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화 – 이건 몰랐지? (1)
광산기지, 브리핑 룸.
루시퍼와의 대화가 끝나자 장소가 뒤바뀌었다.
<전초기지에서 루시퍼가 전달해준 정보를 토대로 에너지원을 추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홀로그램 속 의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상황을 전달했다.
<그 루시퍼라는 존재 역시 지옥에 속한 만큼 완벽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그가 전해준 정보 자체는 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지옥불’이 그 연구소에 있으리라 추정된다는 점입니다.>
의회에서 돌아온 답변에 컷신 속 멤버들이 서로를 돌아봤다.
<예, 그렇습니다. 헬라포밍의 궁극적인 목적, 무한 동력의 원천이 될 그 ‘지옥불’입니다. 현재 헬라포머스 부대의 노고로 생산되는 에너지는 그 부산물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아니, 이러면 무조건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흠, 그렇소이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지옥불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니 말이오.”
“지옥불도 확보하고 악마들의 기술발전도 막으라는 거네요.”
시청자들도 멤버들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러면 3지역은 연구소로 확정인 거시고?
-ㄹㅇㅋㅋ 보스도 딱 나와버렸네
-질투의 악마 리바이어던
-뱁새의 악마 ㅎㄷㄷ
-아닠ㅋㅋ 갑자기 없어보이잖슴!
-뱁새가 질투를 잘 하긴 해 ㅋㅋㅋ
이윽고 의원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헬라포머스 부대의 활약으로 인류는 더욱 종말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여러분께서 광산을 점령해주신 덕분에 인류의 전력이 대폭 증대됐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와 더불어 홀로그램이 뒤바뀌며 지구의 모습이 나타났다. 투사된 홀로그램에는 새로이 건설되는 구조물들이 가득했다.
<비단 군수장비만이 아닙니다. 헬 메탈의 여분은 지구로 운송해 자원 부족으로 고통 받던 수많은 난민들을 위해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윽고 홀로그램은 수 많은 사람들을 비춰주었다. 그들은 헬라포머스를 응원하는 팻말과 플랜카드를 들고 카메라를 향해 환호하고 있었다.
<초기에는 반대 의견도 많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인류의 구세주이며 희망임을 모두가 깨닫고 있습니다.>
재차 홀로그램은 의원들로 돌아왔다. 그들은 깍듯하게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전 인류를 대표하여 헬라포머스 부대에 감사와 영광을, 그리고 무운을 바라겠습니다.>
그것으로 메시지가 종료되었다. 이내 컷신도 끝나자 다들 탄사를 흘렸다.
“어우, 뭔가 마음이 찡하네요.”
“이렇게 감사를 표하니 보람이 느껴지는구려.”
“그러게요. 이런 걸 보고 있자니 좀 더 몰입이 잘 됩니다.”
“크으, 이런 게 또 게임을 하는 맛이거든요!”
-킹직히 퍼지데이는 몰입 잘 될 만하긴 해
-ㄹㅇㅋㅋ 이것도 실력이 좀 돼야 몰입이 된다구욧!
-뭣도 모르고 빌빌대다가 겨우 깨놓고 이런 리액션 받으면 민망하자너 ㅋㅋㅋ
-???: 예? 제가요? 희망이요?
-퍼지데이 정도면 헬라포머스 부대중에 정점아니냐?
-진짜 ㅋㅋ 인류의 영웅 취급이 너무 자연스럽고?
시청자들 역시 자기 일처럼 뿌듯해했다. 하지만 곧 채팅창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자, 이렇게 2지역까지 클리어를 해봤습니다. 어제보다 훨씬 재미있었죠?”
“배경도 달라지고 상황이 더 다양하게 연출되니 재미있을 수밖에요!”
“와, 진짜! 확실히 재미있긴 했는데 1지역은 튜토리얼이었다는 걸 확실히 알았어요.”
“음, 고난이 클수록 성취감이 컸소이다.”
멤버들이 방송 마무리를 준비한 덕이었다.
-으아니! 벌써 간다고!?
-이 무슨 악마적인 방종?!
