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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393화 (393/491)

393화 - 세 친구 (1)

이경복의 학창 시절.

프로게이머 입단 테스트에서 탈락한 이후 그는 진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경복아, 그래도 대학은 나오는 게 좋아.”

“대학에 가면 더 재미있는 걸 찾아볼 수 있을 거다.”

대학은 가야 한다.

여느 부모님처럼 이경복의 부모님 역시 대학 진학을 원하셨다. 이에 이경복은 늦게나마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진짜 심하게 재미없네…’

하지만 이경복이 공부에 흥미를 느끼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꾸역꾸역 진도를 따라가기는 했지만 성적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경복아! 축구 콜?”

“아니, 오늘은 별로.”

프로게이머 준비를 한다고 수업도 곧잘 빼먹은 터라 교우 관계는 그럭저럭이었다.

덕분에 같은 반 학생들과는 약간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아, 너 없으면 누가 골 넣냐? 그냥 한 번만 뛰자. 응?”

“아, 이 새끼 이거. 경복이 뛰면 여자애들이 구경 오니까 넣으려고 그러는 거잖아.”

“야! 아, 아니거든!”

“하여간 여미새라니까. 야, 경복이 귀찮게 말고 얼른 나오기나 해!”

개중에 최병훈은 동급생 중에서 그나마 가장 좋은 기운을 뿜어내는 학생일 뿐이었다. 그때까지는 진짜 친구라고 부를 관계는 아니었다.

상황이 바뀐 건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였다.

‘부모님을… 다시 못 본다고…?’

눈앞에서 부모님이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경복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장례식 도중에도 그는 그저 멍하니, 나란히 세워진 부모님의 사진을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대체 왜…?’

현실감이 없었다.

부모님이 없는 세계에 자신이 살아간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저 다시, 부모님을 뵙고 싶었다.

‘집에 가면 계실 것 같은데…’

그러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경복이 있는 장례식장에 조문객들이 흐느끼고 있었고, 할머니께서는 덤덤하게 그들의 방문에 감사하고 있었다.

그를 제외한 모두가 부모님의 죽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아…”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부모님은 돌아가신 거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 그 사실을 자각하니 억눌린 감정이 눈물로 새어나왔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거기서 참지 못하고 통곡했을 터였다.

그러나 이경복은 평범하지 않았다.

‘잠깐만이라도 괜찮으니까…!’

감정의 동요와 함께 그의 안에 갇혀 있던 신기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이경복은 이내 기이한 경험을 했다. 부모님의 사진이 걸린 제단, 그 주변에 놓인 꽃 장식들이 삽시간에 증식하며 주변을 뒤덮었다.

할머니와 조문객들, 그리고 장례식장 직원들 모두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로지 꽃만이 가득한 몽환적인 풍경에 이경복은 넋이 나갔다.

‘이쪽이야.’

이경복은 직감했다.

이 느낌을 따라가면 부모님을 만날 수 있다.

그는 느낌이 사라질세라 뛰었다. 그러나 이내 곧 멈추어야 했다.

‘강…?’

꽃밭과 꽃밭 사이에 강이 흐르고 있었다. 이경복은 강 너머를 바라보았다.

분명 그 너머에 부모님이 계셨다. 강이 얼마나 깊을지, 그대로 건널 수 있는지 생각할 틈이 없었다.

이경복이 그 강에 발을 담그려는 순간이었다.

‘뭐지?’

순간 멈칫하며 그는 귀를 기울였다. 뭔가 소리가 들렸다.

그리 주의를 기울이니 미약하게나마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아.>

뭔가 싶은데 이어 아련하게나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경복은 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경복아! 경복아! 그 강을 넘으면 안 된다!>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얼마나 다급하신지 목소리가 찢어지셨다.

“할머니?”

<급급여율령! 바라건대 천명을 따르소서!>

놀란 이경복이 돌아선 순간 방울 소리가 천둥처럼 커졌다. 그에 기겁한 이경복이 귀를 막는 순간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조금 전까지는 건널 수 있었을 것 같던 강폭이 갑자기 넓어지는 게 아닌가. 때문에 건너편의 꽃밭은 아득히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아차 싶은 순간 그가 서 있던 꽃밭 역시 순식간에 사라졌다.

“할머니…?”

몇 번 눈을 깜빡이자 이경복은 자신이 장례식장에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그 앞에는 땀을 뻘뻘 흘리시며 진이 빠진 할머니께서 안도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이것아…! 어쩌자고 삼도천을 넘으려고 했느냐…! 다시는,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

할머니께서는 다 쉰 목소리로 말하며 이경복을 품에 끌어안으셨다.

그는 황당했지만 할머니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에 입을 다물었다.

모두 경악한 듯 눈이 휘둥그레져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중에는 단체로 조문을 왔는지 동급생들도 있었다.

그 사이 장례식장 직원이 다가와 말했다.

“구, 구급차 안 불러도 될까요? 발작이 되게 심하셨는데…”

이경복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자신이 신병에 시달린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었다.

