 오해가 없도록 설명했다. 추위처럼 작중 캐릭터와 플레이어가 느끼는 정도는 전혀 달랐다.

이내 화면에 악취의 원인이 잡혔다. 널찍한 공간 곳곳에 제조 장치가 기둥처럼 세워져 있었다.

-어우 난 또 쓰레기장인 줄 알았네

-제조장치가 지금 계속 돌아가고 있는 건가?

-음식물이 썩어서 냄새가 나는 듯?

-이거 도시가 방치돼서 그런 거네

그 기둥을 중심으로 산처럼 물자들이 쌓여있었다. 중간중간에 원래 형체를 알 수 없는 음식 덩어리들이 뭉개져 있었다.

“아마 아틀란티스 인들에게 배급되는 물자들 같습니다.”

“음… 괴물들에게는 필요가 없는 물건이겠지.”

두 사람이 인상을 찌푸리며 조금 더 나아가는 동안 산사태라도 나듯 물건이 우르르 쏟아졌다.

그에 놀라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리니 제조 장치에서 또다시 물건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상하군. 넵튠은 왜 제조 장치를 정지시키지 않는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이건 자원 낭비 아닙니까?”

“지상 사람들을 희생했다면 최소한 가치 있게라도 써야 하거늘…”

주인공은 눈가를 찌푸리며 말하다가 이내 눈을 굴렸다.

“아니, 어쩌면… 멈출 수 없는 건가?”

“선장님?”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나? 몇백 년 전의 기록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넵튠이라는 자가 이곳을 관리하는 게?”

“대대손손 이어서 하는 걸까요?”

“자네라면 괴물들만이 남은 도시를 관리하는 책임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가?”

주인공은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럴 부모가 존재한다는 것보다 더 신빙성 있는 가설이 있었다.

“믿기 힘들지만, 넵튠은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기계일지도 모르네.”

“기계요?”

“그래, 아틀란티스 기술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

-오ㅋㅋㅋ 수석행동 ON!

-현실을 부정하면 안 된다 이마리야

-요 쥔공도 보면 갓플이랑 통하는 게 있음ㅋㅋㅋ

-ㄹㅇㅋㅋ 안 된다고 생각을 안 한다고

-그것이 바로 퍼펙트 상식이니까(끄덕)

시청자들이 그에 흡족해하는 사이 주인공은 결론을 내렸다.

“이제 확실해졌어. 아틀란티스는 해결책 따위가 아니었네. 오히려 끊어야 할 악순환의 고리지.”

그는 박주호 캐릭터의 어깨를 잡았다.

“우리가 그 고리를 끊어야 해.”

* * *

이경복과 박주호는 경로를 따라 통로에 들어섰다. 공격해오지 않는다는 걸 아니 서성이는 괴물들은 마치 배경처럼 느껴졌다.

“전투가 없는 구간인 줄 알았으면 퍼무새도 데려올 걸 그랬나 싶네요.”

마냥 걷기만 할 수는 없었기에 이경복은 시청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립읍니다ㅠㅠ

-근데 퍼무새는 무서워하지 않을까?

-ㄹㅇㅋㅋ 퍼무새의 눈으로 보라구욧!

-???: 쭈인! 내 무습다! 와, 와 내를 죽일라 카는데!?

-여기서 회장님이?

-아닠ㅋㅋㅋㅋ 퍼무새가 왜 그 대사를 치는데 ㅋㅋㅋ

-퍼무새 쫄아서 또 갓플 가슴팍에 끼어있을덧

이경복이 채팅에 짧게 웃음을 흘렸다.

“아,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퍼무새는 무서워하겠구나. 이건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야, 뭔가 이상한데.”

한편 주변을 살피던 박주호는 이경복의 주의를 돌렸다. 왜 그러나 싶어 눈을 돌리니 통로 끝이 보였다.

“뭐야? 길막인가?”

“이건 그냥 지나가기 힘들겠는데.”

출구 쪽에 딥원 무리가 모여 있었다. 옆으로 지나갈 틈은 보이지 않았다.

