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화 – 팝업스토어 얼리엑세스 (2)
게임 시작과 함께 프롤로그가 진행됐다.
“아, 사무실이네요? 야근 중인 것 같습니다.”
모니터에 비치는 빛 너머 창밖으로 깜깜한 하늘이 보였다.
어둡고 좁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주인공은 빠르게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책상 주변에는 찌그러진 에너지 드링크 캔과 비어있는 일회용 커피 컵이 쌓여 있었다.
-뭐예요? 왜 시작부터 진짜 블랙기업이에요!?
-불 꺼놓은 디테일 보소 ㅋㅋㅋ
-ㄹㅇㅋㅋ 찐 블랙기업은 전기세 아깝다고 불 끄고 야근시킴
-아 개발사가 뭘 모르네 ㅋㅋ 옆에 침대도 있어야 되는데 ㅋㅋ
시청자들이 그 광경에 웃다가 이내 놀랐다. 주인공의 머리가 흔들거리더니 이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책상에 쓰러지는 게 아닌가.
쿵하는 둔중한 소리와 함께 화면이 암전됐다. 이윽고 흐릿하게 변한 화면 너머로 새하얀 천장이 보였다.
-무친 ㅋㅋㅋ 과로 무엇?
-???: 모르는 천장이다 (진짜모름)
-헐? 병원인가?
-이거 산재 처리 해줌?
-해주겠냐고 ㅋㅋㅋㅋ
시청자들이 그에 상황을 파악하는 사이 완전히 시야가 돌아왔다.
“내가… 얼마나…”
예상대로 병원이었다.
이경복의 목소리와 함께 주인공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옆에서 졸고 있던 한 남자가 흠칫 거리며 눈을 떴다.
“오, 오오! 정신이 들었구나! 날 알아보겠느냐?”
“프레드 삼촌…?”
“그래! 다행히 머리는 이상이 없나 보구나. 아, 이럴 때가 아니지. 금방 간호사를 불러오마!”
프레드가 다급히 병실을 나서려하자 시청자들이 웃음을 흘렸다.
-시뮬레이터 게임 특) 삼촌이 도와줌
-진짜 어느 시뮬레이터를 해도 엉클이 나오자너 ㅋㅋㅋ
-장르 국룰이다 이마리야 ㅋㅋ
-WA! 삼촌 최고!
그러나 곧 주인공이 프레드의 손목을 잡았다.
“아니, 잠깐…! 내가 얼마나 여기 있었어요?”
“뭐?”
“아직, 아직 일을 못 끝냈어요. 삼촌, 저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해요.”
“오, 맙소사…”
주인공의 말에 프레드는 씁쓸한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는 이내 깊이 한숨을 내쉬며 탁자위에 놓여 있던 서류를 건넸다.
“진정해라. 너는… 이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게 됐어.”
“그게 무슨…”
주인공은 그가 내민 서류를 쥐었다. 그 서류가 손과 함께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해 고 통 지 서]
서류의 제목이 클로즈업 됐다. 그 하나만으로 모두가 상황을 파악하기에 충분했다.
“와, 이건 좀…”
이경복이 그에 짧게 멘트를 치자 채팅이 바로 뒤를 따랐다.
-산재는커녕 바로 실직이었고?
-즉.시.블.랙
-혀엉? 왜 블랙기업 시뮬레이터를 실행한 거야?
-경영이라며! 경영이라며!
-???: 진행시켜
-아니 ㅋㅋㅋ 그 경영이 아니라고욬ㅋㅋㅋ
-블랙기업식 경영도 경영입니다만?
시청자들이 어처구니없어 하는 와중 주인공이 힘없이 해고통지서를 떨어뜨렸다. 프레드는 그것을 주워 옆으로 치웠다.
이내 그는 주인공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조카야, 네게는 휴식이 필요해. 삼촌이 도와줄 테니까 교외에서 작은 사업을 해보는 건 어떻겠니?”
