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화 – 비즈니스 트립 (4)
해가 붉게 물들 무렵, 팀 퍼펙트 일동은 예약해둔 료칸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일본 전통의상인 유카타를 입은 직원이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그들을 맞이해주었다.
“한국어를 할 줄 아시네요?”
“아, 네네. 한국어 할 줄 압니다. 한국인 분들이 많이 찾아와주시거든요.”
직원은 유창한 한국어로 대답했다. 그에 다들 안도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와…”
“아니, 엄청 고풍스러운데요?”
“햐, 여기도 돈 좀 꽤 썼겠는데?”
양규리가 추천한 곳 답게 료칸은 고풍스러웠고 규모도 컸다. 다들 감탄하는 와중 박주호가 방을 확인했다.
“성인 남성 4인 1실, 여성 2인 1실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예, 확인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직원의 안내를 받아 남자 그룹과 여자 그룹 각기 방으로 들어섰다.
각자 짐을 정리하는 와중 박주호는 직원과 또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 식사는 한 7시 정도에 괜찮을까요?”
“아, 네네. 물론입니다. 가이세키 요리로 6인 맞으시죠?”
“예, 방은 따로 잡았지만 식사는 여기서 다 같이 하면 좋겠습니다.”
“가능합니다. 그럼 저녁 7시에 준비해두겠습니다.”
저녁 식사 예약과 짐 정리까지 모두 마친 뒤 팀원들은 입구 앞으로 모였다.
“시간이 적당하네요. 지금 사구로 가면 일몰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발하시죠.”
조대한의 가이드에 따라 팀원들은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사구에 도착한 그들은 모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와… 뭐야?”
“대충 모래사장에 언덕 정도 있을 줄 알았는데…”
“완전 예상 밖인데요?”
“진짜 사막 같아요!”
일반적인 해안가의 모래사장과 둔덕 정도를 예상했었다. 그러나 돗토리 사구는 그렇게 규모가 작지 않았다.
실제로 사막을 잘라 옮긴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높은 언덕 너머로 바다가 펼쳐져 있어 더욱 이국적인 모습이었다.
이경복은 바로 액션캠을 높이 들었다.
“여러분 보이시죠? 와, 모래도 엄청 부드럽고 진짜 사막에 떨어진 기분이네요.”
그는 들뜬 목소리로 액션캠을 이리저리 돌렸다.
“제가 사막은 데머크랑 로데리에서도 가봤었잖아요? 하지만 역시 가상현실이랑 현실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여기는 바다도 끼고 있어서 건조하지도 않네요.”
이경복은 자신의 느낌을 시청자들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이에 그는 분주히 카메라에 풍경을 담았다.
다른 팀원들도 즐겁게 사구를 거닐던 와중이었다.
“오? 낙타가 있네요?”
단순히 사구를 구경하는 것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서서히 떨어지는 석양을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낙타를 타는 체험을 하고 있었다.
“다들 한 번 타보실래요?”
“아, 좋죠!”
“와, 낙타 이렇게 가까이서 처음 봐요.”
“저 혹 사이에 타면 안 아프나?”
다들 그에 기대하는 와중 최병훈은 카메라를 들어 보였다.
“햐, 이거 그림 좋다. 내가 다 찍어줄 테니까 바로 타봐!”
“넌 안 타고?”
“야, 내가 타면 동물학대야 학대!”
그의 장난스러운 대답과 함께 팀원들이 낙타에 올랐다. 몇몇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담당자가 도와주니 곧잘 탈 수 있었다.
“아니, 털이 의외로 부드럽네요?”
“물혹 느낌 되게 신기하다.”
체험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팀원들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되돌아왔다.
“어우, 생각보다 긴장해서 그런가 다리가 땡기네요.”
“그래도 낙타가 순하더라고요.”
“난 낙타가 말처럼 갑자기 앞다리 들면 어쩌나 했다니까?”