“왜…”

이경복은 몸을 떨며 할머니를 밀어냈다. 그리고 비로소 눈물을 쏟아내며 말했다.

“왜 막았어! 왜!”

할머니께서 자신을 구했다.

하지만 이경복은 감사보다 원망이 더 앞섰다.

“할머니는 알았어야지!”

“경복아.”

“왜? 왜 몰랐는데?”

부모님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경복은 이를 위해 ‘이유’를 찾아야 했다.

“할머니 무당이라며! 대단한 무당이라면서!”

그것은 아이로서 이경복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투정이었다. 할머니께서는 씁쓸함을 삼키며 담담히 대답했다.

“…흔히 무당들은 사람의 운명을 사주로 점치려고 하지.”

그는 할머니에게 상처를 주고 나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       *       *

최병훈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괜찮은 건가…?’

조문을 위해 이름을 쓰고 들어가려는 순간 이경복의 발작이 시작됐다. 다행히 할머니께서 방울을 흔드시며 무어라 하시니 진정이 되긴 했다.

놀란 동급생들은 일단 빠르게 장례식을 나왔다. 최병훈이 헛숨을 들이키며 다른 친구들을 돌아봤다.

“야, 그래도 얘기는 해야…”

그러나 그는 말을 채 끝낼 수가 없었다.

“야, 대박. 완전 미쳤다.”

“귀신이라도 씌인 건가?”

“그 할머니가 방울 흔들면서 주문 외는 거 봤어?”

“걔 무당 집안이었나 봐.”

“아씨… 몰래 찍어둘걸.”

“아, 이 미친 새끼 진짜.”

그들은 웃고 있었다.

아주 진귀한 구경이라도 한 것처럼 조잘대기 시작했다.

“야, 미래의 남친이 무당이라 좋겠다?”

“맞다. 너 걔 선물 사주려고 돈 모았다며?”

“아, 지랄하지 마 진짜.”

“어우, 상상하니까 바로 소름.”

“진짜 완전 깬다.”

평소에는 이경복이 좋다고 관심을 표현하던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불결한 것이라도 봤는지 한껏 얼굴을 구겼다.

“와씨, 발작하는 거 봤냐? 테이저 건 맞은 줄.”

“테이저 건 씨발, 미친 새끼냐? 개 웃기네 진짜.”

“야, 걔 좀 재수 없는 티가 났는데 무당 집안이라 그런 거였네.”

“가끔 멍 때리던데 그거 사실 귀신 본 거 아니냐?”

“다시 학교 나오면 분신사바 콜?”

다른 아이들 중에는 이경복을 마치 장난감처럼 생각하는 놈들도 있었다.

물론 그에 가담하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말리지도 않았다. 그저 남의 일이라는 듯 시선을 돌렸다.

최병훈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야 씨발, 이 미친 새끼들아!”

그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가 소리를 내지르자 흉을 보던 아이들은 물론 방관하던 아이들도 흠칫 놀랐다.

“지금 부모님 돌아가신 애한테 할 말이냐 그게!? 이 새끼들 완전 싸이코패스네?!”

그의 노골적인 지적에 흉을 본 애들은 순간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숫자로 따지면 그들이 더 많았다.

방관하는 아이들은 어느 쪽에도 끼고 싶지 않은 듯 슬쩍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아, 그냥 한 말이지 새꺄.”

“존나 예민하게 구네.”

“아니, 너 경복이랑 친하냐?”

“야, 솔직히 여기 걔랑 친한 사람 누가 있다고 그러냐? 씨발, 와준 것만 해도 감사해야지.”

“솔직히 너도 봤잖아? 걔 완전 정상 아닌 거.”

갖가지 반응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중에 제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병훈이 그에 혐오감을 느끼며 얼굴을 찡그렸다.

“너희 집에서는 이름만 쓰고 가는 걸 조문이라고 가르치냐? 어휴, 씨발.”

더 말할 가치를 못 느낀 듯 그는 바로 돌아섰다. 이에 몇몇 최병훈과 친했던 학생들이 갈등했지만.

“아니, 미친. 저 새끼 갑자기 왜 저러냐?”

“염병, 애미 없는 새끼들끼리 통하는 게 있나 보지.”

“야야, 그건 좀 심했다.”

“내가 뭐 틀린 말했냐? 저 새끼가 먼저 엿같이 구니까 하는 말이지.”

“됐다, 됐어. 그냥 가자.”

이내 그들은 다수 무리를 따랐다.

한편 최병훈은 다시 장례식장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께 통화를 걸었다.

<어, 우리 아들.>

“나 오늘 좀 늦게 들어갈게.”

<엉?>

갑작스러운 아들의 선언에 아버지는 황당해하셨다. 이에 최병훈은 분을 삭이면서 말했다.

“아니, 저번에 아빠 친구들도 늦게까지 자리 지켰잖아.”

굳이 아버지까지 불쾌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아니, 인마. 그건 다 어른이니까 그러는 거지.>

“그렇게 해야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안심하고 떠난다며.”

돌아온 대답에 순간 침묵이 흘렀다. 최병훈은 이에 말을 이었다.

