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만의 오디션 (2)
유종원 PD가 태블릿에서 시선을 떨어트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서은영 작가가 물었다.
“어때요?”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긴 한데······.
그가 다시 한번 화면 속 남자를 본다.
쌍꺼풀 없이 적당히 큰 눈, 그리 길진 않지만 제대로 선 콧날. 일일연속극에서 선호하는 꽃미남 스타일은 아니지만, 영락없는 배우상이다.
바로 밑에 슬쩍 보이는 ‘완벽한 정변’이란 댓글에 이견이 없는 괜찮은 외모였다.
“얘 왜 영화판에서 사라졌는지 알지?”
“모를 수가 없죠.”
“그니까. 모를 수가 없는데 왜 이 친구야? 아, 물론 뭐 때문에 그러는지 알 것 같긴 해. 특히 첫인사부터 애절~하니, 서 작가가 원하는 안주연 캐릭터에 부합되어 보이긴 했어.”
극 중 안주연은 철부지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가족들의 걱정어린 시선과 잔소리 속에서도 세상 낙천적인 듯 웃어 보이는.
하지만 그 속엔 누구보다 배우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담겨 있는 캐릭터.
아마 그 대목이 서은영 작가로 하여금 백승결에 대한 끌림을 이끌어냈을 터.
유종원 PD가 콧잔등을 긁으며 시선을 기울였다.
“근데, 이건 연기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한번 불러 보면 어떤가 싶은 거죠.”
“택배 일하면서 바쁘게 살았다는데, 뭐가 달라졌겠어?”
“그렇긴 한데······.”
꽂혔네.
아쉬워하는 서은영 작가를 보며 유종원 PD가 그녀를 진단했다.
작가나 PD가 어떤 배우, 촬영지, 대사 등에 꽂히는 건 꽤 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저거엔 약도 없어서 무시하고 지나가면 계속 찜찜한 구석으로 남아버린다.
물론 작정하고 반대하면 꺾을 수야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당장 캐스팅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불러서 오디션 한번 보자는 건데?
그의 연기력이 불안하다면 그저 확인해보면 될 일이었다.
서은영 작가 또한 여느 이 판의 업계인들처럼 완벽주의자이니, 자신의 작품에 해가 될 방향으로 가진 않을 것이기에.
‘근데 만약, 연기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면?’
이어지는 생각에 머리가 빠르게 굴러간다.
어디 보자, 뮤튜브 영상 조회수가··· 60만.
반응도 좋다. 그런 해별이의 복귀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을 거다.
백승결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궁금하지 않을 이가 있겠나. 화제성만큼은 확실히 잡고 갈 수 있으리라.
이쯤 되니 서은영 작가와는 다른 측면으로 나쁘지 않겠다 생각하는 유종원 PD였다.
“그래, 뭐. 만나보는 게 어려운 건 아니니까. 서 작가 마음대로 해. 어차피 중요한 역할도 아닌 거, 쌩 신인보단 기사 하나라도 낼 수 있는 인물이 나을지도 모르지.”
#
촬영 후, 무료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뮤튜브에 영상이 올라가면서부터였다.
솔직히 공중파 연예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춘 것도 아니고, 뮤튜브 영상 하나 찍는 게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오산이었다. 영상이 100만 조회수를 넘어가면서부턴 느낌이 사뭇 달라졌다.
댓글창에서만 복작거리던 반응들이 인터넷에서 삐져나와 현실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그리 많은 수는 아니지만,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겨난 거다.
어느 날은 충무로와 명동 사이에 위치한 대기업 건물 앞에서 트럭을 세워놓고 대기하는데, 사원증을 목에 건 직원들이 우르르 와서 알아보기도 했다.
원래부터 내 정체를 알고 있던 몇몇 공장 사람들의 반응도 제법 뜨거웠다.
“기사님, 어디 프로그램 나왔담서?”
“우리 젊은 직원이 알려주더라고. 한 기사님, 뮤튜브에서 인타뷰했다고.”
“아니, 한 기사. 다시 연예인 되려고 준비 중인 거야? 통운 일 그만두는 거 아니지?
나이도 나보다 훨씬 많은 양반들이 핸드폰을 어찌나 잘 다루는지. 구독도 하고, 좋아요까지 눌러놨다며 또 언제 나오냐고 묻더라.
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며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더 활짝, 숨죽여 웃었다.
관심.
누구든 중독될 수밖에 없는 희열이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뻗어 나간다.
그럴수록 나는 아쉬워진다. 이 관심이 인터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에.
그래서 나는 바라본다. 한 번만 더. 인터뷰가 아닌, 연기로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그때는 내가 정말······.’
툭툭.
그 순간, 누군가 차장 문을 두드렸다. 고개를 돌렸다. 공장 아저씨 중 한 명이 서 있었다. 창문을 내리자 작은 병에 담긴 피로회복제가 넘어 들어온다.
“이거···가면서 마시라고···.”
“감사합니다.”
“저 근데, 뭐 우리가 다시 연예인 되려고 그러냐고 떠든 거 다 장난인 거 알지? 기분 나쁜 거 아니지?”
