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미제 (2)
“전화했어? 뭐래?”
대본 작업이 끝나자 비로소 사람 몰골이 되어 카페를 찾아온 한이연 감독.
그를 본 카페 사장이 인사할 새도 없이 물었다.
한이연 감독이 웃음을 숨기지 못하며 답했다.
“얼른 달래. 만나재.”
“오케이~!”
카페 사장이 ‘커피 대령할게요, 감독님’이라 덧붙이며 머신기로 향한다.
잠시 후, 커피를 가져온 그녀가 말했다.
“잘 가라! 아주 좋~은 오피스텔로 가. 그 밑엔 스타벅스가 있겠지? 맛있을 거야. 대기업의 맛인데 얼마나 맛있겠어. 내가 내려준 커피 따위, 금방 잊겠지.”
점점 아쉬움이 덕지덕지 붙는 덕담을 들으며 한이연 감독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보면 이미 흥행 성공한 줄 알겠어.”
“백승결이 관심을 보였다며. 네 영화 하고 싶다고 했다며. 그럼 끝난 거 아냐?”
그 사실이 굉장히 든든하긴 했다. 그만큼 이번 작품이 괜찮다는 신호이기도 했으니까.
어쩌면, 정말 운이 좋으면, 진짜로 그가 주인공 역할을 맡게 될지도 모르지.
진기원을 떠올릴 때마다 녀석이 백승결의 얼굴로 나타났던 걸 생각하니,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바랄 게 없긴 하겠다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 아니, 대부분 그렇지 않지.”
성공하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영화판이 아닌가.
국뽕 영화가 대박을 치고, 뒤따라 만든 국뽕 영화는 폭삭 망한다.
선혈이 낭자하는 조폭 영화가 잘되는가 싶어 우후죽순 비슷한 영화들이 나왔는데, 갑자기 존윅이 나타나 총으로 전부 터트려버렸다.
뭔가를 예상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판이다, 이 판이.
한이연 감독이 이해가 쉽게 말했다.
“천광윤 배우님도 망한 영화가 있어.”
그 말은 굉장히 상징적이었다.
국민배우라 불리는 그조차도 삐끗할 때가 있다는 뜻이니까.
하물며 다른 배우들이야 어떻겠나.
“그건 그렇지만··· 야, 넌 뭐 그렇게 애가 부정적이냐?”
“입조심 중이야. 초치고 싶지 않아서.”
“어후, 감독들은 미신을 너무 믿어. 그 뭐야, 작품마다 돼지머리 잘라다가 제사도 지내고 그러잖아.”
“그만큼 간절하니까.”
빙그레 웃으며 답한 한이연 감독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전화가 오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이름이다.
“언니, 잠시만.”
얼른 받으라는 제스쳐를 하는 카페 사장을 뒤로하고.
한이연 감독이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이번 영화에 가장 먼저 스크립터로 팀에 합류한 손기훈의 목소리가 넘어왔다.
—어 누나, 전화하셨어요? 일 하다가 지금 봤네.
“어어. 아니 다른 게 아니라, 홍준 오빠가 전화를 안 받는다?
순간 아주 잠깐의 묘한 정적이 지나간다.
이윽고 손기훈이 미적거리며 말머릴 흘렸다.
—아, 그 형···.
“왜? 무슨 일 있어?”
—그, 홍준이 형 이번에 영화 들어갔어요. 상업영화. 그래서 바빠요.
“그래? 잘됐네~. 한 편 들어간 거야? 남는 시간 없으려나? 나도 이번에 상업영화······.”
—없을걸요.
아까와는 달리 딱딱한 목소리로 답하는 손기훈.
그러나 한이연 감독은 한결같이 반응했다.
“그래? 바쁜가 보네. 좋은 거지. 잘 됐다. 축하 메시지 보내야겠네.”
—누나.
“응?”
—보내지 마세요. 축하 메시지.
“응? 왜? 아직 확정된 거 아니래?”
—아뇨, 그건 아닌데······.
잠시 우물쭈물하던 손기훈이 입에서 맴돌던 말을 뱉었다.
—그 형이 뒤에서 누나 씹고 다녀요.
“······.”
—그것도 엄청 심하게요. 누나가 융통성이 없다느니, 자기밖에 모른다느니, 촬영도 제대로 모르면서··· 암튼, 그러니까······.
나름 최대한 순화해서 상황을 이해시키려는 손기훈의 말을 한이연 감독이 막았다.
“알아.”
—네?
