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4화 – 헬트리피케이션 (6)
광차는 플랫폼에 완전히 정차했다. 멤버들이 내리자 바로 컷신이 시작됐다.
“어우… 숫자가 상당한데요?”
“감독관이랑 헬 정크뿐이구려.”
“그러게요? 죄인들은 없네.”
“그도 그럴 게, 힘쓰는 거야 저 정크들이 더 유용하니까 말입니다.”
컷신 속 멤버들은 화물 뒤에 숨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중앙구역에는 꽤 많은 숫자의 악마 감독관과 헬 정크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게 대체 무슨 미친 소리야?”
“저장소가 점령당했다고? 인간한테?”
“그것도 단 4명이라고…?”
도망친 감독관들이 상황을 전달한 모양이었다. 놈들의 얼굴에는 당황과 황당한 감정이 뒤섞여서 나타났다.
-악마쉑들 킹리둥절 ㅋㅋㅋ
-엌ㅋㅋ 갓직히 이걸 누가 믿음ㅋㅋㅋ
-악마피셜 미친 소리 ㅋㅋㅋㅋ
-킹치만 바로 앞에 있쥬?
-직접 보면 믿게 된다 이마리야
-???: 우리는 퍼지데이야, 지금 네 뒤에 있어
-무슨 괴담이냐고 ㅋㅋㅋㅋㅋ
-악마 입장에서는 개 무섭자너ㅋㅋㅋ
시청자들은 악마들이 불안해하는 모습에 웃음을 흘렸다.
“죄인들까지 다 놓쳤으면 할당량은?”
“이런 빌어먹을…! 채굴 작업을 빨리 재개하지 않으면 바알세붑 님이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저번에 할당량 못 지킨 놈들은 형벌로 아직도 썩어 들어가고 있던데…!”
-바알세불? 어디서 들어봤는데?
-파리대왕이자너 ㅋㅋㅋㅋ
-잉? 원래 벨제부브 아님?
-이름 발음이 다양하긴 해 ㅋㅋ
-금마가 2지역 보스인 듯?
-아 ㅋㅋ 탐욕의 악마라서 광산 점령하고 있던 거네
-옼ㅋㅋ 그래서 여기 죄인들이 다 경제범들이었구만
악마들의 대화에 시청자들은 물론 멤버들도 이번에 상대해야 할 보스를 유추할 수 있었다.
“젠장, 왜 다른 놈들은 안 오는 거야?”
“혹시 다른 저장소도 인간들 습격을 받은 건…?”
“설마 전부 다 점령당했을 리가…!”
“하지만 광차가 도착할 시간이 이미 지났는데?”
그리 불안해하던 악마들은 더욱 초조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반응에 멤버들이 실소를 흘렸다.
“오! 이거 혹시 저희가 처치한 놈들 말하는 거 아니에요?”
“광차 얘기를 하는 걸 보니 맞는 것 같소이다.”
“와, 이게 반영이 되나요?”
“크, 역시 눈치가 다들 빠르십니다.”
지놈이 작은 탄사와 함께 다른 멤버들의 생각이 옳았다는 걸 확인해주었다.
“이건 저도 영상으로 보고 안 건데, 광차 전투에서 전부 못 처리하고 허브에 도착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아니, 끝까지요?”
“네. 그냥 엄폐물 뒤에서 존버해도 되긴 되더라고요. 아무튼 그렇게 되면 지금 보시는 것보다 적들 숫자가 더 많아집니다. 그리고 이 컷신이 아니라 악마들이 플랫폼에서 대기하는 쪽으로 전개가 되거든요.”
“흠, 하긴 악마들이 살아남았으면 미리 경고를 했겠구려.”
멤버들이 그에 수긍하는 와중 이경복의 신경은 다른 쪽으로 쏠렸다.
‘오? 이건 나름…’
이질적인 적의의 존재가 느껴졌다. 기존과 달리 강렬한 수준이 1지역 보스인 켈베로스와 엇비슷했다. 하지만 아직 2지역의 보스가 나올 시기는 아니지 않나.
다행히 곧바로 그 정체가 컷신에서 밝혀졌다.
“안 되겠어. 당장은 일단 우리 선에서 수습을… 끅!”
“이건…! 컥…!”
“안돼…!”
“끄악…!”
상의하던 감독관들을 향해 뭔가 빠르게 날아와 박혔다. 놈들은 저마다 짧은 신음을 흘리며 그대로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멤버들은 물론 채팅창에도 물음표가 솟구치는 와중 위쪽에서 새로운 악마가 나타났다.
