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7화 – 헬트리피케이션 (9)
나태의 대악마라는 이름에 다들 경계했다.
“도와주러 왔다고요?”
“허, 악마가 무슨 연유로…?”
-대악마가 인류를 왜 도와줌?
-이건 데학원생도 안 속지 ㅋㅋ
-엌ㅋㅋ 딱 봐도 통수 아님?
-5252, 통수의 대악마 타이틀은 이미 추놈이 차지하고 있다구웃!
-악마를 믿음? 추놈킥!
-ㄹㅇㅋㅋ 그냥 나태의 대악마나 하시라구요
-나태라고 말 늘어뜨리는 거 킹받네 ㅋㅋㅋ
이미 신기로 짐작한 이경복과 게임을 아는 지놈만이 담담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나는 아무 것도 안 했네… 싸울 필요야 없지 않나…?”
이어지는 벨페고르의 말에 다들 어리둥절했다. 벨페고르가 나타나자마자 NPC들이 풀썩 쓰러지지 않았나.
개발사도 그런 의문을 예상했는지 벨페고르는 쓰러진 이들을 향해 눈을 돌렸다.
“이 인간들은 스스로의 나태에 사로잡힌 것이지… 나를 본 것만으로도 그렇게 되더군…”
-앗…!
-아 ㅋㅋ 벨페고르쉑 우리 집에도 찾아왔네
-ㄹㅇㅋㅋ 내가 트수인 이유는 저 할배 때문이자너 ㅋㅋ
-그냥 트수들이 게으른 거 아님?
-쓰읍! 악마 탓이라니깐!?
-너 벨페고르니?
시청자들이 농담을 하는 사이 벨페고르의 눈은 멤버들 쪽으로 향했다.
“그대들처럼 의지가 강한 이들은 제외라네…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지… 더 길어지면 숨 쉬는 것조차 그만 둘 만큼 나태해질 테니…”
그 말과 함께 허공에 불타는 글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지옥에 떨어진 죄인을 벌하거나 고통을 주는 건 귀찮은 일이다.
그렇다고 적을 늘리고 싶지도 않다.]
[지옥이 변화하고 있다.
악마들이 과학기술을 이용하겠다면서 일을 늘리고 죄인들을 데려간다.
이대로는 더 귀찮아질…]
불길이 사라지며 재가 된 글자는 곧 낡은 양피지에 박혀 잉크를 대신했다.
눈앞에 나타난 2장의 양피지에 멤버들은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설마 지금 귀찮다고 글로 써온 거예요?”
“나태함에 빠져 싸우는 것조차 귀찮아졌다는 것이구려.”
“그런데 왜 여기 나타난 걸까요?”
-귀차니즘의 극의!
-아닠ㅋㅋ 이제 보니까 글도 쓰다 말았네
-컨셉 확실한 거 보소 ㅋㅋㅋㅋ
-작심삼일인 나, 대악마보다 나을지도?
-진짴ㅋㅋ 그 귀차니즘까지 뚫고 왜 온 거냐곸ㅋㅋ
이내 양피지가 불타 사라지고 벨페고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걸 썼을 때는 아무도 대악마들을 이기지 못하리라 생각했지… 하지만 그대들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네…”
이윽고 새로운 양피지가 불길과 함께 나타났다. 그것도 3가지 종류였다.
“다른 대악마들이 사라지면 귀찮은 일도 사라지겠지… 그대들이 날 귀찮게 하지 않겠다면 힘을 빌려주겠네…”
-엥? 진짜로 도와주는 거임?
-5252, 진짜 추놈의 대악마였던 거냐구웃!
-통수가 아니라 추놈으로 쓰는 거 뭔뎈ㅋㅋㅋㅋ
-아아, 추놈이 통수의 대명사니까(끄덕)
-알고 보니 외주의뢰였구요?
-나태의 악마와 아웃소싱, 의외로 어울릴지도?
멤버들은 눈앞에 나타난 양피지 내용을 훑었다. 이내 데시벨이 먼저 소리를 높였다.
