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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배우 복귀했습니다-88화 (88/167)

88화 하나의 재능이 모든 걸 관통하는 (3)

“돈이 너한테 한 방 먹일 수도 있구나.”

미팅이 끝나고, 차에 돌아온 김성운이 나를 보며 쿡쿡대고 웃었다.

물론 타격감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그 액수를 듣고 안 놀라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난 돈을 경계하는 거지 혐오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그러는 팀장님도 지금 엄청 들뜨신 것 같은데요?”

“흠흠. 티 나냐.”

김성운이 들켰다며 소리내어 웃었다.

애초에 금액을 높이려던 그에게도 예상을 아득히 상회하는 액수였으니까.

“순간 손에 땀이 다 나더라. 애초에 그 정도 생각했던 척하느라 혼났지. 4억 받으면 대박이라고 생각했는데. 애당초 제시했던 거에 2배를 제안할 줄이야. 물론 네가 그 정도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건 아니야. 보통은 중간에 이렇게 출연료가 뻥튀기 되는 경우가 업계에 흔치 않아서 놀란 거지.”

혀를 내두르던 김성운이 제 발 저려서 수습을 한다.

딱히 아무 신경 안 쓰고 있던 터라 끄덕거리며 다음 생각으로 넘어갔다.

“무술 감독님도 이미 두 번이나 호흡 맞춘 분이라 다행이네요.”

“뭐야, 출연료 얘긴 그게 끝이야? 자그마치 6억인데?”

눈을 깜빡이며 바라보자, 황당해하던 김성운이 이내 고갤 끄덕이며 납득했다.

“아니다. 네가 돈 얘기로 이 정도 반응한 거면 엄청난 거긴 하지. 그나저나, 저쪽 팀장이 콘티가 굉장히 어렵다고 계속 앓는 소릴 하던데 괜찮겠어?”

“연습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가볍게 묻자 그가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흐흐 웃었다.

“보통은 연습해도 괜찮아지지 않는 걸 굉장히 어렵다고 하지. 뭐, 그것도 사람 나름이라 승결이 너라면 다를 것 같긴 하다만. 그래도 다치지 않게 천천히 해. 잘하려고 무리하다가 아예 못할 수도 있는 게 액션이니까.”

“네. 조심할게요.”

그 말을 끝으로 밴이 천천히 속도를 냈다.

뱅글뱅글 위드모어 사무실이 있는 건물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주변이 밝아지길 기다렸다가 얼른 새로 받은 콘티(수정본)을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룸미러로 본 김성운이 작게 웃는다.

“액션스쿨에는 내가 이따 전화해볼게. 언제쯤부터 연습 시작하면 되는지.”

“최대한 빨리 잡아주세요.”

잘하고 싶었다.

받은 만큼 잘 해내야겠다는 압박감 같은 건 아니고.

증명하고 싶은 건 더더욱 아니었다.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눈속임’이 천만을 훌쩍 넘어서고, 해별이라는 이름을 지우는 사이.

나는 그다음 스텝을 늘 고민했었다.

고민의 이유는 그 너머에 아무것도 없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하고 싶은 것들이 천지라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어려웠다.

그런 나에게 필요한 건, 선택을 도울 수 있는 ‘경험’이었다.

이제 막 연기의 길로 돌아온 나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부분.

이번 CF가 내게 그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큰돈을 내게 줘도 될만큼, 제대로 준비된 프로젝트라는 거니까.

그러니 이건 내게······.

‘6억짜리 경험인 거지.’

#

며칠 후, 액션스쿨에 들어서자 매트 위에서 뒹굴던 스턴트 배우들이 나를 알아보고 하나둘 모여들었다.

“백 배우, 은근 자주 보는 거 같아?”

“그러게. 이러다 액션 전문 배우 되는 거 아냐?”

“아냐, 아냐. 이미 그거잖아. 뭐였더라······..”

미간을 모으며 고민하던 배우가 손가락을 튕겼다.

“천재 전문 배우!”

설마 그건가 했는데, 역시나네.

피식 웃으며 익숙한 얼굴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 사이, 무술감독도 다가와 악수를 건넨다.

손을 맞잡으며 그가 말했다.

“들어가서 얘기 좀 하자.”

그길로 들어선 사무실.

소파에 앉은 무술감독이 툭 물었다.

“완성된 콘티 봤지?”

“네.”

“난이도가 좀 있어.”

“그런 것 같더라고요.”

태연하게 답하자 그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분명 가끔 보는 배운데, 왜 꼭 우리 애들하고 대화를 하는 거 같냐.”

“제가 좀 친근한 얼굴인가 봐요.”

