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화 - 교수님이 개강함 (2)
튜토리얼이 끝나니 오프닝이 시작됐다.
“오… 이건 또 느낌이 색다르네요.”
도트와 픽셀로 표현된 세계, 어두운 밤하늘 아래 펼쳐진 사막에 운석이 떨어졌다.
이윽고 곧바로 조사대가 꾸려졌다. 백의를 입은 과학자들과 경찰들이 주변을 통제하고 캠프를 꾸렸다.
“역시 오락실 게임이라 그런지 대사가 없네요.”
데시벨의 말에 시청자들도 동감을 표했다.
-좋게 말하면 오락실 감성이긴 한데 ㅋㅋㅋ
-사실상 비용 절감이자너 ㅋㅋㅋ
-캡슐용으로 리마스터까지 해줬는데 성우 쓰겠냐고 ㅋㅋㅋ
-대충 보고 알아서 파악해야 됨 ㅋㅋㅋ
-근데 이게 더 좋은 사람도 많긴 해 ㅋㅋㅋ
캠프를 정리한 조사대가 잠이 든 사이, 운석에서 스멀스멀 금속 액체 같은 게 빠져나왔다.
이윽고 그 형태는 집 없는 달팽이처럼 더듬이가 달린 무언가로 변했다.
“아, 맞아. 이게 스틸 스네일이었죠.”
“으… 픽셀인데도 좀 징그럽다.”
그 사이 카메라가 올라가며 하늘 빛이 푸르스름하게 변했다. 시간상으로는 새벽 즈음, 모두가 깊이 잠든 와중 돌연 비명이 터져나왔다.
놀라 잠에서 깬 조사대원들이 캠프에서 나오니 밖이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금속 기생체, 스틸 스네일이 조사대의 기계들을 집으로 삼고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으아아아!”
“오우, 노오!”
짤막한 음성과 함께 조사대원 대부분 기겁하며 도망쳤지만 그중 두 사람, 이경복과 데시벨의 캐릭터는 권총을 꺼냈다.
그와 함께 오프닝이 끝나며 통제권이 돌아왔다.
-아닠ㅋㅋㅋㅋ 무슨 학자들이 총을 들고 다녘ㅋㅋㅋ
-오락실 게임은 그냥 넘어가는 거라 이마리야 ㅋㅋㅋ
-ㄴㄴ 이거 설정다 있음
-이거 배경이 텍사스임 ㅋㅋ
-아 ㅋㅋ 텍사스면 킹정이지
시청자들이 그에 웃는 사이 이경복과 데시벨은 가볍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야, 확실히 튜토리얼 때랑은 다르게 배경이랑 캐릭터들이 보이니까 실감이 나네요. 진짜 오락기 속에 들어온 느낌입니다.”
이경복은 픽셀로 된 세계가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데시벨 역시 비슷했지만 그와 달리 약간 긴장한 기색이었다.
“으… 오락실에서 봤을 때에는 스틸 스네일이 그냥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되게 기괴하네요.”
스크린 너머 멀리서 바라본 모습과 눈앞에서 보는 건 확실히 달랐다. 그 반응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흘렸다.
-이게 바로 도트 명가인 KNS의 그래픽이다 이마리야
-도트 장인이 한땀한땀 만들었다구웃!
-근데 킹덤 오브 파이터는 왜…!
-킹직히 도트 노선 계속 갔으면 이렇게 까지 사람이 없지는…
-헉!
-아아, 그것은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어허! 딴 겜 얘기 그마내!
데시벨은 슬쩍 채팅을 확인하고는 다시 주의를 돌렸다. 사람들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이곳저곳에 박살나 기계 기생체들이 보였다.
“어우, 도트라서 뭔가 모자이크된 걸 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꺼림칙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녀가 그렇게 멘트를 치며 한쪽에 정신이 팔린 와중이었다. 배경에 있던 발전기가 꿈틀거리더니 이내 튀어나오며 그녀를 덮치려 했다.
이에 모두가 놀라려는 순간.
연달아 들리는 총성과 함께 날아간 탄환이 발전기 기생체를 타격했다.
“으어! 뭐야!?”
