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6화 – 헬트리피케이션 (8)
비슷한 시각, 북미 커뮤니티, 리딧의 헬라포머스 게시판.
한국은 밤이지만 북미는 대부분 낮인 시간이었다. 이에 현재 커뮤니티에 상주하는 이들은 대부분 게임에 진심인 ‘고인물’들이었다.
그 숫자가 적은 만큼 이 시간대에는 보통 게시글이 적었지만, 지금만큼은 예외였다.
[-It’s FXXking crazy! 다들 퍼지데이의 플레이를 봤어? 2페이즈가 나오기도 전에 총감독관이 쓰러졌다고!]
[-I can't believe it,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야? ‘GENOME’이라는 플레이어를 제외하고 다 처음이라며? 게다가 퍼지데이 팀에는 엔지니어까지 있는데?]
[-Usually, 연계미션에서 엔지니어를 선택하는 플레이어는 없어. 그건 명백한 트롤 행위니까! 하지만 지금은? 음, 난 확신할 수 없어.]
[-We’re Wrong. 플레이로 증명됐잖아? 퍼지데이는 연계 미션은 엔지니어를 포함시키지 않아야 된다는 이론을 완전히 부정했어!]
개발사가 도전과제 업데이트를 공지한 이후 고인물들의 관심사는 퍼지데이에게 쏠려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방송을 실시간으로 시청했고, 그 감상을 커뮤니티에서 나누고 있었다.
[-This is it! 빌어먹을, 퍼지데이가 해내버렸어! 특히 퍼펙트플레이는 엄청났다고! 드론 조종만 잘 하는 줄 알았더니 완전 날 놀라게 했다니까!]
[-Very creative, 퍼플이 보여준 방법은 상상도 못 했어. 어떻게 그는 적을 오버클럭할 생각을 한 거지? 주변 환경까지 고려를 했다는 거잖아?!]
[-He is true genius, 다들 놀라지 마. 난 퍼플에 대해 알게 된 이후로 더 찾아봤는데 이것보다 더 엄청난 게 많아! 다들 그의 큐튜브 멤버십 가입을 진지하게 고려해보라고 XD]
[-Maybe, 이건 한국의 DNA 영향일지도 몰라. 왜냐하면 미국은 한국보다 인구가 많은데 이런 플레이어가 없잖아! 솔직히 우리 중에 이거 따라할 수 있는 사람 있어? 나는 없다고 확신해!]
이번 방송에서 보여준 퍼지데이의 활약에 모두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들 게임에 대해 자세히 아는 만큼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Literally, 그들은 지금 지옥을 숙청해버리고 있어. 퍼지데이는 운 좋은 뉴비 따위가 아니야. 비록 처음이라고는 해도 그들은 우리와 비슷한, 아니 그 이상이 될 수 있어.]
[-Well… 인정하기 싫지만 그들은 내가 꾸린 팀보다 더 잘해. 나는 패배를 인정해야겠어.]
[-Guys, 리더보드를 봤어? 퍼지데이 스코어가 엄청나다고!]
이내 그들은 또 다른 카테고리에 눈을 돌렸다. 그곳은 바로 ‘리더보드’ 게시판이었다.
헬라포머스 개발사가 제공하는, 유저들의 플레이 데이터를 토대로 점수를 계산, 순위를 집계해주는 곳으로 고인물들 사이에서는 객관적인 실력의 척도이기도 했다.
[-Not bad, 데시벨이라는 플레이어도 점수는 괜찮은데? 생각보다 피해 기여도가 높아!]
[-Nah, 나는 이 점수 산정 방식에 여전히 불만이야. 데시벨보다는 이클립스가 더 점수가 높아야지? 그는 이번 방송에서는 훌륭한 탱킹을 보여줬다고!]
[-Chill out guys, 개발사가 정한 기준은 어쩔 수 없잖아? 물론 동의하긴 해. 특히 뱅가드는 오히려 피해를 받아야 점수가 올라가니까.]
그러나 플레이어 개개인의 점수는 고인물들 사이에서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점수의 계산 방식이 직업군마다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에 고인물들이 중점으로 보는 건 각 플레이어의 활약은 물론 전체적인 미션 진행 상황까지 점수로 계산한 ‘팀 포인트’였다.