-아 이거 그 물고기 떼 습성 때문?

-강제 전투 이벤트 발생!

-어쩐지 너무 평화롭다 했다 ㅋㅋㅋ

-싹쓸어다쓰 해버려야겠고?

시청자들은 전투를 예상했다. 이경복도 그에 불가피한 상황인지 가늠하려 하는 와중이었다.

“쟤는 뭐지?”

통로 한편에 딥원 하나가 뭔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조금 더 다가가니 그 물체가 뭔지 알 수 있었다.

“라이터?”

“왜 여기는 물건들이 쌓여있지?”

그리 의아해하는 와중이었다. 부싯돌을 매만지던 딥원이 불을 붙이는 데 성공했다.

불길이 치솟자 딥원이 놀라 라이터를 내던졌다. 그 모습에 시청자들이 웃음을 흘렸다.

-아니 ㅋㅋㅋ 지가 켜놓고 왜 놀라는데

-라이터가 왜 있는 거옄ㅋㅋㅋ

-해저생활에도 끊을 수 없는 흡연욕구 ㅎㄷㄷ -이거는 뭐 대놓고 보라는 이벤트였쥬?

-ㄹㅇㅋㅋ 그냥 답을 알려주는 거네

이경복과 박주호도 개발진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기야 불을 좋아하는 생선은 없죠. 횃불 같은 걸 만들면 평화롭게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이터는 있으니 태울 만한 걸 찾아봐야겠군.”

두 사람은 통로에 너저분하게 흩어진 물건들을 뒤적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네요. 이거 다 아까 보급소 같은 데서 나온 물건들 아닌가요?”

도중 이경복이 의아해하자 채팅창에도 물음표가 떠올랐다.

-오? 그러네?

-뭐임? 그게 왜 이상함?

-아틀란티스 물건이니까 당연한 거 아님?

-아니 ㅋㅋㅋ 그건 맞는데 그게 왜 여기 나와있냐고

-괴물들은 쓰지도 않는 물건일 텐데?

-HOXY 딥원들이 끌고 나온 거?

-그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야지 한 곳에 모인 건 이상하지ㅋㅋㅋ

시청자들도 비슷한 의문을 표하는 사이 이경복과 박주호는 필요한 물건을 찾아냈다.

“아, 이거 식용유 같네요.”

“여기 마른 수건도 있다.”

“오케이. 이걸 칼에 말아서 횃불로 만들면 될 것 같습니다.”

그는 박주호가 건넨 수건을 받았다. 그러자 갑자기 화면이 컷신으로 넘어갔다.

“어? 컷신으로 진행하나 봐요?”

그에 모두가 무슨 일인가 싶은 와중 주인공이 멈칫했다. 이어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그가 뭔가를 들었다.

“이게 왜 여기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는 손에 쥔 물건을 바라보았다. 카메라가 이내 그 물건을 클로즈업했다.

“어? 이거…?”

-???????

-이거 갓버지 인장 아님?

-뭐야? 이게 왜 나와?

-어뜨케 된 겨 어뜨케 된 겨!?

-아니 ㅅㅂ 예측이 전혀 안되네

이경복과 시청자들도 덩달아 같이 놀랬다. 그 사이 주인공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선장님?”

“있었어…”

“예?”

주인공은 박주호 캐릭터를 돌아보며 떨리는 손을 들어 보였다. 그 손에는 누군가 먹다 남은 듯한 음식물이 있었다.

그것도 아직 썩지는 않은, 최근에 생산된 것이었다. 당연히 딥원이 먹었을 리는 없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여기 있었네!”

주인공의 목소리와 함께 화면이 전환됐다.

“당시 나는 아버지의 기록을 찾았다는 사실에 신경이 쏠려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상한 점이 있었다.”

첫 번째 제조장치와 호레이쇼의 기록을 발견했던 동굴이었다. 주인공의 나레이션과 함께 슬라이드처럼 화면이 넘어갔다.

“아버지는 당신의 옷으로 지도를 만들어 기록을 남기셨다. 처음 몇 번이야 실험은 하실 수 있지만, 그 기록을 전부 남기기 위해 옷을 찢으셨지.”