한 박자 늦게 데시벨이 뒤로 물러났다. 그녀 앞에는 스파크를 튀기며 터진 기생체가 꿈틀거렸다.
“데시벨 님, 오락실에서 해보시진 않고 보시기만 했나 보네요?”
“네? 아, 리겜 하느라 다른 거 할 돈이 부족해서…”
이경복의 물음에 데시벨이 멋쩍게 웃었다. 그는 마주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그러실 수 있죠. 근데 스틸 스네일은 배경에서 적이 튀어나오기도 하거든요. 특히 기계류는 배경이라도 조심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ㄹㅇㅋㅋ 그래서 일단 무조건 발사버튼 누르고 다님
-언제 어디서 나올 줄 모른다 이마리야
-근데 갓플은 순수 반응속도로 해결해버리고?
-???: 느려 (진짜임)
-킹직히 이건 기생체가 억울해할 만 하다
시청자들의 동조에 데시벨도 짧은 탄사를 뱉었다.
“아, 그렇구나. 그럼 일단 기계는 보이는 대로 쏘는 게 좋겠네요?”
“그러셔도 되긴 하는데. 음, 지금 보니까 필드에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데미지가 안 들어가는 것 같아요.”
이경복은 그리 말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 그리고 하나 더 팁이 있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의 눈이 그에게 쏠렸다. 뭔가 싶은데 이경복은 입을 여는 대신 손을 들어 올렸다.
그와 함께 배경에 놓여 있던 노트북이 거미처럼 변하며 덮쳐왔다. 물론 이경복의 사격이 더 빨랐다.
“어? 뭐야? 어떻게 아셨어요!?”
데시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채팅창도 그와 비슷하게 물음표가 채워졌다. 노트북 주변에 다른 기기들도 많은데 어떻게 콕 집어냈단 말인가?
“데시벨 님이면 보셨을 것 같은데?”
이경복은 그리 웃고는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처럼 필드 위의 캐릭터들와 배경은 색감이 달라요. 이걸 채도라고 하나? 아무튼, 튀어나온 느낌을 주기 위해서일 겁니다. 그걸 보시고 쏘면 돼요.”
-오? 그러네?
-아니;; 변이할 때 달라지는 색감을 보고 대응까지 하라구요?
-퍼교수님? 오늘은 오리엔테이션이라면서요!
-첫날부터 갑자기 시험을 내는 교수가 이따!?
-아 ㅋㅋ 교수평가 딱 대!
시청자들은 그에 어처구니없어 했지만 데시벨은 달랐다.
“아…! 어쩐지 뭔가 눈에 확 띄긴 하더라고요!”
그녀는 이제 알았다는 듯 손뼉을 치며 밝게 웃었다.
“이야, 이건 진짜 꿀팁이네. 이제 알았으니까 놀랄 일 없을 겁니다!”
-?????
-이 설명을 받아들인다고?
-아 맞네 ㅋㅋ 데눈나도 킹반인이 아니지 ㅋㅋㅋㅋ
-갓플 옆이라서 착각해버림ㅋㅋ
-이게 그 상대성 이론인가 그거냐?
-상대성 킹반인 ㅋㅋㅋㅋㅋ
-데눈나도 눈이 엄청나긴 햌ㅋㅋ
이경복은 그 대답에 만족스러워하며 말했다.
“역시 이해가 빠르시네요. 그럼 이 참에 데시벨 님이 앞장을 서는 걸로 하죠.”
“제가요?”
“네. 초반이니까 적이 많이 안 나올 거예요. 이때 익숙해지는 게 좋죠.”
이어 이경복이 뒤로 물러났다. 화면에 잡힌 구도에 시청자들은 놀릴 기회를 포착했다.
-아 ㅋㅋㅋ 블랙기업 본성 바로 나오쥬?
-게스트를 방패로 삼는 스트리머가 이따?!
-게스트 쉴드 ON!
-데시벨 대리 복직했다고 바로 내세우는 수듄 ㅋㅋㅋㅋ
-게스트(아님)
-블랙기업특) 퇴직한 사람한테 연락해서 일 시킴
시청자들이 장난을 치는 사이 데시벨은 잠시 주저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목소리를 높였다.
“음, 맞네요! 제가 앞장 서겠슴다!”
