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변호 (2)
최우진을 만난 임수영은 곧장 사무실로 향했다.
그와의 만남에서 어질러진 감정들을 추스르며 도착한 사무실.
그새 떨어진 ‘장훈 변호사사무소’라는 간판을 다시 걸어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어항 너머, 자신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읽고 있는 장훈이 보인다.
그 모습이 꼭 어항 속에 사람이 들어간 꼴 같아서 피식 웃으며 그녀가 걸음을 옮겼다.
다가가 보니 자신이 읽었던 최우진 사건의 내용을 훑어보는 중이었다.
옆에 서서 슬쩍 물었다.
“만나야 된다던 사람은 만나셨어요?”
“어, 임 변 왔어?”
그녀를 반긴 장훈이 콧잔등을 찌푸리며 주억거렸다.
“응, 만났지. 만났어. 아주 잘.”
“···뭐 하는 사람인데요?”
임수영이 관심 없는 척, 대수롭지 않은 척 툭 던지듯 물었다.
이에 장훈이 그녀를 스윽 올려다 보았다.
어린 나를 범인으로 만들려고 했던 검사······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대신 씩 웃으며 묻는다.
“내가 뭘 하는지 관심 가지는 거 처음 아냐? 왜 그래 임 변. 임 변 어디 아픈 거야?”
임수영이 렉 걸린 듯 버벅거리며 뒷머릴 쓸었다.
“안 그래도 문제 많아 보이는 이 사무실에 또 무슨 문제가 생길까 봐 그러죠.”
“걱정해주는 거구나?”
“제 경력을 걱정하는 거예요.”
“그게 그거지.”
“그게 어떻게······ 하아, 다신 안 물어볼 테니 걱정 마세요. 그리고 거기 제 자린데 나와주시겠어요?”
싸늘한 축객령에 장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빙그레 웃었다. 시보한테 쫓겨나는데 뭐가 저렇게 좋은지.
“그건 그렇고, 임 변은 오늘 어땠어?”
“최우진 씨요? 어떨 것도 없었어요. 본인도 딱히 감형의 의지가 없더라고요.”
금세 차분해진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 임수영.
그녀가 사건 기록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고의적이긴 하나, 계획적으로 보긴 어렵더라고요. 아픈 동생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죽인 우발적인 범죄죠. 발작은 우연이었으니까.”
“대략 얼마나 나올 거 같은데?”
장훈의 질문에 임수영이 턱을 괴며 한숨을 내쉬었다.
비극적인 사건임은 분명했지만, 동시에 간단한 사건이다.
그리 오랜 고민은 필요 없었다.
“사실 진술이 일관되고 인과관계가 명확해서 줄이고 늘릴 것도 별로 없어요. 비슷한 판례까지 살펴봤을 때······ 대략 4, 5년 정도?”
“그치. 그렇지. 내가 봐도 그 정도야. 딱.”
손가락을 튕기며 끄덕거리던 장훈이 대뜸 돌아봤다.
“이상하지?”
“네?”
“이상하잖아. 왜 이렇게 깔끔하지?”
깔끔하다. 피의자는 형량을 줄이는 것보다 죗값을 온전히 받는 거에 의지가 있고, 모든 진술도 허점이 없어서 검사 측이 어떻게 나올지도 대략적으로 예상이 가능하다.
임 변호사의 말마따나 이건 더하고 빼고 할 것도 없이 4, 5년 땅땅땅 나올 사건이었다.
장훈은 그게 이상했다.
과거의 자신처럼 최우진이 혹시 외부의 압박을 받고 있는 걸까?
그런 짓이 어려워진 세상이라곤 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지.
오늘 검사 놈을 보니 여전하던데.
악연을 떠올리며 생각을 이어가는데, 임수영이 의아해했다.
“최우진이 뭔가를 숨기고 있을까요?”
“흐음.”
“혹시··· 계획을 했다고 보시는 거예요? 동생의 발작이 올 때까지?”
“아니면, 발작이 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수도 있지.”
멍한 표정을 지은 임수영이 최우진을 떠올렸다.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고 그저 죗값을 치르겠다던 그.
그러다 막냇동생 얘기가 나오자 불 같이 화내던··· 아니, 그게 화내는 거였나? 좀 서러워 보이지 않았나?
생각들 속에서 임수영은 선뜻 답을 내리지 못했다.
확실히 그런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그런 사람 따로 있나.’
사람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그녀로선, 자신의 감조차 믿을 수 없었다.
그때 장훈이 몸을 돌렸다.
“혹은···.”