“나도 얘 부모님 안심 시켜드리려고.”

<…그렇게 친한 친구냐?>

돌아온 물음에 최병훈은 즉시 답했다.

“아니.”

이경복에 대해 아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이제부터 친해질 건데.”

지금부터 알아갈 생각이었다.

*       *       *

다시 현재, 료칸.

최병훈은 당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때부터 장례식 끝날 때까지 매일 찾아갔지. 뭐, 유인물 줄 것도 있고 이야기해줄 거 있으면 해주고. 아니, 근데 인마는 뭐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알 수가 없더라고.”

“솔직히 말하면 잘 안 들었어. 그때는 왜 오는지도 몰랐고.”

이경복의 대답에 최병훈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럴 때는 그냥 예의상이라도 들어줬다고 해야 되는 거 아니냐?”

“그때는 워낙 정신이 없었으니까.”

“아무튼 오지 말라고도 안 해서 계속 갔었지.”

“저로서는 사실 누가 오든 말든 별 상관도 없었고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경복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박주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저 말고는 전부 다 어른들이었으니까요. 또래가 옆에 있어주는 건 또 느낌이 다르죠. 게다가 할머니께서도 고마워하셨고요. 상주노릇 하신다고 바쁘셨는데 얘 때문에 제 걱정을 좀 덜하셨으니까.”

“크으, 내가 생각해도 참 기특하단 말이지?”

최병훈이 그리 말하자 다른 팀원들이 실소를 흘렸다.

“야, 꼭 그렇게 점수를 깎아야겠냐?”

“근데 편집팀장님이 의외로 또 이렇게 세심한 면이 있으시다니까요. 그게 다 편집에서 묻어나오고요.”

“저… 그러면 다시 학교 나가셨을 때 좀 그렇지 않으셨나요? 말씀해주신 편견이 그 동급생들 때문인 것 같은데…”

퍼그말리온이 조심스레 묻자 두 사람 모두 눈을 굴렸다.

“뭐, 그렇죠. 다시 학교 돌아가니까 애들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거든요.”

“아, 진짜 그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역겨워.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 뒤에서 호박씨 까는 거.”

“그러면 안 들킬 줄 알았던 거겠지.”

이경복이 어깨를 으쓱이자 최병훈은 눈가를 찡그렸다.

“어우, 진짜 개극혐이야. 대놓고 말하면 자기가 나쁜 사람 되는 거 아니까 끼리끼리 모여서 쑥덕대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우리 둘이 다른 놈들 절교하기로 해버렸죠.”

“인마가 왜 얼공 안 하려는지 알겠죠?”

이경복의 말에 세 팀원들 모두 적극 동의했다.

“진짜 현명한 선택이시네요. 어떻게든 빨대 좀 꼽겠다고 들이대면… 어휴.”

“아무리 어렸을 때라고 해도 그건 진짜 인간이 덜 된 건데. 사장님이 어울려서 좋을 거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두 분이 진짜 베프가 될 수밖에 없긴 하겠네요.”

최병훈이 그에 자랑스러운 듯 웃었다.

“아유, 군대까지 동반입대 했으면 말 다 한 거죠. 군대에서도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건 좀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까 패스.”

“아무튼 이렇게 둘이 노는 와중에 주호가 전학을 온 겁니다. 근데 우리 반이 아니라 다른 반이었어요.”

이에 팀원들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떴다.

“보통은 같은 반 친구들끼리 친해지잖아요?”

“전학생인데 어떻게 접점이 생기신 건가?”

“방송에서는 퍼플 님께서 매니저님이 좀 노셨다고…?”

돌아온 물음에 박주호는 한숨을 다른 두 친구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야, 이거 밝혀도 되나?”

“떳떳하지 못하면 말해. 그냥 넘어가 줄게.”

“누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거냐.”

두 친구의 놀림에 박주호는 눈총을 주었다. 최병훈이 웃으며 하이볼로 목을 축였다.

“크, 보세요. 진짜 양아치라니까요? 맞은 사람은 기억하는데 때린 사람은 기억을 못 해.”

“진짜 다른 애들 때리고 다니신 거예요?”

“매니저님이?”

“진짜 바른 이미지인데…”

그에 팀원들 모두가 진짜로 놀라자 박주호는 빠르게 손을 내저었다.

“아뇨, 오해입니다. 야, 그렇게 말하니까 다들 놀라시잖아.”

“아니, 뭐 내가 틀린 말 했나?”

“정확히 얘기를 해야지.”

박주호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일단 싸움을 한 건 맞습니다. 아마 남들이 보기에는 양아치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이내 그는 안경을 고쳐 쓰며 결백함을 증명하듯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제가 먼저 싸움을 건 적은 없습니다. 얻어맞은 놈들도 다 맞을 이유가 있었고요.”

“…네?”

그에 다들 놀라자 이경복이 웃으며 말했다.

“얘가 나쁜 놈들만 팼거든요.”

애초에 박주호가 진짜 양아치였다면 친구가 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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