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아역의 근황 (2)
시간 맞춰 집 근처에 위치한 고깃집으로 향했다.
숯불이 채워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태 형이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여기라고 말하며 손을 흔들자 그가 히죽 웃으며 다가왔다.
“오래 기다렸어?”
“나도 온 지 얼마 안 됐어.”
돌돌 말린 물티슈를 펼쳐 손을 닦은 그가 북적이는 가게 안을 훑으며 ‘여기 맛집인가 보네’라고 중얼거린다.
그러다 시선을 돌려 나를 빤히 바라본다.
“지난번엔 장소가 장소인지라 말 못 했는데, 오랜만에 봐도 넌 진짜 안 변한다. 나이를 안 먹는 거 같아.”
“형도 그대로야.”
“그대로는 무슨. 엄청 변했지. 이 머리통부터가.”
손가락으로 빈약해진 머리를 가리키는 현태 형.
웃었다간 물티슈가 날아올 거 같아 고갤 숙이고 밑반찬을 뒤적였다.
와 반찬 잘 나온다, 여기.
“젠장. 스트레스를 이렇게 받는데 안 빠질 수가 있나······ 술은 여전히 안 마시지?”
“응. 물 마실게.”
“난 한잔해야겠다. 사장님, 여기 소주 한 병이요.”
가득 채워진 소주잔에 물이 담긴 잔을 부딪쳤다.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진다.
안주와 술이 적당히 들어가자 현태 형의 말이 많아졌다.
방송국을 그만둔 일화부터 영상 제작 회사에 들어와 지금까지.
그의 이야기는 여느 술자리의 패턴이 그렇듯 한탄에서 한탄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골치 아파 죽겠다니까. 크게 다치지 않은 거까진 다행이었는데, 신호 위반이라니. 게다가 사람까지 쳤으니 이번 촬영은 완전 빠그라졌지.”
“예비 출연자는 없어?”
“없어. 이 다음 촬영 예정인 출연자도 스케줄 조정이 안 되고. 제작환경이 방송국 같지가 않거든.”
고개를 내저은 그가 깨끗하게 비운 술잔을 내려놓는다. 젓가락을 들고서 멈칫. 테이블 위를 방황하다가 애꿎은 삼겹살을 여러 번 뒤집는다.
입술을 달싹거리고, 눈알을 마구 굴리며.
지켜보다가 툭 던지듯 물었다.
“그래서. 나 섭외하려고?”
순간, 현태 형이 표정이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다이내믹해진다.
“어, 어떻게 알았어?”
모르는 게 이상하지.
출연자 없단 얘길 하면서 익다 못해 말라비틀어진 삼겹살을 그렇게 뒤집어대는데.
저게 삼겹살이야, 베이컨이야.
“티 엄청 나.”
그러자 허, 하고 헛바람을 내뱉으며 이마를 긁적인다.
나보고 ‘역시 눈치 빠른 자식.’이러는데 어이가 없지.
댁이 포커페이스가 안 되는 거라고.
아무튼, 본론을 멱살 잡고 끄집어내자, 현태 형도 더는 망설이지 않고 내게 묻는다.
“섭외하면··· 나와줄 수 있어?”
“해별이, 백승결로 근황 인터뷰를 해달란 거지?”
빠르게 끄덕거리는 그.
“물론 당장 답해달라는 건 아니고, 쉬운 결정이 아닐 테니 오늘 잘 생각해보고 내일쯤 연락을······.”
“나갈게.”
“그래, 고민만이라도 해주··· 응? 뭐라고?”
얼떨떨한 현태 형의 얼굴을 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나가겠다고.”
“정말?”
“그렇다니까. 엄청 놀라네. 그 정도로 의외야?”
“어. 존나게. 아니, 그렇잖아. 출연하면 어쨌든 옛날 얘길 아예 안 할 순 없을 텐데, 그게 너한텐 힘든 기억들이고.”
“형이 꼬셔야 하는 입장 아니었나?”
