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386화 (386/491)

386화 - 노스탤지어 (3)

기계들의 습격이 시작됐다.

기존 거미 형태의 기계는 물론 서로 결합해 마치 물뱀처럼 긴 놈들도 있었다. 그 숫자가 상당해 마치 쇳물로 된 파도가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물청소 넘모 깔끔한 거시고요?

-이게 그 몰살엔딩인가 그거냐?

-WA! 몰살엔딩 아시는구나!

-기계니까 불살엔딩 아니냐 ㅋㅋ

물 포탄이 터지며 대번에 기계들을 휩쓸었다. 충격에 터져나간 기계들은 그대로 나뒹굴었다.

“장전!”

“완료!”

이경복의 외침에 박주호가 빠르게 탄창을 교체했다. 한 손으로는 빈 탄창을 사출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새 탄창을 매끄럽게 돌려 끼웠다.

-리로드! 리로드!

-갓플 퍼파고 호흡 찢었쥬?

-이게 진짜 물의 호흡이지 ㅋㅋ

-아니 ㅋㅋ 퍼파고 보조 왜케 잘함 ㅋㅋㅋㅋ

-아아, 그게 바로 퍼펙트 매니저니까(끄덕)

거기서 박주호의 임무가 끝나는 건 아니었다. 이경복이 포신을 돌려 다른 방향을 견제하는 동안 그는 재빠르게 뛰어가 기계들의 사체를 뒤졌다.

충격에 몇몇 탄창은 깨져 나뒹굴었지만 멀쩡한 탄창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캬 ㅋㅋ 펑펑 터지는 거 보소

-퍼펙트 흠뻑쇼 ㅁㅊㄷㅁㅊㅇ

-도랏냐곸ㅋㅋㅋ

-퍼파고님 개 바쁨 ㅋㅋㅋㅋ

-사장보다 직원이 바쁜 블랙기업이 있다!?

-이건 찐 블랙기업 행동아니냐고 ㅋㅋㅋ

-퍼펙트 갑질 ㅎㄷㄷ

-퍼펙트 상식에 입각하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임!

수월하게 방어전이 이어지니 시청자들도 여유를 부렸다. 그들은 서서 포탑을 돌려가며 물 포탄을 쏘는 이경복과 바삐 뛰는 박주호를 보며 장난스럽게 놀려댔다.

이에 이경복이 실소를 흘리며 박주호를 돌아봤다.

“야, 자리 한 번 바꿀까? 네가 쏠래?”

“뭐? 내가 너처럼 어떻게 쏘냐!? 하던 대로 해!”

박주호는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리고 헷갈리니까 말 시키지 마!”

그는 멀쩡한 탄창 찾기에 바빴다. 이경복이 그에 미소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보셨죠? 여러분 덕분에 제가 괜히 혼났잖아요. 갑질이라니 누명입니다.”

-ㅔ?

-이걸 우리 탓을?

-퍼파고 효율 추구하는 거 아는데 왜 물어봄? (진짜모름)

-트수쉑들 바로 모른 척 하는 거 보솤ㅋㅋㅋㅋ

-사장이 하라는데 거절할 직원이 어딨음! 아무튼 갑질임!

-근데 퍼파고님 대답 보면 역갑질 아니냐고 ㅋㅋㅋㅋ

-ㄹㅇㅋㅋ 사장한테 말 시키지 말라고 하는 직원이 어딨엌ㅋㅋㅋ

-하지만 여기 있죠?

시청자들이 그에 더욱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 잡담까지 나누며 진행하니 제한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아, 멈췄네요.”

“드디어 끝났나.”

타이머가 0에 도달하자 밀려오던 기계들이 그대로 정지해버렸다. 박주호가 그에 안도했고 시청자들도 기뻐하려는 찰나였다.

-넵튠 컷!

-어? 뭐임!?

-갑자기 화면 왜 이래?

-설마 튕김?

-ㄴㄴ 파워 나가서 조명도 다 꺼진 듯

-아 맞네 잠수복 조명은 나옴ㅋㅋㅋ

퍽하는 소리와 함께 삽시간에 주위가 어두워졌다. 완전히 에너지가 고갈되자 모든 조명도 꺼진 것이었다.

-HOXY 이러면 포드도 작동 안 하는 거?

-그릉가?

-아니;; 설마 여기서 배드엔딩각을?

-설마 그러겠냐구웃!