이경복도 그에 즐거워하며 언덕을 가리켰다.
“저기 올라가서 한 번 바다도 보러 가봐요.”
쌩쌩한 그의 모습에 다른 팀원들이 헛웃음을 흘렸다.
“진짜 사장님 체력 대단하시네…”
“으아… 언덕이 생각보다 높아 보이는데요?”
“천천히 따라가시면 됩니다. 저 녀석, 지금 신나서 그래요.”
박주호의 조언에 팀원들은 그 뒤를 따랐다. 이경복은 마치 평지처럼 언덕을 주파했다.
“와… 이것도 장관이네. 여러분 풍경이 진짜 좋습니다.”
사막 옆에 파도가 치고 있다. 이경복은 파노라마 영상처럼 천천히 액션캠을 옆으로 돌렸다.
그리 돌아간 시야에 이경복의 관심을 끄는 게 또 있었다.
“어? 저건 뭐지?”
언덕 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었다. 특이하게도 그들은 넓은 보드 위에서 자세를 잡고 있었다.
“아, 저거 샌드, 샌드 보드입니다.”
그사이 숨을 몰아쉬며 이경복을 따라잡은 조대한이 설명했다.
“샌드 보드요?”
“예, 후아. 스노우 보드처럼 모래 위에서 보드를 타는 거죠.”
“오, 재미있겠는데요?”
이경복은 그리 눈을 빛내며 언덕을 오르는 팀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혹시 샌드 보드 타보고 싶으신 분!?”
그 물음에 무릎을 짚으며 올라오던 팀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괜찮아요!”
“야, 너나 타고 와!”
“대한 씨, 같이 좀 가주세요!”
그 대답에 이경복은 장난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액션캠을 돌렸다.
“여러분 보셨죠? 저희 회사가 이렇습니다. 사장 혼자 놀아야 돼요.”
“사장님, 제가 있지 않습니까!”
“대한 씨도 타실 거예요?”
“아, 그건 좀…”
“농담이에요. 통역해준다고 올라온 것만 해도 고맙죠.”
이경복은 웃으며 조대한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이내 두 사람은 샌드 보드 체험장에 도착했다.
직원과 무어라 얘기한 조대한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어떻게 됐어요?”
“원래는 예약을 해야 즐길 수 있는 코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마감 직전이라 특별히 체험을 시켜주시겠다네요.”
“아, 그래요?”
“네네, 이게 또 시청자분들이 잘못 알면 안 되니까요.”
“그렇죠. 여러분, 샌드 보드를 즐기고 싶으시면 미리 예약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아, 여기 홈페이지 주소도 있네요.”
이경복은 일본어로 쓰인 안내문을 액션캠으로 찍었다.
이윽고 샌드 보드에 오른 이경복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세를 배우고 주의사항을 들었다.
이내 그가 액션캠을 가리키며 무어라 말하자 이경복은 조대한을 돌아봤다.
“초보시니까 촬영이 힘들 거라고, 자기가 같이 내려가면서 찍어주는 게 어떠냐고 하시네요.”
“아, 괜찮습니다. 다이죠부? 맞죠?”
“네네, 맞습니다. 그럼 사장님이 직접 찍으시는 거죠? 파손해도 책임이 없답니다.”
“에이, 제가 책임을 왜 묻겠어요.”
이경복이 여유로운 미소로 화답하자 결국 직원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윽고 이경복은 언덕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았다.
“자, 그럼 샌드보드! 한 번 타볼게요!”
일말의 주저도 없었다.
이경복은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웃으며 바로 모래언덕에 몸을 맡겼다.
“하아? 엄청 부드럽게 잘 타지 않습니까? 완전하게 숙련된 자세인데요? 분명 처음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그를 보며 직원이 놀라 말했다. 조대한이 그에 웃으며 대꾸했다.
“예, 저희 사장님이 운동신경이 엄청 좋으시거든요.”
“아, 혹시 스노우보드를 즐기셨다거나?”
