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배우 복귀했습니다-147화 (147/167)

147화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 (5)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한민국의 하늘문, 인천국제공항.

총 면적 1700만 평으로, 무려 여의도 18배라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초대형 공항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무색해지는 광경이 벌어졌다.

······공항이, 말 그대로 미어터지고 있었다.

물론 공항의 로비라고 할 수 있는 터미널은 위에서 언급한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국내 최대 규모의 공항이 귀경길 버스 터미널마냥 꽉꽉 들어찬 것은 결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경호원들이 든든하게 방벽을 자처하고 나섰지만, 이미 늦었다.

거구도 인해전술 앞에선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거렸다.

“와아아아아!”

게다가 강력한 사자후(獅子吼)까지.

거인도 막을 듯했던 여리고 성이 고작 함성에 무너지듯, 경호원들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그때, 백승결의 팬들이 움직였다.

“모두 조심해주세요!”

“이러다 VIP 게이트로 나가면 얼굴도 못 본다구요!”

“거기 통로에 계신 분들! 어차피 나가려면 그쪽으로 지나가잖아요!”

“굳이 앞으로 밀고 들어가봤자 다 같이 불편할 뿐이에요!”

“잠시만 조용히 해주시고, 저희 얘기 좀 들어주세요!”

아침 일찍부터 공항에 도착해 기자들보다도 좋은 자리를 선점은 그들은 기꺼이 자리를 포기하고 자경단을 자처했다.

곳곳에 파고든 그들이 상황을 정리했고, 공항이 아주 잠깐 조용해졌다.

그 무렵, 터미널 쪽 상황은 꿈에도 모른 채 비행기에서 내려 게이트로 향하는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의 주역들.

디터 역을 맡은 데이브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오물거린다.

흡사 쓰디 쓴 한약을 먹은 듯한 얼굴이었지만.

실상은 게이트 너머, 얼마나 있을지 모를 팬들을 위한 그 나름의 서비스였다.

“뭐라고 했었지? 돵쭉마?”

“당죽막.”

“땅쭈욱마이?”

“당죽막.”

그러니까··· 한국어 서비스.

데이브가 하고자 하는 말은 ‘당죽막’이었다.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을 국내 팬들이 줄여서 부르는 단어.

“따앙주우······.”

“음. 그걸로 하자.”

발음 교정을 돕던 백승결이 결국 포기했다.

‘발음이 어렵긴 하지······.’

더불어 못생겨지는 건 덤이고.

이어서 ‘쏴라회여, 코리아.’라고 중얼거리는 데이브.

백승결이 피식 웃으며 그에게서 시선을 떼어냈다.

그리고 앞을 보았다.

뒷모습만 봐도 지친 티가 역력한 크리스 감독과 세이디가 보인다.

그럴 만도 했다. 보름 만에 7개국을 정신없이 돌았으니 지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투어의 막바지에 가장 체력적으로 힘든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고국으로 돌아온 나는 제외하고.’

백승결이 가뿐한 얼굴로 게이트에 다가선다.

얼마 만이냐, 대체.

몇 달 떠나있었다고 감회가 새롭기까지 하다. 냄새도 낯설어.

“좋아 보인다?”

옆으로 다가온 김성운이 씩 웃으며 백승결의 얼굴을 훑었다.

곧 게이트를 나서야 하니 상태를 체크한 것이다.

“좋죠. 너무 오랜만인데.”

“나도 좋다. 삼겹살, 김치찌개가 기다린다~.”

“그리고 저렴한 맛동산도요.”

김성운이 낄낄대다가 머릴 긁적이며 어느새 가까워진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근데, 밖이 생각보단 소란스럽지가 않다?”

그의 말대로였다. 생각보다 조용했다.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야 하지만, 그리 많은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다.

‘영화 반응이 엄청 좋다고 했는데?’

이미 ‘당죽막’이 한국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걸 알기에 백승결과 김성운 모두 의아해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앞서가던 크리스 감독과 세이디 때문에 게이트 센서가 작동했는지 문이 미끄러지듯 옆으로 열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와아아아아아아!”

“백승겨어어어얼!! 승겨어어얼!”

