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화 - 브이로그 코멘터리 (7)
출장 2일차, 답사 영상의 시작.
<모델링이 끝나면 프린팅 단계가 시작됩니다. 3D프린터로 파츠를 뽑아내죠. 저희 공장에서 사용하는 모델은 가장 최신식으로…>
영상 속 공장장이 자랑스럽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장난스럽게 채팅창을 잠자는 이모티콘으로 채웠다.
-WA! 불면증 치료제!
-(드르렁콘)(드르렁콘)(드르렁콘)
-ASMR 영상이냐고 ㅋㅋㅋ
-갓플의 진심 슈트가 아니었다면 이미 끝났음
-공장이 신기하긴 한데 좀 루즈한 건 킹쩔수 없다 이마리야
그러나 그 장난스러운 분위기에는 진심도 섞여 있었다.
1일차 영상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관광이나 레저 활동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이 이렇게 지루하게 만들 리가 없는데…’
이경복은 그 반응을 보며 의아해했다. 아무리 이번 영상이 정보 전달의 목적이 있다고 해도 최병훈이 영상을 재미없게 만들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히 공정 소개가 짧게 치고 지나가긴 하는데.’
이경복은 잠시 고민했다.
공정에 관한 소개는 각 2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는 자신이 방송 텐션을 올릴 거라 믿은 게 아닐까.
이에 그가 멘트를 고민하는 와중이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시제품을 하나 만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5단계의 공정 소개가 끝나자마자 바로 화면이 넘어가는 게 아닌가.
이내 클로즈업 된 화면은 이경복의 손을,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작은 피규어를 비추었다.
-?????
-헐?
-퍼무새 피규어!?
-혀엉?! 설마 퍼무새 피규어도 나오는 거야!?
-아닠ㅋㅋ갑자기 훅 들어오네!
-(게말콘)(게말콘)(게말콘)
-와씨 ㅋㅋ 재현도 보솤ㅋㅋㅋ
-퍼그말리온 님 작품인 듯?
퍼무새 미니 피규어의 등장에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천천히 흐르던 채팅창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역시 노림수가 있었네.’
이경복은 이에 미소를 지었다. 최병훈은 시청자들이 뭘 원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예상하지 못한 점도 있었다.
“이게 말이 됨!?”
퍼무새가 영상 속 피규어의 모습을 보며 빠르게 날갯짓을 했다. 이경복은 허둥지둥하는 퍼무새를 보며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 퍼무새가 자기 피규어를 보고 놀란 모양이네요.”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쭈인! 저 앙큼한 것은 누구얏!
-다른 퍼무새 입양하는 줄 알고 놀란 거냐곸ㅋㅋㅋ
-개커엽넼ㅋㅋㅋㅋㅋㅋㅋㅋ
-아 ㅋㅋ 아무리 피규어라도 진짜는 못 당하지
퍼무새의 행동에 텐션 상승에 추진체가 달렸다. 채팅창에 솟구치는 와중 이경복은 퍼무새를 달래주며 설명했다.
“퍼무새 피규어는 물론 출시 계획이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퍼무새 모델은 로그 게임즈에서 오픈소스로 배포를 해주셨으니까요.”
피규어 출시와 관련해서는 샵팬덤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도 이번에 배웠는데 혹시나 오해가 없도록 정확히 말씀드릴게요.”
퍼무새는 이전 게말콘과는 다르게 이경복, 팀 퍼펙트의 오리지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퍼무새의 모델은 엄연히 저작권이 로그 게임즈에 있습니다. 다만, 상업적 이용이 가능하고 파생 상품에 대한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로열티 프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거 공지 자세히 보면 나와있음
-애당초 상업적 이용 안되면 방송에도 못 나오지 ㅋㅋㅋ
-이건 로그게임즈가 진짜 머리 잘 쓴 거지 ㅋㅋㅋ
-ㄹㅇㅋㅋ 다른 스머들 방송에도 퍼무새 나오잖슴
-사실 갓플이 맘만 먹으면 다른 보라 앵무로 모델링하면 되니까 ㅋㅋㅋ
-아 ㅋㅋ 그래서 퍼무새 피규어는 언제 나오냐구욬ㅋㅋㅋ
이경복은 조금 진정이 된 퍼무새를 부드럽게 어깨로 옮겼다. 퍼무새는 마치 자기 자리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이경복의 얼굴 옆에 가깝게 붙었다.
