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3화 – 헬트리피케이션 (5)
4명의 멤버들이 모두 오르자 광차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으흠, 점점 빨라지는구려.”
“뭔가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이네요.”
“아니, 사부님! 이거 떨어질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롤코는 안전바라도 있지…!”
레일을 따라 서서히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 광차는 곧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이에 데시벨의 눈동자가 흔들리자 지놈이 웃음을 흘렸다.
“에이, 너무 걱정하시네. 이제 슬슬… 오! 올라오네요.”
이윽고 속도가 고정되자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광차 테두리에 바리케이드가 솟아났다.
그제야 데시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후아, 다행이다… 아니, 근데 알고 계셨으면 미리 말해주시면 되잖아요?!”
“어허, 그러면 스포일러가 되잖아요. 다 재미를 위한 겁니다.”
“쓰읍… 그런가? 그렇긴 한데…”
지놈의 답에 데시벨은 수긍하면서도 입술을 삐죽였다.
-스포는 안 하는 게 맞자너 ㅋㅋ
-추놈이 맞말을 한다? 인지부조화가 생겨버리고?
-불만임! 아무튼 불만임!
-데또속의 트라우마다 이마리야 ㅋㅋㅋ
-킹직히 멤버들 불안해하는 거 보고 싶은 맴 있었을 듯 ㅋㅋㅋ
-데학원생만 걸려버렸쥬?
다들 그에 웃는 와중 이경복은 눈을 돌렸다.
“아하, 이거 그냥 타고 가는 게 아닌 모양이네요.”
얼마 지나지 않나 멤버들의 광차가 올라선 레일 양옆에 또 다른 레일이 나타났다. 다른 터널에서 한 방향으로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그의 말에 이클립스와 데시벨은 의아해했지만 지놈은 바로 손뼉을 쳤다.
“크으, 바로 알아차리시네. 역시 퍼 대장님이 경험이 풍부하시다니까! 사실 이 바리케이드는 추락방지용이 아니라 엄폐용이거든요.”
“엄폐요?”
“그 말은 즉…”
이클립스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뒤쪽에서 덜컹거리는 광차 소리가 들려온 덕이었다.
-뭐임? 우리가 추격하는 거 아니었음?
-WA! 레일 액션!
-추격에 추격에 추격이었던 거임 ㅋㅋㅋㅋ
-아 ㅋㅋ 여기서도 전투구나
멤버들은 즉각 양쪽 바리케이드에 몸을 엄폐했다.
“저기 있다!”
“놈들을 막아!”
광차에 탄 악마 감독관들이 언성을 높이며 공격을 시작했다. 기계 팔에서 응축된 화염구가 광차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쪽은 제가 EMP로 무력화해두겠습니다!”
“그럼 전 이쪽이요!”
지놈이 바로 EMP로 광차를 타격하자 상대 광차가 덜컹거리며 속도가 줄어들었다. 그 사이 데시벨이 맞은편의 적들을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이런, 포탈이오! 내가 맡겠소!”
감독관들은 무기가 무력화됐다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헬라포머스가 탄 광차 위에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불기둥도 솟았다.
그곳에서 나온 건 다행히 헬 정크가 아니라 마인이었기에 이클립스가 즉각 대응할 수 있었다.
-캬 ㅋㅋㅋ 역할분담 빠른 거 보소 ㅋㅋㅋ
-추놈이 드디어 1인분을!?
-너무 낯선 모습인거시고?
-아닠ㅋㅋ 그래도 여기서는 유경험자라고
-2회차인데 1인분 밖에 못하니까 추한 거 아님?
-아무튼 추하다고 ㅋㅋㅋ
-이번에는 데눈나가 좀 활약해줘야 할 듯?
-상황 딱 보면 원딜이 개중요함 ㅋㅋ
데시벨은 의욕적으로 전투에 임했다. 채팅창 반응도 반응이지만 실제로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이번에는 자신의 역할이 중요했다.
‘이클 님 손도끼로는 한계가 있어. 빨리 정리하고 지놈 님 쪽을 도와줘야 해.’
그러나 그 마음과는 별개로 상황이 쉽지는 않았다. 바리케이드 뒤에 엄폐하는 건 감독관들 쪽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아오…!”
몇 발 쏘기도 전에 숨어버리는 적들 때문에 그녀는 답답함을 느꼈다. 그에 화염구를 배리어로 막아내던 이경복이 옆으로 다가왔다.