-근데 오늘 알차긴 했음 ㅋㅋㅋ
-ㄹㅇㅋㅋ 연계미션부터 보스전까지 다이렉트로 가버렸자너 ㅋㅋ
-킹직히 시간도 시간인데 1지역보다 피로감이 있긴 할 덧 ㅋㅋ
-게다가 오늘도 레전드 여럿 뽑아버리고?
-도전과제 만들어진 거만 몇 개얔ㅋㅋㅋㅋ
-아 ㅋㅋ 개발사도 패치할 시간은 줘야지 ㅋㅋㅋ
-개발사 배려 방종 뭔뎈ㅋㅋㅋ
시청자들은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수긍했다. 그에 멤버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멘트를 마무리지었다.
“아, 다들 정확히 보셨네. 개발사도 직접 봐주면서 피드백을 해주셨잖아요! 우리도 신경 좀 써드려야지!”
“다들 내일 다시 만나요!”
“지옥정벌은 아직 끝나지 않았소이다!”
“좋습니다. 저희 퍼지데이는 내일! 다시 또 찾아오겠습니다. 즐거운 밤 되세요!”
멤버들의 인사와 함께 방송이 꺼졌다.
* * *
방송이 끝난 후, 지놈의 스튜디오.
“다들 고생하셨어요!”
“예, 사부님! 들어가세요!”
“고생하셨습니다.”
“내일 봅시다잇!”
4명의 멤버들도 각자 인사를 마치고 흩어졌다. 그런데 이경복이 로그아웃을 하자마자.
“사부님, 나가셨어요?”
“그런 것 같습니다.”
“예, 완전히 나갔어요.”
나머지 세 사람이 눈치를 살피며 다시 모였다. 이내 그들은 이경복이 완전히 나간 걸 확인하고 자리를 잡았다.
“으⋯ 사부님 몰래 모이니까 괜히 찔리네요.”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치, 다 같이 얘기할 사안이면 이렇게 할 이유가 없는데.”
이경복을 제외한 퍼지데이 비밀 회의였다. 멤버들은 바로 그 이유를 꺼냈다.
“사부님이 분명 거절하실 테니까요.”
“그렇습니다. 보답한다고 하면 절대 안 받으실 테죠.”
“은혜 갚기도 참 힘듭니다. 그쵸?”
세 사람이 자리를 마련한 건 팀 퍼펙트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다.
“자, 톡으로 간단히 얘기했지만 다들 실감하고 있을 겁니다. 저희 모두 1지역 방송 하고나서 해외 구독자들이 갑자기 늘어났단 말이죠?”
“아니, 전 진짜로 무슨 오류 난 줄 알았다니까요?”
“저도 퍼플 님과 방송하고 몇 번 경험했는데도 매번 놀랍니다.”
지놈이 그에 자연스럽게 상황을 되짚어주었다.
“이게 개발사가 도전과제 만들어준 것도 있긴 한데, 사실 다 느끼고 있잖아요? 팀 퍼펙트 쪽에서 제공해준 소스 덕분이거든.”
“그쵸그쵸, 진짜 저희 편집자도 되게 놀라더라고요.”
“영상 소스 공유하는 거야 흔한 일이지만 확실히 이번에는 경우가 다릅니다.”
본래 스트리머 간 합방에서 서로 영상 소스를 교환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더욱이 크루 멤버들의 합방이라면 필수나 다름없었다.
메인은 당연히 본인이지만 교차편집을 통해 다른 멤버의 리액션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호 교환이 아닌 소스도 있었다.
“아니, 그 정도 스크립트를 번역하면 솔직히 돈 받아야 되는 거 아니야?”
“아, 제 말이요! 사부님은 은근히 이런데 고집이 있으시다니까요?”
“게다가 그 스크립트는 퍼플 님 큐튜브 멤버십 더빙용이지 않습니까.”
해외 쪽에 이슈가 됐다는 걸 팀 퍼펙트 쪽에서 인지하고 자막 스크립트까지 멤버들에게 제공해줬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그거 안 줬으면 해외 시청자들은 퍼튜브로 갔을 게 분명하거든요.”
