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8화 – 크루 미팅 (1)
퍼플오피스에 직접 가겠다.
이경복의 선언에 팀원들 모두가 눈을 껌뻑였다.
“사장님이요?”
“어… 그러니까 운영시간 중에 말씀이시죠?”
“저기, 근데 그러면 얼굴이 노출될 수도…”
“갑자기?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갈 이유가 있다는 건가?”
놀라움과 우려, 그리고 의문이 동시에 쏟아졌다.
이경복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그런 반응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안 가는 게 맞습니다. 뭐, 내부 구경이야 광고 찍으면서 실컷 했고 시청자 반응도 방송 보면서 다 확인했으니까요.”
그는 순순히 팀원들이 의아해하는 이유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렇게 잘 알고 있기에 가고 싶은 이유 또한 뚜렷했다.
“그러니까 이건 순전히 제 욕심입니다.”
“욕심이라고?”
“그래. 지놈 형이랑 방송하면서 좀 느낀 게 있거든.”
이경복은 지놈과 오프라인 방송을 끝내고 나누었던 이야기를 간략히 설명했다.
“방송에서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이 다르다는 건 어느 스트리머나 그렇겠죠.”
“으음, 그렇지. 사람이 어떻게 24시간 방송 텐션을 유지해? 그건 연예인도 못 해.”
“그런데 이건 방문이랑 상관없지 않나?”
팀원들은 이해했지만 의문이 풀린 건 아니었다. 이경복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스트리머만 해당되는 게 아니더라고.”
시청자들은 방송에서 스트리머를 본다. 반대로, 스트리머는 방송에서 시청자들을 본다.
“시청자들도 방송에서랑 현실 모습이 다르잖아.”
“그거야… 그렇죠?”
“어우, 심하면 더 심했죠.”
“음, 예전에 얏타맨 방송에서 분탕을 치던 사람들도 있었지.”
“아, 맞아. 그거 기억나네.”
시청자들 또한 사람이었고 방송과 현실의 모습에 괴리가 있다. 물론 이경복은 나쁜 쪽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아니, 그렇게 앞뒤 다른지 확인하려는 건 아니고. 사실, 방송하면서 즐거운 게 시청자들 반응도 한몫하거든.”
처음에는 채팅으로만 그들의 감정을 느꼈고, 메탈펀치 대회에서는 아바타를 통해 더 다양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가상현실’이라는 필터가 사이에 끼어 있었다.
“이게 방송으로만 보기는 좀 아쉽더라고. 직접 현장에서 얼마나 즐거워하시는지 느끼고 싶어졌어.”
하지만 이번 팝업스토어는 다르다. 현실에서 웃고 즐거워하며 때로는 기뻐 눈물까지 흘리는 팬들이 있었다.
그 감정을 직접 느낄 기회였다.
“게다가, 이번이 ‘처음’이잖아.”
처음은 언제나 특별하다.
다음에 팝업스토어를 열게 될 기회가 또 오겠지만, 그때의 느낌은 처음과 다를 터였다.
그 설명에 팀원들 모두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그의 ‘욕심’을 이해했을 뿐 여전히 우려는 남아 있었다.
“내가 이 일 하면서 보니까, 후회에도 2가지 종류가 있거든?”
그중 최병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평소의 장난기 어린 얼굴이 아닌 진지한 표정이었다.
“해서 후회하는 거랑,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거. 근데 보통 스트리머들은 뭔가 저질렀다가 후회를 해요.”
그 말에 다른 팀원들이 눈치를 살폈다.
‘아무래도 팀장님이 리스크를 제일 알 아시니까.’
‘얘는 퍼플 님이 어떤 일을 겪으셨는지 옆에서 다 봤으니…’
‘곰PD 님은 역시 반대하시나…?’
다들 이경복의 과거사에 대해 워크샵에서 들었던 터였다. 걱정을 한다면 최병훈이 가장 크게 할 게 분명했다.
“근데 그건 그 양반들이 ‘잘못된 일’을 한 거라서 그런 거고.”
그러나 그는 미소를 짓고는 말을 덧붙였다.
“이거는 딱히 잘못된 것도 아니니까 난 괜찮다고 본다.”