“같이 잡죠. 켈베로스 때 해보셨으니까 이번에도 잘하실 겁니다.”
“아! 도탄으로!”
그 제안에 데시벨은 반색하다가 곧 눈을 껌뻑였다. 채팅창에 그녀가 느낀 의문이 올라왔다.
-퍼펙트 도탄이면 바리케이드가 무의미하긴 하지 ㅋㅋㅋ
-아 ㅋㅋ 어케 막으쉴?
-근데 그럼 화염구는 누가 막음?
-이클 경이 막음 되자너 ㅋㅋ
-마인은 그럼 누가 맡음?
-헐 그르네
-피해 좀 감수할 수밖에 없을 듯?
배리어 드론이 2개라면 모를까 하나뿐이었다. 이클립스도 동시에 2가지 일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네, 막을 수가 없죠.”
이경복은 시청자들 말에 바로 수긍했다. 하지만 그 결론은 시청자들과 달랐다.
“막을 필요도 없고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은데 이경복이 손을 움직여 오버클록 드론을 조작했다.
그러나 그 대상은 멤버들이 아니라 바로 광차였다.
“우앗…!”
“이것은!?”
“오!?”
오버클럭된 광차가 순간 가속과 함께 나아가며 화염구를 회피했다.
-무친 회피기동 ㅋㅋㅋㅋㅋ
-와씨 ㅋㅋ 광차도 기계장치라 오버클럭이 되는 구나 ㅋㅋㅋ
-하긴 마인이면 이클 경이 그냥 쌈싸먹으니까 ㅋㅋㅋ
-근데 지금 도탄 계산이랑 회피기동을 동시에 하겠다는 거?
-평소의 갓플입니다만?
시청자들의 감탄과 더불어 데시벨도 반색했다. 이경복은 미소와 함께 배리어 드론을 움직였다.
“그럼 가시죠.”
“넵! 말씀만 하십쇼!”
데시벨은 이경복의 가이드를 따라 사격을 개시했다. 위에서 쏟아지는 탄환에 감독관들은 속절없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악마들 킹받쥬? 숨었는데 안 돼쥬?
-아 ㅋㅋ 엄폐 하시라구요
-엄폐(아님)
-악마쉑들 킹리둥절 ㅋㅋㅋㅋ
-악마에 홀린 기분일 듯?
-뭔소리얔ㅋㅋㅋㅋ
-악마쉑들 입장에서는 퍼지데이가 악마긴 해 ㅋㅋㅋ
-뭐래 ㅋㅋ 이 사람들이 악마들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기라도 했음? 어…?
시청자들은 낙승이라며 즐거워했지만 이경복의 직감은 그와 달랐다.
‘이걸로 끝나기엔 좀 심심하다 했지.’
새로이 느껴지는 적의, 악마들의 증원이었다.
“헐!? 하나 더 와요!”
“이쪽도 옵니다!”
“생각보다 지원이 빠르구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그와 같은 생각을 했다. 새로운 광차가 양쪽 레일에서 뒤따라오는 게 보였다.
-아니 ㅅㅂ 벌써 쫓아온다고?
-뭐예요? 킹니 갓써를 왜 너희들이 써요!?
-난이도 무엇?
-무친 ㅋㅋ 진짜 고인물용이네
-근데 고인물은 깨긴 하더라 ㅋㅋㅋ
-그래도 걔들은 엔지니어는 안 끼잖슴!
-ㅇㅇ 4명 다 전투직으로 해야 뱅가드 낀 조합으로도 양쪽 견제 함
-헐? 그럼 지금은 어캄?
시청자들이 그에 황당해하자 몇몇 경험자들이 첨언을 해주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퍼플 경의 잘못은 없소이다. 이미 데시벨 경과 함께 제몫을 다하고 있지 않소이까.”
이클립스는 마인을 베어 넘기며 채팅을 확인하고 씁쓸해했다.
“현 상황에서 부족한 것은 소인뿐이외다. 원거리 전투에 더 쓸 만한 기술을 가져올 것을…!”
“아뇨, 부족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바로 돌아온 대답에 이클립스는 놀라 고개를 돌렸다. 이경복은 여유롭게 가이드를 이어나가며 시선을 돌렸다.
“각자 원하는 걸 하기로 했잖아요? 서로 잘하는 데 집중하는 게 협력이죠. 지금도 그렇게 하면 됩니다.”
“잘하는 것이라니…?”