“무능한 것도 모자라 제멋대로라?”
냉담한 목소리를 흘리는 악마의 머리는 파리의 그것과 같았다. 파리와 인간의 혼종처럼 생긴 그 악마는 등부터 옆구리까지 금속으로 개조되어 있었다.
“초, 총감독관님…!”
“저희는 그저…”
기겁한 악마들이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그 명칭과 감독관들의 태도로 등장한 악마의 정체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딱 봐도 바알세불 직속 악마네 ㅋㅋㅋ
-대놓고 파리자너 ㅋㅋㅋ
-아옼ㅋㅋ 머리 디테일 보소
-마! 파리채 가 온나!
-전기 파리채로 넘모 지져주고 싶은 거시고?
-엌ㅋㅋ 이클 경 방패가 딱이네 ㅋㅋ
곤충 특유의 겹눈이 번들거리며 감독관들을 훑었다. 그리고는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이자 양쪽 옆구리가 열리며 작은 파리 형태의 드론들이 튀어나왔다.
“내가 너희 몸속에 어떤 종류의 약물을 넣었는지 알겠나?”
총감독관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부하들의 코앞에 제 머리를 들이댔다.
“너희의 무능함을 생각하면 몸속부터 부식시켜도 시원치 않겠지만…”
그와 더불어 검은색의 파리 드론이 윙윙거리다가 다시 옆구리로 들어갔다.
“바알세붑님께 공물을 바치는 게 우선이다. 강화제를 투여해줬으니 실수를 바로잡도록.”
다른 종류의 파리 드론은 녹색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와 같은 빛이 감독관들의 혈관을 따라 발광했다.
“아, 알겠습니다!”
“얼른 움직여!”
“이 쓰레기들아! 빨리 따라와!”
그제야 안도한 감독관들은 곧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그 뒤로 헬 정크가 무리를 지으며 뒤따라갔고, 순식간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헐? 악마쉑들 역습?
-디펜스 페이즈 예고인 듯?
-그래도 이러면 오히려 땡큐지 ㅋㅋㅋ
-빈집털이 너무 조쿠요?
-파리쉑ㅋㅋㅋ 가오잡더니 다 망쳤쥬?
-싹빠라다스 챈스!
시청자들은 그에 즐거워했지만 아직 컷신은 끝나지 않았다.
“무능한 놈들은 치웠으니, 이만 나오는 게 어떤가?”
총감독관이 몸을 돌리더니 멤버들이 숨어있는 쪽을 정확히 직시했다.
“헐? 뭐야? 저희 들켰어요?”
“아니, 언제부터…?”
“아, 역시 총감독관이라 만만치가 않은 것 같죠?”
시청자들은 물론 멤버들도 그에 놀랐다.
“시작부터 들켰잖아요?”
하지만 이경복은 이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의 대답에 다들 어리둥절해하자 이경복이 첨언했다.
“아, 다들 못 보셨나? 나중에 영상 다시 보시면 아실 텐데, 저 파리 드론 악마들한테 박았을 때 있죠? 저희 쪽으로도 하나 날아왔었습니다.”
“진짜요?”
“그랬단 말이오?”
“아니, 그런 디테일이 있었어요? 이건 나도 몰랐던 건데?”
다른 멤버들은 물론 게임을 해봤던 지놈마저 놀라자 채팅창이 들썩였다.
-5252, 추슨트! 뭐하는 거냐구웃!
-추한 거 보니까 이게 오히려 맞을 지도?
-다회차 추놈 < 1회차 갓플
-아 ㅋㅋ 비겁하게 팩트 꽂지 말라구욬ㅋㅋ
-퍼펙트 아이의 유무 차이였다 이마리야 ㅋㅋ
-데학원생도 놓칠 정도면 뭐 ㅋㅋㅋ
-근데 점마는 왜 눈치챘으면서 부하들 다 보내버림?
-???: 뭐지? 자기과시?
지놈을 놀리던 시청자들은 곧 의아함을 표했다. 다행히 그 답은 당사자의 입에서 나왔다.
“총감독관으로서 상대의 능력을 파악하는 건 꽤 중요한 덕목이지. 너희들은 인간 주제에 꽤 상당한 실력을 갖췄군.”
컷신 속 멤버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겹눈이 이리저리 돌아갔다.
“달리 말하면 너희들이 없다면 그 무능한 부하들이라도 저장소를 되찾기 쉬울 테고.”
-옼ㅋㅋㅋ 파리주제에 머리 좀 굴렸고?
-킹치만 상대가 퍼지데이쥬?