“아! 저 이거 알아요! 로그라이트 게임에서 많이 나오는 거잖아요! 막 유물 같은 걸로!”
“크으! 데시벨 님이 또 경험이 있으셔서 바로 눈치채셨네! 다들 보셔서 아시겠지만 그냥 좋은 건 아닙니다. 득이 있으면 실이 있다, 등가교환이거든요!”
“흠, 과연 악마의 계약이라는 것이구려.”
“아, 선택을 마치면 바로 보스전으로 넘어간다고 되어 있네요. 보스전 대비, 3번째 페이즈를 대신하는 느낌인 것 같습니다.”
계약을 선택하면 보스전이 시작된다. 그에 채팅창에도 의견이 분분해졌다.
-피해량 증가랑 공속 감소? 이걸 왜 씀?
-한방 캐면 쓸 수 있지 ㅋㅋㅋ
-이거 하면 데눈나가 득 볼 듯?
-ㄹㅇㅋㅋ 차징라이플로 모아서 쏘니까
-반대로 이클 경이랑 추놈이 불이익을 받는 거자너;;
-쿨타임 감소랑 테크 기능 삭제는 좀 에바 아님?
-이거는 나가리네 ㅋㅋㅋㅋㅋ
-랜덤 스킬 삭제 누가 하냐곸ㅋㅋㅋ
-만해의 갓플이라면 또 다를지도?
-디버프 효과 감소랑 회복 효과 감소는 뭐임? 회복이 있나?
-소모품 얘기하는 듯?
-3개 다 까다로운 것이고?
그 사이 이클립스가 슬쩍 계약서 하나에 손을 뻗었다.
“으음… 팔에 무게 추를 단 것 같구려.”
“헐, 그래요? 체감 부하가 걸리는 방식인가 보다.”
“저는 게임을 아니까 의견은 생략하겠습니다. 대신 한 말씀만 드리자면 저희 전체에게 적용 되는 거니까 신중하게 골라주세요!”
멤버들 전원이 투표해야 결정이 되는데 투표 전에 체험이 가능했다. 이클립스가 체험한 건 피해량 증가와 공격속도 감소 효과의 ‘무거운 몸’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자 이경복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제일 낫지 않아요? 등가교환이 아니라 그냥 이득인데.”
이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이경복이 택한 건 ‘변하지 않는 몸’, 디버프와 회복효과에 관한 계약서였다.
“음… 확실히 회복제 같은 게 필요하다고 느껴진 적이 없긴 하네요.”
“공격이야 막거나 피하면 되는 것이니 말이외다. 더욱이 퍼플 경께서 또 보조를 해주시지 않소?”
두 사람은 그에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지놈은 슬쩍 눈치를 봤다.
“아니, 그… 이건 스포인가 애매한데요. 다른 사람들이면 저도 동의하겠는데 이 계약은 대장님한테 특히 불이익이 될 겁니다. 나중에는 수리용 드론도 나오거든요? 그 때가 되면 이 선택은 저희 모두의 불이익이 될 겁니다!”
그 설명에 동조하던 시청자들도 생각을 바꾸었다.
-아닠ㅋㅋ 결국 갓플을 위한 게아니라는 거냐곸ㅋㅋ
-그새를 못 참고 또 추했다?
-근데 또 맞말이긴 하짘ㅋㅋ
-서폿이 너프 먹으면 전체 너프 먹는 게 맞긴 해 ㅋㅋㅋ
-로그라이크면 이거 엔딩까지 적용되는 거 아님?
-코옵게임에서 혼자 너프 먹는 건 쵸큼;;
-그냥 계약 ㄴㄴ 하죠?
“흠, 필수가 아니라면 넘어가도 좋겠소이다.”
“아, 그쵸. 저희들끼리도 잘했는데요, 뭐.”
멤버들 역시 의견을 바꾸었다. 하지만 이경복은 바로 손을 내저었다.
“걱정해주시는 건 고마운데 괜찮습니다. 큰 문제없을 거예요.”