묘한 표정으로 주변을 훑던 그의 시선이 책장에서 멈췄다.
“자기가 반드시 범인이어야만 했거나.”
······분위기를 고조시키던 음악이 멎었다.
뒤이어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스틸컷들이 크레딧과 함께 나타났다.
이진태 PD가 티비에서 시선을 떼어내 두 사람에게로 옮겼다.
입꼬리가 활처럼 휜 두 사람이 그를 반긴다.
“이야, 재밌네···.”
“지금까지 쭉 재밌었지만, 오늘은 그냥 영환데?”
“유종원이. 너 드라마 무시해? 드라마가 잘 뽑히면 영화 같다는 거. 그거 우리한테 얼마나 치욕적인 건지 알아? 드라마 차별주의자야?”
“······복수하시는 거죠?”
“흐, 한번 해보고 싶었다.”
양진호 CP가 실실 웃으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래서, 얼마래?”
두 사람이 만담을 나누는 동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이진태 PD가 고개를 들었다. 놀람과 웃음을 한 움큼씩 집어삼킨 얼굴로.
“···24프로래요.”
지난 회차 19.2%에서 단번에 오른 숫자였다.
“5프로가 뛰었다고? 2주째 답보상태였는데?”
드라마를 보고 20%는 확실히 넘겠다 싶었던 양진호 CP가 크게 놀랐고.
“크으, 승결이 효과 좋다~.”
유종원 PD는 새삼 뿌듯해했다.
저런 배우의 복귀작 PD가 바로 나였어! 라고 외치고 싶은 표정이었다. 처음에 별 기대 하지 않았던 건 잊은 채.
“예쓰! 아, 이제야 국장님 앞에서 면이 좀 서겠네. 암흑기였다. 암흑기였어."
양진호 CP가 안도하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시청률에 헛웃음을 흘린 그가 턱수염을 긁적이며 말한다.
“오늘 거, 엔딩까지 완벽해서 다음 화엔 시청률 더 껑충 뛰겠네. 그리고 아까 네가 말한 탑1, 2 장면이 남았으니, 그 다음 화는 더 뛸 거고.”
“하핫, 그렇게 단순했으면 좋겠네요.”
“어중간한 작품이나 예측이 불가능하지, 잘 만든 작품은 원래 되게 단순해. 회차마다 내용이 계속 좋다? 이코르 시청률이 계속 오른다.”
양진호 CP의 말에 잠시 몽롱한 표정이던 이진태 PD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얼른, 윤 작가님한테 알려드려야겠어요. 시청률 기다리고 계실 텐데···.”
그러면서 화면에 떠오른 키보드를 누르는데, 어디선가 진동이 드르륵 울렸다.
이진태 PD가 말했다.
“저 아닌데요?”
“나도.”
테이블 위에 올려둔 핸드폰을 뒤집은 유종원 PD도 고갤 저었다.
전화가 들어왔는지, 진동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이에 몸을 뒤적이는 양진호 CP.
“아, 난가? 난 거 같긴 한데. 근데 이거 어디 갔냐. 또 여기로 들어갔나······.”
이곳저곳을 뒤져서 마침내 소파 사이에 끼었던 핸드폰을 끄집어낸 그가 화면을 보더니 멈칫했다.
“왜요?”
“누군데요?”
자연스레 흥미를 보이는 두 사람을 보며 그가 씨익 웃었다.
“국장님 전화다.”
#
······전화를 마치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맥주캔을 홀짝이며 핸드폰 속으로 들어갈 듯 뭔가를 보고 있던 현태 형이 기대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몇 프로래?’라고 물어보는 듯한 눈빛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24프로.”
“최, 최고 시청률이!?”
“아니, 평균이.”
“야잇! 대박이네! 이야, 미쳤다!”
현태 형이 환호하며 들썩였다. 하이파이브까지 쳤다. 손바닥이 얼얼하다.
잔뜩 들뜬 그가 덩실거린다.
“어떻게 5프로가 풀쩍 뛰냐. 그것도 막판에.”
“그러니까. 나도 깜짝 놀랐어.”
“하긴 오늘 네 활약 보면 애초에 1, 2프로 오르는 건 말도 안 되긴 했어. 나도 보는 내내 네 연기에 감탄만 했으니까. 채널 돌리다가도 네 연기 보고 바로 붙잡히겠던데.”
“형은 고하윤 배우 보면서 감탄한 게 더 많았던 거 같은데.”
“야, 그건 그냥 팬심이고.”