함성이 밀려왔다.

대체 방금까진 어떻게 조용했나 싶을 정도로, 커다란 환호!

시야엔 콘서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수많은 인파가 터미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게릴라 콘서트도 아니고 갑자기 이게 무슨······.’

아닌 게 아니라, 게이트 앞을 메운 수많은 기자와 팬들에 백승결을 비롯한 ‘당죽막’의 주역들이 안대를 벗은 사람처럼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백승결이 자신의 팬들 덕분에 아비규환이던 터미널의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잠시 조용해진 사이 자신들이 게이트를 타이밍 좋게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몇 시간 후의 일.

격한 환대 속에서 앞서가던 크리스 감독과 세이디가 멈춰 섰다.

뒤에 있던 백승결과 데이브가 다가가 걸음을 맞췄다.

그렇게 네 사람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인사를 시작했다.

단숨에 포토존이 된 게이트 앞.

크리스 감독이 헛웃음을 머금으며 낮게 말했다.

“홍콩하곤 비교가 안 되는군.”

불과 어제만 해도 홍콩에 있었기에, 자연스레 비교될 수밖에.

세이디도 끄덕거리며 혀를 내두른다.

“그러게요. 제가 지난 영화 때 행사차 일본을 잠깐 갔었는데, 한국이랑 가까운 나라니까 거기랑 비슷할 줄 알았거든요. 근데······완전히 다른데요?”

“그러니까 말이야. 이렇게 환대를 받을 줄은 몰랐는데······.”

“백 배우 덕분인가?”

크리스 감독이 나를 보며 말꼬릴 올린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듯 여기저기서 그들을 애타게 호명하기 시작했다.

“크리스 디벗!”

“세이디 모튼!”

“데이브 폴터!”

감독과 배우들의 이름이 공항에 쩌렁쩌렁 울렸다.

“이거, 기분 끝내주네요.”

어느새 쌩쌩해진 표정의 세이디가 입꼬릴 올린다.

데이브도 들뜬 얼굴로 팬들을 향해 손을 휘적거렸다.

여전히 입으로는 ‘사랑해요, 코리아. 당죽막 사랑해주세요.’를 중얼거린다. 전혀 그렇게 들리진 않지만.

그리고 크리스 감독은.

“근데 말이야.”

“···?”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들 이름 끝에 렛츠고는 왜 붙이는 거지? 어딜 가자는 거야?”

“아, 그게······.”

순간 말문이 막히는 백승결이었다.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

이름을 나열하고 그 뒤에 렛츠고를 붙이는 밈을 이해시키는 것보다,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리며 질문을 쏟아내는 순간이 더 빠르게 다가왔다.

우리는 마치 기자회견을 하는 것처럼 즉석에서 몇 가지를 답했고, 안전상의 이유로 얼른 공항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한숨을 돌릴 틈도 없이 곧장 스케줄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가는 곳마다 팬들이 인산인해 전술로 반겼다.

“인구가 몇이라고?”

“5천만 정도.”

“놀랍군. 평소에도 이렇게 마이클 잭슨이 된 기분으로 다녔던 건가?”

“이전엔 이 정도까진 아니었어요.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의 역할이 컸던 것 같아요.”

“정말 대단한 일이야. 내 영화가 지구 반대편에서 모국인 미국만큼··· 아니, 인구대비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니.”

냉랭하다 못해 찬 바람이 쌩쌩 부는 표정이 디폴트이던 크리스 감독의 얼굴이 스케줄 내내 밝았다.

“자, 지금 전 세계에서 세이프가드 열풍을 불러일으킨 장본인들이죠.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의 크리스 감독님과 배우분들을 모셨습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쏴라해여, 코리아. 돰···돠암쭉뫅······.”

나머지도 지칠 줄을 몰랐다.

이전 나라들······ 특히 홍콩에서의 분위기와 너무 차이가 나서 그런지, 다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작은 헤프닝이 있기도 했다.

데이브가 갑자기 무대인사에서 춤을 춘 것이다.

“내가, 왜 그랬지······.”

거하게 흑역사를 생성하고 상영관 빠져나온 그가 머리를 감싸며 후회한다.