-그런 엔딩이었으면 이미 커뮤에 돌아다녔을 덧 ㅋㅋㅋ

시청자들의 우려에 이경복은 바로 입을 열었다.

“긴급 대피용이니까 이런 상황에도 작동하도록 설계되지 않았을까요?”

“해저열차도 별도 에너지원으로 작동하는 방식이었으니까 비슷한 방식일 것 같은데.”

박주호의 첨언에 시청자들도 수긍했다. 이내 이경복은 가볍게 손뼉을 쳐 주의를 돌렸다.

“좋습니다. 이제 포드를 타고 나가보죠.”

두 사람은 발전소를 나와 통로로 나왔다. 들어왔을 때와 달리 완연한 어둠만이 가득했다. 마치 공간이라는 게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히 잠수복 목 부분에서 발하는 희미한 빛 덕분에 통로의 윤곽이 보여 공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컷신이 있네요.”

조금 더 나아가니 통제권이 사라졌다. 주인공은 벽을 더듬으며 나아갔다.

-아 맞다 ㅋㅋ 크리스탈이 있었네

-천연조명 활용 좋았고?

-이대로 탈출하고 엔딩각일 듯

주인공은 크리스탈을 조명 삼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크리스탈의 빛이 간헐적으로 점멸하더니 곧 잦아들었다.

“선장님?”

“이런… 에너지가 다 고갈된 모양이야.”

주인공은 크리스탈을 흔들어보기도 하고 가볍게 두드려도 봤지만 빛은 돌아오지 않았다.

가시범위가 줄어들자 박주호 캐릭터는 불안해했다. 목 아래에서 올라오는 조명 덕분에 그 표정이 더욱 심각해 보였다.

“아, 아직 괴물들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놈들이 저희를 못 알아보고 습격하면 어떡하죠…?”

“침착하게. 본래 심해에 사는 만큼 빛에 크게 의존하지는 않을 거야. 따로 동족끼리 알아보는 방법이 있겠지.”

“예… 선장님 말씀이 이번에도 옳기를 바라겠습니다.”

주인공은 천천히 나아가며 그를 진정시켰다. 이에 대답이 돌아오긴 했지만 표정은 여전했다.

심각한 상황이지만 시청자들은 실소를 흘렸다.

-괴물들은 갓플이 어그로 끌어서 다 처리해버렸던 거시고요?

-근데 또 모름 ㅋㅋㅋ 컷신이랑 연계가 안 돼서 ㅋㅋ

-바솔로뮤 살아있던 거 보면 답 나오고?

-넵튠 컷했는데 또 싸우면 억까지 ㅋㅋㅋ

-대피소까지 가는 길에는 있을 수도 있음

주인공은 조심스럽게 나아가며 입을 열었다.

“두려움을 부정하지 마라.”

“선장님…?”

“우리 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이네. 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전, 내게 마지막으로 해주셨던 이야기기도 하고.”

주인공은 어둠을 직시했다.

그 어둠이 마치 스크린처럼 호레이쇼의 마지막 모습이 희미하게 투영됐다.

이내 주인공이 나아가자 그에 맞추어 영상을 되감듯 호레이쇼의 시간이 거꾸로 돌아갔다.

“내가 선원들을 독려할 때 ‘불과 무기’를 언급하는 이유가 뭔지 아는가?”

“예? 아… 잘 모르겠습니다. 사관학교에서 배우신 게 아닙니까?”

“아니, 그 역시 아버지로부터 배웠네. 당신께서는 두려움은 ‘미지’와 ‘무력함’에서 오신다고 하셨지.”

주인공은 어둠 속 아버지의 실루엣을 응시했다. 그가 입은 제복만큼은 선명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불을 들어 미지의 베일을 벗겨내 두려움에 직면하고, 무기를 들어 두려움에 맞서라고 하셨네.”

주인공은 이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실루엣은 이내 어둠에 녹아들며 사라졌다.

“더 많은 걸 배우고 싶었는데, 이게 마지막 가르침이 되었군.”

-아 그래서 불과 무기를 들어라라고 그랬던 거였네

-ㅂㄱ ㅁㄱㄹ ㄷㅇㄹ!

-갓버지 센세 ㅠㅠㅠ

-자식농사 완전 잘하셨는데 ㅠㅠ

시청자들이 그에 안타까워하는 사이 박주호 캐릭터도 숙연해졌다.

