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451화 (450/491)

451화 – 웰컴 투 퍼플오피스 (3)

오후 업무 시간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아니, 형. 가격표 있잖아요.”

“에헤이, 여기 줄 선 거 안 보입니까? 이제 부터 싯가야 싯가.”

지놈은 여유롭게 팬들에게 장난을 쳤다. 그 사이 친해진 다른 직원들이 장단을 맞춰주었다.

“형, 자꾸 그러시면 다시 재고관리로 보낼 겁니다.”

“아! 오빠, 그만 놀고 일 좀 해요!”

“아, 넵.”

그 모습에 팬들은 물론 시청자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바로 쭈구리 뭔데 ㅋㅋㅋㅋㅋ

-???: 어이 지씨! 조용하고 일이나 해!

-정직원 보다 알바가 유능한 가게가 이따!?

-알바분들 추놈에게 적응 완료 ㅋㅋㅋㅋ

-현직 트수답게 티키타카 보소ㅋㅋㅋㅋ

-5252, 정직원이라고 안 잘릴 줄 아냐구웃!

-블랙기업이면 바로 단칼이지 ㅋㅋㅋ

그리 웃고 떠들며 즐겁게 업무가 이어지는 와중이었다. 점내에서 재고를 채우던 직원이 황급히 계산대로 다가왔다.

“혹시, 여기 일본어 할 줄 아는 분?”

“엉? 갑자기 웬 일본어?”

지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설명이 이어지기도 전에 그는 상황을 파악했다.

선반 너머, 입구 쪽에 선 여성이 눈에 들어온 덕이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그녀는 여타 팬들과 마찬가지로 퍼펙트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와, 악세사리가 엄청난데⋯?”

하지만 그 외는 무척이나 비범했다. 금발 머리에 목에는 초크, 손에는 반지에 네일아트도 화려했다.

얇은 팔찌도 여러 개를 겹쳐있었고 매고 있는 가방에는 인형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그 중 하나는 게말콘 피규어였다.

-아닠ㅋㅋ 이건 누가 봐도 일본인이잖슴!

-찐으로 일본 팬이 한국까지 온 거?

-월클 증명 ㅁㅊㄷㅁㅊㅇ

-뭔가 엄청 센 느낌적인 느낌;;;

-앞에 서면 3초 만에 눈깔기 자신있다

시청자들만큼이나 직원들도 눈이 흔들렸다.

“아, 나는 일본어 잘 모르는데.”

“그, 영어로 안내해드리면 되지 않을까요?”

“영어 할 줄 알아?”

“야야, 걱정하지 마! 외국인이라고 기죽을 거 없어요. 정직원인 내가 해결해줄게.”

지놈은 바로 다른 직원들을 진정시키고 계산대 앞으로 나갔다. 그에 시청자들이 놀랐다.

-이 형 일본어도 할 줄 알았나?

-5252, 아니메로 단련된 실력 보여주는 거냐구웃!

-알고 보니 숨덕이었고?

-뭐하냐구! ㄴㄷㅆ 불러오라구!

-야레야레, 이 내가 통역병으로 나서야 하는 것인가⋯!

-여기 그런 방 아닙니다^^

이내 구경에 정신이 쏠린 일본팬 앞에 선 지놈은 바로 입을 열었다.

“스미마센, 코이츠 팔로우 무빙 오네가이시마스!”

자신 있는 목소리와 달리 나온 말은 국적을 알 수 없는 혼용어였다.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앀ㅋㅋㅋ 도랐냐곸ㅋㅋㅋㅋ

-코이츠 등판 뭔뎈ㅋㅋㅋ

-추이츠www 앞사람을 코이츠라 불러버리는www

-팔로우 무빙은 대체 뭔뎈ㅋㅋ

-더 킹받는 게 이해는 된다는 거 ㅋㅋ

-앞사람 따라가라는 말이 어떻게 그렇게 되는데에에에에!

-형⋯! 너무⋯ 너무 부끄러워⋯! 제발 살려줘⋯!

-이것이⋯ 정직원의 패기?

-이건 패기가 아니라 패대기 아니냐?

시청자들이 그에 웃는 와중 흠칫 놀란 일본팬은 물끄러미 지놈을 바라보았다.

“에? 에에⋯? 지노므 상?!”

이윽고 커다래진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어? 뭐야? 아니, 갑자기 왜 우시지?!”

