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3화 – 계란으로 바위치기 (2)
퍼플오피스와 뱁새컴퍼니.
양측 모두의 프로모션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점유율 경쟁의 막이 올랐다.
-막대 차는 속도 보소 ㅋㅋㅋ
-5252, 경쟁주간도 숏컷해버리는 거냐구웃!
-이래서 다 마케팅 마케팅하는 거였고?
-킹치만 갓플은 손해 없쥬?
-출혈경쟁(독박)
-아 ㅋㅋ 뱁새만 지금 피나고 있다고 ㅋㅋ
-이게 그 새발의 피인가 그거냐?
빠르게 차오르는 점유율 막대에 시청자들은 즐거워했다.
뱁새컴퍼니의 과감한 프로모션과 견주어 봐도 퍼플 오피스는 뒤지지 않았다.
그렇게 상황이 순조로운가 싶었지만, 문제는 외부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여기 사장님이시죠?”
새롭게 방문한 손님이 한 말이었다. 그는 여타 손님과 다르게 물건을 고르지 않고 바로 계산대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위에 게말콘 피규어를 올려두었다.
“포장을 뜯어보니까 물건을 잘못 주셨더라고요? 덕분에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아세요?”
손님의 말에 이경복은 물론 시청자들도 의아해했다.
-이게 뭔솔?
-아니;;; 손님이 물건 들고 오는데 어케 잘못 줌?
-진.상.출.현
-5252, 진상들이 왜 이렇게 많냐구웃!
-현실반영 멈춰!
-근데 진상치고는 좀 조곤조곤한 것인디요?
-ㄹㅇㅋㅋ 보통은 빽 소리부터 지르는데
-아아, 그것은 ‘진짜’라고 하는 것이다
계산대에 가져온 물건을 포장해주는 바, 실수가 발생할 리 없었다.
때문에 시청자들은 대부분 진상 이벤트라고 생각했지만 이경복은 달랐다.
‘진짜 손님인데?’
진상에게 느껴지는 불쾌함이 없었다. 혹 게임에 문제가 생긴 걸까 싶지만 손님의 반응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이에 그가 떠오른 가능성은 한 가지였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혹시 2층에서 주문을 하셨나요?”
“네. 맞아요.”
손님의 대답에 시청자들도 상황을 파악했다.
-엌ㅋㅋㅋㅋ 지 사원 실수였네
-추놈, 또 너야?
-???: 하 ㅅㅂ 추놈이 형!
-???: 지 사원, 내려와 봐유!
-퍼종원이냐고 ㅋㅋㅋㅋ
이경복은 바로 직원을 호출했다. 이에 1층으로 내려온 직원은 상황을 듣고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허리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제 실수입니다!”
“상품은 바로 드리겠습니다. 또한 잘못 드린 상품도 돌려주실 필요 없습니다.”
이경복은 일단 손님부터 돌려보냈다. 상황 파악은 그 다음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죠?”
“그, 제가 업무를 좀 더 빨리하려고 남는 시간에 미리 포장을 해두었습니다.”
직원은 바로 이실직고했다.
그는 2층에서 미리 상품을 포장하고 손님이 주문을 하면 포장해둔 상품을 건네는 식으로 일 처리를 했다.
“제가 착각해 다른 상품을 드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엌ㅋㅋ 잔머리 굴리다가 실수한 거네 ㅋㅋ
-추놈이 추해버렸던 거시고?
-이름값 뭔데에에에에에!
-아 ㅋㅋ 이름 지은 갓플이 잘못했네 ㅋㅋㅋ
시청자들이 장난스럽게 놀리는 사이 이경복은 눈을 굴렸다.
‘미리 느껴진 게 없던 걸 보면, 이것도 이벤트인가 보네.’
실제로 직원이 그런 행동을 하고 있었다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때 잠시 시간이 멈추더니 프레드의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직원이 맡은 일을 잘 해주면 더할 나위가 없지만, 숙련도가 낮은 직원들은 종종 실수를 한단다. 이럴 때는 사장으로서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아, 직원 관련 튜토리얼이 또 있나 보네요.”
홀로그램의 색이 회색인 것으로 보아 프레드의 말을 회상하는 듯했다.
<어떤 실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심하면 그 책임을 묻고 새로운 직원으로 대체해야 할 수도 있단다. 아니면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네 판단에 따라 배상을 요구할 수도 있지.>
프레드의 말과 함께 직원 옆에 선택지가 나타났다.