“이클 경은 근접전을 잘하시잖아요? 그러면 근접전을 하시면 됩니다.”
그의 말에 다들 어리둥절했다. 적이나 아군이나 원거리 사격에 집중하는 판국인데 갑자기 근접전이라니?
하지만 이클립스는 곧 그 의도를 깨달았다.
“과연, 그런 말씀이셨구려! 소인이 넘어가면 되면 문제가 해결되오!”
이경복이 배리어 드론을 회수해 이클립스 앞쪽에 발판처럼 배리어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발판 하나로 넘어가기에는 레일 간의 거리가 상당하지만 그에게는 2단 부스트가 있었다.
“네? 넘어가신다고요!?”
“아니, 사부님! 진짜로요!?”
다른 두 사람이 놀랐지만 이클립스는 즉각 바리케이드를 뛰어넘었다. 따로 이경복에게 어디로 가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역시 퍼플 경이오!”
이경복이 그에 맞출 실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배리어를 발판 삼아 도약한 이클립스는 부스트를 가동해 악마들의 광차에 착지했다.
“뭐, 뭣…!?”
“이런 멍청이들아! 쏴!”
당황한 악마들이 화염구를 쏟아냈지만 이클립스의 방패를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악은 즉시 베어낸다…!”
손도끼가 아닌 미늘창이 그의 손에 들렸다. 그와 동시에 푸른 플라즈마가 선처럼 그어졌다.
그 푸른 선이 지나간 자리에는 붉은 피가 튀어 올랐다.
-왘ㅋㅋㅋㅋ이걸 진짜 넘어가네ㅋㅋ
-악즉참! 악즉참! 악즉참!
-싹쓸어다스 ON!
-악마쉑들 헬 정크도 없쥬?
-뱅가드는 전위에 선다, 그게 상식이잖아?
-아니 ㅋㅋㅋ 그건 진짜 상식이잖아욧!
채팅창에는 환호가 터졌다.
시청자들의 기대대로 이클립스는 감독관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어, 그럼 저는 지놈 님 도와주러!”
데시벨은 즉각 상황을 파악하고 반대편으로 돌아섰다. 옆에 있던 이경복도 마찬가지였다.
“저쪽은 이제 신경 안 써도 될 겁니다.”
“아니, 진짜 넘어가셨어!? 아무튼 잘 됐습니다!”
“사부님! 가이드만 믿겠슴다!”
데시벨이 다시금 도탄 사격을 준비했다. 이경복은 배리어를 보내며 눈을 굴렸다.
“도탄도 좋긴 한데, 더 빠르게 처리할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예? 더 빨리요?”
“호, 혹시 저도 보내시려고…?”
데시벨이 긴장하자 이경복은 실소를 흘렸다.
“어, 그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건 아닙니다. 아마 악마들이 이게 전부가 아닐 것 같거든요. 광차가 하나 정도는 더 올 것 같은데 그걸 좀 기다리죠.”
-??????
-적이 더 오길 기다린다고?
-추놈 EMP랑 도탄이면 충분히 안전 빵 아님?
-킹부러! 여기서 더 어렵게 할라고!
-어겜스의 한계는 어디까지란 말인가…!
시청자들이 의아해하자 이경복은 자신 있게 답했다.
“한 번에 다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 * *
이경복의 예상대로 양쪽 레일에서 광차가 하나 더 나타났다. 지놈은 그에 마른침을 삼키며 장전을 마쳤다.
“셋까지는 전부 EMP로 커버가 안 됩니다!”
“괜찮아요. 말했듯이 새로 온 뒤쪽만 노리면 됩니다.”
“이클 경은… 걱정할 필요 없겠네요.”
반대쪽의 이클립스는 여전히 악마들의 수급을 취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청자들의 주의는 온통 이경복에게로 쏠려 있었다.
“준비되면 시작하세요.”
“에라, 모르겠다! 갑니다!”
지놈은 바로 EMP 탄을 발사했다. 감독관들의 공격이 마비되고 광차 간 속도 차이로 간격이 벌어졌다.
이경복은 곧바로 레일 사이에 배리어를 형성했다.
“엄호 부탁해요!”
“맡겨만 주십쇼!”
이번에 넘어가는 건 데시벨이 아니라 그 자신이었다. 이경복은 마치 허공이 아니라 맨바닥을 딛듯 달려갔다.
그가 발을 내딛는 자리에 배리어가 만들어진 덕이었다.