“약간 스포지만 이번 답사한 업체에 모두 퍼무새 피규어를 시제품으로 맡겨봤습니다. 그 완성도를 보고 업체를 선정하려 했죠. 나머지도 같이 볼까요?”
-여러 버전의 퍼무새 피규어가 이따!?
-아 ㅋㅋ 이러면 이야기가 다르지!
-퍼무새 놓칠까 딴짓 못해버리고?
-거 편집자님! 인질이 너무 센 거 아입니까!?
-근데 퍼무새 만드는 과정으로 보니까 갑자기 재미있는 거 나만 그래?
-ㄹㅇㅋㅋ 급 관심 땡김 ㅋㅋ
시청자들의 관심도는 바로 높아졌다. 이윽고 2개 업체의 답사 영상이 끝나고 화면이 전환됐다.
“아, 이번 점심은 샵팬덤에서 식사를 제공해주셨습니다. 여기 진짜 맛있는 곳이었어요.”
점심으로 먹었던 게 요리들이 화면에 나타났다. 시청자들은 그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ㅋㅋㅋ 편집자님 ㅋㅋㅋㅋ
-혀엉? 사실 이게 메인이지?
-공장 소개보다 공 들이는 거 뭔뎈ㅋㅋㅋㅋㅋㅋ
-와씨 ㅋㅋ 근데 진짜 잘하는 곳 갔나보네 ㅋㅋㅋ
-???: 배가… 고파졌다!
이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경복의 먹방에 다들 감탄을 표했다.
“아, 이거 게 내장이 정말 진국이었습니다. 햐, 또 생각나네요.”
-꾸덕한 게 완전 ㅁㅊㄷㅁㅊㅇ
-이 형 진짜 맛나게 먹네 ㅋㅋㅋ
-운동한 사람 답게 식성이 좋은 듯 ㅋㅋㅋ
-아니 ㅋㅋㅋ 이렇게 멋있게 입고 잘 먹냐고 ㅋㅋㅋㅋ
-근데 이건 샵팬덤도 겁나 뿌듯하겠다 ㅋㅋㅋㅋ
-ㄹㅇㅋㅋ 사주는 입장에서 이정도로 잘 먹으면 좋아하지
다들 웃으며 관람하는 도중 화면이 전환됐다. 접시 위에 게살로 만들어진 말 모양의 조형물과 게장에 비빈 밥.
[(카메라) 붐! 게말콘 정식!]
그 아래 깔린 자막에 이경복이 실소를 흘렸다.
“아니, 이걸 넣었네. 얘가 퍼그말리온 님한테 뭐라고 부탁하더니 이걸 만들더라고요.”
-?????
-가게에서 만들어 준 게 아니라고?
-저걸 즉석으로 만드신 거?
-아닠ㅋㅋㅋ 게살로 왜 디테일을 살리시는뎈ㅋㅋㅋㅋㅋ
-와 ㅅㅂ 게살 가늘게 찢어서 갈기 표현 한 거 봐
-금손춬ㅋㅋㅋㅋㅋㅋ
이윽고 점심 식사 영상까지 끝나자 시청자들은 흡족함을 표했다.
-아… 게 먹고 싶다
-혀엉? 사실 광고가 게 요리 광고인 거지? 그치?
-게 PPL 이었던 거냐곸ㅋㅋㅋㅋ
-트수들은 그냥 게맛살이라도 먹으라구웃!
