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화 - 교수님이 개강함 (8)
도트 그래픽 혹은 픽셀 그래픽이라 부르는 게임 디자인 방식은 최근 많이 쓰이지 않는다.
컴퓨터와 콘솔 시장 때는 그 독특한 감성이 인기를 끌었지만 가상현실의 도입과 함께 오히려 사람들이 이질감을 느낀 덕이었다.
더욱이 이 그래픽은 디자이너의 품이 많이 들었다. 스캐닝을 통해 대략적으로 픽셀화 시킬 수 있지만 세부적인 부분은 디자이너가 직접 도트를 찍기 때문이었다.
도트 명가라 불리는 개발사, ‘KNS’가 최근에는 그 그래픽을 포기한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케이드 버전을 캡슐용으로 리마스터한 게임들에서는 그 명맥이 살아 있었다. 지금 장갑차에 부착된 레이저 터렛만 해도 그러했다.
세밀한 부품과 총구에서 나오는 광자표현까지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나.
-이걸 진짜로 권총으로만 하네 ㅋㅋㅋㅋ
-레이저 터렛 배경행 ㅋㅋㅋㅋ
-그래도 한 번은 쏴보는 것도?
-어~ 안 쓸 거야~
하지만 정작 두 사람, 이경복과 데시벨은 레이저 터렛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개발자들에게는 애석한 일이었지만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그저 즐거울 따름이었다.
“채찍은 피하… 우아아아앗?!”
“오? 이건 또 느낌이 다르네요.”
오토바이 기생체에 사격하는 도중 날아든 공격에 두 사람은 바로 도약으로 회피했다.
그런데 지상과 차량 위의 차이점이 있었다.
-아 이거 뛰면 뒤로 밀려나네?
-엌ㅋㅋㅋ 데눈나 낙사할 뻔
-갓플은 마냥 신기해하쥬?
-오락실에서 했을 때도 그랬나?
-ㄴㄴ 이거 캡슐용이라서 밀리는거
차량 위에서 점프를 하면 캐릭터가 뒤로 밀려났다. 이를 모르고 있던 데시벨은 자칫 떨어질 뻔했다.
“오락실에서 했을 때에는 배경만 뒤로 밀려났는데 캡슐은 다르네요. 나름의 현실감을 살리려는 변화 같습니다.”
“으, 이런 현실감은 필요 없는데…”
데시벨은 툴툴거리며 불만을 표했다. 시청자들은 그 반응에 웃음을 흘렸다.
-데시렁데시렁 ㅋㅋㅋㅋㅋ
-데시렁 뭔뎈ㅋㅋㅋㅋㅋ
-도트라서 표정이 더 잘 보이는 것이고요?
-근데 이러면 데눈나 또 점프샷 막힌 거 아님?
-엌ㅋㅋ 그러넼ㅋㅋㅋ 이러면 벽에도 못 붙으니까
올라오는 채팅에 이경복도 속으로 동감했다. 이렇게 뒤로 밀려나면 이전에 배웠던 걸 써먹지 못할 터였다.
‘그럼 이번에는…’
이에 그가 다음 조언을 구상하는 와중 데시벨이 앞으로 나아갔다. 왜 그러나 싶은데 그녀가 앞쪽으로 도약하는 게 아닌가?
“오?
이경복은 이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데시벨이 뒤로 밀려나는 저항을 이용, 일부러 앞쪽으로 뛰면서 공중에서 중심을 맞추는 게 아닌가.
이어지는 사격은 정확히 오토바이 기생체에 적중했다.
-올ㅋㅋㅋㅋㅋㅋㅋㅋ
-머임? 갑자기 머임?!
-이걸 성공하네?
-당신 누구야! 우리 눈나 어디갔어!
-WA! 점프마스터!
시청자들도 이에 놀라자 데시벨은 뿌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크흠, 언제까지고 염치없이 주는 것만 받아먹을 수는 없죠! 공략법을 스스로 찾는 것도 게임의 재미잖아요?”
그녀는 가볍게 목을 가다듬으며 당당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리겜러는 노트를 외워서 클리어하면 되지만, 저는 종겜스니까요! 나름 유연하게 공략법을 찾아봤습니다!”
-데눈나가 셀프로 공략법을 찾았다?!
-성장속도 뭔데에에에에!
-예습과 복습에 이어 자습까지?!