“친근은 얼어 죽을. 너 같은 얼굴이 친근하면 우리 같은 인상파들은 정말 답이 없다?”

호탕하게 웃는 무술감독 앞에 콘티를 꺼내 들었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을 본 그가 혀를 내두른다.

“뭘 이렇게 공부해왔냐?”

“와이어나 넓은 공간이 필요 없는 동작들은 제가 몇 개 따봤거든요. 그러면서 어려웠거나 모르겠는 거 적어왔어요.”

“스턴트 배우세요?”

“배운데요?”

“푸하핫!”

사무실이 떠나가라 웃어 재끼던 무술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덧붙였다.

“아, 위드모어 이 팀장이 이따 방문한다더라. 아주 똥줄이 타는 모양이야.”

그럴 만도 하지. 광고 만들랴, 게임사에 눈치 보랴.

신경 써야 할 게 한두가지가 아닐테니까.

내가 그중 하나 정도는 줄여줘야겠네.

“잘됐네요.”

“잘돼? 야, 넌 담도 크다. 보통은 첫 연습 때부터 담당자가 온다 그러면 엄청 부담스러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아예 일찌감치 안심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다른 거 열심히 집중해서 준비하죠.”

팀원들의 걱정거리를 줄여서 집중하게 한다.

안원상 감독과 한이연 감독을 보며 배운 방식이었다.

나중에 감독 배역을 맡게 되면 도움이 될까해서 봐둔 건데, 영 엉뚱한 곳에서 적용하게 되네.

꼭 내가 프로젝트 총괄하는 담당자 같다며 감탄하던 무술감독이 함께 밖으로 나오며 불쑥 말했다.

“그나저나, 할리우드는 갈 계획 없어?”

“제가 계획하면 그냥 가는 건가요?”

“푸흐, 그건 아니지만. 악의 링 이후로 대본이 좀 들어온다는 얘긴 기사로 본 것 같은데?”

“그렇긴 한데······ 근데 왜요?”

“난 네가 얼른 할리우드 갔으면 좋겠어.”

갑작스러운 말에 의아해하자 그가 설명했다.

“그쪽은 배우들이 대역을 줄여가는 게 대세거든. 너한테 딱이지.”

그 말을 듣고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웃자, 무술감독이 진지한 표정으로 열변을 토한다.

“우스갯소리가 아니야. 너 거기 가면 통한다니까? 제2의 톰 크루즈 소리 들을걸? 지금까진 너 같은 스타일의 배우가 없어서 매번 실패한······.”

#

“잘 부탁드려요.”

“내가 잘 부탁하지.”

나를 담당해줄 스턴트 배우와 인사하며 슬쩍 옆을 보았다.

매트 위에 앉아 구경 중인 스턴트 배우들 너머로 이런 곳이 퍽 어색해 보이는 이 팀장이 눈에 들어왔다.

“감독님한테 듣자 하니 몇 동작은 아예 연습을 해왔다면서?”

스턴트 배우의 말에 끄덕이며 답했다.

“네. 물어볼 것도 정리해왔어요.”

“진짜 우리 액션스쿨 교육생들한테 좀 보여주고 싶다. 배우가 이렇게 열심이면, 우린 먹고살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건데 말이야.”

히죽 웃은 그가 몇 걸음 물러서며 말꼬릴 올렸다.

“아무튼, 한 번 볼까?”

다짜고짜 시작된 큐 사인에 얼른 콘티를 떠올렸다.

그리고 연습했던 앞부분을 그대로 재현한다.

연습 때 했던 그대로. 조금의 오차도 없이 몸을 움직였고, 연습이 안 된 부분은 과감히 생략했다.

이를 지켜보던 스턴트 배우가 허 하고 헛바람을 삼켰다.

“생각보다도 더 잘 준비해왔는데?”

그의 말에 빙그레 웃으며 다가갔다.

“근데 혼자 하는 연습만으론 한계가 있더라고요. 여기선 다른 배우들도 함께 움직이는 상황이잖아요. 다른 배우들의 동선도 명확히 알아야 동작이 제대로 나올 수 있겠더라고요.”

“그것까지 생각을 했다고? 하하···.”

어처구니없어하던 스턴트 배우가 멀찌감치서 구경 중인 배우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이미 며칠째 연습 중이던 해당 동선을 보여주었다.

화려한 동작과 함께 한 명씩 쓰러지는 배우들.

그 사이에 휑하니 빈 곳이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시연이 끝나고, 스턴트 배우가 내게 말했다.

“동작이 완벽히 완성되면 함께 맞춰볼 거지만, 대충 저런 식이야.”