“아무리 해외 이슈라도 자막이 없으면 선뜻 보기가 어려우니 말입니다.”
“그러니까요! 사부님도 그렇게 양보해주셨으면 뭘 좀 받는 게 인지상정 아니에요?”
이경복은 호의로 제공한 것이지만, 그 호의를 가만히 받고 있을 세 사람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이경복에게 보답을 하기 위해 작당모의(?)를 하게 된 것이었다.
“자, 그럼 어떻게 보답을 하느냐가 문제거든요? 근데 퍼플이 또 돈으로는 안 받을 거란 말이죠.”
“아예 환불 불가능하게 물건으로 드리면 어떻습니까?”
“으음, 근데 그게 또 좀 애매하긴 해요. 취향에 안 맞으면 이게 처리가 난감한 물건이 되니까⋯ 아씨, 이거 사부님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흠, 그럼 감사패라도 만들어 전달을 해보는 건⋯”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전개했다. 그리 여러 이야기를 하던 중 지놈이 가볍게 혀를 차며 말했다.
“쓰읍⋯ 근데 이게 말하다 보니까 또 팀 퍼펙트만 챙기기가 좀 그러네.”
“네?”
“아니, 저도 제 팀이 있잖아요? 물론 걔들도 머리로야 이해하겠지만 또 사람 마음이 안 그러거든.”
“으음, 하긴 그렇긴 하겠습니다. 팔도 안으로 굽는 법이니.”
“어, 저는 뭐 편집자 한 명이라 따로 챙겨주면 되긴 하는데. 지놈 님은 확실히 그렇긴 하시겠네요. 다 같이 즐거운 게 베스트긴 하죠.”
합방에서 다 같이 노력하는데 어느 한쪽만 편애를 받는 건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아무리 합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감정은 별개의 문제였다.
해결책은 커녕 장애물이 추가되자 세 사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다 같이, 다 같이라⋯ 그럼 이런 건 어떨까요? 이번 합방 컨텐츠 끝내고 아예 퍼지데이 팀 전체 회식을 하는 겁니다.”
“회식이요?”
“아하, 비용을 저희 셋이 분담하면 보답의 의미가 되겠군요.”
지놈의 제안에 다른 두 사람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팀원들 전체 회식이면 또 교류에 도움이 될 겁니다. 편집자는 또 편집자끼리, 매니저는 매니저끼리 통하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아! 그리고 브이로그, 브이로그도 찍죠! 컨텐츠로도 활용하면 사부님도 거절 안 하실 것 같은데요!? 물론 얼굴 안 나오게 녹화방송으로요!”
“크으, 데시벨 님이 뭘 좀 아시네. 컨텐츠 각도 당연히 봐야죠!”
“헌데 일정은 퍼플 님 몰래 잡는 건 어렵지 않겠습니까? 막상 저희끼리 정했는데 다른 스케쥴이 있으시면⋯”
이클립스가 조심스레 말하자 데시벨이 짧게 탄식했다. 하지만 지놈은 자신 있게 미소를 지었다.
“에헤이, 일정이야 다 같이 맞춰야죠. 장소 준비는 맡기시고 팀 퍼펙트에도 내가 물어보겠습니다.”
“네? 직접 물어보신다고요?”
“물론 퍼플 본인한테는 말 안 하죠.”
지놈의 말에 두 사람도 곧 웃음을 지었다.
“아, 맞네. 사부님 팀원분들도 서프라이즈에 일가견이 있으시니까.”
“확실히 같은 편이 돼주시겠군요.”
이경복의 팀원들도 비밀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 * *
늦은 밤, 퍼그말리온의 집.
그녀는 다른 팀원들과 보이스톡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확실히 합방이 되면 작업량이 기존보다는 엄청나네요. 다들 너무 고생하신다⋯”
그녀의 걱정에 편집팀이 웃음을 흘렸다.