“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무슨 불법적인 일도 아니고요.”
“사장님이 자기 가게 가는 건 오히려 당연한 거죠.”
“어, 저는 팬 분들이 알게 되시면 오히려 좋아할 것 같아서…”
이에 팀원들도 안심하고 자기 의견을 밝혔다. 한편 마지막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박주호는 달랐다.
“결국 결정을 내리는 건 너다. 달리 말하면 책임을 지는 것도 너지. 그걸 잊어서는 안 돼.”
“그야 물론이지.”
박주호의 경고에 이경복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즉답했다.
“매니저 입장으로서는 그 결정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는 않는다.”
이에 박주호도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네가 내린 결정을 최대한 서포트하는 게 내 역할이다. 네가 가겠다면 나는 안전한 방법을 찾을 거고.”
“아, 그쵸. 이게 맞죠.”
“퍼플 님이 즐거운 게 가장 중요한 거라.”
“분명 괜찮을 거예요!”
팀원들의 동조에 박주호와 최병훈은 슬쩍 눈빛을 나누었다. 이내 두 사람은 이경복을 돌아보며 물었다.
“결국 안 들키면 되는 거 아니냐?”
“너도 그럴 자신이 있으니까 한 말이겠지.”
이경복은 자신 있게 웃었다.
두 친구는 팀원들보다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 질문의 의미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럼.”
이미 신기로 가늠을 끝내 두었다. 불길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문제없을 거야.”
이경복은 무사히 즐기고 올 자신이 있었다.
* * *
늦은 밤, 데시벨의 방송.
“으아아! 제발 좀 죽어어어엇!”
그녀는 메타게이머 특집 기사를 위해 플레이 하던 탄막 게임, ‘Exit The Bulletower’를 다시 플레이 중이었다.
-오? 잡나? 드디어 잡나?
-마참내!?
-클리어각 떴냐?!
-제발 숨 참아!
최종보스를 앞에 두고 분투를 벌인 결과 그녀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와! 와! 끝이죠!? 클리어죠!? 다음 페이즈 없는 거 맞죠?!”
사라진 최종보스의 뒤로 문이 열렸다. 데시벨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고 손까지 미세하게 떨렸다.
-데시벨 우승! 데시벨 우승!
-ㄴㄴ 저기 들어가면 히든보스 나옴
-ㄹㅇㅋㅋ 지금 긴장 풀면 안 됨
-찐막! 찐찐막!
올라오는 채팅에 그녀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아, 진짜아! 히든 보스는 또 뭐야…!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그녀는 터벅터벅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와 함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Congratulation!]
[You Just Exited Bulletower!]
클리어 메시지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데또속 바로 나오고?
-즉.시.과.학.
-응~ 히든보스 없어~ 클리어야~
-시벨롬들 축하하다가 바로 한마음으로 낚아버리기 ㅋㅋㅋ
올라오는 채팅에 데시벨의 얼굴이 급속도로 환해졌다.
“뭐야!? 진짜예요?! 나 깬 거 맞아?! 이거 이중 트랩 아니지!?”
시청자들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바로 크레딧이 올라왔다. 그제야 데시벨은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있었다.
“와! 대박! 진짜 대박! 초대박! 나 깼어!? 정말 깼어어어어!”
그녀는 들고 있던 총의 방아쇠를 당기며 방방 뛰었다. 그 모습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데눈나 드디어 성불하네ㅋㅋㅋ
-???: 기자님? 기사 수정 부탁드려요!
-특집기사 이미 다 나갔는데 뭔 수정이얔ㅋㅋㅋ
-근데 진짜 사격 잘하게 되긴 했네 ㅋㅋㅋ
-아 ㅋㅋ 누구 코칭을 받았는데욧!
-이게 전부 다 퍼사부 덕이라 이마리야
데시벨은 채팅 반응에 바로 순응했다.
“아, 물론이죠! 우리 사부님 가르침대로 딱! 제가 이렇게 어깨 딱! 봤죠? 거기에 숨 참고 흡!”
그녀는 즉각 사격자세를 잡으며 숨을 참았다. 그 모습에 시청자들이 재차 즐거워했다.