“…사업이요?”
“그래. 처음이니까 서툴고 어렵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이런 대접을 받지는 않을 거다.”
주인공이 그에 고민하자 프레드가 진지하게 말했다.
“차근차근 해나가면 잘 할 수 있을 거다. 나도 옆에서 도와줄 거고. 혹시 아니? 이런 나쁜 놈들보다 더 유명한 사업체가 될지?”
그 말에 주인공의 시선이 해고 통지서로 돌아갔다. 그가 다녔던 기업의 이름, 그것은 아직 비어있었다.
[경쟁 기업의 이름을 정해주세요]
이윽고 게임이 잠시 멈추더니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아, 경쟁기업이면 제 사업체를 잘 키워서 여기보다 더 잘 나가는 게 목표인 것 같네요.”
-이거 완전 순 나쁜 기업이에요!
-블랙 중 블랙인 반타블랙 어떰?
-반타블랙은 멋있어서 안 됨 ㅋㅋ
-ㄹㅇㅋㅋ 좀 더 짜치는 이름이어야지
-옹졸 코퍼레이션 ㄱㄱ
-엌ㅋㅋ 아이덴티티 확실하구연?
-이건 추놈 주식회사가 딱 아니냐?
-아닠ㅋㅋㅋ 추놈이 그렇게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잖슴ㅋㅋㅋ
시청자들이 빠르게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이경복은 그에 웃다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아, 이건 어때요?”
이내 그가 적은 이름을 본 시청자들은 웃음을 흘렸다.
-아닠ㅋㅋㅋㅋㅋㅋㅋ
-뱁새컴퍼니 무엇?
-이 형은 새를 좀 좋아하는 것 같음 ㅋㅋㅋ
-하찮아 보이고 좋은 거시고요?
-뱁새는 황새를 쫓지 못한다, 그게 상식이잖아?
-필패의 이름 ㅋㅋㅋㅋㅋ
시청자들 반응에 이경복은 이름을 확정했다.
[뱁새 컴퍼니]
공란에 이름이 채워지자 다시 프롤로그가 진행됐다. 프레드는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아주 새로운 도전은 힘들 거다. 원래 하던 업종의 일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겠지. 뱁새컴퍼니가 무슨 일을 하던 곳이었지?”
“그곳은…”
주인공이 말을 흐리며 다시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사업체의 업종을 선택해주세요.]
[-카페]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슈퍼마켓]
[-주류전문점]
[-의류점]
…
길게 나열된 목록 창에 이경복은 작게 탄사를 흘렸다.
“오… 생각보다 선택지가 꽤 많네요?”
그러나 그는 고민하지 않았다. 이미 정해둔 업종이 있기 때문이었다.
“퍼파고가 또 방송 준비하면서 퍼펙트 굿즈를 모드로 설치를 해뒀거든요. 이게 품목이 미리 정해져 있다고 들어서 업종은 미리 이야기를 들어뒀습니다.”
이경복은 목록의 스크롤을 내려 원하는 업종을 찾았다.
[-기프트 샵]
그 선택에 시청자들도 바로 이해했다.
-오 ㅋㅋㅋ 굿즈면 이게 맞지
-장식품이나 사무용품에 의류도 다 포괄 가능함 ㅋㅋㅋ
-굿즈는 나를 위한 선물이라구욧!
-역시 퍼파고라니깐!
-퍼펙트 기프트 ㅁㅊㄷㅁㅊㅇ
업종 선택까지 마치니 곧 화면이 전환됐다. 빌딩으로 가득한 도심을 비추던 카메라는 이내 그 외곽인 교외 지역을 보여주었다.
그리 높지 않은 건물들과 자연이 어우러진 목가적인 풍경 가운데 한 작은 건물이 줌인 됐다.
“새로 시작하는 거야.”
기대에 부푼 주인공이 가게의 문을 열었다. 그와 함께 이경복은 통제권이 돌아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내 보이는 광경에 헛숨을 삼켰다.