-야앀ㅋㅋㅋ 노룩컨트롤 뭔뎈ㅋ
-거기에 셀프 오버클럭까지 ㅋㅋ
-허공답보 ㅎㄷㄷ
-헬라포머스도 무협이다?
-갓플은 악마들의 악마니까 천마군림보가 맞을 듯 ㅋㅋㅋ
-???: 갓플… 그는 천마다!
-지옥천마 ㅋㅋㅋㅋㅋ
-그 와중에 데눈나 엄호 확실하고?
-아 ㅋㅋ 천마 호법은 아무나 하냐고 ㅋㅋㅋ
-데호법 ㅇㅈㄹㅋㅋㅋㅋ
감독관들이 이경복을 노렸지만 데시벨의 사격에 다시 엄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무사히 광차에 오른 이경복을 보며 지놈이 재차 소리를 높였다.
“대장님! 다시 말하지만 그쪽은 EMP 다시 못 씁니다!”
특수탄이 다시 형성되는 쿨타임도 문제지만, 자칫 이경복이 영향권에 휩쓸리면 팀킬이 될 수도 있었다.
“죽을 자리를 제 발로 찾아왔구나!”
“이런 미친…!”
“죽엇!”
기계팔이 다시 제 기능을 시작했다.
감독관들은 제 광차에 올라선 이경복에게 얼굴을 구기며 화염구를 발사했다.
‘생각대로 단순하네.’
마치 뭉치로 보일 정도로 많은 화염구가 날아왔지만 이경복에게는 별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화염구를 회피했다.
-!감나빗
-캬 ㅋㅋㅋ 회피기동 보솤ㅋ
-생각해보니 이게 맞지 ㅋㅋㅋ
-여윽시 퍼지컬이다 이마리야
-갓플이 엔지니어라 안 나서서 그렇지 전투직이면 다 쌈싸먹음
-아 ㅋㅋ 엔지니어가 진짜 공격기 하나만 있었어도 ㅋㅋㅋ
-공격기가 왜 없음? 이제 홧병으로 악마들이 죽는 거 아님?
-멘탈 데미지 C DA C!
-아닠ㅋㅋ 진심 갓플 말 대로 되나?
그러나 피하기만 해서는 상황을 해결할 수 없었다. 이경복이 광차에 올라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정도는 그냥 피할 수 있겠고.’
그는 오버클럭을 중단했다.
슈트 스펙이 떨어졌지만 화염구를 피하는 덴 문제가 없었다. 바로 집중 상태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역시 충분히 되겠어.’
퍼져나간 신기가 정보를 끌어 모았다.
광차의 속도와 그 아래 레일의 상태, 그리고 진행경로를 따라 나아가는 레일의 굴곡까지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가 원하는 최적의 시기와 최적의 위치까지 계산은 찰나에 끝났다.
‘가자.’
그는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손을 움직였다. 오버클럭 드론이 광차에 부착되며 빛을 발했다.
“운전할 때 안전거리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죠?”
광차가 순간 가속과 함께 중간에 있는 광차를 밀어붙였다. 키이이잉하는 굉음과 함께 충돌이 일어나며 감독관들이 휘청거렸다.
“이게 무슨…!”
“공포에 미치기라도 한 건가!?”
“젠장! 제대로 좀 쏴!”
화염구의 조준이 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를 미리 예상했던 바, 이경복은 쏜살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감독관들은 제 옆까지 다가온 이경복을 잡으려 했지만 흔들리는 로브 자락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디 감히 사부님을!”
“안 되겠소! 쏩시다!”
더욱이 지놈과 데시벨도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다.
지놈은 후미에 있는 감독관들에게 유탄을 쏘았고, 데시벨은 선두에 있는 악마들이 이경복을 조준하게 놔두지 않았다.
이경복은 그 포화를 가로지르며 광차 선두에 도착했다.
“속도를 좀 더 내보죠.”
그는 재차 공격해오려는 감독관들을 보며 손을 움직였다. 배드 섹터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오버클럭의 퍼센티지가 상승했다.
속도가 더 빨라지자 광차가 거세게 흔들렸고, 광차의 바퀴에서는 불똥이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WA! 불꽃놀이!
-무친 균형감각 무엇?
-갓플 계획대로 착착 되어버리고?
-아아, 그것이 바로 퍼펙트플랜이니까(끄덕)
-또전드 나와버리나요!
-클립 딸 준비 ON!
모두 휘청거리는 와중 이경복은 유유히 균형을 잡으며 시선을 돌렸다.
