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배우 복귀했습니다-82화 (82/167)

82화 휴가 (1)

영화가 끝나고 문이 열리자, 수많은 사람들이 끝없이 쏟아져나왔다.

가뜩이나 큰 영화관, 가장 큰 상영관이 만석일 경우에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들 틈에서 복도로 나온 중년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며 흐뭇해했다.

“확실히 이 영화가 인기긴 한가 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거 보면.”

함께 나온 그의 아내가 아이처럼 좋아하는 그를 보며 웃는다.

“그러게. 난 자리가 너무 편하길래 당신이 중간에 잠들까 봐 걱정했어. 당신 코 골면 진짜 천둥이 따로 없는데 이 많은 사람들한테 창피해서 어떡해.”

“그러니 재밌어서 다행이지! 일절 졸린 적조차 없었다니까?”

“맞아. 재밌긴 했어. 중간중간 막 들킬 거 같으니까 심장이 콩닥거리기도 했는데, 그래도 엄청 재밌었어. 역시 난 해피엔딩이 좋더라.”

“맞아, 마지막에 속이 다 시원하더만.”

중년 남자를 따라 영화 칭찬을 이어가던 아내가 사람들을 따라 밖으로 나오며 감탄했다.

복합 쇼핑몰 안에 있는 영화관이라 홀로 나오니 온갖 매장들이 도서관 책처럼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이미 들어오며 보았던 광경이지만, 오랜만에 이런 곳에 온 게 신이 난 그녀는 감탄을 멈출 줄 몰랐다.

“이런데 얼마 만이야. 아니 처음이지 이런 덴.”

“우리 땐 이런 곳이 없었잖아.”

“없긴 뭘 없어. 누가 보면 우리가 결혼한 지 2, 30년 된 줄 알겠네. 그리고 영화관도 엄청 오랜만에 오는 거 알아?”

“무슨. 지난번 그 뭐야, 대원군. 그거 볼 때도 갔으면서.”

“대한극장? 허구한 날 거기만 가니까 이젠 영화관 같지도 않아. 그래서 난 이번에 승결 씨가 다른 곳으로 티켓 보내줬다길래 얼마나 좋았는데.”

그렇게 말하며 중년 남자의 자켓을 정리하는 아내.

그녀가 씩 웃었다.

“게다가 이렇게 옷까지 차려입고 나오니 얼마나 좋아. 매일 공장 잠바 입고 다니는 거 보기 싫었는데.”

“참 내. 공장 옷이 어때서.”

아내를 흘겨보는 중년 남자.

그래도 내심 기분은 좋은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그래도 대한극장, 거긴 우리의 역사가 있잖아.”

“무슨 역사? 당신 해별이네 보고 엉엉 울었던 역사?”

직접적인 언급에 중년 남자가 민망하게 웃었다.

“내가 그거에 넘어가서 결혼했지.”

“이번엔 눈물이 안 나오더라. 이참에 한 번 더 넘어오게 하려고 했더니.”

“이 영화 보면서 눈물 나면 그건 이상한 놈이지.”

“흐, 그런가.”

머쓱하게 웃는 중년 남자를 보며 아내가 덧붙였다.

“그리고 안 울어도 이젠 너무 잘 알잖아. 당신 괜찮은 사람인 거.”

툭 던진 말이 의외였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는 중년 남자.

그가 코를 킁킁거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휴, 울보.”

픽 하고 웃은 아내가 말을 이어간다.

“그래도 공장일 하면서 술 좋아하는 양반들하고만 친해지는 것 같아서 좀 속상했는데, 이렇게 엄청난 배우한테 초대도 받고 좋네.”

“그날 사인받길 잘했지.”

“거 봐. 그거 받아달라고~ 받아달라고~ 해도 눈치 보인다고 몇 번을 거절하더니, 팬이라는 거 밝혀두니까 얼마나 좋아. 심지어 우리가 첫 데이트 때 본 영화의 주인공이었는데.”

그때를 추억하듯 행복한 미소를 짓던 그녀가 돌연 얼굴을 굳혔다.

“그나저나 걱정은 좀 되네.”

“뭐가?”

“배우들 있는 연예계가 워낙 사건 사고가 많잖아. 최근에도 별의별 일들이 다 있더만. 감독이랑 배우가 대판 싸웠다는 얘기도 있고. 소속사랑 갈등에, 시기 질투도 많다 그러고······.”

“지금 백 기사··· 아니, 승결이를 걱정하는 거야?”

중년 남자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영문을 몰라 눈을 깜빡거리는 아내에게 그가 말한다.

“당신 너무 해별이 때를 생각하는 거 아냐? 걔가 그 거친 인쇄 골목에서 아무도 못 건든 애야.”

“그래? 한 성격 해?”