그리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그가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선장님, 솔직히 아직 불안한 게 있습니다.”

“말해보게. 이야기를 하는 편이 더 좋을 수도 있어.”

“그,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갔는데 망망대해면 어떡하죠? 조난자 신세가 되는 건 아닐지…”

-아 그러네?

-해양조난 ㅎㄷㄷ

-완전 바다 한 가운데면 낭패일듯;;;

-그래도 포드에 추진장치 있으면 육지로 방향 잡을 수 있지 않음?

그 물음에 시청자들도 덩달아 불안해하는 와중이었다. 주인공은 이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지금까지 정황을 보면 아틀란티스의 위치가 짐작되니까.”

“예?”

“확신은 할 수 없지만 크림슨 코스트 근해일 가능성이 높아.”

“크림슨 코스트요? 아틀란티스가 그렇게 가까이 있었단 말입니까?”

박주호 캐릭터는 물론 시청자들도 덩달아 놀랐다.

“딥원은 아버지를 심해고래를 이용해 이곳에 데려왔지. 만약 거리가 멀었다면 아버지는 고래의 몸 속에서 깨어나셨을 거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아, 듣고 보니 확실히…”

“그래, 그리고 크림슨 코스트가 괴물 서식지가 되어버린 것도 지금까지 이유를 몰랐지. 하지만 아틀란티스가 위치하고 있다면 이해가 되고.”

“과연 그렇군요!”

주인공의 설명에 박주호 캐릭터는 불안을 떨쳐냈다. 시청자들 역시 탄사를 뱉었다.

-오ㅋㅋㅋ 이게 다 연결이 되있던 거였고?

-쥔공 진짜 똑똑하다잉 ㅋㅋㅋ

-나였으면 그냥 뒤져도 나가서 뒤지자라고 했을덧ㅋㅋㅋ

-퍼파고의 분석력과 갓플의 피지컬까지!?

-아닠ㅋㅋ 피지컬은 그냥 갓플이 조종하니까 그런 거잖슴!

-수석해군의 위엄ㅋㅋㅋ

그 사이 주인공은 밝아진 박주호 캐릭터를 돌아보았다.

“근거 없는 희망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게.”

그는 옅은 미소와 함께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 갈 거야.”

*       *       *

컷신이 끝나고 이경복과 박주호는 갈림길에 도달했다.

“여기 원래 길이 있었나?”

“기계들이 들어오면서 잠금이 해제된 걸지도 모르겠군.”

그런데 이전에는 막혀 있었던 통로가 개방되어 있었다. 시청자들은 이에 황당해했다.

-아니 ㅋㅋ 뭔 단서도 없이 갑자기 미로찾기여

-킹부러! 플탐 늘리려고!

-HOXY 처음에 넵튠이 알려준 경로 기억해야 되는 거?

-무친ㅋㅋㅋ 미로찾기가 아니라 기억력 테스트라고?

채팅창 여론이 부정적으로 변하려 하자 이경복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아, 그 길은 제가 외우긴 했는데 기억력 테스트까지는 아닐 것 같습니다. 그건 별로 재미없잖아요?”

-혀엉? 쉴드 치는 거 맞지?

-이랬는데 진짜 기억력 테스트고 막ㅋㅋㅋㅋ

-광고주: 퍼플님? 퍼플님? 퍼플님?

-광고주 당황잼ㅋㅋㅋㅋ

-할 말은 한다! 퍼카콜라!

-아닠ㅋㅋ그 와중에 그 루트를 기억 했다고?

-갓플의 형상기억력은 세계 제이이이이일!

-킹직히 갓플 말대로임 ㅋㅋ 그거 기억할 사람이 몇이나 된다곸ㅋㅋ

그에 주의가 분산되는 사이 박주호가 의견을 개진했다.

“우리가 보급소 가는 길은 알고 있잖아. 그대로 쭉 가기만 하면 되니까. 거기서 횃불을 만든 다음에 탐색하는 거 아닌가?”

“아, 그것도 방법이네. 거기 식용유랑 수건 같은 거 남아있을 테니까.”

이경복은 그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결정을 내렸다.

“그냥 바로 갈 수도 있긴 한데, 그러면 여러분들이 방송 보기가 좀 어렵죠? 너무 어둡기도 하니까 일단 횃불을 만들러 가보죠.”