‘다 왔네.’
구부러진 레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굳이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지만 시청자들을 위해서였다.
이경복은 바로 배리어 드론을 회수하며 입을 열었다.
“의원 여러분, 실제로 과속은 금물입니다. 이건 따라하지 마세요.”
가볍게 말을 던진 이경복은 광차에서 뛰어내렸다. 그와 더불어 오버클럭을 최대치로 올렸다.
“머, 멈춰! 빨리 멈춰!”
“브레이크!”
“제길! 속도가 줄지 않아!”
“얼른 포탈…”
덜컹거리던 광차는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레일을 이탈했다. 혼란에 빠진 감독관들의 비명은 이어지는 굉음에 묻혀버렸다.
이어지는 폭발을 뒤로하며 이경복은 멤버들의 곁으로 돌아왔다. 지놈과 데시벨은 한 마음처럼 입을 벌린 채 눈을 껌뻑였다.
“햐, 이걸 진짜 날려버리시네.”
“대박… 미쳤다 진짜…”
-왘ㅋㅋㅋㅋㅋㅋ 찢었닼ㅋㅋㅋ
-과속은 위험… 메모…
-다들 교통규칙을 준수하라구웃!
-혀엉? 대체 이걸 누가 따라한다는 거야?
-아닠ㅋ 누가 이렇게 공략을해욬ㅋㅋㅋ
-갓플이나 이클 경이나 저길 넘어간다고 생각하는 게 ㅋㅋㅋㅋ
-야앀ㅋㅋ 이클 경은 그래도 전투직이지!
-ㄹㅇㅋㅋ 갓플은 엔지니어인데 걍 넘어감ㅋㅋㅋㅋ
-아 ㅋㅋ 그냥 광차에 보조를 해줬을 뿐입니다만?
-보조(물리)
-전투직보다 킬 수가 많은 보조직이 있다!?
시청자들이 그에 즐거워하는 도중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과연 퍼플 경의 위용은 대단하구려! 헌데, 소인도 이만 돌아가고 싶소만…”
이클립스도 광차 한 대의 정리를 끝내고 대기 중이었다. 2단 부스트만으로는 넘어갈 거리가 아니기에 배리어 발판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에 다들 웃음을 흘렸다.
-이클 경 커엽ㅋㅋㅋㅋ
-진짜 ㅋㅋ 떡대는 엄청난데 다소곳히 기다리는 거 보소 ㅋㅋ
-이래서 어른들이 기술이라도 배우라는 거구나
-그 기술이냐고 ㅋㅋㅋㅋ
-저 헬린인데요! 조합 짜는데 엔지니어 왜 안 넣어요? (진짜모름)
-ㄹㅇㅋㅋ 엔지니어 겁나 유용하구만ㅋㅋㅋㅋ
-으아니! 퍼펙트 엔지니어는 하나 뿐이잖아욧!
-착한 헬붕이들은 따라하지 마세요^^
퍼지데이에는 이경복이 꼭 필요했다.
* * *
이경복은 가볍게 손을 움직이며 광차의 속도를 조절했다.
“으음… 이거 언제까지 가는 거죠?”
“이제 더 이상 적들은 없는 것 같소만…”
적들은 더 나오지 않았지만 광차는 계속 나아갔다. 멤버들은 그 바닥에 앉아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다 처리해버렸나?
-찐으로 싹쓸어다스 한 듯 ㅋㅋ
-근데 왜 안 넘어감?
-HOXY 또 버그?
-아 ㅋㅋ 설마 ㅋㅋㅋㅋ
시청자들도 이 상황에 의문을 표했다. 지놈은 그에 고개를 내저었다.
“이게 또 버그라면 버그로 볼 수도 있긴 한데, 시스템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빨리 잡아버려서 그런 것 같거든요.”
“아… 원래 좀 더 길게 싸웠을 거다?”
“흠,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구려. 퍼플 경 덕분에 처리가 빨라졌으니…”
-엌ㅋㅋ 이거넼ㅋㅋㅋ
-알고 보니 퍼펙트 버그였구연?
-킹직히 개발사도 엄폐랑 사격만 생각했을 듯 ㅋㅋㅋ
-ㄹㅇㅋㅋ 원딜전만 했으면 지금도 싸우고 있었음
-5252, 퍼펙트 숏컷을 예상하지 못 한거냐구웃!(나도못함)
-개발사 또 억울잼 ㅋㅋㅋㅋ
-그럼 도착할 때까지 노가리 까는 거?