“그건 아마도 아닐 겁니다. 원체 처음 하는 것도 곧잘 하시는 분이라.”
조대한은 마치 자신이 칭찬을 들은 것처럼 뿌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어 한 박자 늦게 도착한 다른 팀원들도 이경복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와, 진짜 재미있긴 하겠네요.”
“점마 액션 캠 들고 갔지? 설마 안 찍는 건 아니겠지?”
“보면 알잖냐. 어떻게 한 손만으로 밸런스를 잡는 건지 원…”
“이건 진짜 멋있네요. 이것도 피규어로 만들면 어울릴 것 같은데…!”
다들 이경복에게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사막에서 모래를 타고 푸른 바다를 향해 내려가는 이경복과 그 뒤로 펼쳐진 노을빛 하늘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내 경사가 낮아지며 그 속도도 줄어들더니 곧 멈추었다. 이경복은 바로 보드를 챙겨 달려왔다.
“와! 이거 진짜 재밌어요!”
함박웃음과 함께 돌아온 모습에 직원은 한국어를 몰라도 그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직원분이 뭐 불편한 건 없었냐고 물으시네요.”
“아니, 진짜 모래가 너무 부드러워서 걸리는 게 없더라고요. 보드 자체도 쭉쭉 나가고.”
조대한의 통역에 이경복은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에 직원은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 정말 처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완벽하셨다고 합니다. 이걸 홍보영상으로 쓰고 싶을 정도라고.”
“아하하, 과찬이십니다. 환경도 좋고 그래서 그런 거죠.”
이경복이 멋쩍게 웃으며 보드를 반납했다.
그렇게 레저 활동 하나를 또 마친 팀원들은 기념 촬영과 함께 사구 관광을 마무리 지었다.
다시 료칸으로 돌아온 팀원들에게 박주호가 설명했다.
“아마 보셨겠지만 객실마다 노천탕이 있습니다. 7시까지 씻으시고 같이 식사하시죠.”
“네!”
“이따 뵙겠습니다!”
* * *
온천욕을 마치고 온 남자들은 옷을 갈아입었다. 료칸답게 손님들을 위한 유카타도 준비되어 있었다.
“이렇게 입는 거 맞지?”
“아마도?”
“그냥 가운 같은 거라 생각하면 되지 뭘.”
최병훈은 그리 말하고는 이내 조대한을 돌아봤다. 그는 약간 충격 받은 표정으로 유카타를 주섬주섬 입고 있었다.
“왜 그래?”
“예? 아, 아니…”
조대한은 흠칫 놀라더니 이내 이경복을 힐끔 훔쳐보았다.
“사장님이 대단하신 분인거야 알고 있었지만… 설마 머리부터 발끝까지 퍼펙트 할 줄은 몰랐습니다.”
“머리부터 발끝?”
“아니, 그… 있잖습니까. 저도 아버지가 서양인이시니까 나름 자부심이 있거든요. 근데 사장님은 무슨…”
“아, 아아. 오케이, 거기까지.”
최병훈은 그에 웃으며 조대한을 말렸다. 바깥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온 덕분이었다.
“옷 다 갈아입으셨어요?”
매드맨의 목소리였다.
네 사람 모두 서로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들어오세요.”
매드맨과 퍼그말리온 역시 유카타로 환복했다. 그에 다들 서로 잘 어울린다며 칭찬하는 와중이었다.
“와, 이건… 이것도 만들고 싶다.”
퍼그말리온은 이경복의 유카타 차림에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머릿속에 영감이 번뜩이며 샘솟기 시작했다.
“식사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다행히 직원의 목소리에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속속들이 도착하는 상차림에 팀원들도 각기 자리를 잡았다.
“와, 이게 가이세키에요?”
“가이세키가 코스 요리 같은 거죠?”
“네네, 일본 가정식 요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한정식 코스인 거죠.”
첫 상차림이 끝나자 직원이 정중히 물었다.
