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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배우 복귀했습니다-143화 (143/167)

143화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 (1)

······아침 조깅을 마친 세이디가 운동복차림 위에 바람막이 하나 걸치고 회사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나기로 한 것은 자신의 매니저를 비롯한 팀원들.

오로지 세이디 모튼만을 위해 움직이는 그녀의 전담팀이었다.

그들과 광고 촬영에 대한 회의를 짧게 하고서, 세이디는 다시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었다.

다음 약속 장소는 드레스코드를 중요시하는 레스토랑.

아무리 할리우드 스타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화려한 인테리어에 낮은 조도. 그리고 프라이빗한 룸.

얼굴이 명함인 이들이 마음껏 놀기 좋은 공간에, 세이디를 비롯한 그녀의 오랜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가 할리우드에서 ‘신예’ 혹은 ‘스타’라 불리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모이자 방 안이 저마다의 이야기로 왁자지껄해졌다.

“어우, 난 술 안 마셔. 밤새 파티하고 방금 일어나서 부랴부랴 나온 거야.”

“어제 간 스트립바에서 스트리퍼 중 하나가 꿈이 배우라더라? 얼굴이 괜찮길래 연기 해보라고 했는데, 괜찮더라고. 근육만.”

“요즘은 시리즈 물 하나 딱 물어서 한 10년 이렇게 장기적으로 찍는 게 최고지. 한 작품마다 출연료가 두 배씩 뛰더라. 그렇다고 너무 캐릭터 굳어지면 안 되니까 중간중간 다른 영화로 환기도 하면서.”

드레스코드가 중요한 레스토랑이지만 유머코드는 제한이 없나 보다.

‘한심해.’

세이디는 이곳에 나온 것을 후회했다.

다음 작품은 뭘 하고 싶은지.

무슨 연기가 하고 싶고,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그런 것들을 밤새 떠들던 친구들의 대화가 어느새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이래서 이 모임엔 한동안 뜸했는데 말이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차라리 대본을 한 번 더 읽는 게 백만 배는 나았으리라.

그때 시큰둥한 표정의 그녀를 누군가 불렀다.

“세이디.”

할리우드 신예들 중에서도 세이디 다음으로 가장 왕성히 활동 중인 찰리 톰린슨이었다.

“···?”

“네가 지금 찍고 있는 영화, 제목이 뭐였더라······.”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

“그래, 그거. 요즘 사람들이 그 영화 얘길 엄청 하던데.”

모난 공마냥 이리저리 튀던 대화 주제가 세이디에게 넘어왔다.

다른 배우들도 하나둘 이 주제에 입을 얹었다.

“아니, 세이디. 작년에도 세 작품 연달아 찍더니 올해도 너무 달리는 거 아냐?”

“감독이 크리스 디벗이면 그럴 만해.”

“그래도 사람이 쉬면서 연기해야지. 우리가 뭐 마르지 않는 샘도 아니고.”

“근데 너한테 섭외가 갔다고 생각해봐. 너도 안 해?”

“그럼 하지. 당장 도장 찍지.”

“거 봐. 그러면서 뭘.”

“난 세이디에 비해 인지도가 부족하잖냐.”

“그래서 네가 아니라 데이브한테 역할이 간 거야.”

“이 모임도 너 대신 데이브가 나았을 텐데. 푸하핫!”

“젠장.”

시답잖은 농담 사이로 낄낄 웃어대던 찰리가 ‘데이브’의 이름이 나오자 다시 세이디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데이브도 같이 오라니까.”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의 남자주인공이자 이 자리에 있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마찬가지로 ‘신예’이자 ‘스타’인 배우.

“안 불렀어. 불러도 안 왔을 거고.”

그 말에 찰리가 갸우뚱한다.

“왜?”

오기 싫어서··· 라는 생각은 아예 없는 듯했다.

소위 최근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나가는 배우들의 모임인 이곳에 안 오고 싶을 리가 없잖아?

뭐, 이런 표정이랄까.

“연기 연습하느라 여념이 없을 거거든. 대본 리딩때 충격을 크게 받아서.”

“데이브 정도 되는 배우가 무슨 이유로? 크리스 감독이 뭘 했나?”

전혀.

크리스 감독이 한 건 캐스팅뿐이었다.