“허…”
-?
-삼촌?
-이게 가게라고? 흉가 아님?
이게 그 사고 물건인가 그거냐?
-이정도면 삼촌이 사기친 거 아님? ㅋㅋㅋㅋ
-데또속이 아니라 퍼또속!?
-이것도 시뮬레이터 국룰이자넠ㅋㅋㅋ
-진짜 ㅋㅋ 일단 청소부터 시작함ㅋㅋ
가게 내부는 엉망이었다.
갖가지 쓰레기와 널브러진 잔해들이 가득했다. 황당해하는 시청자들과 놀리는 시청자들이 채팅창에 어울리는 와중이었다.
우웅하는 진동과 함께 이경복의 앞에 홀로그램으로 된 프레드의 상반신이 떠올랐다.
<오, 도착한 모양이로구나!>
그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는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처음 하는 사업인 만큼 지출은 줄이는 게 좋지 않겠니? 이 정도는 직접 치울 수 있을 거다. 보기에는 좀 그렇지만 치워두면 또 생각이 달라질 게야.>
프레드는 곧 가게 뒷문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쓰레기는 뒤쪽 쓰레기장에 놔두면 알아서 수거해 갈 거다. 그럼, 힘 내거라.>
말이 끝나자 프레드의 홀로그램이 사라졌다.
“자, 그럼 치워볼게요.”
이경복은 헛웃음을 흘리고는 난장판인 내부를 훑었다. 일단 가까운 쓰레기들을 주우려 손을 뻗은 순간이었다.
“오? 그래도 직접 줍는 방식은 아니네요.”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그가 바라보던 쓰레기가 둥실 떠오른 게 아닌가. 이경복은 이리저리 손을 움직여 보고는 시스템을 파악했다.
“아하, 이게 시선을 따라 선택이 되네요. 이렇게 손으로 움직일 수 있고요. 뭔가 염력을 쓰는 기분입니다.”
-ㅇㅇ 맞음요
-진짜 청소해야 되는 거면 누가 이 게임 하겠냐곸ㅋㅋ
-ㄹㅇㅋㅋ 현실에서도 청소 안 하는 데 어림도 없지!
-ㅔ?
-넌 좀 나가서 치워!
시청자들은 그에 웃다가 곧 어리둥절했다.
“아, 대충 알겠다.”
이경복이 허공에 뜬 쓰레기들을 저글링 하듯 돌려보더니 곧 고개를 주억거렸다.
“던지는 것도 쉽네요. 여기서 바로 다 치울게요.”
이내 그는 거침없는 손놀림과 함께 쓰레기와 잔해들을 날리기 시작했다.
-??????????
-아닠ㅋㅋㅋ 컨트롤 무엇?
-여기서 또 데카코어가?!
-진짜 이 형은 멀티태스킹이 개쩐다니깐ㅋㅋㅋㅋ
-눈! 저 눈!
놀랍게도 그것들은 열려있는 뒷문은 물론 반쯤 열린 창문으로도 정확히 통과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동시에 여러 개가 날아다니지 않나.
-이거 적응하는데 보통 길면 1시간 쓰는데 ㅅㅂㅋㅋㅋㅋㅋ
-ㄹㅇㅋㅋ 와리가리하면서 시간 좀 잡아먹는데
-???: 그것은 머글의 방식입니다만?
-킹직히 갓플은 현실에서 염력 써본 적 있을 듯
-진짜 쓰는 거냐곸ㅋㅋ
-사실상 이 정도면 초능력자 시뮬레이터 아니냐?
-갓플이 초 능력자는 맞긴 해 ㅋㅋㅋ
-???: 충분히 뛰어난 능력은 초능력과 구분할 수 없다
말끔해지는 가게 내부처럼 시청자들의 속도 시원해졌다.
* * *
내부 정리를 끝마치자 프레드의 홀로그램이 다시 나타났다.
