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배우 복귀했습니다-25화 (25/167)

욕심 (3)

“어, 어딘데요?”

이준혁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매니지먼트 하람.”

이어지는 대답에 눈과 입이 커진다.

멍하니 있던 김상억의 표정도 마찬가지.

안원상 감독은 이미 들은 내용인지 팔짱을 끼고 허허 웃었다.

“저희가···하람에···.”

딸꾹.

김상억이 말을 끝까지 맺지 못하고 널따란 등짝을 들썩였다.

얼른 물을 따라 주었다. 연거푸 두 번.

‘매니지먼트 하람?’

솔직히 난 거기가 어떤 곳인지 모른다.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는 자주 봐왔지만, 배우가 어디에 속해있는지까지 찾아보진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준혁과 김상억의 반응을 보니 영향력이 꽤 큰 매니지먼트 회사임은 분명해 보였다. 흥미가 돋는다.

“하람에 새로운 팀이 증설됐어. 신인들로 구성된 팀을 만들고 싶다나봐. 그쪽에서 먼저 괜찮은 배우들을 소개시켜달라더라고 하길래 자네들이 생각났고.”

감격 어린 표정들을 본 이태관 배우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물론 내가 추천했다고 해서 그쪽이 무조건 계약하겠다는 건 아니야. 자네들이 오케이하면 미팅을 진행해보겠다는 거지.”

“그거야 당연하죠. 그래도 하람 정도 되는 곳이랑 미팅 기회를 얻는 게 어디에요···.”

“그니까요. 규모가 크진 않아도 배우 매니지먼트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인데.”

“너무 그렇게 황송해하지들 마. 자네들, 그 정도 회사에 들어가도 충분한 배우니까.”

당연하다는 듯 칭찬하는 이태관 배우에 두 사람의 얼굴이 더욱 황송해졌다.

그나저나, 소속사라···.

솔직히 앞으로 여러모로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새로운 목표를 이루기에도 조력자가 필요하고.

반면, 지금처럼 연기를 자유롭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

소속사가 생긴 이상, 오로지 내 생각대로 작품을 결정할 수는 없을 테니.

회전 교차로처럼 맴도는 생각들을 교통정리 하는 사이.

나머지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이태관 배우가 나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승결이 네 생각은 어때?”

#

200만 돌파 소식이 포털사이트 연예란을 뒤덮었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도 힘들 것 같았던 ‘대원군’이 뜻밖의 성공을 거두고 있으니 모두가 놀랄 수밖에.

얼마지나지 않아 핸드폰으로 연락들이 쏟아졌다.

[천일 로지스 대표님: 벌써 200만 넘었던데? 드라마 잘 됐을 때도 말했지만, 네가 관둔다고 했을 때 솔직히 엄청 잡고 싶었는데, 참길 잘했다는 생각이 또 드는구나. 축하한다]

[원팩토리 이 부장님: 내가 두번 봤더니, 200만이네. 300만 되게 이번 주말에 또 보러 가야겠어~]

[신견 애드피아 성 차장님: 멋지다, 백 기사! 연예인 되려고 그러냐고 놀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드라마에 영화까지! 말이 씨가 되니까 이대로 스타 되자, 백 스타!]

옛 인연들. 그러니까, 택배사 사장님과 중구의 길목 곳곳에서 땀을 흘리며 날 반기던 공장 사람들부터.

[유종원 PD님: 축하해, 백 배우. 이렇게 훨훨 날 줄 알았다니까!]

[서은영 작가님: 영화 보자마자 딱 드는 생각이, 승결 씨가 선구안이 있구나 싶었어. 200만 너무 축하해요]

[최지연: 선배님 축하드려요~! 200만이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좋은 영화라, 할 말은 많지만 300만 될 때까지 아껴둘게요]

[이강현: 윽, 어제 술을 너무 마셔서··· 제가 설마 가장 늦게 축하 메시지 보내는 거예요? 이럴 수 없는데!]

첫 단추를 함께 끼워준 ‘종갓집 막내딸’에서의 인연들까지.

메시지를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 밖에 촬영 스태프들과 현태 형 회사 직원들의 축하까지 받고서야 다시 검색 화면으로 돌아왔다.

[매니지먼트 하람]

검색 결과를 꼼꼼히 훑어본 결과, 이곳이 어떤 회사인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양보단 질을 중요시하는 매니지먼트랄까. 배우의 수가 다른 대형 소속사처럼 많지 않았다. 열두 명 정도.

대신 한명 한명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연급 이상일 수밖에 없는 배우들이었다.

이제야 김상억과 이준혁이 그토록 놀라던 게 이해가 갔다.

그리고 이후에 그렇게 불안해했던 것도 납득이 된다.

‘기분이 좋으면서, 불안한 기분 알아요? 너무 좋은 기회라 놓칠까 봐 불안하고, 운 좋게 가더라도 거기서 못 하면 어쩌나 걱정되고.’