<에이, 괜찮아요. 우리 소스만 쓰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편할 때도 많거든요.>
<아, 이게 또 코옵을 스트리머들만 하는 게 아니거든. 편집자끼리도 서로에게 배우는 게 있습니다.>
최병훈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클 님 편집자는 진짜 근접전의 프로시거든요? 구도나 효과로 박진감 뽑아내는 게 아주 기가 막힙니다. 이건 나도 그렇고 매드맨, 특히 너한테는 진짜 큰 도움 된다.>
<야야, 나도 알고 있으니까 잔소리 좀 그만해라. 나는 근데 지놈 님 편집자 센스가 더 부럽더라. 아니, 원체 입담꾼이시라서 그런가? 편집자님도 자막이랑 짤 드립치는 게 장난이 아니야.>
<야, 그건 근데 좀 타고나는 부분이 있어서 좀 진득하게 봐야 돼. 데시벨 님 것도 좀 봤어? 역시 리겜러라 그런지 1인칭 시점 활용이 진짜⋯!>
<그치! 덕분에 좋은 자극 받고 있지. 아, 너무 우리끼리 얘기했네요.>
편집팀의 열띤 말투에 퍼그말리온과 조대한은 웃음을 흘렸다.
<아무튼 힘든 거 따지면 솔직히 대한 씨가 더 힘들죠.>
<아, 맞지. 멤버들 잡담에 지금 우리가 포인트로 따는 채팅까지 합하면 스크립트 양이 뭐⋯>
<네? 아이, 아니에요! 코옵게임이라 인게임 대사량은 은근히 안 많거든요.>
대화 주제가 자신에게로 돌아오자 조대한은 겸손히 대답했다.
<인게임 컷신 대사는 미리 다 뽑아놔서 시간 절약도 했고, 멤버분들 대화도 간단한 회화 수준이라 진짜 안 힘듭니다. 지금도 잠깐 쉬면서 해외 커뮤 보고 있는 중이에요.>
<오올! 역시 능력자!>
<크으, 부럽다⋯>
“아, 벌써 해외 반응이 떴어요?”
퍼그말리온이 관심을 표하자 조대한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아유, 말도 마세요. 지금 뭐 리딧은 완전 실시간 수준이에요! 아, 제가 반응 좋은 거 몇 개 미리 번역해서 드릴게요.>
“어? 정말요? 아, 근데 지금 보면 제가 작업을 못 할 것 같아서요. 괜찮으시면 끝나고 나중에 받아볼게요.”
그녀는 기뻐하다가 곧 자제했다. 이에 다른 팀원들도 수긍했다.
<하긴 퍼그말리온 님도 작업 막바지시죠.>
<아, 진짜 중간 과정만 봐도 너무 잘 뽑으셨던데?>
<진짜요! 저도 좀 쉬엄쉬엄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빨리 보고 싶어서 내적갈등 엄청나더라고요!>
<크으, 이거 경복이가 보면 무조건 놀랍니다. 아시다시피 걔가 또 놀래켜주는 맛이 있거든요?>
팀원들의 격려와 기대에 퍼그말리온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퍼플 님도 그렇고 다른 멤버 분들도 그렇고⋯ 시청자분들도 꼭 좋아해주시면 좋겠어요.”
이내 그녀는 조심스럽게 작업물을 캡처해 사진을 올렸다.
“지금은 이 정도인데⋯ 어떠세요?”
<오! 뭐야! 더 미쳤어!>
<햐, 진짜 퍼그말리온 님 디자인은 뭐 말이 필요 없네요.>
<아니, 어떻게 금속 질감인데 매력이 그대로지? 기계가 이렇게 귀여워도 돼요?>
팀원들은 곧바로 극찬을 쏟아냈다. 이에 퍼그말리온은 더욱 자신이 붙었다.
“아마 다음 방송부터는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크으! 이거는 무조건 먹힙니다.>
<장인은 역시 장인이죠!>
<이거는 해외 팬들도 모드 달라고 할 걸요?>
그녀가 준비한 건 바로 헬라포머스의 외형변경 모드에 사용되는 디자인 소스였다.
“이름은 메카퍼무새로 했어요.”
그중에서도 이경복의 드론 외형을 변경하는 모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