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만의 오디션 (1)
“수고했다, 수고했어. 고마워 진짜.”
촬영이 끝나자마자, 현태 형이 달려와 어깰 두드렸다.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목구멍이 텁텁하니 갈증이 남아 있었다.
연기도 아닌, 이런 인터뷰 한 번에······.
나는 지금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괜찮았나?”
“말도 마. 끝내줬어. 특히 처음에 오랜만에 인사드려서 좋다는 얘기할 땐 눈물 찔끔 나올 뻔했잖아. 아마 해별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바로 추억에 젖어 들걸? 그쵸, 진행자님?”
“무조건이에요. 극장에서 엄청 울었었는데, 그때 기억이 쫙 올라오면서······”
큐카드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진행자가 내 쪽을 보며 엄지를 치켜든다.
그리고 다시 현태 형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솔직히 좀 놀랐어요. 처음에는 살짝 떠시는 것 같더니 금세 여유도 찾고, 딕션도 너무 좋고. 이야기야 해별이의 근황이니 당연히 흥미롭고. 아마 눈시울 붉히는 사람도 꽤 될걸요?”
“흐흐, 그쵸?”
기분 좋게 웃는 현태 형과 진행자를 보며 나도 자연스레 입매를 올렸다.
“다행이네. 시청률도 잘 나왔음 좋겠다.”
“야, 이거 잘 나와. 백퍼야. 그리고 시청률이 아니라 조회수.”
“아, 맞다.”
뮤튜브를 잘 안 보는 편이라 입에 잘 안 붙는다. 그동안 너무 인터넷이랑 동떨어진 생활을 했어.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이고, 카페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서야 카페를 나섰다.
뒤따라 나온 형이 재차 수고했다고 말하며 덧붙인다.
“다다음주 화요일 오후 6시. 기억해둬. 그날 올라갈 거야. 오늘 촬영분. 내가 진짜 영혼을 갈아서 편집해줄게.”
“형이 편집해?”
“아니, 편집자들이 하지.”
“···?”
아, 본인 영혼이 아니라 직원들 영혼을 간다는 얘기였구나.
히죽 웃는 현태 형을 보며 혀를 차다가 때마침 도착한 택시에 올라탔다.
줄기차게 손을 흔들던 현태 형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는 뒷좌석에 몸을 묻었다.
덜덜 떨려오는 진동이 택시의 엔진 탓인지, 아니면 나 스스로의 떨림인지 분간이 어렵다.
‘다다음주 화요일, 오후 6시.’
작게 중얼거렸다. 잊지 않도록.
그 후, 다시 택배 상자를 나르는 삶으로 돌아왔다.
장례식 땐 그토록 그리웠던 일상인데······ 이젠 이상할 정도로 무료하다.
터널을 빠져나올 때, 해가 뉘엿뉘엿 지며 가로등 불이 탁하고 켜질 때.
나는 문득문득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어둑한 사위와, 쏟아지는 조명. 붉은빛.
내가 마치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된듯한, 그 중독성 강한 순간을.
······그렇게 오늘이 되었다.
[오늘인 거 알지? 이따 6시에 업로드다? 운전 중엔 보지 말고!]
화요일. 내가 사람들에게 아주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서 인사를 하는 날.
현태 형의 톡을 보고서 미소지었다. 어제는 어제라서. 지난주엔 일주일 남아서.
그렇게 계속 톡을 보낸다. 나보다 더 들뜬 것 같다.
“······.”
아닌가.
심장이 목구멍에 붙어 있는 것처럼 울렁거린다. 근데 그게 전혀 불쾌한 느낌은 아니란 말이지.
그렇게 자작한 흥분 속에서 나는 궁금해진다.
과연 영상을 본 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오랜만이라며 반가워할까. 예전처럼 싸늘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무관심하려나. 와, 그건 좀 가슴 아프잖아···.
째깍째깍. 시간이 답을 손에 쥐고 다가온다.
#
백승결의 출연으로 한고비 넘긴 임현태였다.
편집자들은 영상을 자르고 붙이며 영혼을 갈아 편집을 완성시켰고, 나머지 팀원들은 안정적으로 다음 섭외를 이어나갔다.
새로운 출연자를 구하는 것은 매번 난관이지만, 어쨌든 급한 불은 끈 셈.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얼굴엔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업로드 해야하는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방송국을 퇴사하고, 뮤튜브 제작을 하며 이미 수없이 영상을 올렸지만.
그래서 이제는 업로드 후에 바로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할 정도로 무덤덤해졌건만.
오늘만큼은 떨린다. 무지하게.