-크으 ㅋㅋ 방송만 생각하는 스머다 이마리야

-아 ㅋㅋ 영상각도 봐야지 ㅋㅋ

-바보! 퍼청자만 생각하는 바보!

-바보? 바다의 보배를 뜻하는 말인가? 껄껄껄

-트하하하

-바다 배경 겜이라고 노리고 있었을 거 생각하니까 킹받네 ㅋㅋ

-난 껄껄껄이 제일 킹받음 ㅅㅂㅋㅋ

이경복은 선두에서 거침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뒤따라가던 박주호는 이내 흠칫 놀랐다.

갑자기 옆에 멍하니 서 있던 딥원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적의는 없어 보였다.

“아, 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야, 잘 보고 따라와.”

“먼저 말이라도 해주던가.”

박주호가 짧게 헛숨을 뱉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에 시청자들이 재차 웃는 와중이었다.

“어, 뭐야?”

앞서가던 이경복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뒤이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불빛?”

“…우리 말고 누가 또 있나?”

보급소로 가던 도중 모퉁이에서 불빛이 보였다. 그것도 크리스탈의 푸른빛이 아니라 붉은, 횃불에서나 나올 법한 빛이었다.

이내 그 벽에 비춰진 그림자에 채팅창이 물음표로 덮였다.

-???????

-그림자 뭔데?

-딥원이 횃불을 왜 들고 있음?

-어뜨케 된 겨 어뜨케 된 겨?!

-열 싫어하는 거 아니었나?

그 형태는 분명 딥원이었다.

이윽고 모퉁이를 돌아 나오자 그 정체가 명확해졌다.

“진짜 딥원이네?”

“따라오라는 뜻 같은데…”

나아가 딥원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기까지 했다. 그에 박주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혹시 함정인가?”

“아니, 이제 와서 함정은 또 안 어울리지.”

이경복은 그에 부정했다.

묘하게도 다른 놈들과 달리 저 딥원에게서는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위협이 아니라 따스한, 긍정적인 느낌이었다.

“그리고 여러분, 지금 저쪽 길이 대피소로 가는 길이거든요?”

“그럼 그냥 편의성을 위한 건가? 바로 나가는 길을 알려주는 역할일지도 모르겠군.”

-고렁가?

-크로스지원 하면서 바뀐 부분일수도?

-하긴 ㅋㅋ 캐주얼하게 하는 사람이면 막판에 또 뭘 시키면 짜증날 듯

-아니;; 근데 이건 설정붕괴잖슴!

-아… 이거 마무리가 아쉽네

여론이 다시 안 좋아지자 이경복은 잠시 고민했다.

‘뭔가 다른 게 있나?’

따라가도 좋다는 직감이 느껴졌다. 오히려 보급소로 가는 선택지는 별 느낌이 없었다.

“일단 따라서 가보겠습니다. 어차피 횃불만 있으면 되는 건데 굳이 돌아갈 이유는 없네요.”

두 사람은 바로 속도를 내 모퉁이를 돌았다. 이경복은 이내 확신했다.

‘개발자분들 의도가 있는 것 같네.’

그 딥원은 심지어 횃불을 휘둘러 동족들을 쫓아내 길까지 확보해주고 있었다.

마치 두 사람을 위해 하는 일 같았다.

*       *       *

예상대로 딥원이 도착한 곳은 대피소였다.

“함정도 없고 무사히 도착했네요.”

-드디어 탈출이구연?

-엔딩이 바로 코앞이드앗!

-마지막 통수 있나 했는데 없고?

-요즘에는 통수가 없는 게 통수임 ㅋㅋㅋ

-ㄹㅇㅋㅋ 난 알폰소 대장님도 뭔가 흑막이거나 할 줄 ㅋㅋ

-알고 보니 찐으로 부하를 아끼는 참 대장이었음ㅋㅋㅋㅋ

이제 끝이라는 생각에 시청자들은 안도했다. 이경복이 그에 미소 지으며 대피소 안으로 들어섰다.

이윽고 화면은 컷신으로 전환됐다.

“아니…?”

안내를 해준 딥원이 쓰러져 있었다. 그 옆에는 떨어진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선장님? 조심하십시오!”

“아니, 괜찮네. 상처가 심하군…”

주인공이 그에 다가가 딥원을 살폈다. 가까이서 보니 횃불을 든 쪽 절반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에 두 사람은 물론 이경복과 시청자들도 의아해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한 걸까?

