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배우 복귀했습니다-126화 (126/167)

126화 이제는 정말 (1)

영화관과 같은 층을 쓰는 카페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찼다.

주말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았다.

국내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48시간의 위로’가 오늘 개봉했기 때문이었다.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매진 행진의 주인공이된 영화였다.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기에 카페 알바생들도 평소보다 많이 출근했다.

건너편 매표소와 스낵바를 보니 저긴 아예 모든 직원이 총출동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바글거리는 사람들에 정신이 없어 보인다.

“아메리카노 세잔하고, 바닐라 라떼 두잔······.”

커피를 받은 여자. 박혜진이 트레이를 들고서 곧장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테이블 세 개를 붙여 만들어진 6인용 자리엔 자신까지 총 다섯 명이 앉았다.

“아, 방장님. 친구분들도 오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건너편에 앉은 여자가 박혜진에게 물었다. 닉네임이 ‘귀호귀여워’라고 했지.

오늘 면대면으론 처음 본 거라 얼굴과 닉네임을 매치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았다.

“친구들은 영화 시간 맞춰서 올라오겠대요. 애들이 은근 낯을 가려서.”

박혜진이 자신과 시사회를 함께 다니는 친구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렇구나. 그나저나, 주변 영화관 티켓이 죄다 매진이라 개봉하자마자는 바로 못 보려나 속상했는데, 진짜 방장님 덕분에 보네요.”

“맞아요. 너무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아녜요. 팬클럽에서 같이 활동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악플에 맞서 싸운 전우들인데 외면할 수 없죠. 제가 재관람까지 싹 책임질게요.”

민망한 듯 손을 휘적거린 박혜진이 때마침 자리로 다가오는 인기척에 고갤 돌렸다.

자신들처럼 젊은 여자가 딱 ‘이 자리가 맞는 것 같긴 한데···’라는 눈빛으로 다가온다.

한 명 더 오기로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박혜진이 입을 열었다.

“혹시, 하람 홍보······.”

“아 네. 맞아요. 반갑습니다~.”

단톡방에서 ‘하람홍보팀’이라는 넥네임으로 활동 중인 진짜 하람 홍보팀 직원.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안 대리.

그녀가 수줍은 웃음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가방에서 간단하게 포장된 꾸러미를 여러개 꺼내어 앉은 사람들에게 돌렸다.

“그리고 이건······.”

“오, 이게 뭐예요?”

“지금 저희가 계획 중인 하람 굿즈인데. 소속 배우별로 하나씩 만드는 중이거든요. 이건 백승결 배우 버전 미리 만들어본 거예요.”

“와, 대박! 안에 뭐 들었는지 봐도 돼요?”

잔뜩 흥분한 팬들에게 안 대리가 끄덕였다.

“백승결 배우가 그린 그림들 모아놓은 미니 수첩이랑 피아노 연주 녹음한 앨범이에요. 아, 포토카드도 있어요.”

“미쳤다~! 이거 혹시 포토카드 랜덤이에요?”

“맞아요.”

“내가 진짜 아이돌 덕질하면서 이런 거 모으는 사람 이해 못했거든요? 근데 이건 다 모아야겠는데요? 얼른 내주세요.”

박혜진과 팬들이 들썩거렸다.

흐뭇하게 웃은 안 대리도 어느새 한 명의 팬으로서 대화를 나눴다.

단톡방에서와 마찬가지로 최근 백승결의 근황에 관한 이야기와 칸 영화제 이후로 달라진 주변 반응들에 대한 썰들로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순식간에 수십 분이 지나고, 영화 시간이 임박했다.

박혜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제 슬슬 가볼까요.”

“으악, 나 너무 기대돼. 어떡해.”

“백승결혼··· 아니, 혜진 씨는 시사회 때 한 번 보신 거죠?”

안 대리의 물음에 박혜진이 끄덕거렸다.

“전 두 번째 관람입니다. 어차피 최소 다섯 번 이상은 볼 거라 중요하진 않지만요. 언니는요?”

“저도요. 두 번째.”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이는 그녀에 다른 팬들이 부러워했다.

“아니, 근데. 팬으로서 N 회차가 당연하긴 하지만 솔직히 배우가 아무리 좋아도 보기 힘든 영화도 많잖아요? 전 예전에 다른 배우 덕질할 때 의리로 보긴 하는데 졸았던 적도 많았거든요. ‘48시간의 위로’는 어때요?”