-대학원생을 교수님이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니깐!
-이것이 황새의 혈통…!
-리틀 황새 폼 ㅁㅊㄷㅁㅊㅇ
-데시황! 데시황! 데시황!
그녀는 채팅창에 쏟아지는 칭찬을 만끽하듯 입꼬리를 올렸다. 이경복도 그에 웃으며 손뼉을 쳐주었다.
“아, 정말 좋네요! 이거 되겠다하는 방법을 시도해보는 게 또 게임의 재미죠.”
데시벨은 그의 칭찬에 더욱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경복의 이어지는 말에 그녀는 주의를 돌렸다.
“다음 상대도 그렇게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다음이요?”
그녀는 이경복의 시선을 쫓아 고개를 돌렸다. 배경에 있는 도로에서 달려오는 오토바이와 그 탑승자의 모습.
가죽조끼를 입고 샷건을 든 그의 머리는 금속체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이보그가 된 바이커 갱이었다.
-여윽시 텍사스다 이마리야 ㅋㅋ
-아니 이거 ㅋㅋㅋ 아무리 봐도 엘리미네이터잖슴ㅋㅋㅋ
-샷건 든 사이보그? 이건 무조건이지 ㅋㅋㅋ
-???: 웨얼 이즈 황새 코너?
-야씨 ㅋㅋ 뭔 새잡이냐고 ㅋㅋ
배경에서 튀어나온 사이보그는 즉각 산탄을 발사했다. 쏟아지는 탄환에 두 사람은 바로 태세를 가다듬었다.
“어! 뭐야!? 왜 안 맞아?!”
데시벨이 호기롭게 반격했지만 탄환은 사이보그 몸에 부딪힐 뿐이었다. 피해를 입었을 때의 이펙트인 번쩍거림은 없었다.
-일반탄은 안 먹힌다 이마리야
-얼른 레이저 쏘라구욧!
-팩트) 이 스테이지는 레이저를 쓰는 게 기본 전제다
-사이보그 지짐이 ㄱㄱ
레이저 터렛으로 피해를 입혀야 한다는 제보에 그녀가 눈을 돌렸다. 하지만 이경복이 그에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그것도 맞긴 한데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제가 오락실 다닐 때 딜 사이클 안 끊기는 법 찾는 고수들이 또 있었거든요.”
“딜 사이클이요? 으음…”
데시벨이 그에 잠시 눈을 굴렸지만 이번에는 명확히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의 곤란한 표정에 이경복이 웃으며 답을 알려주었다.
“아마 캡슐에서도 될 것 같은데, 한 번 보세요.”
그는 곧바로 터렛에 앉았다. 사이보그의 산탄이 그를 향해 날아오자 이경복은 자리를 박차고 뛰었다.
탱크에서 사출되듯 솟아오른 그는 사이보그 쪽을 겨누었다. 이어지는 격발과 함께 탄환이 날아들었다.
“어!?”
일반탄은 통하지 않는다. 이에 의아해하던 데시벨은 곧 눈을 크게 떴다.
“아, 바퀴는 맞는구나!”
이경복이 노린 건 사이보그가 아니라 놈이 타고 있는 오토바이의 바퀴였다.
정확한 조준과 함께 모든 탄환이 적중하자 바퀴가 펑크가 나며 중심이 흔들렸다.
이윽고 완전히 오토바이가 전복되며 튕겨나간 사이보그는 다시 배경 속으로 날아갔다.
-엌ㅋㅋㅋ 잘 가시고 ㅋㅋㅋ
-아 이거 기억난다 ㅋㅋㅋ
-무친 ㅋㅋ 이거 캡슐버전에서도 되는 거였음?
-이 형 진짜 오락실 좀 다녀봤나 보네 ㅋㅋㅋㅋ
-아니 이걸 누가 캡슐버전에서 해 ㅋㅋㅋㅋ
-ㄹㅇㅋㅋ 조준도 빡신데 잘못하면 바로 낙사자너
-???: 잘못? 그게 뭐지? 못의 한 종류인가?
-갓플 유니버스에는 없는 개념이었던 거시고?
시청자들의 감탄에 데시벨은 입을 벌리고 있다가 빠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으음, 사부님 이건 아직 제가 할 수준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대신…”
이어 추가로 나타난 다른 사이보그들을 보며 그녀는 앞으로 뛰었다.