“선장님, 크리스탈이 있습니다!”

“비상용인가. 다행이군.”

이내 모두의 주의가 돌아갔다.

주인공은 딥원에게서 떨어져 크리스탈을 받았다. 이어 그가 포드 앞에 섰다.

박살 난 유리관 안쪽에 포드가 있었다.

“크리스탈을 끼우고…”

호레이쇼와 달리 주인공은 안내 절차를 읽을 수 있었다. 그대로 맞추어 조작을 마치자 포드가 열렸다.

“됐다…!”

“드디어!”

두 사람이 기뻐하기를 잠시.

<다수 충격 감지, 사용 전 확인 권장>

기계 음성과 함께 포드에서 홀로그램 영상이 투사됐다.

-아 이거 블랙박스네 ㅋㅋㅋㅋㅋ

-어우;;; 난 또 넵튠 나오는 줄

-그랬으면 진짜 욕 먹음 ㅋㅋ

-뇌절 ㄴㄴ해

시청자들이 그 정체를 파악하는 와중 주인공이 영상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뭐지?”

영상 속에는 딥원 하나가 대피소를 서성였다. 그 딥원은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포드를 몇 번 치고는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벽에 붙어 손을 움직였다. 마치 무언가를 쓰는 것만 같았다.

“선장님?”

“잠깐, 잠깐만 기다려주게.”

주인공은 그리 말하고는 떨어진 횃불을 잡았다. 그리고 영상 속 딥원이 서 있었던 벽으로 다가가 불을 비추었다.

“어?”

-?????

-뭐야 이거?

-글씨임?

-딥원이 글씨도 쓸 줄 아나?

-아틀란티스 문자 번역 된 거?

-그건 아닌 듯? 폰트가 다른데?

이경복과 시청자들이 놀라는 사이 주인공은 글자들을 자세히 살폈다.

[나]

[집]

[기다려]

[잊지마]

여기저기 낙서처럼 새겨진 글자들은 길지 않았다. 같은 단어가 여럿 반복되고 있었다.

이내 주인공의 시선은 한 곳에 쏠렸다.

[학교]

[수료]

[축하해]

다른 글자들 보다 더 큰 글씨. 그러나 그보다 이목을 사로잡은 건 그 옆에 새겨진 그림이었다.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삐뚤빼뚤한 모습이었지만, 두 사람이 웃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설마…”

주인공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와 달리 이경복과 시청자들은 바로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아, 이게… 이런 스토리였네요…”

-ㅁㅊ 누가 봐도 갓버지가 남긴 글이자너

-그럼 갓버지 살아계셨던 거?

-와… 그럼 앞에서 영상들 보여준 게…

-아니ㅠㅠ 스토리 너무 딥하잖슴ㅠㅠㅠㅠㅠ

채팅창이 우는 이모티콘으로 가득해지는 사이 주인공은 허겁지겁 포드 앞으로 돌아왔다.

박주호 캐릭터가 놀라건 말건 그는 영상에 손을 올렸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주인공은 기록된 영상을 앞으로 돌리는 법을 찾았다.

이윽고 블랙박스에 기록된 가장 앞의 영상이 재생됐다.

“아버지…”

유리관이 부서지고 거미 기계가 호레이쇼를 쏘는 장면, 그 이후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었다.

거미 기계들은 쓰러진 호레이쇼를 끌고 갔다. 도중 미약하게나마 그가 저항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직 살아계셨어.”

이내 영상이 깜빡이며 뒤바뀌었다. 딥원이 나타나 혼란스러운 듯 머리를 감싸며 벽에 글자를 새겼다. 그리고는 포드를 두드리다가 이내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와 이거 넵튠이 살린다고 변이시킨거네

-갓버지 변하면서 기억이랑 지능 퇴보되신 듯…

-그 와중에 아들 안 잊으려고 한 거자너

-돌아가려는 거랑 아들 생각만 남은 듯…

-그런데 지금 쥔공 보고 안내해준 거?

-게다가 불을 피하는 본능까지 이겨냄

-갓버지니뮤ㅠㅠㅠㅠ

달리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 장면만으로도 시청자들은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냥 슬픔에 빠져있을 겨를은 없었다.

“서, 선장님!?”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과 함께 진동이 전해져왔다.

-뭐야? 갑자기 뭐임?

-아틀란티스 무너지나 본데?

-아 보수하던 기계들도 빠져서 그런가?