나름 철면피를 자랑하는 지놈이었지만 갑자기 눈물을 보이는 팬의 모습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 ㅅㅂ 추놈이 형!

-아 하필이면 형이 말 걸어서!

-ㅉㅉ 내 사고칠 줄 알았다!

-???: 히익?! 이렇게 추할 사람이 말을 걸다니 ㅠㅠㅠ

-진짜 추해서 눈물이 나온 거냐고

-엌ㅋㅋㅋ 다른 알바가 말 걸었으면 안 울었음ㅋㅋㅋ

-근데 진지 먹고 진짜 왜 우시는 거;;;

-이상한 말 해서 놀란 거 아님?

-이름 말한 거 보면 이 형 알아본 거 같은데?

시청자들도 장난스럽게 놀렸지만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지놈이 당황하자 팬은 눈물을 훔치며 바로 손을 내저었다.

“아, 죄손하므니다. 에또, 진짜, 진짜 퍼지데이 봐소 간동, 간돔? 해슨니다.”

발음이 어눌하지만 그녀는 차근차근 한국어로 소통하려 했다. 덕분에 상황 파악은 어렵지 않았다.

이에 지놈은 안심하고 멘트를 쳤다.

“아, 감동의 눈물! 휴우, 난 또 바로 은퇴각 잡아야되는 줄 알았네.”

-엌ㅋㅋㅋㅋ 퍼지데이 멤버 봐서 눈물 난 거?

-한국말도 그렇고 완전 찐팬이넼ㅋㅋㅋ

-킹직히 바다 건너왔는데 방송에서 보던 사람까지 만나면 눈물 날듯 ㅋㅋㅋ

-아 ㅋㅋ 까비 ㅋㅋㅋ 자연스럽게 은퇴할 기회였는데

-사실 저분이 카바쳐 준 거 아님?

-???: 추하지만, 이번 한 번만 봐드리는 겁니다?

-여기서 추놈이 퍼플코인 수혜를?

-형은 진짜 갓플 사는데 매일 절해야된다 이마리야

시청자들도 안심하고 지놈을 놀렸다. 이에 그는 평소대로 리액션을 해주려다가 또 일본팬이 놀랄까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아, 한국어 아주 잘하시네요! 정말 훌륭하십니다. 저희 사장님도 보고 매우 기뻐하실 거예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드는 법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도 상대가 칭찬을 알아들어야 의미가 있었다.

“에, 죄손해요. 데모 지노므 상, 빨라. 여쿠시 트체이프!”

그녀는 오히려 지놈에게 칭찬을 돌려주었다. 이에 시청자들이 웃자 지놈은 바디랭귀지도 섞어가며 설명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어, 유! 스피크 한국어 스고이! 보스, 퍼플 해피해피! 히 이즈 워칭 유!”

-아니 제발 좀ㅋㅋㅋㅋㅋㅋ

-아 죽겠다 진짜ㅋㅋㅋㅋ

-무슨 갓플이 빅브라더냐고ㅋㅋ

-???: 퍼펙트 보스 워칭 유

-이제 일본어는 스고이밖에 없잖슴ㅋㅋㅋ

-아 해피해피 ㅅㅂ 육성으로 터졌넼ㅋㅋㅋ

-퍼자감만 배워왔냐구웃!

-추자감 뭔데 ㅋㅋㅋㅋㅋ

다행히 그녀에게는 의미가 전달된 것일까. 또다시 커다래진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에? 에에? 혼또? 파프루 상, 미떼루? 카메라니?”

마스크를 썼음에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양손으로 제 입을 가리더니 결국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아 추놈이 또 울렸잖슴!

-5252, 트최이프! 난다요 고레!

-킷사마아아아아!

-트최입도 외국인 앞에서는 소용 없어버리쥬?

-웃음벨이 아니라 눈물벨이었고?

-아닠ㅋㅋ 너무 찐팬이시네 진짴ㅋㅋㅋ

-ㄹㅇㅋㅋ 눈은 웃고 계신데 눈물이 나오심ㅋㅋㅋ

시청자들이 그에 지놈을 놀리는 와중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노 혼또니, 이야이야, 전말 인니까? 파프루 씨가? 슌코, 무리이다. 심장, 터진니다⋯”

“어우, 다메요! 심호흡, 오케이? 후후 하하 유 노?”