“음료나 주류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 이건 자유롭게 선택하시면 됩니다. 재량껏 드시면 돼요.”
“술은 사케나 하이볼이라고 칵테일 괜찮습니다. 생맥주도 어울릴 거고요.”
조대한의 말에 다들 각자 정리를 마쳤다. 이경복은 하이볼을 선택했다.
“자, 그럼 잘 먹겠습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식사를 시작하자 다들 감탄을 표했다.
“오, 맛있네.”
“아니, 이거 너무 호강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그러니까요. 이렇게 좋은 숙소에 코스 요리라니…”
“크으, 이게 바로 워크샵이지.”
다들 만족해하자 이경복도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 호강은 하셔야죠. 다 같이 방송을 만들어왔잖아요? 여러분 도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죠.”
그에 다들 웃었지만 퍼그말리온은 슬쩍 눈치를 보았다. 그가 말한 ‘여러분’에 자신이 포함되지는 않을 터였다.
“그리고 이번에 퍼그말리온 님 덕분에 굿즈 사업도 더 잘 될 겁니다. 지금까지 잘 해주셨고, 앞으로도 잘 해주세요.”
어색해하는 그녀에게 이경복이 뒷말을 붙였다. 이어 그는 가볍게 잔을 들었다.
“건배 한 번 하죠.”
“아, 좋습니다.”
“빈 잔 없죠?”
팀원들 모두 잔을 들자 이경복이 목소리를 높였다.
“팀 퍼펙트, 이름값 합시다!”
다들 웃으며 건배했다.
모두가 이름 그대로의 팀이 되길 바랐다.
* * *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친 후.
가볍게 술을 곁들이며 팀원들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가 일본 분이세요?”
“아, 역시 놀라실 줄 알았습니다. 다들 한국분이라고 생각하신다니까요.”
퍼그말리온이 놀라자 조대한이 웃음을 흘렸다.
“제 외모 때문에 일단 부모님 중 한 분은 서양인이라는 건 다 이해하시는데, 일본인이라고 하면 안 놀라는 사람이 없어요.”
“그만큼 대한 씨가 완전 한국인 같아서 그런 거죠.”
“네. 그래도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외모 덕을 많이 봤죠. 모델 일도 솔직히 그 덕이거든요. 근데 지금은 다릅니다.”
조대한은 자부심이 묻어나오는 미소와 함께 엄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이건 진짜 제 능력으로 하는 거니까요.”
“그건 그렇지. 대한 씨 아니었으면 진짜 곤란하다니까? 근데 그래도 모델 경험이 아주 도움이 안 된 것도 아니에요. 덕분에 얘들도 모델 한 거 아니야.”
“모델이요? 두 분도 원래 모델일 하셨어요?”
퍼그말리온이 그에 다시 놀라자 이경복이 손을 내저었다.
“아뇨아뇨. 정식 모델은 아니고 저희 굿즈 있잖아요. 후드티 모델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때 대한 씨가 코칭을 해줬죠.”
“네? 아, 그 후드티 사진 모델이 그럼…?”
“네, 저랑 여기 주호랑 대한 씨. 셋이서 같이 찍었어요.”
“와, 저는 당연히 프로 모델을 섭외하신 건 줄…”
그녀의 턱이 떨어져 올라올 줄을 몰랐다. 이내 그녀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제가 그걸 직접 봤어야 하는 건데. 패션모델 버전의 퍼플 피규어, 이거 완전 좋지 않나요?”
그녀의 물음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매드맨이 가볍게 잔을 비우고 물었다.
“퍼그말리온 님은 진짜 만드시는 거 좋아하는 것 같아. 언제부터 이런 조형을 시작하신 거예요?”
“아, 저는 좀 어릴 적부터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그럼 그때부터 진로를 아예?”
“아뇨아뇨. 그때는 그냥 그게 재미있기도 하고, 제가 또 칭찬 듣는 걸 좋아해서요.”