-진짜 갓플은 게임 아니었어도 방송으로 먹고 살았을 듯 ㅋㅋㅋ
-ㄹㅇㅋㅋ 이 형은 그냥 보고 있으면 즐거움
-잘 먹고, 잘 놀고, 잘 생기기까지 하니까 ㅋㅋㅋㅋㅋ
* * *
답사 영상은 금방 마무리됐다.
고쿠키야로 잠정적으로 결정은 했지만 아직 계약이 끝난 건 아니었다. 이에 이번 영상은 각 업체를 간단히 소개만 하는 수준으로 그쳤다.
“소개해 드린 4개 업체 중에 아직 계약이 확정된 건 아닙니다. 다만, 마스터피스는 가격과 비용 문제로 제외하고 현재 3개 업체를 상대로 샵팬덤 측에서 협의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마스터피스가 비싸긴 해;;
-근데 거기랑 했으면 진짜 수량 개 부족할 듯 ㅎㄷㄷ
-보니까 다른데도 웬만하면 퀄리티 안 떨어지는 것 같은데?
-어디든 좋으니까 빨리만 내줘잉!
-혀엉? 혹시 예약은 안 받음?
-설마 지금? 대출 알아봐야 되나?
-대출 사유 : 굿즈 구매
-미쳤냐곸ㅋㅋㅋㅋㅋ
채팅창 가득 쏟아지는 질문에 이경복은 양손을 빠르게 내저었다.
“아니, 아직은 완전 시작 단계입니다. 관련 소식이 업데이트되면 바로바로 전달 드릴게요.”
그는 그리 설명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여행의 추억을 되새기며 설명하다 보니 어느덧 방송을 끝낼 때가 됐다.
“자,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같이 봐주셔서 감사하고 저는 다음 방송으로 찾아오겠습니다!”
-벌써 간다고!?
-흑흑 그립읍니다ㅠ
-무친 시간 개빨리 지나갔네ㅋㅋㅋㅋ
-아니 ㅋㅋㅋ 이 형 같이보기도 잘하네ㅋㅋㅋㅋ
-구.쭈.출.시.해
-퍼바!
화면이 암전되며 방송이 끝났다. 난민이 된 시청자들은 간단히 잡담을 나누다가 저마다 다른 방송으로 흩어졌다.
그 행선지 중 하나.
“아주 진귀한 선물이외다.”
이클립스가 진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의 앞에는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퍼플 경께서 여정 끝에 본인을 위해 선물을 챙겨오셨소. 이를 가신들과 함께 확인해보겠소이다.”
-그 이야기라면 트위티에 지금 난리도 아니외다!
-정말 놀라운 원정이었으니!
-PPL 대전은 실로 전설에 남을 업적이었소!
-이클 경, 얼른 열어보시구려!
시청자들의 재촉에 이클립스는 상자를 열어 휘장을 꺼내 보였다.
“보이시오!? 고국에서는 볼 수 없는 휘장이오! 퍼플 경께서 본인을 이토록 배려해주시다니, 그저 감읍할 따름이외다!”
-오오…! 이것은 기사단의 휘장!
-퍼플 경께서도 기사도를 잊지 않으셨구려!
-역시 엘든유일검다운 면모가 아니겠소이까!
-근본은 추천이오!
이클립스는 너털웃음을 흘리며 휘장을 스튜디오에 장식했다. 그리고 다시 카메라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런 귀중한 선물을 받은 바, 이를 기념하려 오늘은 고향에 돌아가 보기로 하겠소.”
그와 함께 게임이 시작됐다.
이클립스가 수없이 즐겼던 엘든소울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게임 로고에 시청자들이 흡족함을 표했다.
-아! 정겨운 고향!
-이클 경께서 엘든소울로 복귀하신다!
-근본! 근본! 근본!
-의적 활동도 좋지만 확실히 이클 경께서는 역시 기사 갑주를 입었을 때가 제일이외다!