그리고 그 점수로 산정된 퍼지데이의 순위는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5251. Purgeday – 10,978pt]
집계된 퍼지데이 팀의 순위는 5천 대였다. 매 시즌 상위권을 차지하는 고인물들에게는 그리 놀랍지 않은 숫자였지만.
[-Is it real? 이번 업데이트 시즌에 생성된 팀이 거의 50만을 넘었는데? 뉴비가 셋인 팀이 상위 1% 안에 들었다고?]
[-Impressive! 방송에서 보여준 것만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퍼지데이가 1% 안에도 못 들었다면 집계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였을 거야!]
[-Wow, 내 헬라포머스 플레이가 부끄러워졌어. 어떻게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수 있지? 퍼지데이는 1지역을 돌파한 것만으로 상위 1%안에 들어온 거잖아!?]
퍼지데이 팀의 상황은 특별했다.
리더보드에 반영되는 점수는 게임 내 ‘지역’ 공략이 끝날 때마다 갱신되기 때문이었다.
[-You know what? 심지어 퍼지데이는 1지역을 전부 플레이한 것도 아니야. 그들은 바로 켈베로스를 상대했다고! 그만큼 점수가 적어야 되는데도 이 정도잖아!?]
[-That’s Right! 생각해보니 그러네! 맙소사, 아무도 퍼지데이와 같은 상황에서 이런 점수를 기록할 수는 없을 거야!]
[-Hell Yeah! 개발사가 옳았어. 퍼지데이의 플레이는 확실히 도전과제가 될 만하잖아? 진짜 전설적인 플레이라고 인정받을 만 해!]
더욱이 그 점수가 반영된 1지역 공략 역시 평범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에 고인물들은 연이은 감탄과 더불어 기대를 내비쳤다.
[-I wanna see this! 퍼지데이가 2지역을 공략하면 얼마나 점수가 높아질까? 적어도 1지역 보다는 대단할 텐데!]
[-Damn! 퍼지데이라면 역대 시즌 기록을 전부 다 깰 수도 있을 걸? 이건 정말 헬라포머스의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퍼지데이가 2지역을 클리어하면 이 놀라운 결과가 또 한 번 달라질 터였다.
* * *
멤버들은 방어전에 돌입했다.
저장소 허브로 이어지는 4개 방향의 통로에는 각기 NPC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아니, 이렇게 가벼울 수가…?”
“지옥에서 나온 광물로 만들었다고 해서 좀 그랬는데 이건 진짜 혁신이야.”
“익숙해지면 예전 장비는 다시 못 쓰겠는데?”
“무기만이 아니라 이런 광물자원을 지구에 보낸다고 생각해봐. 세상이 완전 달라질 거라고!”
그들은 새로 지급 받은 장비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전투를 눈앞에 두고 있는 분위기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멤버들의 등장과 함께 더욱 희망적으로 바뀌었다.
“오오…! 헬라포머스 부대!”
“이 장비도 전부 헬라포머스 덕분이라며?”
“죽을 각오로 자원했지만 여러분 덕분에 희망이 생겼습니다!”
“헬라포머스에 영광을! 인류에 축복을!”
“헬라포머스! 헬라포머스! 헬라포머스!”
격양된 찬사에 멤버들은 물론 시청자들의 입가에도 웃음이 걸렸다.
-아 ㅋㅋ 이집 NPC들 처신 잘하네
-누구 덕인지 너무 잘 아는 것이고요?
-뭐예요? 배은망덕한 ㅈ간들은 어디갔어요!?
-ㄹㅇㅋㅋ 보통 게임 NPC들은 일 시키기만 하는데 ㅋㅋㅋ
-이러니까 지킬 맛이 난다 이마리야
그러나 NPC들의 환호가 사그라지면서 다들 상황을 인지했다.
“으음, 1지역이랑 다르게 군인들이 분리되어있지 않네요.”
“맞소이다. 자칫 잘못하면 이들이 다치겠구려.”
“어느 한 쪽만 뚫려도 피해는 불가피할 겁니다.”
-아 맞네?
-1지역에서는 전초기지가 좀 멀어서 괜찮았는디;;;
-여긴 바로 앞이라 더 위험함 ㅎㄷㄷ
-그나마 장비 업글해줘서 다행이긴 한것인디요?