이윽고 게임을 종료시킨 데시벨은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이게 말이 됨!?”
기다리던 데무새가 그녀를 반겨주었다. 데시벨은 기쁜 마음에 데무새의 머리를 어루만져주며 멘트를 쳤다.
“자, 이렇게 그 악명 높은 불렛타워! 클리어 해버렸습니다. 아, 정말 제가 생각해도 장족의 발전이에요. 퍼사부님께 공식적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여윽시 황새의 피는 다르다 이마리야
-석사에서 박사가 된 데학원생이랄까?
-이 정도면 퍼플오피스 가서 디제잉 해줘야 되는 거 아님?
-뭔 미친소리야 ㅋㅋㅋㅋㅋ
-근데 눈나는 퍼플오피스 갈 예정 없음?
-ㄹㅇㅋㅋ 갓플이랑 아는 스머들은 다 갔잖슴!
-아니 ㅋㅋ 갓플이 모르는 스머도 가는 마당인데 뭘 ㅋㅋㅋ
이경복의 언급에 퍼플오피스 이야기가 나왔다. 데시벨은 그에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이게 시간 내려고 했는데 최근 좀 바빠서요. 물론 끝나기 전에 꼭 갈 거예요.”
데시벨은 그리 설명하고는 이내 방송을 마무리 지었다. 채팅창마저 사라지자 그녀는 숨을 깊이 내뱉었다.
“흐아… 나도 가고 싶지. 가고 싶은데…”
“이게 말이 됨…?”
데시벨은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데무새가 그녀를 걱정하듯 고개를 이리저리 기울였다.
[>언니, 그냥 가라니까?]
그 사이 눈앞에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데시벨의 큐튜브 채널, 데튜브의 편집자였다.
“아니, 근데 퍼지데이 합방 컨텐츠 선정이 안 끝났잖아. 이거 먼저 해놔야지. 저번에 지놈 님이랑 합방에서 얘기도 나오기도 했고…”
그녀는 넋두리를 하듯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편집자는 그에 바로 답장을 보냈다.
위로는 아니었다.
[>(사진)]
[>여기 진짜 쩐다니까?]
[>언니, 이거 놓치면 평생 후회한다]
[>내가 정말 서울 살았으면 강제로라도 데리고 갈 정도임]
편집자는 자신의 인증샷을 보여주며 데시벨을 다그쳤다.
“아, 나도 가고 싶다고오!”
[>그러니까 가라고 ㅋㅋㅋㅋ]
[>킹직히 머리 싸맨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잖아]
[>가서 리프레쉬도 좀 하면 괜찮아질 거야]
편집자의 설득에 데시벨은 눈을 굴렸다.
“으음… 그럴까? 하긴 이제 이틀밖에 안 남았는데. 게다가 코칭까지 해주셨는데 안 가기도 뭐하고. 진짜 개인적으로 가고 싶기도 하고…”
[>언니도 다 아네 ㅋㅋㅋㅋ]
[>합방 준비 힘든 거 아는데]
[>그거 까놓고 말해서 기한이 있는 건 아니잖슴?]
[>일단 컨텐츠 후보는 뽑아뒀으니까 논 것도 아니고]
가야 할 이유는 많았고, 안 갈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꼭 가야 할 이유도 있었다.
[>아니 그리고 생각해 봐.]
[>퍼지데이 팬 분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며?]
[>크루에 가입하겠다면서 퍼플오피스를 안 간다? 이거 아주 괘씸하그등요?]
[>우선순위 따지면 오히려 이쪽이 더 높지]
“어… 그러네?”
데시벨은 두 눈을 크게 뜨며 일어섰다.
“그럼 너무 티내지 말고 조용히 갔다 오자!”
“이게 말이 됨!”
그녀의 결정에 데무새가 응원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 * *
다음날, 이른 오후.
이경복은 오로라 백화점 강남점을 찾았다.
‘좋아, 문제없는 거 같네.’
퍼펙트 후드티에 야구모자를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거기에 덧붙여 도수 없는 안경까지 착용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겨라.’
팀원들의 조언에 따른 위장이었다. 퍼플오피스 근처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복장으로 준비를 하고 왔다. 거기에 위장 소품으로 이미 굿즈를 구매한 사람처럼 쇼핑백까지 준비했다.