실루엣으로 표시된 호레이쇼가 옷을 찢어 제조장치를 가동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조난된 입장이었다. 체온 유지를 위해서라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아버지가 그런 실수를 하실 리가 없다.”

이내 호레이쇼의 행동을 재현하듯 실루엣은 구석에 있는 수로로 향했다.

“일어난 일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아버지에게는 옷을 찢어도 될 이유가 있었다는 뜻이겠지.”

이어 실루엣이 수로에 들어섰다.

“아버지는 기다림보다 수로를 통한 탈출을 택했다. 그 물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몰라도 탈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셨고. 아버지가 그런 결정을 내리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주인공의 나레이션과 함께 실루엣이 형체를 갖추었다.

“어쩌면 그 동굴에 있는 건 제조장치만이 아닌 게 아니었을까. 만약 잠수복이 같이 있었다면…?”

형체를 갖춘 호레이쇼는 잠수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곧 물속으로 사라졌다.

-오! 제조장치랑 잠수복이 같이 있었던 거?

-엌ㅋㅋ 이러면 설명이 되네

-알고 보니 앞에 떡밥을 뿌려뒀었네 ㅋㅋㅋ

-갓버지센세 ㅠㅠㅠ

시청자들이 그에 기뻐하며 낙관했다.

“하지만 이상하다. 아버지께서 탈출하셨다면 육지를 향하셨을 텐데?”

그러나 정작 주인공은 냉철했다.

그는 근거 없는 희망에 취하지 않았다.

“더욱이 아틀란티스는 심해에 있어. 사람이 헤엄쳐서 올 깊이가 아니야.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내 다시 화면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주인공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선장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약간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그는 굳은 표정으로 커틀러스에 수건을 감고 식용유를 뿌린 뒤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불길이 일어나며 횃불이 만들어졌다.

그에 모여 있던 딥원들이 놀라 흩어지며 길이 열렸다.

“지금은 우리가 할 일에 집중하도록 하지.”

그의 말과 함께 컷신이 끝났다.

이경복과 박주호도 의아한 표정이었다.

“있을 리 없는 곳에 있을 리 없는 물건이 있다라…”

“너도 감이 잘 안 잡히지?”

“음, 단서가 너무 적다.”

“그러니까. 아마 이건 진행을 더 하면 밝혀지지 않을까 싶네요.”

이경복의 말에 시청자들도 동감을 표했다.

-퍼파고도 데이터 부족이라고 하잖슴ㅋㅋㅋㅋ

-???: 자료가 없는데 분석을 어떻게 해요?

-아… 제발 갓버지 살아있었으면

-일단 진행 더 ㄱㄱ

-아 ㅋㅋ 플랜트 위키 보려다 참았다

-에붕이들은 입단속 해라 ㅋㅋ

두 사람은 이내 열린 길로 들어섰다.

* * *

이경복은 고개를 들었다.

다른 통로와 달리 문에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중앙 통제 관리소]

혹시 적이 있을까 신기를 가늠해보았지만 내부는 평온했다.

“자, 바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공간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리 넓어보이지는 않았다. 공간 대부분을 복잡한 기계장치와 유리 디스플레이가 차지하고 있었다.

“저건 도시 지도인가?”

“와, 멀쩡한 부분이 얼마 되지도 않네.”

그 중앙에는 홀로그램이 떠올라 있었다. 폐허가 된 아틀란티스의 모습이었다.

-진짜 개같이 박살났네;;

-거의 20% 정도 남은 덧 ㅋㅋㅋ

-넵튠이 유지되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네 ㅋㅋㅋ

-이 모양이니까 동기화가 안 되지 ㅋㅋ

-차라리 말끔하게 망했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ㅋㅋㅋ

두 사람이 다가가니 투사도 가운데 주황색 선들이 보였다.

“전력 공급망을 표시하는 중인가 본데.”

“그러게. 발전소 쪽은 끊어져 있고, 이게 보조 발전소인가보다.”

