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여긴 이기고 지는 게 없어 (2)
······내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인물을 발견한 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장소에서였다.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방문한 체육관.
늘 같은 시간대에 오는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닌 터라 낯선 얼굴이 보이는 건 흔한 일이었지만.
유독 한 사람에 시선이 갔다.
정확히는 그의 몸.
말이 좀 이상하네···.
‘근데 저렇게 화려하면 시선이 갈 수밖에 없긴 하잖아.’
용문신이 가득한 팔.
심지어 덩치가 엄청 커서 면적도 넓었다.
자연스레 ‘혹시···’라는 생각이 이어지는데, 때마침 나를 발견한 코치가 다가왔다.
“어, 왔어?”
“아, 네.”
“얼른 옷 갈아입고 와.”
“근데, 새로 오신 분들이 많네요.”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자, 그가 끄덕였다.
“응, 요즘 부쩍 늘긴했는데··· 왜, 너무 부담스러워? 시간대를 옮길래?”
“아뇨, 아뇨. 그냥 신기해서요.”
손을 휘적거리며 답하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네가 악의 링 행사로 한창 바빠서 못 올 땐 우리 체육관 미어터졌었어. 물론 다른 체육관들도 회원수가 확 늘었고. 오죽하면 악의 링 이후로 격투기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기사도 떴었겠냐. 관장님은 네가 배우인 걸 아쉬워하시지만 사실상 체육관들 재정에는 네가 배우라서 엄청 큰 도움이 됐지.”
말해놓고서 혹여나 관장님이 들었을까 홱홱 고개를 돌리는 코치였다.
그 모습에 웃으며 다시 시선을 움직였다. 자연스레 화려한 팔뚝에 가서 꽂힌다.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볼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코치가 말꼬릴 올린다.
“몸 그림 살벌하지?”
그의 시선도 나와 같은 곳에 가 있었다.
너무 빤히 보고 있었나.
“아, 그냥 눈에 띄어서요.”
“안 띄면 그게 이상하지. 용이 대체 몇 마리야, 저게. 진기원으로서 저 그림은 어때?”
낄낄거리는 코치에게 이때다 싶어 슬쩍 물었다.
“혹시 그런 쪽 일하시는 분이에요?”
“문신하면 다 그런 쪽 일하는 거냐.”
“아···.”
“근데 맞아. 크큭큭.”
편협한 사고를 자책하려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요?”
“응. 근데 과거형이야. 등록할 때 내가 물어봤었거든. 생활했으면 못 다니는 거냐고 당돌하게 묻길래 오히려 좋다고 했지. 보통 그쪽 애들이 깡다구는 있으니까. 게다가 키 190에 덩치도 엄청 크고. 길거리에선 진짜 이길 사람이 없었겠더라고. 게다가 나이까지 어려. 아주 딱이지. 아니나 다를까 관장님이 너 이후로 괜찮은 녀석이 왔다고 바로 탐내시더라.”
코치의 설명을 들으며 기본 운동 중이 한창인 문신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신나서 줄줄이 풀어놓던 코치가 갸우뚱하며 물어왔다.
“근데 넌 왜 그렇게 관심을 가져? 어디 떼인 돈 있어?”
#
“커피 드세요.”
얼음 가득 담긴 커피를 건네자 운동을 마치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남자가 날 빤히 보았다.
덩치만큼이나 얼굴도 한 인상파 한다.
누가 보면 내가 독이라도 넣어서 준 줄 알겠네.
옆에서 프라푸치노를 쪽 빨던 코치가 나를 가리키며 웃었다.
“알지? 우리 체육관 유명 연예인.”
그러자 남자가 커피를 받아들며 작게 인사를 해왔다.
이에 화답하려는데 고개를 든 그가 나와 코치를 번갈아 보며 대뜸 물었다.
“유명합니까?”
“뭐야, 백승결을 몰라? ‘악의 링’ 안 봤어?”
오히려 어처구니없어하는 코치를 보며 내가 말했다.
“모를 수도 있죠.”
“네. 모릅니다.”
“맙소사. 진짜 모른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코치는 실시간으로 놀라는 중이었다.
“티비 같은 거 볼 시간도 마음도 없었어요.”
이에 코치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넌 이제 24살인 애가 무슨 애늙은이처럼 그러냐.”
가볍게 말을 씹은 그가 꾸벅 인사하고 체육관을 떠난다.
뒷모습을 보던 코치가 피식 하고 웃었다. 그리고 날 보며 말했다.