이경복의 판단이 틀린 적이 없지 않나.
* * *
두 사람은 나타나는 적들을 처리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데시벨이 전방에 섰지만 적은 앞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으흠…”
후방에서 나타나는 기생체들을 가뿐하게 처리한 이경복은 데시벨을 돌아보며 침음을 흘렸다.
“생각보다 조준을 많이 어려워하시긴 하네요.”
데시벨이 사격에 자신이 없다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보여주는 모습은 그 예상을 벗어날 정도였다.
-킹직히 조준이라고 하기도 좀 ㅋㅋㅋㅋㅋ
-ㄹㅇㅋㅋ 그나마 자동발사라서 맞는 거 ㅋㅋㅋ
-저렇게 탄을 뿌리는데 안 맞으면 이상한 거지 ㅋㅋㅋ
-직접 조준하면 누끼샷 나옴 ㅋㅋㅋ
-진짜 ㅋㅋㅋ 테두리 완전 잘 땀 ㅋㅋㅋㅋㅋ
그녀가 메탈펀치에서 보여준 근접전은 발군의 반응신경이 빛을 본 경우였다. 그러나 원거리에서는 그 반응신경이 그리 큰 소용이 없었다.
데시벨은 겨우 적을 처리하고 돌아서며 슬쩍 눈치를 살폈다.
“아으… 역시 좀 어렵네요.”
이경복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녀 역시 채팅을 놓치지 않는 바, 데시벨은 약간 주눅이 든 목소리로 말했다.
“자리, 다시 바꿀까요? 저 때문에 진행이 너무 느려지는 것 같은데…”
“아뇨아뇨,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이경복은 바로 부정했다.
그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조금 느려도 괜찮아요. 사람마다 잘하는 게 있고 못 하는 게 있는 거죠.”
“어, 퍼플 님은 다 잘하시는 것 같은데…”
“에이, 저번에 같이 비트 스워드 할 때 보셨잖아요. 저 외국어는 잘 못해요. 그보다는 일단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먼저 잘하는 것부터 해보죠.”
이경복의 말에 데시벨은 물론 시청자들도 의아해했다. 건슈팅 게임에서 조준을 못 하는데 잘하는 거라니?
“직접 보시는 편이 더 빠를 겁니다. 조준이 어려울 때는 이것도 한 방법이거든요.”
그는 해맑게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와 더불어 배경에 있던 대형선풍기가 튀어나왔다.
예리한 칼날처럼 변한 팬이 그를 향해 쏘아졌지만 이경복은 가뿐하게 피해내며 돌진했다.
“가까이서 쏘면.”
이어 그는 권총을 기생체 바로 앞에 갖다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격 이펙트가 빠르게 터지며 기생체가 박살이 났다.
“안 빗나가잖아요?”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데시벨은 눈을 껌뻑였다. 이경복은 그녀를 가리키며 설명을 덧붙였다.
“데시벨 님이 직접 말씀하셨잖아요. 피하는 건 자신있으시다고. 확실히 반사신경이 좋으시니까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점프도 연습하시고, 사격 거리는 익숙해지면 조금씩 늘리는 걸로.”
-영거리 사격이면 빗나갈 수 없긴 한데 ㅋㅋㅋㅋ
-ㄹㅇㅋㅋ 아무리 데눈나라도 바로 앞에서 쏘는 게 빗나가진 않지
-데눈나 맞춤 코칭 무엇?
-근데 이거 진짜 스치면 사망인데ㅋㅋㅋㅋㅋ
-아 ㅋㅋ 죽기 싫으면 피하시라구요 ㅋㅋㅋ
시청자들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경복은 간단하게 말했지만 스틸 스네일에는 체력 개념이 없어 한 번 피격되면 사망이었다.
“아…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지?”
하지만 그들과 달리 데시벨은 눈을 빛냈다. 오히려 그녀는 깨달음을 얻은 듯 감탄을 표했다.
“제가 너무 건방졌었던 것 같아요.”
“네?”
“퍼플 님 말씀처럼 제가 잘하는 것부터 제대로 해야 되는 거였는데, 처음부터 퍼플 님 따라서 완벽한 사격을 하려고 했던 거죠! 아니, 하마터면 뱁새 될 뻔했네?”