-혼자서 퍼지데이를 상대하겠다!?
-마! 니 자신 있제!?
-엌ㅋㅋ 바로 숙청각이자너
시청자들은 이유를 이해하면서도 조소를 흘렸다. 하지만 이경복은 시청자들 의견을 정정했다.
“1대 4 구도라면 쉬운 상대는 아니겠죠. 아직 보스가 나올 타이밍은 아니지만 중간 보스 급은 될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컷신 속 멤버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총감독관은 재빠르게 그 포격과 무기를 피하고 파리 드론을 날렸다.
검은 파리들이 멤버들의 슈트를 파고들더니 곧 각자의 바이탈 싸인이 서서히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런, 독인 것 같소이다!”
“뭐야? 시작부터 페널티 달고 하는 거예요!? 아니! 너무 치사하잖아!”
“오, 이거 핸디캡 매치네요.”
“대장님, 좋아하시는 거 아니죠?”
전투 시작 전부터 불이익이 있었다. 컷신 속 멤버들이 비틀거리는 사이 총감독관은 여유롭게 비치된 굴착용 슈트를 착용했다.
-헐;;; 그냥 배경 아니었음?
-무친 ㅋㅋㅋ 치사하게 저걸 쓰네
-이클 경보다 더 크네 ㅅㅂ
-어우 드릴 돌아가는 거 보소 ㅎㄷㄷ
-이거 중간보스전 같은 건가?
-ㅇㅇ 맞는 덧
총감독관은 슈트를 작동시킴과 더불어 위쪽으로 드론을 날렸다. 여기서 또 뭔가 싶었는데 공중에 매달려 있던 컨테이너들을 지탱하던 사슬이 끊어지는 게 아닌가?
“아니! 이건 에바지!”
“아직 몸이 안 움직이오!”
굉음과 함께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다행히 멤버들은 무사했지만 사방이 컨테이너 박스로 막혀버렸다.
“이 드릴에 갈려 빨리 죽는 것과 안쪽에서부터 썩어 들어가는 것, 어느 쪽을 택할지는 고를 수 있게 해 주지.”
총감독관이 여유를 부리며 조소를 흘렸다.
그것이 중간보스전의 시작이었다.
* * *
시청자들은 중간보스전의 난이도에 혀를 내둘렀다.
-아니 보스도 아닌 놈이 이렇게 셈?
-켈베로스는 진짜 튜토용이었네;;;
-시작부터 디버프도 킹받는데 셀프 버프까지 해버리고?
-야씨 ㅋㅋ 이런 성능이면 강화제 개사기 아님?
-생긴 건 파리인데 파리 목숨이 아닌 거시고?
겉모습과 달리 꽤 강한 상대였다. 이에 몇몇 게임을 아는 이들이 수긍했다.
-역시 퍼지데이라도 빡세긴 하네
-그나마 퍼지데이라서 버티는 거 아니냐 ㅋㅋㅋ
-ㄹㅇㅋㅋ 고인물들도 미리 소모품 챙겨오자너
-연계미션이 얼마나 빡신지 잘 아니깤ㅋㅋㅋ
-킹치만 퍼지데이는 즉흥적으로 와서 아무것도 없구요?
-배리어나 회복제라도 좀 챙겨왔어야 되는디
애당초 능숙한 플레이어들도 대비를 하고 도전하는 미션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미 전멸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멤버들은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멤버들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예상보다 이경복의 활약이 주효한 덕이었다.
-오버클럭 로테이션은 진짜 예술이네 ㅋㅋㅋ
-ㄹㅇㅋㅋ 칼같이 돌림
-그나마 이걸로 부식은 막을 수 있어서 다행이네
-킹직히 갓플 아니었으면 이 정도로 못 돌리지 ㅋㅋㅋ
오버클럭으로 침투한 파리 드론을 과부하 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경복은 곧장 그 사실을 눈치채고 각 멤버들을 순차적으로 오버클럭시켜 피해를 막았다.
덕분에 멤버들의 바이탈 사인은 컷신 시작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우! 대장님 고맙슴다!”
그 와중에 배리어 활용과 스캔까지 착실히 수행 중이었으니 다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활약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아 이거 좀만 더 넓었으면…!
-진짜 CC기 각이 안 나오네
-까딱하면 팀킬이라 절대 못 씀
-이건 걍 대놓고 CC기 쓰지 말라는 거자너 ㅋㅋㅋㅋ
-핸디캡이 생각보다 많네 ㅅㅂ
무대가 좁으니 이클립스의 전기 방출이나 지놈의 특수탄을 사용하기가 까다로웠다.
