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3화 - 웰컴 투 퍼플오피스 (5)
세렝게티TV, 어깨의 방송.
어깨는 인천공항에서 트리플과 얏타맨을 픽업해 신촌역까지 가이드를 해주었다.
“헤에, 고코가 신초느?”
“하이하이, 아소코니 아케에도가 앗타가 이마와 나쿠낫타.”
“어깨 님이 저기 아케이드가 있었다고 설명해주시네요.”
얏타맨이 놀라자 어깨가 유창한 일본어로 설명했다. 오히려 트리플이 시청자들을 위해 한국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형이 하는 일본어 오랜만에 들어보네 ㅋㅋㅋ
-트리플 님 왜 자연스럽게 통역하시는 건데 ㅋㅋㅋㅋㅋ
-뭔가, 뭔가 반대 아님?
-이 형이랑 얏타맨은 안 친해서 일부러 그러는 거자너 ㅋㅋㅋ
-마! 아이스브레이끼 모르나!
시청자들이 그에 웃음을 흘렸다. 어깨는 앞서가며 한 박자 늦게 채팅을 확인했다.
“아, 이거 야방은 너무 오랜만이라서 잘 될까 모르겠네. 어색해도 너희들이 이해 좀 해라.”
-마지막 야방이 언제였지?
-캡슐 넘어와서는 아예 안 했던 것 같은데 ㅋㅋㅋㅋ
-그럼 몇 년 되지 않았나?
-아 그때가 이 형 찐 전성기였는데
-ㄹㅇㅋㅋ 아케이드 제패하고 대회까지 다 씹어먹던 시절
-그때는 이 형이 국위선양의 아이콘이었다니깐!
-진짜 ㅋㅋㅋ 형 왔다하면 아케이드 앞에 완전 사람들 바글바글 했는데
오랜 시청자들이 추억을 꺼냈다. 그에 어깨가 민망해하는 사이 트리플이 통역을 해주었다.
“에에? 마지데스까? 이야이야, 어깨 상와 스고이 히토난테 와카루케도.”
“아이, 민망하게. 야, 너희들은 왜 옛날이야기를 꺼내 가지고! 흠흠, 혼토데스.”
어깨가 장난스럽게 대답하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ㅋㅋ 우리 탓하고 인정하는 건 뭔데
-은근히 좋아하는 거 보소 ㅋㅋㅋ
-킹치만 지금은 그냥 덩치 큰 아저씨고?
-ㄹㅇㅋㅋ 시비 털릴까봐 다 피해 다닐 듯
-지금 피지컬 더 좋자넠ㅋㅋㅋㅋ
-이 형은 에이징 커브란 게 없나?
어깨는 실소를 흘리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야야, 옛날얘기니까 하는 거 아니냐. 내가 왜 신촌점으로 왔는지 알아? 여기 두 분이 빨리 퍼플오피스 가고 싶어 한 것도 있지만 신촌이 또 젊은 친구들 노는 데잖냐. 여기서는 날 알아볼 사람이 없어요. 그냥 잔잔하게 방송 하고 가는 거지.”
“에에에! 아레다! 티어원! 티어원 데스!”
그리 소통하는 도중 얏타맨이 티어원의 푸드트럭을 가리키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이야, 여기도 사람이 많네.”
“얼른 받고 저희도 대기하죠.”
푸드트럭은 세 사람이 지하철에서 바로 줄을 서지 않은 이유였다. 그들은 바로 푸드트럭 대기줄에 섰다.
“그냥 토스트랑 커피인 거 아는데 뭔가 기대가 되네.”
“코레 젯타이니 ‘얏타’ 데키마스요.”
“무조건 얏타가 가능할 거라네요.”
세 사람이 조용히 기대심을 내비치는 와중이었다. 앞에 서 있던 팬이 힐끔힐끔 보더니 곧 입을 열었다.
“혹시 어깨님? 어깨님 맞으시죠?”
“에?”
“네?”
당사자는 물론 채팅창에도 물음표가 떠올랐다. 하지만 팬은 확신했는지 제 입을 막으며 눈을 크게 떴다.