<음! 아주 깔끔하군! 위생과 청결은 어느 업종이든 기본이란다!>
프레드는 흡족한 듯 너털웃음을 흘리고는 기본적인 튜토리얼을 진행해주었다.
<자, 이제 이 텅 빈 공간을 다시 채워보자꾸나. 가게를 열어야 하는 데 아무것도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없지. 일단 최소한의 인테리어가 필요하단다.>
프레드의 말과 함께 그 옆에 목록이 생성되었다.
“물품을 놓을 선반이 최소 1개, 그리고 계산대을 배치하는 게 개점 조건이네요.”
이경복이 목록을 살피다가 곧 눈을 크게 떴다.
“오, 편의성은 확실히 좋네요. 목록 누르니까 바로 카탈로그가 나옵니다.”
다양한 가격과 형태의 선반 목록이 나열되었다. 이를 잠시 살펴보던 이경복과 시청자들은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 여긴 배송료가 다 붙네요.”
-로켓배송 ㅇㄷ?
-와씨 이걸 무료배송을 안 해주네ㅋㅋㅋㅋ
-온라인쇼핑특) 같은 가격이라도 배송비 붙은 거 손해보는 느낌임
-무료배송 1만원 > 7천원 제품+배송비 3천원
-진짜 이건 닥전이지 ㅋㅋㅋㅋ
-아니 ㅅㅂ 조건부 무료배송도 없다고?
-무친 ㅋㅋㅋ 완전 배짱 장사네
-나 장사 안 해!
카탈로그로 주문하면 제품 가격과 별도로 배송료가 붙었다. 이를 확인하자 프레드가 첨언했다.
<잠깐 가게를 비워도 되거나 달리 할 일이 없다면 직접 매장을 찾아보는 것도 좋단다. 시간은 좀 걸리지만 비용을 절약할 수 있지.>
“직접 매장에? 아, 여기 매장 방문 버튼이 있네요.”
이경복은 이동을 선택했다.
배경이 뒤바뀌며 창고형 매장이 나타났다. 그가 방문한 곳은 인테리어 전문점 ‘EKIA’였다.
-WA! EKIA!
-아닠ㅋㅋㅋ 매장 구현 디테일 뭔데 ㅋㅋㅋㅋ
-웬만한 인테리어는 에키아가 가성비가 좋긴 하지 ㅋㅋ
-여긴 베이크 먹으러 가는 곳 아님?
-에키아가 또 맛집이긴 하지 ㅋㅋㅋ
시청자들이 즐거워하니 이경복도 웃으며 카트를 끌었다.
“생각보다 훌륭한 게임이네요. 일단 선반부터 보러 가보죠.”
선반 코너에서 여러 품목을 살펴본 이경복은 시스템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 이게 가격 차이가 나는 이유가 있네요. 보시면 품목마다 인테리어 점수가 있습니다. 아마 점수가 높으면 고객 만족도가 높지 않을까 싶어요.”
-가게 분위기가 또 중요하지
-SNS 갬성이 괜히 먹히는 게 아니다 이마리야 ㅋㅋㅋ
-확실히 가게가 예쁘면 가고 싶어지긴 해 ㅋㅋㅋ
-그걸 트수들이 어찌 아시오?
-밖을… 나간다고?
-아 ㅋㅋ 또 나만 진심이었지
시청자들의 장난스러운 반응에 이경복은 실소를 흘렸다.
“일단 초기 자금이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적당히 저렴한 걸로 골라보겠습니다.”
그가 가볍게 목록을 훑고는 장바구니에 품목을 담았다. 카트에 상자가 쌓였지만 무겁지는 않았다.
선반과 계산대까지 모두 장바구니에 넣고 확인을 누르자 다양한 색이 담긴 팔레트가 눈앞에 나타났다.
“오, 저렴한 제품도 색깔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나보네요.”
-아 ㅋㅋ 이건 무적권 보라색이지!
