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배우 복귀했습니다-50화 (50/167)

잽 (3)

같은 시각, LA 외곽의 한 가정집.

댄의 집에 모인 동료들이 맥주병을 하나씩 들고서 소파에 둘러앉았다.

댄이 방금 공개된 ‘악의 링’ 1화를 틀었다.

동료 중 한 명이 포장지를 뜯어 팝콘을 둥그런 보울에 확 쏟는다.

“이번엔 제대로 터졌네.”

“뭐가?”

“팝콘 말이야. 지난번엔 안 터진 옥수수가 절반이었잖아.”

아그작. 팝콘을 한 움큼 입에 넣으며 티비 화면을 보는 동료들.

마침 그 장면이었다.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했던 오프닝.

살면서 반쪽짜리 감정만 느꼈던 메인 빌런이 타인의 죽음을 마주하며 강렬한 감정에 휩싸이는 순간.

그가 느끼는 희열이 온전히 느껴져 더욱 섬뜩한 장면이었다.

“이 오프닝, 진짜 잘 뽑혔어. 저 메인 빌런의 표정부터 바리케이드가 링으로 변하는 연출까지··· 정말 완벽하단 말이지.”

동료가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였다. 다음 순간에 그의 입에서 아쉬운 마음이 튀어나온 건.

“다른 나라들에 대한 마케팅도 좀 더 푸쉬를 해볼 걸 그랬나 싶네. 내부 시사회 반응도 좋았겠다, 한국에서 기대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도 다른 곳에서 터질 수 있는 거잖아.”

누구보다 열심히 이 프로젝트를 준비했지만 그럼에도 돌아서면 부족해 보이는 게 제작자의 마음이었다.

이에 어느새 맥주를 두 병째 들이키던 백인 동료가 끄덕거렸다.

“작품이 좋은 만큼 좀 더 뭔가 해줄 만한 게 없었을까 아쉬워지지.”

“맞아, 그거야.”

“근데 아마 위에서 승인이 안 떨어졌을 거야. 내부 시사회는 어디까지나 영상화에 관심이 많은 직원들을 상대로 하는 거니까. 참고는 할 수 있지만, 흥행을 예견하는 잣대는 못 되지. 영화제에서 상 받은 영화가 흥행까지 잡는 게 쉽지 않은 것처럼.”

“쩝···.”

백인 동료의 말에 속이 타는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말없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댄이 그들을 다독였다.

“이미 배는 바다로 나갔어. 이젠 우리가 고른 배와 선장, 그리고 선원들을 믿고 응원해야 할 때야.”

“그래, 믿어야지. ‘악의 링’을 못 믿으면 다음부터 대체 어떤 작품을 믿겠어.”

“그것도 그렇네. 이렇게 잘 만든 작품조차 불안해하면 어떡하겠어. 이제 시작인데······.”

세 사람이 한국과의 첫 작품인 ‘악의 링’을 응원하며 맥주병을 부딪쳤다.

이어지는 장면들에 연기력과 연출을 보며 감탄하기를 여러 번.

드라마가 공개된 지 20여 분쯤 지났을까.

맥주병을 내려놓은 댄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동료들의 시선이 모이자 그가 말했다.

“베티한테 전화하려고. 오늘 서버 관리 당직이거든.”

그게 뭘 의미하는 지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포장지 속 팝콘이 얼마나 제대로 터졌을까.

그걸 확인할 때였다.

‘악의 링’을 일시정지 시켜놓고, 모두의 시선이 댄의 핸드폰으로 꽂혔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와 함께.

뚜르르르—.

전화가 간다.

스피커폰으로 바꾼 핸드폰이 요란스레 울려댔고, 이내 소리가 멎으며 베티가 전화를 받았다.

—댄, 안 그래도 전화하려고 했어요.

양옆에서 숨을 헙 하고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온다.

댄이 차분하게 말했다.

“어, 지금 다들 같이 듣고 있어. 말해.”

—방금 한국 서버를 확인했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고요한 집에 울렸다.

다음 순간, 두 동료가 서로를 바라본다. 맥주병을 내려놓고 입을 가린다. 몸을 들썩이다가 팝콘을 쏟을 뻔했다.

어쩔 줄 모르는 두 사람 속에서 내내 침착해 보이던 댄 마저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 주변을 훔쳤다.

전화를 끊고서도 한참 동안, 소란스러운 침묵이 흘렀다.

“미친.”

결국, 백인 동료가 욕을 내뱉었고.

“우리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옆 동료가 확인하듯 물었다.

“···제대로 들은 것 같은데?”

믿기지 않는 얼굴로 묻고 답하는 두 사람.

그럼에도 불안한지, 이번엔 댄을 바라보며 재차 묻는다.

“정말··· 정말, 한국 접속자가 8배나 뛰었다고?”