“안다고. 왜 모르겠어. 이 바닥이 얼마나 좁은데. 배 감독이 너랑 똑같은 소리 이미 한 번 했어.”
—근데 왜···.
“잘하잖아.”
한이연 감독의 대답은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내 새끼 잘 찍어주잖아.”
퍽 그녀다웠다.
—······.
“에이씨, 아쉽네. 그럼 누구한테 부탁을 해야 하나. 호호.”
어색한 웃음을 끝으로 카메라 감독은 좀 더 발품을 팔아보는 거로 마무리를 지었다.
뒤이어 괜찮냐고 묻는 손기훈에게 이미 알던 건데 괜찮고 자시고가 어딨냐며 아무렇지 않다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괜찮을 리 없었다.
멍한 표정의 그녀가 차마 카페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들어가면 울 것 같아서.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실패한 사람처럼 울면 안 됐다.
그녀만의 미신이었고, 그녀는 지금 간절했다.
하필이면 그때, 다시 울리는 핸드폰.
굿픽쳐스 박 대표였다.
이쪽은 안 받을 수가 없다. 지인이기 이전에 제작사 대표잖나.
—어, 한 감독. 축하해! 대본 나왔다며.
“······.”
—한 감독? 너무 힘들게 써서 뒤진 거야? 하핫!
“······.”
—한 감독?
참았던 설움이 쏟아졌다.
“대표니이임······.”
#
가뿐한 마음으로, 겅중겅중한 걸음으로, 콧노래까지 부르며 집을 나섰다.
자주 대본을 읽던 동네 카페에 도착하니 기다리던 대본이··· 아니, 한이연 감독이 앉아있다.
“오셨어요?”
그녀가 인사를 해왔다. 나도 마주 인사하며 다가갔다.
그러자 눈을 못 마주치는 그녀.
그게 더 이상해서 눈길이 갔고.
‘눈이 왜 이렇게 부었지? 집필의 고통이 저 정도였던 건가···.’
안쓰러운 마음을 갖고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그녀가 건네는 대본.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었다.
내가 지난번에 받은 대본에서 딱 그만큼이 빠져 있어 곤욕이었지.
진짜 궁금했는데······.
“근데, 그······.”
대본에 눈길을 빼앗긴 사이, 한이연 감독이 말문을 열었다.
고갤 들어 퉁퉁 부은 눈을 마주 보았다.
“배우님 소속사에서 반대하지 않을까요?”
툭 던지듯 자신의 회의적인 의견을 덧붙인다.
“입봉 감독에 마이너한 장르. 이거 한창 잘나가는 배우한테는 완전 사도(私道)잖아요.”
부은 눈과는 별개로 그 말을 하는 모습이 퍽 씁쓸해 보였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지난번 긴 시간 이야길 나누며 내가 알게 된 한이연 감독은······.
‘전 영화 관련 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영상쪽 일을 했던 것도 아닌데, 그야말로 갑툭튀한 거니까. 뭐, 업계 사람들한테 무시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제 작품이 무시당하면 그게 그렇게 속상하더라고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자신의 작품을 무시하고 있었다.
마이너한 장르. 사도라고.
‘확실히, 무슨 일이 있었구나.’
묻지는 않았다. 대신 답했다.
“반대할 수도 있겠죠.”
그게 사실이다. 그리고 회사의 입장을 마냥 무시할 생각도 없다.
내가 그들에게 자유를 원한 만큼, 나도 내 멋대로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나도 필요했다. 이 대본이 먹혀들 만한 또 다른 요소들이.
“투자 쪽은 어떻게 계획하고 계세요?”
나는 어깨너머 배운 김성운의 체크리스트를 활용했다.
홍보팀 직원 말대로 오늘만큼은 내가 1인 소속사다.
“박 대표님 만나기로 하긴 했는데··· 모르죠. 친분하고 일은 다르니까. 안되면 발품 팔아야되는데, 문제는 팀과 배우가 구성되지 않으면 투자가 선뜻 안 나온다는 거예요. 반대로 팀과 배우들도 투자 없이는 시작 안 하려고 하고요.”
‘경력 있는 신입’ 같은 느낌인가. 경력을 쌓자니 회사가 없고, 회사를 가자니 경력이 없는.
잠시 찻잔만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우선 전에도 얘기했지만, 전 이거 하고 싶어요.”
“고마워요. 근데, 전 너무 기대 안 하려고요. 박 대표님도 그러셨어요. 하람에서 이거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거라고.”
