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배우 복귀했습니다-32화 (32/167)

이게 가능하다고? (7)

백승결이 끌어당겨 빠트린 몰입 속에서 고하윤이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이.

그녀의 매니저는 자신이 네일아트를 받았다는 것도 잊은 채 손톱을 물어뜯다가 화들짝 놀랐다.

“아잇, 이거 어제 받은건데······.”

속상해하며 고하윤에게 다가간 그녀가 말을 붙였다.

“그나저나 하윤아. 하윤아?”

“어, 어.”

멍한 표정을 푼 고하윤이 돌아본다.

“그래서. 다음이 어떻게 되는데? 아직 뭐 들은 거 없어?”

“없지. 어제까지 언니가 대본 같이 리딩해줬었잖아. 그게 전부야.”

“아, 너무 궁금한데······.”

아쉬워하던 그녀가 마침 지나가던 조연출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묻는다.

그래서 최우진은 범인이 맞는 거냐고. 만약 아니라면 왜 저러는 거냐고.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 고하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방금 전까지 앞에서 수고했다며 웃던 백승결을 찾은 것이다.

‘아··· 대기실로 갔겠지.’

다음 촬영이 자신의 단독 씬이란 걸 깨달은 그녀가 납득했다.

백승결이 아직까지 촬영장에 남아있을 이유는 전혀 없······.

“누나. 다음 씬에서 임수영 변호사가 장훈 변호사랑 전화 통화를 하잖아요. 근데 대본 보니까 이 부분이요. 네, 여기. 여길 어떤 식으로 구도를 잡을지 궁금해서요. 다음에 저도 비슷한 씬을 할지도 모르잖아요, 하하.”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갖 감정을 다 쏟아냈던 최우진의 격양된 목소리가 아닌, 세상 부드럽고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

“······.”

돌아보니 백승결이 스크립터 옆에 붙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

“아주, 다들 다음 내용 알려달라고 난리에요. 그래서 씩 웃으면서 잔뜩 약 올려주고 왔습니다.”

키득거리는 조연출을 보며 이진태 PD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물었다.

“너도 모르잖아. 다음 내용.”

“그러니까요. 그래서 왔잖아요. 최우진 범인 맞아요?”

조연출의 안달 난 표정에 이진태 PD는 그저 씩 웃었다.

이를 본 조연출이 입맛을 다신다.

“이걸 내가 당하네······.”

낮게 조소한 이진태 PD가 고갤 돌려 촬영장을 훑었다.

조명이 움직이고, 레일이 다시 깔린다. 카메라가 이동하고, 덩달아 촬영 감독과 스크립터가 붙어서 편집자들에게 줄 내용을 정리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리고 그들 틈에서도 당연히 눈에 띄는 고하윤과 백승결.

“승결이는 두 시간 정도 대기해야 하니까 좀 쉬라고 하지. 그러라고 대기실도 따로 뺐는데.”

“오늘도 촬영을 좀 더 보고 싶대요.”

“그래?”

이진태 PD가 넉살 좋게 여기저기 섞여 들어가 있는 백승결을 보며 흥미로운 눈빛을 흘렸다.

배우용 의자에 앉아 다음씬을 준비 중인 고하윤도 번갈아 보았다.

“같은 그림체긴 한데······완전 다른 색이 칠해져 있네.”

둘은 비슷하면서도 명확히 달랐다.

고하윤이 오로지 본인 연기에만 집중하는 반면, 백승결은 여기저기 관심이 많다.

저리 잘생기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FD인 줄 알았을 터.

‘걘 내 앞에선 연출가 같았고, 작가 앞에선 작가 같았거든. 그래서 그래.’

또다시 유종원 선배의 말을 떠올리며 웃는 이진태 PD였다.

그걸 알아들을 리 없는 조연출이 물었다.

“네? 어디요? 소품에 문제 있어요?”

“아냐. 그런 게 있어. 우리도 자리 옮기자. 얼른 찍고 오늘은 퇴근이란 걸 좀 해봐야지.”

“퇴근 좋죠!”

“편집실로.”

“······.”

전의를 상실한 조연출을 질질 끌고 자리를 옮긴 이진태 PD.