#

강렬한 오프닝이 거실을 휩쓸었다.

박혜진과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친구들은 넋을 놓고 티비에 빠져들었다.

타이틀 글자들이 연기처럼 바스러지며, 본격적으로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첫 장면의 스산함은 사라지고, 주인공 임훈(—신승찬)의 시점에서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여준다.

평화로운 상황 위로 토핑처럼 얹어진 웃긴 대사들.

언뜻 청춘물을 보는 것 같은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충격적이었던 오프닝 때문일까.

어딘가 모르게 불안했다. 분명 이상할 것 없는 장면인데, 곧 무언가 터져버릴 것만 같은 느낌.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내용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서귀호 선수가 2라운드 21초 만에 세계챔피언 자크 보야배치 선수에게서 챔피언 벨트를 빼앗았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운동은 해본 적도 없고, 공사장에서 일 한 게 전부였다고 하는데, 믿기지가 않습니다! 한편, 서귀호 선수에게 헤드킥을 맞은 자크 선수는 현재 의식불명 상태로······.

어느 순간 확하고 기울며.

“이거 봄? 세계챔피언이래.”

“존나 쩔더라. 2라운드까지 피하기만 하다가 그냥 냅다 얼굴에 발차기 꽂던데. 그러니까 시발 세계챔피언도 뭣도 없어. 그대로 나자빠져서 거품 물더라."

“역시 노가다로 단련된 실전압축근육이 짱인가.”

“봐봐, 내가 그대로 이 새끼한테 재현해 줄게. 야, 현호야. 움직이면 더 맞아. 알았지? 한큐에 가자?”

이야기를 전혀 다른 노선으로 올려놓았다.

반에서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무리의 먹잇감이 된 친구.

그 친구를 바라보던 임훈의 갈등과 용기.

그리고.

“뭐, 뭐야. 이 새끼?”

“이 미친 새끼가···.”

“으. 으윽······.”

놓아버린 이성의 끈.

“자, 잠깐만!”

치솟은 악의(惡意)가 놈들을 삼켰다.

그 순간 포식자가 된 임훈은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친구를 지켜냈다는··· 뭐 그런 알량한 뿌듯함 따위가 아니었다.

[보다 깊고, 훨씬 강렬한 감정······.]

피가 튀도록 상대를 뭉개 트리는 임훈의 모습을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주며, 그의 목소리가 독백처럼 흘러나왔다.

[쾌락이었다.]

장면이 전환되며 임훈이 잿빛 초원 위, 거대한 문 앞에 섰다.

[그날 이후, 저 너머의 괴물이 나를 끊임없이 유혹한다.]

갑자기 쿵! 하고 거대한 무언가에 안쪽에서 문을 찌그러트렸다.

그래도 아직 문을 부술 정도는 안 되는지 뛰쳐나오진 못한다.

[분노를 터트리니 어떠냐고. 짓밟으니 좋지 않았냐고. 괴물의 말대로였다. 나는 그날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큰 희열을 맛봤다. 또다시 누군가를 짓밟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그 이상도 하고 싶었다.]

[······얼마나 참을 수 있을까?]

마치 고래의 울음과도 같은 괴성이 안쪽에서 들려온다.

날카로운 음악과 함께 섞여 더욱 섬뜩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래서였다. 그래서 나는 저 문을······.]

그리고 암전.

검은 화면에서 임훈의 목소리가 마치 두 명처럼 겹쳐져 들려왔다.

[열고 싶지 않다.] [열고 싶다.]

······참았던 숨이 거실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하나의 덩어리마냥 잔뜩 움츠러들어 있던 박혜진과 친구들이 그제야 몸에 힘을 풀었다.

“어우··· 이게 뭐야···.”

“미쳤어···.”

“아, 잠깐만. 나 담 온 거 같아······.”

초토화된 그들을 보며 홀로 멀쩡한 어머니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내가 누굴 믿은 거니? 뭐? 저희만 믿어요?”

“아니, 어머닌 안 무서우셨어요?”

“난 생각보다 괜찮던데? 오히려 스트레스 풀리는 것 같기도~?”

“······.”

“내가 이런 장르를 좋아할 줄이야. 너무 재밌더라!”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던 친구들도 마지막 반응엔 모두가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무서웠건, 무섭지 않았건. 재미만큼은 확실했으니까.

“1화라 배경설명이 전부였는데, 이게 이렇게 재밌을 일이냐구.”

“심지어 아직 임훈이 격투기를 시작하지도 않았잖아.”

“맞아. 격투기 영화가 아니라 스릴러··· 아니, 공포영화인 줄. 막 귀신 나오고 이런 것도 아닌데, 계속 몸을 이렇게 웅크리게 되더라. 묘하게 불안하고, 기분 나쁘고.”

“그게 마지막엔 확 터졌지.”