“올릴게요.”
“어어, 그래.”
끄덕이며 업로드를 맡은 팀원의 모니터를 바라본다.
업로드 막대가 오늘따라 유난히 빠르다.
가위를 가져와 싹둑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수시로 반응 체크하면서 악플은 바로바로 삭제하자.”
“넵.”
당부를 마친 그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다시 일에 집중···하기는커녕 달달달 다리를 떤다.
그 모습을 본 팀원 중 하나가 웃음을 흘렸다.
“왜 그렇게 긴장하셨어요.”
“걔 진짜 좋은 애란 말이야. 내 욕심 때문에 걔가 또 상처받게 될까 봐 겁난다.”
“와, 피디님 생각보다 좋은 분이셨네요?”
“뭐 인마?”
“세상에 마냥 나쁜 사람이 어딨겠어. 우리한텐 나빠도 누군가에겐 좋고 그런 거지.”
“너까지 왜 그러냐.”
양쪽에서 공격을 받아 시무룩해진 임현태에게 또 다른 팀원이 말을 붙인다. 백승결이 메이크업을 받을 때 옆에서 콘티를 짚어주었던 작가였다.
“진짜 괜찮은 동생이었나 봐요. 촬영 날 잠깐 얘기 나눠보니 좋은 사람 같긴 하던데. 겸손하고, 욕심 같은 것도 전혀 없어 보이고.”
“맞아, 그런 애야.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데 어쩔 땐 형 같고 그래. 언론고시 면접 준비할 때도 마인드 컨트롤이나 그런 부분에서 진짜 많이 도와줬고.”
“어쩐지. 카메라 앞은 엄청 오랜만일 텐데 확실히 침착하더라고요. 아역 때 잠깐 활동했던 건데, 이래서 조기교육이 중요한 건가 봐.”
그녀의 우스갯소리에 귀 기울이던 팀원들이 피식거리는데, 업로드를 담당하는 팀원이 빙그르르 의자를 돌리며 말했다.
“올라갔어요.”
다음 순간, 임현태가 목덜미를 긁적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마우스를 달깍거리다 이내 팔짱을 껴버렸다.
“어후, 난 바로 반응 안 보련다. 너희들이 신경 좀 써줘.”
“그럼 얼른 제가 보낸 촬영장소들 좀 컨펌해주세요.”
“오케이, 바로 확인해주지. 다른 거에 집중해야겠어.”
임현태가 비로소 일을 시작한다. 팀원들도 수다를 멈추고 집중했다.
중간중간 반응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몇몇은 아예 모니터 하나에 댓글 창을 띄워놓고 수시로 확인했다.
이번 편이 좋은 반응이길 바라는 건 팀원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얘들아. 우리 다음 촬영장소 정했는데······.”
자리에서 일어난 임현태가 표정을 굳혔다.
팀원들이 전부 같은 화면을 띄워놓고 있어서였다.
댓글 창. 전부 화면으로 들어갈 것처럼 머리를 쭉 빼고 있다.
“뭐야, 왜들 그래? 무슨 문제 있어?”
잠시 일을 하며 걱정을 미뤄뒀던 그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고.
“문젠 아니고······.”
작가가 뒤늦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반응이 폭발적인데요?”
“그, 그래?”
그 말을 들은 임현태가 얼른 자리에 앉았다.
곧장 뮤튜브에 들어가 댓글을 살핀다. 조금 전 팀원들처럼 머리를 쭉 빼고서.
희열에 찬 표정으로 우후죽순 올라오는 반응들을 훑어 내려간다. 좋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좋은 건 반응뿐만이 아니었다. 조회수가 펄쩍 뛰었다. 그의 영상이, 실시간 급상승 영상에 당당히 걸려있었다.
비로소 임현태는 활짝 웃었다.
“터졌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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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러니까······.
“대박이라고?”
—그래, 미쳤다니까?!
버럭 하고 답하는 현태 형. 통화 음량을 줄이며 일부러 냉소적으로 답했다.
“오버는.”
—야, 오버 아니야. 노출 클릭률이랑 트래픽 퍼나르기가··· 아니, 이건 알아듣기 어려우니까 쉽게 말하면. 평소에 우리가 한 시간에 만 넘기면 ‘오늘은 발 뻗고 자겠다.’ 한단 말이야. 근데 지금 조회수 몇인 줄 알아? 3만이야, 3만. 이대로라면 며칠 안에 4, 50만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고. 듣고 있어?
“어, 응. 다행이네.”