[해고]
[배상 요청]
배상 아래에는 그 비율을 조정하는 막대가 있었다.
‘뭘 선택해도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네.’
어느 쪽에서도 달리 불길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경복은 그에 판단의 기준을 잡았다.
“제가 이 주인공 입장이라면 이렇게 할 겁니다.”
간단한 멘트와 함께 결정이 끝났다. 시청자들은 그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배상 0%?
-이걸 그냥 넘어간다고?
-형? 이거 맞아?
-아 ㅋㅋ 이러면 추놈 버릇 나빠진다고!
-아니;; 그래도 잘못은 잘못이잖슴!
이경복은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의아해하자 그가 입을 열었다.
“실제로는 저희 팀원들이 다 잘해줘서 이런 경우가 거의 없기는 합니다. 그런데 아주 가끔, 진짜 가끔은 실수를 하기도 하거든요?”
-엥? 갓플 방송시작하고 실수가 있었나?
-실수라면 방송을 너무 늦게 시작한 거?
-아닠ㅋㅋㅋ 그게 유일한 실수냐곸ㅋㅋ
-진지 빨고 한 번도 못 느껴봄
-거짓말이 아니라면 수습도 퍼펙트했다는 거 아님?
-ㄹㅇㅋㅋ 실수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대처를 해버렸다 이마리야
시청자들이 그에 놀라자 이경복은 실소를 흘렸다.
‘병훈이, 그 자식이 컨디션 조절을 못 한 적이 있었지.’
최병훈이 영상 퀄리티에 욕심을 부리다가 늦잠을 잔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경복은 그 책임을 묻지 않았다.
“거기서 제가 느낀 게 있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사람인 이상 실수는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저는 실수를 했냐 안 했냐보다는 ‘어떤’ 실수였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경복은 시청자들에게 친구의 흠을 밝힐 생각이 없었다. 대신 자연스럽게 다시 이야기의 중심을 잡았다.
“지금 같은 경우는 태만이 아닙니다. 지 사원은 더 일을 잘하려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려다가 실수를 한 거잖아요? 그런데 이런 실수에까지 책임을 따지는 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누가 일을 잘하고 싶어 하겠어요?”
-고것도 맞긴 해
-ㄹㅇㅋㅋ 잘 하려다가 쿠사리 먹으면 시키는 일만 하게 되지
-리스크가 크면 보상도 커야 되는데 리스크만 크자너 ㅋㅋㅋ
-???: 아이디어 좀 내보라니까? (내 책임 아님)
-아이디어회의특) 스무고개임
-위에서 책임을 져줘야 자유롭게 얘기를 하지 ㅅㅂㅋㅋㅋㅋ
시청자들의 동조에 이경복은 다시 게임으로 돌아왔다. 그는 위축된 직원에게 말했다.
“지 사원”
“네, 네…!”
“손님께 상품을 잘못 드린 건 실수지만 가장 큰 실수는 그게 아니에요.”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해서 잘잘못을 안 따지겠다는 건 아니었다.
“업무 방식을 바꾸고 싶었다면 책임자인 나한테 먼저 허락을 구했어야죠. 좋은 아이디어였다면 제가 허락해주지 않았겠어요?”
“네,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처음은 실수니까 넘어가는 겁니다. 이런 일이 또 있으면 다음 기회는 없어요.”
“예…”
이경복의 경고에 직원이 더 움츠러들었다. 이경복은 직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덧붙였다.
“그래도 고마워요.”
“네?”
“가게를 위해서 힘 써준 거잖아요? 앞으로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언제든 말해주세요.”
“아…”
직원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곧 넙죽 허리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용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바짝 힘이 들어간 목소리와 태도에 이경복이 실소를 흘렸다.
[‘리더십’ Lv UP]
[Lv 5 - 직원의 숙련도 향상 속도가 상승합니다!]
이윽고 나타난 메시지에 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시청자들은 그 표정에 웃음을 터트렸다.
-옼ㅋㅋㅋ 리더십도 올랐넼ㅋㅋ
-이렇게 빨리 오른다고?
-이거 리더십 경험치가 직원이 주는 방식이라 그런 거 ㅋㅋㅋ
-아 ㅋㅋ 사장님이 저렇게 말해주면 경험치 줄만하지 ㅋㅋㅋ
-이게 어떻게 블랙기업?
-직원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그게 상식이잖아?