모두의 우려와 달리 나쁜 느낌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
“다들 아시듯이 드론 조작에는 미니 게임 같은 게 따라오잖아요? 효과가 줄어들면 더 빨리, 더 많이 하면 됩니다.”
멤버들은 그에 눈을 크게 떴다가 곧 미소를 지었다
“아, 진짜 이게 또 말씀하시는 게 사부님이시니까 혹하네.”
“퍼플 경께서 그리 자신하신다면 믿을 수 있지 않겠소이까.”
“맞습니다. 대장님이 또 지금까지 쇼 앤 프루브를 해버리셨으니까 말이죠.”
다들 마음을 돌리자 이경복도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정 걱정되시면 다들 잘해 주시면 되지 않을까요? 피해가 없으면 수리도 필요 없는데.”
“으음… 노력은 해 보겠소만…”
“에이, 이클 경! 대장님이 넝담하신 겁니다! 넝담!
“아니, 사부님도 농담이 심하시네! 저희는 사부님이 아니잖아요!”
멤버들도 그에 맞장구를 쳐주며 웃음 지었다.
* * *
계약서 선택을 마치자 벨페고르는 포탈을 열어주었다. 그 너머는 레일이 깔린 커다란 터널이었다.
-바알세불 있는 곳으로 연결된 듯?
-막 뒤에서 광차 덮치는 거 아님?
-통수 의심 멈춰!
-근데 통수여도 퍼지데이는 안 당함 ㅋㅋㅋ
-ㄹㅇㅋㅋ 사플장인이자너
-퍼머즈 청각 수듄ㅋㅋㅋㅋ
-할배요;; 요즘 애들 소머즈 몰라요
멤버들은 바로 레일을 따라갔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플랫폼이 보였다.
“악마들이 있네요.”
“바로 보스랑 싸우는 건 아닌가봐요.”
“졸개들을 먼저 처리해야 되는 게 아닌가 싶구려.”
앞서 보낸 드론이 적을 감지했다. 미니맵에 표기되는 붉은 점에 다른 멤버들도 경계를 갖췄다.
그리 신속히 통로를 따라가니 악마 감독관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알세불이시여! 부디, 부디 조금만 더 시간을⋯!”
“공물이 곧 도착할 겁니다!”
“초, 총감독관께서 직접 나서주셨으니⋯!”
떨리는 목소리에서 간절함과 공포가 느껴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대답이 아니었다.
통로를 따라 찢어지는 비명이 울리자 멤버들은 눈을 크게 뜨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니, 자기 부하를 지금⋯?”
“흠, 역시 대악마라고 해야 할지⋯”
“참을성이 없긴 하네요.”
-무친ㅋㅋ 바로 쓱삭했네
-즉.시.끔.살
-ㄹㅇㅋㅋ 명색이 탐욕의 대악마인데 기다리겠냐고
-기다리면 얼탱이 없긴 할듯ㅋㅋㅋㅋ
-바알세불: 한 번만 봐드리는 겁니다?
-킹치만 퍼지데이가 밖에 있었쥬?
-역끔살각 나와버리고?
멤버들은 고요해진 통로를 가로질렀다. 이내 나타난 넓은 공간에는 산처럼 광물이 쌓여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널찍한 제단이 솟아나 있었고 그 주변에는 감독관들이 신음조차 흘리지 못한 채 부들거리고 있었다.
“으아⋯ 뭐예요 이거?”
“독에 당한 모양이오.”
감독관의 몸은 검게 변색되어 썩어가고 있었다. 그 양상에 다들 질색하는 와중 공기가 진동했다.
“공물은 어디에 있느뇨?”
이어 들려온 목소리는 마치 속삭이는 듯 작았지만 묘하게 신경을 거스르는 느낌이 들었다.
“아, 이거 모기나 파리가 귓가에서 앵앵대는 그거네요.”
-엌ㅋㅋ 맞넼ㅋㅋㅋㅋ
-뭔가 짜증난다 했는데 ㅅㅂ
-막 잠들려는데 이런 소리 들으면 개빡침 ㅋㅋㅋㅋ
-파리대왕이라고 볼륨을 이렇게 맞춘 거네 ㅋㅋㅋㅋ
-뭐예요? 이런 디테일 살리지 말아요!
