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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423화 (423/491)

423화 - 로케이션 헌팅 (3)

서영선의 식사 초대에 일행이 도착한 곳은 백화점 바로 옆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아, 여기 한 번쯤은 와보고 싶었던 곳인데.”

샵팬덤 대표의 말에 다들 눈이 돌아갔다.

“유명한 곳인가요?”

“파인다이닝 중에 일본식 철판요리로 유명한 곳이죠. 위슐랭 2스타를 받았습니다.”

“아, 맞네요. 여기 있네.”

퍼그말리온이 입구 옆에 붙은 인증패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에 이경복이 미소를 지었다.

“대표님이 일본에서 안내해주신 소고기 전문점도 2스타였었죠? 맛은 기대해도 좋겠네요. 자, 어서 들어가시죠.”

그가 앞장서며 문을 열자 대기하던 직원이 바로 안내를 해주었다. 개별 룸으로 들어서니 ‘ㄷ’자로 된 테이블과 철판이 보였다.

“아, 어서들 오세요.”

그 가운데 서영선이 웃으며 일행을 맞이했다.

‘아, 이분이…?’

‘서영선 사장님을 실물로…!’

‘설마 우리가 늦게 온 건가?’

바짝 긴장한 세 사람과 달리 이경복은 여유롭게 인사를 건넸다.

“식사 초대 감사드립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다시 뵙게 됐네요.”

“그러게요. 확실히 예상 밖이에요.”

부드러운 그 말투에 지켜보던 대표가 용기를 냈다. 그는 한 걸음 다가가며 정중히 자신의 명함을 빼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서 사장님. 직접 인사드리는 건 처음이네요. 샵팬덤의 권성민입니다.”

“아, 권 대표님이셨구나.”

서영선은 그에 웃으며 답하면서도 명함은 받지 않았다. 이에 다들 뭔가 싶어 하는 와중 조용히 구석에서 대기하던 비서가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식사는 다른 곳에 준비되어 있으니 안내드리겠습니다.”

비서는 대신 명함을 받아들고는 미소와 함께 세 사람을 문밖으로 이끌었다.

“아,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어, 그, 잘 먹겠습니다아…”

이미 앞서 이야기를 들었던 바, 그들은 순순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문이 닫히고 두 사람만 남게 되자 서영선이 제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앉아요.”

이경복이 그 옆자리에 앉자 다시 문이 열렸다. 누군가 싶은데 정갈한 복장에 요리모를 쓴 쉐프가 들어왔다.

“서 사장님, 오랜만에 찾아와주셨네요.”

“그러니까요. 내가 온다, 온다 말만 하다가 이렇게 늦어버렸네.”

“하하, 아닙니다. 워낙 바쁘시니까요.”

쉐프는 바로 철판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서영선은 슬쩍 턱으로 쉐프를 가리키며 이경복에게 말했다.

“이분 본 적 있어요? TV에도 종종 나오시는 분인데.”

“아쉽게도 제가 요식업계 쪽은 지식이 별로 없어서요. TV도 잘 안 챙겨 봐서 잘 모르겠습니다.”

이경복은 그에 솔직히 대답했다. 이에 쉐프가 너스레를 떨었다.

“아, 모르셔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모르시고 오시는 분들이 더 많아요. 저도 그 쪽이 진짜 실력으로 인정받는 것 같아서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쉐프님도 큐튜브 하셔야 된다니까. 젊은 사람들은 이제 TV를 잘 안 봐요.”

“하하, 이거 진지하게 고려해봐야겠네요.”

간단히 분위기를 전환한 그는 정중히 메뉴가 적힌 안내판을 건넸다.

“오늘 제공해드릴 요리들입니다. 혹시 못 드시는 재료가 있다면 먼저 말씀해주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이경복은 요리 메뉴를 훑었다. 생소한 이름의 요리들이었지만 아래 재료가 적혀 있어 큰 문제는 없었다.

‘이야, 점심인데 30만 원이나 하네.’