-이 형이랑 같이 일하면 진짜 일할 맛 날 듯 ㅋㅋㅋ
-괜히 능력자가 모이는 게 아니라니깐!
-장난 아니고 진짜 갓플은 이렇게 일할 듯 ㅋㅋㅋ
그의 사장다운 모습을 보는 것도 이번 방송의 묘미였다.
* * *
점유율 경쟁이 시작된 지 4일차.
뱁새컴퍼니 쪽에 붙어있던 ‘>>>’마크가 사라졌다.
-엌ㅋㅋ 뱁새쉑들 멈췄다 ㅋㅋㅋ
-반값 할인행사 끝났네 ㅋㅋㅋ
-전 품목 반값은 킹직히 부담될 수밖에 없지 ㅋㅋㅋㅋ
-혼자 출혈경쟁 하다가 못 버텼쥬?
-과다출혈잼 ㅋㅋㅋㅋ
상대 쪽에서 정체가 시작되니 점유율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퍼플 오피스의 손님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디 반짝 효과만 나오는 프로모션이랑 다르다 이마리야
-진짜 포인트 제도는 신의 한수였다 ㅋㅋㅋ
-이대로만 가면 압승인 거시고?
-매튜쉑 무능 바로 드러나버리기 ㅋㅋ
-대기업이라더니 별거 아니네 ㅋㅋㅋ
-찐 현실이면 계란으로 바위치기인데 ㅋㅋㅋㅋㅋ
-계란(만렙)
-엌ㅋㅋ 갓플노 계란와 튼튼데스네 ㅋㅋㅋ
그렇게 점유율 막대가 차오르면서 20% 구간을 돌파한 순간이었다.
<퍼플 씨! 큰일입니다!>
“빈센트 씨?”
다급한 목소리에 이경복은 눈을 돌렸다. 마케팅 전문가, 빈센트의 홀로그램이 그곳에 있었다.
<퍼플 오피스의 평판이 하락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갑자기 부정적인 리뷰들이 올라오고 있어요!>
“리뷰? 평이 나쁘다고요?”
이경복은 물론 시청자도 어리둥절했다. 다들 만족해하며 나갔는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빈센트는 이어 예시를 보여주겠다는 듯 홀로그램 하나를 더 띄우며 말했다.
<일주일도 안 돼서 피규어의 칠이 벗겨졌다느니, 텀블러나 머그컵에서 물이 샌다느니 악평이 대부분입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모함입니다만…>
빈센트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맺었다.
<아무래도 뱁새컴퍼니 쪽에서 손을 쓴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말에 이경복은 짧게 탄식했다.
“허, 이렇게 나오시겠다.”
-역시 ㅋㅋ 퍼펙트 굿즈가 품질이 떨어질 리가 없거등요?
-ㄹㅇㅋㅋ 억까 미쳤네 ㅋㅋㅋ
-으윽? 이런 게 대기업!?
-바로 블랙기업 행동나왔쥬?
-뭐예요? 왜 진짜 선날승이에요!?
-아닠ㅋㅋ 가짜뉴스 뭔데 ㅅㅂㅋㅋㅋㅋ
시청자들이 어처구니 없어하는 와중 이경복은 더 실소가 나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와, 지금 빈센트가 보여준 블로그 있죠? 주인 사진이 좀 익숙하네요?”
예시라며 보여준 블로그 리뷰의 작성자가 낯이 익었다. 시청자들도 그에 알아차렸다.
-아닠ㅋㅋㅋ 이거 블로거지잖슴!
-퍼극권에 발린 놈이 여기서?
-아주 그냥 끼리끼리 노네 진짜 ㅋㅋㅋ
-블랙기업과 블로거지의 블씨동맹 ㅋㅋㅋㅋ
-근묵자흑이 여기서 나온 말이었고?
-이 정도면 뱁새 쪽에서 설계한 거 아님?
-ㄹㅇㅋㅋ 선날승하려고 미리 구매기록 남긴 걸 수도 ㅋㅋㅋ
다들 헛웃음을 흘리는 사이 빈센트가 보고를 이었다.
<일단은 허위사실로 신고를 넣어두었습니다. 아마 법적으로도 소송까지 가능하겠죠.>
“소송이라고요?”
<실제로 소송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효과는 충분할 겁니다. 지레 겁을 먹고 리뷰를 삭제할 테니까요. 하지만 그때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습니다.>
“아, 그 때까지는 계속 평판에 문제가 있겠군요. 어떤 상황인지 감이 오네요.”