“최근 쾌검만을 휘둘렀으니 몸이 무뎌진 것 같소이다. 간단히 무작위 결투로 감을 벼려내야겠소.”
이클립스는 랜덤 매칭으로 결투를 시작했다. 이어지는 그의 결투에 시청자들은 감탄을 흘렸다.
-크으! 이게 바로 이클립스 경이오!
-헌데 뭔가 예전보다 공세가 강해진 듯한 느낌이…?
-그간 어깨 공에게 시달린 게 많았던 건 아닌지?
-오메가란 대체 뭘까…
-크흠, 퍼플 경의 휘장이 힘을 북돋아준 걸로 합시다!
그리고 또 다른 시청자들의 행선지, 지놈의 방송.
“게놈들 어서 오고.”
카메라에 잡힌 지놈과 그 옆에 커다란 게 피규어. 그 역시 이경복에게 받은 선물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게 무어냐? 또 우리 사장님께서 출장 갔다가 내 생각 해주시고 사온 거 아니냐. 너희들은 이런 거 없지?”
-아놬ㅋㅋㅋ 시작부터 킹받게 하네
-이클 님은 휘장 받았는데 이 형은 왜 게 피규어를 받음?
-어허! 갓플이 그냥 예의만 차린 거잖슴!
-아 ㅋㅋ 중간에 생각나서 아무거나 사온 거네 ㅋㅋㅋ
시청자들은 그에 질세라 장난스럽게 툴툴댔다. 지놈은 그에 코웃음을 쳤다.
“어쭈? 너희들이 지금 채팅 창에만 있어서 내가 손을 못 봐줬는데 이제는 다르다 이 말이야. 응? 사장님이 이 피규어를 ‘게놈’이라고 생각하시라고 했다니까? 이제 게소리하면 바로 그냥 확!”
그가 장난스럽게 피규어를 향해 위협했지만 시청자들은 오히려 더 약을 올렸다.
-응~ 하나도 안 무서워~
-갓플이 준 선물을 그렇게 다룬다?
-분명 갓플은 우리 잘 대해주라고 사준 걸 텐데 ㅋㅋㅋㅋ
-이 형은 그걸 가지고 협박을 하려고 하네 ㅋㅋㅋㅋㅋㅋ
-추놈, 또 너야?
-게소리는 본인이 하고 있었구연?
“아, 이것들 안 되겠네. 퍼무새! 쪼아버려!”
“이게 말이 됨?!”
지놈의 말에 날아온 퍼무새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게 피규어를 콕콕 부리로 찍었다.
그 광경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비겁하게 퍼무새 이용하는 거 보솤ㅋㅋㅋㅋㅋ
-5252, 어디까지 추해버릴 셈이냐구웃!
-그 와중에 원조 퍼무새랑 다르게 지무새는 주인 닮았네
-ㄹㅇㅋㅋ 성격 완전 더럽잖어
-전염성 ㅁㅊㄷㅁㅊㅇ
-사실 유전자 레벨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아닐까?
지놈도 시청자들도 어느 한쪽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이에 그는 실소를 흘리며 화제를 전환했다.
“야, 너희 성질도 만만치 않아. 아, 그런데 이번에 보니까 진짜 일본 재밌게 즐겼더라. 나도 보다 보니까 가고 싶을 정도로.”
-ㄹㅇㅋㅋ 진짜 개꿀잼인덧
-오사카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가고 싶어짐 ㅋㅋㅋㅋ
-거기 오락실 가서 PPL 직관 마렵다
-이미 플랜트 위키에 코스 박제됨 ㅋㅋㅋㅋ
시청자들도 이런 흐름이 익숙한 터라 바로 따라왔다. 지놈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인터넷 창을 열었다.
“벌써 위키에 정리가 됐다고?”
그는 플랜트 위키 사이트를 열어 이경복의 항목을 열었다.