‘미모가 미치셨잖아···.’라며 황홀한 얼굴을 하던 그가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왔다.
“암튼, 그래서. PD님이 뭐래?”
“PD님은 그냥 시청률만 알려주셨고, 갑자기 다른 분을 바꿔주셨어.”
······바꿔줬다기보단 뺏긴 것 같지만.
“누구?”
“CP님.”
“같이 봤나 보네? 이야, 스케일 커진다. 흥미진진해. 그래서 뭐라는데?”
“너무 잘 봤다고. 앞으로 팬하겠다고······ 이렇게 전해달라 하셨다고.”
듣고 있던 현태 형이 이상함을 느끼곤 갸우뚱했다.
“······뭐라는 거야. 뭐가 그렇게 복잡하냐. 그러니까, 그것도 CP님이 한 말이 아니라, 누가 CP님한테 전한 말이라고?”
“응.”
“누가?”
“국장님.”
“······.”
나조차도 여전히 얼떨떨한 이름이 튀어 나가자 현태 형의 변화도 극적이었다.
혼란스러워하던 얼굴이 몇 초간 이어지다가, 돌연 확 펴지며 그가 펄쩍 뛰었다.
“이야, 나도 KNS에 있으면서 박 국장님이랑 말 섞어본 적도 없는데!”
그야 당신은 예능 PD였고, 박 국장은 예능국장이 아니니까 이 사람아.
그리고 나도 말은 안 섞었어. 그냥 일방적으로 왔지.
“제작진이 아니라 방송국 전체가 난리 났구나?”
이어지는 현태 형의 말에 끄덕이는데, 그가 스스로 정정했다.
“아니지, 아니지.”
뭐가 또 아냐?
“인터넷도 난리 났던데.”
그 말에 현태 형이 보고 있던 핸드폰으로 시선이 내려갔다.
그러고 보니 곧장 PD님 전화 받느라 시청자들 반응은 아직 보지도 못했다.
이번엔 내가 ‘어떻게 난리인데?’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현태 형이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말한다.
“다들 재밌다고 난리더라. 계속 이렇게 짧게 짧게 보는 거 감질나 죽겠대. 아, 드라마 말고. 승결이 너. 너 좀 길게 보고 싶대.”
절로 입꼬리가 들썩인다. 그런 날 보며 실실 웃던 현태 형이 덧붙였다.
“그러니까 제발 다음 작품은 주연해달래.”
#
늦은 밤. 인터넷은 낮보다 더 활기를 띠었다.
특히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와 실시간 반응란이 시끌시끌했다.
안 그래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던 ‘그림자 변호’의 13화가 반응이 제대로 터지면서 너도나도 그 얘기로 떡밥을 굴렸다.
특히 새로 등장한 캐릭터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지분을 백승결의 최우진이 차지했다.
—방금 넷플리스에서 오늘 거 보고 옴. 다들 왜 난리인지 알겠네. 백승결 폼 미쳤다···.
—안주연, 고종, 최우진 렛츠 고.
—으악, 그거 하지마 ㅋㅋㅋㅋ
—ㅋㅋㅋㅋ 근데 고하윤도 오늘 뭔가 달랐음. 이번 작품 내내 차가운 이미지 고수하느라 전작인 ‘왕비령’ 정도로 연기력이 부각되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오늘 백승결이랑 붙으니까 살벌하게 연기하더라.
—극 중 최우진의 분위기가 워낙 강렬해서 그런가. 최우진만 붙으면 다들 연기가 딥해지더라. 영화 보는 줄.
—아, 장임 커플 밀었었는데 오늘부터 갈아탑니다. 변호사와 범죄자의 사랑? 이건 못 참지. 변범 커플 지지합니다.
—오늘 진짜 재밌긴 했나 보다. 다들 들떠서 헛소리 대잔치네.
—그래서, 내용 얘기 좀 해보자. 최우진은 범인이 아닌 건가?
—흐름상 뭔가 더 있는 건 확실할 듯.
—막냇동생도 있다는 설정이 걸림. 알고 보니 걔 범죄를 대신 뒤집어 썼다던가···.
—또 몰라. 윤지수 작가잖아. 드라마계의 뒤집개.
—뒤집개 ㅋㅋㅋㅋ
여러 추리와 헛소리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반응 하나가 불쑥 올라왔다.
—아, 개빡친다.
—???
—매번 이러네, 이 새끼들. 나만 열 받냐?
격한 반응으로 어그로를 끈 시청자가 절규하듯 키보드를 두드렸다.
—대체 왜 이럴 때만 예고편이 없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