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배우 복귀했습니다-115화 (115/167)

115화 악역 (1)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홍보팀장을 직원들이 반겼다.

출근하고 줄곧 회의실에서 시간을 보낸 터라 홍보팀장이 인사 뒤에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안부를 묻는 일이었다.

“별일 없지?”

물론 직원들의 안부가 아닌, 홍보팀의 안부였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처럼 한눈팔면 안 되는 게 연예계잖나.

“많죠~.”

이어지는 고참 직원의 대답에 자리로 향하던 홍보팀장이 우뚝 멈춰 섰다.

그녀가 서늘하게 물었다.

“커피가 필요한 일이야?”

“아뇨, 아뇨!”

커피머신기로 향하려는 그녀의 발걸음을 황급히 멈춰 세운 고참 직원이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승결 배우에 대한 반응이 장난 아녜요. 우선 단톡방으로도 주말 내내 얘기했지만 승결 배우가 악기점에서 연주한 장면. 이게 여전히 SNS에서 난리예요. 게다가 게시물을 올린 본인도 등판하면서 더 큰 반응을 모으는 중이에요.”

“그래? 게시물 올린 사람이 등판한 건 몰랐네.”

“글 남긴 지 얼마 안 됐어요.”

“뭐라는데?”

“그냥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쭉 썰을 풀었어요. 근데 그게 또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써놔서 반응이 끝내줍니다. 한 번 보실래요?”

고참 직원이 핸드폰을 내밀자 홍보팀장이 머릴 맞댔다.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네요.

⌎저도 그 생각했어요. 심지어 배우인 걸 모르고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있으시더라고요. 그땐 그냥 특이한 손님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때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그랬어요.

⌎손님이 백승결? 거기다 들어와서 나만을 위한 연주?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악기점 알바.

—아니 어떻게 피아노마저 잘 칠 수가 있냐고. 내가 피아노 치는 남자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고 ㅜ

⌎알았겠냐고.

⌎나가주세요. 혼자 있고 싶으니까.

⌎ㅋㅋㅋㅋㅋ남의 게시물 와서 한국인끼리 이러는 거 너무 웃기네.

댓글을 살피던 홍보팀장이 턱을 매만지며 흥미로워했다.

“흐음. 다음에 홍보팀 공고를 낼 때 이걸 이용할까.”

“오.”

그러자 지켜보던 직원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복지에 백승결을 넣는 건 어때요?”

“그것도 좋다.”

“와. 경쟁률 엄청날 듯요.”

음흉한 웃음소리가 흐르고, 홍보팀장이 이어서 물었다.

“그리고 또?”

“이건 방금 뜬 거예요.”

고참 직원이 그다음으로 보여준 건 한 장의 사진이었다.

백승결과 천광윤이 함께 바르샤바를 걷는 사진.

옆에 카메라들도 함께 따라다니는 걸 보니 촬영 중인 걸 찍어 올린 것 같았다.

“이걸 이렇게 누가 합쳐서 올렸더라고요.”

고참 직원이 패드를 넘겨 다음 사진을 띄웠다.

방금 전 본 사진과 함께 예전 ‘해별이네’에서 꼬마 백승결과 천광윤이 나란히 걷고 있는 스틸컷이 분할 화면처럼 붙여져 있었다.

“이건 예술인데.”

홍보팀장이 낮게 감탄했다.

십수 년 전의 두 사람과 현재의 두 사람.

그게 한 화면에 담기니 묘한 울림이 있었다.

“이거 만든 사람한테 연락 취해봐. ‘48시간의 위로’ 홍보에 잘 활용하면 좋겠어.”

“넵.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외 반응이에요. 한국 반응이야 꾸준히 뜨거웠으니 놀랄 것도 없지만, 해외 반응이 심상치가 않아요.”

“어떤데?”

“일단 ‘악의 링’이 다시 역주행을 하고 있어요. 멀티온 실시간 차트에서 스멀스멀 순위권으로 올라오더라고요. 뭐, ‘악의 링’만 그런 거면 그러려니 할 텐데, ‘해별이네’도 조금씩 오르는 거예요. 레딧이나 이런 해외 커뮤니티에서도 승결 배우에 대한 얘기가 꽤 많이 보이고요. ‘악역’ 예고편 조회수도 장난 아녜요.”