[퍼펙트플레이/콘텐츠/워크샵 같이보기]
방송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위키 항목이 생성되어 있었다.
[퍼펙트 투어]
[1. 인천공항]
[2. 오사카공항]
[3. 도톤보리]
[4. 덴덴타운]
[…]
영상 속에 나온 장소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햐, 위키 사관들 진짜 빠르긴 하네. 실시간으로 작성했나 본데?”
-퍼펙트 투어 뭔뎈ㅋㅋㅋㅋㅋㅋ
-뭔 여행사 상품인줄 ㅋㅋㅋ
-갓플 정도면 실시간 편집 쌉가능이지 ㅋㅋㅋㅋ
-근데 좀 대단한 게 스팟까지는이해 되는데 비용까지 개략적으로 정리되어 있음
-오? 개꿀팁이고요?
단순한 정리에서 그치지 않고 동선부터 이경복이 들렀던 가게와 시설들에 대한 이용 요금도 간략히 안내가 되어 있었다.
“아니, 내 위키에는 ‘추놈’항목 뭐 이런 거 있던데 너무 다른데?”
지놈은 그에 탄사와 함께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 간단히 이야기를 하다 보니 화제가 다시 넘어갔다.
“프리미엄 굿즈 나오면 살 거냐고?”
채팅창에 나온 물음에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야,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인데 그걸 말이라고 하냐? 에이, 아니지. 내가 또 도와줘야지! 응? 사장님, 연락 주세요! 제가 PPL 한 번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
-누가 누굴 도와줰ㅋㅋㅋㅋ
-킹부러! PPL 키워드에 묻어가려고!
-숙제를 받는 게 아니라 요구하는 스머가 이따!?
-아닠ㅋㅋㅋ 장난인 거 알아도 킹받넼ㅋㅋㅋㅋㅋ
-ㄹㅇㅋㅋ 당연히 산다고 할 줄 ㅋㅋ
-혀엉? 이러니까 위키에 추놈 항목이 생기는 거야!
지놈은 시청자 반응에 실소를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
“물론 농담이고 당연히 사야지. 근데 굿즈 얘기하니까 또 중요한 게 하나 있어요. 이게 프리미엄 굿즈로 뭐가 먼저 나올지가 관건이거든.”
그는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내가 이거 선물 받으면서 또 밥을 같이 먹었거든? 그때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오?
-사적으로 갓플이랑 밥먹는 사이 ㅎㄷㄷ
-넘모 부러운 거시거요?
-비하인드 썰 나오나요 ㅋㅋㅋ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자 지놈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아마 이번에 방송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우리 사장님이 또 얼굴을 조금 더 공개했잖아? 이거 보고 전부 놀랐을 거야.”
채팅창이 그에 공감하는 말로 가득해지자 지놈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게 왜 그러냐? 이게 퍼플이 방송에서는 천진난만한 모습만 보여주지만 실제로 보면 사려가 깊어요. 자, 생각해봐. 이번에 일본 진출하는 거? 아주 중요한 모먼트거든. 이게 샵팬덤이나 퍼플 쪽이나 넥스트 스텝으로 넘어가는 거라고.”
-고건 맞지
-비즈니스적으로 보면 사업 확장하는 건데
-옼ㅋㅋ 이 형 오랜만에 엄근진모드네
-지놈이 온오프가 확실하긴 해 ㅋㅋㅋ
시청자들의 긍정에 지놈은 더욱 자신 있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나랑 얘기하면서 이러더라고. 굿즈라도 상품을 파는 건데 사장이 뒤에 숨어있어야 되겠냐. 아직 나처럼 완벽하게 공개하기는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전면에 나서서 신뢰를 주고 싶다. 내가 듣자마자 캬!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아니, 정말 사람이 됐다니까?”
-엌ㅋㅋ 나도 캬! 육성으로 바로 나옴
-바보! 시청자만 생각하는 바보!
-와씨ㅋㅋㅋ2일차 영상에서 얼굴 보여준 게 그거 때문인 거?