보조 발전소의 위치를 확인하는 도중 홀로그램이 크리스탈로 대체됐다.

관리 시스템, 넵튠이었다.

<방문 환영. 요청 접수.>

그와 함께 통제권이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장면이 이어지며 컷신으로 진입했다.

“선장님, 어떡할까요? 이전처럼 부숴버릴까요?”

박주호 캐릭터가 등에 멘 고압수 소총 쪽으로 손을 돌렸다. 주인공은 이에 잠시 고민하다가 제지했다.

“하나 확인할 게 있다.”

이내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넵튠을 바라보았다.

“넵튠, 우리 외에 누군가 아틀란티스를 찾아왔습니까?”

-아… 갓버지 찾으려고ㅠㅠㅠ

-요거는 체크 해야지!

-어서 있다고 말해!

-아 ㅋㅋ 빨리 부자상봉하게 해달라고

그 물음에 넵튠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시민 외출 자율. 기록 불가.>

“…괴물들을 아직 시민이라 여기는 건가.”

주인공은 얼굴을 찡그렸다.

넵튠은 변이한 괴물들도 시민으로 인식하는 게 분명했다.

“다시 묻겠습니다. 우리 외에 잠수복을 입고 온 사람이 있습니까?”

-오ㅋㅋㅋ 이렇게 한정하면 알 수 있을 듯

-수석은 질문도 잘 한다니깐!

-현명추 ㅋㅋㅋ

-오! 뭐 나온다!

-갓버지 등장!?

이어지는 질문에 돌아온 건 답변이 아니라 영상이었다. 주인공이 도착했던 열차 플랫폼이었다.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선 건 열차가 아니라 딥원들과 심해 고래였다.

이게 뭔가 싶은데 이내 고래의 입이 열리며 딥원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잠수복을 입은 채 축 늘어진 사람이 끌려 나왔다.

“…아버지?!”

그 얼굴을 확인한 주인공이 놀라 소리를 높였다. 그와 함께 화면이 잿빛으로 물들며 이경복은 통제권을 되찾았다.

“아, 이거 연구소장 때처럼 체험 방식이네요.”

장소는 크림슨 코스트의 동굴로 바뀌어 있었다. 이경복과 시청자들은 호레이쇼의 입장을 체험한다는 걸 깨달았다.

-와 쥔공 말 대로였네

-제조장치랑 잠수복이 같이 있었고?

-갓버지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는 건가

-아… 뭔가 불안하다

이경복은 수로 쪽으로 다가갔다. 물속으로 들어가니 사방이 캄캄했다.

“굉장히 좁고 어둡네요.”

헬멧에서 나오는 희미한 빛이 전부였다. 그 광경에 시청자들은 혀를 내둘렀다.

-와... 보기만 해도 미치겠다

-ㅁㅊ 나였으면 바로 동굴로 돌아옴

-폐소공포증 걸릴 듯 ㅎㄷㄷ

-위대한 갓버지 ㅠㅠㅠ

-이거는 게임인 거 알아도 심한 사람들은 진행 못 하겠는데?

하지만 이경복은 바로 헤엄쳐 나가며 멘트를 쳤다.

“좁기만 하고 다행히 길은 직선입니다. 금방 빠져나가지 싶네요.”

여기서 머뭇거리면 오히려 게임평가에 안 좋을 터였다. 이경복의 능숙한 헤엄에 시청자들은 역시나라며 웃음을 흘렸다.

“보셨죠? 1분도 안 걸리네요.”

그리 신속히 좁은 수로를 빠져나온 순간이었다. 꾸르륵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산소통에서 물거품이 치솟고 있었다.

문제가 생겼는지 산소가 새는 것이었다.

-????

-이 형 진짜 스무스하게 빠져 나왔는데?

-킹부러! 스토리 진행하려고!

-아니 ㅋㅋㅋ 이건 억까잖슴!

-킹반인이면 좀 부딪칠 것 같긴 한데 하필이면 갓플이 시연해서 ㅋㅋㅋ

시청자들 모두 스토리 상 연출임을 직감했다. 산소 부족으로 의식이 멀어지는 듯 시야가 흐릿해졌다.

