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화 – 웰컴 투 퍼플오피스 (2)
지놈은 눈을 껌뻑였다.
마치 머릿속이 재부팅되는 것만 같았다.
‘큐다리라고?’
고액의 상금으로 어려운 퀘스트를 제시하기로 악명 높은 시청자였다. 그러나 그 유명세와 달리 그동안 정체가 공개된 적은 없었다.
‘대박이다…!’
생체 인증이니 분명 본인일 터였다.
말 그대로 ‘방송각’인 상황.
-찐 큐다리?
-와앀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큐다리가 실존인물이었다?!
-아닠ㅋㅋ 그럼 AI겠냐곸ㅋㅋ
-난 기부단체이름인 줄 ㅋㅋㅋ
-WA! 기부천사!
-성지에는 천사가 온다, 그게 상식이잖아?
-???: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 반박할 수가 없다.
-형! 뭐하냐구! 얼른 인터뷰 따라구웃!
채팅창에도 요청이 폭발했다. 지놈이 그에 정신을 차리고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아니, 진심 놀랐네.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아, 부담스러우시면 거절해주세요. 진짜 그냥 가셔도 됩니다. 야, 너희들도 재촉하지 마. 쉿해!”
귀중한 기회지만 억지로 붙잡고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지놈은 시청자들에게 엄포를 놓고 답을 기다렸다.
“하아, 이것 참…”
큐다리는 난처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고개가 떨어졌다.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명을 좀 씻도록 하죠.”
“오오오…!”
-캬 ㅋㅋㅋ 이거지!
-아 ㅋㅋ 이게 네임드지!
-큐다리! 큐다리! 큐다리!
-역시 프로 트수답게 방송을 잘 알고?
-찐 트수면 여기서 못 빼지 ㅋㅋ
그에 다들 흡족해하는 와중이었다.
“형,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상황을 모르는 직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제야 지놈은 아차 싶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 맞네. 나 일하는 중인데.”
예상 밖의 상황에 너무 정신이 팔렸다. 인터뷰를 길게 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직원으로 온 상황이 아닌가.
그가 자리를 비우면 그만큼 다른 직원들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거…? 설마 큐다리 님?”
하지만 그보다 먼저 직원이 상황을 눈치챘다. 눈이 휘둥그레 커진 그는 지놈과 큐다리를 번갈아 보고는 말했다.
“와, 대박! 인터뷰각이네요? 형, 형 스탭 룸 써요!”
“어? 아니, 근데 일은?”
“에이, 괜찮아요. 원래도 카운터랑 재고 관리, 포토존까지 하면 3명으로 충분해요.”
그 말대로였다.
애당초 이경복이 팬들이 과로하지 않게 넉넉히 인원을 배정해뒀었다. 재고 관리도 가끔 하는 와중이니 카운터에 2명이 설 수 있었다.
“그래? 그럼 좀 부탁한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퍼알바 인성 뭔데에에에!
-생긴 것만 잘 난 줄 알았더니 마음도 잘 났고?
-방송각 생각하는 거 보면 트수는 맞넼ㅋㅋㅋㅋ
-그 와중에 넙죽 받는 추놈 수듄ㅋㅋㅋㅋ
-ㄹㅇㅋㅋ 한 번은 거절해야 되는 거 아니냐구욧!
-즉.시.날.먹
시청자들이 그에 기뻐하면서도 놀리자 지놈이 원래의 텐션을 되찾았다.
“어허, 우리 기부천사님 기다리게 할 수 없으니까 그런 거지! 이 자식들이 큰 뜻을 몰라주네. 아, 이쪽으로 오시죠.”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지놈과 큐다리는 뒤편에 스탭룸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 모두 간단히 테이블에 마주 앉자 지놈이 말문을 열었다.
“자, 큐다리 님과 막간 인터뷰! 먼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전 큐요원 현 큐다리입니다. 여러 방송에서 퀘스트를 걸면서 노는 트수입니다.”
큐다리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하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지놈이 빠르게 박수를 치고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아, 큐다리 님하면 역시 퀘스트죠! 이게 항상 궁금했던 건데, 매번 어려운 퀘스트를 제안하시거든요? 역시 스트리머가 실패하는 걸 보고 놀리려는 게 목적이신가요?”