-그래도 사상자가 나오긴 할 듯…
1지역의 방어전과는 다른 양상이 될 터였다. 이에 다들 우려를 표하자 이경복이 말했다.
“다들 맡은 통로만 잘 지키면 문제없을 겁니다. 오기 전에 막으면 되니까요.”
“으음…! 그래요!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게 사부님의 지론이시니까!”
“퍼플 경의 마음가짐은 언제나 본받을 만하오.”
“오케이! 솔직히 다른 멤버면 몰라도 이런 구성이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자, 드가자!”
이에 멤버들도 의욕을 내며 각자 자리를 잡았다.
-자! 드가자잉!
-크으 ㅋㅋ 역시 마인드셋이 다른 거시고?
-퍼지데이면 킹능성 이따!
-이클 경쪽 NPC들 어디 감?
-옼ㅋㅋㅋ 완전 입구막기 하려는 거네
-NPC 보조도 필요 없다는 상기사 ㅎㄷㄷ
-상기사는 뭔데 ㅋㅋㅋㅋㅋㅋ
NPC들도 배치가 끝나자 이경복이 입을 열었다.
“자, 다들 아시겠지만 장소 특성상 전략적인 측면보다는 실력싸움이거든요? 임기응변이 중요하니까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은 바로! 얘기를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넵! 알겠슴다!”
“귀를 열어두겠소!”
“옛썰!”
이경복은 그에 바로 터렛을 설치했고 다른 멤버들도 안드로이드 부대를 배치했다.
그 결과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흘렸다.
-이런 장소면 터렛이 든든하긴 해 ㅋㅋ
-ㄹㅇㅋㅋ 싹쓸어다스 쌉가능
-데눈나 칼각 ㅁㅊㄷㅁㅊㅇ
-데학원생과 조교들.jpg
-이클 경 입구막기 솜씨 보소 ㅋㅋㅋㅋ
-아닠ㅋㅋ 추놈 뭔뎈ㅋㅋㅋ
-곡사포를 또 눕혀버리기 ㅋㅋㅋ
-이클 경 대신에 바리케이드를 ㅅㅂㅋㅋㅋ
-추하게 또 갓플 아이디어 배껴버리고?
-컨닝 무냐구웃!
개중 지놈은 이전 갱도 발파 때 썼던 전법을 그대로 차용했다. 이에 시청자들이 놀리자 그가 당당히 말했다.
“어허, 컨닝이 아니라 전략 공유입니다만? 대장님이 유용한 방법을 알려주셨는데 당연히 써야죠!”
“그렇죠. 그런데 좀 다듬자면 바리케이드가 이클 경처럼 버틸까 싶거든요? 안드로이드 일부는 시즈모드 푸시고 바리케이드 뒤에 배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이경복이 동조하며 다시 조언하자 지놈이 급히 배치를 바꾸었다.
-추이츠www 베끼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www
-ㅉㅉ 그대로 복붙하니까 발전이 없지!
-추놈 또 너야?
-바로 과학증명 해버리기 ㅋㅋㅋ
채팅창에 다시 웃음이 차올랐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멤버들과 NPC들도 곧 얼굴을 굳혔다.
“발소리가 들리는구려.”
“사부님…!?”
“네, 적들입니다.”
통로를 따라 들려오기 시작하는 발소리들 때문이었다. 그와 더불어 전해져오는 진동은 적의 숫자가 적지 않음을 알려주었다.
“먼저 교전 개시하겠습니다!”
가장 사정거리가 긴 지놈이 곡사포를 발사하며 전투 개시를 알렸다. 연이어 들리는 파공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나며 어두운 터널을 밝혔다.
“아, 악마들이다!”
“전원 전투 준비이이이이!”
“쓰레기들아, 가라!”
“전부 노예로 삼아주마!”
NPC들과 악마들의 고함이 동시에 귓가를 때렸다. 이윽고 삽시간에 모든 통로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물량러쉬 보소 ㅎㄷㄷ
-뭐임? 저거 중간보스 아님?
-헐ㅋㅋㅋㅋ 굴착슈트넼ㅋㅋㅋ
-다행히 파리는 아닌 것이고?
-악마쉑들 총력전이네 ㅅㅂ
나타난 적들은 마인과 헬 정크만이 아니었다. 악마 감독관 중 일부는 총감독관이 쓰던 굴착슈트를 착용하고 돌진해오고 있었다.