“음······.”

안 대리가 박혜진을 돌아보며 발언권을 넘겼다.

“솔직히요?”

“네. 스포없이.”

“솔직히 승결 배우님이 출연 안 했어도 재밌어서 여러 번 봤을 것 같은······헤헤.”

“그 정도로 재밌어요?”

이번엔 안 대리가 거들었다.

“완전, 미쳤어요.”

“너무 기대되는데······.”

어느새 다 함께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예약 날부터 매진되어 있던 상영관답게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자리에 앉아 광고가 지나가길 십여 분.

비로소 기다리던 ‘48시간의 위로’가 시작되었다.

초반 묘비 씬에 이은 바르샤바에서 숨 막혀 하는 이인호 장면까지.

박혜진은 이미 한 번 본 장면들임에도 몰입했다.

하물며 팬클럽 회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니, 만석인 극장 전체가 그랬다.

이따금 영화 소리가 정적일 때면, 팝콘을 사지 않은 게 잘한 선택이라 생각될 만큼 극장도 고요했다.

이인호가 숨을 들이켜면 함께 긴장했고.

숨을 내뱉으면 함께 한숨을 토해냈다.

그러다 마침내 주인공 이인호의 눈에 그의 스승이 나타나며, 이야기에 숨통이 트인다.

얹힌 것처럼 억눌려있던 스토리도 앞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중간중간 스승이 사라지고, 당황해하던 이인호.

그가 그것에 적응해 스승이 사라져도 그와 나눴던 이야기와 고민을 계속 이어나간다.

이제보니 그 모습은 마치 이인호가 홀로 고민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승의 배려 같기도 했다.

이어지는 작은 악기점에서의 연주.

그리고 스승에게 등 떠밀려 거리 악사들과 함께 이야길 나누는 씬과 아침 일찍부터 바르샤바 거리를 가볍게 조깅하는 것까지.

두 번 보니 그 장면 장면 속에 디테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스승의 손에 이끌려 이인호가 자신의 음악을 찾아가는 과정은.

마치 인생의 목표를 되찾는 과정 같았다.

‘이래서 ‘48시간으로 압축한 인생에 대한 영화’라고 하는 거구나.’

어디선가 보았던 평가를 되새긴 박혜진이 낮게 감탄했다.

어느새 영화가 마지막에 가까워졌다.

아주 잠깐. 깜빡 잠에든 이인호는 개운한 몸으로 눈을 떴다.

⌜선생님···?⌟

그리고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스승의 모습.

예상하던 바였지만, 걱정하고 우려했던 끝이었지만.

이인호는 그럼에도 밖으로 나섰다. 스승을 찾기 위해서.

거리에 스승은 없었다.

다만 그와 나눴던 48시간의 대화들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

마침내 이인호가 결승 무대에 올라선다.

여기서부터였다.

외신들이 기립박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이번 칸 영화제 최고의 씬이라 언급했던 바로 그 장면.

전율의 마지막 5분.

쇼팽 콩쿠르의 결승 장면이 이인호의 손끝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터져 나왔다.

그 사이로, 백승결의 연주가 얹어진다.

처음 봤을 땐 의심이 들 정도였지.

저게 정말 대역도 쓰지 않고, 흔한 배속조차 건들지 않은 실제 연주라고?

하지만 이내 그런 의문조차도 이 장면이 주는 강렬함에 날아가 버렸다.

한 장면이라도 놓칠까, 한 음이라도 흘릴까.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팔뚝에 소름이 돋아났다.

두 번째인 지금도 다를 바 없었다.

점차 고조되던 연주가 마침내 끝나며.

긴 적막이 흘렀다.

화면이 이인호를 잡았고, 이인호가 고개를 돌려 무대 아래를 내려다본다.

표정이 아주 미묘하게 변한다.

아래에서 스승의 마지막 모습이라도 본 걸까.

영화는 그것을 알려주지 않고 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트로피를 들고 묘비에 서 있는 이인호.

······위로받은 이가 작은 미소로 화답하며, 영화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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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시간의 위로>

관람객 평점: 9.17

—영화제에서 상 받은 건 너무 무겁거나 진지하거나 그래서 항상 내 취향에 안 맞았었는데, 이 영화는 너무 재밌게 봤네요. 추천합니다.