“성격은 착해. 너무 착해서 탈이지. 평소엔 말수도 별로 없고. 그래서 초반엔 만만하게 보던 공장 사람들도 몇몇 있을 정도였으니까. 근데 걔가······ 절대 마냥 당하는 애가 아니거든.”

고개를 내저은 그가 혀를 내둘렀다.

“오죽하면 삼발이(—세 발 오토바이) 지나다니는 길에 택배차를 잠시 대놔도, 삼발이 기사들이 번호판 보고 승결인 거 알면 좀 기다려줬었다니까? 원래는 잠깐만 앞길 막아도 쌍욕부터 하는 양반들인데.”

“그건 진짜 의외네. 어땠길래 그래?”

“그게··· 아잇 지금 여기서 다 설명하긴 뭐한데, 아무튼 걱정을 하덜말아. 연예계가 아무리 험해 봐야 인쇄 골목만 할까.”

“어휴, 그 험한 곳에 계셔서 좋겠네요.”

눈을 흘기는 아내의 시선을 피하며 중년 남자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너무 재밌었다고 연락을 해야겠다.”

“나도 고마워한다고 전해주는 거 잊지 말고.”

이윽고 귓가에 들려오는 ‘공장장님!’이란 외침에 그가 흐하핫 웃으며 말했다.

“어, 승결아. 이야, 영화 너무 재밌더라!”

#

전화를 끊고서 실실 웃고 있자, 그런 나를 룸미러로 훔쳐보던 김성운이 물었다.

“누구? 여자··· 는 아닐 테고.”

“아니긴 한데, 굳이 확언할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요.”

킬킬대는 그를 보며 답했다.

“옛날에 택배 가지러 갔던 인쇄소 공장장님이요.”

“네가 매번 티켓 보내드리는? 아, 네가 티켓 보내드리는 인쇄소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지.”

그의 말처럼, 과거 택배 일을 하며 인연이 있던 모든 사람들과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들에게 택배 대신 티켓을 보내주고 있지.

“그러고 보면, 너한텐 그때도 꽤 좋은 기억이었나 보다.”

“나름 재밌었죠. 오랫동안 연기를 그리워하면서도 버틸 수 있을 만큼 고된 일이기도 했고요.”

“그건 우리 업계엔 좋지 않은 말인데. 너 같은 천상 배우가 그러다 늦게 돌아온 거니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돌아가지 않았던 건, 그 일과는 무관하다는 얘길 딱히 설명하진 않았다.

그러려면 더 많은 속 얘기가 딸려 나와야 할 테니까.

“그리고 그분들 보면 생각도 많아져요. 엄청 열심히 사시잖아요. 그걸 보면 괴리감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나도 뭔가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지금은 어떤데?”

그의 물음에 씩 웃었다.

“끝내주죠. 하루하루 폭죽이 터져요.”

이에 흐뭇하게 웃는 김성운.

잠시 후, 우리는 차에서 내려 홍보팀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진짜 터졌다.

폭죽이, 펑펑.

“오늘은··· 무슨 축하일까요?”

내가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저 봐, 본인들도 모르는 표정이잖아.

“720만?”

“이젠 10만 단위로 하시는 거예요?”

“에이, 그 정돈 아니고. 20만.”

“그럼 제가 며칠 안 온 동안 120만 늘었으니 여섯 번 해주세요. 빨리.”

“······.”

황당해하는 홍보팀 직원들을 보며 내가 키득거렸다.

옆에서 김성운도 신기하다는 듯 감탄한다.

“이야, 내가 천하의 홍보팀이 벙찌는 걸 다 보네.”

허구한 날 당황하다가 처음으로 당황시켰다는 생각에 괜스레 흐뭇해하다가, 팀장실에서 나온 홍보 팀장과 함께 테이블에 앉았다.

“이제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지켜봐야죠.”

홍보팀장이 드물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천만 관객 돌파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었다.

“아, 승결 배우 지난번에 얘기한 천만 공약은 확정인 거죠? 그게 지금으로선 그래도 가장 큰 홍보가 될 것 같긴 한데.”

“저희 그거 기대하고 있는데, 화가 백승결.”

직원들이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인다.

“화가 아니고요. 그려지는 분이 화가 날까 봐 걱정되는데요.”

“에이, 그런 건 걱정 마요. 팬들은 승결 배우님의 그림을 원하지, 잘 그린 그림을 원하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잘 그린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이 소문은 안 파다한가? 인물화는 아예 그려본 적도 없다는 거.

“이참에 저희 얼굴로 연습 좀 하세요.”

“초상권이 있지만, 승결 배우님이면 흔쾌히 모델이 되어드리죠.”

“아주 각양각색으로 못 생겨서 연습은 되겠다.”

“어어, 그런 식으로 나오시는 거예요?”