그 위력을 이미 봤던 바, 다들 순간 우려했지만.
-옼ㅋㅋㅋ NPC들 왜케 잘 싸움?
-장비 업글한 보람이 있구요?
-마인들은 그냥 맡겨도 될 덧?
-물량에는 물량이다 이마리야!
-정크랑 슈트만 잘 처리하면 그냥 이길지도?
NPC들의 활약에 실질적으로 멤버들이 상대해야 할 적은 헬 정크와 굴착 슈트였다.
멤버들 역시 그를 눈치챘다.
-크으 ㅋㅋ 다들 바로 파악 끝냈네
-근데 갓플은 터렛 하나로 막을 수 있나?
-옼ㅋㅋㅋㅋㅋ
-너무 잘 막는 것인디요?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냐곸ㅋㅋ
이경복은 터렛 하나로 저 공세를 막아야 했다. 그에 채팅창에 잠시 걱정하는 말들이 올라왔지만 곧 사라졌다.
정작 이경복은 바리케이드에 걸터앉은 채 편안하게 고개만 돌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 의원님들 나중에 엔지니어 한 번 꼭 해보세요. 레이저 이거 진짜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그 태도와 달리 그가 맡은 상황은 평온과는 정반대였다.
“끄아아아아악!”
“이런 빌어먹을! 피해!”
“멍청한 쓰레기들아! 숙여!”
오버클럭된 터렛은 무서운 속도로 탄환을 쏟아내고 있었다. 쏟아지는 탄막 사이로 새로 부착된 레이저 파츠는 굵직한 광선을 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광선은 정확히 굴착 슈트의 탑승자만 관통하고 있었다.
-무친ㅋㅋㅋ 정확도 무엇?
-아닠ㅋ 다른 데 다 치열하게 싸우는데ㅋㅋㅋㅋ
-누가 봐도 그냥 AR게임 하는 사람 아님?
-퍼이츠www 혼자 즐겜모드인www
-근데 또 판단이 개쩔긴 해 ㅋㅋ
-ㄹㅇㅋㅋ 굴착슈트 넘어져서 장애물 되는 거 보소
-퍼펙트 스노우볼 굴러갑니다잉?
탑승한 악마만 처리했기에 굴착슈트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다른 곳은 파손되지 않았기에 그 부피 자체로 장애물이 되었고, 헬 정크와 마인들은 굴착 슈트의 양옆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일종의 ‘병목현상’이 발생했고 NPC들은 그쪽으로 화력을 집중할 수 있었다.
“아니, 이 정도면 1지역 방어전보다 오히려 쉬운데요? 터렛 날린 것도 아니라서 충전할 필요도 없으니까.”
이경복은 시야를 전환하며 설명했다. 그리고 그 말을 증명하듯 터렛에서 오버클럭 드론을 탈착해 다른 멤버들 쪽으로 돌렸다.
“오! 뭐야?”
“버프 받고 싶으셨다면서요.”
“와! 미쳤다! 사부님 최고예요!”
가장 먼저 수혜를 받은 건 데시벨이었다. 그녀는 경탄과 함께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안드로이드에 비해 차징라이플에 응축된 광선의 굵기가 확연히 차이가 나지 않나. 그리 응축된 광선은 굴착슈트의 탑승자를 정확히 노렸다.
“햐, 버프 진짜 대박! 아니, 이렇게 좋은 걸 이클 경만 쓰고 계셨네.”
“데시벨 경께서 맛을 보셨구려. 양보는 하겠지만 독차지는 삼가주시오!”
이클립스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꾸하자 시청자들이 웃음을 흘렸다.
-버프 신경전 뭔데 ㅋㅋㅋㅋ
-엌ㅋㅋㅋ 퍼펙트 버프 못 참지
-오버클럭이 진짜 퍼며드는 거 아니냨ㅋㅋㅋ
-ㄹㅇㅋㅋ 퍼며들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니깐!
-아주 그냥 보약이야 보약!
이경복도 두 사람의 대화에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버클럭 2개로 가져올 걸 그랬네요.”
“오! 그러면 되겠구나! 사부님이면 동시 오버클럭도 하실 테니까!”
“그래도 배리어를 쓸 데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소이까.”