-킹직히 그것도 목 아래로만 나와도 되긴 했지
-지놈도 굿즈 낼 때는 얼공 아예 안했잖슴?
-그건 오히려 다행 아니냐?
-ㄹㅇㅋㅋ 얼공 했으면 더 안 팔림
시청자들은 감탄과 더불어 지놈을 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허, 이 자식들이 또 이러네? 야, 그리고 굿즈는 만들면 너네들이 사준다며! 재고 처리 얼마나 빡셌는 줄 알아? 어? 갑자기 열 받네? 안 되겠다! 퍼무새야!”
지놈의 과장스러운 반응과 더불어 다시 퍼무새를 불렀지만.
“이게 말이 됨?”
이번에는 퍼무새는 말을 듣지 않았다. 대신 그의 명령이 의아한지 이리저리 고개를 기울였다.
-말 안 듣는 것도 주인 닮았쥬?
-???: 쭈인? 이걸 왜 쪼으라는 거냣?
-???: 하아… 옆집 퍼무새는 이런 거 안 시키는데…
-아앀ㅋㅋㅋ 개웃기넼ㅋㅋ
-지업지득 ㅁㅊㄷㅁㅊㅇ
-지업지득은 또 뭔뎈ㅋㅋㅋㅋ
그렇게 한 차례 분위기를 전환시킨 지놈은 화두를 돌렸다.
“아무튼 그런 상황이고, 아직 첫 프리미엄 굿즈는 정하지도 않았으니까 일단 기다려보자고. 뭐, 아직 업체 선정 중이니까 당연하잖아?”
그는 이내 깜빡하고 있었다는 듯 가볍게 손뼉을 쳤다.
“아, 그런데 이건 좀 너희들도 알아둬야 할 게 있는데. 아마 다들 사장님이 한 게임 속 캐릭터가 피규어로 나오길 원할 거잖아? 근데 이건 또 게임사랑 협약을 해야 할 부분이 있거든.”
-ㅇㅇ 그건 맞음
-바크 피규어 진짜 나와 줬으면…
-킹직히 편법으로 하려면 할 수 있긴 한데
-ㄹㅇㅋㅋ 그냥 경찰관, 보안관, 중세기사 컨셉이라고 해버리면 됨
시청자들의 대답에 지놈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지. 그렇게 하면 솔직히 편하긴 해. 게임사랑 따로 뭐 수익으로 나눠 먹지 않아도 될 거고. 그런데 우리 사장님이 또 그렇게 어중간한 분이 아니시잖냐? 제대로 콜라보 진행할 거라고 얘기해주더라.”
그는 그리 말하며 제 턱을 쓰다듬었다.
“이제부터는 내 뇌피셜인데, 아마 내 에상대로라면 CAP COMPANY가 가장 먼저가 되지 않을까 싶거든? 왜냐하면 이미 데머크에서 보이스팩으로 콜라보도 했고, 바크를 완전 로켓 태워버렸잖냐.”
-그건 무적권 인정이지 ㅋㅋㅋㅋ
-갓플은 또 바크가 근본이었다 이마리야
-ㄹㅇㅋㅋ 개껌이 오히려 고마워해야지
-킹직히 개껌이 콜라보 거절하면 완전 배신자임
-통수는 스토리만으로 충분하다 이마리야
시청자들이 적극 동의하는 와중 지놈은 슬쩍 시간을 살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소통으로 빼둔 시간이 거의 끝나갔다.
“아무튼 뭐, 우리는 차분하게 사장님 결정만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이 말이야. 근데 딱 하나! 진짜 우리가 눈여겨볼 게 뭐냐? 뭐가 나오든 처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지놈은 검지를 올리며 강조했다.
“이번에는 디지털 굿즈가 아니라 실물 굿즈잖아? 이게 잘 안 팔리면 다음 굿즈가 어려워져요. 첫 판매량이 잘 나와야 이후 굿즈 출시가 스무스해진다?”