-옼ㅋㅋㅋㅋㅋ 바로 돌직구
-???: 머뭇거릴 틈이 없다!
-진짜 큐요원 퀘스트는 개빡셌짘ㅋㅋㅋ
-큐요원 때문에 벌칙 수행한 스트리머만 수백은 될 듯ㅋㅋㅋ
-킹치만 갓플을 상대해버렸고?
-큐이츠www 신을 영접하고 천사가 되어버린www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큐다리도 실소를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꼭 그런 건 아닙니다. 물론 놀리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인데, 저는 오히려 돕고 싶은 마음에 퀘스트를 걸었어요.”
“아, 원래도 기부천사의 마음이셨던 건가요?”
“상금보다는 방송각을 만드는 게 목표였습니다. 아마 방송 좀 봤다하시는 트수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이 퀘스트라는 게 성공이냐 실패냐보다는 그 과정이 더 중요하거든요?”
큐다리의 여유로운 대답에 시청자들이 동조했다.
-고건 맞지 ㅋㅋㅋㅋ
-퀘스트 있냐 없냐에 따라 방송텐션이 다르긴 해 ㅋㅋㅋ
-상금 백단위로 걸면 웬만한 스머들은 완전 달라짐ㅋㅋㅋㅋ
-그러고 보니까 큐다리가 하꼬들 많이 살렸네 ㅋㅋㅋ
-5252, 처음부터 기부천사였던 거냐구웃!
“아, 지금 많은 공감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렇죠? 이게 어느 쪽으로든 스트리머에게는 부각될 기회거든요. 그리고 퀘스트는 쉬운 것보다 어려운 쪽이 더 반응이 좋습니다.”
큐다리가 자신 있게 대답하자 지놈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아,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 퀘스트들이 너무 어려웠단 말이죠? 아시다시피 ‘안전자산’, 킹전자산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큐다리 님의 지출 비용이 액면가보다는 크지 않았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에요.”
“음, 그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실제로 나간 돈은 많지 않죠.”
큐다리는 그에 장단을 맞추듯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퍼플 님과 만나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아, 그렇죠. 바로 그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지금 여기 증권에 나온 것처럼 이미 투자금액이 천만이 넘었어요! 이게 만만치 않은 금액이고, 최근 다른 방송에 출현이 뜸하신데 혹시 심경의 변화가 있으신 걸까요?”
“심경의 변화가 아니라 계좌금액의 변화를 궁금해 하시는 것 같은데요?”
다시 돌아온 질문에 지놈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청자들이 그에 웃음을 터트렸다.
-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큐다리 여유 뭔데에에에!
-뭔가, 뭔가 프로의 냄새가 남!
-이것이 큰손의 위엄?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 이마리야
-생각보다 굉장히 젠틀한 것이고?
-진짜 키다리 아저씨냐고 ㅋㅋㅋ
큐다리는 이내 옅은 웃음을 흘리며 손을 흔들었다.
“농담입니다. 그래도 오해하시지 않도록 답변 드리자면, 없는 형편에 상금을 걸 거나 하지 않습니다. 나름 여유가 있어서 하는 일이에요. 그리고 자세히는 말 할 수 없지만… 스트리머들이 방송각 만드는 게 제게는 전혀 손해가 아닙니다.”
“오? 손해가 아니다…?”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아아, 이것은 재력가의 여유라는 것이다.
-통큰기부 할 수 있는 이유가 다 있다니깐!
-저번에는 갓플 서버까지 빌려줬잖슴?
-아닠ㅋㅋ 진짜 뭐하시는 분임ㅋㅋ
다들 호기심을 내비쳤지만 지놈은 더 캐묻지 않았다. 큐다리의 신상을 알아내는 게 인터뷰의 목적이 아니지 않나.
“퍼플오피스로 질문을 바꿔보죠. 사실 이렇게 직접 방문하실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제가 나름 방송 짬이 있다고 자부하는데, 이렇게 오프 행사에 나오신 건 처음 아닌가요?”
“네, 그렇죠. 사실 이 증권만 갖고 바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큐다리는 발급받은 종이 증권을 카메라에 보여주며 웃음을 흘렸다.
“어? 굿즈는 안 사시고?”