정작 뭘 한 건 백승결이었지.

모든 캐스팅이 끝난 후 다 함께 모인 첫 대본 리딩.

그때를 떠올린 세이디가 입꼬릴 슬쩍 올렸다.

그날, 데이브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무려 8차 오디션 끝에 합격한 것이 마냥 기쁘기엔······.

‘나와 백승결은 금세 캐스팅에 확정되었으니까.’

심지어 백승결이 4차에 합류에 7차까지 예정되어 있던 오디션을 아예 뒤엎어버리고 배역을 따낸 사실이 전해지면서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설령 같은 배역이 아니었어도, 감독은 같았으니까.

백승결은 그의 기준에 맞았고, 자신은 끝까지 고민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다.

그런 상황에서 대본 리딩이 시작되었고.

‘제대로 충격을 받았겠지. 내가 오디션에서 살해위협을 받았을 때처럼.’

자신은 이미 오디션 때 백승결의 연기를 보았지만, 데이브는 뒤늦게 캐스팅이 확정된 탓에 그날 처음으로 백승결의 ‘파코스’를 확인했다.

그 자리에서 파코스는 디터와 랜시를 압도해버렸다.

사막 한가운데서 모래폭풍이라도 만난 듯, 적잖이 충격받은 얼굴을 한 디터 역의 데이브는 다음 리딩때부터 아예 다른 사람이었다.

의욕적으로 대본 리딩에 참여했고, 다시 충격을 받고 돌아갔다.

그걸 몇 번 반복하더니 연기 수업을 받고 있다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물론 그런 내막을 굳이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저 옅은 미소를 띠며 회상에 그쳤다.

‘지금쯤 첫 촬영이 한창이겠네.’

차라리 팀원들과 회의를 마치고 세트장을 갈 걸 그랬나.

그때, 자신의 생각 속에 그가 있는 걸 들여다보기라도 했는지 옆에 앉은 배우들 중 하나가 연관된 화두를 꺼냈다.

“근데 그 동양인 배우 말이 많던데?”

그러자 또 다른 배우가 익살맞게 웃으며 말한다.

“야야, 찰리 앞에서 걔 얘기하지마.”

“왜?”

“걔 때문에 공항에서 반쪽짜리 환대받았었잖아.”

“아! 그, 칸 영화제 때?”

배우들이 낄낄거리며 과거 얘길 꺼내자 찰리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그게 뭐가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관심을 나눠 갖는다는 건.

더군다나 영화제처럼 주목받기 위해 일부러 비행기 시간까지 신경 쓰는 장소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던 기자들이 일부지만 방향을 틀었다는 건.

이들에겐 굉장히 창피하고 모욕적인 일이었다.

“심지어 그 배우 영화는 황금 카메라상까지 받았잖아. 찰리는 무관이고.”

그 말에 찰리가 억지로 입꼬릴 올렸다.

“그래봤자 할리우드에선 조연급이지.”

“오 의식 안 하고 있었다?”

“당연하지. 경쟁의식 갖는 것도 웃기지 않아?”

어깨를 으쓱거리며 여유로운 척을 하던 그가 세이디에게 말했다.

“영화 기대할게.”

“꼭 봐. 올해 최고의 영화가 될 테니까.”

“······자신감 넘치네.”

어디선가 이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지만 세이디는 개의치 않았다.

“그나저나 찰리. 너 이번에 빌라오소피 앰버서더로 선정됐더라?”

“아, 칸 영화제에서 거기 옷 입었더니 연락 왔더라고.”

“디올에서 연락오길 기다린다더니? 조건이 좋았나보지?”

“뭐··· 그치.”

물 흐르듯 다른 주제가 이어졌다.

동시에 세이디는 다시 지루해졌다.

결국, 적당히 접시를 비우고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먼저 가볼게.”

아쉽다며 다음에 보자는 말에 그냥 빙긋 웃었다.

아쉽지도, 다음에 보고 싶지도 않았다.

아예 생각 자체가 여기에 있지 않았지.

그저, 얼른 자신의 촬영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

할리우드에서의 생활이 어느덧 2개월째에 접어들었다.

특기자 비자인 O Visa를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롭게 미국 땅을 밟고 서 있을 수 있었지.

여기 생활이라고 한국과 크게 다르거나 하진 않았다.