-WA! 저챗타임!
지놈의 추측에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에 멤버들이 가볍게 잡담을 나누는 와중이었다.
[‘Hell’o Games Studio’님이 ‘1,000$’를 후원하셨습니다.]
[Hell Yeah! 퍼지데이! 이번에도 정말 놀라운 플레이였습니다!]
갑자기 들려오는 후원 음성에 다들 고개를 번쩍 들었다.
“헐? 뭐야?”
“어? 헬로 게임즈면 개발사잖아요?”
“사칭은 아닌 것 같소!”
“아이고! 이걸 또 보고 계셨네! 감사드립니다!”
막아둔 후원이 들어왔다는 건 이미 매니저 측에서 검증을 끝냈다는 뜻이었다.
지놈이 바로 감사를 표하자 채팅창도 들썩였다.
-엌ㅋㅋㅋㅋㅋ 개발사 등판ㅋㅋ
-버그라고 해서 바로 달려온 듯?
-???: 또 퍼펙트 버그라고!?
-이번에는 대응 좀 빠르네 ㅋㅋㅋㅋㅋ
-아 ㅋㅋ 모니터링 못 참지 ㅋㅋ
-개발사가 주시하는 월클 클라스 ㅎㄷㄷ
-1천 달러 너무 호방하구요?
당연하게도 개발사 쪽에서는 단순히 감사를 전하러 온 게 아니었다.
[도전과제에 어울리는 플레이가 다시 한 번 나왔네요!]
[물론 저희 대표들은 약간 당황스러워했습니다 XP. 설마 그렇게 악마를 전멸시킬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요!]
[이번 사항은 조속히 패치가 이루어질 겁니다. 적이 전멸하면 바로 스킵이 가능하도록 말이죠!]
[바로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한국어로 알려드리려 시간이 지체됐습니다. 저희 개발진은 보다 나은 게임을 위해 노력 중입니다!]
연달아 이어지는 후원에 다들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늦게 말해주신 게 뭐가 문제겠어요? 후원금만 5천 달러! 이 정도면 뭐, 내일모레 받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와, 이렇게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해주시는구나. 이게 또 대형 개발사랑은 좀 다른 점 같아요.”
“원래 잘 되는 게임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죠.”
“그렇소. 아주 훌륭한 마음가짐이외다!”
비록 광고는 아니지만 개발사에서 총 5천 달러를 후원해주었다. 멤버들의 입에서 불만이 나올 리가 없었다.
-자본주의로 움직이는 블랙부대 ㅎㄷㄷ
-아 ㅋㅋ 전쟁에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구요 ㅋㅋㅋ
-헬로게임즈 너무 좋아요^^(복사해서 붙여넣기 해주세요)
-바이럴 드립 뭔데 ㅋㅋㅋㅋ
-근데 틀린 말도 아님 ㅋㅋㅋ
-ㄹㅇㅋㅋ 모니터링하면서 실수 바로 잡는데 잘 한 거지 ㅋㅋ
-실시간으로 도전과제가 생성되는데 어케 안 봄?
-블랙기업특) 남의 회사에 일을 만듦
-바로 고증해버렸고?
-돈을 받고 일감을 만들어주는 회사가 이따!?
-아! 너무 무섭다!
멤버들이 좋아하니 시청자들도 덩달아 즐거워했다. 그리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와중 광차 속도가 서서히 느려졌다.
“아, 이거 제가 조절한 거 아닙니다.”
“오! 그럼 거의 다 온 모양이네요!”
“음,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구려.”
“아주 좋네요! 여러모로 오늘은 얻는 게 많습니다!”
멤버들이 다시 일어섰다.
터널 끝에 플랫폼이 보이자 시청자들도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그 많은 광차로 모은 광물이 여기에 이따!?
-현실 후원 낭낭하니까 이제 인게임 후원도 받아보자구웃!
-후?원
-아 ㅋㅋ 악마들이 두고 사라진거니까 후원이자너 ㅋㅋㅋ
-ㄹㅇㅋㅋ 자기 거였으면 챙겨갔지
-이제 보니 채팅창에 악마가 더 많고?
-죄인을 노예로 부려서 광물을 수급하는 악마 vs 그냥 ‘내놔’하는 킹간
-킹간… 킹간 네버체인지…!
-꼬우면 인간 하시든가요 ㅋㅋㅋ
개발사의 후원도 좋지만 챙길 건 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