“아, 와카리마스. 아라요. 후우⋯”

지놈은 그녀, 슌코를 진정시키며 업무도 잊지 않았다. 차근차근 그녀를 인도해 줄을 전지시키며 설명을 덧붙였다.

“음, 그러니까. 유 캔 세이 난데모 투 보스! 에브리원 데키마스! 오케이? 저스트 난데모 고고!”

-이것이 추놈어?

-듣다보니 적응이 되어버리고?

-이게 전부 해석되는 내가 싫다⋯

-이야 진짜 외국어는 자신감이구나

-아닠ㅋㅋㅋ 그게 맞긴 한뎈ㅋㅋ

-근데 왜 이렇게 킹받지? 나만 그래!?

-이정도는 되어야 트최입한다 이마리야

채팅창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반면 슌코는 바짝 긴장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에또, 저는 한국어 부조쿠해요. 마응 전부 전하래요. 그래서, 니혼고로 함니다.”

“아, 오케이오케이. 준비됐지 통? 물론이지 역!”

지놈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메라를 들어주었다.

“에또, 파프루 상. 와타시와 슌코토 모시마스. 이젠마데 아나타와 아이사레루니 아타이스루 히토다토 오못테이타. 시카시 이마와 칸가에가 카와리마시타. 파프루 상와 아이사레루 코토다케데 나쿠 아이오 카에시테쿠레루 히토데스. 코레카라모 이마노요오니 호우소오시테쿠다사이!”

한국어와는 달리 유창한 일본어와 함께 마스크 너머로도 보이는 행복한 미소가 카메라에 담겼다.

그에 지놈과 대부분의 시청자는 뜻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오⋯ 진짜 좋다

-뭐예요?! 우리도 알려줘요!

-번역) 퍼플 씨, 저는 슌코라고 해요

-ㅇㅇ 거기까지는 알았음

-번역) 이전까지는 당신이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오 ㅋㅋ 아나타 들어간 말 맞지?

-번역) 퍼플 씨는 사랑을 받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을 돌려주는 사람입니다

-캬 ㅋㅋㅋㅋ 제대로 보셨네

-아주 맞말인 거시고?

-번역) 이제부터도 지금처럼 방송 해주세요

-고마워요 통역병!

-슌코 씨는 해외동포가 맞다 땅땅!

-??? : 한국어를 쓰고 한국사람처럼 생각하니 한국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몇몇 시청자들의 도움으로 통역이 금방 이루어졌다. 이에 시청자들이 흡족해하는 와중이었다.

[‘퍼펙트플레이’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죄송하지만 그럴 수는 없죠.]

이경복의 후원 메시지로 답장이 오자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에에에? 이마 파프루 상? 난노 하나시 데스까?!”

“아, 그게⋯”

지놈은 순간 멈칫했다.

갑자기 이경복이 왜 이런 말을 했단 말인가. 그러나 아직 후원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퍼펙트플레이’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대로면 너무 아쉽잖아요? 앞으로 더 재미있게 즐기실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지 사원, 통역 부탁해요!]

재차 들어온 메시지, 게다가 이전보다 더 내용까지 길어지니 슌코는 불안해하며 눈치를 살폈다.

지놈이 웃음을 터트리고 나서야 그녀도 표정이 풀어졌다.

“아니, 이렇게 또 커브를?! 통역병들 뭐합니까!”

-아 ㅋㅋ 빨리 통역해달라고요!

-업무 프로세스 : 사장 > 직원 > 주주

-형? 이거 맞아? 뭔가 이상한데?

-흔한 블랙기업식 하청입니다만?

-블랙기업에서는 주주가 일을 한다, 그게 상식이잖아?

시청자들이 그에 즐겁게 웃었다. 지놈은 새로 올라온 번역문을 골라 읽어주었다.

“에? 난데⋯?”

첫 후원 통역에 그녀는 충격 받았다가 다음 후원 내용을 듣고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아리에나이요! 신지라레 나인다요! 파프루 상, 마지 카미다요! 슌코, 시아와세데 시누카모 시레나이요⋯!”

-번역) 게말? 믿겠냐구욧! 갓플 완전 신! 슌코 행복사할듯?

-아닠ㅋㅋㅋ 압축 통역 뭔뎈ㅋㅋ

-하지만 빨랐죠?

-이렇게 감동하니까 내가 다 기분이 조크등요?