그 아래에 표기된 가격에 이경복의 눈썹이 살짝 들렸다. 하지만 이내 그는 흔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가리는 건 없는데 궁금해서 봤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요? 그거 다행이네요.”

“그럼 바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쉐프는 즉각 조리를 시작했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전채 요리를 두 사람에게 내놓았다.

아스파라거스와 트러플 버섯으로 만든 요리였다. 이경복은 맛을 보자마자 감탄을 표했다.

“오…! 정말 맛있네요.”

“입에 맞는다니 다행이네요. 이야기는 일단 허기부터 채우고 하죠. 배가 고프면 사람이 예민해지니까요.”

서영선은 흐뭇한 표정으로 이경복을 바라보며 말하다가 이내 덧붙였다.

“그래서 비즈니스는 식사 후에 하는 게 좋아요.”

어디까지나 본론은 따로 있었다.

*       *       *

코스대로 나온 요리는 어느새 메인요리까지 전부 끝냈다. 쉐프는 마지막 디저트까지 내놓은 후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식사는 만족스러우셨는지 모르겠네요.”

“아,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경복이 그에 밝게 웃으며 답했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쉐프님이 직접 조리하는 걸 보는 게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네요.”

“그게 또 철판요리의 백미예요. 경복 씨가 식도락을 좀 아시네.”

서영선이 옆에서 미소 짓다가 쉐프를 향해 눈짓했다. 이에 쉐프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는 이만 자리를 비켜드리겠습니다.”

쉐프가 방을 떠나자 정적이 찾아왔다. 서영선은 가볍게 목을 축이고는 서두를 꺼냈다.

“비즈니스라는 게 내용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예, 그렇죠.”

이경복도 자세를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이제부터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비즈니스 미팅이었다.

“제가 여기까지 오면서 나름 자부하는 게, 바로 사람 보는 눈이에요. 경복 씨와 함께 팝업스토어를 하기로 한 것도 내 눈을 믿어서였고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제가 경복 씨를 좀 잘못 봤더라고.”

서영선은 그리 말하며 이경복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여전히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긍정적이었다. 아니, 그 이전보다 정도가 더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어떤 점을 잘못 보셨는지 궁금하네요.”

“참 이상하네. 다른 사람이면 건방져 보일 텐데, 경복 씨는 왜 그렇게 어울리지?”

당당한 그의 태도에 서영선은 웃음을 흘렸다.

“내가 경복 씨를 너무 과소평가했어요.”

“과소평가요?”

“그렇죠. 하루아침에 평가가 이렇게 달라질 줄은 몰랐거든. 아, 물론 나쁜 쪽으로는 아니에요. 그건 꽤 많이 봤고.”

“저로서는 짐작 가는 게 없네요. 달리 뭘 한 건 아닌데.”

이경복이 의아해하자 그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엄밀히 말하면 내 실책이죠. 경복 씨랑 만난 게 그 브이로그 공개된 바로 다음 날이었으니까. 덕분에 나로서도 최신 정보 파악이 늦었어요.”

“브이로그요?”

“네. 이제 보니 경복 씨, 국내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꽤 괜찮던데요? 내가 게임은 잘 모르지만 세계 1위까지 했다고 들었어요.”

서영선은 브이로그의 파급력을 미처 알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그 파급력을 실감하는 와중 세계 1위 기록 ‘PPL’까지 조명되었다.

그녀는 이경복에 대한 평가를 바로 수정했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정말 제 최근 일까지 다 들으시네요.”

“그럴 가치가 있다고 느꼈으니까요. 그래서 이번에 좀 더 긴밀히 협력을 좀 하면 어떨까 싶어서 부른 거예요.”

“긴밀히요?”

“그렇죠. 이런 상황이라면 단순히 팝업스토어만 여는 걸로 끝내기는 좀 아깝게 느껴져서.”

서영선은 그렇게 말하며 비치된 붉은 소스를 철판 위에 가볍게 짜냈다. 그에 따라 작고 빨간 원이 철판 위에 그려졌다.

“경복 씨는 그 자체로 일본 관광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캐릭터예요.”

아직 열이 식지 않은 철판이었기에 붉은 소스가 부글부글 거렸다.