이경복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빈센트의 설명으로 뱁새컴퍼니가 바라는 게 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게임이라도 소송하면 개오래 걸릴 듯ㅋㅋㅋ
-이래서 가짜뉴스가 무서운 거임 ㅋㅋㅋ
-진짜 ㅋㅋ 거짓말은 쉬운데 해명은 개 빡세다니깐!
-???: 아님 말고 ㅋㅋ
-차라리 우리도 맞불작전?
-오 ㅋㅋ 뱁새컴퍼니가 배후라고 질러버리라구웃!
-아닠ㅋㅋ 그건 진짜뉴스잖슴ㅋㅋ
채팅창에 빠르게 의견이 올라왔다. 그러나 이경복은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괜히 같이 진흙탕에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고객 입장에서 보면 굳이 그 사이에 끼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는 마케팅 메뉴를 열어 선택지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떳떳하다면 거짓을 부정하는 것보다 진실을 보여주는 쪽이 더 쉽습니다.”
그에 시청자들이 물음표를 치는 와중 이경복은 새로운 마케팅을 선택했다.
그러나 여전히 물음표는 올라왔다.
-??????
-갑자기 후기 이벤트를?
-이것도 나쁘진 않긴 한데…
-좀 애매한 거시고요?
-이제 막 구입한 사람들 후기로는 커버 못 치지 않나?
-ㄹㅇㅋㅋ 저놈들은 쓰다가 망가진 것처럼 구라치잖슴!
분명 좋은 후기들이 올라오겠지만 허위 악평에 대한 대처로는 적합해보이지 않았다.
“구매자를 대상으로 한 후기가 아닙니다.”
이경복은 그에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시청자들은 당혹스러웠지만.
“그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대상이에요.”
그 뒤에 붙은 말에 웃음 지었다.
-WA! 찐 실사용 후기!
-캬ㅋㅋㅋ 이거지!
-구라아니고 진짜로 승부하겠다 이마리야 ㅋㅋㅋ
-와씨 ㅋㅋ 이번 방송 씽크빅 자주 터지넼ㅋㅋㅋ
-숫자로 따지면 가짜뉴스 바로 묻힐 듯 ㅋㅋㅋ
-뱁새들은 돈찍누지만 갓플은 진찍누였고?
-엌ㅋㅋ 진실로 찍어 눌러버리기 ㅋㅋㅋㅋ
진실을 감추려면 뱁새컴퍼니는 더 많은 돈을 써야할 터였다.
* * *
퍼플 오피스의 점유율 우세는 변하지 않았다. 거짓 후기로 감소세였던 평판은 금방 다시 회복했다.
“여기 상품이 정말 후기가 좋더라고요.”
“아, 저도 후기 보고 왔어요.”
“선물 받은 사람들 전부 만족했다는데 구경해서 나쁠 거 없잖아요?”
오히려 후기 이벤트의 효과인지 손님들의 숫자는 더 많아졌다.
그렇게 호황이 이어지면서 점유율이 40%를 돌파하자 이벤트 컷신이 시작됐다.
“어, 주인공 시점이 아니네요?”
어둑한 사무실.
화면에 나타난 건 주인공이 아니었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쩔쩔매는 표정으로 제 머리를 헝클고 있는 건 바로 주인공의 전 상사인 매튜였다.
<매튜 지점장 님, 지금은 변명을 할 상황이 아닙니다. 본사에서 손실을 감수하고 대폭 지원을 했는데 왜 이런 상황이 된 겁니까?>
본사 직원의 냉랭한 목소리에 매튜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의 입가에 경련이 일어났다.
억지로 지어진 미소와 함께 그는 평정을 가장했다.
“조금, 조금만 더 예산을 배정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처음 들었던 이야기와는 다르지 않나요? 분명 지점장님이 직접 퍼플 오피스가 ‘구멍가게’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 그건 맞긴 합니다만…”
<아쉽게도 본사에서는 ‘구멍가게’와 경쟁하는 데 더 추가 예산을 배정할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는 순수히 지점장님의 역량으로 성과를 내주셔야 되겠습니다.>
“예? 아니, 잠시만…”
<만약 점유율 회복을 못 하신다면 지점장 님의 ‘무능’으로 판단, 본사는 지점장 교체 혹은 지점 철수까지 고려할 겁니다.>
본사 직원은 그의 말을 잠자코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모든 책임은 지점장인 매튜, 당신에게 물을 겁니다.>
“잠, 잠깐! 잠시만요!”