-ㄹㅇㅋㅋ 옆에 다른 퍼청자들 흐믓하게 보는 거 보소

-아 ㅋㅋ 다 이해가 된다고욬ㅋㅋ

지놈은 신속히 다른 직원으로부터 티슈를 건네받아 넘겨주었다.

“간사한니다⋯”

“햐, 진짜 녹화 중이라 다행이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천하에 나쁜 놈이 될 뻔했어.”

지놈이 멘트를 치자 시청자들이 그에 다시 번역을 해주었다. 이를 전해들은 슌코는 울면서도 웃음을 흘렸다.

“어쨌든 웰컴 투 퍼플오피스!”

지놈은 밝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 * *

그 외 여러 해프닝을 해결한 지놈은 겨우 숨을 돌렸다.

“어우, 일본 손님들 상대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네.”

“그러니까요. 형, 일본어 엄청 잘하시네요.”

일본에서 온 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놈은 그 모두를 성공적으로 응대했다.

“햐, 진짜 스펙타클한 하루다. 이제 뭐 더 없겠지?”

-아닠ㅋㅋ 일할 때 그런 말 하면 안된다구웃!

-여기서 셀프 플래그를?

-???: 해치웠나?

-폭풍전야 소환!

-아 ㅋㅋ 이 형 또 저질러버렸네

시청자들이 바로 기회를 잡고 놀려대자 지놈은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이게 무슨 배틀물이야? 뭔 킹치웠나가 나와. 이제는 좀 잔잔하게 갈 때라니까?”

“형! 형!”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창고에서 재고 관리를 맡던 직원이 뛰쳐나왔다.

다급한 표정에 지놈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뭐야? 왜 그러는데?!”

“재고, 얼마 안 남았어요.”

그 한 마디에 지놈을 포함 옆에 있던 다른 직원들 모두 시계로 눈을 돌렸다.

“벌써?”

“아직 4시도 안 됐는데⋯?”

“8시 폐점 아니에요?”

백화점 폐점시간은 8시였고 여전히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재고가 동이 날 조짐이 보인 것이다.

-벌써 완판이라고?

-올 것이 와버렸고?

-아닠ㅋㅋㅋ 이렇게 빨리?

-아 ㅋㅋ 추놈이 킹치웠나해서 그런 거네!

-복선회수 속도 무엇?

-이게 전부 다 지 사원 탓이다!

-아니;;; 진심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뜩함?

-그래도 갓플 정도면 예상은 하지 않나?

채팅창은 장난 반 우려 반으로 반응이 나누어졌다. 지놈은 이에 진지한 표정으로 눈을 굴렸다.

“여기 계산대 좀 봐줘. 일단 재고 전부 정확히 파악해서 못 사게 되는 팬분들에게 안내 해주는 게 먼저다.”

“안내요?”

“물론 종이증권이랑 포토존도 의미가 있지만 굿즈를 현장 구매하고 싶은 분들도 많으실 거야. 그런 분들은 아마 다른 날에 또 찾아오실 수도 있잖아? 일단 안내를 먼저 해야 팬 분들이 결정을 내리지.”

“아, 네 알겠습니다!”

지놈과 직원은 신속히 움직였다. 시청자들은 그 대처에 만족을 표했다.

-캬 ㅋㅋㅋ 그치 이게 맞지!

-5252, 지놈 돌아온 거냐구웃!

-이 형이 진지할 때는 또 잘 한다니깐!

-태세전환 조아따 ㅋㅋㅋ

-찐 정직원 무브 뭔데에에에!

-빠른 판단 너무 조쿠요?

수량을 파악한 지놈과 직원은 곧바로 밖으로 나와 줄을 거스르며 대기인원을 셌다.

그렇게 마침내 구매 불가 기준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아, 진짜⋯?”

“오? 지놈 형이다!”

“혹시 인터뷰?”

방송을 봤는지 이미 아쉬워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상황을 모르는지 그의 등장을 반겼다.

그 앞에서 지놈은 웃음기를 거둔 채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한 말씀을 드리게 됐습니다. 현재 재고 부족으로 이 뒤쪽 고객분들께서는 굿즈 구매가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헐?”

“아⋯”

“벌써?”