“굿즈야 샵팬덤에서 사면 되니까요. 그런데 이 종이 증권은 못 사잖아요? 고민을 정말 많이 했는데 꼭 갖고 싶어서 와버렸습니다.”
-ㄹㅇㅋㅋ 저 증권은 진짜 갖고 싶긴 해
-공짜인데 사실상 한정판 굿즈인 것이고?
-생각해보니 그르네?
-큐다리 정도의 재력가가 움직일 정도다 이마리야
-아 ㅋㅋ 아무리 돈 많아도 본인이 오셔야 된다구욬ㅋㅋㅋ
시청자들이 그에 동감하며 웃었다. 지놈도 마주 웃으며 질문을 고르다가 눈을 번뜩였다.
‘시간이 많지는 않으신가 보네.’
큐다리가 슬쩍슬쩍 시계에 눈을 돌리고 있지 않나. 지놈은 그를 위해 다시 질문을 던졌다.
“끝나고 바로 또 일정이 있으신 것 같네요?”
“으음, 그렇긴 합니다. 제가 또 처리해야만 넘어가는 업무들이 있어서요.”
-오… 뭔가, 뭔가 있어보임!
-킹직히 웬만한 직급으로는 큰손 못 하지 ㅋㅋㅋ
-ㄹㅇㅋㅋ 빅핸드 협회에서 자격증 발급 안 해줌
-뭔 협회야 그건 또 ㅋㅋㅋㅋ
-목소리도 보면 약간 나이대 있으신 듯?
-아니 ㅋㅋ 근데 진짜 키다리 아저씨 이미지라서 더 웃김ㅋㅋㅋ
지놈이 그에 가볍게 손뼉을 쳤다.
“아, 좋습니다. 갑작스럽게 요청드린 만큼 더 시간을 뺏는 건 실례죠. 나름 그래도 대주주 님 아니십니까!”
“이거 채팅창에 대주주쓰고 괄호 안에 타의라고 쓸 것 같은데요?”
-대주주(타의)
-헉!
-예지력 뭔데에에에!
-아닠ㅋㅋ 왜 진짜 맞추는뎈ㅋㅋ
-아아, 그것이 대주주니까(끄덕)
-천만원 넘게 썼으면 대주주 맞지 ㅋㅋㅋㅋ
시청자들은 물론 지놈도 놀라 웃음을 흘렸다.
“햐, 역시 프로십니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큐요원에서 큐다리가 된 요인이죠? 저희 사장님께서 또 방송을 보고 계셨거든요! 혹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아, 이거 좀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큐다리는 짧게 목을 가다듬고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제가 처음에 퀘스트로 방송각을 만든다고 했었잖아요? 하지만 적어도 퍼플 님은 예외입니다.”
“예외요?”
“네, 제가 퀘스트를 걸지 않았더라도 결국 주목받으실 실력이었잖아요?”
-고건 맞지 ㅋㅋㅋㅋ
-근본인 바크 때부터 쩔었쥬?
-그래도 큐다리가 방송 재미있게 해준 건 맞긴 해 ㅋㅋㅋㅋ
-진짴ㅋㅋ 초반에 방송 도와주시는 분이라고 한 거 레전듴ㅋㅋㅋ
-큐다리 전설의 시작!
시청자들이 공감하는 사이 그가 말을 이었다.
“사실 지금은 입장이 바뀐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제가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니, 퀘스트요? 어떤…?”
“큐요원으로서의 명예를 되찾는 거죠. 언젠가는 퍼플 님을 이길 수 있는 퀘스트를 찾아내고 말 겁니다.”
“아하…!”
지놈은 물론 시청자들이 그에 탄사를 흘렸다. 이내 지놈이 가볍게 손뼉을 치며 인터뷰의 마무리를 알렸다.
“아, 정말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응해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아, 하나만 더 이야기해도 될까요?”
“네? 아, 물론이죠.”
뭔가 이야기가 더 남았을까.
채팅창에 물음표가 올라오는 와중 큐다리가 짐짓 진지한 척 물었다.
“여기 로데리 서버 지원비가 포함 안 되는 게 너무 아쉽거든요? 이거 AS 안 해주나요?”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락 못 참아!