데시벨은 지붕을 넘어 운전석 앞 후드까지 나와 각도를 확보했다.
“이게 더 안전하겠네요.”
산탄에 더 쉽게 노출되고 도달 거리도 짧아지지만 그녀로서는 이쪽이 더 나았다. 그 공격에 반응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 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자신한테 맞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죠.”
그에 이경복이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권장하자 시청자들은 헛웃음을 흘렸다.
-아닠ㅋㅋ 보통 총쌈하면 은엄폐가 기본아니냐구욬ㅋㅋㅋ
-이게 총격전? 내가 알던 총격전은 대체?
-둘 다 앞으로 나가버리기 ㅋㅋ
-???: 보고 피하면 되는데 왜 숨지?
-스틸 스네일은 보고 피하는 게 맞긴 한뎈ㅋㅋㅋ
-???: 황새들은 정도란 걸 모르나?
-황새의 길 너무 험난하다아아앗!
-트수들이 얻을 수 있는 황도는 복숭아뿐이라구(찡긋)
두 사람 모두 정도만 다를 뿐,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다.
* * *
두 사람이 사이보그들이 나타나는 족족 배경으로 다시 퇴장시킨 끝에 4스테이지의 분기점이 나타났다.
“그대로 고속도로를 타느냐 국도로 빠지냐가 문제네요.”
데시벨이 양쪽 길을 살폈다. 그 사이 이경복이 신기를 가늠하려는 와중이었다.
“사부님! 어려운 쪽으로 가시죠!”
데시벨이 먼저 열의에 찬 목소리로 요청했다. 그에 채팅창도 즉각 반응했다.
-캬 ㅋㅋ 호방하다 데눈나!
-자신감 뿜뿜 뭐냐곸ㅋㅋ
-님 자신?
-어려운 루트면 국도로 가야지 ㅋㅋㅋ
-뚜벅이 루트 ㄱㄱ
둘 중 어려운 쪽을 꼽으라면 국도였다. 장갑차에서 내려 휴스턴 우주기지에 잠입하는 전개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재미를 좀 붙이신 것 같네요!”
이경복은 그에 흔쾌히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이 쏜 방향으로 장갑차가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에 데시벨과 시청자들의 머리에 물음표가 떴다.
“어, 사부님? 고속도로가 더 어려워요? 채팅창은 아니라는데?”
-왜 안 국도에요!?
-뭐지? 캡슐용은 다른가?
-아닌데? 국도가 더 어려운데?
-갓플이 쉬운 걸 택했다?!
-뱁새 드리프트 ㅎㄷㄷ
-그건 또 뭔 드리프트얔ㅋㅋㅋ
그 물음에 이경복은 미소와 함께 답했다.
“아, 원래 국도가 어려운데 지금 저희 상황이 좀 특수하잖아요. 데시벨 님도 레이저 터렛 안 쓰신다고 하셨으니까.”
“어… 그게 큰 차이가 있나요?”
데시벨은 의아해했지만 시청자들은 그 의미를 깨달았다.
-옼ㅋㅋ 맞넼ㅋㅋㅋㅋ
-핸디캡 있으면 이쪽이 더 빡세긴 할 듯 ㅋㅋㅋ
-진짜 레이저 안 쓰면 지옥행 고속도로일 듯 ㅋㅋㅋㅋ
-하이웨이 투 헬이 여기서?
-엌ㅋㅋ 그거 노래 좋지
-엉? 만화에 나오는 애 아님?
-또또 지들만 아는 얘기한다!
데시벨은 빠르게 올라오는 채팅에 실소를 흘렸다.
“아니, 뭐가 그렇게 다르…”
그녀는 말을 다 맺지 못했다. 전방에서 무언가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아이, 진짜 이건 좀 너무하네!”
맹렬히 회전하는 날개와 양쪽에 탑재된 기관총, 그리고 그 아래에 부착된 다연발 미사일.
새로이 나타난 적은 공격헬기 기생체였다. 빠르게 접근해온 공격헬기는 즉각 사격을 개시했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예요!”
“사부님, 미사일! 미사이이일!”
태연하게 웃는 이경복의 말에 데시벨은 다급히 소리를 높였다. 쏟아지는 탄환과 더불어 미사일까지 날아오고 있었다.
“아니이이이! 이러면 그냥 탄막 게임이잖아요!”