그의 말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간신히 구매 가능 범위에 속한 팬들도 쉬이 좋아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앞의 손님 분들이 모든 품목을 하나씩 구매한다는 게 전제입니다. 품목 종류가 다양하고, 각 품목당 1인 최대 1개 구매로 제한되어 있으니 기다리시면 일부 품목은 구매가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하시는 품목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

“그럼 살 수도 있나?”

“아, 이거 진짜 애매하네⋯”

모든 품목의 재고가 동일하지는 않았다. 앞 사람이 어떤 품목을 구매하느냐에 따라 재고상황이 바뀔 테니 확신은 없었다.

-아 맞네 남을 수도 있구나

-이러면 결정이 더 힘든데 ㅠ

-희망고문 너무 빡세다

-안 그래도 오래 기다렸는데 막상 없으면 진짜 힘 빠질듯

-근데 완판은 다 예상은 했던 거라;;

-아니 ㅋㅋㅋ그게 자기 앞 일줄은 몰랐겠지

지놈은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통보하고 그냥 돌아가면 더 욕먹지.’

비록 방송각을 생각하며 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직원으로 나선 이상 책임은 있지 않나.

몇몇 팬들이 불만을 토로한다면 그에 거듭 사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쩐지 이럴 것 같더라.”

“아쉽지만 뭐 어쩔 수 없지.”

“품절되면 오히려 줄이 빨리 빠지는 거 아닌가?”

아쉬워하더라도 쓴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헛걸음이라며 줄에서 이탈하는 이들도 없었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저기, 지놈 형!”

그때 누군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그를 불렀다. 지놈은 각오하고 눈을 돌렸다.

“그래도 폐점 전까지는 종이 증권이랑 포토존 이용은 되는 거죠?”

“예? 아, 가능합니다.”

그의 확언에 다른 팬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 뭐 됐네.”

“내일 바로 오긴 그렇고, 한 나흘 정도 지나면 재고 있으려나?”

“일단 주말만 피하면 되지 않을까?”

그 모습에 지놈은 물론 시청자들도 감탄을 표했다.

-아 ㅋㅋ 이거지 ㅋㅋㅋ

-이미 완판 예상해서 멘탈 딴딴하쥬?

-굿즈 보다 퍼플오피스라는 공간이 중요하다 이마리야 ㅋㅋ

-ㄹㅇㅋㅋ 굿즈는 샵팬덤에서 주문하면 됨

-팝업스토어는 한정이벤트라니깐?!

-실질적으로 지금 돌아갔다가 다시 와도 또 줄 서야 됨

-진짜 ㅋㅋ 그러느니 증권 먼저 받고 인증샷 남기는 게 낫지

-그래도 받아들이는 건 대단하긴 해 ㅋㅋㅋ

지놈은 절로 미소를 짓다가 다시 표정을 관리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불편을 드린 점 거듭 사과드리겠습니다.”

“형, 괜찮아요!”

“진짜, 이건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니잖아요!”

“형! 적응 안 되니까 추놈모드 해줘요!”

그에 팬들이 오히려 걱정을 덜어주려는 듯 농담을 던졌다. 지놈은 그에 리액션을 할까 했지만 참았다.

그는 다시금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고는 가게로 돌아섰다. 그는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햐, 진심 너무 자랑스럽다. 이게 진짜 퍼펙트 팬아니냐?”

자랑스러운 건 스트리머만이 아니었다.

* * *

비슷한 시각, 샵팬덤 사옥.

“됐습니다! 여러분, 보셨죠? 이거 무조건 완판이에요!”

대표가 들뜬 목소리로 박수를 쳤다.

이번 굿즈 구매 역시 종이 증권에 반영을 해야 하는 바, 구매 기록이 모두 연동되고 있었다.

덕분에 샵팬덤 측은 판매량과 재고량을 팝업스토어 현장에서보다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다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연이은 야근이 보람이 있었어요!”

“와, 진짜 대박이다.”

“역시 퍼펙트 굿즈라니까.”

“햐, 이 정도면 구매 보다는 인증샷만 찍으러 가야겠네.”

대표의 격려에 직원들 모두 환호하며 각자 두런두런 소감을 나누었다.

대표는 이를 흡족하게 바라보다가 곧 턱을 매만졌다.

“하, 지금도 정말 좋은데 계속 욕심이 나네요. 피규어 쪽이야 고쿠키야가 전담하니 어쩔 수 없지만, 자수 셔츠 쪽은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예?”