-아 ㅋㅋ 서버비 지원 비싸다곸ㅋㅋㅋ
-봉사활동 했는데 점수 안 주면 킹받거든요?
-기부는 기부고 증서는 증서다 이마리야
-이건 킹직히 갓플이 잘못했넼ㅋㅋㅋ
그에 웃는 채팅이 가득해졌다. 당연하게도 농담이었던 바 큐다리가 막 손을 내저으려던 참이었다.
[‘퍼펙트플레이’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시스템에 맹점이 있었네요^^ 지 사원이 대신 표기해드리고 날인 해주세요]
이경복이 후원 메시지로 답을 했다. 채팅이 아니라 음성이었기에 큐다리와 지놈도 이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고, 사장님 지시가 내려왔네요! 제가 대신 좀?”
“아, 예. 이거는 예상을 못 했는데.”
큐다리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증서를 내주었다. 지놈이 매직으로 글자를 쓰고 사인까지 말끔하게 끝냈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잌ㅋㅋㅋ ‘로데리 서버 지원 ㄱㅅ’ 뭔뎈ㅋㅋㅋㅋㅋ
-추놈 또 너야?
-직원에게 날인을 맡기는 사장이 이따!?
-바로 블랙기업 고증 나와버리고?
-블랙기업: 터벅 터벅(이제 숨길생각도 없음)
-추이츠www 진짜 바지사장이 되어버린www
큐다리가 자랑하듯 들어보인 종이증권에 시청자들이 즐거워했다.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시간 내주신 큐다리 님께 큰 박수 부탁드릴게요!”
지놈도 이에 웃으며 인사를 마쳤다.
* * *
점심시간.
여전히 퍼플오피스에는 팬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죄송해요! 너무 늦었죠!?”
“아니, 늦기는 뭐가 늦어?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지놈과 직원들은 교대로 점심식사를 먹고 오기로 했다. 돌아온 직원의 말에 지놈은 어리둥절했다.
-아닠ㅋㅋ 장난 아니고 진짜 빠른데?
-20분도 안 걸린 듯?
-이정도면 걍 주문하고 바로 버린 거 아님?
-뭔 스피드런이냐고ㅋㅋㅋㅋ
-아 ㅋㅋ 추 사원이 눈치 줘서 그런 거잖슴!
-아무튼 추놈이 잘못했음!
시청자들의 놀림에 지놈이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아니, 뭐 숨만 쉬면 내 탓이냐? 아무튼 뭐 돌아왔으니까 우리도 점심 먹으러 갑시다.”
“네? 지금요?”
“어… 조금 있다가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번에는 안 먹은 직원들의 대답이었다. 지놈이 그에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먹은 애들은 호로록해버리고, 먹으라는 애들은 안 먹겠다고 그러고?”
-아아, 이것이 바로 충성심이라는 것이다
-진성 팬들은 의욕이 남다르다 이마리야
-형? 형은 쉴 생각만 하니까 모르지?!
-추놈은 절대 알 수 없는 그 감정!
-아 ㅋㅋ 놀생각만 하지 말고 일할 생각 좀 하시라구욧!
지놈이 그에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지금 기록 다 남았는데 뭔 소리야. 나 진짜 열심히 했어. 그리고 인터뷰할 때 얘가 말했잖아! 원래 5명 뽑은 것도 사장님이 여유롭게 일하라고 한 거라니까!?”
그 목소리에 손님들이 웃으며 시선을 모았다. 이에 지놈은 과장스럽게 억울한 척하면서 말을 덧붙였다.
“근로기준법 상 8시간 이상 일하면 휴게시간 1시간을 보장해줘야 돼요! 우리 사장님이 또 어떤 분이신지 알잖아? 지금 안 가면 오히려 사장님 욕보이는 거라니까?”
-여기서 근로기준법을?
-블랙기업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한다, 그게 상식이잖아?
-휴게시간을 오히려 싫어하는 직원이 이따?!
-뭐지? 이것이 블랙 역전 세계?
-5252, 퍼플오피스는 퍼펙트 상식이 적용되는 장소라구웃!
결국 지놈과 다른 직원들은 점심식사를 위해 교대를 마쳤다.
“뭐 먹을까?”
“푸드코트 가서 대충 먹죠.”