실제로 이경복과 비슷한 차림의 팬들이 어디로 눈을 돌려도 보였다.
‘역시 느낌이 달라.’
그럼에도 이경복은 팬들과 접촉을 피하기 위해 영화관 쪽 카페 외곽에 개방된 자리를 잡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긴 기다림 끝에 굿즈 구매에 성공해 쉬는 팬으로 보일 터였다.
그는 마음 편히 팬들을 바라보며 신기로 전해져 오는 기운을 만끽했다.
‘밀도? 농도라고 해야 하나…? 확실히 짙은 기분이네.’
대회에서는 그 양에 압도당했다면 현실에서는 강도가 달랐다. 마스크에 가려진 이경복의 입꼬리는 도통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꽤 만족스럽나 보네.”
“어, 땡큐.”
이경복은 슬쩍 옆으로 의자를 밀어 자리를 내주었다. 커피를 가져온 박주호가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다야.”
“시청자들도 놀라긴 하겠지만 좋아하겠지.”
“그런가? 비하인드 씬치고는 별 거 없잖아?”
“재밌게 만드는 건 편집하는 쪽 몫이다. 아이디어도 그쪽이 낸 건데 책임지겠지.”
테이블 위에는 커피만이 아니라 핸디캠도 있었다. 최병훈은 이경복의 방문도 영상 소스로 활용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실제 팬들 중에도 핸디캠을 챙겨온 이들이 많았기에 튀지는 않았다.
“그래, 그거야 전문이니… 음?”
“왜 그래?”
이경복이 말을 하다 말고 눈을 크게 떴다. 박주호는 의아해하며 그 시선을 따라갔다.
‘아는 사람인가?’
마스크에 모자를 깊이 눌러 쓴 채 바쁜 걸음을 옮기는 여성 팬이었다. 막 퍼플오피스에서 나왔는지 양손에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이거 인사해야 되나?”
“인사라니?”
갑자기 인사라니 무슨 소린가.
황당해하는 박주호에게 이경복이 의아한 듯 물었다.
“아니, 데시벨 님이시잖아.”
“…뭐라고?”
이경복의 대답에 박주호는 다시금 그 여성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대체 어딜 봐서 데시벨이라는 말인가? 애당초 오프라인에서는 만난 적도 없지 않나.
“아, 너는 안 봐서 모르려나. 첫 합방 때 지놈 형이랑 데시벨 님 장인해부학 영상 봤었거든. 아케이드 대회 나오셨을 때 모습도 있더라고.”
“그걸 기억… 아니, 너라면 하겠지.”
박주호가 스스로 납득하는 사이 이경복은 가볍게 톡을 보냈다. 연락처는 메탈펀치 대회 준비로 이미 서로 알고 있었다.
“아, 역시 맞으시네.”
여성 팬, 데시벨은 고개를 숙였다가 몸을 흠칫 떨더니 이리저리 머리를 돌렸다.
이경복이 그에 가볍게 손을 흔들자 그녀가 우뚝 멈추더니 곧 잰 걸음으로 카페 쪽으로 다가왔다.
“저, 정말…”
몇 걸음도 남지 않은 거리에서 그녀가 놀라 입을 벌린 순간이었다.
“혹시… 데시벨 님!?”
“힉?”
퍼펙트 후드티를 입은 한 여성 팬이 그 뒤로 쪼르르 달려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데시벨이 재차 기겁하며 이상한 소리를 내자 팬이 손을 내저었다.
“어, 어! 죄송해요! 놀라게 하려고 한 건 아니고요. 몰래 훔쳐보려던 것도 아닌데 그 증권에 아이디가 나오셔서…”
“어, 음. 네? 그, 무슨 일로?”
데시벨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팬과 이경복 사이에 섰다. 박주호도 순간 굳은 표정으로 이경복을 돌아봤다.
‘지금 떠나야 되려나?’
데시벨이 이러는 이유가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이경복은 차분히 커피 잔에 담긴 빨대를 흔들었다.
“제가 언니도 진짜 팬이거든요! 괜찮으시면 여기 증권 뒤에 싸인이라도… 아, 혹시 바쁘시면 그냥 갈게요.”