그가 다시 촬영장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촬영이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임수영이 장훈에게 전화해 최우진에 대해 보고하고.

최우진은 임수영이 떠난 뒤 혼자 남아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고.

그렇게 오늘 계획한 모든 씬을 마무리 짓고서 퇴근했다.

예고했듯, 편집실로.

“오셨어요?”

“어, 수고한다.”

반기는 편집자들을 보며 이진태 PD가 양손 가득 들고 온 봉투를 내려놓았다. 치킨이었다.

퇴근한 아빠 주변으로 모여든 자식들처럼, 편집자들이 달려들어 봉투부터 뜯었다.

“편집은 얼마나 됐어?”

이진태 PD가 겉옷을 벗으며 컴퓨터 앞에 섰다.

달려들 타이밍을 놓친 편집자 한 명이 입맛을 다시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지금 13화 보내주신 거 앞부분에··· 이 정도요.”

“흐음. 아직 한참 남았네. 비켜 봐. 가서 치킨 좀 먹어.”

“넵!”

순식간에 비어버린 의자에 이진태 PD가 앉았다.

스크립터가 전달한 컷 전환을 순서를 확인하며 편집을 이어나간다.

수많은 영상을 확인하고, 자르고, 이어붙이기를 여러 번.

편집자들 중 가장 경력이 높은 고참이 치킨을 거의 마시듯 해치우고서 그의 옆으로 붙었다.

“야, 뭔 치킨을 벌써··· 그거 순살 아니야.”

“아. 그랬어요?”

“그랬··· 아니다. 네가 소화 가능하면 그게 뭔지가 중요하냐.”

이진태 PD의 황당한 표정에 낄낄거린 그가 물티슈를 뽑아 슥슥 손을 닦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것 좀 보세요.”

“응? 왜?”

몸을 틀자 키보드와 마우스에 손을 올리는 고참 편집자.

그의 손이 바빠진다. 화면에 백승결이 나타났다.

뭐가 문제인가 하고 보는데, 그가 영상을 되돌린다. 그리고 플레이. 다시 조금 앞으로 돌아가고, 플레이.

“뭐 하는······.”

그 과정을 지켜보던 이진태 PD가 뭐 하는 거냐고 물으려다 순간 멈칫했다.

눈이 모니터를 뚫을 듯 꽂혔다.

이윽고, 고참 편집자가 뭘 보여주려는지 알게 된 이진태 PD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이거 뭐냐?”

“신기하죠?”

“신기한 정도가 아닌데? 어떻게 ‘연결’이 이렇지?”

장면과 장면 사이.

부드러운 흐름을 위해서 신경 써야 하는 것이 바로 ‘연결’이다.

예를 들어 원래 들고 있던 물건의 높이가 눈에 띄게 달라진다거나, 고개의 각도가 반대로 기울었다던가.

빠르게 지나치기에 시청자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부분들이 과해지면 은연중에 불편함을 준다.

장면이 부드럽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남기는 거다.

하지만 아무리 신경을 써도, 원테이크로 찍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오차들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이 물잔을 얼마나 높이 들었는지, 어떤 각도로 들었는지 완벽히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데 지금 그 불가능한 장면들이 화면 속에서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가 튀어나왔다.

백승결의 ‘연결’은 마치 원테이크처럼 자연스러웠다.

오차를 찾는 게 어려울 정도로 몸의 각도, 손의 위치, 물건을 들고 있는 높이가 한결같았다.

“······이게 가능하다고?”

이진태 피디의 황당한 목소리에 고참 편집자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에이, 의도한 건 아니겠죠. 우연일 거예요. 의도적으로 맞춘다고 이렇게 딱 맞을 수 있는 게 아닌 거 아시잖아요. 최대한 근접하려고 신경 쓸 뿐이지.”

“그렇지. 근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이거 봐봐. 이번에도 그러네. 우연이 이렇게 겹치잖아. 근데 이게 어떻게 우연이야?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랬나?”

“글쎄요. 이런 디테일이 쉽게 보이진 않으니까······.”

“그렇지. 근데 만약에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 정도로 ‘연결’이 잘 맞는다면······.”

이진태 PD가 고갤 돌렸다.