“네? 에이, 당연히 알죠. 그런 거로 기분이 왜 나빠요.”
“그지? 하핫. 괜히 쫄았네. 아니,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방금 한 기사 표정이 뭐랄까··· 좀 거시기했거든.”
내 표정이 어땠길래 저러지?
의아한 건 의아한 거고, 얼른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리고 시동을 걸고서 충무로 골목길을 빠져나와 명동 쪽으로 접어들었을 무렵이었다.
거치대에 올려둔 핸드폰 화면이 밝아졌다. 모르는 번호인데?
당연히 어디 물건을 뒤늦게 내놨다는 전화일 거라 생각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KNS 방송국입니다. 백승결씨 전화 맞으시죠?”
그 얘길 듣자마자 KNS 방송국이 목적지인 송장이 있는지부터 떠올렸다.
없다, 없어. 단 한 장도. 그러면······.
“맞습니다. 그런데요?”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촬영 들어갈 일일연속극 오디션을 제안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지금 소속사는 따로 없으시다고 들었는데, 맞을까요?
“택배 회사 말곤 소속이 없기는 한데······.”
내 대답에 건너편에서 웃음이 터졌다.
뒤이어 자세한 이야길 이어간다. 어떤 일일연속극이고, 어떤 PD와 작가가 참여하는지 등등.
그 사이, 나는 얼떨떨한 기분을 가라앉혔다. 물론 실패했다. 그게 될 리가 있나.
이거 진짠가? 막 장난 전화나 보이스피싱은 아니겠지?
때마침 통화 화면 위로 톡 하나가 들어온다. 현태 형이 ‘대박, KNS 드라마국에서 우리 직원한테 연락 왔대! 너 연락처 알 수 있냐고!’라며 뒷북을 친다.
이러면 진짜 믿어도 되는 거잖아.
—······그래서 PD님하고 작가님께서 승결 씨를 한번 보고 싶어 하셔서요. 어떠신가요?
한마디로, 오디션 한 번 보러 와라.
뒷덜미가 저릿하다. 소름이 돋아나고, 어느새 핸들을 쥔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얼른 핸들을 꺾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이런 대화 중엔 도저히 운전을 못 할 것 같아서.
—여보세요?
“죄송해요. 제가 운전 중이었어서.”
—아, 그러면 제가 조금 있다가 연락을 다시 드릴까요?
“아뇨. 이제 괜찮습니다.”
깊게 심호흡을 했다. 이제야 조금 진정이 된다. 그러니 이제 고민을······.
고민? 그런 걸 해야 하나?
“좋아요. 좋습니다. 갈게요.”
잡생각들이 몰려올세라, 와락 내뱉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서.
“언제, 어디로 가면 될까요?”
멈춰있던 내 인생의 엑셀에 발을 올린다.
#
며칠 후, 나는 KNS 방송국을 찾았다.
나름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단정한 옷을 차려입고서.
얼마 만이지? 12살 이후로 연기 생활이 완전히 끊어졌으니, 대략 13년은 됐네.
하지만 감회에 젖기에 이곳 풍경은 너무 낯설다. 그럴 만도 한 게, 내가 어렸을 적 다녔던 방송국들은 여의도에서 상암동으로 이사 오기 전의 모습이었으니까.
이렇게 얘기하니 내가 엄청 늙은 것 같잖아?
로비에 들어가 나와 통화를 했던 보조 작가에게 전화를 걸자, 이윽고 그녀가 내려왔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보안대를 통과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괜히 예전에 봤던 사람들도 있을까 눈알을 굴려보지만 보일 리 없다. 다행이려나···.
대신 나를 보는 은은한 시선들은 확실히 느껴진다. 아마도 뮤튜브 때문이겠지.
그렇게 흡사 개미굴 같은 복도와 사무실들을 지나 미팅룸에 들어섰다.
동시에 안쪽에 있던 푸근한 인상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 왔네. 안녕하세요. 유종원 피딥니다.”
그가 건네는 손을 맞잡고 고갤 숙였다.
“방송국 오랜만이죠?”
“네. 상암동 방송국은 처음이고요.”
“아 그렇겠구나! 여의도 때 온 게 마지막이었겠네. 이야, 그러면 우리 서 작가보다 방송 생활이 오래된 거 아니야?”
“그렇죠. 저 여의도 방송국은 구경도 못 해봤어요.”
옆에서 대답하는 여자에게로 시선이 움직였다.
인사를 나눈 유종원 PD와는 벌써 세 작품째같이 하고 있다는 서은영 작가.
자연스럽게 그녀와도 인사를 하고서,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원래 작가 작업실에서 미팅하고 그러는데, 우리 작가님이 아직 작업실이 없어.”
“그런다고 저 작업실 안 구해요. 난 회사원 체질이라 여기가 잘 써져.”
‘그러면 그냥 회사를 다니지 왜 작가를···.’ 중얼거린 유종원 PD가 고개를 흔들며 나를 본다.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분위기가 전혀 무겁지 않다. 급하지도 않은 것 같고, 유쾌하며 친절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잘 느껴진다. 유종원 PD가 지금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난 너에게 큰 기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