“와, 대박! 형님! 진짜 팬이에요! 퍼플오피스 오신 거예요? 아, 먼저! 먼저 받으세요.”
“팬이라고요? 아니, 그대로 계세요!”
팬이 순서를 양보하려 하자 어깨가 당황해 손을 내저었다.
“어우, 놀래라. 제 시청자세요?”
“네? 아뇨. 저 세렝게티는 안 봐서…”
“아니, 그럼 어떻게 절 알아보셨어요?”
“네? 왜 몰라요?”
두 사람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이내 팬 쪽에서 먼저 설명했다.
“퍼청자중에 어깨 님 모르는 사람 찾기가 더 힘들 걸요? 대회 결승전이 얼마나 미쳤는데요! 와, 진짜 지금 생각해도 소름. 보이시죠?”
-퍼플코인이 또?!
-하긴 세트로붙자 결승이 개쩔긴 했지 ㅋㅋㅋㅋ
-ㄹㅇㅋㅋ 나도 대회보고 유입됨
-생각해보니 나도 대학생인데?
-갑자기 소름 인증 뭔뎈ㅋㅋㅋ
-이것이 퍼청자의 텐션?
시청자들이 그에 공감하자 어깨는 당황하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그에 팬이 용기를 냈다.
“저, 혹시 괜찮으시면 사진 좀…”
“아, 예예. 물론이죠!”
“저기, 저도 찍을 수 있을까요?”
“실례가 안 되면 저도…!”
어깨의 대답에 상황을 주시하던 다른 팬들이 요청했다.
-무수한 악수 요청이 실제로?
-캬 ㅋㅋㅋ 우리 형 안 죽었네
-우리 동년배들 다 어깨 님 좋아합니다^^
-킹리둥절하면서 좋아하는 거 보소 ㅋㅋㅋ
사진 요청은 토스트와 커피를 받고 팝업스토어 대기 줄에서도 이어졌다. 이에 연달아 사진을 찍은 어깨는 얼떨떨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내가 그동안 메탈펀치 살리려고 수년간 노력을 했는데 이런 적이 없어요. 햐, 근데 이게 퍼플 님이랑 엮이니까 바로 바뀌어버리네.”
그 말에 얏타맨과 트리플도 공감을 표했다.
“아, 소레와 니혼데모 오나지데스요.”
“진짜로요. 일본도 비슷합니다. 제가 예전에 트위티에 후드티 인증했었거든요? 그때 팔로워 숫자가 엄청 늘어났어요. 사실상 대회 입상한 것보다 더 효과가 좋습니다.”
세 사람이 공감대를 형성하자 시청자들이 장난스럽게 채팅을 쏟아냈다.
-갓플 덕분에 전성기 체험 해버리고?
-형? 이참에 야방 좀 늘리자!
-ㄹㅇㅋㅋ 특히 저녁에 나가면 좋을 듯?
-오메가 승급, 지금이니!?
-야앀ㅋㅋ 그걸 말하면 안 되지
-학생^^ 눈치챙겨
“야야, 그렇게 승급해봤자 어차피 나한테 매칭 잡혀서 강등당해. 자식들이, 실력으로 올라올 생각을 해야지!”
어깨가 그에 가볍게 받아치는 와중이었다. 일순간 들어온 후원에 순간 모두가 멈칫했다.
[‘퍼펙트플레이’님이 별방울 ‘100’개 선물!]
[되나? 안녕하세요?]
후원자의 이름에 다들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
-찐임?
-사칭 아녀?
-만원 주고 사칭을?
-어뜨케 된 겨 어뜨케 된 겨!?
“아니, 잠깐. 퍼플 님이라고…? 이거 계정 보면 알지.”
어깨가 빠르게 후원계정을 확인했다. 트리플과 얏타맨도 이에 집중했다.
“오늘 만든 계정이신데…?”
-헐? 그럼 찐이라는 거?
-사칭용이라 오늘 만들 걸 수도?
-근데 갓플이 세렝게티를 보나?
-아니 ㅋㅋ 파트너라도 보는 건 문제 없자넠ㅋㅋㅋ
시청자들은 더욱 들떴다. 어깨는 일단 빠르게 멘트를 이어나갔다.