이내 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물론 걱정이 된다는 건 아니야. 이미 1차 굿즈 봐서 알잖아?”
-이제는 일본 팬들이랑도 경쟁해야할 마당인데 뭨ㅋㅋㅋㅋ
-ㄹㅇㅋㅋ 지금도 배송 밀려 있잖슴ㅋㅋㅋ
-아 ㅋㅋ 이미 굿즈 다 사서 더 살 게 없다구요
-일.단.출.시.해
-한국인이면 제발 퍼펙트 굿즈 삽시다!
없어서 못 사는 게 퍼펙트 굿즈였다.
* * *
비슷한 시각, 퍼그말리온의 집.
그녀는 모델링 프로그램을 켜 놓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나 그 표정과는 달리 머릿속은 복잡했다.
‘…뭐부터 만들지?’
이경복은 업체 계약이 완료된 이후에 구상해도 문제가 없으니 천천히 하라고 했지만.
그녀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만들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오히려 머릿속에 영감이 넘쳐나는 게 문제였다. 이번 여행에서 본 이경복의 모습과 들었던 이야기 덕분이었다.
‘평소라면 그냥 가장 끌리는 것부터 만들었겠지만…’
그리고 선택이 쉽지 않은 이유는 또 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상품이니까.’
이제부터 그녀가 만들어야 할 피규어는 이전에 만들었던 것과는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자신만 좋아하는 것보다는 구매할 팬들도 알아보고 좋아할 컨셉을 선택해야 했다.
‘게다가 한국에서만 파는 것도 아니고 일본 쪽 취향까지 고려하면…’
더욱이 그 팬들 또한 한국과 일본 양국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나. 그녀는 깊이 숨을 내쉬며 굳은 몸을 풀었다.
‘일단은 대한 씨 자료를 기다릴 수밖에 없으려나.’
다행히 그녀에게도 조력자가 있었다. 일본어를 모르는 자신을 대신해 조대한이 일본 쪽 커뮤니티와 SNS 여론을 확인하고 전달해주기로 했었다.
이에 그녀는 오늘의 방송을 다시금 되새겨보았다.
‘게임 캐릭터도 좋긴 하지만 역시 현실의 퍼플 님도 보여주고 싶단 말이지.’
2일 차 방송에서 공개된 모습과 그 폭발적인 반응. 보통 스트리머들은 가상현실 속 모습이 더 낫지만 이경복은 반대였다.
그녀로서는 더 좋은 모델이 있는데 그걸 자랑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이거 괜찮은 것 같은데…”
그녀는 작성 중인 컨셉의 제목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Purple, The Perfect Boss.]
방송에서 보여준 그 이상, 완벽한 사장이자 책임자로서의 모습.
‘블랙기업 밈이랑도 잘 어울릴 거고. 따로 콜라보도 필요 없는 오리지널이라 바로 시작할 수 있고…’
한국 시청자들은 확실히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일본 쪽은 미지수였다.
진짜 블랙기업의 원조 국가인 만큼 부정적으로 여겨질 가능성도 있었다.
“으으… 어려워…”
그녀가 과열된 머리에 축 늘어지는 와중이었다. 짧은 알림음과 함께 톡이 도착했다.
[>커뮤 반응 정리 파일입니다!]
기다리고 있던 조대한의 연락이었다. 그녀는 바로 자세를 고치고 톡을 확인했다.
첨부된 파일을 다운 받고 그에 감사의 답변을 쓰려는 도중 조대한의 톡이 더 도착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취향은 크게 안 다른 것 같습니다 ㅋㅋㅋ]
[>일본 쪽에서도 사장님 슈트에 난리도 아니더라고요!]
그에 퍼그말리온의 눈이 크게 뜨였다.
“역시…!”
호불호는 좋고 나쁨을 뜻한다.
그러나 완벽은 예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