최고의 배우들이 모여 있는 매니지먼트 하람이었지만.

그럼에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는 듯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하는 고참 직원.

그의 얘길 들은 홍보팀장이 고갤 주억거렸다.

“이번에도 역시 확신의 대표님인가.”

“대표님이 왜요?”

“악역이 성공할 거라고 확신하시더라고.”

그녀의 말에 고참 직원이 오, 하고 감탄한다.

고참 직원도 하람에 오래 있었기에 알고 있었다.

하선경 대표가 감이 좋다는 걸.

“진짜 궁금해지네.”

홍보팀장이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정말 어디까지 성공할까. 그리고.”

두 작품이 모두 끝나면, 과연······.

“얼마나 더 대단해질까.”

#

모처럼 집에 혼자였다.

이사 이래 가장 조용한 날이 아닐까.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닌데, 거의 있는 것처럼 지냈다.

룸메이트인 것마냥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는 사람들 덕분에 집이 늘 북적거렸지.

김성운을 필두로한 현태 형, 김주철 삼인방과 수시로 캔맥주를 사 들고 방문하는 이강현.

거기에 최근엔 김상억과 이준혁등의 대원군 멤버들도 몇 번 왔었다.

“막상 너무 조용하니 허전하네.”

웃음이 새어 나오는 혼잣말이었다.

십수 년을 이렇게 살아놓고.

쉬는 날이면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고.

그냥 영화관을 갈까, 책을 읽을까, 티비를 볼까. 그것만 고민하며 살아놓고.

지금은 허전하다니.

“금세 적응했네. 사람들이랑 같이 있는 거에.”

풀풀 웃으며 맛동산과 우유를 소파 테이블에 가져다 놓았다.

무려 ‘악역’이 공개되는 날.

사실 그래서 혼자 있겠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이 작품은 뭐라고 해야 하나······.

“혼자 독서하듯 보고 싶은 드라마라서.”

중얼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그러다 어딘가 불편해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소파에 기댄다.

좋다. 이거지.

이윽고 드라마의 공개 시간이 임박했다.

설렘을 안고서 멀티온에 떠오른 ‘악역’ 포스터를 누르는데, 갑자기 요청을 처리할 수 없다는 문구와 함께 영상이 검은 화면으로 멈췄다.

“어··· 안돼. 요청 처리 해줘야 하는데?”

말로 한다고 들을 리가···.

나같은 기계치에겐 너무 치명적인 변수였다.

허둥지둥거리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다행히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아니, 모두의 문제였다.

접속자가 몰리며 서버가 순간 터졌다고.

이젠 정상적으로 재생이 된다는 소식에 안도하며 다시 리모콘을 잡았다.

사람들의 말대로 나갔다 들어오니 영상이 제대로 돌아간다.

아주 요란스럽고도.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사는 기분은. 악역으로서 사는 기분은······.]

고요한 시작이었다.

‘악역’은······.

‘악의 링’처럼 강렬하지도 ‘눈속임’처럼 버라이어티하지도 않다.

분명 영상인데, 마치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가벼운 언사와 행동이 일치하는, 언행일치가 확실한 깡패 오태구.

그가 공사현장에서 용역 일을 진두지휘하다가 가족의 부고 소식을 듣는 장면에서부터 드라마는 본론으로 시청자들을 끌고 들어간다.

사람의 눈이 책에 글자를 횡으로 읽어나가듯, 천천히 오태구의 삶을 조명한다.

하루 아침에 혼자가 된 오태구가 어떤 식으로 좌절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그 속에서 오태구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변하는지.

한 사람의 심경 변화를 너무 무겁지 않게.

적당한 유머와 갑자기 눈물샘을 쿡 찌르는 감성으로 그려나간다.

이 작품은 아주 짧은 일대기다.

오태구라는 인간이 과거 어떻게 스스로를 망가트렸는지.

그리고 이제 어떤 식으로 자신을 구원해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원래 16화 분량이었던 걸 절반으로 줄여 놓아서 그런지, 전개는 빨랐다.

그 점이 역할에 푹 젖어 든 나에겐 아쉬웠지만, 아마 대중들에겐 보다 긍정적으로 어필이 되었겠지.

드라마가 끝났다.