“아니, 일단! 일단 후원하지 마시고요! 우리가 돈 쓰러 온 건데 퍼플 님이 돈 쓰시면 안 되지!”
그의 말 때문인지 후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대신 전화가 걸려 왔다.
“미친, 진짜 보고 있으셨네.”
어깨는 놀라며 바로 통화를 받았다.
<어깨 님, 안녕하세요!>
“아, 네네! 퍼플 님 오랜만입니다.”
그가 반갑게 통화를 받자 트리플과 얏타맨이 한마음처럼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혼토다! 혼토니 덴와 키쟜타요…!”
“얏타…! 얏타제…!”
두 사람은 기뻐하면서도 통화에 방해가 될까 낮게 탄사를 내질렀다. 어깨는 그에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저, 괜찮으시면 스피커 폰으로 해도 될까요?”
<아, 물론이죠. 트리플 님과 얏타맨 님,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그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채팅창이 빠르게 치솟았다.
-무친ㅋㅋㅋ 퍼사장님 직접 등판!
-와 갓플이랑 직접 통화하는 사이 ㅎㄷㄷ
-갓플이 먼저 전화하는 클라스;;
-이게 바로 월클의 교류?
-둘 다 월클이긴 해 ㅋㅋㅋㅋ
-캬 ㅋㅋㅋ 우리 형 안 죽었네!
-세렝게티 최고 아웃풋 수듄ㅋㅋㅋㅋ
어깨는 간단히 안부를 묻고 가장 궁금한 점을 물었다.
“저, 근데 퍼플 님. 세렝게티 방송을 또 어떻게 보시게 된 거예요?”
<아, 저희 팬카페에 제보가 올라와서요.>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다.
이경복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깨 님만으로도 감사한데 트리플 님이랑 얏타맨 님까지 함께 계시다니까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서 들어왔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두 사람 모두 입이 벌어졌다. 내용까지 이해하니 그들은 오히려 걱정 어린 얼굴로 답했다.
“시맛타나. 파프루 상니 메와쿠쟈 나이노까, 코레.”
“얏타맨이 민폐가 아닌가 싶어 죄송하네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정도 친분은 아니라고 생각을 해서요.”
<아뇨아뇨, 전혀 민폐가 아닙니다. 그래도 저희 재미있게 방송했잖아요. 아, 혹시 저만 그런 건…?>
이경복의 대답에 두 사람이 사색이 되었다. 이에 그는 바로 말을 덧붙였다.
<당연히 농담입니다. 같이 즐거운 추억 남겼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치 ㅋㅋ 재밌음 됐지 ㅋㅋ
-역시 재미에 미친 자!
-아아, 소레데 쥬분다로?
-얏트 콤비 실시간 표정변화 보솤ㅋㅋㅋ
-아주 그냥 사람을 들었다 놨다하는구먼!
-이러니까 못 빠져 나온다구욧!
시청자들은 물론 세 사람 모두 그 말에 짙은 미소를 보였다.
<아, 근데 방송 보면서 하나 바로 잡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그 사이 이경복이 아차 싶다는 듯 말하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로 잡다니?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걸까?
<같이 방송하면서 시청자분들이 많이 알아봐주는 건 당연한 일이긴 한데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거든요.>
이경복과 같이 방송하기 전후로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세 분 모두 시청자 분들이 좋아하실 만한 매력이 있으니까 다가오는 거라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그런 분들과 인연을 맺었다는 게 기쁠 따름이고요.>
-맞말추 ㅋㅋㅋㅋ
-아 ㅋㅋ 아무나 갓플이랑 합방한다고 뜨는 게 아니라고
-갓플에게 빨대를 꼽는다? 뱁새 빨대면 바로 부러지거든요?
-뱁새 빨대는 뭔데 ㅅㅂㅋㅋㅋㅋ
-퍼플 코인을 타고 싶어도 가격이 만만치 않다 이마리야
어깨의 팬인 시청자들은 그의 말에 감격하며 적극 동조했다.
<제가 너무 오래 붙들었나 싶기도 하네요. 아무튼 퍼플오피스 방문 정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경험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경복은 이내 통화를 마무리했다. 세 사람 모두 그에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아, 네네! 연락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시타!”