그 사이 팬이 조심스럽게 용건을 밝혔다. 데시벨이 어쩌나 싶은 와중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우연히 만난 거라 괜찮을 겁니다.”
이경복의 대답이었다.
이에 데시벨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가 급히 팬이 내민 증권을 낚아채듯 받았다.
“이, 이쪽으로 오세요!”
“네? 아, 네…!”
데시벨이 증권에 싸인을 해주고 바로 돌아왔다. 그녀는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말했다.
“아니, 사부님…!?”
“맞잖아요?”
이경복은 은은한 미소와 함께 어깨를 으쓱였다. 옆에 있던 박주호는 깊이 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후우, 다른 사람들이 놀라는 것도 좀 생각해줘라.”
“그럼 이쪽이 퍼파고 님…?”
“음… 네, 맞습니다.”
박주호는 정정하려다가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금 전 상황에 꽤 심력을 쏟은 탓이었다.
반면 이경복은 웃으며 빈자리를 가리켰다.
“안 바쁘시면 잠시 앉았다 가세요.”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눈 그렇게 드러내놓고 다니셔도 되는 거예요?”
“제가 부르기 전까지 모르셨잖아요?”
“…그건 그렇긴 한데!”
데시벨은 할 말이 없었다. 이내 그녀는 조금 전의 박주호처럼 깊이 숨을 내쉬었다.
“진짜 저 수명이 10년은 줄어든 것 같아요. 아니, 거기서 어떻게…”
“괜찮아요.”
“그래도 얼굴 공개되시면 어쩌시려고…!”
“그게, 요즘에는 고민 중이거든요.”
그의 말에 데시벨은 물론 박주호도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매니저인 자신도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닌가.
“아니, 뭐 결정을 내렸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고민하는 단계 정도라고 해야 하나.”
이경복은 그에 손을 내젓고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
“데시벨 님이랑은 오프에서는 처음이죠. 아바타랑 많이 다르시진 않네요.”
“네? 헉, 맞네요!?”
데시벨은 그제야 현실을 직시했다. 그리고는 뒤늦게 이경복의 눈을 피했다.
“…왜 그러세요?”
“아니, 그, 사부님이 아직 결정을 안 하셨다면서요…”
이경복은 물론 박주호도 그에 웃음을 흘렸다. 바로 목을 가다듬으며 표정관리를 했지만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아니, 데시벨 님은 괜찮죠. 저희 크루는 다 서로 진짜 얼굴 알고 있습니다.”
“…크루요?”
“예, 들어오신다면서요?”
데시벨이 그에 입을 벌렸다.
지금까지는 합방 준비에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가입됐다고는 해도 만약 팬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자진 탈퇴하려 했다.
그녀는 아직 자신이 퍼지데이 크루 소속이 아니라 생각했다.
‘나 진짜 된 거구나.’
비로소 실감이 났다.
이경복이 자연스럽게 크루의 일원으로 대해주지 않나.
“합방 준비는 좀 잘 되시나요?”
이어 돌아온 이경복의 물음에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아니, 아직이야…!’
스스로 정한 기준이 있었다. 데시벨은 마음을 다독이며 입을 열었다.
“어, 그게 됐다고 할지 안 됐다고 할지… 일단 후보로 뽑은 게 있긴 한데 확정은 아니라서요…”
“오? 잘됐네요. 그럼 다 같이 결정하고 일정 잡죠. 단톡방 초대해드릴게요.”
“네? 아뇨, 아뇨! 제가 준비해야 테스트하는 의미가 있죠!”
데시벨이 빠르게 머리를 흔들었다. 이경복은 그에 의아해했다.
“준비 다 하신 거잖아요? 결정만 하면 되는 거고.”
그녀는 이미 그의 피드백을 따라주었다. 스스로 컨텐츠를 구상하지 않았나.
“아니, 그래도 제가 다 해야…”
“에이, 아니에요. 그러면 크루로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경복에게 크루는 누구 하나가 이끄는 게 아니었다.
“모두 즐길 수 있는 걸 골라보죠.”
다 함께 즐거운 방송을 만들기 위해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