“에이, 그 정도는 아닙니다. 미사일은 탄환으로 맞혀서 폭파시킬 수 있거든요.”
이경복은 그리 말하며 직접 시범을 보였다. 퉁퉁 가볍게 쏜 탄환이 날아드는 미사일을 요격했다.
“보셨죠? 총알은 피하면서 미사일은 폭발시키고 반격하시면 됩니다.”
“아니, 봤는데요! 사부님 제가 본 건 맞는데!”
데시벨은 기가 찬 듯 말하다가 다시 총알을 피하느라 말을 끊어야 했다.
그 모습에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 형은 너무 간단하게 말한다니깐!
-ㄹㅇㅋㅋ 무슨 집안일 목록이냐고
-팩트) 갓플에게는 실제로 간단한 일이다
-팩트는 밴인거신디요?
-근데 레이저 터렛 쓰면 그게 맞긴 해 ㅋㅋㅋ
-진짜 레이저만 쏘면 싹쓸어다스하는데 ㅋㅋㅋ
본래는 이렇게 어렵지 않다.
레이저가 에너지 제한은 있어도 지속성이 있기 때문에 미사일을 요격하며 동시에 공격헬기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침착하게 한 번… 아니! 헬기 왜 또 벌써 나오는데에에에!”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데시벨은 또 다른 공격헬기가 날아오자 눈을 부릅떴다. 등장 간격이 너무 짧지 않나?
“아, 원래 레이저 터렛 기준이라 그럴 거예요. 레이저로는 금방 처리하니까요.”
이경복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데시벨은 그에 헛숨을 들이켰다.
“잠깐, 그럼 늦게 처리하면 진짜 탄막게임처럼 되는 거잖아요!? 사부님, 알고 계셨… 아니, 당연히 알고 계셨겠죠!”
“자자, 부지런히 잡으면 됩니다.”
두 사람의 대화에 채팅창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아닠ㅋㅋ 데눈나 자포자기하는 거 개웃기넼ㅋㅋㅋ
-호방했던 데눈나 ㅇㄷ?
-데이츠www 리틀 황새에서 응애 황새가 되어버린www
-아아, 이것이 성체와 응애의 차이라는 것이다
-ㄹㅇㅋㅋ 갓플은 진짜 집안일 하는 뉘앙스자넠ㅋㅋㅋ
-아무튼 부지런하면 된다고욬ㅋㅋ
-교수님특) 과제 내면 다 해오는줄 앎
-???: 기한은 다음 주까지면 넉넉하죠? 아, 쪽지 시험도 하나 볼 겁니다
-대충 나는 어제 교수님을 죽였다 짤
-근데 퍼교수 님은 못 죽이잖슴ㅋㅋ
그리 시청자들이 즐거워하는 사이 이경복과 데시벨은 바쁘게 움직였다. 다행히 두 사람의 협공으로 공격헬기는 빠르게 추락했다.
하지만 데시벨은 쉴 수가 없었다.
“아, 이건 또 뭔데! 진짜, 이건 선 넘었지!”
이번에는 드론 병기까지 사출하는 공격헬기였다. 변칙적으로 움직이며 사격을 가하는 드론에 데시벨이 결국 불만을 토했다.
그에 옆에서 이경복이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너무 힘드시면 레이저 터렛 쓰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으음…”
그 제안에 데시벨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 도트로 표현된 만큼 그 움직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를 놓칠 시청자들이 아니었다.
-데눈나 속지 마! 그거 배려 아니야!
-레이저 터렛 쓰쉴? = 님쫄?
-여기서 터렛에 탑승한다? 바로 뱁새행이쥬?
-응애 황새에서 이제 뱁새로?
-힘들면 킹쩔수 없지 뭐 ㅎㅎ ㄴ난 데눈나 결정 응원해^^
-너어는 진짴ㅋㅋㅋㅋㅋ
-아 ㅋㅋ 이래서 시벨롬이구나
응원과 조언을 가장한 팬들의 도발성 채팅이 우후죽순 솟아났다. 이를 확인한 데시벨의 눈동자가 고정됐다.
“아, 여기서 물러나면 너무 추해지잖아요! 진짜 저 무조건 버팁니다? 어떻게든 버틸 거예요! 시벨롬들 딱 보고 있어!”
그녀가 의지를 내비치자 이경복도 시청자들도 즐거워했다.
