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배우 복귀했습니다-142화 (142/167)

142화 그린스크린 위의 괴물 (4)

—데이브에 세이디라니.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몸값 비싼 배우들이잖아!

—몸값만 비싼가. 연기력도 물 오른 배우들이지. 게다가 감독 생활에 전성기뿐이라는 크리스 감독까지.

—그래서 조연부터는 예산이 부족했나 봄.

—백승결도 최근 화제성 높은 배우들 중 하나긴 하지. 할리우드에서 증명한 건 아직 아무 것도 없지만.

—멀티온에서 역대급 성적을 가진 작품이 두 개나 있고, 칸 영화제에서 주목까지 받았으면 꼭 할리우드가 아니더라도 배우로선 증명한 거 아닌가?

—드라마는 죄다 자기 나라 드라마라 문화적인 독특함과 신선함도 흥행에 한몫했고, 영화제도 작품성만으로 승부를 보는 곳이니 증명을 못 한 건 맞지.

—갑자기 홈을 벗어나서 원정을 오겠다? 너무 욕심이 과한 것 같은데······. 이러다 망한 배우를 너무 많이 봐서.

—사실 성공한 배우가 없지.

크리스 감독의 복귀작인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의 캐스팅 명단이 발표되며, 미국의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화두로 떠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업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은 블록버스터를 즐겨 만드는 크리스 감독의 복귀작이자.

할리우드에서 2, 30대 젊은 배우들 중에서도 화제성과 연기력을 함께 갖춘, 게다가 몸값까지 최고인 남녀 배우를 주인공에 앉혔으니.

감독의 팬이든, 배우들의 팬이든.

아니면 영화의 팬이든.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관심이 감독과 주인공들의 이름을 지나 다음 명단에 꽂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었다.

백승결.

비록 주인공급은 아니지만, 등장인물 중에서 네 번째로 이름을 올린 배우.

그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크리스 감독이나 데이브, 세이디가 논쟁의 여지가 없는 톱 감독, 톱 스타였기에 오히려 이쪽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멀티온에서 타 문화권 드라마라는 것을 인지하고 컨텐츠로 소비하는 건 괜찮았지만, 할리우드로의 진출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시각이 논쟁의 불씨였다.

“너무들 하는군······..”

하루 종일 스토리보드를 확인하다가 이제 한숨 돌리던 코리 황이 핸드폰 속 뜨끈한 반응에 미간을 구겼다.

물 흐르듯이 백승결을 받아들인 영화계와는 달리.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아직 색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 색이, 그 색(色)이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피해의식일까?

전 세계 1억 시간을 돌파한 드라마가 두 개나 되고, 칸 영화제에서 수상까지 한 영화의 주인공인 배우인데.

할리우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이유로 욕을 먹는다니!

‘하긴, 성인(聖人)도 거부가 있고 현자(賢者)도 악플이 달리는 세상에 배우라고 다를까.’

애초에 크리스 감독의 신작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모두의 기대를 모았던 영화인 터라 더 난리인 감도 있다.

원작이 따로 있는 영화인 것마냥, 개봉하기도 전부터 이러쿵저러쿵 평가하는 이들도 많았다.

“에라이.”

코리 황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는 어느새 진심으로 백승결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대하고 있었다.

안타까움을 빙자한 오지랖과.

걱정 뒤에 숨긴 조소에···.

백승결이 제대로 한 방 먹여주길.

‘실제로 그게, 가능할 것도 같단 말이지.’

아주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CG 감독이 크리스 감독에게 전활 해서 백승결을 두고 앤디 서키스 같다고 말했단다.

킹콩에서 킹콩을,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을, 혹성탈줄에선 시저를 맡았던.

모션 캡처의 영역에선 대체할 자가 없다고 평가받는 안면 연기의 제왕인 그 ‘앤디 서키스’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린스크린에 익숙지 않다고 했던 백승결과 그를 비교한다고?