“네, 저도 그게 나을 것 같아요.”
그마저도 식사를 빨리 끝내기 위해서인지 바로 옆에 있는 푸드코트로 가기로 했다.
이에 밖으로 나온 그들은 곧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햐… 진짜 장관이네.”
“와, 진짜 줄을 이렇게 서셨구나.”
“그러니까요. 지침 봤을 때는 이게 되나 싶었는데…”
그들이 감탄을 터트린 이유는 바로 팬들의 대기줄 때문이었다.
“이러면 진짜 통행에 불편이 없겠네.”
강남점은 지하 행사장과 푸드코트 외에도 영화관과 호텔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든 팬이 길게 줄을 서고 있으면 통행을 막게 되는 셈이었다.
이에 팬들은 남다른 방식으로 줄을 서고 있었다.
“무슨 행사 하나봐.”
“아, 구역별로 나눠서 이동하는 거야?”
“줄을 엄청 신기하게 서네.”
“뭐지? 퍼플 오피스?”
“큐튜브 주소가 있네? 큐튜버 팬인가 봐.”
일반 손님들이 소곤거렸다.
팬들의 줄은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구역을 나누어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앞 쪽 구역에 자리가 나면 뒤쪽 구역에 있던 사람이 이동하는 식이었다.
-큐튜버 ㅋㅋㅋㅋㅋㅋㅋㅋ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ㅋㅋ
-퍼청자들 단결력 ㅁㅊㄷㅁㅊㅇ
-진짜 보는 내가 다 뿌듯하넼ㅋㅋ
-ㄹㅇㅋㅋ 길막이 은근히 거슬리는데
-갓플 이미지 훼손 못 참는다고 ㅋㅋㅋ
지놈과 직원들도 그에 동조하면서 식사를 주문했다.
“맛있게 드십쇼.”
“잘 먹겠습니다.”
“사장님이 사주시는 점심 개꿀이고?”
지놈이 장난스럽게 멘트를 치며 식사를 시작했다. 물론 가만히 밥만 먹을 지놈이 아니었다.
“오전부터 너무 바빠서 얘기를 많이 못 했는데, 혹시 괜찮으면 간단히 소감 같은 거 말해줄 수 있을까?”
-?
-여기서 또 방송각을?
-오디오 좀 비우라고 ㅋㅋㅋㅋㅋ
-트최입 본성 나와버리기 ㅋㅋ
-추놈이 또 추놈 해버렸다!?
-블랙기업특) 식사 중에 일 얘기 함
-제발 고증 그만 지켜!
채팅창에는 장난스럽게 힐난이 올라왔지만 직원들은 오히려 반갑게 웃었다.
“아, 진짜 너무 재밌어요! 사장님한테 꼭 감사드리고 싶어요!”
“저도요. 정말 너무 새로운 경험이에요.”
그들은 서로 눈치껏 순서를 정하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 제가 나름 알바 많이 해봤거든요? 이게 아는 분들은 아실 거예요. 서비스 직 종사하다보면 인간 자체가 미워질 때가 있어요.”
“아, 진짜. 진상들 만나면…”
“그쵸? 그런데 퍼플 오피스는 완전 달라요. 기본적으로 퍼청자들이 손님이니까 에너지가 다르다니까요?”
“오, 이거 저도 얘기하려고 했는데!”
“이게 기본적으로 행복한 상태로 손님들이 들어오니까 저도 덩달아 자연스럽게 미소가 나오거든요. 아니, 왜 좋아하는지 너무 잘 아니까.”
“진짜, 진짜! 게다가 좀 버벅이거나 사소한 실수 있어도 완전 관대하고.”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소감에 지놈은 헛웃음을 흘렸다. 달리 그가 주도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아, 이번에 느낀 게 퍼 사장님이랑 일하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더라니까요.”
“진짜 그래서 퍼파고 님이나 곰PD님이나 다른 분들이 너무 부러워요. 아니, 매일 이렇게 일하신다는 거잖아.”
“와, 진짜 일이 즐겁다? 이거 진짜 상상도 못 했거든요? 아, 오늘 하루만 일한다는 게 너무 아쉽다…”
쉴 새 없이 나오는 소감에 지놈은 슬쩍 채팅을 확인했다.