“처음엔 쓸데없는 허세가 남아있나 했는데, 애초에 애가 좀 쌀쌀맞아. 그래도 그런 안 좋은 일에서 빠져나와 막노동하면서 뭐 먹고 살지 고민하는 게 기특하기도 하고. 격투기 쪽도 고민하는 것 같은데, 이미 관장님 레이더망에 딱 걸리긴 했지만.”
고갤 주억거리며 물었다.
“그래서 저분, 언제 언제 와요?”
저 남자는 아직 모를 거다. 자신이 내 레이더망에도 걸렸다는 거.
다음날.
운동이 끝나고 잠시 코치와 수다를 떨다가 운동을 마치고 나가는 그를 따라나섰다.
“안녕하세요.”
“······.”
무심하게 인사하고서 다시 갈 길 가려는 그.
획 지나치는 그에게 얼른 말을 꺼냈다.
“저녁 안 드셨으면 같이 드실래요?”
“······.”
“밥 먹으면서 듣고 싶은 얘기들도 좀 있어서요.”
“뭔데요.”
“제가 이번에 맡게 된 역할이, 깡패거든요.”
순간 남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마도 깡패라는 단어 때문인 것 같은데.
“그래서요?”
“이런저런 얘기가 듣고 싶습니다.”
가볍게 말해보지만, 남자의 얼굴은 나아질 줄을 몰랐다.
오히려 귀찮은 듯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으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인터넷에서 많이들 떠들잖아요. 그런 거 보세요.”
“제가 원하는 건 조금 다른 방향이라서요.”
끈질기게 묻자 그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내 쪽을 한 발짝 내디뎠다.
그림자가 확 드리운다.
키가 워낙 큰지라 무슨 나무 하나가 서 있는 것 같았다.
“뭐가 다른데요?”
“제가 맡은 역할은··· 후회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내가 후회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까? 깡패짓을 관둔 놈이 얼마나 후회를 할까, 그게 궁금해요? 아니, 당신. 애초에 후회가 뭔 줄은 압니까?”
언짢아하는 그의 말 중, 적어도 마지막 말에는 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알아요.”
“지랄.”
남자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표정을 보아하니 다른게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어 보이긴 하다. 이를테면 주먹이라던가···.
“당신이 안다고?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도 걸어 들어가는 그 기분을?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난 곱상한 얼굴로 대접받고 제 능력인 양 으스대며 살았잖아. 그러면서 뭔가 아는 것처럼 굴지 말라고.”
사납게 쏘아붙이던 그가 흥분한 자신을 잠시 진정시키며 내게 경고했다.
“앞으로 말 걸지 마요. 그딴 부탁할 생각도 말고.”
그리고 쌩하니 돌아서는데, 내가 말했다.
“그것도 좋은 대답이 되네요.”
“···뭐요?”
“혼자만 힘든 거라 생각하는 거. 캐릭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하는 얼굴을 보며 덧붙였다.
“나도 아이디어를 하나 얻었으니 얘기 하나 해줄게요.”
“······.”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도 결국, 내가 선택한 길이에요.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만든 누군가의 문제다, 세상이 문제다··· 하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돼요.”
거기까지 말하고서 잔뜩 상기된 남자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적어도 난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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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철은 집으로 향하는 내내 분한 마음을 삭여야 했다.
‘지가 뭘 안다고.’
자신이 그렇게 몰아붙였음에도 무서워하긴커녕, 흥분조차 하지 않고서 담담하게 말하던 낯짝이 떠오른다.
‘예전이었으면 진짜 가만 안 두는 건데.’
그렇게 씩씩거리며 도착한 낡은 빌라 앞.
밖에 나와 있는 어머니를 본 그가 멈칫했다.
머릿속에 들어차 있던 괘씸함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왜 나와 있어.”
그러자 아들을 본 이의 얼굴에 확 웃음이 피었다.
“안 올까 봐서.”
“······.”
해맑은 미소로 답하는 어머니를 보며 김주철은 올라오는 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내가 왜 안 와.”
“돌아갈까 봐서. 그게 걱정돼서.”
“안 돌아간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우리 아들이 그랬는데··· 미안해.”
“아냐. 들어가자.”
그런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작은 상엔 밥이 차려져 있었다.
국이 곧 반찬인 조촐한 상이었지만 김주철은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제야 안심한 어머니가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티비를 튼다.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티비를.