반신반의하며 테스트 영상을 확인했고, 그의 말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턴트 연습에서도 백승결의 무용담(?)은 끊이질 않았다.

‘세 번째 연습에서였나?’

스턴트 감독이 ‘백승결 대역에게 백승결 대신 무엇을 시켜야 할지 몰라 그냥 백승결을 불러 달라고 했다’는 황당한 소릴 전해왔고.

주변 스턴트 배우들은 백승결이 톰 크루즈처럼 대역을 최소화한 연기에 특화되어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앤디 서키스에 톰 크루즈라니······!’

할리우드 설레발이야 그다지 믿을 게 못 되지만.

적어도 크리스 감독이 고른 완벽주의자들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들은 크리스 감독의 완벽주의를 몹시 싫어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의 완벽주의를 펼치기 위해 자신들보다 더한 그와 함께 일하는 괴인들이니까.

‘그런 그들이 저런 소릴 하며 혀를 내둘렀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궁금했다.

그 무용담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싶었다.

그렇게 코리 황은 첫 촬영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의 첫 촬영 당일.

세트장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수많은 이들이 긴 시간 동안 공들여 준비한 프로젝트의 첫 삽을 뜨는 순간인 만큼, 성공적인 촬영이 되길 바라고 있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았다.

흥미로운 시선들이 섞여 있었다.

첫 촬영. 첫 단추를 끼우게 될 나에게로.

“승결아 이건 기회야···.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줄 기회.”

길가에 세워진 카라반 대기실에서 짐을 푸는데 현태 형이 나를 보며 응원한다.

옆에서 나를 돕던 김성운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다?”

“명작이죠.”

“어디서 나온 대산데요?”

마지막에 튀어나온 김주철의 질문에 현태 형은 물론이고 김성운마저도 벙찐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주철이 너 해바라기 안 봤어?”

“······꽃이요?”

“아니, 어떻게 깡패가 그걸 안 봐?”

현태 형이 필터 없이 내뱉은 질문에 김주철이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라고 할 뻔. 하하···미안.”

얼른 말을 주워 담고 카메라 세팅을 마저 하는 현태 형.

시무룩한 김주철의 어깨를 두드리며 내가 말했다.

“그러는 형은 연출자가 왜 계속 카메라 앞을 서성이는 거야?”

“내, 내가 언제.”

“이번에 올라간 영상 보니까 굳이 필요 없는 목소리도 편집 안하더라?”

“그거야 내 목소리가 안 나오면 이젠 막 댓글에서 사람들이 찾으니까. 그리고 뭐! 나도 같이 유명해지면 좋은 거잖아!”

“난 걱정돼서 그러지. 형 얼공하면 악플 받을까 봐.”

“팀장님 얘 형한테 싸가지 없는 것 좀 보래요.”

김주철을 대신해 현태 형과 티격태격하며 분장팀을 기다렸다.

이윽고 카라반 안으로 들어온 분장팀.

장장 한 시간이 걸려 파코스 분장을 마쳤다.

누더기에 가까운 옷까지 걸치고서 카라반을 나선다.

기다리고 있던 스태프가 우릴 세트장으로 안내한다.

“후우··· 제가 다 떨리네요.”

스튜디오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테마파크(—사실 테마파크로도 쓰인다)라도 온 양 휘둥그레져 있던 김주철이 몸을 떨었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웃어 보이며 세트장 안으로 들어섰다.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될 만큼 커다란 그린스크린.

그곳에 나는 컨셉 아트북에서 보았던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눈속임’의 진기원이라도 된 것처럼 세세하고, 정확하게.

어느새 내 눈앞엔 도심 속 거리가 완성되어 있었다.

구석에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선풍기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바람이 불며 모래가 흩날렸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크리스 감독을 보았다.

그는 말없이 짧게 고갤 끄덕였다.

그게 그의 방식이었다.

대기실에서 여기까지. 머리 위에 공을 올린 듯 아슬아슬하게 몰입을 유지해왔을 배우들이 곧바로 촬영에 돌입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소통만 하는 것.