갑자기 저들끼리 티격태격하는 홍보팀을 보며 멍하니 있는데, 옆에서 김성운이 팔짱을 꼈다.

“영상을 언제 찍지? 다음 무대 인사에 찍어야 하나?”

이에 팀원들의 싸움 따위 안중에도 없는 홍보팀장이 날 보며 물었다.

“어차피 승결 배우 혼자 하는 공약이니까, 이번에 ‘생터뷰’ 나가서 말하는 건 어때요?”

그러니까···.

내가 생 라이브로 내 무덤을 파라는 얘기지?

#

“······주예린은 뭐해?”

우경철 본부장의 사무실엔 며칠째 열대성 저기압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머지않아 사이클론이든 허리케인이든 몰아칠 기후 위기였다.

그게 오늘인가.

그의 심복, 박 실장은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었다.

“여행 갔답니다.”

“여···행?”

“유럽에서 시간 좀 보내겠다고······.”

연락하지 말라며 핸드폰까지 꺼버린 애가 갑자기 유럽을 갔단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번엔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아주 지랄 염병을 한다! 지가 아이돌이야? 투어를 돌게? 안 그래도 지금 주백기랑 싸웠다 뭐다 말 많은데!”

“주예린이 한국에 있는다고 얌전히 집에 있을 애가 아니잖아요. 차라리 유럽 시골 마을 가면 눈에도 안 띄고 그럴 테니까······.”

나름의 좋은 점들을 말하는 박 실장.

듣고 있던 우경철이 아차 싶은 얼굴로 말했다.

“걔 SNS 단속시켜. 무대 인사도 빠졌는데 유럽에서 여행하고 있다? 아주 불화설에 기름 붓는 거야.”

“······.”

“왜 말이 없어? 설마···.”

“내, 내렸어요. 라인강 보면서 술 한잔 먹으니까 센치해져서 그랬대요.”

“센치는 얼어 죽을. 뭐라고 썼는데?”

“······.”

“뭐라고 쳤냐고! 어차피 검색하면 다 나와.”

“그, 혹시 몰라서 캡처 해두긴 했는데.”

박 실장이 주섬주섬 자신의 핸드폰을 건넸다.

화면엔 그림 같은 풍경과 테이블. 그 위에 와인 잔과 헤드셋이 올려져 있었다.

크게 문제 될 거 없는 사진이었지만, 시기가 문제였다.

주백기 감독하고 영화관이 떠내려가라 싸워놓고, 그날 이후로 무대 인사도 두문불출해서 둘이 대판 싸웠다는 얘기가 오피셜처럼 도는데.

이 상황에 유럽에 있다?

심지어 사진 밑에 쓴 글은 더 가관이었다.

⌜노을이 멋진 라인강. 김세진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쇼팽의 녹턴 들으면서, 노을 닮은 와인 한 잔. 힐링 된다 진짜.

마음 단단히 먹어야지. 더는 갑질, 왕 놀이, 지켜보는 것도 싫고, 소품처럼, 미장센처럼 사용되는 것도 싫다.

#그리고나원래김예린이야이새끼야⌟

“돌겠네, 진짜. 누가 봐도 주백기 얘기잖아! 하아··· 감독이건 배우건 지들 영화에 아주 똥을 뿌리는구나. 똥을 뿌려.”

지들 무덤 지들이 판다며 한참 동안 치를 떤 우경철이 박 실장에게 물었다.

“오늘 연고, 몇만 올랐어.”

“3만······.”

“아주 폭락을 하는구나. 폭락을 해.”

이 점에 대해선 박 실장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러다 진짜 ‘눈속임’ 천만 가면 저흰 어떡하죠?”

“뭘 어떡해, 개 쪽이지!”

버럭 화낸 우경철이 이내 아냐, 아냐. 라고 중얼거리며 고갤 흔든다. 비릿한 미소가 이어졌다.

“그렇게 쉽게 천만 못 돼.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깟 영화가 천만이라니. 말도 안 되지.”

그리고 며칠 후.

2만 대까지 떨어졌던 ‘연고’의 일일관객수가 약간의 회복세를 보였다.

문제는···.

“눈속임은?”

“······.”

“못 들었어? 눈속임은!”

“11만이었나, 12만이었나···.”

“똑바로 얘기 안 해?”

“15만이요.”

그렇게 저주하던 ‘눈속임’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거였다. 그것도 가파른 성장세.

“뭐? 개봉 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일일관객수가 늘고 있어?”

“며칠째 계속 상승곡선이랍니다. 그래서 천만은 어려울 거라 예측하던 전문가들도 이러면 아직 모른다고······.”

기어이 우경철의 뚜껑이 열려버렸다.

그의 본부장실에, 한바탕 바람이 불었다.

집기가 날아다니고 욕설이 난무하는 토네이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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