“지놈 경! 그냥 쏘시오!”
“아오! 좀 맞아라!”
“아…! 또 터졌어요!”
그에 피해를 감수하고 지놈이 EMP탄을 발사했지만 총감독관의 파리 드론이 바로 요격해 별 효용이 없었다.
-아니;; 뭔 놈의 슈트가 전투용보다 단단함?
-공업용이 원래 내구도가 좋긴 해
-보면 드릴도 개쎔 ㅋㅋㅋㅋ
-컨테이너 구겨지는 거 보소;;;
-이클 경 방패도 이제 간당간당한데?
-부스트 없었으면 진즉에 끝났을 듯
총감독관의 반격은 매서웠다. 멤버들은 그에 갈수록 초조해졌다.
‘사부님 서포트로 버티고 있긴 하지만…’
‘이래서야 오히려 셋이 민폐가 되는 셈인데…!’
‘아씨, 이거 달리 방법이 없나?’
이런 상황이 고착화되면 승리는 어려워 보였다. 이경복이야 몰라도 세 사람은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실수가 나올지도 몰랐다.
“오케이, 끝났습니다.”
하지만 아주 안 좋은 소식만 있는 건 아니었다.
[‘Overseer’ 분석 완료]
[>해당 개체 크리티컬 포인트 표시]
[>해당 개체에 대한 데미지 +30%]
스캔이 끝났다는 시스템 메시지에 채팅창 분위기가 일변했다.
-마참내!
-캬 ㅋㅋ 이 와중에 스캔 깔끔한 거 보소
-옼ㅋㅋ 추뎀 30%라고?
-중간보스급이라 좀 낭낭하게 줬네 ㅋㅋㅋ
-킹직히 보조직 꼈으면 이정도 메리트는 있어야지!
멤버들도 그에 다시 의욕을 내며 밝혀진 크리티컬 포인트에 집중했다.
“파리 본체랑 아래쪽이에요!”
총감독관 그 자체와 슈트 아래쪽에 위치한 동력원이 약점이었다. 데시벨은 조준과 동시에 눈가를 찡그렸다.
“아씨! 각이 안 나오네.”
“소인이 놈을 넘어뜨려 보겠소!”
“그럼 제가 냉동탄을 미리 깔아두겠습니다!”
-자 카운터 드르갑니다잉!
-파리쉑 딱 대!
-헐? 이클 경이 직접?
-아 이거 리스크가 좀 쎈디;;
-탱커 없으믄 순삭각이구요?
-그래도 퍼지데이니까 잘 할 듯 ㅋㅋ
-이게 최선이다 이마리야
채팅창은 멤버들의 의욕에 동조했지만 우려도 만만치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이경복이 입을 열었다.
“괜찮은 방법이긴 한데 본체를 노리는 게 낫지 않겠어요?”
“예? 어씨! 맞을 뻔했네! 나만 노리는 거 아냐 이거!?”
“사부님? 본체라뇨!?”
“퍼플 경, 무슨 방도가 있소이까?!”
놀란 멤버들의 물음에 이경복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슈트 하부 덮개를 뚫는 것보다는 더 쉬울 겁니다.”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그러나 멤버들에게는 그 대답만으로 충분했다.
“오케이! 그렇게 하시죠!”
“그게 사부님의 판단이라면야!”
“퍼플 경, 지시를!”
다들 그 정도로 이경복을 신뢰하고 있었다.
* * *
자세한 설명을 듣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멤버들은 일단 이경복의 지시를 따르기로 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리 대비를 했음에도 첫 지시는 모두의 머리에 물음표를 그렸다.
“놈이 셀프로 버프할 때까지 기다리세요!”
-?
-ㅔ?
-버프를 받기 전이 아니고?
-아니 ㅋㅋㅋ 가장 상대하기 빡셀 때 아니냐곸ㅋㅋㅋ
-여기서 어겜스 행동을?
-혀엉? 이거 맞아?!
멤버들은 물론 시청자들도 의아해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미 따르기로 한 바, 멤버들은 때를 기다렸다.
“사부님!”
“지금이오!?”
“본체를 쏠 깝쇼?!”
그리고 마침내 총감독관이 녹색 파리 드론, 강화제를 투여한 순간이었다. 멤버들이 즉각 무기를 들었지만 이경복의 지시는 또 기대를 엇나갔다.
“각자 벽으로 붙어요!”
순간 다들 움찔했지만 바로 방향을 틀었다. 총감독관은 가볍게 고개를 돌리더니.