퍼그말리온은 약간 쑥쓰러운지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나름 재주가 있어서인지 부모님이랑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도 칭찬을 자주 해줬거든요. 그 칭찬이 또 듣고 싶어서 계속 만들다보니 적성도 맞는 것 같더라고요.”
“아, 이해합니다. 칭찬 싫어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쵸그쵸. 보통 우리처럼 창작하는 사람들 치고 칭찬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어요?”
매드맨의 맞장구에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근데 이게 진로로 잡는 건 또 다른 이야기더라고요. 특히 부모님이 되게 걱정을 하셨어요. 아무래도 안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으니까.”
“햐, 이것도 완전 공감. 나도 영상 편집한다고 아버지한테 말 하니까 그냥 취미로만 하라고 하셨다니까?”
최병훈이 공감하자 그녀는 손뼉을 쳤다.
“어, 저도요! 근데 다행히 저는 바로 캡슐이 나와서 부모님이 이해를 해주셨어요.”
“캡슐이요?”
“네, 가상현실 시대가 되면서 오브젝트 만드는 방식이 좀 달라졌거든요. 여러 가지가 있긴 한데, 저처럼 직접 조형하는 모델링 프로그램도 있어요.”
“오… 그렇구나.”
“네, 그래서 이런 모델링 관련 직종이 각광을 받아서 부모님도 걱정을 좀 덜으셨죠.”
그녀는 그리 설명하다가 이내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근데 정작 취직은 번번이 실패해서… 저는 제가 잘못된 결정을 한 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척척 합격하는데 자신만 실패했다. 그것도 자신이 가진 그 특유의 강박 때문이었다. 이에 퍼그말리온은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라 여겨왔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주신 기회가 더 감사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녀의 노력이 헛된 게 아니었다. 스스로 단점이라 생각했던 것이 이곳에서는 장점으로 여겨졌다.
본래 자기 일을 하던 조대한과 매드맨에 비하면 더 절박했던 상황이었다.
그녀의 말은 일말의 거짓도 없었다.
“이제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경복이 그에 고개를 끄덕이며 격려했다.
“부모님께 떳떳하게 자랑하실 수 있을 거예요.”
“실제로 저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사장님이 어떤 분이신데요.”
조대한이 웃으며 엄지를 세웠다.
“한국 대표 스트리머와 함께 일한다. 이거 우리 부모님이 진짜 좋아하시거든요. 굳이 멤버십 영상으로 보신다니까요?”
그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퍼그말리온도 이에 따라 웃다가 슬쩍 눈치를 살폈다.
“저, 근데 세 분은 진짜 친구신 걸로 아는데 어떻게 친해지신 거예요?”
돌아온 물음에 박주호와 최병훈이 슬쩍 이경복의 표정을 살폈다.
“음, 그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나…”
이경복이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최병훈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뭐, 일단 내가 먼저 친해졌죠. 인마는 나중에 전학을 와서.”
“순서가 무슨 상관이라고 그걸 내세우냐?”
“야, 내세우는 게 아니라 팩트를 말씀드리는 거지. 어? 팩트가 중요한 거 아니냐!”
이경복이 그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일단 얘기에 앞서서 먼저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왔다. 이경복은 팀원들을 하나씩 돌아보며 말을 이어갔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은 좀 했었어요. 이걸 듣고 편견을 가진 사람들을 제가 좀, 많이 봤었거든요.”
편견이라는 단어에 박주호와 최병훈은 입을 다물었고 다른 세 사람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 믿으니까 편하게 이야기드리는 겁니다.”
이경복은 그리 말하고는 가볍게 목을 축였다.
“저희 외할머니가 무당이셨어요. 그것도 엄청 용하신 분이셨죠.”
세 사람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이경복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그래서 학창시절에는 그 편견, 그리고 때로는 멸시가 저한테 따라붙었어요.”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 사이.
그 안에서 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아이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