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배우 복귀했습니다-116화 (116/167)

116화 악역 (2)

공개와 동시에 어느 정도 반응이 있을 거란 건 모두가 예상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아무도 몰랐지.

아침이 밝자 화제성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하루의 커튼을 열어젖혔다.

<백승결 X 김미옥 작가, 두 복귀자들의 ‘악역’ 하루도 안 돼서 비영어 드라마 부문 1위>

<‘악의 링’에 이어 ‘악역’도 대박··· 시청시간 1억 돌파 가능할까?>

<멀티온의 페르소나 백승결, 역대급 성적 멀티온에 안겨줄까>

다음날 만난 김성운과 김주철, 그리고 현태 형까지.

모두가 붕 뜬 것마냥 흥분상태였다.

그 흥분이 전염이라도 되는 건지 만나는 사람들마다 텐션이 올라가 있다.

축하 인사는 기본이고, 응원을 얼마나 받았는지 모르겠다.

무슨 국제 대회라도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해외 거대 자본, 한국 컨텐츠 시장에 관심을··· 백승결이 쏘아 올린 신호탄!>

아무래도 이런 기사들 때문인 것 같지.

‘악의 링’ 이후로 이어지던 현상을 ‘악역’이 공개되자마자 앞다투어 다루는 기자들이었다.

“이건 쑥스러운 걸 넘어 좀 부담스러운데 말이지.”

뒷머릴 쓸어내리며 뒷좌석에 푹 기댔다.

스케줄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

옆에서 현태 형이 의문을 표하길래 고갤 저었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김성운이 묻는다.

“승결이 넌, 김미옥 작가님 작업실로 갈 거지?”

“네.”

작업실에서 작은 파티가 있었다.

‘악역’의 배우들은 아니고, 서은영 작가 작업실에 놀러 갔을 때 모였던 사람들.

그날 덕분에 나를 만나 멀티온의 ‘악역’이 탄생할 수 있었다며 굉장한 의미부여가 된 모임이었다.

“거기도 다들 아주 난리겠네.”

그러게. 아무래도 다들 한 텐션 하는 사람들이라 오늘 하루 내내 만난 사람들 이상으로 격한 반응이 쏟아질 게 뻔했다.

“그래도 홍보팀만 할까. 다들 너 회사 언제 오냐고 벼르고 있더라.”

“끝판왕이 남았었네요.”

헹가래 정도는 각오하고 가야 하는 곳.

어떤 이벤트를 준비했을까 걱정해야 하는 곳.

홍보팀만 따로 똑 떼어내서 이벤트 업체를 차려도 거긴 대성할 거라 확신한다.

그 좋은 감이 딱 그래.

홍보팀 소리에 옆에서 현태 형이 덩달아 몸을 떤다.

이번에 미팅을 빙자한 면담을 다녀왔다고 했지.

잠시 멀미하는 얼굴이던 현태 형이 말했다.

“그나저나, 짤이 엄청 돈다. 벌써 대형 채널들은 리뷰도 다 올렸고. 오태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얘기하는 채널도 있다.”

“오, 그건 좀 궁금하다. 뭐라는데?”

“오태구가 결말이 그렇게 났으니까······.”

대화 주제가 홍보팀에서 ‘악역’으로 넘어왔다. 그러자 잠자코 운전하던 김주철이 헛기침을 하며 슬쩍 끼어든다.

“그······ 스포는 좀······.”

매니저가 무슨 스포 타령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김주철은 현재 투잡 중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와 유은하를 번갈아 가며 로드를 맡고 있으니 가끔 현장에 가는 것만으로는 정확한 내용 파악이 힘든 게 당연.

심지어 후반부 촬영 땐 아예 유은하의 스케줄을 따라다니느라 못 본 장면도 많지.

그러니 스포를 듣고 싶지 않은 건 당연했다.

적어도 어제였다면, 김성운과 임현태가 그냥 웃으며 넘어갔을 거다.

“너 뭐야. 아직 안 봤어?”

배신자를 찾아낸 듯 놀라며 쳐다보는 김성운과.

“그걸··· 매니저가 아직도? 나도 봤는데?”

작게 중얼거리는 임현태.

김주철이 어버버 당황하길래 내가 그를 비호하고 나섰다.

“두 명 매니저 하느라 요즘 엄청 바빴잖아. 쉴 수 있을 때 쉬어야지.”

그러자 김주철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

의아한 눈들이 몰려들자 옅은 미소를 짓는 그였다.