‘이봐, 기사 있네. 지금 합류 결정된 게 신승찬이래. 신승찬을 신인급으로 생각할 정도면 우린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 같은데.’

‘이런 곳은 막상 데려와도 별 볼 일 없다 싶으면 가차 없이 버린다던데요······.’

초원보다 더한 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당연시되는 이야기들이었다. 십수 년이 지나도 여전한.

‘여긴 어떨까?’

배우를 손에 쥐려는 곳일까. 아니면, 배우와 손을 잡으려는 곳일까.

검색은 끝났다. 이제는 궁금한 것을 확인해야 할 차례.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서 미팅 장소인 식당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

백승결, 백승결···.

매니지먼트 하람의 2팀장 김성운는 프로필을 넘겨 보며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역시 본명보단 이쪽이 더 익숙하다.

[해별이네, 주연 - 해별이 역]

프로필 가장 맨 윗줄을 장식한 필모가 눈에 들어왔다.

개봉 당시 고작 중학생이었던 자신에게도 여전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영화와 주인공.

시선을 살짝 옮기자 그 옆에 덧붙여져 있는 관객수.

1027만.

천만 영화가 워낙 많아졌기 때문에 이제는 한국 영화 역대 흥행작에서 많이 밀려나긴 했다.

하지만 다회차 관람이 많아지면서 천만을 넘기는 것이 다소 쉬워진 것도 사실.

‘물론 요즘은 OTT 시장 때문에 다시 어려워졌지만.’

어쨌든, 이러나저러나 대한민국 첫 천만 영화의 타이틀은 굉장히 상징적이라 할 수 있었다.

거기다 주인공이 아역인 천만 영화는 여전히 단 한 편도 없었지.

아마 한국 영화 이래로 가장 성공했던 아역 배우일 것이다.

그렇게 대단한 백승결이었지만, 사실 일일드라마로 복귀 소식을 알렸을 땐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돌아와 망하는 아역출신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니까.’

새로 만들어질 2팀에 필요한 배우는 아니란 생각이었다. 그만큼 신중했다.

당장의 화제성만으로 가져다 쓰고, 단물이 빠지면 버리는 방식은 신물이 났으니까.

그래서 소수정예인 매니지먼트 하람으로 왔고, 대표님과 오랜 이야기 끝에 새팀을 만든 거니까.

그런데 백승결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보란 듯이 복귀에 성공했다.

약간의 흥미가 돋았지만, 그때는 바빴다.

또 새로운 팀을 위한 첫 단추를 꿰는 중이었다.

신승찬이라는 드라마계의 블루칩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 중이었지.

그렇게 또 얼마나 지났을까.

1팀장님과의 술자리에서 그가 한창 공들이던 이태관 배우를 만나게 되었다.

독립영화를 많이 찍었다는 얘기에 연기력이 탄탄하면서도 새로운 배우를 추천해달라 부탁했고, 그가 이번에 같이 영화를 찍은 배우들을 추천해주고 싶다길래 냉큼 받았다.

이태관 배우가 연기에 얼마나 진심인 사람인지 알기에 믿을 만하겠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가 추천하려는 배우들 중에 백승결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흥미는 관심으로 바뀌었고, 그제서야 드라마를 찾아보았다.

십 수년간의 공백이 무색하게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는 백승결.

특히 극 중 안주연의 간절함이 묻어나는 연기가 매력적이었다. 사람을 응원하고 싶게 해.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대체 ‘대원군’에선 어떤 연기를 보여줬을까?

그리고 마침내 극장에서 대원군을 보고선······.

‘경악했지. 영화관에서 나오자마자 1팀장님에게 허겁지겁 전화를 걸 정도로.’

그동안 신승찬 다음으로 영입할 후보를 엄한데서 찾고 있었구나!’

대체 이런 배우가 왜 그동안 택배 일을 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 그보다, 택배 일만 했는데 어떻게 연기력이 늘었지?

‘대원군’의 모든 배우가 훌륭했지만, 가장 돋보였던 건 역시 백승결이었다.

얼른 1팀장님을 닥달했다. 이태관 배우가 물어본다고 한 거 어떻게 됐는지 좀 알아봐달라고.

그 결과, 오늘.

드디어 백승결을 만나게 되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배우 백승결에 대한 것들뿐.

이제는 인간 백승결과 대화를 하며 그에 대해 알아갈 생각이었다.

“안녕하세요. 매니지먼트 하람 2팀, 김성운 팀장입니다.”

“백승결입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김성운은 자리에 앉자마자 종업원을 불러 한식 코스 요리를 주문했다.

따끈한 전채죽이 먼저 나오고, 백승결이 한수저 뜨기를 기다렸다가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추가 촬영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화가 그 마지막 씬을 위해 달려온 것 같았어요.”

“맞아요. 저도 그런 점에 끌려서 출연을 결심하게 됐었죠.”