그런 그를 내가 위로했다.

“그래도 괜찮—.”

“아니, 심각했어.”

세이디가 방해했고.

“데이브가 전문 댄서도 아니고, 충분히—.”

“그걸 감안해도 충분히 심각했어.”

“그래도.”

그때 단호한 세이디가 너무 하다고 생각했는지 크리스 감독이 입을 열었다.

“영화 속 디터와 겹쳐서 괜찮더군.”

역시 표정은 차가워도 속은 따뜻한 크리스 감······.

“멍청해 보이는 게 딱이었지.”

당신이 제일 나빠.

크리스 감독의 말에 잠시 반짝이던 데이브의 눈빛이 팍 사그라들었다.

그가 시무룩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내, 복도에 가득한 포스터에 시선이 꽂혔다.

“오, 지금 상영 중인 영화들인가?”

금세 멀쩡해진다.

놀라운 회복탄력성이었다.

“그런 거 같네.”

“흥미로워.”

턱을 매만지며 데이브가 포스터를 쭉 훑었다.

그러더니 뭔가 재밌는 생각이 떠오른 얼굴로 묻는다.

“진짜 포스터만 봐도 뭐가 재밌는지 느낌 딱 오지 않아요?”

“확실히··· 그런 경우가 많지.”

“나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에 관심을 보이는 크리스 감독과 세이디.

기다렸다는 듯이 데이브가 운을 띄웠다.

“한 번 맞춰볼래요? 영화 순위? 일단 1등은 압도적으로 우리인 게 너무 확실하니 빼고. 꼴등을 고르는 건 너무 잔인하니까······ 2등 찾는 거 어때요?”

“그거 재밌겠는데?”

“흐음···.”

그의 말에 두 사람이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나도 포스터를 확인했다. 대부분 나에게 제안이 왔었던 영화들이었기에 대본을 읽었다.

나한테 너무 유리할 것 같은데···.

그때 데이브가 자신 있게 자신은 골랐다며 선점한다.

“전 이거요.”

그가 고른 것은 윤 감독의 ‘범죄인도자’.

내가 대본을 본 것은 물론이고, 끌려서 미팅까지 했었던.

그러다 빚 관련 사건이 터지며 일방적으로 손절당한 바로 그 영화였다.

‘대본은 좋았었지. 감독 전작이 크게 망하긴 했지만 그 이전 작품들을 보면 나쁘지 않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세이디도 영화를 선택했다.

이런 거 좀처럼 안 할 것 같던 크리스 감독도 고민 끝에 하나를 고른다. 아주 신중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나도 하나를 지목했다.

‘범죄인도자’처럼 대본에서부터 확 끌리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재미는 있겠다 싶었던 영화였다.

모두의 선택이 끝나고, 데이브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배급사 측에서 나온 직원을 바라보았다.

“누가 맞았어요?”

돌아보자 배급사 측에서 나온 직원이 빙그레 웃었다.

“승결 배우님이요. 1등이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이고, 2등이 ‘세레나데’예요.”

“오?”

나조차도 살짝 놀라 직원을 바라보았다.

정말 맞출 줄 몰랐는데.

한편, 데이브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범죄인도자’ 포스터를 가리켰다.

“아, 아니. 이게 2등이 아니라고? 포스터부터 너무 재밌을 것 같은데? 이거 지금 몇 등인데요?”

데이브의 물음에 나도 고갤 돌렸다.

영화 홍보를 위해 전 세계를 도느라 확인할 정신조차 없었지만, 내심 궁금하긴 했다.

어쩌면 내가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 대신 선택했을 수도 있었던 이 영화가 어떤 결과를 보여줬는지.

“범죄인도자는······.”

말꼬릴 늘리던 직원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6등이요.”

그 정도라고? 가만 6등이면······.

내가 고갤 돌리는데, 이미 데이브가 포스터를 향해 하나, 둘, 셋·· 손가락질하며 내가 하려던 걸 하고 있었다.

“맙소사, 그러니까······.”

포스터를 모두 샌 그가 되물었다.

“꼴등이란 소리네요?”

0