통화를 끝내자마자 모두 하나 같이 탄사를 흘렸다.
“햐, 역시 완벽하시다니까.”
“정말 그렇습니다. 설마 퍼플 님이랑 통화연결까지 할 수 있을 줄이야.”
“칸코쿠니 키타 코토 코오카이시나인데스. 데유카, 초 스고이쟌? 얏타 햐쯔카이 칸다요!”
특히 얏타맨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쏟아내자 어깨가 웃으며 통역해주었다.
“한국 온 게 후회 없답니다. 완전 쩔어서 얏타 100번은 하겠다네요.”
그에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트리플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근처에 줄을 서 있던 팬들이 웃고 있었다.
그제야 세 사람은 주변 상황을 살필 수 있었다.
-아닠ㅋㅋㅋㅋ 퍼청자들 다 듣고있었던 거냐곸ㅋㅋ
-줄 간격 벌어진 거 보소 ㅋㅋㅋ
-아ㅋㅋ 뒤에서 갓플이랑 통화중인데 이걸 어케 두고 가냐고!
어깨 일행을 중심으로 일대의 팬들이 그대로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시청자들은 그에 웃음을 터트렸다.
-5252, 퍼플홀이 또 발생해버린 거냐구웃!
-시간과 공간을 전부 지배해버린다, 그게 퍼플홀이잖아?
마치 그 일대만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나.
* * *
이른 오후, 서영선의 사무실.
그녀는 비서로부터 첫날 퍼플오피스의 성과를 보고 받았다.
“…4개 지점 매출이 총합 2억을 돌파했습니다. 이 추세가 유지된다면 운영 종료까지 최소 10억 원 이상의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흐음, 팔 게 많다더니 진짜였네요.”
서영선은 은은한 미소와 함께 이경복과의 대담을 떠올렸다.
‘5천만 원을 바로 거절하다니 어느 정도 자신 있나 궁금했는데…’
광고영상 제작의 대가로 제시했던 2가지 보상안. 이경복은 5천만원 대신 10% 수수료 할인을 택했었다.
‘최소 1억을 아낀 셈이네.’
서영선은 이 추세가 이어지리라 의심치 않았다. 아니, 그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도 있으리라 짐작했다.
오로라 입장에서는 그만큼의 수익을 놓친 셈이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비단 이경복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손해가 아니었다.
“게다가 어제 방송에서 또 추첨 공지까지 했고?”
“그렇습니다. 한정판 상품을 방문자 대상으로 추첨해 제공하는 내용입니다. 샵팬덤 홈페이지에도 공지되었습니다.”
“음, 좋아. 아주 좋네요. 이러면 주저하던 팬들도 팝업스토어에 올 테니까요.”
팝업스토어 방문객의 숫자가 더 늘어날 전망이었다. 물론 굿즈 수량은 한정되어 있으니 매출이 더 늘어나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오로라로서는 이득이었다.
‘우리 백화점에는 퍼플오피스만 있는 게 아니니까.’
비용이 클수록 보상을 받고 싶은 게 사람 심리였다.
‘시간은 이미 투자했고, 굿즈를 사려고 준비한 돈은 수중에 남아 있다.’
굿즈를 산 이들은 보상을 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팬들은 다른 쪽에서 보상을 누리고 싶어 할 것이다.
“행사장 옆 푸드코트 매출이 약 5배가량 증가했다. 음, 괜찮네요.”
퍼플오피스의 매출이 이번 콜라보의 유일한 수익원이 아니었다. 유동인구의 증가는 백화점의 수익과 직결된다.
이경복과 샵팬덤 그리고 오로라, 여기에 방문한 팬들까지 모두 윈윈이었다.
‘역시 틀리지 않았어.’
이경복과의 협력으로 인지도와 이미지, 그리고 수익까지 얻었다. 서영선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표정이 다시 돌아오길 기다린 이후 비서는 보고를 이어갔다.
“그리고 별개의 보고입니다만, 강남점에서 팝업스토어와 관련해 DBC로부터 취재 협조를 부탁받았다고 합니다.”