매튜가 그에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미 통화는 끊겨 있었다.
-엌ㅋㅋㅋㅋㅋ 개꼬시닼ㅋㅋㅋㅋ
-본사도 ‘블랙기업’ 해버렸고?
-꼬리 자를 때는 좋았는데 자기가 꼬리가 될 줄은 몰랐쥬?
-정의구현이 눈앞인 거시고요?
-업보스택 쌓더니 꼴 좋닼ㅋㅋㅋ
-멍청하긴 ㅋㅋㅋ 본사에 갓플이 상대라고 말을 했어야지 ㅋㅋㅋ
-ㄹㅇㅋㅋ 그럼 본사도 정상참작해줬을 듯 ㅋㅋㅋ
시청자들이 그의 모습에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런 빌어먹을…!”
매튜는 바들바들 몸을 떨다가 이를 악물었다. 이내 카메라가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약간 충혈된 눈에서 천천히 내려간 화면에는 비릿한 미소가 잡혔다.
“하, 이렇게까지는 하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군.”
그 비열한 목소리와 함께 서서히 화면이 암전됐다. 시청자들은 그에 어리둥절했다.
-??????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바로 또 업보 스택을 쌓는다고?
-역시 청부살인업으로 바꿔야?
-아닠ㅋㅋ 이거 경영 게임이라곸ㅋㅋ
-대충 딴겜으로 치면 2페이즈 들어간 거 ㅋㅋㅋㅋ
-갓플이면 문제 없다구웃!
몇몇 시청자들의 제보에 이경복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빌런답게 나쁜 짓을 꾸미는 모양입니다. 게임 해보신 분들은 스포 안 되게 조심해주시고요.”
그렇게 컷신이 끝나는가 싶은데 아직 통제권이 돌아오지 않았다.
“고생했어요.”
“네, 살펴 가십쇼!”
이내 전환된 화면에는 하루 영업을 마감한 주인공과 직원이 보였다. 그런데 묘하게도 카메라는 주인공이 아니라 직원을 따라갔다.
“어? 지 사원을 보여주네요?”
이경복과 시청자 모두 의아해하는 와중이었다.
‘아하.’
이경복은 속으로 짧게 탄사를 흘렸다. 이전보다 더 불쾌한 기운이 풍겨왔다.
아니나 다를까.
“퍼플 오피스 직원이시죠?”
그림자 진 골목에 붉은 담뱃불 하나. 훅하고 담배 연기를 뱉은 매튜가 그 안에서 걸어 나왔다.
“네, 맞는데 무슨 일로…?”
“다른 건 아니고 좋은 제안을 하나 하고 싶어서요.”
“제안이요?”
매튜는 입꼬리를 비틀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려운 건 아닙니다. 저를 좀 도와주시면 뱁새컴퍼니 정직원 자리와 더 나은 월급을 약속드리죠.”
그의 말에 모두 상황을 파악했다.
-지 사원을 매수하겠다?
-블랙기업식 인재등용 ㅎㄷㄷ
-무친 ㅋㅋㅋ 이거 내부에사 사보타주하려는 거 아님?
-여기서 ‘추놈’해버리나?
-아 에바야 ㅋㅋㅋ
-5252, 갓플이 봐준 걸 잊지 말라구웃!
-설마사카?
채팅창이 들썩였지만 직원은 그를 볼 수 없었다.
“정직원이요…?”
“맞습니다. 아르바이트도 계약직도 아니라 정직원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와중 직원은 서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단 얘기는 들어보죠.”
다시금 암전되는 화면.
이에 시청자들이 바로 힐난했다.
-배은망덕 무엇?
-아니 ㅋㅋㅋ 이걸 듣는다고?
-여기서 또 이름값을 해버리고?
-추.놈.행.동
-블랙기업 정직원 되기 vs 퍼플 오피스 알바하기
-밸붕 ㅁㅊㄷㅁㅊㅇ
-내일 바로 잘라버리죠?
그러나 이경복의 판단은 약간 달랐다.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네?’
제안을 들은 직원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길과 흉을 오갔다.
‘확실히 전투에 주력하는 AI랑은 다르구나.’
장르적 특성 덕분인지 AI가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에 이경복은 오히려 흥미를 느꼈다.
‘확실히 내 편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거니까.’
정해진 길을 따르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길을 만들어가는 재미.
이 또한 게임의 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