-그걸 지켜보는 우리 심정은?
-있는 사람들이 더 하다더니!
-배부른 소리 멈춰!
-다들 밥을 먹고 있어서 그런 듯?
-물리적으로 배부른 소리였냐곸ㅋㅋㅋㅋ
-에베베~ 나는 내일 퍼플오피스 출근이지롱~
-극악 경쟁률 뚫은 보람이 있었고?
-ㄹㅇㅋㅋ 일하는 게 기다리는 건 첨임ㅋㅋㅋ
-아옼ㅋㅋ 합격자도 있었냐고
-너희들은 좀 나가!
시청자들 역시 부러워했고 일부 합격자들은 자랑스럽게 나섰다. 지놈이 그에 장난스럽게 말했다.
“어, 이러면 일을 더 시켜도 되겠는데? 나는 방송에 집중하면 되겠고.”
-?
-여기서 바로 추놈짓을?
-틈만 나면 추해지는 그는 대체…!?
-블랙기업 정직원답게 하청직원한테 일 떠맡겨버리기 ㅋㅋㅋ
-추놈/논란/658항목
-야앀ㅋㅋ 왜 이렇게 많앜ㅋㅋㅋㅋㅋㅋㅋ
그에 다들 웃음을 흘리자 지놈이 짙은 미소를 지었다.
“에헤이, 당연히 농담이지. 자, 그럼 얼른 먹고 다시 일하러 갑시다!”
퍼플오피스 근무.
쉬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다.
* * *
비슷한 시각, 일본 트위티.
[에-? 점심시간 벌써 끝? 오로라백화점 근무조건 가혹하잖아www]
[아니아니, 지놈 씨와 직원들 자발적으로 휴식을 끝낸 거라고! 한국어 모르는 거냐!?]
[에또, 트윗으로 하는 번역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잖아? 이래서야 공기만 읽을 수 밖에!]
[아아, 라이브 방송 역시 보기가 어렵잖아 이거! 대화는 전혀 모르겠다고! 그런데도 다들 즐거워하는 게 느껴져서 부러워!]
[헤에-! 퍼플오피스는 행복의 공간이라 느낌? 마스크로 가려도 전부 눈이 웃고 있다고? 정말-! 이러면 더 부러워지잖아!]
일본 팬들은 지놈의 방송으로 퍼플오피스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대화 내용을 전혀 이해 할 수 없으니 반쪽짜리 감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행히 아주 방법은 없는 건 아니었다.
[으아, 모처럼 왔는데 사진 없이 트윗 올리려니까 너무 허전해! 하지만 다들 사진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이거 절대 깰 수 없잖아www]
[에또, 한국 팬들은 전부 차분히 기다리는 분위기라서 놀랐습니다. 랄까, 민폐는 절대 끼치지 않겠다는 집념이 느껴질 정도입니다만?]
[퍼펙트 후드티 사두길 잘했다! 이거 그냥 왔다면 튈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뭐랄까, 물고기 떼의 일원이 된 기분? 이거 엄청 안정적이네www]
실제로 한국에 간 일본 팬들의 현장 소감이 주기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에 다른 팬들은 그에 답을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개중 가장 활발한 트윗이 있었다.
[에에에에에-! 진짜? 진짜야? 갑자기 빨라졌어!? 슌코 심장이 멈추지 않아!]
[아니아니, 슌코 무슨 소리야! 심장 멈추면 곤란하잖아! 하지만 위험해! 이거 진짜 위험하다고? 슌코 심장 이러다 터질 것 같아!]
[꺄아아아아아아아아! 퍼플 오피스다아아아아아아! 슌코 바로 눈앞에 있다고? 이거 진짜지? 초-위험해에에에에에에에에에!]
[에또, 슌코 한국말 외웠는데? 머리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아? 아뇽? 아뇽하세욘? 이렇게 읽는 거 맞아? 으아! 슌코 울 것 같아…!]
트위티 유저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일본의 네임드 팬, ‘슌코’의 트윗이었다.
쉴새 없이 올라오는 트윗에서 가장 현장감이 느껴져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또 다시 새롭게 트윗을 올렸다.
[슌코, 인생 최고의 순간이 왔어!]
진심은 언제나 담백한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