“그니까. 앞으로 주인공이 저 문을 열도록 유혹하는 게 백승결인 거잖아? 엄청 기대돼···.”

2화를 부르짖는 친구들 사이에서 박혜진은 핸드폰을 찾았다.

와, 드라마 시작할 때 내려놨는데 이제 처음 집네?

그 사실에 새삼 놀라며 화면을 두드린다.

친구들과 떠들고 싶은 걸 꾹 참고서 확인한 댓글.

—자, 이제 숨 쉬셔도 됩니다!

—와, 나 50분 동안 숨을 참을 수 있었네?

—1화 공개되고 방금전까지 댓글창 텅텅 빈 거 실화?

—연출 미쳤다··· 못 참겠다. 한 번 더 보러 다녀오겠습니다.

그녀가 댓글창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제 안 싸우네.”

#

<공중파도, 지상파도, 넷플리스도 놀랐다. ‘멀티온’ 론칭 이후 최대 시청률!>

<1회 만에 역대급 돌풍! 신승찬의 ‘악의 링’, 이대로 장르 드라마계 새 역사 쓰나>

<물음표를 그렸던 박혜정 작가의 드라마, 느낌표를 띄웠다. 하지만 아직 축포를 터트리기엔 이르다는 의견도···>

내 작품과 이름을 검색하며 반응이 어떤가 일일이 확인하진 않았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만으로 알 수 있었다.

뉴스부터 칼럼과 블로그까지, 우리 드라마 얘기로 차곡차곡 탑이 쌓이고 있었다.

아, 그리고 핸드폰에도.

[김연지 선배님: 조 감독님. 어제 속 안 좋다는 건 괜찮아지셨어요?]

[조규필 감독님: 싹 나았지. 속이 뻥 뚫렸어! 다들 반응 보고 있죠? 지금 사람들 반응이 이런데 속 안 좋을 새가 어딨어!]

[신승찬 배우: (끄덕이는 이모티콘)]

[나: 우리가 화면을 전세 냈는데요?]

[마커스필름 대표님: 그러니까! 이야, 이 화면 저장해놔야지. 근데 이거, 캡처 어떻게 하는 거지? 젊은 사람들아? 승결 배우 핸드폰 어디 거 써?]

[나: 저 KnT요.]

[마커스필름 대표님: 아니, 통신사 말고 핸드폰 브랜드!]

[김연지 선배님: 대표님은 하필 물어봐도 기계치인 승결 씨한테 물어보시네. 승찬 씨는 알지 않을까요?]

[신승찬 배우: 저 갤랙신데요?]

[마커스필름 대표님: 오, 나도!]

기계치 서러워 살겠나···.

갑자기 열린 신승찬의 캡처 교실을 따라 하다가 어려워서 포기했다.

내가 어?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데! 캡처 정도는 못 할 수도 있지. 안 해도 외울 수 있다고.

작은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고 벽에 걸린 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사람은 큰 걸 보면서 살아야 돼. 그래야 큰 사람이 되지.

괜히 또 뿌듯해져 티비 먼지를 닦는데, 좀처럼 톡을 하지 않던 박혜정 작가가 등판했다.

[앞으로는 더 재밌어질 텐데, 벌써 이런 반응이면 어쩌지?]

그녀의 말마따나 지금까진 전초전.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비하면 지금까진 가볍게 던지는 잽일 뿐이었다.

극의 스토리도.

<‘백승결이 이런 연기가 가능했어?’ 앞으로 남은 회차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

그리고 내 연기도.

그 ‘앞으로’를 아는 나로서는 더 기대될 수밖에 없지.

내게 굴러왔던 과제를 완전히 해결할 테니까.

안주연, 고종, 최우진 등으로 고착화되어가던 내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과제 말이다.

‘그러면 사람들도 더 다양한 가능성을 봐줄 거고.’

내 역할의 폭이 넓어지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즐거운 연기가 한층 더 좋아지려 한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나만큼이나 기분이 좋은 사람이 또 있었다.

“좋은 아침이야.”

김성운이 평소보다 활짝 핀 얼굴로 밴 안에서 아침 인사를 건넨다.

난 그게 당연히 이미 반쯤 이룬 ‘이미지 탈피’ 때문인 줄 알았다.

“승결아, 드디어 올 게 왔다. 네 진짜 재능을 펼칠 기회가 왔어.”

“그렇죠. 이제 정말 다양한 역할이 들어 올···.”

“예능 들어왔어.”

그 말에 하려던 말을 우뚝 멈췄다.

“뭐가··· 들어와요?”

“예능 섭외. 그것도 요새 케이블에서 가장 핫한 프로그램에서!”

“······.”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멍하니 김성운을 봤다.

그도 날 본다.

아주 기대 가득한 눈으로.

왜 그렇게 보는 건데?

뭘 기대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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