아침엔 동네를 뛰었고, 신선한 우유는 물론이고 한식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물론 맛은 한국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긴 했지만 말이다.

“근데 맛동산 가격은 좀 선넘네.”

마트에서 맛동산을 발견하고 얼른 달려갔으나 가격에 충격을 받았다.

너 낯설다. 이 정도 가격이면 맛동산이 아니라 맛에베레스트 정도는······.

“뭐라냐, 나.”

아무튼, 촬영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빠르면서도 정교하게.

다들 할리우드 할리우드 하는 이유가 있었다.

촬영이란 게 변수의 연속인 건 다른 촬영장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걸 해결하는 역량이 달랐다.

하루 만에 세트장을 갈아엎어 버리는 실행력과 그게 가능한 자본. 그리고 시스템이라니.

고작 3개월.

무려 수백억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가 클랭크인을하고 클랭크업에 다다르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여러 영화를 겹쳐서 동시 작업을 했다곤 하지만, 3년 동안 준비한 영화를 3개월 만에 뚝딱 촬영한다니.

그런 할리우드의 환경에 신기해하고 놀라워하며 촬영을 이어나가는 사이······.

내 할리우드 생활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어느새 아침에 함께 뛸 러닝메이트가 생겼다.

세이디와 데이브.

영화 속에선 쫓고 쫓기는 관계였던 우리는 할리우드의 거리를 나란히 뛰었다.

“내가 여기 몇 년을 살면서 그리피스천문대까지 뛰어 올라가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러니까. 후아··· 숨 찬다.”

땀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는 두 사람.

나도 숨을 고르며 그들 옆으로 다가갔다.

“추가 촬영 있을까?”

데이브의 물음에 세이디가 답한다.

“있으면 좋겠어. 맘에 안 드는 부분이 한둘이라야지.”

“나도 산더미인데. 특히 파코스랑 처음으로 얘길 나누는 부분이랑······.”

“난 파코스 얼굴에 화상 생길 때.”

“맞아, 나도 그거 다시 촬영하고 싶은데.”

“생각해보니 마음에 안 드는 장면 전부, 승결이하고 한 씬에 담기는 장면들이네.”

장면을 맞춰보던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 얼굴에 뭐 디버프 주문이라도 걸려있어? 그리고 난 두 사람 연기 괜찮았는데.”

“괜찮았지. 너무. 오히려 버프였달까.”

“그래서 더 갈증이 생겨. 다시 하면 더 잘 할 것 같단 말이지.”

“맞아, 나도!”

또다시 이어지는 두 사람의 공감대.

나는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천문대를 보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지.”

“네가 할 말은 아니고.”

단번에 반박당했고, 피식 웃었다.

그건 그래.

우리 세 사람의 시선이 햇살이 반쯤 드리운 언덕을 훑었다.

“곧, 개봉이네.”

#

며칠 후.

나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국내 언론사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으로 건너오는 기자들.

그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그 질문들 중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질문이 있었으니.

“비중에 대해 안 물어볼 수가 없네요.”

바로, 비중.

다른 말로는 분량.

“모두가 할리우드 진출에 기대를 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하는 게, 지금까지 할리우드에 진출했던 배우들이 실제로는 영화 속에서 몇 분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진출이 아니라 발만 담근 느낌으로.”

문제는 영화 제작사 측에서 이 부분에 대해 언급을 자제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는 거지.

그래서 나름의 고민 끝에 적당한 대답을 만들어냈다.

“가장 중요한 건 배역이 해야 하는 이야길 모두 하고 퇴장했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모두 담은 것 같아요.”

인터뷰가 전부 기사화되었다.

기자들이 모두 그 질문을 던졌던 만큼.

사람들의 관심도 그곳으로 쏠렸다.

—그래서 비중이 많단 거야, 적다는 거야.

—많으면 저렇게 대답하겠냐.

—역시나··· 이번에도 화장실 가면 안 되는 거냐···.

—ㅋㅋㅋㅋ 다녀오면 분량 끝일지도.

분량에 대한 이슈가 한차례 시끌시끌해지고,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미국과 한국에서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이 동시 개봉했다.

그리고 잠시 후.

백승결의 비중이 별볼일 없을 거라 조롱하던 게시물에 새로운 댓글이 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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