나는 리허설때 파악한 위치에 올라서서 다시 크리스 감독을 보았다.

이번엔 내가 짧게 끄덕였고.

—액션!

그의 목소리가 파코스를 깨웠다.

#

파코스는 허리를 굽혀 허름한 천막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족히 여든은 됐을 법한 노파가 앉아 있었다.

그가 잠시 당황했다. 근래 들어 저 정도로 연로한 노인을 본 적이 없었다.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라 인간의 기대수명이 반 토막 나버린 탓이었다.

“······밖에 이거, 얼마입니까.”

대단한 노인네라 생각하며 파코스가 손에 든 토끼 모양 목각인형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주름진 눈으로 파코스를 빤히 바라보던 노파가 되물었다.

“필요도 없는 걸 왜 사려고?”

“예?”

또 한 번 당황한 표정을 짓던 파코스가 서글서글하게 웃었다.

“하하, 제 딸에게 주려고······.”

“자네에게 딸이 있나?”

“제가 그렇게 젊어 보입니까? 이래 봬도 7살짜리 딸이 있습니다.”

“그걸 집에 가져갔을 때에도. 있을까. 그 딸이?”

“예···?”

파코스의 얼굴에 번지던 웃음이 날아갔다.

노파의 독특한 말투, 묘한 분위기,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기괴한 눈빛에 소름이 끼쳤다.

“그게 무슨······.”

되물으려던 파코스의 목소리는 그 끝을 맺지 못하고.

콰아아앙——!

커다란 폭음에 먹혀버렸다.

파코스가 천막을 들췄다.

거리를 걷던 사람들도, 거리로 나온 사람들도.

모두의 시선이 폭음이 들렸던 쪽으로 향해있었다.

그곳에선 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툭—.

목각인형을 떨어트린 파코스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천막을 뛰쳐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실낱같은 희망이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렸다.

그 끝을 잡고 싶었지만, 집에 가까워질수록 파코스는 자신이 잡은 것이 절망임을 깨달아갔다.

점차 강해지는 모래바람.

그 속에 남아 있는 건 거대한 구멍뿐.

참변이었다.

재난이었고. 재앙이었다.

“어어······.”

하늘은 무심했고.

땅은 무자비했다.

파코스는 무너져내렸다.

“어으어·········.”

방금 가족을 삼킨 싱크홀처럼.

#

······촬영이 연달아 이어졌다.

감정선이 조금이라도 끊기지 않도록, 크리스 감독은 거침없이 액션과 오케이를 외쳤다.

그렇게 파코스의 과거 회상 장면이 끝나고.

다음 씬은 현재였다.

비참한 과거를 떠올리며 저 멀리 사라져가는 남녀주인공(—CG로 처리될 예정)을 내려다보는 파코스.

“이제 와 원수를 갚으려는 건 아니야.”

그를 연기하는 백승결이 슬픔조차 옅어진 건조한 눈으로 연기를 이어나간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할 뿐.”

철컥—.

권총 한 자루를 품에 안은 그가 남녀주인공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

그 모습을 보며 코리 황은 감탄했다. 벌써 몇 번째 감탄인지 모르겠다.

이 커다랗고 텅 빈 세트장이 결코 허전하지 않았다.

배경이 없었지만, 배경이 보였다.

아직 CG가 추가되지 않은 모래바람은 이미 그 자체로 매서웠고.

아이소핑크를 깎아 만든 돌무더기들은 묵직했다.

2m가 채 되지 않는 조잡한 녹색 싱크홀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심연 같았다.

그 모든 착각을 백승결, 저 미친 배우가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코리 황은 자신이 그토록 궁금해했던 연기 앞에서 정신없이 감탄하고 쉴 새 없이 경악했다.

자신을 콱 잡고서 놓치지 않던 백승결의 연기가 잠시 멈췄을 때.

그는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냉소적인 크리스 감독의 얼굴에 가득 차 흘러넘치는······.

어느 때보다 뜨거운 희열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