당연하게도 멤버들에게 공물이 있을 리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바알세불은 재차 속삭였다.
“공물이 없다면 너 자신을 바쳐라. 썩은 육신에는 아무도 욕심내지 않을지어다.”
그 대사에 모두가 보스전이 시작될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정작 바알세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제단 아래에 숨어있는 건가?’
다들 그에 눈을 돌렸지만 이경복은 그 위치를 느낄 수 있었다. 이윽고 느껴지는 적의와 더불어 증식하는 숫자가 느껴졌다.
“부패하라, 그리하여 나의 소유가 될지니.”
바알세불의 목소리와 동시에 제단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수많은 파리드론들이 쏟아져 나왔다.
“으아! 개극혐!”
“조심하시오!”
“다들 대비하십쇼!”
멤버들은 즉각 공격 준비를 했다. 하지만 쏟아진 파리 드론이 향한 곳은 멤버들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제단 주변에 널브러진 감독관의 시체로 파고들었다.
-뭐임? 언데드임?
-이러려고 미리 죽여 둔 거였고?
-근데 너무 어기적거리는데 ㅋㅋ
-화염구도 못 쏘는 거 아닌가?
-ㄹㅇㅋㅋ 오히려 너프가 된 거시고?
-5252, 워밍업이라도 시켜주는 거냐구웃!
-파리쉑 ㅋㅋ 친절한 거 보소
검게 변색된 악마들의 시체가 일어나 멤버들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것뿐, 달리 공격적인 행동은 없었다.
“소인이 처리하겠소이다!”
언제나 전방을 맡았던 이클립스가 바로 부스트로 돌격했다. 하지만 그가 무기를 휘두르기 직전 그 앞을 배리어가 가로막았다.
“퍼플 경?!”
“어씨!? 뭐야!? 터졌어요!”
왜 그러나 싶었는데 시체가 그대로 배리어에 몸을 던지며 폭발했다. 더불어 검은 체액이 주변에 흩뿌려지며 부글거렸다.
“자폭이네요. 게다가 이속 감소 효과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자폭병들도 느려지는 거 보이시죠?”
이경복의 말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이미 정체를 알고 있던 지놈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대장님 자폭할 줄 어떻게 아셨어요? 저도 말을 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스캔이 다시 되는 걸 보니 평범한 감독관과는 다른 악마고, 원거리 공격을 안 해오니까 자폭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옼ㅋㅋ 스캔 판단 조아따
-진짜 이 형은 순발력이 ㅁㅊㄷㅁㅊㅇ
-이게 바로 퍼펙트 보조다 이마리야
-캡틴 퍼펙트만 믿고 따르라구웃!
이경복의 대답에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크으! 역시 대장님이십니다! 이게 보스전 1페이즈거든요! 사실 제가 벨페고르 계약 때부터 쭉 참았는데, 디버프 감소가 이번 보스전에 정말 좋거든요!”
“과연⋯! 소인이 부주의했소이다.”
“그럼 제가 대신 처리하겠슴다!”
데시벨이 대신 총구를 겨누자 이경복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아뇨, 그냥 처리하면 지역 전체가 다 체액으로 덮일 겁니다.”
“헛, 맞네! 그럼 어쩌죠?”
-오 먼저 슬로우 장판 까는 기믹이네
-ㄹㅇㅋㅋ 자폭 뎀 보다는 그게 메인인듯
-킹치만 갓플이 바로 관통해버렸고?
-진짴ㅋㅋ 이형은 겜 센스가 너무 좋자넠ㅋㅋㅋ
-근데 안 잡을 수도 없잖슴?
시청자들은 어쩌나 싶었지만 이경복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제가 구석으로 시체들을 유인할 테니 몰아서 처치하죠.”
“사부님이요?”
“대장님, 엔지니어 체력이면 진짜 위험하신데?”
“아니, 소인이 가겠소이다. 위험을 감당하는 건 소인의 의무요.”
