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배우 복귀했습니다-13화 (13/167)

폭탄 (1)

배우.

이만큼 대중의 평가에 민감한 직업이 또 있을까 싶다.

그렇기에 늘 선망과 만만함 그사이 어디쯤에 걸려있는 위치다.

모두가 우러러볼 수도, 모두가 짓밟을 수도 있는···.

높으면서도 낮은 위치.

내가 지금 서 있는 높낮이가 언제든 변할 수 있기에. 그렇기에 서로 끊임없이 확인하는 거다.

내가 지금 쟤보다 높은지, 혹은 아래인지.

<해별이네 흥행 질주. 천재 아역의 탄생>

<천재의 추락? 대중의 과한 기대가 문제였을까>

그런 것들을 너무 어렸을 때 몸소 겪고 깨달은 나로서는 지금 당장의 평가가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관심이 싫지 않고, 욕심이 나는 것 또한 사실.

기분이 좋았다.

‘종갓집 막내딸’이 방영을 거듭할수록 나에 대한 평가는 점점 더 좋아졌고.

끝까지 의심의 눈초리로 보던 시선들도 적어도 이번 연기는 괜찮은 것 같다는 평가를 보였기에.

그리고 딱 그런 타이밍에, 제작진 모두가 기다리던 장면이 방영되었다.

⌜나,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어.⌟

그 한마디가 시청자들의 거실에서 흘러나온 것은 드라마가 15회에 다다라서였다.

일반적인 드라마였다면 마지막 회를 바라보고 있을 회차.

그동안 드라마는 안주연이 연기를 꿈꾼다는 것을 꼭꼭 숨겼다.

마치 첫 방송까지 내 출연 소식을 밝히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적절한 타이밍에 공개된 안주연의 꿈은 사람들에게 제법 큰 울림을 주었다.

—작가가 왜 백승결을 안주연역에 캐스팅했는지 알 것 같네. 아역 때의 일로 안쓰러운 이미지가 된 백승결이 마찬가지로 짠한 안주연을 연기하니 더 확 와닿는 듯.

혹자는 그게 나라서 더욱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그 영향이 없진 않을 거다. 서은영 작가가 처음에 날 뽑으려 했던 이유도 그것이니까.

—‘종갓집 막내딸’의 성공 요인에서 백승결을 빼고 얘기할 순 없을 것 같다. 단순히 화제성을 위한 장치에서 그쳤다면 이렇게까지 말을 덧붙일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백승결이 우려와는 달리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면서······.

모 기자가 남긴 위의 코멘트에도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무작정 기사를 뿌려 화제성만 키우는 것 대신, 드라마에서 제대로 평가받게 한 유종원 PD의 계산이 맞아떨어진 거다.

하지만 절대 그게 전부는 아니다.

막장이 가득한 일일연속극 사이에서 무거운 주제를 과하지 않고 가볍게 풀어내는 방법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새로운 자극이었을 테니까.

게다가 그런 방식을 더욱 빛나게한 대본과 연출이 있었다.

그러니 내가 아니었더라도 이 드라마는 높은 확률로 성공했을 거라 생각한다.

아역 때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영화는 크고 작은 성공을 거머쥐고, 내가 별로라 생각해서 일부러 선택한 영화는 망했듯이 말이다.

···어쨌든, 15회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리고 다음 날.

반응에 힘입어 20% 코앞에서 주저하던 시청률이 마침내 벽을 무너트렸다.

시청률 20.3%.

동시간대 1위.

방영 4주 만에 이룬 성적이었다.

#

“여기, 이쪽으로 넣어주세요.”

방문을 열고서 머릴 긁적였다.

뭐에 홀린 듯 질러버리긴 했는데······.

팔을 걷어붙인 두 사람이 커다란 티비를 들고 방으로 들어온다.

설치가 끝나고, 두 사람 중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내게 물었다.

“아니, 무슨 이렇게 큰 티비를 봐요?”

“하하, 집에 비해 좀 크죠?”

“좀이 아니죠. 이거 75인친데. 이렇게 두니 창문이라 해도 믿겠네, 하핫.”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는 아저씨.

같이 웃으며 시선을 움직였는데, 뒤에 있던 젊은 남자가 나를 힐끗힐끗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묻는다.

“저 혹시 배우···세요?”

“엉?”

그 말에 의아해하는 아저씨.

내가 콧잔등을 긁으며 답했다.

“네, 연기를 하고 있긴 하죠.”

이제 하나 찍어놓고 배우라는 칭호는 좀 쑥스럽지만.

“역시! 맞죠? 백승결 배우님.”

“뭐야. 이분··· 유명하신 분이야?”

“유명하죠. 기사님도 아실걸요? 해별이네 보셨죠?”

“나 그거 안 봤어.”

“와, 그 당시 대한민국 국민 세 명 중 한 명이 본 영화라는데, 두 명에 속하셨나 보네.”

“사는 게 바쁜 데 영화는 무슨. 암튼 유명한 분이라는 거지? 반갑습니다. 악수 한번···.”

“아, 네.”

손을 맞잡고 홱홱 흔든 아저씨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한쪽 벽을 떡하니 차지한 티비를 본다.

“그래서 티비가··· 내가 더 큰 트럭 사고 싶은 거랑 같은 이치 아녀.”

“그렇죠!”

맞장구치는 젊은 남자.

고개가 기운다. 그게 그렇게 되나.

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서 별말 없이 웃었다.

“드라마 잘 보고 있습니다! 사진도 감사해요!”

“야, 나도 그 사진 좀 보내줘.”

“아니, 제 얼굴 나온 사진을 왜 달라셔요. 그럴 거면 기사님도 배우님하고 찍지 그랬어요.”