“아, 그치. 나 그러려고 나왔지. 야, 너 생각 진짜 잘했······ 잘한 걸까? 아이씨, 막상 바로 오케이 하니까 왜 불안하냐.”
갈팡질팡하면서도 입꼬릴 숨기지 못하는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고갤 주억였다.
“맞아. 힘든 기억 맞지. 맞는데······.”
말문을 열자 자연스럽게 기억들이 머릿속을 채운다.
고작 12살짜리에겐 너무 가혹했던, 논란이라 불리기엔 사냥에 가까웠던 기사들.
이리는 먹잇감을 새끼라고 봐주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매스컴의 이빨에 갈가리 물어뜯겼다.
하지만 그마저도 결국······.
“다 내가 선택한 거잖아.”
“선택? 어린 애가 무슨 선택? 그리고 아역이 기복 좀 있을 수도 있지. 그 개자식들. 처음 영화 그 뭐야, 해별이네. 그거 나왔을 땐 연기 천재니 뭐니 떠들어대더니. 우리나란 그래서 안 돼. 삐끗하면 어떻게든 주저앉혀보려고······.”
현태 형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반박한다.
하긴, 내가 연기 못하는 척을 했다는 걸 모르니 저런 반응이 당연하겠지.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에 맞춰주었다.
“삐끗이라기엔 첫 영화 뒤로 전부 폭삭이었지.”
“그게 솔직히 전부 네 탓일 리 있냐고. 그냥 영화가 망할 만했던 거잖아.”
뭐, 그것도 맞는 말이다.
아역 하나가 연기를 못 했다고 영화가 망할 리 없잖나.
‘그냥 영화 자체가 별로였어.’
그 당시 나에게도 그렇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린 마음에 일부러 그런 영화들만 골랐지.
괜찮아 보이는, 하고 싶은 영화를 고르면 욕심이 생길 것 같아서.
연기 못하는 척하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결과적으로 나는 어쩌면, 풍랑을 피할 수 있었는데도 그곳으로 노를 저은 셈이었다.
거기에 내 어설픈 노 젓기까지 합쳐져 영화라는 배는 완전히 좌초되어 버렸고.
“아무튼 다 지난 일이고. 신경 안 써. 그러니 나가겠다 하는 거고.”
“정말 괜찮겠어?”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재차 묻는 현태 형.
그에게 가볍게 끄덕이며 물잔을 가져다 댔다.
유리끼리 부딪치는 청아한 소리와 그의 고맙다는 소릴 들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의 선택은, 단지 현태 형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어서였을지.
아니면······.
‘실은 내가 자네 얘기했거든. 해별이가 매일 우리 회사 온다고.’
‘이야, 정말 고마워. 집사람이 좋아하겠네.’
‘‘해별이네’가 아내와 첫 데이트 때 본 영화였어.’
잊혀지기 싫다는 미련이 남아 있던 건지.
어느 쪽인진 모르겠지만, 한가진 확실했다.
심장이 뛰고 있었다.
16km를 한 번도 안 쉬고 달린 직후처럼.
#
며칠 뒤, 나는 일해야 할 시간에 트럭 대신 택시에 올라탔다.
현태 형이 제작하는 ‘근황 마라톤’의 촬영을 위해서였다.
촬영장소는 서울 근교 강변에 위치한 카페.
택시에서 내려 카페 쪽으로 걸어가자 안에서 동분서주하던 현태 형이 날 보곤 뛰어나온다.
“왔어?”
“응. 근데 무슨 피디님이 마중까지 나와.”
“백승결님께서 오시는데 당연히 내가 버선발로 뛰어나와야지.”
버선이 아니라 조던인데?
피식 웃으며 함께 걷는다.
“부담되네. 얼마나 잘해야 하는 거야.”
“잘할 필요 없어. 가만히 계시면 우리가 다 뽑아 먹을게.”
“그건 더 무서운데. 그냥 돌아갈까.”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메라를 세팅 중이던 촬영 감독, 헤드셋 한쪽을 들어 올리고 인사하는 음향 감독과 그 밖의 스태프들···.
낯선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서, 나는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혀졌다.