이경복의 자원에 이클립스가 다시 나섰다. 하지만 그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경복은 긴 설명 대신 바로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클 경은 너무 커서 안 됩니다. 그리고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는 가볍게 앞으로 달려 나가며 손을 움직였다. 그와 함께 배리어 드론이 발밑에 붙어 발판을 형성했다.
-WA! 슈퍼보드!
-천마군림보 ON!
-엌ㅋㅋㅋㅋ 이걸로 어그로를ㅋㅋㅋ
-일본에서 샌드보드도 잘 타더니 공기보드도 개쩌넼ㅋㅋ
-이것이 미래의 이동수단?(아님)
-와앀ㅋㅋ 개꿀잼일듯
-킹부러! 자기 혼자 재미있는 거 하려고!
이경복은 아슬아슬하게 자폭병 사이를 가로지르며 놈들을 한 곳으로 몰았다. 그에 다른 멤버들은 아찔해하다가도 곧 웃음을 흘렸다.
“햐, 진짜 대장님이 있으니까 소모품을 쓸 필요가 없네. 원래는 배리어 생성장치를 미리 깔아둬서 안전구역 확보하는 게 정석이거든요?”
“오호, 그것도 꽤 좋은 방법이구려.”
“근데 그것도 2회차여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와, 진짜 사부님은⋯”
다들 탄사를 흘리는 와중 준비가 끝났다. 이경복이 자폭병들을 전부 구석으로 몰아 두는 데 성공했다.
“대장님! 이제 나오십쇼!”
“각 나오면 바로 쏘겠슴다!”
대기하던 지놈과 데시벨의 말에도 이경복은 나오지 않았다.
“지금 나가면 다시 흐트러지니까 제가 신호를 드릴게요!”
“퍼플 경?”
“아니, 사부님! 배리어 잔량은요!?”
“이거 잘못하면 팀킬인데⋯!?”
자폭병 몰이를 위해 계속 비행하느라 돌아올 때의 동력을 남겨 두지 않았다. 그가 달려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자폭병은 다시 흩어질 테니 그래서야 몰이를 한 의미가 없어지지 않나.
“괜찮아요! 제가 피하면 되죠! 그럼 갑니다!”
물론 그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그 외침과 함께 자폭병들을 뛰어넘은 이경복은 배리어를 거두고 사뿐하게 착지해 달려왔다.
“쏘세요!”
“아니, 진짜 사부님은⋯!”
“기회를 놓쳐서는 아니되오!”
“에라 모르겠다!”
멤버들은 헛웃음과 함께 공격을 쏟아냈다. 순식간에 쏘아진 광선과 플라즈마, 그리고 유탄 세례가 날아들었지만.
-캬 ㅋㅋㅋㅋㅋㅋ
-회피기동 ㅁㅊㄷㅁㅊㅇ
-무친ㅋㅋㅋ 무슨 액션영화냐곸ㅋㅋ
-폭발을 뒤로하고 유유히 걸어오는 거 너무 클리셰인 거시고?
-이게 그 블록버스터인가 그거냐?
-ㅔ
-클립 못 참아!
그 어느 하나 이경복에게 닿지 못했다. 그 대신 공격에 당한 자폭병들이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검은 체액을 뿌렸다.
“오케이! 장판 컷!”
“와! 이러면 페널티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음! 본 실력을 보일 수 있겠구려!”
기뻐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이경복은 가볍게 로브자락을 정리하며 웃었다.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했잖아요.”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격렬한 진동이 일어났다.
“으아! 뭐야!?”
“조심하시오!”
산처럼 쌓여있던 광물들이 쏟아져 내리고 제단이 바닥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변화에 모두가 직감했다.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나 보네요.”
-파리쉑 밑에 숨어있었던 거?
-옼ㅋㅋ 바로 2페이즈 돌입
-장판 하나도 없쥬? 퍼지데이 컨디션 최상이쥬?
-아 ㅋㅋ 딱 대라
-즉.시.숙.청
-싹빠라다스 대기 중!
-자, 이제 누가 공물을 바쳐야 되지?
본격적인 보스전은 지금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