이내 시야가 완전히 암전하기 전 어둑한 바다 속에서 딥원들과 심해고래가 다가왔다.

“아, 여기서 동족인 줄 알고.”

-잠수복 입고 있어서 데려온 거네

-어디 아픈 동족인 줄 알았나봄

-그래서 심해고래 타고 내려온 거였고?

호레이쇼를 동족으로 인식한 딥원은 보금자리인 아틀란티스로 돌아온 것이다.

이내 장면이 뒤바뀌며 열차 플랫폼으로 장소가 이동했다.

“여긴… 어디지?”

이경복이 일어서자 나레이션이 들려왔다. 호레이쇼의 목소리였다.

“설마 아틀란티스인가?”

이경복은 일단 통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내 넵튠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알 수 없는 울음처럼 들려왔다.

-Aㅏ…

-아 맞네 갓버지는 해독표가 없었지

-말이 안 통하는 상황이네

-하… 뭔가 느낌이 쌔하다

호레이쇼는 놀라면서도 양손을 들었다.

“아틀란티스 인입니까? 저는 지상에서 왔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자 넵튠은 문자로도 소통하려 했다. 하지만 호레이쇼는 그 문자도 알아볼 수 없었다.

“지상! 지상으로 가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하나뿐인 가족, 내 아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호레이쇼는 어떻게든 몸짓을 통해서라도 의사를 전하려 했다. 그러나 넵튠은 그 간절함을 해석할 수 없었다.

“이런, 어쩔 수 없군. 나 혼자서라도 나갈 방법을 찾아야겠어.”

그러나 호레이쇼는 좌절하지 않았다. 이경복이 통로로 들어서자 공간이 바뀌었다.

“다행히 일단 식량 걱정은 없겠군.”

보급소 곳곳에 색채를 가진 물건들이 있었다. 이경복은 그 물건들을 챙겼다.

“통로에 쌓인 물건들은 호레이쇼가 쓰던 거였네요.”

이경복이 따로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노이즈가 낀 것처럼 몇 번 시야가 깜빡이더니 통로에 점차 물건들이 쌓이는 걸 보여주었다.

“사관학교 수료식은 이미 끝난 지 한참이겠군. 평생에 한 번뿐인 것을…”

호레이쇼의 씁쓸해하면서도 이내 다시 일어섰다.

“더 원망 안 들으려면 얼른 돌아가야겠지.”

-여윽시 갓버지다 이마리야

-수석 아버지행동 좋고좋고!

-호부호자가 바로 이말이었쥬?

-갓버지는 포기 ㄴㄴ해

시청자들의 응원에 이경복은 걸음을 옮겼다. 통로 입구에 들어서자 다시 공간이 바뀌었다.

“아, 이게 피난용 포드 같네요.”

큼직한 유리 원통 안에 커다란 알 같은 장치가 들어 있었다. 다가가니 호레이쇼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 그림은 지상이야…! 개인용 승강기 같은 건가? 아니, 그것보다는 탈출이 우선이지.”

문자는 몰라도 지상을 뜻하는 그림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문제는 언어였다.

“이건 대체 어떻게 여는 거지?”

피난용 포드는 어디까지나 긴급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절차가 필요했지만 호레이쇼는 그 사실을 몰랐다.

“아… 이건 안 좋은 선택 같은데요.”

통제권은 사라지고 완전히 컷신으로 바뀌었다. 관찰자 시점으로 바뀐 시야 속 호레이쇼는 유리관을 산소통으로 부쉈다.

“뭐…?”

슬로우모션으로 유리조각이 흩어지며 붉은 등이 점멸했다. 시끄러운 경보가 귀를 때리자 호레이쇼의 놀란 표정이 보였다.

그의 뒤로 천장을 타고 거미 기계들이 나타났다.

-아…

-갓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부자상봉 ㅇㄷ? 부자상봉 ㅇㄷ?

-카누님이랑 세눈나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부터 쎄하긴 했음…

-이런, 이런 현실이 있단 말이냐!