“DBC? 거기서 무슨 일로?”
서영선의 눈이 가늘어졌다.
DBC는 공중파 방송사였다. 매스컴의 접근은 어느 하나도 사소하게 여길 수 없었다.
“오픈런 문화와 관련된 영상자료를 요청 받았습니다. 내부적으로 알아보니 오픈런의 올바른 예시로 이번 팝업스토어를 보도하려는 것 같습니다.”
“음, 올바른 예시… 확실히 그렇긴 하죠.”
다행히 나쁜 소식은 아니었다.
서영선은 그럼에도 좀 더 고민했다. 이내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은 걸 숨길 이유는 없죠. 자료 전달하고 팀 퍼펙트 쪽에도 알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비서가 응답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그녀는 여전히 홀로그램으로 떠올라 있는 퍼플오피스를 바라봤다.
‘군계일학인 줄 알았더니.’
수많은 닭 사이에 고고히 선 학.
서영선의 눈에 든 건 이경복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새삼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이제 보니까 닭이 아니라 새끼 학들이었네.’
닭은 학을 따르지 않는다.
* * *
그날 저녁, 지놈의 방송.
평소보다 이른 시간 방송이 시작됐다. 이경복이 전날 예고한 대로 합방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방장! 빨리 불 켜!
-아 ㅋㅋㅋ 이미 15초 지났다고요
-추놈, 또 너야?
-지놈이 지각하는 놈이라는 뜻이었고?
-지각한 만큼 방송 연장하는 거맞지?
-5252, 하루 일했다고 체력이 다 떨어진 거냐구웃!
-늙병추 ㅠㅠㅠㅠ
-역시 나이는 못 속인다니깐!
방송이 시작됐음에도 화면은 여전히 검었다. 이에 대기하던 시청자들이 장난스럽게 지놈을 놀리며 재촉했다.
“에헤이, 다 됐어! 고새를 또 못 참고!”
지놈이 목소리로 화답하자 시청자들이 더 아우성쳤다.
“어쭈? 이러면 그냥 방송 안 하는 수가 있어? 감당 가능해? 오늘 방송 안 보면 무조건 후회할 텐데?”
-배짱방송 무엇?
-아옼ㅋㅋㅋ 갓플만 아니었어돜ㅋㅋㅋ
-즉.시.추.놈
-이게 그 호가호위인가 그거냐?
-추가퍼위 뭔데에에에에!
-연봉삭감 딱 대!
-사장을 인질로 잡고 주주를 협박하는 직원이 이따!?
-퍼손실은 인질이 세긴 해 ㅋㅋㅋㅋ
지놈이 과장스럽게 으름을 놓자 시청자들이 웃음을 흘렸다. 그 사이 화면이 밝아졌다.
“오, 됐다. 잘 나오네.”
지놈이 카메라를 보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채팅창에는 물음표가 연신 올라왔다.
-????????
-뭐임? 테마 바꿈?
-이거 색감이 스튜디오가 아닌디?
-어뜨케 된 겨 어뜨케 된겨?
-저거 이번 2차 굿즈 아님?
-스캔한 거?
화면에 비친 장소가 평소 방송에 나오던 스튜디오가 아니었다. 지놈은 카메라를 마주보며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고 그 위에는 새로 나온 굿즈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트하! 반갑습니다. 다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사이 화면 밖에서 이경복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자, 오늘은 예고한 대로 지 사원의 퍼플 오피스 근무 후기를 들어볼 거고요. 더불어서 저희 굿즈 실물 리뷰도 같이 해보려 합니다.”
그의 설명에 시청자들은 깨달았다.
-무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엥? 가상스튜디오가 아니네!?
-WA! 오프라인 방송!
-(게말콘)(게말콘)(게말콘)
-어쩐지 추놈이 더 못생겼더라니!
-아닠ㅋㅋㅋ 제일 중요한 걸 왜 공지 안 해주냐구욧!
-뭔ㅋㅋㅋ 매일이 서프라이즈냐곸ㅋㅋㅋㅋ
-???: 심각할 정도의 서프라이즈 중독증입니다.
놀랍게도 이번 합방은 오프라인에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