“괜찮아요. 하고 싶은 영화 못 하는 게 저한텐 더 어려워요. 그 어려움이 십 년을 가더라고요.”
“···?”
내 대답에 의아해하는 한이연 감독.
그녀를 향해 빙그레 웃으면서 속으론 머리를 공처럼 굴렸다.
김성운에게 대본을 보여주면서 설득해볼까? 그게 가능성이 있으면 지금 이렇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겠지.
아니면 내가 지금까지 하고 싶었던 영화는 전부 성공했다고, 근데 이게 하고 싶다고 얘기해볼까? 신기(神氣)라도 있는 척?
음, 이건 진짜 아닌 것 같고.
‘이런 건 대체 누구한테 물어봐야······.’
빈약한 경험을 채워줄 사람들을 떠올렸다. 몇 사람이 스쳐 지나간다. 유종원 PD부터 안원상 감독, 그리고······.
그다음으로 떠오른 얼굴에 어? 하고 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한이연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님, 대본 혹시 하나 더 있으세요?”
“네?”
가만 생각해보니.
이런 문제로 소속사까지 바꾼 배우가 있었다.
#
“아, 그러니까······.”
김성운의 목소리가 흐물흐물 늘어졌다.
그의 손엔 내가 가져온 대본이 들려 있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든 그가 내 설명을 듣고 점차 안색이 안 좋아지더니 지금은 무슨 배신이라도 당한 얼굴이다.
“이 제목도 없는 대본을 네가 받아왔다. 그, 한이경?”
“한이연 감독님이요.”
“그, 그래. 그 감독한테?”
“네.”
“독립영화하고, 이제 입봉 준비 중인?”
“네.”
“장르는 미술과 잠입이 섞인 끔찍한 혼··· 아니, 하이브리드고?”
평소 저런 말을 잘 안 쓰던 김성운이었는데, 필터링이 안 되기 시작한다.
그가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떨궜다.
“······내가 널 너무 믿었나.”
이내 다시 날 보더니, 덧붙였다.
“너한텐 지금부터가 진짜 중요하단 얘길 내가 했었나?”
“했어요.”
“했구나. 했는데···. 그래. 네가 줬으니 읽어보기야 할 텐데···.”
무작정 반대하진 않는 김성운이었다.
그 사실이 나를 안도하게 했다. 영화 때문이 아니라, 김성운이 그런 사람이라서.
예상이야 했지만, 막상 상황이 벌어지면 모르는 거잖아.
그게 기분이 좋아 씩 웃자, 김성운도 헛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어갔다.
“실망할까 봐 하는 말인데, 내 피드백이 부정적일 수도 있어. 내용도 내용이지만, 아직 투자조차 받지 못한 대본을 어떻게 좋게 보겠어.”
“알아요. 일단 한번 읽어주세요.”
“허, 무슨 자신감이야··· 이게 그렇게 괜찮아?”
그가 제목조차 적혀있지 않은 허연 대본을 이리저리 살핀다.
그때 카페테리아로 정민우가 올라왔다. 담배를 피우고 왔는지 담뱃갑을 셔츠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소식 들으셨어요?”
“무슨 소식?”
“방금 1팀 세언이랑 담배 피고 왔거든요. 걔가 그러는데, 이태관 배우님이 아직 투자도 안 된 영화에 들어가겠다고 하셨대요. 대박이죠?”
“뭐 이태관 배우님이면 없던 투자도 들어올 텐데 무슨 걱정이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얘가··· 아이고. 아니다.”
“···?”
나와 김성운을 번갈아 보며 눈을 끔뻑이던 정민우가 이렇게 자신의 얘기가 묻히는 게 싫었는지 말을 잇는다. 이래도 안 놀라? 그런 표정으로.
“아니, 근데. 그 영화가 독립영화 감독의 입봉작이래요. 전작도 세 갠가 밖에 안 된다던데. 그럼 솔직히 완전 초짜잖아요.”
“시나리오가 대단했나 보지. 그런 쪽으로 엄청 깐깐하시잖아.”
대수롭지 않게 말하던 김성운의 목소리에 돌연 브레이크가 걸렸다.
“가만······.”
지금 다른 팀 소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건조했던 표정에 의심이 스쳤다.
“근데 그거, 이름이 뭔데?”
“아, 그것도 좀 신기해요. 제목도 아직 없대요. 대본이 얼마나 좋았던 거야?”
“······.”
김성운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설마 하는 얼굴에 나도 신기하다는 듯 웃었다.
이런 우연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