끄덕거리며 의미심장하게 웃자, 나를 ‘악의 링’부터 맡았던 스턴트 배우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묻는다.

“혹시, 방금 쟤네들 동선··· 다 외웠어?”

“네.”

“미친. 한번 보자.”

그의 신호에 맞춰 아까처럼 움직였다.

대신 방금 본 장면을 떠올리며 동선을 조금씩 수정했다.

이 장면에선 다른 배우의 팔이 걸릴 것 같으니 뒤로 빠지고.

다음 장면에선 배우가 쓰러질 자리를 유의하고.

그렇게 광고의 하이라이트가 될 롱테이크 직전까지의 동작들을 모두 마쳤다.

‘롱테이크는 진짜 어렵겠던데.’

어느새 숨이 찬다. 거칠게 호흡하며 스턴트 배우를 바라보았다.

그도 날 보고 있었다. 헛웃음마저 삼켜버린 얼굴로.

시연을 보여주었던 다른 배우들도 일시 정지라도 누른 듯 조용하다.

그 너머에서 핸드폰으로 이쪽을 찍고 있던 이 팀장은 자신이 촬영 중이라는 걸 까먹었는지 손을 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사이, 정신을 차린 스턴트 배우가 내게 말했다.

“이거, 바로 합류해서 연습해도 되겠는데?”

#

“우와, 저게 되네.”

“오늘 안에 될 것 같긴 했어. 이렇게 간단히 해낼 줄은 몰랐지만··· 진짜 미친 거 아니냐?

“이제 같이 연습해도 되겠다. 우리도 합류하자.”

잠시 구경하던 스턴트 배우들이 우르르 백승결이 있는 쪽으로 몰려갔다.

본격적인 연습을 위해서였다.

이를 본 위드모어 이 팀장이 그제야 핸드폰 촬영을 멈추고 눈을 끔뻑거리며 김 대리를 보았다.

김 대리도 비슷한 표정으로 이 팀장을 바라보다.

그때 옆에서 픽 하고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무술감독이 팔짱을 끼고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팀장이 물었다.

“오늘은 백 배우 혼자 연습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혼자 연습이 끝났잖아요. 두 번 만에. 그렇다고 오늘 할당량 끝났으니 이만 가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진도 빨리 빼면 좋죠.”

“······.”

한층 더 황당함으로 물드는 얼굴들을 보며 무술감독이 껄껄거렸다.

“말했잖습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다고.”

천재과···.

그가 했던 말을 상기하며 백승결이 있는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가 배우들과 함께 합을 맞추기 시작한다.

애초에 그들과 같은 부류인 것처럼 자연스러웠고, 뛰어났다.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보다가 액션스쿨을 나서는 이 팀장.

“몸이 어떻게 그렇게 날렵하죠? 얼굴까지 잘생기니 무슨 그래픽 보는 줄······.”

옆에서 흥분해 떠드는 김 대리를 받아주며 그는 생각했다.

요즘 화장실에 앉아서도 백승결을 선택한 게 정말 잘한 선택인지 불안했었는데, 모든 걱정들이 물과 함께 씻겨져 내려가는 것 같았다.

이제 저쪽은 신경 끄고, 나머지에 집중을 해야 할 때.

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요즘엔 대표보다도 그에게 더 갑이라 할 수 있는, 게임사 쪽 담당자였다.

—오늘 액션스쿨 방문하신 건 어땠어요?

이쪽도 큰 금액을 투자한 만큼 초조하긴 마찬가지였다.

특히 직원들은 대표의 팬심에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지.

팬심에 3억을 더 태우겠다고!? 하면서.

하지만 그게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음을 확인한 이 팀장이었다.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가 만든 콘티에 정말 딱 맞는 배우예요. 일단 액션 쪽으로 정말 뛰어난······.”

그래서였다.

그렇게 호언장담했던 건.

······하지만 이 팀장은 며칠 후 그날의 자신을 후회했다.

—그때 하신 얘기, 대표님께 해드렸더니 아주 좋아하시더라고요.

“예예.”

—대표님은 또 그 얘길 지인분들한테 하셨나 봐요.

“하하, 그래요?”

—네. 그래서··· 촬영장 방문하시기로 한 날이요. 그날 대표님이 조찬 모임이 있어서 다른 분들도 함께 방문하시겠다고···.

태연하게 전화를 받던 이 팀장에게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 조찬 모임이라면 어떤 분들이······.”

이어지는 이름들을 들으며 그의 얼굴이 점점 사색이 되었다.

맙소사.

그 대단한 양반들이 구경을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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