-근데 쌩 보라는 ㄴㄴ
-포인트만 딱 살리는 게 좋다 이마리야
-연보라랑 찐보라 섞어줘잉!
-아 ㅋㅋ 갓플이 알아서 정할 거라고
이경복은 가볍게 색까지 선택을 마치고 구매를 끝냈다. 그와 함께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인테리어 메뉴가 열렸네요. 배치도 염력 같은 방식이라 쉽네요.”
구매한 선반을 선택하자 반투명한 실루엣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경복이 배치를 마치고 슬쩍 가게를 둘러보았다.
“오… 이렇게 좀 채우니까 오히려 더 채우고 싶은 마음이 좀 생기는데요?”
-원래 조금 덜 찬 걸 다 채우고 싶은 게 사람 맴임ㅋㅋㅋ
-빈 항아리보다 절반 찬 항아리를 채우고 싶다 이마리야
-완전 인간의 본능이자너 ㅋㅋㅋ
-아 그래서 배가 안 고파도 밥을 먹고 싶은 거였네 ㅋㅋㅋ
-그건 본능이 아니라 식탐이라고 부르기로 약속 했어요;;;
-어허! 인간이 아니라 햄인간일수도 있지!
-트수햄 씨다 씨!
-그 햄이었냐고 ㅋㅋㅋㅋ
배치까지 끝내자 다시 프레드가 나타났다.
<슬슬 준비가 갖춰지는구나! 점점 더 설레지 않니? 하지만 개점까지는 아직 한 단계가 더 남아있단다. 가장 중요한 단계, 바로 가게에서 팔 물건을 주문해보자꾸나!>
-아 ㅋㅋ 그치 물건이 없으면 못 팔지
-WA! 퍼펙트 구쭈!
-마참내!
-엌ㅋㅋ 내가 주문한 구쭈도 아직 못 봤는데 ㅋㅋㅋ
-게임에서나마 구쭈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시청자들이 그에 기대심을 부푸는 와중 프레드가 옆을 가리켰다. 그 손끝에 연락처 목록이 나타났다.
<물건은 프로바이더, 로렐라이 씨에게 물어보면 될 거다. 어떤 물건이든 구해오는 전문가 중에 전문가지! 삼촌이 얘기를 해뒀으니 직접 연락하면 될 거다.>
프레드는 그리 말하며 사라졌다. 이경복이 바로 새로 추가된 연락처를 선택하자 통화음이 이어졌다.
<안녕하세요! 무엇이든 공급해드리는 프로 프로바이더, 로렐라이입니다! 아, 프로를 2번 넣은 건 농담이에요.>
통화가 연결되자 경쾌한 목소리와 함께 로렐라이의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그녀의 콧잔등과 뺨에 난 주근깨가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로하하하하하하!
-로눈나 어서오고 ㅋㅋㅋ
-로잼개그 올만이네 ㅋㅋㅋㅋ
-이 눈나 조크는 왜 패치를 안 해주는 거지
-혀엉! 로눈나는 AI 좋아서 대화가능함!
이미 게임을 아는 시청자들이 그 에 반응했다. 이경복은 이에 실소를 흘리며 답했다.
“안녕하세요. 로렐라이 씨라고 부르면 되나요?”
<로렐라이 씨, 로렐라이, 어이 로씨! 뭐든 편하게 부르세요. 프레드 씨 조카분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퍼플이라고 불러주세요.”
<좋아요, 퍼플! 새로운 기프트 샵을 여셨다고 들었어요. 아주 탁월한 선택이에요! 선물은 사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쁜 물건이죠!>
로렐라이는 쾌활한 목소리로 카탈로그를 열어주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건 비즈니스죠! 고객님의 마음에 들 만한 상품을 고르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어떤 물건을 주문하시겠어요?>
이경복은 카탈로그에 나열된 물품 목록을 확인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건 아니네요. 인테리어 점수가 괜히 있는 게 아니고, 리서치가 또 필요하네요?”