막내 놀릴 생각에 신나 있던 김성운과 놀리고는 싶은데 여전히 무섭긴 한 임현태가 갸우뚱한다.

핸들을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달싹거리며.

설레임 가득한 얼굴로 김주철이 우리에게 말했다.

“엄마랑 같이 보고 싶었거든요. 그 드라마만큼은.”

#

김미옥 작가의 작업실에 남들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스케줄을 함께했던 일행이 떠나고, 잠시 다른 층에 다녀오겠다는 김미옥 작가를 기다렸다.

어슬렁 어슬렁, 작업실 안을 돌아다녔다.

자연스레 가장 오래 머무르게 된 건 책상 앞.

어떻게 보면 작가들에겐 현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이 1, 2미터 정도 되는 작은 공간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뽑혀 나왔다는 게.

새삼 신기해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서 있는데, 김미옥 작가가 손에 커다란 샴페인 하나를 들고서 나타났다.

무거워 보이길래 얼른 건네받아 둥그런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복귀 성공하면 따려고 보관해놨던 건데, 오늘 드디어 따겠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엔 후련함과 뿌듯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밤새 보고 아침에 잠들었어.”

대뜸 꺼낸 말이지만 뭘 봤는지는 확실히 알 것 같지.

“정말이지··· 푹 잤어. 집필이 다 끝나서도 솔직히 드라마가 어떤 반응이 나올까 걱정하느라 잠을 못 잤거든. 근데 결과물을 보고 나니 반응을 몰라도 잠이 솔솔 오더라. 스스로 만족했던 거지.”

그러면서 식기들을 옮기는 김미옥 작가.

옆에서 그녀의 얘길 들으며 두 손 거들었다.

“내 머릿속에만 있던 세계가 툭 튀어나와서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거. 어딘가 이런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

작품을 볼때의 기분을 곱씹으며 그녀가 툭 말했다.

“정말 오랜만이었거든.”

젓가락과 수저를 짝에 맞게 쭉 내려놓고서, 내가 답했다.

“오태구가 작가님이었네요.”

가볍기 그지없는 깡패 오태구와 온화한 성격의 김미옥 작가와는 접점이라곤 전혀 없을 것처럼 완전히 다른 세상 사람 같았지만.

오늘 그녀의 이야길 들으니 알 것 같았다.

그녀가 오태구였다는 걸.

성향도, 직업도, 가정사까지도 모두 다르지만.

‘건물 사더니 글빨 떨어졌나 봐. 이래서 돈 밝히는 순간 작가로서는 끝이라는 거야. 그러게 건물은 왜 사가지고. 기부나 할 것이지.’

‘임대료 안 올린다고 칭찬받는 거 역겹더라. 돈 많다고 자랑하는 거야 뭐야? 그리고 거기 건물 10억 올랐다며? 그 정도 돈 벌었으면 임대료는 당연히 안 올려야지.’

‘역시 퇴물 작가. 내는 것마다 망하네. 이제 진짜 끝인 듯. 웰메이드는 개뿔. 요즘은 자극적인 막장이 대세인데 말이야.’

그럼에도 그녀는 오태구였다.

악역이었다.

“어떤 작품이든 작가가 비춰지게 되어 있지. 내가 만든 이야기지만, 악역의 스토리라인은 내게 참 많은 위로를 줬어.”

“저한테도요.”

“다행이네. 나만 위로받은 게 아니라서.”

“저만도 아닐 거예요. 꽤 많은 사람이 위로받았을 거예요. 그리고······.”

집에서 엄마와 함께 볼 거라던 김주철을 떠올리며 입꼬릴 끌어올렸다.

“받게 될 거고요.”

그러자 김미옥 작가가 푸근하게 웃었다.

“그럼 더할 나위 없겠다. 나는 네가 말한 ‘자기 구원’의 끝이 결국 타인을 구원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마지막에 오태구가 자신의 과거를 닮은 학생한테 말을 거는 거군요.”

이번에도 김주철이 떠오르는 건.

내가 그를 매니저로 데려오면서 느꼈던 감정들에 대한 의문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나름대로의 자기 구원이었으려나.

때마침 건물 입구에 도착한 다른 손님들이 벨을 눌렀다.

원격으로 문을 연 김미옥 작가가 그 사이 책상을 바라보고 있는 날 보며 말했다.

“글 써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

“저는 이미 연기로 위로를 받고 있는 걸요.”