고참 편집자 말고도 나머지 편집자들이 닭 뼈를 손에 들고서 멍하니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건 의도한 건가? 백승결이.”

“오, 소름······.”

“아닐 걸 알면서도 괜히 확인해지고 싶어지네.”

“무슨 도시괴담 듣는 거 같아.”

편집자들이 헛웃음을 흘리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뒤이어 고참 편집자가 덧붙인다.

“만약 그렇다면 괴담은 모르겠고, 괴물인 건 확실할 거 같네요.”

어깨를 으쓱거리는 그를 보며 이진태 PD가 픽 하고 웃었다.

그리고 이마를 긁적이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다들 배도 채우고, 잠도 깼을 테니 이제 다시 힘내보자. 마지막 화까지 얼마 안 남았어, 진짜.”

“넵!”

편집자들을 독려한 그가 여전히 화면에 떠올라 있는 백승결을 한 번 슥 봤다.

언젠가 시간이 나면 ‘종갓집 막내딸’을 한번 쭉 훑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또 모르잖나.

‘정말 괴물일지.’

물론 그 전에 이 터널 같은 촬영과 편집을 보기 좋게 매듭짓고, 방영부터 시작해야겠지.

어느덧 첫 방송까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하며 그가 의지를 불태웠다.

#

눈, 크리스마스, 연말.

세 단어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12월.

한해의 끝자락에서 드라마 ‘그림자 변호’가 출발선에 섰다.

애초부터 기대작으로 주목받았던 드라마인 만큼, 방영 전부터 반응이 뜨거웠다.

물론 드라마는 나와봐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막방까지 봐야 비로소 박수를 칠 수 있다며 냉소적인 반응도 있었지만.

첫 방영 이후, 그런 말들조차도 묻힐 정도로 뜨거운 관심이 모아졌다.

<‘그림자 변호’ 박재준, 고하윤, 첫 방송 시청률 12%로 KNS 올해 최고의 출발>

<시대극에서 비운의 왕비로 고혹적인 매력을 보여준 고하윤, ‘그림자 변호’에서 세련된 도시 여자로 완벽 변신>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무겁지 않게 풀어낸 ‘그림자 변호’에 시청자들이 몰렸다. 지상파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 달성>

1, 2화 만에 엄청난 화제를 몰며 질주하는 ‘그림자 변호’.

13화부터 출연 예정인 내가 등장하려면 내년 2월은 되어야 했다. 덕분에 나도 마음 편히 한 명의 시청자가 되어 드라마를 즐겼다.

‘너무 재밌는데?’

새삼 윤지수 작가의 대본과 이진태 PD의 연출.

그리고 박재준, 고하윤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에 감탄했다. 안 했으면 어쩔 뻔 했어.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훌륭한 티비로 감상하는 사이, 어느덧 올해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동시에, 연기자들의 축제도 함께 다가왔다.

하루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노을이 가장 화려하듯, 수많은 별들이 한 해의 마지막 날 한자리에 모이는 축제.

연기대상.

스스로 1년 동안 얼마나 빛났는지를 증명받는 그 자리에······.

“기분 이상하네.”

올해엔 나도 참석하게 되었다.

아직 ‘그림자 변호’에는 등장조차 안 했지만, 종갓집 막내딸의 ‘안주연’ 덕분이었다.

얼떨떨한 마음으로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귀를 찌른다.

“아니, 그래서······ 어, 형! 아니지, 아냐. 폐하.”

대기실에 들어오자마자 두 손을 공손히 모으는 이강현.

뒤따라 들어온 최지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컨셉 잡네. 하아, 벌써 피곤하다. 선배 얘 좀 말려봐요.”

“무엄하다. 어디 폐하께 선배라는······.”

“형이라 불러.”

“넵.”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옆에서 재잘거리는 애까지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얼른 이강현부터 제압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들어오는 배우들을 반겼다.

“백 배우, 오랜만이야?”

“어, 승결씨 와 있었네요? 얼굴이 더 좋아진 거 같아.”

뒤이어 유종원 PD와 서은영 작가도 대기실로 찾아왔다.

좀 전까지 흐르던 적막이 무색하게 복작거리는 분위기.

대기실이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로 가득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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