이경복과 시청자들은 모두 탄식했다. 쓰러지는 호레이쇼의 모습과 함께 장소는 다시 관리소로 돌아왔다.

그러나 슬픔에 빠질 겨를은 없었다.

<조치 완료. 포드 안전 확인.>

넵튠은 영상을 끝내며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대답은 주인공의 분노를 일깨우기 충분했다.

“조치…? 조치라고?”

그의 턱이 바들바들 떨렸다.

굳게 쥔 주먹이 새하얗게 변했다.

-넵튠쉑 이거 알고 보니 더 나쁜 놈이었네!

-갓버지의 원수!

-즉.시.박.살

-넵튠 없애 버릴 이유가 또 하나 늘어버렸고?

시청자들 역시 복수를 표명하는 사이 주인공의 입이 열렸다.

“아틀란티스는 사라져야 한다.”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주인공이 즉각 소총을 뽑아 방아쇠를 당겼다. 대기하던 박주호 캐릭터 역시 가담했다.

<테러 행위 감지. 보안 조치 시행.>

그러나 넵튠의 대처도 만만치 않았다. 일부 장치가 파손됐지만 곧바로 격벽이 솟아오르며 고압수를 차단했다.

이어 천장이 열리며 소형 포탑이 내려왔다.

“피하게!”

주인공이 그에 포탑 하나를 요격하며 출구로 달렸다. 두 사람은 관리소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주 그냥 지 안전은 겁나 챙기네 ㅅㅂ

-ㄹㅇㅋㅋ 지키라는 사람은 안 지키고 ㅋㅋㅋ

-아 ㅋㅋ 갓플이었으면 또샷또킬 했는데

-어? 소리 들린다

-거미쉑들 부른 듯?

-ㅁㅊ 이제 어뜨캄? 일단 탈출?

시청자들이 급변한 상황에 당황하는 사이 주인공은 박주호 캐릭터에게 지시를 내렸다.

“저 장치들을 파괴하는 건 무리야. 다른 곳을 노리자고.”

“다른 곳이라면?”

“놈이 본인 스스로 보조 발전소로 가동 중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걸 파괴하면 될 거야.”

크리스탈 발전소는 파괴된 상황이었다. 현재 유일한 에너지원인 도시 내 보조 발전소를 없애면 넵튠도 정지할 수밖에 없었다.

-크으 ㅋㅋ 이게 수석 판단이지

-아까 그래서 보조 발전소 위치 보여준 거였네 ㅋㅋㅋ

-아니 그거 잠깐 지나갔는데 기억이 나나?

-우리는 몰라도 이 형은 외웠음

-왜 외우는 게 전제냐고 ㅋㅋㅋ –ㄹㅇㅋㅋ 가다 보면 이정표가 나올 듯

-갓플 기준으로 생각하다보니 그만 ㅎㅎ ㅋㅋ ㅈㅅ;;

-퍼펙트 상식탑재하면 그렇게 되어버린다니깐!

시청자들은 그에 안심했다.

방법만 있다면 문제가 없었다. 이경복은 없는 방법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던가.

“흐름을 보니까 엔딩이 얼마 안 남은 것 같네요.”

이내 컷신이 끝나자 이경복은 미소를 지었다.

“보셨듯이 마지막 파트는 템빨 이런 거 없습니다.”

“하긴, 무기도 아틀란티스제 소총이고 잠수복 장비니까.”

박주호가 그에 동조하자 이경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처럼 무과금도 엔딩까지 볼 수 있다는 거 아시겠죠?”

-?

-혀엉? 우리는 퍼지컬도 퍼파고 같은 친구도 없어!

-킹직히 과금보다 퍼지컬이랑 퍼파고가 더 부러우면 개추 ㅋㅋㅋ

-거기에 퍼무새까지…!

-돈 줘도 못 사는 걸 다 갖고 있는데 이게 어케 무과금이냐고 ㅋㅋㅋ

시청자들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반응하자 이경복이 웃음을 흘렸다.

“좋습니다. 그럼 엔딩까지 달려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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