저녁 먹고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늦은 새벽이었다.

8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지나갈 수가 있나 싶다.

‘악역’은 마치 잔잔한 파도와도 같았다.

단순한 플롯이었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날뛰었고, 대사가 몰아쳤으며, 연출이 모든 것을 아울렀다.

그렇게 보는 이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마치 짧은 문장으로 많은 생각을 던지는 ‘시’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쪼르르르. 컵에 물을 받으며 생각한다.

‘결국, 자신을 향한 믿음.’

오태구가 자신을 구원한 방법에 대해서.

내 이번 목표와도 맞닿아있는 메세지였다.

입꼬릴 올리며 물 한잔과 함께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

다시 화면에 떠오른 ‘악역’ 포스터를 본다.

“재밌었다.”

솔직히 내가 출연했다 보니, 내 연기에 부족함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마저 즐거웠다.

내 기억력이, 다음번엔 그것을 반드시 고칠 테니까.

이번 작품에서의 내가 아쉬울 때도 있지만······.

‘나의 연기도 순간이 아닌 흐름이니까.’

‘48시간의 위로’에서 스승이 이인호에게 하는 말을 나에게 맞게 바꿔 적용하며 웃었다.

두 작품을 동시에 하니 느끼는 바는 두 배, 그 이상이네.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서, 영화관인 양 비행기 모드로 바꿔뒀던 핸드폰을 원래대로 돌렸다.

그러자 이번엔 요란한 파도가 밀려온다.

드르륵, 드르륵. 손아귀에서 요동치는 핸드폰.

수많은 연락들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유종원 PD님: 일 끝나고 들어와서 이제 보기 시작했는데, 어쩌냐. 난 아무래도 내일 밤을 새우고 출근하겠구나.]

동시 공개의 부작용에 걸린 직장인과.

[서은영 작가님: 지연이랑 같이 보려고 작업실에 모였어. 와인에 치즈도 함께~.]

[김성운: 현태랑 같이 보려고 준비 중.]

아예 각 잡고 모여서 관람 중인 사람들.

[이강현: 이제 집에서 본격적으로 달려봅니닷!]

물론 나처럼 혼자 보는 사람도 있었다. 아, 얜 그래도 강아지 키우지···.

[신승찬: 드라마 1화 봤는데, 정말 괜찮더라.]

[신승찬: 드라마 2화 방금 봤거든? 이거 진짜······.]

[신승찬: 3화 봄. 네 연기는 정말······.]

이렇게 한 사람에게 여러 번 연락이 와있기도 했다.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다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드라마는 만족스러웠고, 동료들의 반응도 따뜻하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나 싶다.

작품의 성공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충분한 고양감이었다.

분명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CCTV로 날 지켜보고 있는 것 마냥 핸드폰이 울려댔다.

발신자는 댄. 미국발 전화였다.

“여보세요?”

—모니터링 중이에요?

벌컥 댄의 목소리가 뛰어 들어왔다.

늘 진중하고 점잖은 이미지였던 댄인지라 꽤나 낯설었다.

“이미 다 봤죠.”

—오, 빠르네요. 난 아직 4화 남았는데.

목소리는 더더욱. 끌끌 웃은 그가 살짝 떨리는 톤으로 말을 이었다.

—······반응 궁금하지 않아요?

“궁금하네요. 한국은 잠깐 봤는데 좋은 것 같더라고요. 게다가 서버까지 잠깐 먹통이었을 정도니까······.”

—한국만이 아녜요.

“네?”

—미국까지 총 여섯 개 나라에서 서버에 문제가 터졌어요. 그중에 미국은 무려 5분 동안이나 먹통이었고요!

분명 멀티온 입장에선 ‘문제’라 할만했지만 그게 댄에겐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훈장과도 같은 느낌이겠지.

잔뜩 흥분한 댄이 외쳤다.

—이건 정말··· 미친거죠. 멀티온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에요!

충분한 고양감은 개뿔!

방금 전 나의 생각을 비웃듯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머리는 휘청휘청 어지럽다. 급류에 휩쓸리는 기분이랄까.

—처음 있는 일이라··· 이제 정말 모르겠네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었다는 말처럼.

당장 내일이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지······.

“정말··· 그렇겠네요.”

전혀 가늠이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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