이클립스는 가볍게 말했지만 이경복은 담담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그럴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 배리어 드론을 하나 챙겨둔 이유가 있었다. 직감적으로 교체를 해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더 좋은 선택이라는 직감은 들지 않은 덕이었다.
‘아마 필요한 때가 있겠지.’
이경복은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 * *
악마들의 습격은 그 뒤로도 2번이나 이어졌다. 다시 나타날 때마다 적들의 숫자가 늘어났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악마쉑들 바리케이드까지 오지도 못 하넼ㅋㅋㅋ
-킹직히 굴착슈트 많이 보내면 악마들만 손해임 ㅋㅋㅋ
-ㄹㅇㅋㅋ 길막 너무 잘해버리자너 ㅋㅋㅋㅋ
-오히려 헬 정크가 앞으로 못 나오는 것이고?
-근데 이것도 퍼지데이니까 가능한 거 ㅋㅋ
-진짜 ㅋㅋ 다른 사람이면 이미 이랏샤이마세 했지
-이번에도 NPC 전원 생존각일 듯?
-1지역 방어전 보면 이제 마지막 러쉬 같은디요
다들 이제 남은 습격은 한 번뿐일 것이라 짐작했다. 이에 멤버들도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확실히 스펙 업그레이드하니까 편하긴 하네요.”
“음, 퍼플 경의 조사 성과가 더욱 반영이 되니 말이오.”
“하긴 퍼센트 버프라서 지금이 좀 더 실감이 나긴 하죠.”
다들 헬 메탈을 투자한 효과를 느끼고 있었다. 멤버들과 시청자들 모두 승리를 확신하는 도중 또다시 악마들이 나타났다.
“에이, 이번에도 비슷하네요.”
“흠, 무난히 마무리가 되겠소이다.”
-이거는 끝났네 ㅋㅋㅋ
-수고하셨슴다!
-오케이 캇!
-생각보다 너무 쉬웠고?
이전과 같은 구성의 적들을 보며 다들 안도했다. 하지만 이경복은 눈가를 찌푸렸다.
‘뭐지?’
드론의 스캔 범위, 미니맵에는 표기가 되지 않았지만 통로와 통로 사이에서 적의가 느껴졌다.
이에 그가 신경을 곤두세우자 그쪽에서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데시벨 님! 가운데!”
이경복의 경고와 동시에 그와 데시벨이 맡은 통로 중앙의 바위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 뒤에서는 굴착슈트를 앞세운 감독관들이 튀어나왔다.
-???????
-뭐임? 대체 뭐임?
-무친;;; 저길 뚫고 온 거?
-막판에 변칙패턴?!
-와씨 별동대를 보내?
-으아 앙대!
데시벨이 그에 놀라 바로 사격방향을 돌렸다. 하지만 감독관들이 발사한 화염구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NPC들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든 화염구는 이내 폭발했다. 그에 채팅창이 탄식으로 물든 순간.
“사, 살았다…!”
“감사, 감사합니다!”
폭발 뒤에서 NPC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 앞에 아슬아슬하게 배리어가 형성된 덕이었다.
“퍼플 경? 무슨 일이오!?”
“괜찮습니다! 처리했어요!”
“와, 저 진짜 놀랐어요…!”
이경복과 데시벨이 남은 별동대까지 전부 처리하고 나서야 시청자들도 안도할 수 있었다.
-깜짝 놀랐다데스 ㅋㅋㅋㅋ
-데눈나 맴이 내맴이다 이마리야
-갓플의 반사신경은 세계 최고오오오오!
-와 근데 진짜 빨랐음ㅋㅋㅋ
-ㄹㅇㅋㅋ 미리 알고 있는 줄ㅋㅋ
-???: 플랜트 위키 보고 왔네~
-???: 더럽게~ 더럽게~ 보고 왔네
-진심 갓플 아니면 공략보고 왔다고 생각했을 듯 ㅋㅋㅋ
빠르게 올라오는 채팅에 지놈이 슬쩍 첨언했다.
“아니, 솔직히 저도 미리 알고 있었는데 반응 못 했잖아요. 별동대가 있는 건 아는데 이게 또 나오는 방향은 랜덤입니다. 확률로 찍어도 25%에요!”
“저도 찍은 건 아닙니다. 소리가 들려서 알아차렸거든요.”
지놈은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한 말이었지만 이경복에게는 그것이 오해였다.