마치 남의 영화 얘기하듯 말하는 백승결을 보며, 김성운은 그가 독특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한편, 백승결은 열심히 죽을 먹었다. 그래봤자 서너 수저면 싹싹 비울 양이었다.

순식간에 수저를 내려놓은 그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먼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순간, 김성운은 백승결이 무슨 말을 할지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보통 이렇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뜸 질문을 한다는 건 대부분 둘 중 하나였다.

계약 조건. 혹은 선금······.

“이미 탄탄한 배우들로 채워진 하람이 왜 신인 팀을 꾸린 건가요?”

보기 중엔 없던 질문이라 살짝 안도한 김성운이 빙그레 웃었다.

물론 이것도 특별한 질문은 아니다. 신인 위주의 2팀을 만든다는 게 결정되고 내부에서도 꾸준히 돌았던 의문이니까.

“저희는 말씀하신 것처럼 탄탄한 배우진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너무 굵직한 배우들만 있다는 게 오히려 문제점이기도 하죠. 매니지먼트라면 좋은 배우를 데려오는 것만큼 배우 육성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래성이 되지 않으려면요. 그래서 포텐셜있는 신인급 연기자들을 키워서 육성 쪽으로도 힘을 쏟을 계획인 겁니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질문은 달랐다.

“만약 그 신인급 연기자들이 기대에 부흥하지 못한다면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직설적이면서 동시에 굉장히······.

“이상한 질문이네요. 저희가 배우분들께 기대를 하는 건 맞지만, 그걸 이루는 건 함께라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면 그 배우에 맞게 방식을 바꿔야겠죠. 그 전에 가능성 있는 배우를 찾는 게 먼저고요.”

그러자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백승결이 작게 끄덕였다.

물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찰나의 순간에 살짝 미소가 스치는 듯했다.

이쯤 되니 김성운도 질문의 순서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마지막에 여쭤보려고 했는데, 승결 씨가 질문하신 것과 결이 비슷한 것 같아, 저도 그냥 지금 하겠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승결 씨는 배우로서의 목표가 있으실까요?”

“음··· 그냥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돌아왔습니다.”

“로망있네요.”

꽤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다. 연기자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니까.

자신이 배우를 키우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욕심이 너무 없어서도 곤란했다.

그것만큼 함께 일하는 동료를 힘 빠지게 하는 것도 없으니.

“근데, 새로운 목표가 하나 최근에 생겼습니다.”

“오, 그게 뭘까요?”

생각을 멈춘 김성운이 흥미로운 듯 고갤 기울였다.

그런 그를 백승결이 맑은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해별이를, 넘어서려고요.”

#

“어떠셨어요?”

김성운이 사무실로 복귀하자마자 들은 질문이었다.

직원의 물음에 김성운이 멈춰서서 머릴 긁적였다.

“뭐랄까······ 맑은 눈의 광인?”

“네?”

황당해하는 직원을 보며 김성운이 낄낄 웃었다.

그런 게 있다며 으쓱거리는 그에게 갸웃거리던 직원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건 그렇고. 팀장님도 현장 나가실 거란 얘기가 있던데. 정말이에요?”

“어, 그러려고. 1팀에 비해 규모도 훨씬 작고, 매니저도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니까.”

“어떤 배우 맡으실 생각인데요?”

“글쎄. 대표님이 가장 포텐셜 높은 배우 옆에 붙어서 제대로 키워보라고 하셨으니까······.”

“역시 신승찬?”

“걘 매니저랑 같이 넘어오잖아.”

“아, 그랬죠. 그럼 또 누가 있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직원과는 달리 아무 생각 없는 얼굴로 앉아 있던 김성운이 갑자기 물었다.

“근데 말이야. 해별이를 넘어선다는 게 무슨 뜻일까?”

“네?”

“백승결이 해별이를 넘어설 거래.”

파티션 위로 직원의 얼굴이 솟았다.

자칭 배우 심리학 전문이라던 직원은 쓸데없이 진중한 표정으로 분석을 시작했다.

“흐음, 아역 때 이름을 알린 배우들의 흔한 딜레마네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어딜 가나 여전히 자신은 과거로 기억되는 거. 그만큼 대단했다는 거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선 배우한테 악영향이죠. 뭘 해도 과거에 묶여있게 되는 거니까. 근데 해별이는 보통 성공한 게 아니고 한국 영화계의 상징적인 캐릭터라서 쉽지 않을 텐데.”

“그 정돈 방구석 연예 전문가들도 아는 거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넘어설 수 있겠냐고. 그 이름을.”

“과거 흔적을 지우려면 더 큰 흔적을 남기랬어요. 그러면 최소한······.”

잠시 고민하던 직원이 마치 허황된 일을 말하는 사람처럼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다시 한번 천만 배우가 돼야 하지 않겠어요?”

“역시 그렇지?”

동조한 김성운이 몇 줄 안 되는 백승결의 필모를 다시 살피며 작게 웃었다.

“보기와는 달리··· 욕심 덩어리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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