그녀는 이제 정신을 차렸다는 듯 의욕을 보였다.
“사, 아니 퍼플님! 이번엔 제대로 해보겠슴다!”
시청자들은 그에 웃었지만 이내 그 반응은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
-데눈나 맞음?
-아닠ㅋㅋ 아까랑 너무 다르잖슴ㅋㅋㅋㅋ
-뭐지? 갓플은 대체 무엇을 깨운 것이지?!
-속도 ㅁㅊㄷㅁㅊㅇ
-갑자기 빨리감기하는 줄 ㅋㅋㅋ
-전투각성 ㅎㄷㄷ
이전까지 그녀는 신중히 나아가며 적이 등장하면 사격을 했었다. 때문에 본래 덮치는 건 적들 쪽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제 그녀는 앞으로 달려가며 튀어나오는 기생체들을 덮치는 쪽이 되었다.
“음, 그래도 아직 점프는 좀 불안하신가 보네요.”
이경복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태연히 뒤를 따르며 그녀를 분석했다.
데시벨은 점프에 자신이 없는지 적의 탄환을 피할 때 슬라이딩을 택했다.
그럼에도 진행은 순조로웠다.
‘이 느낌은…’
이경복은 전방에서 긍정적인 기운을 감지해냈다. 앞서가던 데시벨은 그 정체를 먼저 발견해냈다.
“퍼플 님! 사람이에요!”
책상 같은 가구로 바리케이드를 세운 과학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기생체의 침입을 막아내고 있었다.
데시벨은 곧바로 놈을 처리했다.
“오우! 땡큐!”
시리즈 특유의 보이스와 함께 과학자는 밝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 이거?”
그와 함께 과학자는 무기 아이콘을 던지고 빠르게 자리를 이탈했다.
-WA! 애니마싱가!
-캬 ㅋㅋㅋ 강철 달팽이 하면 이거지 ㅋㅋㅋ
-머신건이 또 쏘는 맛이 조크등요?
-즉.시.장.비
스틸 스네일의 상징이라고도 볼 수 있는 무기, ‘헤비머신건’이었다.
데시벨은 바로 옆으로 물러났다.
“이건 저보다 퍼플 님이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쓰면 탄환이 좀 아깝잖아요?”
-데눈나 자아성찰 웃픈 거시고 ㅠ
-그래도 맞말이잖슴 ㅋㅋㅋ
-보급 무기들은 반동 세서 에임이 더 튄다 이마리야
-에임 좋아지면 데눈나도 기회가 올거라구웃!
시청자들도 그에 동조하자 이경복이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Agent Q’님이 퀘스트를 제안합니다!]
[조건 – 데시벨에게 모든 무기 양도 후 원 코인 클리어.]
[성공 – 2,000,000원]
[실패 – 3일간 퍼무새 말버릇 ‘큐요원이 이겼다’로 바꾸기]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퀘스트가 들어왔다. 그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헐? 퀘스트요!?”
“아, 큐다리 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5252, 큐다리 살아있었던 거냐구웃!
-캬 ㅋㅋㅋ 데눈나 에임 보고 킹능성 느껴버린 거시고요?
-아 ㅋㅋㅋ 갓플은 못 이긴다고 ㅋㅋㅋ
-우우! 비겁하다! 우우! 하남자!
-퍼무새 말버릇 바꾸는 건 뭔데 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의 장난스러운 힐난과 반응이 쏟아졌다. 이경복은 그에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에이, 여러분 왜들 그러세요. 이게 다 큐다리 님이 신경 써주시는 건데.”
“신경이요?”
“네. 큐다리 님이 원래 뉴비를 도와주시는 걸 좋아하시거든요. 데시벨 님이 또 종겜스로서는 뉴비나 다름없잖아요.”
이경복은 가뿐하게 퀘스트를 수락하며 미소 지었다.
“안 그래도 저도 큐다리 님이랑 비슷한 생각을 했거든요. 여러 가지 총을 써봐야 또 실력이 늘지 않겠습니까.”
“아니, 진짜 제가 써요!?”