-아 ㅋㅋ 이게 황새의 길이지
-어려운 게 오히려 좋자너 ㅋㅋ
-???: 이게 추하다고? 당연히 터렛 쓰는 게 맞는 거 아님?
-추놈이니?
-갑자기 추놈은 왜 때리는데 ㅋㅋㅋ
-ㄴㄴ 추놈이었으면 자기 혼자 쓰려고 갓플 터렛부터 부쉈음
-와씨 ㅋㅋ 그건 상상도 못했다
-추놈 부캐 어서 오고
특정 키워드에 의문의 피해자(?)도 나오긴 했지만.
어쨌든 분위기는 좋았다.
* * *
마지막 공격헬기와 그 드론들까지 모두 파괴됐다.
“됐다…! 살았다! 살았어어어어!”
데시벨은 살아남았다.
극한의 집중력으로 탄환들을 피하고 미사일을 요격한 덕분이었다. 대부분 헬기를 공격한 건 이경복이었지만 생존은 했다.
“야, 시벨아. 되잖아! 하면 되잖아! 어!”
그녀는 제 스스로가 자랑스러운지 자화자찬을 하며 우쭐해했다.
-엌ㅋㅋ 이걸 사네 ㅋㅋㅋㅋ
-데눈나 근성은 킹정이야!
-오랜만에 보는 노마이크 빡겜 ㅋㅋㅋ
-반면에 갓플은 풀마이크 즐겜이었쥬?
-킹직히 중간에 계속 괜찮냐고 묻는 거 약 올린 거 아니냐고 ㅋㅋ
-???: 터렛 안 타세요? 터렛 타셔도 되는데?
-이 형도 처음에는 그냥 배려였는데 나중에는 백퍼 도발이었음ㅋㅋㅋ
시청자들의 칭찬과 놀림에 이경복은 바로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건 완전 왜곡이죠. 저는 데시벨 님이 너무 무리하실까 봐 권한 거예요.”
“사부님, 솔직히 말하셔도 괜찮아요. 저 살았잖아요?”
데시벨이 웃으며 말하자 이경복이 장난스럽게 미소 지었다.
“크흠, 반응이 재밌긴 해서 좀 더 권한 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 진짜 사부님 덕분에 집중력 최고로 찍어봤네요. 증믈 금스흡느드!”
데시벨도 그에 과장스럽게 받아치자 시청자들도 더욱 흥겨워했다. 하지만 이내 모두의 주의가 돌아갔다.
고속도로 루트를 통과하며 컷신이 시작된 덕이었다.
“오! 저기가 우주기지인가 봐요! 어, 근데 뭐지? 군대? 앞에 군대인가요?”
“아, 확대되네요.”
화면이 전환되며 도로 저편에 휴스턴 우주기지가 비추어졌다. 그리고 그 앞에 탱크와 장갑차 등 군사 장비들이 보였다.
-오 ㅋㅋㅋ 텍사스 주 방위군이네
-연구소장이 깽판쳐서 출동한 듯?
-근데 상태가 영 별로인 거시고?
-아 여기도 썰렸네
-공격헬기가 어디서 왔나 했더니 ㅋㅋㅋ
그러나 그들도 사이보그가 된 연구소장을 막아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윽고 주인공들과 과학자의 머리 위에 느낌표가 떠올랐다. 뭔가 싶은데 화면이 바로 돌아가며 우주기지에 접근하는 연구소장을 보여주었다.
“오! 다행히 늦지 않았네요!”
데시벨이 그에 기뻐하는 사이 주인공들이 바로 레이저를 발사했다.
연구소장을 향해 날아가는 푸른 광선. 그대로 적중하는가 싶은데 불쑥 공격헬기의 날개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어씨, 뭐야!?”
“오… 이게 또 게임 안에서 보니 새롭네요.”
“어? 어어어어!?”
박살나 있던 군사 장비들이 서로 뭉치기 시작했다. 탱크는 발과 다리가 되었고 장갑차는 몸체, 오토바이는 관절의 역할을 했다.
이윽고 공격헬기가 어깨 쪽에 결합되며 머리가 없는 거대 로봇 같은 형태가 되었다.
“설마 이게… 이번 스테이지 보스에요?”
“맞아요. 와, 오락실에서 봤을 때는 그렇게 안 커 보였는데 직접 보니 다릅니다.”