말투와는 달리 핸드폰을 두드리는 내 손이 바빠진다. 뮤튜브, 뮤튜브. 이거 어떻게 하는 거냐. 기계치 진짜···.
—야, 이거. 혹시라도 드라마나 이런 쪽으로 연락 오는 거 있으면, 네 연락처 넘겨준다?
빨간 아이콘으로 들어가 돋보기를 누르던 손가락이 우뚝 멈췄다.
대답이 없자, 현태 형이 알겠지? 라며 다시 묻는다.
대답은 안 했다. 그게 대답이었다.
그렇게 현태 형의 안도, 뿌듯함 등이 넘실거리는 통화를 끊고서.
나는 어렵게(?) 찾은 내 영상의 댓글을 보기 시작했다.
—와. 보통 아역들 보면 커가면서 역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분은 완벽히 정변 하셨네.
—오랜만에 보는 얼굴. 정말 반갑네요. 그러면 혹시 다시 활동 시작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이번엔 정말 잘 되셨으면······.
—난 지금도 누가 가장 재밌게 본 영화 물어보면 ‘해별이네’를 꼽음. 그리고 그 영화에서 가장 돋보였던 건 천광윤도 차윤주도 아닌 해별이 백승결이었음. 차기작부터 욕을 많이 먹긴 했지만, 적어도 그 영화에서만큼은 연기파 배우들 다 씹어먹을 만한 연기력을 보여줬었지. 고작 10살이었는데.
안 좋은 댓글? 찾으면 분명 있겠지. 하지만 엄지를 밀어 올리며 보이는 모든 글들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그래서 문제야.
진짜 미치겠거든.
욕심이 들불처럼 번진다.
그래 나, 이런 놈이었지.
그 욕심을 늘 경계했던 나로선 희열과 불안함을 동시에 느낀다.
“이거 다 얼마 안 가는데.”
그래서였다.
“다 아는데.”
자조 섞인 말로 날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기어를 바꾸고 시선을 들어 올리자, 모든 게 무색해져 버리고 만다.
룸미러 속, 내가 웃고 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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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작가, 나 왔어.”
KNS 드라마국 유종원 PD가 사무실로 들어서며 인사를 건넸다.
따로 마련된 테이블. 그곳에 지박령처럼 앉아 있는 파트너, 서은영 작가를 향해서.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이어폰을 꽂고 태블릿 화면에 열중하는 모습.
유종원 PD도 굳이 한 번 더 인사하지 않고 안쪽으로 향했다.
그래도 궁금은 한지라 직원들에게 묻는다.
“뭘 저렇게 봐?”
“글쎄요.”
오셨냐며 인사를 한 조연출이 머릴 긁적였다.
“궁금해하지 말죠. 아까처럼 예민해져서 한숨 푹푹 쉬고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아직도 캐스팅 때문에 그래?”
“그것밖에 더 있나요.”
“아니, 주인공들 다 본인이 원하는 쪽으로 정해졌잖아? 나머진 대충 신인들로 채우면 되는 거고. 일일연속극으로 대체 얼마나 대단한 걸 하고 싶은 거야.”
“그러니까요. 그나저나 작업실 안 구한대요? 무슨 입봉 작가도 아니고 여기서 글을 써요?”
“방송국이 잘 써진다는데 어쩌겠어.”
‘글만 마음에 안 들었어도······.’ 라며 투덜대는데, 뒤쪽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에서 눈이 동그래져서 얼어붙은 조연출.
유종원 PD가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천천히 고갤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폰을 뽑은 서은영 작가가 태블릿을 들고 그가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온다.
“뭐, 왜. 왜.”
제 발 저린 그가 다급하게 말하는데, 정작 서은영 작가는 산뜻한 표정으로 태블릿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뭔데?”
“안주연 역으로 괜찮을 거 같은데 어때요?”
깜짝이야. 들은 줄 알았네.
가슴을 쓸어내린 유종원 PD가 태블릿을 내려다보았다. 화면 속엔 웬 남자가 떠올라 있었다.
안주연이면 이번에 들어갈 일일연속극에서 배우를 꿈꾸는 백수 역인데······.
“뭐, 마스크는 나쁘지 않네. 신인 배우야?”
이에 서은영 작가가 씩 웃었다. 모르겠냐는 표정으로.
“해별이에요.”
“해별이? 그게 누구···.”
순간, 머릿속에 그려지는 어린아이 얼굴 하나. 눈을 끔뻑이며 다시 화면 속 얼굴을 보았다.
이윽고, 두 얼굴의 간극 사이 유사성을 발견한 그가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설마. 그 해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