익숙하게 채널을 돌리는 어머니.
밥을 다 먹고서 자리를 치우는데 어머니가 웃음을 터트린다.
‘드라마 따위에 뭘 저렇게···.’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방으로 들어간다.
그때 문득 시선에 걸린 화면 속 얼굴.
김주철이 걸음을 멈췄다.
“어.”
저도 모르게 내뱉은 목소리.
이에 돌아본 어머니가 신이나 말했다.
“너도 이 드라마 알지? 종갓집 막내딸.”
“몰라.”
“그래? 그래도 백승결은 알잖아?”
“몰라. 그게 누군지도.”
물론 누군진 몰라도 오늘 대화는 나눠봤다.
다시는 말 걸지 말라는 대화.
“백승결을 몰라?”
처음으로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어머니를 보며 김주철이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 다들 왜 그러는 거야.’
대체 저놈이 뭐길래 이렇게 다들 모른다는 말에 의아해하나 싶다. 그래봤자 연예인인데.
“엄마는 이거 한 5번은 본 것 같아.”
“똑같은걸? 뭐하러 그래. 시간 아깝게.”
“보고 있으면 너무 좋더라고. 특히 백승결, 저 배우가.”
“우리보다 팔자 좋은 연예인일 뿐이야.”
김주철도 백승결 이전에 몇몇 연예인들을 만난 적 있었다.
술집에서 일할 때 단골이었던 양반들.
그들이 얼마나 진상이었는지, 일반인들을 얼마나 깔보는지 몸소 겪은 그로서는 연예인에 대한 환상이 생길 리 만무했다.
“운 좋게 태어나서, 힘들어 본 적도 없는.”
“꼭 그렇지만도 않아. 저 배우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허구한 날 나와서 지들이 제일 힘들다 말하는 게 연예인······.”
말을 이어가던 김주철이 순간 말을 멈췄다.
‘그것도 좋은 대답이 되네요. 혼자만 힘든 거라 생각하는 거.’
백승결의 말이 떠올라서.
방금 자신이 하려던 말이,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 같아서.
그렇게 말을 멈추자,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저 배우는 진짜 힘들었을 것 같아. 어떻게 안 힘들었겠어. 전 국민이 그렇게 손가락질을 했는데.”
“······.”
전 국민한테 손가락질을 받았다고?
김주철이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이, 그녀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와서 보란듯이 성공했잖아. 엄마는 그래서 저 배우가 좋더라.”
빙그레 웃어 보인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을 보며 덧붙였다.
“언젠가. 너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서.”
“······.”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김주철은 지금 할 말이 없었다.
저 응원에 대고, 알겠다 말하는 게 그렇게나 목에 걸린 가시 같아서.
좁은 방에 앉아 또 한참을 후회했다.
‘뭐가 어렵다고. 그냥 알겠다 말하면 되잖아. 병신새끼.’
그렇게 자책하고서 바닥에 드러누웠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곧장 포털사이트에 이름 석 자를 입력했다.
[백승결]
그리고 좌르륵 떠오르는 그의 프로필, 영화, 드라마, 그리고 그에 대한 기사들.
<백승결의 차기작에 모든 이들이 주목한다>
<백승결 뮤튜브 개설 1주 만에 구독자 30만 돌파>
<백승결······>
<백승결······>
수많은 기사들이 떠올랐다.
그것만으로 현재 그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어느 정도는 체감이 되었다.
그중 몇 개의 기사를 들어가 내용을 읽어본다.
역시나, 별나라 얘기다.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러다 불쑥, 기사들 사이에 있던 포스팅 하나가 김주철의 시야에 들어왔다.
<날개가 꺾인 아역은 어떻게 다시 날아올랐나?>
잠시 고민하던 그가 포스팅에 들어간다.
그리고 다른 기사들과는 사뭇 다른 내용의 포스팅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필자는 무대 공포증이 있다.
아주 어렸을 적, 발표를 하다가 막혀서 울어버린 경험이 있어서였다.
그때 친구들은 그런 내 모습에 오히려 웃음을 터트렸고, 나에겐 그 순간이 너무나 창피했다. 지금까지 무대 공포증이라는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고작 같은 또래 아이들.
고작 20명.
그 정도의 손가락질에도 한 사람의 기억에 이렇게나 커다란 상흔이 남았는데.
나는 궁금해졌다.
대체 백승결은 어땠을까.
얼마나 큰 상처를 딛고 지금의 자리까지 복귀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