“또 다를 거야. 넌 이미 작품과 캐릭터를 분석하며 또 다른 창작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 더더욱.”

그러려나.

갸우뚱하며 김미옥 작가를 바라보자, 그녀가 덧붙였다.

“연기는 아주 멋진 경험이지만, 동시에 뜨거운 일이야. 불처럼 타오르지. 그러면 결국 재가 남고. 분명 내 대본을 보며 의문이었던 것들이 있을 거야. 나였다면 이렇게 했을 텐데. 이게 더 낫지 않나? 이런 생각 해봤을 거고.”

“······.”

딱히 부정은 하지 않았다. 그건 거짓말이니까. 속을 김미옥 작가도 아니고.

“당연한 거야. 배우를 굉장히 수동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배우가 오히려 우리쪽에 가깝다고 생각하거든. 창조하는 쪽 말이야. 아무튼, 나는 그런 배우들에게 자신의 글을 써보라고 말해.”

무언가 대단한 걸 쓰라는 게 아니다.

그냥 떠오르는 것들을 써보라는 것.

“물론 글이 끝내준다면······.”

띵동—. 이번엔 작업실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 밖이 시끌시끌했다.

김미옥 작가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문을 열어주러 가기 전, 내게 말했다.

“그땐 세상에 선보여야겠지.”

#

골목에 차를 세운 김주철이 터벅터벅 집으로 향했다.

빈 공터에 비스듬히 떨어지는 가로등.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간다.

더 이상 엄마가 나와 있지 않는다는 것에.

사실 이미 그렇게 된 지는 꽤 됐지만, 그럼에도 귀가를 할 때마다 안도하게 되고, 웃음이 지어진다.

“주철이 왔니?”

“응, 왔어.”

부엌에서 엄마가 무언가를 씻고 있었다.

“딸기네?”

“역시 딸기는 하우스 딸기야. 이거 빨간 거 봐. 맛있겠지?”

“그러네.”

김주철이 피식 웃으며 돌아섰다.

“그거 다 하면 거실로 나와 봐.”

“알겠어~.”

곧장 티비 앞으로 향했다.

털썩 주저앉아 주머니에서 작은 기기를 꺼냈다.

오는 길에 임현태가 준 기기를 보며 김주철이 눈을 빛냈다.

‘도착했어요, 형님.’

‘그······ 주철아.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봐.’

그러더니 호다닥 집으로 올라가는 임현태.

이윽고 뛰어 내려온 그가 무언가를 건넸다.

‘이거 티비에 연결하면 멀티온 볼 수 있거든? 지난번에 네가 스마트티비 아니라서 패드로 봐야 한다던 게 생각나서.’

거기까지 떠올리는데 마침 티비 화면이 바뀌었다.

“나온다···!”

김주철이 해맑게 웃으며 딸기를 쟁반에 담아온 엄마를 맞이했다.

그렇게 시작된 드라마 시청.

‘악역’의 초반부부터 김주철은 코끝이 시큰거리는 걸 참기 어려웠다.

사람들 그 많은 촬영장에서도 울었던 장면인데, 집이라고 참을 수 있을까.

‘아이씨, 불 끄고 보자고 할걸.’

뒤늦게 후회를 하며 억지로 과일을 입안에 쑤셔 넣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엄마도 마찬가지로 눈이 촉촉해져 그를 신경 쓸 새가 없었다는 거다.

1화, 2화, 3화······.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엄마의 우는 횟수가 잦아졌다.

그렇게 4화까지 보고서 잠시 쉬는 시간.

“너무 재밌다.”

퉁퉁 부은 눈으로 그렇게 말해봤자 설득력이 전혀 없지만.

김주철도 비슷한 눈으로 끄덕거렸다.

그때 엄마가 툭 덧붙여 말했다.

“적어도, 이 집에선 넌 악역이 아니다? 알지?”

김주철이 단호하게 고갤 저었다.

“안돼.”

“응?”

“그럼 이 좁은 집에 계속 살아야 하잖아······ 이사 갈 거야. 열심히 일해서.”

두 사람이 벌게진 눈으로 웃음을 흘렸다.

“자, 충분히 쉰 거 같아. 5화 틀어줘.”

“이제 슬슬 자야 하지 않아?”

“엄만 괜찮은데? 너 졸리면 먼저 들어가서 자.”

“아니, 같이 보려고 참았다니까?”

“그럼 지금 같이 다 보시던가요~. 엄만 이런 거 못 참아. 다음이 궁금해서 잠이 안 온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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