“그리고 관광객들의 씀씀이는 꽤 큰 법이죠.”

“일본 팬 분들이 제 팝업스토어를 목적으로 한국에 온다는 뜻인가요?”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이경복은 그에 지놈의 말을 떠올렸다. 선물을 주며 마련한 식사자리에서 그가 반은 농담처럼 했던 말과 같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서영선의 말은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이번 팝업스토어, 메이킹 필름을 찍는다고 들었어요.”

“네. 실제로 공개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뭐, 그건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니까요. 내가 제안하고 싶은 건 홍보 영상이에요.”

서영선은 양손을 깍지 끼며 진지하게 말했다.

“영상을 만들어서 팬들에게 소식을 전해주고 그 영상을 우리도 쓰게 해줘요. 당연히 이번 팝업스토어 계약 건과는 별개에요. 괜찮다면 별도 계약을 진행할 거예요.”

“괜찮은지는 조건을 들어봐야겠습니다.”

“물론이죠. 그런데 아직 확정을 안 했거든요? 경복 씨가 선택을 해주면 좋겠는데.”

“선택이요?”

서영선은 또렷한 눈으로 이경복의 표정을 관찰하며 입을 열었다.

“홍보 대금으로 5천만 원을 지급하거나 팝업스토어 수수료를 5%로 고정해드릴게요. 둘 중 하나를 택해주세요.”

“5천만 원과 5%…?”

“네. 대신 이 자리에서 결정을 끝내야 해요. 다른 사람들과 상의 없이, 경복 씨 스스로 판단해서 말해주세요.”

그녀는 그리 말하고 디저트를 음미하려 했다. 그가 결정을 내리기까지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나.

하지만 이내 서영선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디저트 다 드시고 들으시겠어요?”

이경복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       *       *

한편, 다른 방.

식사를 마친 일행들은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네요. 어떻게 사장님 명함을 받을 수 있나 했는데.”

대표는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이내 새삼 감탄을 표했다.

“그런 면에서 퍼플 님이 정말 부럽습니다. 서영선 사장님이랑 직접 통화를 하는 사이라니…”

“음, 그러게요. 게다가 따로 할 이야기까지 있으시다니…”

퍼그말리온이 그에 동조하며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야기가 좀 길어지는 것 같은데… 혹시 나쁜 일은 아니겠죠?”

“잘은 몰라도 직접 보자고 한 거면 꽤 중요한 이야기이긴 할 겁니다.”

박주호의 대답에 다른 두 사람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눈을 굴렸다.

대표는 걱정을 떨쳐내려는 듯 빠르게 손을 내저었다.

“에이, 아닙니다. 이렇게 비싼 밥 먹이는데 어떻게 나쁜 이야기가 나오겠습니까.”

“나쁜 이야기? 무슨 일 있어요?”

불쑥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세 사람 모두 흠칫하며 눈을 돌렸다. 이경복이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오고 있지 않나.

“아, 오셨어요.”

“이야기 끝났어?”

“저, 그 서영선 사장님은…?”

동시에 돌아온 목소리에 이경복은 차분하게 답해주었다.

“방금 끝났어. 사장님은 먼저 돌아가셨어요. 그래도 편하게 있어도 된다고 하니까 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에 긴장이 풀린 듯 세 사람 모두 짧게 숨을 뱉었다. 이내 다른 이들을 대변하듯 박주호가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였어? 우리가 알면 안 되는 이야기인가?”

이에 슬쩍 눈치를 보는 두 사람의 모습에 이경복은 웃음을 흘렸다.

“같이 일하는 건데 알면 안 되는 이야기가 어디 있어.”

이내 이경복은 서영선에게 받은 제안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세 사람은 눈이 크게 뜨였다.

“홍보 영상 계약이요!?”

“우리가 영상 제작해서 퍼튜브에 업로드하고 백화점 지점에서 운영하는 스텔라그램에 게시하면 된다? 다른 건 없고?”

“어. 간섭 안 하고 전적으로 우리한테 맡기겠다고 했어.”