곧바로 아이라인을 관자놀이까지 그린 메이크업 실장이 내 얼굴에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얼마만의 화장인지 모르겠다. 배우를 그만두고서부턴 얼굴에 뭔가를 바르는 일은 없었으니.
그렇게 실시간으로 변하는 내 얼굴을 감상하는 사이, 현태 형이 돌아왔다.
“승결아, 여긴 우리 작가.”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야, 무슨 말씀을 많이 들어. 나 별말 안 했다? 네가 해별이인 것도 최근에야 밝혔다고.”
화들짝 놀라며 해명한 현태 형이 나에게 작가를 붙여놓고는 또다시 사라졌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메이크업 실장과 작가 사이에 앉아 있는 나.
여긴 어디, 난 누구. 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는 표정으로 거울만 바라보는데, 작가가 종이를 슥 건넨다.
“오늘 대략적인 콘티예요. 불편한 이야긴 최대한 안 하실 수 있게 준비했으니 너무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불편한 이야기? 연기 논란 같은 주제는 최대한 자제하겠다는 건가?
끄덕이며 종이를 훑었다.
확실히 옛이야기는 빠르게 정리하고 넘어간 뒤, 현재 근황에 더욱 집중하려는 느낌.
“진행자님께서 승결님을 소개하시면, 인사를 하신 뒤에······.”
작가의 설명을 들었다. 궁금한 건 질문도 해가면서. 덕분에 머릿속에 청사진이 그려지며 인터뷰의 맥이 잡힌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나만.
홀로 카페 구석에 앉아 분주한 모습을 바라본다.
내가 매일같이 택배를 나르며 보는 인쇄소들의 풍경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
모두가 치열하다. 이곳도, 그곳도.
어쩐지, 그 사이에서 나 혼자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승결 씨. 이제 촬영 시작할게요.”
생각에 잠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가 나를 불렀다.
자리에서 일어나 촬영 장비들이 즐비한 조명 숲으로 들어선다.
세팅된 자리에 앉자 정면에 초조하게 입술을 질겅거리는 현태 형이 보였다.
그런 주제에 스케치북에 ‘긴장하지 말고!’라 큼직하게 적어놓고 흔든다.
작게 웃으며 기다리자 큐사인이 떨어졌다.
이어지는 진행자의 오프닝.
“안녕하세요! 오늘 출연자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나라 최초로 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를 알고 계신가요? 아마 저보다 연배가 높으신 분들은 대부분 알고 계실 텐데요. 바로, ‘해별이네’죠. 벌써 설마 설마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요. 오늘 모신 주인공은 바로 ‘해별이네’의 주인공. 해별이 역을 맡으셨던 백승결 배우님이십니다! 배우님, 저희 구독자분들께 인사 해주시겠어요?”
박수까지 쳐가며 능숙하게 나를 소개하는 진행자.
이제 내 차례였다.
“안녕하세요. 백승결입니다.”
고개를 숙인다.
세상이 낮아졌고, 이윽고 다시 높아지며.
깜빡깜빡 나를 직시하고 있는 빨간 빛이 보인다.
“······.”
10살짜리 어린 아이는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저 붉은 빛 사이에서 연기했다.
아주 오래전.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진 첫 촬영 때의 일이었지만, 다시 이 앞에 서니 그림자처럼 다가와 거대해진다.
이러니 꼭 연기를 해야 할 것만 같잖아.
그럴듯한 표정을 짓고, 대사를 읊어야 할 것 같아.
두근거리는 심장이 들킬까, 차분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게 별 소용없었다는 건 다음 순간 입술을 떼자마자 깨달았다.
“이렇게······.”
사정없이 떨리는 목소리.
말을 멈추고, 호흡을 정리하고, 다시 내뱉는다.
“이렇게 카메라 앞에 앉는 게 정말 오랜만이라.”
나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입꼬릴 천천히 올렸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듯했지만 더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내가 지금 느끼는 감상을 전한다.
“좋네요.”
수천 번, 수만 번.
“상상했던 것보다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