“뭔 이 나이 먹고 남자끼리 사진을 찍냐. 그러지 말고 보내줘 봐. 집가서 애들한테 아느냐고 물어보게.”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온 그들이 시끌벅적하게 나갔다.

비로소 조용해진 집에서 본격적으로 감상을 시작한다.

불과 얼마 전에 영화관 부럽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커다란 화면이 벽에 걸려있었다. 아니, 벽을 완전히 가리고 있다.

방에 비해 터무니없는 크기.

이 말도 안 되는 부조화가······.

“하하.”

이렇게 좋을 일인가.

내 한 달 생활비의 여섯 배쯤 되는 돈이 한 번에 나갔지만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백자에 빠진 고관대작마냥 하루 종일 이것만 닦아도 기분이 좋을 것 같아!

#

아쉽게도 티비를 제대로 감상한 건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오후 촬영이 있어 얼른 방송국으로 가야 했다.

‘그래도 오늘 다행히 짬이 나서 설치까지 했다는 거에 만족해야겠다.’

안주연이 배우를 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이 밝혀짐과 동시에 내 분량이 점차 늘어, 이제는 남녀주인공 다음으로 씬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쉬는 날이 거의 없어졌다.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공원을 뛰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그게 또 나쁘진 않다. 오히려 좋지.

반대로 말하면, 매일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거니까.

그렇게 거대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티비와 생이별을 하고서, 방송국 로비에 도착했다.

얼른 세트장으로 가려는데, 구내 카페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양손에 커피 캐리어를 들고 그것만으론 모자라 가슴팍에까지 커피를 껴안고 낑낑대는 FD.

어어, 쏟아지겠는데?

얼른 다가가 손을 거들었다.

“안 들어주셔서 되는데···.”

“들어도 돼서 그래요.”

“흐, 감사합니다!”

헤벌쭉 웃는 FD를 슥 보고 걸었다.

동생이 없지만, 있다면 이런 느낌 아닐까.

가끔 동생이 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재잘재잘 떠드는 FD의 목소리에 빠져나왔다.

“······그래서 CP님이 아주 입이 귀에 걸려서 오셔가지고 유 PD님을 확 안았다니까요?”

맙소사.

그것도 심각하네. 아니, 끔찍에 가깝다.

“그러니까 배우님도 CP님 눈에 띄지 마세요.”

“저요? 전 왜······.”

“유 PD님 안으시고 누굴 찾으셨게요.”

뭔가 답이 나온 것 같다. 그래도 이 악물고 모른 척하며 애써 다른 대답을 찾았다.

“서 작가님?”

“작가님껜 작업실로 꽃다발 보내셨대요.”

서은영 작가의 작업실이라면··· 여기잖아?

즉, 그녀가 작업실(?)처럼 사용하는 3층 사무실로 보냈다는 말이었다.

“······.”

자, 그러면 누구겠어요? 하는 표정으로 보는 FD에 입맛을 다셨다.

“전···가요.”

“빙고. 배우님 없다고 엄청 아쉬워하셨어요.”

뭘 엄청 씩이나.

우리 드라마를 담당하고 있는 박 CP는 일명 산적 PD라는 별명이 있다. 그만큼 우락부락하다.

그 품에 안긴다? 소름 돋는다. 피해 다녀야겠어.

“그나저나, 요즘은 어떠세요?”

“뭐가요?”

“주변 시선이요. 막 알아보죠? 다시 배우로 복귀하신 게 확 실감 나시겠어요.”

자연스레 오전에 만난 설치 기사들이 생각났다.

연령대로 보면 날 알아봐도 나이가 많은 쪽이 알아봐야 했는데, 의외로 젊은 남자가 배우냐고 물어 신기했지.

“어느 정도는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실감 나네요. 저쪽에서 아까부터 배우님 보고 있어요.”

“네?”

FD가 턱짓하는 쪽으로 고갤 돌리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릴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었다.

그중 유일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 남자가 주변에 양해를 구하더니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온다.

누군가, 하고 바라보았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라.

“승결아. 이야··· 나 말도 안 나오네. 드라마 출연했다는 소식을 언뜻 보긴 했는데, 언제 이렇게 컸어?”

호탕하게 웃는 남자.

특유의 말투와 날 아주 잘 아는 듯한 내용을 듣자마자 기억났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나 못 알아보나?”

“그럴 리가요. 기억하고 있어요.”

“오, 그래? 하긴 우리가 쉽게 잊힐 사이는 아니지. 안 그래? 하핫. 가만있자, 명함이 어딨더라.”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낸 그가 나에게 건넸다.

번쩍번쩍 금박이 가득한 명함을 받아들고 내려다보는데, 그가 물어왔다.

“그나저나, 아버진 잘 지내시고?”

“······.”

대답하지 않았다. 이에 남자가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때마침 뒤에서 PD들이 재촉했다.

“암튼, 아버지한테 안부 전해줘. 그리고 거기로 번호 하나 남겨놔. 밑에 애들한테 한번 연락하라고 할게.”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그.

몇 걸음 떨어져 있다가 다시 다가온 FD가 궁금해했다.

“누구시지? 옆에 분들은 예능국 PD님들 같은데.”

“아티스 엔터테인먼트 우경철 팀장···아니, 이젠 본부장인가 보네요.”

그렇게 말하며 손에 쥔 명함을 다시 한번 훑는다.

“어! 아티스면 배우 쪽으로도 라인업 좋은 중견 엔터 아니에요? 혹시 배우님한테 스카웃 제의 하시려는 건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묻는 FD를 보며 고갤 저었다.

그리고 저 멀리 작아져 가는 우경철 본부장을 보며 말했다.

“예전 소속사였어요. 아역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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