이경복의 확언에 대표는 헛숨을 들이켰다.

“아니, 대체 서영선 사장님이 퍼플 님을 얼마나 신뢰하시는 겁니까?”

“네?”

“그게 보통 팝업스토어는 SNS에 카드 형식으로 공지만 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희는 처음 콜라보하면서 영상을 올린다는 건데, 거기에 제작까지 완전 다 맡긴다는 건…!”

대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뒷말을 흐렸다. 이내 그는 이 상황을 한 마디로 정의했다.

“와, 진짜 게말콘 나오는 상황이네요.”

그에 다들 웃음을 흘리다가 박주호가 아차 싶은 표정으로 물었다.

“잠깐, 추가 계약이면 우리가 받은 건? 그쪽도 결정된 건가?”

“아, 그게 좀 특이하게 말씀을 해주시더라고.”

이경복은 이내 서영선이 제안한 두 가지 조건을 설명해주었다. 이를 들은 세 사람의 눈이 빠르게 굴렀다.

“5천만 원 혹은 수수료 5% 고정이면…”

“4개 지점 모두 10%를 깎아준 거지. 원래 신촌점도 15% 받는 게 맞다고 하시더라고.”

“음, 확실히 나쁜 조건은 아니야. 영상 저작권을 가져가는 것도 아니니까 퍼튜브에서 수익 창출도 되고, 스텔라그램 게시만 하는데 5천만 원이니까.”

“이야, 이거 정말 축하드립니다!”

대표는 그에 손뼉을 쳤다. 그는 당연히 이경복이 5천만 원을 택했으리라 생각했다.

‘수수료 감면을 해주시면 우리도 좋기야 하겠지만…’

만약 수수료가 감면되면 샵팬덤 쪽도 혜택을 받게 된다. 하지만 샵팬덤은 홍보 영상 제작에 기여할 바가 없지 않나.

“하하, 저만 축하 받으니까 이상하네요. 다 좋은 일인데.”

그러나 이어지는 이경복의 반응에 대표는 위화감을 느꼈다.

“…다 좋은 일이요?”

“네. 수수료 줄어들면 대표님도 좋은 거 아닌가요?”

“예? 아니, 그럼…”

“아, 수수료 감면을 조건으로 했어요. 다 같이 잘 되는 게 좋잖아요.”

이경복의 말에 대표는 턱이 절로 떨어졌다. 그가 감격에 차 무어라 감사를 전해야 할지 막막한 와중이었다.

“그리고 수익측면에서도 이쪽이 더 낫고요.”

“수익측면에서요?”

“10% 감면으로 수익 5천을 충당하려면… 매출이 5억 이상이어야 한다는 건데?”

박주호가 바로 계산을 마치자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하지만 이경복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매출 5억이면 그렇게 큰 숫자도 아니잖아?”

“5, 5억이요?”

“아니… 그렇죠! 퍼플 님 정도면 확실히…!”

퍼그말리온은 놀랐지만 대표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팬 분들 1만 명이 와서 5만 원만 써도 매출이 5억이니까요! 그런데 퍼플 님 팬이 어디 그 정도뿐일까요? 그리고 그분들이 굿즈를 5만 원어치만 사겠습니까? 저는 이번 팝업스토어가 그 이상이라 확신하거든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경복은 웃으며 동의하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그렇죠! 저만 해도 굿즈에 쓴 돈이…”

“저도 덕질을 해봐서 알지만, 5만 원은 우스운 수준입니다.”

그리 기뻐하는 일행들을 보며 이경복은 서영선의 얼굴을 돌이켜보았다.

그녀가 두 선택의 차이를 몰라서 결정하지 못한 건 아닐 터였다.

‘아마 내가 어떤 부류인지 알고 싶어서 물어보신 거겠지.’

만약 절대적인 금액에 현혹됐다면 서영선의 평가가 달라졌을 터였다.

눈앞의 이익만을 좇거나 협력사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 혹은 배포가 작은 사람이라고 판단하기에 충분하지 않나.

“그럼 문제는 없겠군.”

박주호의 말에 이경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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