<아하하, 모든 사업에는 연구와 개발이 필요한 법이죠. 그리고 제품을 만드는 쪽에서도 아무데서나 물건이 팔리길 원하는 건 아니라서요. 까다롭기가 참 까마귀 같다니까요!>
“그럼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는 건데…”
이경복은 그에 실소를 흘리며 둘 뿐인 선택지로 눈을 돌렸다. 그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시청자들이 바로 채팅을 쏟아냈다.
-와 ㅋㅋㅋ 초반부터 빡센데?
-게말콘 vs 퍼무새!
-ㅁㅊ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됨?
-뭐예요! 둘 다 팔아줘요!
-와씨 ㅋㅋ 둘 다 없어서 못 사는 건데 ㅋㅋㅋ
게말콘 피규어와 퍼무새 피규어가 1단계로 해금할 수 있는 품목이었다.
이경복은 그 선택에 앞서 눈을 돌렸다.
[스트리머 모드]
이게 뭔가 싶은데 채팅창에 바로 제보가 쏟아졌다.
-혀엉! 프랜차이즈 테일 하면 스트리머 모드는 필수야!
-즉.시.활.성.화
-그거 시참임! 시참 시켜줘잉!
-헐? 시참?
-시청자들이 투표하고 인기도도 바로 반영됨 ㅋㅋㅋ
-그럼 응애난이도 되는 거 아니냐 ㅋㅋㅋ
-당연히 갓플한테는 비밀로 투표 진행되지 ㅋㅋㅋㅋ
이경복이 이를 확인하고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병훈이가 다른 게임 말고 이걸 추천해준 이유가 있구나.’
시청자 참여가 가능하면 몰입도가 더 높아질 터였다. 그렇다면 이후 컨텐츠를 마치고 팝업스토어를 공개했을 때 그 여파가 더 커지지 않겠나.
-아 ㅋㅋ 근데 이거 어케 고르냐곸ㅋㅋㅋ
-황밸 ㅁㅊㄷㅁㅊㅇ
-게말콘 피규어가 근본입니다만?
-퍼무새 버려? 퍼무새 버려?
-게말콘 사용자로서의 나인가 퍼무새 아빠로서의 나인가…!
-발매제품과 미발매제품의 대결!
-둘 다 살 건데 왜 골라야 되는 건데에에!
그 증거로 이경복이 스트리머 모드 활성화를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시청자들은 이미 고민 중이었다.
“고객님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도 사장의 역량이겠죠? 이건 바로 채택하겠습니다.”
이경복이 스트리머 모드를 활성화하자 투표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시청자들의 선택은?]
[1. 게말콘 피규어]
[2. 퍼무새 피규어]
[00:03:00]
주어진 시간은 단 3분.
시청자들은 혼란해하면서도 빠르게 투표를 진행했다.
-아닠ㅋㅋ 3분 왜케 짧게 느껴짐?
-아무튼 골라야 된다고 ㅋㅋㅋ
-근데 갓플한테는 어느 쪽이 유리한 거?
먼저 투표를 마친 시청자들은 이내 의아해했다. 자신들이야 좋아하는 걸 고른다지만 이경복은 무엇을 고르는 편이 좋을까.
-투표율 높은 쪽 골라야 좋은 거 아님?
-ㅇㅇ 품목 인기도가 높아져서 잘 팔림
-이 형이면 반대편 골라도 상관없지 않나?
-ㄹㅇㅋㅋ 어려워졌다고 좋아할 듯
이내 그들은 깨달았다.
-5252, 어딜 골라도 개이득인 거냐구웃!
-어떻게 되도 꿀잼인 스트리머가 이따!?
-어떤 선택이든 유리하다, 그게 퍼펙트 상식이잖아?
-이 형은 어떻게든 재미있게 할 것 같긴 해 ㅋㅋㅋ
이경복에게 나쁜 선택이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