“아니, 아무리 그래도 팬 분들이 빈손으로 돌아가면 마음이 헛헛하지 않겠습니까. 자수 셔츠 생산량, 늘릴 방법이 아예 없나 해서요.”

같이 손뼉을 치던 MD팀장은 순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직 남은 일정이 꽤 되니까요. 한번 수배해보겠습니다.”

“그래요, 좀 부탁하겠습니다. 아, 그런데 품질이 떨어지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차라리 못 파는 게 낫지, 팬분들 마다 다른 상품 받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거는 진짜 최악이에요.”

“예, 물론입니다.”

팀장이 그리 답하고 몇몇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윽고 본인은 물론 직원들도 빠르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대표는 그 모습에 고개를 주억거리다 느껴지는 진동에 얼른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퍼플 님!”

<아, 권 대표님 통화 괜찮으신가요?>

“물론이죠! 아, 완판 축하드립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전 지점 모두 완판 예정이거든요!”

대표는 이경복의 용건을 묻기 전에 먼저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이경복은 그에 웃음을 흘리며 감사를 전했다.

<샵팬덤에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아유, 아닙니다. 오히려 덕분에 저희가 아주 대박이 났죠.”

<네, 안 그래도 완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혹시⋯ 굿즈를 좀 더 공수해올 방법은 없을까요?>

“아, 역시. 저도 마침 그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바로 지금 지시를 내려뒀습니다.”

이경복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에 대표는 간략히 대응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빠른 대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게 될지 안 될지는 모를 일이네요?>

“예, 그렇죠. 이게 참, 저희 불찰입니다. 적어도 셔츠 쪽은 더 준비를 하는 게 맞았는데요.”

<아뇨아뇨, 그런 뜻은 아닙니다. 급하게 생산량 늘린다고 단가가 달라지면 그것대로 또 문제잖아요? 다 잘되자고 하는 일이니까 너무 심려치는 마세요.>

이경복의 만류에 대표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서 제가 따로 생각해본 게 있는데요. 굿즈도 좋지만 방문의 가치를 좀 더 높이면 어떨까 싶어서요.>

대표는 직감했다.

이경복이 전화를 건 이유는 이쪽이 본론이 분명했다. 하지만 달리 무슨 방법이 있단 말인가?

“아, 증권이랑 포토존 외에 다른 방법이?”

대표로서는 이미 충분하다 생각했고, 다른 수단도 없을 거라 판단했다. 하지만 이경복이 하는 말이니 절로 기대가 됐다.

<네. 그, 대표님께서 호의를 베풀어주신 거라 조심스럽긴 한데요. 포토존에 1:1 퍼무새 피규어 있잖습니까? 그거 혹시 팝업스토어가 끝나면 어떻게 처리하실 예정이셨나요?>

“아, 그건⋯”

대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제작할 때야 이경복에게 호감을 사는 것과 시청자들의 만족만 생각했다. 그 이후의 처분은 달리 고려하지 않았다.

<따로 생각해두신 게 없으면 그걸 방문해주신 팬 분들께 추첨을 통해 드리는 건 어떨까 싶어서요.>

“아⋯!”

대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경복의 말에 머리가 환히 밝아진 느낌이었다.

“아주, 아주 좋네요! 지금 계정 연동이 되니까 로그 따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이야, 한정판 추첨 제공! 이거는 뭐, 팬분들 입장에서는 로또나 다름없죠!”

로또를 사면 추첨일까지 즐거운 것처럼, 팝업스토어를 방문한 팬들은 운영이 끝날 때까지 기대에 부풀 것이다.

<하하, 좋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는 걸로 알아도 될까요?>

“아, 물론입니다!”

<알겠습니다. 음, 이것도 제가 방송에서 공지를 할게요. 현장 안내문이랑 홈페이지 안내문만 수정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예, 맡겨만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이경복이 통화를 마무리 짓자 대표는 바로 탄사를 흘렸다.

“햐⋯ 정말 대단하시다니까.”

처음에는 이경복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나 같은 장사꾼은 생각도 못 하겠지.’

자신은 굿즈를 파는 데 집중했지만 이경복은 달랐다. 그는 팬들에게 만족을 줄 생각부터 했다.

이경복은 사업가이자 스트리머였지만.

‘근본이라는 게 어디 안 간다니까.’

여전히 후자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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