—명작. 다른 말이 필요 없는 영화.

—이인호는 스승에게 위로를 받았고, 우리는 이인호에게 위로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따뜻하게 보다가 뜨겁게 울었습니다.

개봉 이후의 반응도 엄청났다.

포털 사이트는 관련 소식으로 도배가 되었고, 해외 개봉 일정까지 줄줄이 잡히며 해외 흥행에 대한 기대감까지 불러일으켰다.

‘48시간의 위로’는 그야말로 한국 영화가 국내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영광을 지켜보며 기민하게 움직이는 하람의 홍보팀.

이제는 백승결 전담반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돌 정도로 그들은 업무 폭격에 포화상태였다.

반응이 뜨거운 건 국내만이 아니었다.

해외에서 메일이 끝도 없이 온다.

겨우겨우 모두 확인하면 다음날 밤새 한가득이 도착해 있었다.

대부분은 정보를 공유해달라는 기자들의 부탁과 인터뷰 요청이 상당수였지만 영화 제작자나 에이전시의 연락도 무시 못 할 정도로 많아 꼼꼼한 확인이 필요했다.

“이건 또 뭐야.”

눈에 하루하루 다크서클을 짙게 그리며 메일함을 확인 중이던 커뮤니케이션 담당 안 대리가 장문의 메일에 눈을 끔뻑였다.

눈알을 데구르르 굴린 그녀가 파티션 너머에 서 있는 홍보팀장에게 말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거기서 왜?”

“칸 영화제에서 자기들 제품 입어줘서 고맙다고요. 곧 좋은 소식으로 다시 찾아뵙겠다는데, 이거 광고 얘기하는 거 맞죠?”

안 대리가 모처럼 신난 표정으로 물었다.

“이번에 승결 씨 착장이 화제가 되긴 했지.”

“해외에서도 그걸로 엄청 난리였나봐요.”

“승결이 정도면 슬슬 명품 광고 하나 할 때 됐지. 안 그래?”

홍보팀장의 말에 직원들이 동조한다.

회의 테이블에 기대어 앉아 대본을 넘기고 있던 김성운이 문득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어보았다.

“혹시 빌라오소피, 거기선 연락 온 거 없어요?”

“네, 안 왔어요. 왜요? 거기 옷도 입었어요?”

이에 김성운이 고갤 흔들었다.

“아뇨. 오히려 그 반대였죠. 그래서 이를 가는 친구가 하나 있어요.”

여전히 뿔이 잔뜩 나 있는 코디를 떠올리며 피식 웃은 그가 손에 들린 대본을 정리했다.

옆에서 함께 대본을 훑어보던 직원이 들뜬 얼굴로 말했다.

“이제, 들어오는 배역이 완전 달라졌네요.”

“그러니까요. 적어도 뻔한 동양인 역할은 없네요.”

전부 해외에서 들어온 대본들이었다.

가뜩이나 ‘악의 링’ 이후로 간간히 들어오던 할리우드 대본이 ‘악역’과 ‘48시간의 위로’를 거치며 이젠 아예 승결이 앞으로 오는 대본의 2, 30%에 육박한다.

칸 영화제 직후라 더 많이 오는 거라고 하지만, 앞으로도 한동안은 할리우드의 관심이 끊이지 않을 것 같지.

‘칸 영화제 뒤풀이에서 감독들이 그렇게 승결이한테 관심을 보였으니······.’

흐뭇하게 웃은 김성운이 문득 과거 2팀을 처음 만들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팀장님이 보고 가장 포텐셜 높을 것 같은 배우에게 붙어서 잘 키워봐요.’

그때 대표님도 이렇게 클 줄은 모르셨을 거다.

그러니 이젠 정말······.

도전 해볼 만 할지도 모르겠다.

‘할리우드.’

김성운이 대본 뭉치를 움켜쥐었다.

그 대단한 하람에서도 대표님을 제외하고는 할리우드에 도전하는 걸 그냥 퍼포먼스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젠 정말 모르겠다.

당장 이 대본들만 해도 할리우드행 티켓이 대체 몇 장인가 싶다.

“전 이제 슬슬 승결이한테 가볼게요.”

대본 뭉치를 들고 일어난 김성운이 옆에 올려진 상자에 그것들을 탑처럼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칸 영화제에서의 선전은, 고작 시작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상자 안의 대본 탑처럼 높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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