그리고 그 설명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번졌다.
“그, 굴착 슈트에 드릴 소리 있잖아요? 그게 좀 다르게 들렸습니다. 아무래도 허공에서 도는 거랑 벽을 파는 건 차이가 있거든요.”
이경복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했지만 물음표는 더 많이 늘어났다.
“이 포화 속에 벽을 파는 소리가 들렸단 말이오?”
“아니, 사부님? 그게 어떻게 들려요?!”
“캬! 드론 스캔 왜 합니까? 우리 대장님이 귀로 스캔을 해주시는데!”
-아닠ㅋㅋ 진짜 그게 어떻게 되는뎈ㅋㅋ
-그게 보여요에 이은 그게 들려욬ㅋㅋㅋ
-방송 보는 우리도 시끄러운데 저기서 소리 구별을?
-이 형 퍼펙트 센스가 쩔긴 햌ㅋㅋㅋ
-엌ㅋㅋ 장인해부학때 생각나넼ㅋㅋ
-진짜 ㅋㅋ원딜테스트 때 개지렸는뎈ㅋㅋㅋ
-추하게 시청자 드립 스틸 그만하라고!
-퍼펙트 스캔 ㅁㅊㄷㅁㅊㅇ
감탄과 웃음 속에서 나머지 적들의 처리도 곧 끝났다. 예상대로 마지막 습격이었는지 화면이 전환됐다.
“와! 끝났나 봐요! 완승임다!”
“후, 아무도 다치지 않았구려!”
“아,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그에 다들 자축하다가 곧 의아해했다. 화면이 바뀌었는데 장소가 전초기지가 아니라 여전히 저장소 허브가 아닌가.
“몸이 움직이지 않는구려.”
“헐? 혹시 또 버그 아닌 버그?”
통제권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보는 화면이 컷신이라는 뜻이었다.
“우리가 이겼다!”
“헬라포머스 만세!”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니…”
이에 다들 의심하는 와중이었지만 NPC 군인들은 기쁨을 만끽했다. 그런데 갑자기 NPC들이 풀썩 쓰러지는 게 아닌가?
-???????????
-갑자기 왜 이래?
-이번에는 찐 버그아녀?
-아니 ㅋㅋ 왜 잘 풀리면 이러는뎈ㅋㅋㅋ
-개발사 다시 나오세욧!
-그랜절… 해야겠지?
반면 컷신 속 멤버들은 멀쩡히 서 있었다. 시청자들은 그에 버그라 확신했지만 지놈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버그는 아닙니다.”
그의 공언에 뭔가 싶은데 끼익거리는 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곧바로 멤버들이 경계 태세를 취했지만 화면에 잡힌 건 웬 노인이었다.
“휠체어? 환자이신가?”
“으음, 평범한 인간은 아닐게요.”
-아 ㅋㅋ 버그가 아니라 이벤트였네
-이클 경 판단 조코조코 ㅋㅋ
-진짜 ㅋㅋ 지옥에 평범한 할배가 어디있냐고 ㅋㅋㅋ
-누가 봐도 수상하쥬?
-그 와중에 데눈나는 또 속을 뻔ㅋㅋㅋ
컷신 속 캐릭터들도 시청자들과 똑같이 판단한 모양인지 바로 공격을 감행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쏘아진 광선과 유탄은 노인의 앞에서 힘을 잃고 사라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상황에 다들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짧게 이야기를 끝내지…”
노인의 입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 앞에 공격이 날아들었음에도 무심한 눈빛이었다.
“나태의 대악마, 벨페고르라고 하네…”
늘어지는 목소리와 달리 그 내용은 모두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엥? 대악마?! 대악마가 왜 나와요!?”
“분명 상대는 바알세불이라 생각했소만…!”
-뭐임? 바로 보스전임?
-어뜨케 된 겨 어뜨케 된겨!?
-바알세불은 페이크 보스여따!?
-아니;;; 공격 안 통하는 보스가 어딨냐구욧!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다들 놀랐지만 이경복은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벨페고르가 보여준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싸우자고 온 건 아닐세… 오히려 도와줄 생각이지…”
벨페고르는 자신이 인류의 아군임을 주장했다. 다들 그에 더욱 혼란스러워했지만 이경복은 확신했다.
‘진짜야.’
실제로 벨페고르에게서는 긍정적인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