“아씨! 또 나야?! 이거 버그 아냐!?”
그중 가장 느린 지놈을 쫓았다.
-Bug가 맞긴 하지ㅋㅋㅋㅋ
-ㄹㅇㅋㅋ 파리가 벌레긴 해
-버그(진짜임)
-추놈이 미끼인 거에서 신뢰도가 높아져 버리고?
-거기서 믿을만한 거냐고 ㅋㅋㅋ
-???: 기억할게!
시청자들은 웃었지만 이경복은 진지했다. 그는 즉각 다른 멤버들에게 소리를 높였다.
“됐습니다! 다시 와요!”
물론 지놈을 희생양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그는 바로 오버클럭 드론을 날렸다.
모두가 그 오버클럭 드론이 지놈을 버프시켜 구해주는 거라 판단했지만.
“사부님?!”
“아니… 대체!?”
오버클럭 드론은 지놈이 아니라 그를 쫓는 굴착용 슈트에 부착됐다.
“지 대원, 피하세요!”
“예!?”
지놈은 뭘 피하라는 건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경복이 총감독관을 오버클럭하면서 추격이 더 빨라진 덕이었다.
이윽고 굉음과 함께 굴착 슈트의 드릴이 컨테이너 깊숙이 박혔다.
-갓플이 팀킬을?
-우리 형이 통수를 쳤다!?
-5252! 추놈 대체 얼마나 큰 죄를 지은 거냐구웃!
-아닠ㅋㅋㅋ 갓플이 잘못한 건 아닌 거냐곸ㅋㅋㅋㅋ
-이 형이 잘못했을 확률 보다는 추놈이 추한 게 더 신빙성있자너 ㅋㅋㅋㅋ
-바이탈 오케이!
지놈은 가까스로 바닥을 굴러 살아남았다.
“어우, 진짜 놀랐네…”
그가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총감독관이 그를 추격하려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굴착용 슈트는 그대로였다.
“이게 대체…?!”
놈은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컨테이너 박스를 파고든 드릴이 아직도 맹렬히 회전하고 있었다. 기존보다 더 깊숙이 박힌 드릴은 그 내부에 있던 헬 메탈 광석까지 갈아버리다 광물 사이에 끼어버린 것이었다.
“어! 꼈어! 지금 꼈어!”
-와앀ㅋ 왜 그랬나 했더니
-설마 이걸 노리고 오버클럭한 거?
-여기까지 계산을 해버렸다!?
-아 추놈을 죽이려던 거 아니었음?
-거기서 왜 실망하는데 ㅋㅋㅋ
-지금이니!?
지놈이 그를 알아차리고 소리를 높이자 모두 이경복의 의도를 파악했다.
드릴의 구조상 수평이동은 어렵기에 총감독관은 바로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그렇게는 못 하오!”
뒤따라온 이클립스가 방패를 앞세우며 놈을 다시 밀어 넣었다.
“끄르르르르륵!”
그와 더불어 지금껏 쓰지 못한 전격 방출은 덤이었다.
“역시 이클 경께서는 말하지 않으셔도 다 아시네요!”
이경복이 그에 유쾌하게 웃으며 배리어 드론을 그의 뒤에 비스듬히 세웠다. 한 박자 늦게 도착한 데시벨도 곧 자신의 역할을 파악했다.
“아! 진짜 사부님 최고네요!”
그녀는 배리어를 딛고 도약해 이클립스를 넘어 굴착용 슈트 위에 올라섰다. 이윽고 그녀의 총구가 총감독관의 머리를 향해 겨누어졌다.
“야, 이거 방탄유리지?”
데시벨은 여유롭게 웃으며 말하자 채팅창이 즉각 반응했다.
-익숙한 그 구도!
-???: 야 이거 방탄유리야!
-영화랑 다르게 탄창 넉넉한 것이고?
-권총이 아니라 소총이자너 ㅋㅋㅋ
-???: 아직 한 발 남았다 (무한반복)
-아 ㅋㅋ 한발 씩 쏘는 거라구요
-그것도 철갑탄임 ㅋㅋㅋㅋㅋ
-이제 진짜 파리 목숨이쥬?
-엌ㅋㅋㅋ 넌 뒤져땈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의 호응에 데시벨은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내가 사부님한테 가장 먼저 배운 게 바로 이 영거리 사격이거든.”
불꽃이 튀며 조금씩 균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균열을 비집고 총탄이 들어갔다.
“역시 효과가 좋네.”
이경복의 가르침은 언제나 쓸모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