-탈출! 얼른 탈출!

심상치 않은 소리에 시청자들의 심정을 대변하듯 박주호 캐릭터가 소리를 높였다.

“뭐, 뭔가 무너지는 소리 같습니다. 얼른 나가셔야 됩니다!”

“먼저 타게!”

주인공은 순서를 양보하고 눈을 돌렸다. 아직 미약하지만 숨을 쉬고 있는 딥원이 보였다.

그의 눈동자가 일순간 떨렸지만 그는 곧바로 딥원을 부축했다.

“선장님?!”

“문 닫아!”

주인공은 딥원을 좌석에 앉혔다. 그 사이 박주호 캐릭터가 당황해 눈을 굴렸다. 뭘 눌러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않이;; 퍼파고 얼굴로 이건 너무 괴리가 심하잖슴!

-퍼파고였으면 이미 닫고 출발헀음 ㅋㅋㅋㅋㅋ

-어씨! 물이다!

-얼른 아무거나 눌러엇!

떨어진 횃불과 그 너머 통로로 해수가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시청자들이 그에 마음을 졸이는 와중 주인공이 빠르게 단추를 눌렀다.

그러자 포드가 닫히며 추진 장치가 가동했다. 해수에 휩쓸리기 전 아슬아슬하게 포드가 수직상승했다.

-와씨 그대로 끝날 뻔

-ㅁㅊ 전부 다 무너졌네

-어떻게든 나갈 거 알면서도 매번 당함 ㅋㅋㅋ

-ㄹㅇㅋㅋ 이런 식상한 거 그만하라고 (손수건을 짜내며)

-근데 진짜 그만하면 또 안 됨

-???: 참신하게 죽여드렸습니다^^

-그러면 개망겜확정이지ㅋㅋㅋㅋ

희미하게 보이는 시야로도 도시의 붕괴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시청자들은 탈출 확정에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이어 화면이 전환되며 해안가에 떠밀려온 포드와 땅에 엎어진 박주호 캐릭터가 보였다.

“살았다… 살았어…”

안도하는 그를 지나 주인공의 모습이 보였다. 주인공은 딥원, 호레이쇼를 조심스럽게 눕혔다.

미약하게 숨을 내쉬면서도 호레이쇼는 주인공을 훑었다. 마치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

주인공이 그에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호레이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주인공의 턱이 떨렸다. 그리고 이내 천천히, 그 역시 호레이쇼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축하, 감사드립니다.”

호레이쇼의 웃는 얼굴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호레이쇼는 힘겹게 주인공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서서히 눈을 감았다.

주인공은 그 물갈퀴가 있는 손을 굳게 잡았다. 그와 함께 서서히 화면이 암전됐다.

-갓버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확실히 캡슐 게임에 어울리는 스토리긴 하네…

-모바일 게임에 이런 거 넣긴 좀 그렇지

-넘모 슬픈 것이고 ㅠㅠㅠㅠ

시청자들이 그리 여운과 소감을 말하는 사이 이경복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약간 느낌이 다릅니다.”

시청자들의 주의가 곧바로 돌아왔다. 평소 방송하던 때와 달리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물론 슬픈 이야기지만,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될 만한 이야기 일 수도 있거든요.”

이경복은 담담히 말했다.

“때로는 작별을 나눌 기회도 없이 가족을 떠나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호레이쇼가 무사히 육지로, 가족에게 돌아왔다는 장면에 의의가 있지 않나 싶어요.”

-고것도 맞긴 하지

-하긴… 마지막에 가족이랑 인사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의외로 많지도 않음

-그렇게 해석하니까 또 다르네

-부모님 생각남 ㅠㅠㅠㅠ

-주말에 본가 함 가야겠다

-???: 보고시ㅃ어

-아 그 짤 ㅋㅋ 눈물샘 자극 미침ㅋㅋㅋ

-효과금도 그렇고 알고 보니까 이거 효도 권장 겜이네!

이경복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스토리가 무겁다 보니 방송 분위기가 약간 가라앉았다.

때마침 암전된 화면이 밝아지고 있던 바, 그는 손뼉을 치며 주의를 환기 시켰다.

“아, 해군 본부가 나왔네요.”

맑은 하늘 아래 해군 본부의 전경이 펼쳐졌다.

“이제 엔딩 씬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기나긴 여정이라 해도 그 종착지는 결국.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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