데시벨은 그에 놀랐지만 시청자들은 웃음이 터졌다.
-엌ㅋㅋㅋㅋ 큐다리 공돈 날리기
-킹직히 이건 공제 해줘야 된다
-사실상 기부금이냐곸ㅋㅋㅋㅋ
-기부천사 큐다리니뮤ㅠㅠㅠ
-오오! 훌륭하다! 오오! 상남자!
-바로 태세전환 뭔뎈ㅋㅋㅋㅋㅋ
그 사이 이경복은 데시벨을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세요. 잘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제 권총을 들어 보였다.
“전 이걸로도 충분해요.”
데시벨의 눈이 커졌다.
다른 사람이 했으면 허세라고 했을 말이지만 그는 이경복이었다.
그녀는 이내 마주 웃으며 아이콘을 잡았다.
“헤비머신건!”
상징적인 보이스와 함께 그녀의 권총이 증식하며 중화기로 변했다.
“네! 기부 한 번 받아보죠!”
데시벨은 슬슬 게임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 * *
성공은 그 크기에 상관없이 자신감 회복에 특효약이었다.
이경복의 코칭으로 데시벨은 적극적으로 나섰다.
“으아아아아아! 죽어어어어어어!”
헤비머신건과 함께 돌진하는 그 모습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흘렸다.
-핫하! 다 죽어라!
-캬 ㅋㅋ아케이드는 이런 맛이짘ㅋㅋㅋ
-돌격병 그 잡채 ㅎㄷㄷ
-이정도면 둠스가이 아니냐?
-데가이 ㅎㄷㄷ
-(헤비메탈 사운드)
-진행 개 시원하네 진짜 ㅋㅋㅋ
-아 ㅋㅋ 에어콘 왜 킴? 그냥 갓데 합방 보고 말지
게임 초반과는 완전히 상이한 플레이에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묘한 점이 하나 있었다.
전방에 나서서 적을 처리하는 건 데시벨이지만 정작 게임 스코어는 두 사람이 비슷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아, 여기도 있네요!”
이경복은 하늘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쏘아진 탄환이 중간에 퍽하고 튀더니 하늘에서 훈장이 떨어졌다.
-게스트를 부려먹고 뒤에서 점수를 챙기는 호스트가 이따!?
-바로 블랙기업 행동 ㅋㅋㅋㅋㅋ
-5252, 뒤에서 히든 템만 먹고 있는 거냐구웃!
-블랙기업 특) 사장이 뒷돈 챙김
그것은 특정 포인트를 사격하면 나오는 히든 아이템들이었다. 시청자들의 장난스러운 힐난에 이경복도 웃으며 받아쳤다.
“아니, 제가 또 놀고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나름 뒤에서 나온 놈들도 잡았는데. 그리고 보이는 걸 안 챙기고 가는 것도 히든템한테 실례잖아요.”
그의 너스레에 웃던 시청자들은 이내 의아해했다.
-?????
-히든 템이 보인다고?
-혀엉? 아케이드 버전에서 위치 기억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
-ㄹㅇㅋㅋ 나도 오락실에서 갓플이 다 외워서 한 줄 ㅋㅋㅋ
말 그대로 ‘히든’인데 보인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인가. 이에 이경복은 뒤쪽에서 달려오는 적을 처치하며 설명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오락실 다닌 건 어릴 적 얘기죠. 그걸 어떻게 전부 다 기억합니까. 데시벨 님 덕분에 찾은 거예요.”
“후아, 저요?”
기생체들 잔해를 밟고 일어선 데시벨이 숨을 돌리며 되물었다. 그녀로서는 보이는 족족 적들을 처리했을 뿐이지 않나.
“데시벨 님이 탄 뿌릴 때 도트 튀는 곳이 보이더라고요. 그거 보고 챙긴 거예요.”
-설마 처치하고 남은 탄 튄 걸 말하는 거?
-무친ㅋㅋㅋ 그 와중에 그게 보였다고?
-아닠ㅋㅋ 완전 난리였는데 ㅋㅋㅋㅋ
-퍼펙트 아이가 또?
-근데 결국 재주는 데눈나가 부린 거 아님?
-ㄹㅇㅋㅋ 점수는 형이 챙긴 거잖슴!