이경복이 감탄하자 데시벨은 황당함을 숨기지 않았다.
“아니, 사부님! 머신건이랑 샷건, 헬기에 다연발 미사일에다가 장갑차 레이저건까지! 이거 완전 무기 종합세트잖아요!”
-엌ㅋㅋㅋ 황당잼ㅋㅋㅋㅋㅋㅋ
-리틀 황새는 아직 황새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마리야
-아 ㅋㅋ 합체 로봇은 로망이라구욬ㅋㅋ
-근데 권총으로 저거 상대할 생각하면 암담하긴 할 듯 ㅋㅋㅋ
-보스전은 그냥 레이저 터렛 쓰지?
-그게 안 됨 ㅋㅋㅋ
시청자들이 그에 웃는 와중 컷신은 계속 이어졌다. 거대 로봇의 등장에 과학자는 급정지했다.
이윽고 그가 손짓하자 주인공들이 차량에서 내려왔다.
“이거 진짜 권총으로만 잡아요? 아니, 엄폐물 있긴 한데 이거 좀 너무한 거 아냐?”
데시벨은 더욱 어처구니없어 했지만 아직 컷신이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을 내려준 과학자가 재빨리 터렛에 탑승하더니 로봇을 향해 발사했다.
광선이 로봇에 부착된 기관총을 저격하자 기관총이 떨어지며 아이템 아이콘으로 변했다.
“어? 아…! 저 무기들을 떨어트려 주는구나!”
데시벨이 그에 깨닫는 사이 로봇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로봇이 레이저를 발사해 장갑차를 관통했다.
과학자는 이에 허둥지둥 터렛에서 뛰어내리자 장갑차가 폭발했다. 이윽고 로봇의 몸체가 열리며 붉게 과열된 코어가 드러났다.
“이렇게 보여주니 따로 설명은 필요 없겠죠?”
“아… 넵. 저는 또 맨땅에 헤딩하는 건 줄 알고. 보스 무기 빼앗아서 약점 노리면 되겠네요.”
데시벨은 역정을 낸 자신의 모습이 민망했는지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초반에만 좀 빡센 보스임 ㅋㅋ
-무기 좀 떨궈내면 쉽게 잡자너ㅋㅋㅋ
-아마 레이저 건만 안 떨어지지 않나?
-차타고 싸우는 것도 아니라서 더 쉬울 듯 ㅋㅋㅋ
-킹직히 이건 급하지만 않으면 다 깨는 보스고요?
시청자들도 그에 동조하자 데시벨도 안심했다. 이내 플레이가 시작되자 이경복이 물었다.
“여기서도 권총만 쓰실 건가요?”
“아, 넵! 뭐, 어려운 상대도 아니라고 하니까요.”
그녀의 대답에 이경복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보스 무기는 건드리지 말죠.”
“네? 아니, 왜요?”
-??????
-무기 안 써도 보스 무기는 빼앗아야 되는 거 아님?
-어부러! 킹렵게 할라고!
-???: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어려움 중독증’입니다.
-???: 흥, 웃기는 소리! 그 중독증을 이겨내는 건 얼마나 어렵지?
-어겜스가 또…!
채팅 반응에 이경복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렵게 하고 싶은 것도 맞긴 한데, 빨리 잡고 싶어서요. 보스가 무기를 많이 사용해야 과열이 더 빨라지거든요.”
“아…! 그러면 코어가 더 자주 드러나니까요?”
“그렇죠.”
“오오…! 방송으로만 보던 사부님의 퍼펙트 숏컷이네요! 도전 해보겠슴다!”
데시벨이 그 설명에 반색했다.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에 시청자들도 덩달아 즐거워했다.
-퍼펙트 숏컷 직관은 못 참지 ㅋㅋㅋ
-거기에 자기까지 참여가 가능하다?
-데눈나 표정 분석하면 행복 100% 나올듯ㅋㅋㅋㅋㅋ
-역시 비공식 스피드런의 권위자 답고?
고득점과 더불어 고속 클리어까지.
이 두 가지 특징이 바로.
-아 ㅋㅋ 갓플 방송은 이게 맞지
-ㄹㅇㅋㅋ 이게 진짜 PPL 방송이거등요?
-역시 오리지널은 다르다니깐!
그가 아케이드 게임을 하는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