-아무튼 블랙기업이쥬?
-퍼펙트 코칭 수수료 씨다 씨!
그에 다들 웃는 사이 장면이 넘어갔다. 이벤트 컷신인지 통제권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 과학자들이네요.”
“스틸 스네일이… 차량? 아, 차량을 탈취한 건가?”
대사가 없는 대신 말풍선이 NPC 과학자 머리 위에 떠올랐다. 다들 말풍선에 보이는 아이콘을 보며 스토리를 유추해야 했다.
-군인이랑 기지?
-헐? 군사기지로 갔다는 거?
-ㅇㅇ 그거 맞음 ㅋㅋㅋㅋ
-군사 장비에 기생하는 거 못 참짘ㅋㅋㅋ
-탱크나 비행기 호로록해버릴 셈이고요?
이내 과학자는 두 사람을 트럭에 태웠다. 속도를 낸 트럭은 스틸 스네일에 잠식당한 차량을 따라잡았지만.
“오우, 노오!”
과학자의 경악한 표정과 함께 최후미에 있던 차량이 일어서며 변신했다.
붉은 후미등이 눈처럼 빛을 냈고 차량 하부의 부품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엔진이 약점이네요!”
이경복이 목소리를 높였다.
열린 하부 사이로 붉게 빛나는 엔진이 보였다.
이내 그 안에서 씹어뱉듯 쇳덩이들이 트럭을 향해 쏘아졌다. 다행히 뒤에 타고 있던 두 캐릭터가 총으로 요격했지만 그사이 다른 기생체들은 필드를 이탈했다.
-보스전 바로 들어가는 거시고?
-옼ㅋㅋ 이건 1인칭으로 봐도 재미있을 듯
-자동차쉑 너무 건방져?
-아아, 데가이가 나설 차례인가!
운전석에 있던 과학자가 무기를 보급해주며 이벤트 컷신이 끝났다. 하지만 데시벨은 이전과 달리 암담한 표정이었다.
“아니… 이거 어떡해요!? 여기서는 접근 못 하는데?!”
보스 스테이지 구성상 지근거리 사격이 불가능했다. 그래도 보스의 덩치가 크니 쏘면 맞지 않겠나 싶었지만.
“음, 약점을 노려야 제한시간 내에 끝내겠네요.”
엔진 이외에 다른 부분은 맞춰도 별 타격이 없어 보였다. 채팅창은 그에 우려가 가득해졌다.
-이거 갓플 혼자 처리 가능?
-권총만 쓰면 좀 빡세지 않나;;
-아 ㅋㅋ 그냥 캡슐 겜이면 갓플이 호로록 할 텐데
-ㅇㅇ 아케이드 겜이라 뎀지 고정임
-큐다리 드디어 1승 챙기나요!?
-큐요원 명예회복각?
-일단 쏩시다!
시청자들은 물론 데시벨도 걱정했지만 이경복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남아 있었다.
“괜찮습니다.”
“네?”
“제가 마냥 뒤에서 히든 템만 챙기면서 놀고 있던 게 아니거든요.”
그는 자신 있게 말하며 데시벨을 돌아보았다.
“데시벨 님이 활약하는 거 보면서 코칭 방향을 좀 생각해두고 있었습니다.”
“그럼…?”
데시벨의 눈이 커졌다. 채팅창의 분위기 역시 바로 반전됐다.
-퍼펙트 코칭 ON!
-퍼교수 님이 커리큘럼을 완성하셨다!
-즉.시.과.외
-우리 데눈나 에이미가 낫는다 이 말이오?
-다 죽어가는 에이미도 고쳐준다는 명의, 퍼준 선생!
-야앀ㅋㅋ 허준이 왜 나왘ㅋㅋㅋㅋㅋ
-갓플이 데눈나한테 가르침을 퍼주긴 하자너 ㅋㅋㅋ
-그 퍼준이냐곸ㅋㅋㅋㅋ
시청자들의 기대와 함께 이경복은 돌아보지도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날아드는 쇳덩이가 탄환에 부딪쳐 튕겨나갔다.
“그럼 준비되셨죠?”
그 물음에 데시벨은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또다시 배움의 기회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